[귀농정착 성공사례(①] 더불어 행복한 귀농을 꿈꾸며

기사입력 2014-02-02 16:44 기사수정 2014-02-02 16:45

-황정임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지원과 농업연구사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은 친환경농업, 풀무학교, 생협운동 등 농업과 관련해 특별한 역사를 만들어 온 지역으로 잘 알려진 만큼 귀농하고 싶어도 집이나 땅 구하기가 어려워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다. 금창영 씨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이곳으로 귀농했다.

◇농부가 된 역사학도 = 건강에 적신호가 올 때까지 연구에 매진하던 역사학도. 귀농 전 그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더 이상 학업만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서울보다는 시골에 해답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은 역사를 탐구하는 그의 일이나, 책을 만드는 아내의 일에도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됐다. 홍동과의 인연은 먼저 귀농해 살고 있는 선배를 통해 이어졌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서울에 두고 먼저 내려와 빈집과 농지를 찾았다. 6개월 후 가까스로 가족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이로써 본격적인 그의 시골살이가 시작됐다.

◇세 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농산물 직거래 =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귀농 교육을 접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학습과 준비과정을 거쳐 귀농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도시에서 하던 일과 다른 일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환경 속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충분한 준비가 실패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보통의 생각이다. 그러나 금씨는 이러한 ‘귀농의 정석’과는 거리가 있는 길을 택했다.

시골 출신이지만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채 시작한 생활의 무게는 버거웠다. 농사를 짓고도 소득을 내지 못해 아내와의 말다툼이 잦아졌다. 그날도 아내와 다투고 집밖을 서성이던 날이었다. 절박함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상자에 담아 보낼 테니 팔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세 명의 회원이 탄생함으로써 농산물 판매를 통한 수입 창출이 가능하게 됐고 본격적인‘시민지원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이 시작됐다.

◇상자 속에 담긴 철학 = 시민지원농업이란 농업인은 소비자 회원들에게 정직하게 생산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소비자 회원

들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농업의 한 형태를 일컫는다. 금씨가 꿈꾸는 농업은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간의‘관계’가 살아있는 농업이다.

그는 생산자가 소비자의 가족 구성, 건강 등까지 소비자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자가 가족을 대하듯 소비자의 안부를 묻고 좋아하는 농산물이나 건강 상태에 맞는 먹을거리를 챙겨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때문에 금씨가 생산한 농산물을 먹고 건강이 좋아졌다든지, 어렸을 적 먹었던 맛과 흡사하다든지 하는 회원들의 인사를 듣는 게 그의 가장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키우던 배추의 속이 차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아프시니 꼭 그 배추를 보내달라고 하는 소비자의 전화를 받고 나서 느꼈던 벅차오르는 행복을 잊을 수 없다는 그이다.

금씨가 정기적으로 보내는 일명 ‘나눔상자’에는 그가 생산한 친환경 제철 농산물 6~7가지와 이웃집 할머니가 생산한 농산물 3~4가지가 담긴다. 그가 생산하지 못하는 농산물과 가공품은 이웃 귀농인들이나 홍성유기농영농조합, 풀무학교생협 등에서 사서 보낸다. 나눔상자 하나당 가격은 3만원, 소비자는 한달을 기준으로 원하는 만큼 횟수를 정해 이용할 수 있다.

현재 회원은 30명 정도인데, 입소문으로 회원이 60명까지 증가한 적이 있었다. 회원 수는 너무 많아도 관리가 어렵고,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작업량을 초과하기 때문에 30명 정도가 적당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나눔상자를 계속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전체 소득의 60%를 차지할 정도의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정착했다. 그럼에도 그는 도시 소비자 회원들의 재미와 만족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고집스런 농사 방식 = 금씨는 친환경농업을 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토종종자를 사용하고 논에는 우렁이나 오리, 쌀겨를 넣지 않으며 밭은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모두 손수 풀을 뽑는다. 보통 하는 친환경농업보다 훨씬 엄격하게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또 논에 들어갈 때에도 장화를 신지 않고 흙의 감촉을 즐기며, 작물을 돌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논밭에 들어가면 작물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호미 들고 한 고랑씩 김을 매어 나갈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하니, 이쯤 되면 농사일이 그에게 천

직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는 농사 욕심이 아주 많다. 지금도 80가지 이상의 작물을 심고 많을 때는 130가지 이상의 작물을 가꾸지만, 아직까지 키워보지 않은 작물들에 욕심을 낸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것이 규모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행복한 귀농 = 금씨가 가족이 함께 살아갈 보금자리로 홍동을 선택해 선뜻 내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도 한 몫 작용했다. 홍동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 논생물, 비폭력대화 등에 대한 학습모임 뿐만 아니라 목공예, 장구 등 문화예술 강좌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어 금씨의 부인 장현숙 씨도 이중 여러 활동들에 참여하고 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연 속에서 맘껏 뛰노는 생활을 즐거워하고, 무엇보다 친구가 많다고 좋아한다. 면 단위 어린이집이 현재 60~70명의 아이들을 맡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부족해 줄을 서있는 정도라고 하니 홍동은 역시 특별한 시골이다.

금씨는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농사를 확장하지 않는 것을 또 하나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농사일을 하다보면 하나라도 더 심어 더 거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정직한 친환경농업과 규모화가 얼마나 양립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에 적정수준을 유지하려 한다. 대신 이웃과 함께 먹을거리와 여유, 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공유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 = 금씨가 주도해 홍동에서 처음 연 ‘파머스마켓’은 여럿이 함께 가고자 하는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일례이다. 그동안 파머스마켓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생산자들을 설득해 20여 명을 모았고, 전단지를 돌려 행사를 알렸다.

주변에선 행사장이 휑할 것을 염려했지만 150여명의 소비자들이 행사장을 찾아 참여한 생산자들이 즐겁게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귀농 첫 해 논 1000평, 밭 1000평으로 시작한 그는 이제 논 2100평, 밭 2300평, 하우스 150평을 일구게 됐다. 그는 ‘준비 없이 귀농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 모두 잘 몰랐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덕분에 계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고 이웃 주민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귀농 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과 두려움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높은 연매출을 올리는 것만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조언을 들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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