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의 한문 산책] 추양부(秋陽賦)

기사입력 2015-09-30 14:35 기사수정 2015-09-30 14:35

9월의 초가을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중국의 문장 가운데, 가을 햇살을 노래한 글로서는 소동파의 <추양부(秋陽賦)>가 가장 유명하다. 이 <추양부>는 소동파가 그의 친구였던 조영치(趙令?)가 안정군왕(安定郡王)에 봉해졌을 때,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애환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지어 준 글이다. 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越)나라에 현공자(賢公子)라는 왕손(王孫)이 있었는데…. 동파거사(東坡居士)에게 말하길, “내 마음은 가을볕(秋陽)처럼 밝게 빛나고 내 기운은 가을볕처럼 엄숙하고 맑습니다…. 대저 이 가을볕을 즐기며 부(賦)를 쓸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라고 물었다.

동파거사가 웃으며 말하길, “공자께서 어찌 가을 햇살을 아신단 말입니까?… 저같이 고생을 해본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가을햇살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이 와서 장마가 지면, 구름이 김 오르듯 끼고 비가 흩뿌리니 이윽고 벼락이 쳐서 큰비가 내리면 강물이 범람하여 강과 호수가 하나되고, 땅의 신(神)인 후토(后土)도 수몰(水沒)되는 듯, 배가 성곽(城郭)까지 다니고, 물고기가 방안까지 들어올 지경입니다. 밥그릇마다 곰팡이가 들어차고, 개구리와 지렁이가 방석과 돗자리를 돌아다니니, 밤잠을 자다가도 습기를 피해 잠자리를 다섯 번 옮길 지경이며 낮에는 옷을 말리는 데도 세 번 장소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괴롭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삼오(三吳)지역에 한 뙈기의 논을 손수 경작해 보십시오. 곡식이 맺히나 영글지 않고, 벼가 이삭이 패나 진흙탕 속에서 뒹굴어야 합니다. 논둑은 툭하면 터져 도랑과 교통(交通)하고, 담벼락은 뚫리거나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벽을 칠하다가 칠이 떨어져 얼굴은 항상 얼룩덜룩하며, 젖은 땔감을 때느라 매운 연기로 인해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솥은 항상 비어 있고, 사방에는 항상 근심만이 가득합니다. 황새와 학만이 처량하게 정원에서 울고, 아녀자들은 저녁 늦게까지 깊은 한숨 내쉬며 먹을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느라, 평생토록 옷가지에는 신경 쓸 틈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홀연히 밤하늘에 뭇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등심지가 길게 맺히기 시작합니다. 서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처마의 풍경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노비(奴婢)가 기뻐 고(告)하길 “비가 그칠 상서로운 조짐이 있습니다”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하늘을 보며 헤아리매 장경성(長庚星) 별빛이 담담(澹澹)히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태양이 동쪽 양곡(暘谷)에서 떠서 서쪽 부상(扶桑)으로 지는 한나절 동안, 눈 깜박할 사이에 긴 해 그림자가 마루기둥을 길게 덮습니다. 이 같은 가을이 오면, 마냥 좋아서 취하여도 깬 것 같고, 벙어리도 입을 열 것 같고 앉은뱅이도 일어나 걸을 것 같습니다. 이 수확의 계절을 맞는 그 기쁨은 고향땅에 돌아가 부모와 형제를 처음 뵐 때 같으니, 공자께서 이 같은 기쁨이 있으십니까” 라고 물었다.

이 문장의 ‘方夏?之淫也, 雲烝雨泄(여름이 와서 장마가 지면, 구름이 김 오르듯 끼고 비가 흩뿌리니…)’로 시작되는 표현은 여름철 장마에 따른 농민들의 애환을 그린 절절한 표현으로, 천여 년의 세월을 격하고도 마치 눈에 보이듯 가슴에 와 닿는 명문으로 꼽히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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