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낯선 이국에서 새 시대와 새 세대를 본다

기사입력 2016-12-20 11:30 기사수정 2016-12-20 11:30

<글ㆍ사진> 함철훈 사진가

(함철훈 사진가)
(함철훈 사진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이 여행할 수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고향이 있는 사람만이 사진을 찍는다는 짠한 말을 네덜란드 출신 미국의 가톨릭 사제인 작가 헨리 나우웬(1932~1996)은 남겼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서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하고, 사진 강의를 위해 매달 홍콩으로 출장가면서 잠시 서울에 들르게 되었다. 세상을 두루 다니는 직업이라 짐을 여러 번 꾸렸지만 서울에 오면 언제나 편안하고 푸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 시내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그때 느낀 외로움이 무척 낯설었다. 내 고향은 서울이고, 서울은 여전히 나와 내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곳인데 말이다.

늦은 밤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가 갈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너무나 낯선 게스트하우스란 이름의 주소를 손에 들고 있었다. 비로소 우리가 서울이라는 고향을 떠나 더 근본적인 곳으로 이미 이동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몽골에서 막연히 느낀 여러 종류의 이질감을 서울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서울에 가면 이런 이질감은 모두 해소될 거라고 생각하며, 이런 배타감은 잠시라며 몽골에서는 만나는 대로 뒤로 핑계 대며 미뤄왔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가 서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불편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외감이었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을 하기 위한 이주는 여행이나 출장, 파견 근무가 아닌 아예 모든 삶의 근거를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과의 만남으로 다른 것이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와 다른 것도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자기 발전과 사람들 간의 문제는 대부분 나와 다른 것을 해석하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을 어떻게 소화해 나가느냐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 모두 낯선 사람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들과 한데 모여 살아왔다. 거기가 고향이었으며, 일가친척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런 한국에서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하고 몽골국제대학교의 초청에 응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생긴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특별히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들과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도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도 맞다고 판단했다. 이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질시하고 경쟁적으로 군림하고자 했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이나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나 비정부조직 또는 개인과 나라의 이익을 넘어서는 일이 갖고 있는 보람과 자부심이 앞으로는 더 폭넓고 귀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조언해 왔다.

21세기 지금 세대부터는 서로 다른 것과의 이해와 화합을 화두로 삼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서울과 몽골 양쪽에서 겪는 이질감에서 오는 외로움은 한 아프리카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정말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 속담의 반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경고를 뛰어넘는 길, 모두를 만나기 위해 먼저 떨어져야 하는 길, 감히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외쳤던 그 길을 우리 세대가 넘어가리라 믿는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전인자에는 독특한 것이 있다는 것을 외국에 살면서 조금씩 확신하고 있다. 내가 나를 보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우리를 알아가는 좋은 길을 외국에 살면서 하나 알게 되었다. 우리와 다른 남들 안에서 나는 우리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양쪽에서 반쪽이의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그래서 얻게 된 우리가 있다. 이렇게 반쪽이가 된 많은 우리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양쪽을 잘 승화시킨 우리의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또한 광화문 촛불시위 사이 틈틈이 허리를 굽히고 타버린 초와 종이컵을 줍는 젊은이들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다.

늙은이들의 노파심 중에도 잘 자라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기대된다. 서로 다름을 시기하지 않는 길, 그 길들이 이젠 꿈에서가 아니라 분명히 보인다. 아주 추운 몽골의 눈길을 가면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2017년 새해를 맞으면서도 새 시대를 여는 새 세대가 여기서도 분명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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