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강제규 감독이 만든 137분짜리 대작이다. 한국에서 장동건, 일본에서 오다기리 죠, 중국에서 판빙빙이라는 거물급 배우를 동원하고 엄청난 투자를 한 작품이지만,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해서 또한 화제가 된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투 장면이 볼만하다. 한 조선청년이 겪는 파란 만장한 운명의 장대한 스케일도 볼만하지만, 역사 면에서도 참고가 될 만한 영화이다.
무대는 1938년 경성이다. 제2의 손기정을 꿈꾸며 마라톤에 매진하던 준식(장동건)과 일본 최고의 마라토너로 타츠오(오다기리 죠)가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대회에 출전한다. 준식이 일등으로 들어왔으나 간교한 일본인 주최 측은 진로 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올림픽 출전권을 모두 일본인들에게 준다. 이 일로 조선인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폭동에 가담한 죄로 준식은 일본 황군에 입대하게 된다.
일본군이 된 준식의 부대에 타츠오가 대위로 부임해 오면서 운명적인 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둘은 라이벌로 계속해서 앙숙이지만, 이들의 운명은 요동치는 세계정세의 파도에 일엽편주처럼 맥 못 추는 존재로 역사의 희생양이 된다.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패하고, 둘은 포로로 잡힌다. 혹한의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독일군이 헝가리 침공을 시작으로 소련까지 침공하자 이번에는 소련군이 되어 참전한다. 소련군으로 전투에 임하지만, 의미 없는 개죽음이라며 둘은 독일 진영으로 탈출한다. 다시 독일군이 되어 노르망디의 동방부대에 참전했다가 연합군의 상륙작전 때 탈출하던 중 준식은 총상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같이 도망치던 타츠오는 연합군에 포위되었으나 준식이 준 인식표를 가지고 조선인 행세를 해서 살아난다. 전쟁이 끝나고 타츠오는 준식이라는 이름으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여기서 노몬한 전투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러일 전쟁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는 일본 해군이 소련 해군을 물리치면서 일본군이 승전한 정도로만 간단하게 배웠다. 그러나 이 영화처럼 육전도 있었다. 노몬한은 몽고와 중국의 접경 지역으로 당시 남하정책을 펴던 소련과 중국 대륙을 장악한 일본의 관동군이 대치하다가 전투를 벌인 곳이다. 중국군에 연전연승하던 일본 육군이 최초로 소련의 막강한 화력에 대패한 전투이다. 관동군이 궤멸되고 수천 명이 전사했으니 일본으로서는 치욕적인 전투였다. 1939년의 일이었다.
우리가 얼핏 배운 러일 전쟁은 그 전 일이다. 1905년 소련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만주 여순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에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한 판 붙은 전쟁이다. 늘 그랬듯이 교활한 일본은 선전 포고 없이 기습 작전으로 소련의 여순 함대를 공격한다. 여순 항구는 항구 포대가 막강해서 일본군이 쉽게 공략하지 못했으나 육지 전투에서 밀려 결국 여순항을 잃는다. 소련은 발틱함대를 증강하여 반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멀리 마다가스카르에서 출발한 발틱함대는 긴 항해에 지치고 극동의 유일한 소련 항구인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을 대한 해협으로 통과하다가 일본군에게 대패한다. 소련이 전투에서는 졌으나 일본에게 항복한 것은 아니다. 일본도 재정적으로 손해가 너무 크다 보니 미국의 중재로 소련과 강화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다.
일본은 소련을 경계하기 위해 동해의 길목인 울릉도와 독도에 1904년 망루를 설치했다. 이때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킨 것을 빌미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설사를 멎게 한다는 정로환이라는 약은 지금도 일본과 한국에서 잘 팔리는 약이다. 당시 많은 수의 일본군이 설사로 고통 받아 제대로 전투에 임하지 못하던 것을 보고 만든 약이 정로환인데 한자로 러시아를 정복한다는 의미로 정로환(征露丸)이었다고 한다.
나라를 잃으면 그 나라 사람들은 풍랑 위의 작은 나룻배처럼 운명이 위태로워진다. 전쟁은 비참한 일이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야욕 앞에 다른 것은 보이는 것이 없다. 일본은 명치유신의 체계를 제국주의로 잡고 이웃나라들을 침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 아베 수상도 그 계보에 속한 사람이라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