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퇴근길 혼자 터벅터벅 걸어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텁텁한 공기만 꽉 차 있는 실내,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 거실은 물론 방마다 불이란 불은 죄다 켜본다. 또 양쪽 화장실에, 베란다까지 구석구석 다 훑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창문을 모두 닫아걸자. 왜? 나 홀로 집이기 때문이다.
“썰렁하니 음악이라도 좀 틀어볼까? 아니다, 그냥 TV나 틀어놓자.” 고교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를 무척 즐겨 들었던 시절이 있었지.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선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예 딴 세상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 배경음악과 함께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들려주던 ‘심쿵’ 사연, 까닭 모를 아련함에 밤을 새우며 써내려간 부치지 못한 편지들. 기다리던 노래는 때마침 흘러나오는데 “오 마이 갓! 그 많던 공테이프는 다 어디로 갔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춘, 내다 버린 기억은 분명 없는데 집구석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아! 젊은 날의 흔적들이여~ 정녕 다시 돌아올 수 없단 말인가?
불청객은 바로 그즈음에 등장했다. 적막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 달콤 쌉싸름했던 잠시나마의 시간여행에서 냉큼 현실로 돌아온다. “아빠 저희 잘 도착했고요. 지금 저녁 먹고 있는데 아빠는요?” 살뜰한 큰 녀석이 카톡으로 인증샷을 보내줬다.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장인, 주방에서 밥하고 계신 장모, 모처럼 방문한 친정집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아내, 그리고 나란히 앉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사춘기 두 아들의 모습에 가만히 미소를 지어본다.
긴장이 풀리고 연휴도 한몫했을 터다. 오전 10시경 부스스 눈을 떠보니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온 태양이 눈을 위아래로 흘기고 있다. 머리맡의 빈 맥주 캔은 보초를 서고 있다. 늦게까지 멀뚱거리다 기어코 한 편의 영화를 챙겨보느라 늦잠을 자고 말았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는 도대체 제목이 생뚱맞다. 악한을 연기한 주연배우의 동전 게임과 산소통 장면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 좀 더 잘까나?” 그 순간 노란 포스트잇을 발견한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쪽지엔 숙제가 가득하다. 청소기 돌리기, 쓰레기 버리기, 화분에 물주기, 빨래 널기 등은 그래도 괜찮다. 락스 뿌려 화장실 청소하기(뿌리고 난 후 약 1시간 뒤에 솔로 잘 문질러야 타일 틈새의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는 좀 심하지 않나? ‘가정의 달 특집’이라나 뭐라나!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순전히 필자의 착각이었다. 연휴에 혼자 집에 있으면 시간도 아주 천천히 갈 테고, 미뤄왔던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완전 달성할 줄 알았는데 웬걸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걸까? 일주일이 슝~ 지나가버리고 다시 금요일 오후, 지하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경적소리에 필자만의 시간은 그대로 정지되고 만다.
뭘 또 저리도 잔뜩 챙겨온 걸까? 칠순을 훌쩍 넘긴 장인장모께선 또 얼마나 바리바리 싸주셨을까? 출가한 아들이 둘씩이나 있지만 여태 친손자를 보지 못한 두 분은 그래서인지 필자의 아들들을 무척이나 챙겨주신다. 오이소박이, 겉절이물김치, 부추무침, 참기름, 들기름에 소백산 자락에서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떡까지 보내주셨다. 참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저녁엔 밥도둑이 따로 없으리.
5월 연휴에 맞이한 일주일간의 나 홀로 집에! 그러나 혼자는 없었고 참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