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었던 대지가 녹을 즈음이면 산야의 나무 색깔이 확연하지는 않아도 무언 지 모를 변화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변화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아침 산책길로 택한 주변의 나지막한 산을 오르고 내리며 유심히 살펴본다. 앙상한 가지가지마다 색감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움틈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가 있음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어떤 큰 변화는 여럿의 작은 변화의 징조 끝에 다가온다. 계절의 바뀜도 그렇지 않을까? 어느 순간에 확 바뀌지 않는다. 작은 변화들이 서서히 이어져 나타난다. 대체로 초록의 새싹 돋음에서 봄을 느낀다. 봄의 시작은 새싹의 초록 기운일까? 필자는 봄의 시작은 초록이 아닌 검은 기운임을 느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느껴지는 빛깔은 분명 검은 빛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도 분명 검은 색조를 띈다. 나무 둥치들을 보면 완연히 그렇다.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산 벚꽃 나무 등 대부분이 검은 색조를 보인다.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다시 바라본다. 산불이 났던 산처럼 검게 보이지 않는가? 스카이라인에 선을 긋는 나뭇가지는 불탄 흔적처럼 보인다. 실루엣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나 검은 색감이 바탕을 이룬다. 언제 저곳에 산불이 났었나 하고 여길 정도로 검은색을 드러낸다. 늘 푸르다는 소나무의 침엽도 검은 색에 가깝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이고 사계절의 출발점이다.
시작은 검은색으로 나타나나 보다.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 널따란 들녘을 바라본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늑한 대지 또한 검은빛으로 눈에 다가온다. 씨앗을 품은 땅도 잉태의 색깔, 검정으로 변하고 있다. 봄을 맞는 땅의 기운인지 모른다. 지나간 여름, 가을, 겨울을 되돌려 생각해 본다. 여름철과 가을의 대지 그리고 겨울, 해동하는 요즈음의 땅의 색조는 분명 다르다. 그 땅은 그 땅임이 분명한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흙의 색감이 조금씩 다르다. 봄이 오는 길목에는 유난히 검게 보인다. "펄 벅" 여사의 "대지"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태동의 색은 분명 검은색인 듯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꽤 오래전에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큰 형이 장가를 가고 한집에 살게 되었다. 예전의 대가족 제도다. 1년쯤 지났을 때 형수의 얼굴을 유심히 보시던 어머니께서 밝은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 형수의 얼굴이 검은 기가 도는 걸 보니 손주가 생길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대로 형수는 조카를 가졌었다. 인간에게도 잉태의 알림은 검은빛이다. 임신이 가능한 나이에 이르는 처녀의 피부도 검은 색조를 띈다. 아이를 가진 아내의 얼굴이 다소 검게 변함을 느껴 본 적이 없는가? 유심히 관찰한 경험이 있다면 분명 느꼈지 싶다. 검게 변함은 태동을 알리는 신호다. 귀중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다. 한밤중보다도 날 새는 새벽녘이 더 어둡다. 같은 이치다. 새로운 날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여서 그렇다.
눈을 들어 다시한번 앞산을 본다. 봄의 기운을 안은 나무들 검게 보인다. 눈을 들어 먼 들판을 바라본다. 검푸른 대지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금세 아지랑이 피어오를 듯하다. 뒷산을 오르며 내려 본 나무 나무들, 검은 기운 터질 듯하니 멀지 않아 연둣빛 새싹이 돋겠네. 봄은 검은빛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