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시절에 먹던 귀한 음식, 추어탕

기사입력 2019-11-04 10:50 기사수정 2019-11-04 10:50

[황광해의 '食史']추어탕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추어탕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 늘 물어본다. “진짜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이 맛있나요?” 대부분 맛있다고 대답한다. 어떤 맛이냐고 다시 묻는다. 대부분 우물쭈물한다. 자꾸 캐물으면 그제야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어릴 적 먹었던 맛, 적당히 흙냄새가 나는 맛, 민물생선의 비린 맛, 미꾸라지의 고소한 맛.

민물생선의 비린내나 흙냄새는 이해가 된다. 글쎄, 고소한 맛은 모르겠다. 대부분 생선, 고기는 오래 씹으면 고운 입자로 변해 단맛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가열처리하거나 삶거나 구운 것이 그렇다. 날것은 고소한 맛을 느끼기 힘들다. 끓인 것이라지만, 미꾸라지의 고소한 맛? 이건 알 수 없다.

어릴 적 먹었던 추억 속의 맛은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맛은 그저 추억의 맛일 뿐이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닭죽, 된장찌개, 그리고 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가 사준 자장면. 대략 이런 음식들이 추억의 맛이다. 비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중국산 미꾸라지 사용에 대해 늘 논란이 있다. 이유가 있다. 살아 있는 모습을 비교해도 일반인들이 그 차이를 알기 힘들다. 하물며 싹 갈아서 이른바 ‘갈추(추어를 갈아 요리한 추어탕)’로 만들면 더 구별하기 어렵다. 더하여 산초가루까지 넣으면 사실상 구별이 불가능하다. 산초는 매운맛까지 덮을 정도로 강한 맛이다. 추어탕은 끓여놓으면 국산이든 중국산이든 맛과 모양이 비슷하다. 중국산, 국산을 두고 늘 추어탕 논란이 생기는 이유다. 알아차리기 힘드니까 중국산으로 끓이고 국산이라고 내놓는 가게들이 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고등어 추어탕’도 마찬가지다. 고등어 살을 갈아 넣으면 맛은 더 좋아진다. 아무려면 민물고기인 미꾸라지가 등 푸른 바다생선 고등어의 맛을 따를 수 있을까? ‘맛’으로 따지자면 고등어 추어탕을 비난할 수는 없다. 고등어를 갈아 넣고 미꾸라지라고 우기고, 속이는 주인의 ‘도덕성’이 문제 있을 뿐이다. 원재료를 속이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자, 다시 묻는다. 추어탕을 두고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을 구분할 자신이 있는가? ‘없다’가 정답이다.



미꾸라지는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우리는 미꾸라지를 오랫동안 먹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우리가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책의 발간은 1123년, 고려시대다.

고려 풍속에 (중략)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워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이 짜 오래 먹으면 싫어진다.

‘鰌(추, 미꾸라지)’는 ‘鰍(추, 미꾸라지)’다. 고려·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둘을 혼용했다. 서긍이, 왜 ‘鰌’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대부분 ‘鰍’로 표기한다. ‘미꾸라지는 가을 물고기’라고 설명한다.

이 무렵부터 미꾸라지를 먹은 건 아니다. 그 이전, 더 오래전부터 먹었다. 그물, 선박, 항해기술 등 어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다. 배는 이른바 무동력선.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작은 배에 낡고 비루한 그물을 싣고 물고기를 잡았다. 조선시대에는 바닷가에 사람이 사는 것을 금했다. 왜구들의 노략질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 바닷가에 살지 못했으므로 바다생선을 잡는 기회도 드물었다. 무동력선으로는 가까운 바다가 고작이다. 일반 서민들이 바다생선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미꾸라지는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서민들의 단백질이었다. 바닷물고기가 훨씬 크고 맛있지만 가난한 서민들은 가까운 바다의 새우, 거북손, 조개 등을 구하는 게 한계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꾸라지는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 맛이 있어서 먹었던 식재료가 아니었다. ‘먹고 싶어’가 아니라 ‘이거라도 먹고’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땅히 취할 생선, 단백질이 없었던 세민(細民, 서민)들 음식이다. 별다른 레시피가 있을 리 없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 비린내와 흙냄새를 감추면서 먹었던 식재료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미꾸라지를 먹었지만, 추어탕을 파는 집은 1920~30년대에 처음 나타난다. 지금도 남아 있는 ‘형제추어탕’이나 ‘용금옥’, 사라진 ‘희망의집’이나 ‘곰보추탕’ 등이다.



서울식과 시골식 추어탕의 차이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미꾸라지가 기록된 시기와 추어탕 파는 식당의 등장은 약 800년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 추어탕을 정확하게 언급한 책은 두 종류가 있다.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다.

풍석의 ‘난호어목지’는 1820년쯤 발간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도 19세기 중반 정도에 펴낸 거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다. 미꾸라지 먹는 방법을 보면 두 사람은 다른 곳의, 다른 미꾸라지탕을 보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지만 세부 내용은 전혀 다르다. 풍석은 시골식, 오주는 서울식이다.

‘난호어목지’의 ‘밋구리탕’은 시골, 농촌의 미꾸라지탕, 추어탕이다. 이름도 한글로 ‘밋구리’라 했다. 내용도 상당히 정확하다. “(밋구리, 미꾸라지는)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이야기한다.

미꾸라지가 음식으로 표현된다. 다만 탕이 아니라 죽이다. 미꾸라지와 함께 여러 가지 채소, 양념 등을 넣고 흥건하게 끓인 게 죽이다. 오늘날 추어탕에 밥을 말면, 풍석 서유구가 말한 ‘밋구리죽’이 될 것이다. 풍석의 밋구리죽은 오늘날 시골식 미꾸라지탕, 즉 영남의 추어탕이다.

영남의 추어탕은 ‘갈추’다. 미꾸라지를 삶아서 으깬다. 고운 체로 거르면 살이 아래로 떨어진다. 거친 뼈나 대가리 등은 제거하고, 부스러진 살과 부드러운 채소 등을 넣고 끓인다.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국물은 간장 혹은 된장 푼 물이다.

오주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장황하게 추두부탕(鰍豆腐湯)을 설명한다. 오늘날 추어탕과는 거리가 있다. 두부를 사용한 추어탕이다.

추두부탕(鰍豆腐湯). (전략) 솥에 물을 붓고 크게 썬 두부 몇 덩어리를 넣는다. (중략) 솥 아래에 불을 때면 솥은 점점 뜨거워진다. 미꾸라지 무리는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 불을 때면 솥이 끓으면서 미꾸라지도 익는다. 끄집어내서 썬다. 미꾸라지는 개개의 두부 속에 콕 박혀 있다. 참기름으로 지진다. 두부 전을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를 섞는다. 달걀 전(지단)을 얹는다. 이렇게 탕을 끓인다. 기름기가 넉넉하고 맛이 좋다. (후략)


▲서울식 추어탕.
▲서울식 추어탕.


서울식 추어탕은 풍석 서유구의 밋구리탕과는 다르다. 쇠고기 내장이나 살코기, 버섯, 달걀 등 화려한 고명이 들어간다. 오주가 말한 추두부탕은 정확한 서울식 추어탕과는 거리가 있다. ‘화려한 고명’은 닮았다.

요즘 서울 추어탕의 특징은, 붉고 매운 국물 맛이다. 아마도 산초를 널리 사용하지 않으면서 붉은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더했을 것이다. 원형 서울 추어탕은 산초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주의 추두부탕도 산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풍석 서유구의 추어탕도 산초를 언급하지 않지만, 오늘날 농촌의 추어탕들은 대부분 산초를 사용한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얼갈이배추나 청방배추, 배추속대+간장 혹은 된장 국물’에 산초가루를 조금 더한다. 국물에 산초가루를 더해서 내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 추어탕의 매운맛은 결국 산초를 대신한 맛이다.


▲경북 영천의 시골식 추어탕이다. 된장 푼 물에 곱게 간 미꾸라지와 얼갈이배추만 넣었다. 색깔이 붉지 않다.
▲경북 영천의 시골식 추어탕이다. 된장 푼 물에 곱게 간 미꾸라지와 얼갈이배추만 넣었다. 색깔이 붉지 않다.


모든 게 뒤섞이면서 뒤죽박죽이긴 하다. 매운 서울식 추어탕을 내놓으면서 산초가루를 별도로 내오기도 한다. 시골식 추어탕에는 산초가루, 마늘 다진 것, 매운 풋고추 다진 것이 함께 나온다.

그까짓 미꾸라지탕이라며 천대할 일은 없다. 서민들의 음식이며 식재료 부족한 시절에 귀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추어탕의 계절이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아, 이 추어탕은 서울식이네, 시골식이네” 하며 한 번쯤 되새겨보자고 이 글을 쓴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적어도 내가 먹는 게 어떤 음식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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