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발간된 에는 김일(金一)과 김기수가 별도의 항목으로 실려 있다.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의 역사서에 프로 선수가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80년대 들어 프로화가 된 야구와 축구 등의 국제 대회에 출전한 프로 선수들 이름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두 스포츠 스타가 활동한 시기는 1960년대이고 이때는 아마추어리즘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때이기도 하다. 더구나 같은 프로 종목이면서도 복싱과 달리 정통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은 프로 레슬링 선수인 김일이 포함된 것은 196
1960년대 서울운동장(뒷날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 드나들던 중·장년 야구 팬들은 3루수와 유격수 등 내야수들의 송구를 코끼리가 비스킷을 넙죽넙죽 받아 먹듯 하던 한일은행(우리은행 전신) 1루수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그때도 몸무게가 ‘0.1t’을 넘었던, 덩치 큰 이 선수가 뒷날 한국 프로 야구에서 당분간 깨지기 힘든 ‘한국시리즈 V10’을 거두는 지도자가 되리라고 내다본 야구 팬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김응룡(金應龍)은 20세기 초 이 땅에 야구가 들어온 이후 배출된 수많은 야구인 가운데 가장 명예로운 이력을 지녔다고
8월 5일 막을 올리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축구 대표팀 명단이 지난 6월 27일 발표됐다. 손흥민(토트넘) 등 국외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비롯해 23세 이하 선수 15명과 와일드카드인 24세 이상 선수 3명 등 18명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이번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와일드카드 수비수로 누가 뽑히느냐’는 것이었다. 유력한 후보였던 홍정호는 소속 클럽인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가 차출을 거부해 탈락했고 중국 리그 광저우 푸리에서 뛰고 있는 장현수가 뽑혔다. 신태용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글쓴이는 초등학교 시절, 두 가지 결심을 했다. 하나는 스포츠 기자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특정 대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10살을 갓 넘긴 어린아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물론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시골 중에 서도 시골인 강원도 신철원군 갈말면 지포리에 있는 신철원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라디오 중계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복싱 경기 정신조와 사쿠라이(뒷날 스포츠 기자가 된 뒤 당시 자료를 살펴보고 사쿠라이 다카오라는 ‘풀 네임’을 확인했다)의 밴텀급 결승전, 그리고 1964
신명철 스포티비뉴스 편집국장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서울 강남의 한 복싱 체육관이 건장한 중년 신사의 감격적인 포옹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복싱 올드 팬들이 추억의 일기장에서 꺼내들 만한, 그러나 얼굴은 많이 변한 두 복서가 또다시 만남의 기쁨을 함께했다. 주인공은 ‘4전 5기’ 신화 홍수환(66) 한국권투위원회 회장과 엑토르 카라스키야(56) 파나마 국회의원이다. 딱 10세 차이인 두 사람은 39년 전 링에서 맺은 인연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한국인 첫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의 영광은 김기수가 차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 야구 KBO 리그 35번째 시즌이 지난 4월 1일 시작했다. MBC 청룡과 삼미 슈퍼스타즈 같은,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구단을 비롯해 6개 팀으로 닻을 올린 KBO 리그는 올 시즌 10개 구단으로 두 번째 페넌트레이스를 펼친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고척스카이돔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올해 프로 야구 관중은 800만 명을 바라본다. KBO 리그는 머지않은 장래에 1000만 관중 시대가 열릴 수도 있는 가파른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다. 1군 진입 4년째인 NC 다이노스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박세리가 1998년 ‘맨발 투혼’을 발휘한 US 여자 오픈 우승을 비롯해 4승을 올리는 장면을 TV로 보고 골퍼의 꿈을 키운 박세리 키즈들은 2016년 현재 미국 여자 프로골프투어를 휩쓸고 있다.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1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오는 골프 종목에서는 세계 랭킹 15위 안에 드는 선수는 한 나라에서 최다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한국은 이변이 없는 한 여자부 4명의 출전이 확실시되고 있고 유력한 금메달 후보국이다. 박세리가 일궈 놓은 성과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 계보를 살펴보라고 하면 차범근과 함께 빠뜨리지 않고 등장할 인물이 있다. 스포츠 올드 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한국 축구 선수 계보는 일제 강점기 유일하게 올림픽(1936년 베를린 대회)에 출전한 김용식을 첫머리로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에 이어 이번 호의 주인공인 이회택(李會澤)을 거쳐 차범근 그리고 신세대 팬들에게 익숙한 홍명보, 박지성, 손흥민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회택은 1960~1970년대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를 향해 나아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번번이 좌절했던
중·장년 스포츠 팬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대문운동장(축구장·야구장·테니스장·수영장)이나 효창운동장 그리고 리모델링을 하기 전 장충체육관 등에 가면서 스포츠의 세계로 들어섰을 수도 있고 국제대회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활약상을 라디오 중계방송을 통해 듣게 되면서 스포츠의 매력에 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다니는 학교에 운동부가 있어 응원에 동원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포츠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두 번째 사례에 든
초등학교 시절,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라고 담임선생님에게서 배운 기억이 난다. 같은 반도국가이고 두 나라 국민들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등. 그래서 이탈리아는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였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코리아’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을 연달아 경험하게 된다. 한국의 김기수는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인 이탈리아의 지오반니 벤베누티(국내 스포츠 팬들에게는 애칭인 니노로 알려져 있다)에게 도전
지난 5월 22일 도쿄(東京)에서 막을 내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배구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은 4승 3패로 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순위는 출전 8개국 가운데 4위였지만 앙숙 일본을 3-1로 이긴 데다 올림픽 출전이 확정된 뒤 열린 경기 패배를 빼면 순위가 더 올라갈 수 있었기에 스포츠 팬들은 23일 개선한 김연경 등 선수들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이때 이후 “한국 여자 배구가 40년 만에 다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사들에는 ‘나는 작은 새’ 조혜정 관련 내용이 빠지지 않
두 질문의 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운동인 씨름과 씨름 선수다. 최근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졌지만 1980~90년대,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있는 체육관은 연중 열리는 민속 씨름 경기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짧은 시간에 불꽃같이 피어오른 민속 씨름 인기의 중심에 ‘만 가지 기술’을 구사한다는 이만기가 있었다. 민속 씨름이라는 이름은 1983년 씨름이 프로화되면서 기존의 아마추어 씨름과 구분하기 위해 만든 명칭이다. 씨름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긴 전통의 스포츠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글 신명철 스포티비뉴스 편집위원.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smc6404@naver.com 한국은 지난 8월 열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고도 0-1로 져 2연속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은 2012년 런던 대회 3위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2-0으로 꺾고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축구 메달을 거머쥐었다. 1948년 런던 대회에 처음 출전한 지 64년 만에 이룬 대업이었다. 이때 기쁨이 워낙 컸기 때문인지 올림픽 2회 연속 조별 리그 통과(8강)라는 쉽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