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장년청춘문화공간 2교시, “만남ㆍ치유 여정에서 새 삶 찾아”
- 여유롭고 고즈넉하면서도 따뜻함이 흐르는 공주 제민천 일대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들이 모였다. 이곳에 모인 목적은 제각각이었지만 은퇴 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일맥상통했다. 웃고 떠들며 삶의 궤적을 짚어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은퇴 후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야 하는 중장년들이 인생 2막 설계를 위해 공주 제민천에 모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주체적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 ‘중장년청춘문화공간 2교시: 공주 마을스테이’는 인생 후반전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의 이튿날에는 홍차와 커피를 체험하며 지역 이주 사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년배인 석미경 루치아의 뜰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공감하며 웃기도 하고, 청년인 황순형 반죽동247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존중하며 ‘잘해왔다’고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새로운 길을 꽃 피우다 창원에서 온 문순희(60대) 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이들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걸 보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운을 얻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함께 온 김희자(60대) 씨 역시 “젊은이의 호흡, 진정성, 자부심을 느꼈다”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늘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순서인 ‘글쓰기 회고 워크숍 및 공유회’에서는 윤찬영 작가의 귀촌 체험담과 함께 글을 쓰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 김학곤 씨는 “공기업에서 36년을 일하고 지난 3월 은퇴했다. 퇴직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게 되더라”면서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어 왔는데 좋은 체험이 됐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분의 의도와 참여하고자 했던 나의 의도가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느낀 시간이었다”며 “잘 쉬고, 잘 먹고, 자유 시간을 이용해 설명 들었던 공간을 다시 찾아가 둘러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진 것이 좋았다”고 전했다. 진해에서 온 또 다른 참가자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생각이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돌아가면 우리 지역에서도 이런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우리 지역을 살리는 일에 일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프로그램 곳곳에는 인문학적 요소들이 녹아있었다. 인문학은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도록 함으로써 위로와 희망을 주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정신을 인문정신이라고 한다. 인문정신은 서로 다른 개인들을 공통의 기반으로 묶어주고 연대와 협력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 노년기를 책임지며 살아남아야 하는 중장년에게 인문학은 꽤 중요한 요소다. 특히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웃과의 소통과 공감이 개인의 불안과 상처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만난 지 몇 시간도 안 됐지만 서로 이름을 묻고,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이야길 나누던 참가자들은 “새로운 인연이 생겨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때로는 공감하고, 놀라고, 웃기도 하며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가도 자신의 삶에 영감 한 스푼을 더해가는 참가자들을 보며 김미정 대표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의 꽃은 나의 계절에 핀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피어나는 계절이 다를 거예요. 어디에서 피우시든 나이에 주눅 들지 않고 뭐든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참가자가 말하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 “프로그램 목적이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새로운 인간관계라는 화두가 눈에 들어왔죠. 사회생활 할 때는 정해진 관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잖아요. 퇴직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공주에는 생전 처음 와보는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서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1박 2일이 아쉽네요”-장미영(57세) “60세가 되면 어떤 유의미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글인데요.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3일뿐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1박 2일이 아쉽지만, 기억되지 않을 많은 것을 보고 갑니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구체화하고 싶어요.”-이홍래(60세) “아직 정리는 안 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래를 고민하는 데 참고가 됐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여행이 곧 삶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만났느냐가 중요한데,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김주희(45세) “4년 전 퇴직 후 쉬고 있는데요. 프로그램을 따라가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을 다 둘러보지 못해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자유여행 같네요. 평생 이런 시간을 또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경험이었어요.”-노창구(62세)
- 2024-10-18 14:57
-
- “가을, 문화생활의 계절”…10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요즘 커피 일정 11월 10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2021년 국민 영양 통계에 따르면, 커피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 2위에 올랐다. 1위는 배추김치, 3위는 밥이다. ‘요즘 커피’ 전시에서는 외래 음료 커피가 한국의 민속 음료가 되기까지 변천사를 소개하고, 커피 마시는 이유를 묻고 답한다. 제1부에서는 군불에 끓이고 달이는 커피, 다방에서 타 마시는 둘둘둘 커피, 믹스 커피, 테이크아웃 커피 등 커피의 한국 적응기를 시대별로 살펴본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한 이화문 커피잔, 20세기 초 조선의 관광 상품 인삼 커피, 박완서 작가가 기절하게 쓴맛이라고 했던 미군 군용 식량 시레이션(C-Ration) 커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커피로 연결되는 우리의 인간관계도를 여러 사람의 이야기로 담았다. 전시장에는 다방에서 만나 연애하던 시절과 결혼식 사진, 다방용 텔레비전, 커피껌 종이, 엄마의 커피잔 등 커피 관련 추억과 사연이 담긴 자료들이 가득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우리는 커피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팍팍한 요즘, 이번 전시가 커피와 나, 그리고 우리를 생각해보는 한잔의 여유로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 일정 11월 1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기획전이다. 천 화백은 1972년 베트남전쟁 당시 전장에 파견된 종군화가 10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 대신 우거진 밀림, 열대꽃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그동안 전쟁기념관 수장고에 있던 천경자 화백의 ‘꽃과 병사와 포성’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더불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여성 화가 23인의 작품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광복 이후 왜색 탈피, 전통 계승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가사와 양육의 부담에서도 붓질을 이어나간 그들이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과정을 엿볼 수 있다. ●Book ◇그런 정답은 없습니다(박경희·벗나래) 책의 부제는 ‘마음 미장공 박경희가 전하는 맘, 몸, 말 이야기’다. 저자는 책을 쓰기까지 아버지가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는 침술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난 후 봄부터 가을까지는 공사장에서 미장공으로, 겨울에는 온돌방의 연탄보일러를 수리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며 마음 치유, 분노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한 저자는 마음 미장공이 되어 감정 관리 강의를 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과 사회라는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한번 생긴 생채기는 그대로 놔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나 사회에 대한 공격성이 증폭될 수도 있고, 분노나 체념 등으로 속병만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마음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 책에서 저자가 내린 처방전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맘을 바꾸려면 몸을 바꿔야 하고, 몸을 바꾸려면 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맘, 몸, 말을 각기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주변 사람들과 공짜 처방전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귀히 여기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독도 다시 술하다(최홍배·박영사) 독도 전문가인 저자는 역사적 문헌, 국제법적 근거, 다양한 학술 자료 등을 근거로 독도가 왜 중요하고, 지켜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제임스 레이븐 외·교유서가) 세계 유수의 학자 16인이 모여 고대 세계부터 디지털 시대인 현대까지 책의 역사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한국의 책 이야기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똑똑한 환자는 병원 선택이 다르다(박창범·아침사과) 대학병원 의사가 쓴 병원 이용 지침서다. 복잡한 의료 시스템으로 불편을 겪는 환자가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Stage ◇더 드레서 일정 10월 8일 ~ 11월 3일 장소 국립정동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송승환, 오만석, 김다현, 양소민, 송영재, 유병훈 등 연극 ‘더 드레서’가 2020년 초연, 2021년 재연을 거쳐 3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극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리어왕’ 공연을 앞둔 무대 뒤, 첫 대사조차 잊어버린 노(老)배우 ‘선생님’과 그의 드레서(공연 중 연기자의 의상 전환을 돕고 의상을 챙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선생님’ 역은 배우 송승환이 원 캐스트로 전(全) 회차를 책임진다. 그는 “실제 배우로, 제작사 대표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과 작품의 역할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 연기 인생 처음으로 배우 역할에 도전해 감정이입하고 있다”면서 “노인을 노인으로만 보지 않는 작가의 각본과 울고 웃으며 가식 없이 감정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배역이 매력적인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애니 일정 10월 1일 ~ 10월 27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신선호 출연 최은영, 남경주, 송일국, 신영숙, 김지선 등 뮤지컬 ‘애니’는 전 세계 32개국에서 사랑받은 작품으로, 국내 공연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1933년 대공황 시대, 부모님을 다시 만날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고아 소녀 애니와 억만장자 워벅스의 연대를 그린다. 워벅스 역을 맡은 남경주는 “1985년 초연 때는 어트랠리라는 방송국 아나운서와 워벅스 집 하인 중 한 명을 연기했다. 워벅스로 39년 만에 ‘애니’를 다시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워벅스 역에 더블 캐스팅된 송일국은 “아들만 셋인데, 이번 작품으로 예쁜 딸을 20명이나 얻어서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광화문연가 일정 10월 23일~2025년 1월 5일 장소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연출 이지나 출연 윤도현, 엄기준, 손준호, 차지연, 김호영, 서은광 등 이영훈 작곡가의 주옥같은 명곡들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을 들을 수 있다. 생의 마지막을 앞둔 순간 1분 동안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 작곡가 명우가 인연을 관장하는 인연술사 월하를 만나 추억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도현, 엄기준, 손준호는 명우 역을 연기하며, 차지연, 김호영, 서은광은 월하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4-10-08 09:45
-
- 일본의 ‘교통약자’ 위한 새로운 대중교통, “어르신이 부르면 갑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일본에서는 운전자의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매년 1000km에 달하는 버스 노선이 사라진다. 지역 주민의 50% 이상이 65세 이상인 마을은 택시 회사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에 ‘온디맨드 교통’이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온디맨드(Ondemand) 교통은 수요 응답형, 승차 공유형 등으로도 불린다. 승차를 원하는 사용자가 전화를 걸어 원하는 목적지와 희망 시간대를 말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소로 태우러 간다. 권역을 정한 뒤 그 범위에 위치한 정류소를 필요에 따라 들르고 희망하는 탑승 시간대에 최대한 맞춘다는 점에서 버스나 택시와는 다르다. 또한 주변에서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고자 하는 요청이 들어오면 a, b, c 정류소를 거치며 여러 사람을 태운다는 점에서 택시의 합승과 비슷한 승차 공유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온디맨드 교통을 도입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마다 지역 택시·버스 사업자의 반발이 있지만, 버스 정류장이 멀어 외출을 못 하거나 면허 반납 후 장보기 등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에게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고령자 이동권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면허 반납 후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이동 지원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두 주자 초이소코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10여 개. 그중에서도 ‘AI 택시’로 불리며 온디맨드 교통 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는 초이소코(チョイソコ)다. 초이소코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아이신(アイシン)은 도요타 계열사로 엔진, 자동차 변속기, 내비게이션 등을 만들던 회사다. 버스 노선이 점차 없어지고, 마을버스 역할을 하던 커뮤니티 버스조차 노선을 줄이는 데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어려워 외출하지 못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신은 2019년 초이소코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기야마 진(杉山仁) 아이신 초이소코 서비스 기획실 실장은 “모처럼 교통을 이용해 외출한 고령자가 병원만 들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쉽지 않을까 생각해, 밖으로 나가고 싶은 계기를 제공하자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며 “지역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고령자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도록 외출 촉진에 공헌하며, 민간 기업이 운영 주체가 돼 지역 스폰서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 이 세 가지로 지속 가능한 지역 대중교통 체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초이소코는 아이신을 중심으로 지자체, 지역 교통 사업자, 지역 스폰서(사업자),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간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투입해 서비스를 도입하고, 택시 회사 같은 교통 사업자가 차량과 운전자를 제공한다. 이용자에게는 평균 100~200엔의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병원, 슈퍼, 은행 등의 지역 사업자로부터 받는 협찬금으로 운영비용을 충당한다. 택시 회사는 잠재고객 유치, 고정수익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에리어 스폰서라고 불리는 사업자는 잠재적 고객인 이용자 대상 홍보 및 지역 내 이미지 향상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협찬 금액은 5000엔부터 10만 엔까지 다양한데, 금액에 따라 해당 사업장을 정류소로 지정하기도 한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지자체에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는 초이소코는 2023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하나의 지자체로 시작한 초이소코 서비스는 2023년 기준 67개 지자체에 도입됐고, 약 18개 지역에서 2024~2025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스기야마 실장은 “온디맨드 교통은 정해진 길만 가는 버스와 같은 선이 아니라 면을 커버하는 개념”이라면서 “고령자의 자택에서 정류소까지 100~250m 이내로 설정해 외출을 더 쉽게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초이소코를 이용하려면 회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고령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우편 신청을 모두 받는다. 이용자의 80%가 우편 접수를 하는 편이라고. 예약해야 하는 교통이라는 특성상 콜센터가 필요한데, 아이신은 전국 지자체의 예약을 본사에서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며 관리한다. 콜센터에서는 AI를 활용한 자체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용자가 전화를 걸면 등록된 회원 정보가 자동으로 화면에 뜨고, 현재 이동 중인 초이소코 차량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차량의 최대 승차 인원은 8명으로, 운전자가 이용자를 태울 때마다 차량 내 태블릿을 통해 승하차 버튼을 누르면 현재 승차 가능 좌석을 파악할 수 있다. 시스템에 이용자가 원하는 목적지와 시간을 입력하면, 현재 가장 빨리 배차 가능한 노선이나 환승 노선을 알 수 있다. 스즈키 아유미(鈴木歩) 아이신 비즈니스프로모션부 부장은 “나가노현의 경우 산간 지역이기 때문에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권역을 11개로 나누어, 가고 싶은 곳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노선을 찾아 환승할 수 있게 안내한다”면서 “택시와 달리 원하는 목적지에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동승자도 있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 원하는 탑승 시간대에서 어느 정도 시간 조정도 이뤄진다는 점을 이용자들도 해가 갈수록 이해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덕분에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는 이용자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콜센터 직원들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mini interview 취재 당일 초이소코 시승을 담당해준 운전자 오쿠무라(奥村) 씨. 오쿠무라 씨가 운전하는 초이소코 차량이 달리는 곳은 경사가 많아 걷기가 힘들고, 길이 좁아 버스도 지나갈 수 없는 곳이다. “손님들에게 고마움의 선물을 많이 받아요. 여기, 달려 있는 장식도 직접 만들어주신 거예요. 차, 커피, 일본식 과자 등을 종종 주시기도 하죠. 아, 정말 곤란한 선물도 있는데요.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까서 주실 때면 정말 당황스러워요. 운전하면서는 먹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도 단골손님들에게 일상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도요아케시 도요아케시(豊明市)는 가장 성공적으로 온디맨드 교통을 정착시킨 모범 사례다. 국토교통성은 기준을 충족한 지자체에 한해 대중교통으로서 승차 공유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도록 인정하는데, 최소 3년을 운영해야 하지만 도요아케시는 실증 2년 만에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도요아케시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도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고령자 외출 촉진’이다. 많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제공 회사 중 초이소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는 온디맨드 교통이라는 개념이 알려지지도 않은 데다 도요아케시가 첫 도입을 시도한 지자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역 교통 사업자의 반발이 컸다.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하야카와 게이스케(早川圭介) 씨는 “2년 동안 철도·버스·택시 회사 관계자, 국토교통성 담당자, 학자 등으로 구성된 교통협회와 도요아케시, 초이소코 담당자가 세 달에 두 번 모여 이용 규칙을 협의해가며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정해진 초이소코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회 이용 금액은 200엔이며, 환승을 하거나 먼 거리를 가면 400엔이 나오기도 한다. 도요아케시 내 초이소코 정류소는 60곳 정도 있다. 일부 권역은 65세 이상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지만, 시청 등 공공시설에 해당하는 정류소까지만 갈 수 있다. 그곳에서 다른 목적지까지는 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연결한다. 2024년 3월 기준 이용자는 2293명, 약 80%가 70~80대다. 이용 목적은 의료 42.8%, 장보기 및 쇼핑 20.8%, 공공시설 이용 17%다. 온라인‧스마트폰 예약도 가능하지만 역시 전화 예약이 대부분이라고. 하야카와 씨는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면허 반납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요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전했다. 아카사카 교헤이(赤坂京平)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계장은 “초이소코 도입이 정말 고령자의 외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업 효과를 산출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2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평균 이용자가 1.5명이어서 2명까지 승합률을 높이고 싶다. 또한 커뮤니티 버스의 1인당 수송 비용이 493엔인데, 초이소코는 1593엔으로 3배 정도 높아 비용 절감 방안도 필요하다”면서도 “이웃 마을로 가는 버스도 아침과 저녁 두 번뿐이고, 커뮤니티 버스도 점차 줄고 있어 슈퍼나 공공시설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도요아케시도 80세 이상을 대상으로 택시 승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온디맨드 교통 방식이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주민과 함께 히타치시 이바라키현 히타치시(日立市)는 고령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노 아카네(狩野茜) 히타치시 도시건설부 도시정책과 주사는 “면허 반납 시 이동을 돕기 위해 고령복지과에서는 교통카드 1만 엔권을 80세 이상이면 1000엔, 70~79세는 4000엔에 살 수 있도록 할인 제도를 시행한다. 고령자라면 택시도 기본요금인 740엔권 10장을 나눠준다. 또 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잘못 눌렀을 때 막아주는 급발진 제어장치를 부착하면 1만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가네자와학구 지역 모빌리티’(金沢学区地域モビリティ)라는 온디맨드 교통을 운영하고 있다. 2021~2022년 시범사업을 거친 뒤 2023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히타치시의 지역 모빌리티 역시 지역 교통 사업자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한다. 4개 권역이 나뉘어 있으며, 권역별로 20~60개의 정류소가 있다. 이용 연령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65세 이상 이용객이 대부분이다. 역시 회원 등록 후 전화 예약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초이소코의 콜센터 같은 역할을 가네자와학구 커뮤니티센터에서 맡고 있다. 센터 직원은 지역 주민으로 소정의 급여를 받으며 자원봉사 개념으로 센터 업무도 보고 지역 모빌리티 예약 접수도 맡고 있다. 운전사 역시 지역 주민이 담당하고 있다. 2021년 508명이었던 이용자는 2022년 2213명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3229명이 됐다. 처음에는 커뮤니티센터에 가려고 지역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쇼핑‧병원 등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비율도 늘었다. 가노 주사는 “현재 2대를 운영 중인데, 가네자와학구 외에 운영 지역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택시 사업자의 영업을 압박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하다”면서 “향후 승차 공유(라이드 셰어) 등에 대한 정부 정책 동향을 살피면서 제도를 이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히타치시에 온디맨드 교통이 정식 도입될 수 있었던 건 커뮤니티센터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주민들에게 이런 정책이 있다는 걸 적극 홍보했다고. 오소노에 요시에이(小薗江義英) 히타치시 총무부 교통방범과 계장은 “시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싶어도, 지역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주체가 없다면 활성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온디맨드 교통이 자리 잡은 건 히타치시의 특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령자 이동권을 돕는 여러 정책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묻자 “병행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노 주사는 “운전면허 반납 시 제공하는 혜택 제도는 사고를 줄이고 안전 운전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온디맨드 교통은 이동이 어려운 분의 이동을 돕는 것으로 두 사업의 목적이 다르다”면서 “이동을 보조해주는 수단이 없다면 면허 반납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각 제도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취재 일본 초이소코(チョイソコ) 본사, 도요아케시(豊明市) 시청, 히타치시(日立市) 시청
- 2024-10-08 09:05
-
- “혈관 막으며 건강을 위협”…‘조용한 살인자’ 고지혈증
- 당뇨병, 고혈압과 함께 3대 만성질환으로 꼽히는 고지혈증. 혈액 속에 지방이 과도하게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상지질혈증이 정확한 용어다. 심뇌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눈에 띄는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라고도 불린다. 고지혈증에 대한 궁금증을 홍준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고지혈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레스테롤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알고 보면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홍준화 교수는 “콜레스테롤은 몸 안의 다양한 호르몬의 원료이며, 인체가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한 필수 성분”이라고 설명했다. 고지혈증은 혈액에서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HDL(고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 수치가 감소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 총콜레스테롤(HDL+LDL), 그리고 중성지방 수치가 증가한 상태를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고지혈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304만 명이 넘는다. 4년 전인 2019년(219만 명)보다 무려 38.4%가 늘었다. 환자는 50~6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여성은 50대 이상에서 유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데, 이는 폐경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폐경 이후에는 혈중 지질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부족해 콜레스테롤이 상승하며, 관련 혈관 질환 역시 증가한다. Q.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A. 주로 L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이 과다한 경우 혈관 질환을 유발합니다. 동시에 우리 몸에서는 과다한 콜레스테롤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HDL 콜레스테롤이 바로 그 역할을 하죠. 때문에 혈중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상태는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는 근거도 부족합니다. 너무 높을 때는 신장으로 배출되지 못한 HDL이 남아 있거나, HDL이 나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Q. 고지혈증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고지혈증으로 혈관벽에 기름기가 쌓이면 혈관이 좁아져 혈액순환이 제한되는 동맥경화증을 일으킵니다. 당시에는 증세가 전혀 없지만, 심혈관이 막히는 합병증이 발병하면 증세가 나타납니다. 뇌혈관이 막히면 뇌경색으로 몸이 마비되고, 심장 혈관이 막히면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이처럼 합병증이 첫 증상이면서 사망률이 높아 고지혈증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면대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세면대의 물이 잘 빠지지 않을 때는 체감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막히면 그제야 머리카락이나 노폐물을 빼내는 청소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청소할 수 없고 악화될 뿐입니다.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검진을 통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춰야 합니다. Q. 고지혈증과 당뇨병 동반 발병 환자가 많은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A. 대표적인 원인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혈당을 몸속에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때 인슐린이 작용하는데, 저항성이 커지면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이 더욱 약화돼 당뇨병이 진행됩니다. 또한 혈액 속에 증가한 인슐린은 남은 에너지원을 지방으로 축적하면서 고지혈증 발생을 유발합니다. 여기에 탄수화물 식사, 운동 부족, 과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당뇨병과 고지혈증 모두 악화됩니다. 특히 연령이 증가할수록 두 질환 모두 발병률이 높아집니다. 폐경 이후 여성은 혈관 질환 발병이 증가해 당뇨병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Q. 고지혈증 발병 사실을 알 수 있는 검진 방법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국가 검진에서는 4년에 한 번 검사를 시행하는데 체중이 급변하거나, 다른 질병을 진단받았거나, 폐경이 도래하면 4년 이내라도 추가적인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검사 후 이상 소견이 있다면 관련한 혈관 합병증 동반 여부도 검사해야 합니다. Q. 고지혈증 약은 부작용이 심하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인가요? A. 운동, 식사 요법 등이 중요한 치료 방법이긴 하지만 대략 3~5%의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를 보입니다. 약물은 대체로 30~50%의 감소 효과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약물 30%, 운동 3%, 체중감량 3%, 총 36% 감소시키는 치료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표적인 콜레스테롤 조절 약물인 스타틴은 부작용이 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90% 이상 환자가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저용량 스타틴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합 치료법이 대두되면서 과거 고용량 스타틴을 사용할 때보다 부작용 빈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치료 방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주치의와 상의 후에 결정하면 되겠습니다. Q. 비만인 사람이 위험도가 높은데, 어떤 식습관을 가져야 할까요? A.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적정량을 잘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식빵 3조각은 밥 한 공기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식사 후 빵을 간식으로 먹는 식습관은 비만과 고지혈증, 당뇨병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하루 커피 2~3잔은 고지혈증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경우 탈수를 유발해 칼슘 소실을 조장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럽이나 크림을 추가해 마시거나 비스킷, 케이크 등을 같이 먹는 경우가 고지혈증 유발에 크게 기여합니다. [도움말 홍준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 2024-09-30 08:19
-
- 치매 유발하는 수면장애, “중년도 안심 못해”
-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문안인사를 드릴 만큼 우리는 예로부터 ‘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09만 8819명으로 110만 명에 달한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22년 기준) 그 가운데 60대가 23.0%(25만 829명)로 가장 많았고, 50대 18.9%(20만 7698명), 70대 16.8%(18만 4863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잠 때문에 고통받는 중장년의 뇌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인의 수면이 위험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글로벌 수면 솔루션 브랜드 레즈메드(Res Me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50%, 55%로 각각 답변했다. 미국·일본·중국·인도 등 12개국 평균 답변은 각각 35%, 37%로 한국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또한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답변은 59%로 12개국 응답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반대로 ‘상쾌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수면의 질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가중된 스트레스와 걱정’(60%), ‘잦은 전자기기 및 화면 사용’(41%), ‘불안과 우울감’(29%) 등이 꼽혔다. 이정석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0대 수면장애 환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60대는 하던 일에서 은퇴하고 여러 신체질환이 생기는 등 일상의 변화로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시기”라며 “생리적 변화와 스트레스가 수면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뇌 건강에 영향 미치는 수면장애 수면장애는 잠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잠자는 동안, 그리고 주간 생활에 이르기까지 수면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모든 문제를 의미한다. 수면장애의 종류로는 대표적인 불면증과 함께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이 있다. 수면이 부족하면 우울·불안·스트레스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삶의 질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신체 면역기능과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다양한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수면장애는 심뇌혈관계 질환에 영향을 끼쳐 치매를 유발한다. 치매란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임상 증후군을 의미한다. 가장 흔한 유형은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전체 치매 사례의 약 70%에 이른다. 뇌경색·뇌출혈 등의 혈액순환 장애가 원인이 되는 혈관성 치매는 전체의 약 2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유발하는 알츠하이머병은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라고 불리는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뇌질환을 말한다. 초기부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기억력 감퇴이며, 병이 진행되면서 추상적 사고, 문제 해결, 적절한 결정 및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저하된다. 박기형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기획이사)는 “우리가 아주 깊은 잠을 자는 서파수면 상태일 때 뇌를 청소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이때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독성물질이 제거되는 것이다”라면서 “그러나 수면장애가 있으면 잠에서 자꾸 깨기 때문에 단백질이 몸에 축적되고,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해 결국 치매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면장애 가운데에서도 수면무호흡증 환자가 특히 치매 발병률이 높다. 수면무호흡증이란 수면 중 상기도(코, 입, 목)의 일부나 전체가 반복적으로 좁아지고 이에 따라 공기 흐름이 감소하거나 멈추면서 호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베타 아밀로이드의 축적은 알츠하이머병뿐만 아니라 심뇌혈관계 질환을 유발하므로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혈관성 치매의 위험 또한 높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렘수면행동장애는 렘수면 단계에서 꿈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거나 심한 잠꼬대를 하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50대 이상 남성에게서 우세하게 나타난다. 자면서 말하기, 웃기, 노래하기, 발로 차기 등 다양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박 교수는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는 뇌줄기라고도 하는 뇌간에 퇴행성 변화가 오고, 나중에는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숙면해야 할까? 숙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한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슬립테크(Sleeptech)가 주목받고 있다. 수면과 기술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애플리케이션, 웨어러블 기기, 디지털 장비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슬립테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수면 분석은 사용자의 수면을 다양한 센서를 기반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해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스마트 워치나 웨어러블 기기가 해당한다. 수면 유도는 빛, 사운드, 온도 등을 통해 잠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수면질환 관리는 수면 관련 질환을 개선·치료하는 서비스로 교정기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은 2019년 110억 달러(약 13조 9200억 원)에서 2026년 321억 달러(약 40조 62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는 2017년부터 슬립테크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역시 슬립테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AI수면 분석 플랫폼 기업 에이슬립과 협력, 올 하반기 수면 측정 기술을 탑재한 갤럭시 탭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열대야 꿀잠온도’라는 에어컨 전용 앱을 출시했고, SK텔레콤은 AI 비서 ‘에이닷’ 앱을 통해 수면 패턴을 수집·분석한다. 이렇게 수면을 돕는 기술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컨트롤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기형 교수는 “스트레스가 많으면 수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악순환이 된다. 너무 자려고 노력하면 잠이 더 오지 않는 법이다. 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라면서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자고, 식사하고, 운동하는 게 좋다. 규칙적인 삶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기상 시간이라도 일정한 것이 좋고, 햇빛은 꼭 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은 커피와 술, 수면제 섭취는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잠이 안 온다는 중장년들이 가끔 있다. 잠을 못 자면 인지기능도 떨어지고 멍해지니까 치매가 아니냐고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알코올은 잠을 유도하는 것은 맞지만, 유지시키지 못한다. 잠을 길게 잘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뇌 손상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수면제에 대해서는 “치매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연관 없다는 결과보다 많다. 특히 벤조디아제핀 계통은 치매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주의를 요한다. 수면제는 한 달 이내로 짧게 먹기를 권장하며 장기 복용은 옳지 않다”고 주의를 남겼다. ◇에스옴니 유재성 대표 “잠은 만병통치약? 수면 코치 필요” “드디어 불면증과 작별했어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이들이 모이는 유튜브 채널 ‘브레이너 제이의 숙면 여행’. 숙면 여행자 가운데 유명 연예인들도 있으며, 구독자가 74만 명을 돌파했다. 채널을 운영하는 슬립테크 스타트업은 ‘에스옴니’로, 유재성 대표(브레이너 제이)는 ‘국내 1호 수면 코치’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의생명과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학원에서 수면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미국 국제 공인 수면 코치 자격을 보유했다. “다이어트할 때 트레이너 선생님이 계시듯이 수면도 코치가 필요해요. 살이 찌는 이유는 식습관, 스트레스 등 다양하죠. 잠도 똑같아요. 수면 환경, 스마트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잠을 못 자게 만들죠. 그렇기 때문에 1:1 케어로 원인을 찾고 수면을 방해하는 문제들을 없애주는 수면 위생 교정이 필요합니다.” ‘브레이너 제이의 숙면 여행’은 명상, 수면 사운드, 동조화 사운드 등을 통해 숙면과 마음 건강을 가이드해준다. 콘텐츠는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며, 전문가의 자문도 받는다. 분당차병원에서는 불면증 및 이명증을 가진 환자들에게 에스옴니의 수면 콘텐츠를 활용한다. 뿐만 아니라 에스옴니는 분당서울대병원 수면센터, 강동경희대병원 수면센터, 국제성모병원 수면의학연구소 등과 함께 수면 건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매년 구독자를 대상으로 잠 못 자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합니다. 항상 1위는 심리적 스트레스예요.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잠을 청하면, 자율신경계 균형이 깨져버려요. 특히 교감신경이 항진되면서, 심장이 뛰고, 체온이 올라가고, 호흡도 가빠지고, 걱정과 불안이 가중되죠. 2위는 생활 습관입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떤 뉴스 정보나 SNS로 지인들 소식을 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또 받기도 합니다. 결국 스트레스와 또 연결이 되네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멘털을 키워야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반응을 가장 빠르게 안정시키는 방법 중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명상이 있습니다. 명상은 현재의 순간에 몰입을 하는 마음 챙김이나 편안한 상상과 함께 심신을 이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해외에서는 의학의 영역으로 보기도 하죠. 음악 감상, 반려견과의 산책 모두 명상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명상을 해보라고 말하는 겁니다.” 에스옴니는 다양한 창구로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4월부터는 SK브로드밴드와 MOU를 맺고, Btv의 시니어 고객을 위한 전용관인 ‘해피시니어’에 수면 건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유 대표는 “수면장애로 인한 노인성 질환 환자가 너무 많아졌다. 어르신 대부분이 TV를 보면서 잠든다고 하는데, 우리의 콘텐츠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토털 수면 솔루션 앱 ‘솜니아’를 정식 출시했다. AI 수면 코치가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시니어에게 ‘숙면’은 매우 필요하지만, 잠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유재성 대표는 이를 매우 안타까워하며 “잠을 잘 자면 살도 빠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치매 같은 뇌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면서 숙면이 돈 없이도 누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중장년분들이 꿀잠을 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합니다. 꿀팁을 드리자면, 첫 번째 낮잠을 자지 않는 게 좋습니다. 두 번째로 햇빛을 많이 쬐어주세요. 산책은 밤이 아닌 낮에 하는 게 좋고, 운동량을 늘려보세요. 세 번째는 자기 1시간 전에는 수분 섭취를 줄이는 것입니다. 자다가 도중에 깨서 화장실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5분이나 10분이라도 매일 꾸준하게 명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매일 밤 숙면으로 행복을 가꾸어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 2024-09-19 08:42
-
- 귀촌으로 행복 찾은 ‘영남 하이디’…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삶”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보다 행복한 게 있을까? 그러나 쉽지 않다. 정작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유한한 시간만 소비하기 십상이다. 무주 덕유산 자락에 사는 꽃차 소믈리에 황혜경(47, ‘하이디꽃차연구소’ 대표)은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만족도 높은 삶을 영위한다. 귀촌을 통해 드디어 자신의 일을, 원했던 삶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막연했던 과거의 진부함을 털어내고 생기에 찬 나날을 누린다. 그에겐 꽃차가 마침내 도착한 기쁜 기차였다. 처음엔 꽃차를 그저 취미로 즐겼단다. 그러던 게 일이 커졌다. 황혜경이 전에 살던 곳은 서울. 직업은 중학교 특수교사. 그는 중증장애 학생들을 돌보았는데 보람이 컸다지. 그러나 ‘행복지수는 낮았다’고 한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서울에 만연한 과속과 과욕의 행진에 질렸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그는 자연 요소가 결여된 도회의 건조한 풍경에 식상했다. 마음은 늘 산으로, 바다로 달려갔던 거다. 그래 자신의 지친 영혼을 방목할 어딘가 시골을 찾아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덕유산 기슭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여동생을 찾아 무주를 드나들다가 아예 귀촌을 했다. 덕유산 일대의 싱싱한 자연경관에 반한 나머지 가족과 함께 무주 산골로 내려왔다. 무주에 자리 잡은 뒤 그는 다년간 펜션을 운영했다. 아버지가 지은 펜션의 운영을 맡아 사장으로 뛰었다. 사업은 잘됐을까? “1년 중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쉬는 게 펜션 사업이다. 비수기엔 참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수시로 산야와 계곡에서 소풍을 즐길 수 있어 즐거웠다. 아이들에게 자연생태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해 조화로운 인격으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컸는데 그걸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성수기엔 밥 먹을 틈조차 없이 바빴다. 너무도 힘들었다.” 원했던 생활 방식이 아니었다는 뜻인건가? “그렇다. 일이 굉장히 많았다. 청소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걸 감당하느라 버거웠다. 내가 일벌레도 아닌데 이런 부자유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그런 회의를 느끼곤 했다. 외딴 섬에 갇힌 기분까지 들더라.(웃음) 한마디로 정신적인 여유를 갖기 힘들어 괴로웠다.” 그래 꽃차 사업으로 전향했나? “사업적인 걸 구상하고 꽃차에 입문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산야에 피어나는 야생 꽃들을 채취해 꽃차를 만들어 마시는 재미를 즐기며 만족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꽃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남들에게도 꽃차의 풍미를 경험하게 하고 싶어 펜션에 오는 손님들에게 꽃차를 웰컴티로 제공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함께 차를 마시며 소통하는 즐거움이 컸다. 예상치 못했던 건 꽃차를 구입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판매할 차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꽃차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펜션 내부에 다실을 만들어 ‘하이디 꽃다방’이라는 간판을 걸기에 이르렀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그 하이디? 의미가 있겠지? “내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영남 알프스’로 통하는 가지산 자락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들, 밤하늘에 모이는 별들,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다방 이름에 ‘하이디’를 넣었다. 다도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의 차 사랑을 따르고 싶은 마음도 담은 상호다. 어머니는 지금도 다도 선생님으로 활동한다.” 커피보다 나은 꽃차를 연구해 꽃차 다방 개업을 계기로 황혜경은 본격적으로 꽃차와 동행하는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차 공부를 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차 관련 학과인 원광대 차문화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울러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다방은 단순히 차 마시는 공간에 그치지 않았다. 꽃차 판매장과 체험교육장으로도 쓰였다. 블로그에 꽃차 이야기를 열심히 올려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법은 지금도 동일하게 운용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무척 버겁던 펜션 운영에서 손을 뗐다는 점이다. 꽃차를 보는 눈과 꽃차를 다루는 실력에도 그사이 한결 깊이가 생겼다. 매우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꽃차에 심취하면서 삶이 서서히 온전한 쪽으로 흘러가더라는 게 아닌가.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삶이야! 비로소 내 일을 찾은 거야!’ 내면에서 울려 퍼진 찬탄이 그랬다. 그는 ‘하이디꽃차연구소’를 따로 개설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동경했던 자연 속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루고 있다는 실감으로 만족스러웠다. 자연의 선물인 꽃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게 기뻤다. 꽃도 꽃차도 사람과 비슷하다. 저마다 색깔과 향기와 개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빠져들 수밖에….” 꽃차를 만드는 데엔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재배지에 꽃을 기르는 일부터 시작된다. 꽃 피는 철엔 꽃잎을 채취하는데, 자칫 제철을 놓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을 포착해 신속하게 작업해야 한다. 이후 꽃을 덖는 과정을 거친다. 이건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매우 섬세한 작업이 요구된다. 맛과 향과 색상의 품질을 좌우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꽃의 수분 함유량과 생육 상태에 따라 덖는 온도와 시간이 각각 다르다. 적정한 열을 가하지 못할 경우 고운 빛깔을 잡아두기 어렵다. 햇꽃차보다 깊은 맛을 내는 차를 얻기 위해 서는 6개월에서 2년 정도 숙성하기도 한다.” 그는 다양한 꽃차를 만든다. 목련꽃차, 장미꽃차, 마리골드꽃차, 맨드라미꽃차 등 꽃차뿐 아니라 구절초차, 감국차 등 갖가지 잎차, 뿌리차, 한방차에도 조예가 깊다. 커피나 녹차에 비해 꽃차는 변방에 머문 느낌이다. “꽃차는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다. 민들레, 쑥, 우엉, 돼지감자처럼 약성으로 잘 알려진 식물로 만드는 야생차 역시 마찬가지다. 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꽃차 만들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 끊임없이 차를 시험한다. 항상 찻잔을 손에 들고 지낸다. 맛이나 건강 측면에서 커피보다 나은 꽃차를 만들기 위해 연구한다.” 꽃차도 건강에 매우 이로운가? 형상과 향기로 감동을 주는 게 꽃인데. “영양 성분이 풍부한 꽃이 많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의 경우 꽃에 영양소가 가득 농축된 걸로 밝혀졌지 않은가. 마리골드꽃에는 항산화 성분인 루테인이 함유돼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요즘은 약용으로 꽃차를 마시는 이들이 많다.” 꽃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나는 혼합차를 만들어 활로를 찾고 있다. 꽃차에 과일이나 허브를 블렌딩해 꽃 한 종으로는 부족한 향과 맛을 이끌어낸다. 꽃의 성질에 맞는 부재료를 혼합하기도 한다. 찬 성질의 꽃엔 생강이나 계피를 넣어 중화시키는 식으로. 청정 무주의 특산물도 차 재료로 활용한다. 무주 명산물 사과에 비트와 당근을 합성한 ‘ABC 해독차’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요즘은 무주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겨우살이에 무주 특산품 천마를 블렌딩한 차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철학 황혜경의 ‘하이디꽃차연구소’는 사방으로 산이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뜰에도 나무들이 즐비하다. 어디를 보나 수목의 푸른 아우성이 가득하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 7월의 더위를 잊게 하고, 그는 무명천으로 손수 만든 가운을 입고 일한다. 꽃차를 담은 유리병들이 진열된 실내는 널찍하고 간소하다. 무명처럼 담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은은한 차향이 감돌아 감미로운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꽃차를 만들고 시험하고 연구한다. 애호가들을 맞이해 다담을 즐기는 사교장이자, 체험자들에게 꽃차의 모든 걸 알려주고 보여주는 교육장이기도 하다. 하루에 두세 팀을 상대로 겹치기 수업을 할 때도 있단다. 요컨대 그는 꽤 인기 있는 꽃차 강사다. 체험자들은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할까? “꽃차의 색과 향과 맛에 관한 모든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종의 꽃차를 시음해 맛과 향을 비교하게 한다. 체험자들이 가장 크게 흥미를 느끼는 건 제다 실습이다. 미리 준비해둔 꽃잎을 덖어 직접 차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때로 재배지에 함께 가서 꽃을 따는 체험도 한다. 제다를 통해 다양한 꽃차가 만들어진다. 꽃차에 과일이나 약초 뿌리를 블렌딩한 차를 만드는 식으로. 이렇게 손수 만든 차를 티백으로 갈무리해 돌아가는 것으로 교육이 마무리된다.” 주로 어떤 이들이 체험하러 오나? “학생층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다.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 목적으로 오는 이들도 있다. 출장 교육도 다닌다. 어느 경우든 강의 내용이 까다롭지 않아 참여자마다 체험을 즐긴다. 직접 꽃차를 만든다는 성취감을 맛보면서 말이다. 대상자에 따라 수행의 난이도를 조절하고 피드백을 유도하는 게 강사의 역할이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 에너지가 딸린다.(웃음)” 수익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수입이 많지는 않다. 꽃차에 사로잡혀 산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제다 사업허가를 받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22년부터다. 사실 시작 단계에 있는 셈이다. 그간 주력한 건 체험교육인데 성과가 컸다. 앞으로 꽃 재배지와 생산 시설을 보완해 가공 분야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무주 특산 식물을 꽃차에 블렌딩한 로컬 티 생산에 관심이 많다. 꽃차 테라피 강좌도 마련할 생각이다.” 차는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매개체다. 꽃차로 두루 맺은 인적 자산이 시골 생활의 동력이 되진 않았나? “그렇다. 그 점이 가장 소중한 대목이다. 사람들과 꽃차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담소를 나누는 건 정말 즐겁다. 난 꽃차와 함께 살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했다. 꽃차가 지닌 테라피 효과를 실감하며 살고 있다.” 당신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귀촌을 했다. 자연에서 배운 게 있다면? “자연에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가령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풀꽃이 나로 하여금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세상의 중심이 사람에 있는 게 아니라 자연에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황혜경에겐 ‘사람 역시 하나의 꽃’이란다. 자연을 삶의 교사로 삼으면 귀촌이든 귀농이든 시골 생활을 즐겁게 누릴 수 있다는 지론도 갖고 있다. 황혜경이 주는 귀촌 Tip •때로 귀농・귀촌 멘토 역할을 하는데 반드시 먼저 묻는 게 있다. “당신은 자연을 좋아하는가?” 좋아한다면 시골 생활의 낯섦과 불편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삶의 원동력을 자연에서 얻으며 살아온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하는 얘기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안이라고 본다. 실제로 자연에서 정서적인 안정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시골 생활 만족도가 높은 걸 볼 수 있다. 반면 자연에 별 관심 없이 사는 경우에는 고즈넉한 시골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나머지 심지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자연을 벗 삼을 의사 없이 오직 수익이 목적인 귀농일 경우엔 만만찮은 시련에 직면할 수 있다. 농사로 돈 벌기가 쉽지 않거니와 지친 심신을 다스릴 방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농인도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버릇을 키워나가는 게 좋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힘과 위안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의 텃세를 미리 걱정하지 말자. 도시든 산골이든 사람 사이의 불화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색안경을 끼고 시골을 바라볼 일이 아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천천히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이웃이 생긴다.
- 2024-08-30 08:17
-
- 100세 시대 행복 찾는 日 ‘100년 생활자 연구소’
- 도쿄에는 시니어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실버 거리가 있다. ‘100년 생활자 연구소’가 전통 있는 상점가에서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이색적인 카페 ‘100년 생활 카페’를 찾아가 봤다. 스가모역에 내리면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도로 턱도 없고 가격표도 크게 쓰여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스가모역 바로 앞에서 시작해 780m에 이르는 상점가에는 시니어들을 위한 옷, 건강식품, 가방, 신발, 보조 보행기구 등을 파는 상점 200여 개가 즐비하다. 에도 중기(약 1600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상점가다. 100년 넘게 이어진 가게들인 만큼 노인이 접객하니 무엇을 물어봐도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다른 곳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평일에도 손님이 북적이지만 길거리는 깨끗해서 쇼핑하기에 쾌적하다. 시니어를 위한 온천 여관, 시니어 취향의 음식점, 시니어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라쿠고(落語) 공연 카페, 질병 치유의 파워 스폿, 생전 영정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도 있다. 10대부터 90대까지 즐기는 카페 ‘100년 생활 카페’의 간판은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세련된 검은색 건물 입구에 놓여 있었다. 3층에 위치한 카페는 평일인 목요일 오후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오타카 가요(大高香世) 100년 생활자 연구소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었다. 그녀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유명 광고회사 하쿠호도(博報堂)에 1990년 마케터로 입사해 전략 수립, 신상품 개발, 신규 사업 론칭을 담당했다. 2023년 하쿠호도에서 ‘100년 생활자 연구소’를 설립했고, 오타카 씨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연구소는 100세 시대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소라는 콘셉트로 ‘100년 생활 카페’를 오픈했다. 카페에는 시니어만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오타카 씨가 설명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레트로 붐이 일어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요. 옛날 간판이나 광고 디자인과 색상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스가모 상점가 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어요. 100년 생활 카페 고객은 고등학생부터 90대까지 다양해요. 단골 고객은 70~80대가 많지만요.” 다시 한번 카페를 둘러보니 활기찬 젊은 직원들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카페 내부는 짙은 갈색과 주황색을 바탕으로 한 현대식 인테리어여서 밖에서 본 스가모 상점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요? 100년 생활자 연구소는 왜 스가모 상점가에 이 카페를 만들었을까? 연구소에서는 20~80대 28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100세까지 살고 싶은가요?’라는 조사를 했다. 그런데 72.2%가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일본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오타카 소장은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연구소는 100세 가까이 살아온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기로 했고, 역사 깊은 스가모 상점가에 100년 생활 카페를 열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100세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한 사람을 많이 만들자는 거죠. 카페에서 함께 커피 마시면서 행복에 대한 답을 찾고,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여러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내고, 그 결과에 대해 연구소에서 발표도 하며 여러 제안도 하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카페 오타카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어떻게 하면 100세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노후가 40년 가까이 늘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100세 생활 카페는 앞으로 어떤 카페가 되고자 하는 걸까? 오타카 소장은 이 카페가 “이야기 나누는 장소”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우리는 주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연구원들은 사전에 인터뷰어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된다. 연구원들은 현장에서 고객들과 대화하며 어떤 것을 발견했을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서로 대화하면서 고객도 연구원도 ‘듣고 보니 내가 자신 있는 분야,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이런 거였구나!’ 깨닫는다는 거예요. 자기 통찰이 이루어지는 거죠. 삶의 인사이트를 얻는 거고요. 그게 이 카페를 오픈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발견이에요.” “고객들 맞은편에는 우리 연구원들이 앉아 있어요. 연구원은 40명 정도인데요. 평소 무언가를 조사하고 컴퓨터 앞에서 자료를 분석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연구소에서 벗어나 이렇게 카페에 오는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저는 70~80대 시니어들이 카페에 오기 위해 멋을 부리는 것도, 이곳에서 타인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행복하게 사는 마을 만들기 100년 생활 카페에서는 커피와 음식을 판매한다. 커피는 300엔(약 2500원), 스파게티는 700엔(약 6000원) 정도다. 주변 카페에 비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그래서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그럼에도 100년 생활 카페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들르는 장소’, ‘생각나면 수다 떨다 가는 장소’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카페가 아니라, 리빙 랩(Living Lab)으로서 일상의 실험실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발상으로 운영하는 카페인 셈이다. “스가모를 기반으로 앞으로 전국에 이런 카페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오타카 소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100년 생활자 연구소는 두 가지 도전 목표가 있어요. 하나는 카페에 들르는 시니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SNS 활용 방법을 가르쳐드리는 거예요. 스마트폰을 잘 이용할수록 ‘인생 100세 시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서, 디지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마을과 사회를 위한 모델을 만드는 거예요. 스가모 동네 전체를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장소로 생각하고, 지역 주민들과 상점가를 지키는 분들과 함께 100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 만들기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오타카 소장의 온화한 웃음 뒤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연구소장으로서 야심찬 의지가 엿보였다. 취재를 마치고 스가모 상점가를 걷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모두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창업한 지 394년 된 일본 과자점, 120년 된 녹차 전문점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찰 마당에 놓여 있는 향의 연기를 아픈 부위에 쐬면 통증이 사라진다고 해서 유명한 절 ‘고간지’(高岩寺)도 100년이 넘었다. 시니어 천국이라 불리는 스가모 거리에 이런 카페가 우뚝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척 도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일본인은 100세까지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마을을 만들고자 기획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페’라니. 대화를 통해 행복의 씨앗을 찾고자 하는 ‘100년 생활 카페’를 뒤로하면서, 나이 들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소와 카페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시니어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면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 필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 2024-08-27 08:52
-
- ‘여름철 불청객’ 요로결석, “물구나무 서면 해결된다?”
- 요로결석은 소변이 배출되는 요로계에 결석이 생겨 배뇨에 문제가 생기고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기온이 높은 여름철, 특히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우리 몸의 수분이 저하되면 소변의 농도가 진해지는데, 이로 인해 결석 알갱이가 더 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로결석에 대한 궁금증을 최정혁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성인 10명 중 1명이 경험한다는 요로결석은 흔한 질환으로 통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요로결석 환자는 46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두 배가량 많았고, 40~60대 중장년층이 전체 환자의 66%를 차지했다. 요로결석은 결석의 위치에 따라 신장결석, 요관결석, 방광결석, 요도결석 등으로 나뉜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으로 극심한 옆구리 통증이 있다. 이외에도 오심이나 구토를 동반하거나 혈뇨가 나타날 수 있다. 발병 원인은 대사 이상, 유전적 요인, 식이 습관, 생활 습관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수분 섭취 감소가 가장 주요한 발병 원인이다. 최정혁 교수는 “요로결석은 충분한 수분 섭취만으로도 쉽게 예방이 가능하다. 소변량이 많아지면 소변 결정이 희석되는 효과가 있고, 결정이 뭉쳐 결석으로 발전하기 전에 배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로결석은 건강검진의 복부초음파로 통증 발생 전 선별검사가 가능하므로 정기적인 검진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Q. 고령자의 발병률이 높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나이가 들수록 식이가 감소하면서 수분 섭취량이 줄어들어 소변이 진해지고 요로결석이 더 잘 형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령 인구는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석 발생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면 당뇨 환자는 소변으로 요산이 많이 배출되어 요산 성분의 결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는 환자는 혈중 칼슘이 높아지는데, 이것이 소변으로 배출되면서 결석 생성을 촉진합니다. Q. 주의해야 할 합병증은 무엇인가요? A. 결석이 소변의 흐름을 막으면 콩팥의 신우와 신배가 늘어나는 ‘수신증’ 혹은 오줌이 배출되지 못하고 방광에 고여 있는 ‘요폐’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소변이 온전히 씻겨 내려가지 못하고 정체되면 균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급성 신우신염 및 요로 패혈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까지 진행되기도 합니다. 감염의 문제만이 아니라도 결석을 장시간 방치하면 신장 기능이 영구적으로 감소하는 만성 신부전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Q. 소변을 자주 참으면 요로결석에 잘 걸린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요로결석에 대한 오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결석의 종류에 따라 맞거나 틀린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신장결석과 요관결석은 소변을 자주 참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다만 전립선비대증 등으로 배뇨에 문제가 있어 소변 보는 게 수월하지 않은 중장년 남성의 경우는 방광결석 발생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높아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커피나 술, 물구나무나 롤러코스터가 결석 배출에 도움이 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A. 커피나 맥주는 이뇨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요로결석 환자들이 많이 드시려고 합니다. 물론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복용할 경우 오히려 요로결석 생성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는 소변이 많이 만들어져 요로결석 배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구나무를 서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결석 배출에 순기능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결석은 요관의 연동운동에 의해 소변을 타고 신장에서 방광으로 옮겨지지만, 중력에 의해서도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물구나무뿐 아니라 점프, 줄넘기도 도움이 된다고 진료실에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Q. 요로결석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A. 결석을 진단받은 시점에서 결석의 크기, 위치, 개수, 기저질환, 혈액검사 및 소변검사 수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 방법을 결정합니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면서 결석의 자연배출을 기다리는 대기요법, 마취 없이 외부에서 충격을 가해 결석을 파쇄 후 자연배출을 기다리는 체외충격파쇄석술, 수술적인 치료를 통해 결석을 파쇄하는 내시경 제거술(수술)이 있습니다. 내시경 제거술은 절개 부위 없이 요도를 통해 방광과 요관으로 내시경이 진입해 결석을 직접 확인하고, 레이저 등을 통해 주변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며 돌을 가루로 만들거나 쪼개어 제거합니다. Q. 재발률이 높은 질환으로 알려졌는데, 예방법이 있나요? 요로결석은 한번 걸리면 재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 년간 결석을 진단받은 환자들을 살펴보니 재발성 결석이 3~4배 많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때문에 요로결석을 한번 앓았다면, 평소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한 예방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수분 섭취로, 하루에 물을 적어도 2~3L 정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백질, 설탕, 소금의 과다한 섭취는 지양해야 합니다. 결석의 주된 성분이라는 점에 착안해 칼슘 섭취를 줄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오히려 결석 발생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도 요로결석의 위험성을 높인다고 알려졌습니다. 소변에서 결석의 원인이 되는 옥살산, 요산, 나트륨, 인산 등의 배출이 늘어나고, 인슐린 저항성은 소변의 산성화를 조장해 요산석 형성을 촉진합니다. 따라서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적절한 체중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도움말 최정혁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 2024-08-20 08:27
-
- 나이가 들면 진짜로 잠이 없어지나?
- 흔히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고 한다고 한다. 사실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노인들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9시간 정도다. 보통 성인이 하루 평균 7~7.5시간 잠을 자는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긴 편이다. 다만 노인의 경우 하루 평균 1시간 20분 정도 낮잠을 잔다는 연구결과를 감안하면 일반 성인의 밤 수면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수면장애는 흔히 발생하는 문제다. 국내 65~84세 인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7.7%가 불면 증세를 호소했다는 결과도 있다. 최윤호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긴 시간을 잠을 자면서 지내는데, 이를 통해 몸과 정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회복시키고 생체리듬을 유지하게 된다”며 “제대로 잠을 취하지 못하게 되면 몸의 활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면역기능 저하와 만성질환 위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년기 수면장애에 대해 알아본다. 노년기 수면장애는 수면 시간 아닌 질(質) 문제 수면장애란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해도 낮 동안 잘 깨어 있지 못하고 졸림을 호소하는 상태, 수면 리듬이 흐트러져 어려움을 겪는 상태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잠자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수면의 질이다. 잠을 3~4시간만 자더라도 숙면을 취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병이 아니다. 반대로 8~9시간을 자는데도 몸이 개운하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피곤하며 낮 시간에 졸리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수면장애일 수 있다. 노년기 수면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은 불면증과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다. 불면증은 잠들기 힘들거나 잠이 들어도 자주 깨고,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나 수면 부족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낮 동안에 피로감과 졸음, 의욕상실 등을 겪게 된다.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는 생체리듬과 관련이 있다. 노인이 되면 생체시계, 즉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뇌신경 기능이 감소하며 일주기 리듬이 일반 성인보다 조금 앞당겨진다. 이에 따라 수면 양상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대부분 오후 7~9시 사이에 일찍 잠이 들어 오전 3~5시 사이에 깨게 된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숙면을 취하도록 돕는 수면 유도 물질 멜라토닌은 해가 진 후부터 생성되기 시작해 새벽 2~4시 사이에 가장 많이 분비되는데, 노인의 경우 일주기 리듬이 달라지는 데다 멜라토닌 분비까지 원활하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과다수면증과 기면증,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이 수면장애에 해당한다. 과다수면증은 밤에 최소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했는데도 낮에 과도한 졸음을 호소하는 경우다. 기면증은 이겨낼 수 없는 졸음으로 갑작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것으로 먹고 말하거나 걷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코골이는 매우 흔한 생리적인 현상이지만, 코골이가 있는 사람의 75%는 수면 중 호흡이 멈추는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중 호흡 이상이 시간당 5회 이상 나타나면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된다. 수면무호흡증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주 깨고 체내 산소 공급이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낮 동안 심한 피로감과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 아침 두통, 무기력감,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우울감 등을 유발하게 된다. 치료하지 않은 채 수면무호흡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치매 등의 인지장애,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이나 당뇨 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잠들 무렵 사지, 특히 다리의 특정 부위가 지속적으로 여러 불편감이 느껴져 잠들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전기가 흐르는 느낌,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등 환자마다 불편감은 다르게 나타나고, 이는 움직임을 통해 나아진다. 심한 경우 통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꿈을 꾸게 되는 렘수면이라는 수면 단계에서 비정상적으로 근육의 긴장도가 증가되고, 꿈과 관련된 과도한 움직임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남성일수록 흔하게 발생하고 파킨슨병과 같은 다양한 신경계 퇴행성 질환과 연관성이 높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노년기에 수면장애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치매와의 연관성 때문이다”며 “수면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대표적인 치매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49%나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했다. 불면증은 건강문제와 직결 불면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낮 동안 활동이 적기 때문에 결국 밤 동안 수면장애가 초래된다. 우울과 불안 등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불면증이 올 수 있고 만성 호흡기질환,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궤양, 만성 통증, 빈뇨나 요실금, 고혈압 또는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신체 질환도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또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약물을 많이 복용하게 되는데 약물의 부작용으로 불면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노인시설이나 병원에 입원할 경우 환경 변화로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노인에게 불면증은 그 자체로 힘들 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며 “하루 7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는 노인은 8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노인보다 건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면역을 약화시키고 결국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면 방해하는 생활습관 개선으로 불면증 예방 불면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수면을 방해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먼저 커피, 홍차 등에 많이 함유된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특히 늦은 오후 이후로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전 흡연이나 음주도 피해야 한다. 술은 처음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잠을 자주 깨게 하고 수면무호흡증을 악화시킨다. 또 현재 복용 중인 약이 수면과 연관돼 있는지 확인하고 바꿀 수 있다면 다른 성분으로 대체한다. 잠이 안 온다고 수면제를 구입해 먹는 것은 결국 깊은 잠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낮 시간 동안 햇볕을 쬐면 생체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규칙적인 운동도 숙면에 도움을 준다. 낮잠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강 장수를 위해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과 더불어 충분하고 올바르게 자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 2024-07-26 08:50
-
- ‘쓸모’에서 밀려난 50대 여성의 이야기…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하여간 그렇대. 우리 나이가 한참 늙느라 바쁜 나이래.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면서 고장 나는 데 생기고, 마음은 공허하고. 살아 뭣하나, 싶은 나이라는 건데. 그게 당연한 마음이라니까 너무 난감해하지 마.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49p ‘피하고 싶은, 그러나 엄존하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소설가’(제9회 김현문학패 심사평) 김이설의 신작 소설이 출간됐다. 2006년 등단 이후 18년간 꾸준히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과 가족에 대해 질문해온 그가 이번에는 50대를 앞둔 난주, 미경, 정은, 세 친구의 강릉 여행을 통해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난주, 미경, 정은은 1975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오랜 친구지만 각자 사느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했다. 사는 거리가 먼 만큼 마음도 멀어진 무렵이었다. 매번 여행 한번 가자는 말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올해 강릉에 가자고 한 건 난주였다. 늘 그렇듯 말뿐일 게 뻔했다. 혼자 노모를 모시는 미경은 하루 시간 빼는 것도 쉽지 않다. 모두 속으로는 올해도 여행은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데, 불쑥 미경이 “가자!”고 호응한다. 강릉 여행을 떠나기로 한 당일, 세 친구는 서울역에서 만난다. 강릉 여행은 스물넷 이후 25년 만이고, 셋이 다 함께 모인 건 난주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7년 만이었다. 낯선 것도 잠시, “왜 이렇게 부었어? 살찐 거야, 아픈 거야?”, “넌 왜 이렇게 늙었니?”라며 서로 장난스럽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X세대, 신세대, 수능 0세대. 한때 이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싱그럽고 통통 튀고 정의할 수 없는 젊음 그 자체로 예쁜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이제 요실금과 고혈압, 탈모 등 다양한 신체 변화를 겪고 있다. 세 명은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펜션을 잡고, 여행 내내 잔뜩 먹고 마신다.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순두부, 장칼국수를 먹거나 허난설헌의 생가도 가고, 커피도 여섯 잔씩 시켜 나눠 마시고, 질리도록 술을 마신다. 이렇게 셋이 모이는 날이 또 없을 거라는 듯 최선을 다해 즐긴다. 그간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부딪치는 구석도 많다. 기혼인 난주, 정은과 미혼인 미경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고, 투잡을 뛰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정은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전업주부인 난주는 자주 투덕거린다. 싸움을 푸는 방식은 간단하다. 마시고, 웃고, 푼다. 술 한잔에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누다 보면 당장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도 괜찮다. 이들의 여행 또한 술 한잔과 같다. 앞으로 똑같은 삶이 반복돼도 버틸 수 있는 잠시의 안도, 찰나의 틈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을 견디며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김이설 작가의 사이 “5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생각보다 없어요. 각자의 세계와 인생이 있을 텐데 그저 엄마, 아줌마, 며느리, 딸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표지 속 거위처럼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이미지가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는 2023년 6월 초, 김이설 작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하나에서부터 시작됐다. 무료 소설 연재를 구독할 독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을까지 경장편소설을 마감하려면 스스로를 강제해 진도를 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신청자들의 메일 주소로 매주 1회씩, 원고지 30매 분량을 전송하는 ‘소설가의 생초고 메일링’,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였다. 쉽지는 않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원동력이었단다. “재앙이 매주 제법 많은 양의 원고를 써야 하는 저에게 해당하는 말인지, 정리 안 된 소설을 읽게 될 메일링을 신청한 분들인지 모호했지만 일단 썼어요. 어떤 노래를 들으며 무슨 마음으로 작업했는지도 함께요. 응원과 애정이 담긴 답장은 물론, 바다 사진을 꾸준히 보내기도 하셨어요. 두 번의 펑크를 내면서도 ‘무리하지 마라, 그저 기다리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강릉으로 떠난 중년 여성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의 주인공 난주와 정은, 미경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감 가는 구석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했다. 노안이 찾아왔지만 ‘안 보면 안 봤지, 돋보기라니’라며 마지막 자존심을 부리거나, 자녀들이 독립할 시기에 빈둥지증후군을 겪고, 요실금이 의심되는 상황에도 병원 가는 것을 미루는 등 낯선 몸, 낯선 자신을 만나며 혼란을 겪는다. “50대가 되면 몸 여기저기가 하나씩 고장 나지만 마음은 여전히 설익은 상태인 것 같아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때랄까. 아직 힘은 있는데, 40대보다는 ‘쓸모’라는 영역에서 다소 밀려났다고도 느껴요. 우울하고 주눅이 들죠. 하지만 다들 각자만의 큰 세계가 있었을 거예요. 그걸 풀어내고 싶어도 세상이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겁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그걸 한꺼번에 터뜨리려니 목소리가 커지는 게 아닐까요. 난주와 정은이, 미경이 같은 ‘아줌마’들은 쓸쓸함을 견뎌내고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중인 거예요.” “세상에 안 힘든 이십대가 어딨니? 이십대는 그냥 이십대인 것만으로 힘든 거야.” 미경은 끝을 내지 못했던 학생운동과 이뤄질 수 없었던 성희 언니와의 관계를, 정은은 일도 연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세상의 패자가 된 기분에 빠졌던 나날을, 난주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아줌마로 전락해버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셋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97p 삐거덕거리는 몸과 마음을 안고 세 친구는 강릉으로 떠난다. 김 작가는 강릉이라는 지명 자체가 동년배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하다는 생각에 배경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1970년대 대학가에 MT 문화가 퍼지면서 강원도는 그 시절 학생들에게 낭만의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강릉은 세 친구의 젊은 시절이 켜켜이 쌓인 상징적인 곳입니다. 저 역시 처음으로 부모님을 속이고 첫사랑과 여행한 곳이에요. 소설의 원제도 ‘강릉에 가자’였어요.” 등장인물들은 맛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카페를 찾거나, 관광지를 들르려 애쓰지 않는다. 안목해변 주변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순간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 와중에도 빠지지 않는 건 술이다. 과거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과 오해, 깊어진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다투지만, 담백한 건배와 함께 목구멍으로 털어 넘긴다. “여행 왔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잖아요. 술에 잔뜩 취해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들이 인연을 이어온 25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데다 처한 환경이 너무도 다르니 적당히 술 한잔으로 흘려보내는 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방법이겠죠. 그래야 아프고 잊고 싶던 기억 위로 이번 여행이 씌워질 테고, 또 살아가니까요.” 앞으로 안도할 우리 김이설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달라져 있는 인생을 알아차리게 된다’(110p)는 강릉의 커피 명장 박이추 선생의 말을 빌렸다.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부양하면서 사회적인 위치까지 공고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 고단하더라도, 살다 보면 지나고 보면 결국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든단다. “흔히들 특정 시절이 가장 찬란했다 말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거든요. 실수했던 순간이 자꾸 생각나고 숨고 싶어져도 어느 날부터는 되레 아름답게 여겨져요. 한동안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글을 전혀 못 읽고 못 쓰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극복했지만요. 작가에게 그건 죽음과 같은 건데요, 등단하고 10년 동안 육아와 원고 작업을 병행했더니 지쳤던 것 같아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날카롭고 거칠던 문체가 둥글둥글하고 편해졌어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도하고 감사하면서 계속 쓰다 보면 모르는 새 영글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쓸쓸함도 곧 잦아들기를 바라요.”
- 2024-07-22 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