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열풍을 넘어 생활이 됐다지만 지역마다 생겨난 ‘길’을 제대로 찾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걷다 보니 계획했던 길을 찾지 못할 때가 있고 결국 ‘중도 포기’란 말로 마침표를 찍기 마련. 어디든 아무 곳이나 막 걷는 것이 아니라 완주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꼭 주목하기 바란다. 매년 봄가을 함께 걷는 행복과 즐거움을 알기 위
옷값이 싸다 보니 옷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멀쩡한 옷도 집안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내다 버린다. 그런데 옷 만드는 과정을 보면 옷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옷은 먼저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 맞는 옷감도 골라야 한다. 원단 직조, 염색, 디자인 과정을 거친 후 패턴을 뜬다. 본을 뜬다고도 한다. 그 패턴대로 옷감을 자른
대왕암은 울산 동구 해안가에 있다. 오랜 세월 파도에 침식된 기암괴석의 자태는 과연 ‘대왕’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 대왕암과 함께 동해의 세찬 바람을 잘 버텨내고 있는 소나무 숲이 만드는 경관은 신비롭다. 그래서 건축 관련 일이나 강의가 있어 울산에 가면 시간을 쪼개서 그곳을 찾는다.
대왕암이 있는 동구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
'오름 오름' (박선정 저ㆍ미니멈)
‘제주에서 1년 살아보기’의 저자 박선정 작가가 제주살이 6년 동안 오름을 오르며 정리한 탐방 정보와 노하우를 담은 ‘오름 트레킹 가이드북’이다. 무성한 숲에 가려져 전체를 보기 어려운 오름의 모양을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오름마다 특이사항은 물론 트레킹 순서와 코스, 준비물, 편의시설, 소요
창경궁에는 영조 38년(1762),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지켜본 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선인문 앞 금천 옆 회화나무와 광정문 밖의 아름드리 회화나무다. 이렇듯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나무들을 궁궐에서 찾아보는 것 어떨까? 유익한 안내서가 되어줄 ‘궁궐의 우리 나무’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최명희의 장편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후기 중 일부다. ‘혼불’ 하나면 된다고,
그동안 세계 여행을 꽤 많이 한 편이지만, 돌아보면 대도시 중심이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비즈니스 출장이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출장 때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나마 제대로 관광을 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순수 관광으로 남부 프랑스에 9박 11일 여정으로 다녀왔다. 꽤 긴 여행이었기 때문에 미리 주변 정리를 했다. 나이도 있고 해서
나는 궁벽한 서해안의 한촌(閑村)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소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66)도 이곳을 다녀간 후 “그곳에 소나무가 많다”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적었다. 장터 옆 중학교까지는 시오리 길이라 왕복 30리 길을 매일 걸어 다녔다. 신작로 주변의 야트막한 산에도 소나무가 지천이었다. 운동장
5월에 계속 내리는 비를 맞으며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갔다. 예정에 전혀 없던 춘천행이었다. 사실은 이날 여럿이 모여 야외운동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당일 오전에 세찬 비가 내리자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2주 전에 한 약속이라 아쉬웠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하며 그냥 집에 있기에는 새벽부터 서두른 시간이
제주도는 근세에 70주년인 4·3사건이 발생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섬 제주. 두려움과 희망은 늘 바다 넘어서 밀려왔다. 1271년. 그날 하늘은 파랗고 땅은 붉었다. 그리고 자당화는 고왔다. 1273년 4월’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가면 토성 옆 쉼터 움막 안에 쓰여 있는 누군가의 글이 가슴을 쓰리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