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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GE Interview]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의 박춘근 작가
- 2008년 초연 당시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우며 중·장년 관객의 호응을 얻었던 연극 가 2009, 2011, 2014년에 이어 다시 대학로 무대를 찾았다. 살아 있는 남편과 관객의 눈에만 보이는 죽은 아내의 엇갈린 대화를 통해 애틋한 부부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가슴뭉클한 이야기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 박춘근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2008년 초연 이후 작품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 작품은 조금씩 변했습니다. 그때마다 이유가 있었는데 아마 제가 변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이 아이가 하나 더 생겼고, 극중 남편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요. 작품의 운명을 작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좋은 배우들과 계속해서 이 작품을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공연을 통해 알게 된 부분도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남편보다 아내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작품을 쓰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 작품 속에 커다란 사건이 휘몰아치듯이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변곡점이 있기는 했지요. 1장을 써놓고, 사건으로 밀어붙일 것인지, 그들의 조곤조곤한 인생으로 조탁할 것인지를 두고 제 속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조금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Q. 주인공 안중기와 닮은 점이 있다면? 어디선가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 했는데, 억울하게도 잘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굳이 저와 비슷한 인물을 꼽자면, 노부인에 가깝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조금은 보편적인 인물,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의, 당신의 이야기이기를 바랐습니다. 혹시 극중 인물이 누군가와 닮았다면 그건 그들이 우리의 어느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Q. 중장년 관객들이 보았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장면(또는 대사) 어떤 장면 또는 대사가 아닐 것 같습니다. 공연은 고작 수십 분 안에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무대는 수십 년이 흐르지요. 장면과 장면 사이, 그사이에 흐르는 수십 년의 이야기를 함께 채워가길 바랍니다. 언젠가 아는 어르신이 공연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네.” 한참 그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의 삶을 정보로는 알고 있지만, 제가 어찌 그분의 삶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들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어르신을 생각하며 이 작품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Q. 작품을 본 관객이 어떤 메시지를 얻어갔으면 하는지 어떤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을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정한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 메시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나 변화 앞에 놓이신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계속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박춘근 작가 연극 , , , , 뮤지컬 , 오페라 등 극본. 연극 일정 7월 1일~9월 18일 장소 수현재씨어터 연출 김수희 출연 전노민, 이일화, 이한위, 황영희, 김민상 등
- 2016-07-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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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거 땜에 친구와 의 상한다] 동창과 친구사이에서
- 필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등학교 졸업반 반창회 대표를 맡아왔다. 그동안 졸업 10주년, 20주년, 30주년, 35주년 행사를 치렀다. 그 행사 때마다 반 친구들에게서 회비를 걷고 행사 안내 확인 전화를 수차례씩 돌렸다. 그뿐 아니다. 매년 봄에 한 차례 반모임을 가졌고 연말에는 송년회를 했다. 그때마다 날짜와 장소를 잡고 회비를 거두었다. 정기 모임 외에 경조사가 생기면 동기들에게 연락하고 경조사에 쫓아다녔다. 동기회장을 하는 친구 중에는 명예욕에 사로잡힌 인사들이 있다. 더러는 몇 회 동기회장이라고 명함에 넣고 선·후배 찾아다니면서 사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동기회장은 회비 조금 더 내는 거밖에 없다. 할 일도 없다. 총무나 반창회 대표들이 고생 다 해서 만들어 놓은 행사에 폼 잡고 나타나서 마이크만 잡으면 된다. 다만 참석해야 할 경조사가 좀 많다는 것이 동기회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유일한 불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동기회의 모든 행사와 모임은 반창회 대표의 역할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역할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회비를 걷는 일이다. 회비는 자발적으로 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빚쟁이처럼 수차례 전화하고 사정해야 받아낼 수 있다. 행사 참석 인원 파악도 힘들다. 오랜 세월 동안의 행사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전화로 파악한 행사 참석 예상 인원 중 실제 참석하는 인원은 70% 정도라는 것이다. 그나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행사 전에라도 연락하는 친구는 용서가 된다. 철석같이 참석을 약속해 놓고 연락도 없이 참석하지 않는 동기들에게서 상처를 듬뿍 받는다. 그러나 반창회 대표는 이런 섭섭함을 내색해서는 안 된다. 다음 번 행사가 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사 연락을 하면서 매번 심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 되면 참석할게”라는 밑도 끝도 없는 답변을 들을 때이다. 이런 무성의한 답변을 삼십 년 넘게 반복하면서 한 번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동기들이 있다. 최근에 그들 중에 여럿이 동기회에 나타난다. 다들 은퇴해서 심심하다고 했다. 이제 시간이 남아도니까 나타나서 설쳐대는 그들을 보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증오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이제 반창회 대표를 그만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종신 대표를 하라고 한다. 대답도 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다. 곁에서 필자 고생하는 거 오랜 세월 봐 왔던 동기 하나가 이제부터 자기가 짐을 맡겠다고 나섰다. 반창회 대표를 그만둔 지 2년 동안 필자는 모든 고등학교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 “신상에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해서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시간 되면 참석하겠다”던 동창 중에 필자에게 전화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동안 동기동창과 친구의 구별 없이 살았다. 억울하지는 않지만 이제 잠시 멈추어 인간관계를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 2016-07-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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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1957년생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내 안에 위대한 세상이 있다, 꿈이다'
- 글 신광철 시인, 작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자유를 주어라. 내 안에는 많은 길과 많은 말과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에 익숙해져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산 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방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거머쥐기 위해서, 또는 지배하기 위해서일까. 인생에 목표를 두고 달려왔던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단순하다. 대부분 돈 권력 명예 그리고 사랑과 성이 중요한 목표였고, 이것들에 ‘더 많이’라는 구체적 목표 외에는 별 것이 없다. 과연 인생 60을 살아온 지금도 그런가. 그렇다면 그 인생은 올바른 삶인가 묻고 싶다.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걸 꿈이라고 한다. 인생의 방향은 집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종교에서 말하는 꿈이 아니라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순결한 내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이 진정한 꿈이다. 꿈을 향해 사는 것이 최선이다. 세상에 태어난 진정한 이유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 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늦은 나이는 없다. 가장 이른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늦은 시간은 다음이다. 더 나쁜 결정이 있다. 포기다. 포기하는 순간 죽은 것이다. 60년 동안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행복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영원한 갈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행복은 내 안에 있는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꿈을 실현하는 것이 행복이고, 내 안에 있는 따뜻함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긍정의 토대 위에 놓여 있는 온기다. 존재를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자람과 넘침을 받아들이고, 살아 있음을 살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행복이 온다. 젊게 사는 방법은 육체가 젊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젊게 사는 방법이다. 내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꿈이라고 한다. 꿈을 나는 등대라고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더라도 다시 바라보면 별처럼 빛나는 꿈, 꿈은 그래서 별이다. 인생의 영원한 등대가 꿈이다. 꿈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는 것이 행복이다. 꿈은 노력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땀을 기다리고 있다. 꿈은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나 자신에게.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나의 꿈은 글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버려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버리고 글쓰기에 돌입했다. 글 중에서도 시가 쓰고 싶었다. 시는 굶어야 만날 수 있는 세계다. 산업사회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것이 시다. 산업사회는 인간을 도구로 보는 사회다.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간을 본다. 생산과 관계되지 않은 것은 도태되는 사회가 산업사회다. 시인이 생산하는 시는 돈이 되지 못한다. 교환경제 속에서 시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재화를 생산하는 굴뚝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인은 빛나는 존재다 그래서 바꾸었다. 시가 돈이 되지 않으니 돈이 되는 글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두 접점에서 만난 것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독특하고 희귀한 존재였다. 빛나는 존재였다. 파고들수록 깊고 넓은 세계가 있었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한국인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균대에서 자랑스러운 것을 말하고 싶다. 한국인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루어 냈다. 먼저 세상에서 말을 정리한다는 것은 엄두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특정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말은 만들어진다. 말은 상당 부분 비논리적이고, 비계획적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놀라운 언어다. 우리의 말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얼굴부터 살펴본다. 눈 코 귀 입. 몸으로 들어가 본다. 살 피 뼈 등 배. 자연으로 가면 한도 없다. 강 산 들 물 눈 비 풀 꽃 씨 그리고 땅이 있다. 땅이 한 글자라면 하늘도 한 글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은 두 글자인 이유가 있다. 의미를 담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한늘이다. ‘한’은 무한히 큰 공간을 말하는 우리말 한이다. ‘늘’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시간으로 우리말 늘이다. 무한공간인 ‘한’과 무한시간인 ‘늘’이 만나 ‘한늘’이 되었고 ‘ㄴ’이 탈락하여 하늘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 중에서도 우리와 가까운 것들은 한 글자로 되어있다. 호랑이 늑대 승냥이 고양이 같은 동물은 여러 글자로 되어 있지만 우리와 밀접한 가축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있다. 놀랍다. 원칙을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다. 가축의 이름을 본다. 소 말 양 닭 개. 모두 한 글자다. 돼지도 가축인데 두 글자다. 돼지는 옛말로는 ‘톳’ 또는 ‘’이라고 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토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돼지는 돼지새끼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지’는 동물의 새끼를 말한다. 강아지, 송아지 등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톳과 아지가 만나 톳아지가 도야지로, 도야지가 돼지로 되었다. 곡식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밀접한 곡물들은 보리를 제외한 쌀 벼 밀 콩 깨 등으로 대부분 한 글자다.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두 글자로 만들어져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한국인에게 잠재되어 있고, 또한 숨어 있다. 우리의 능력을 우리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인이다. 세계에서 드문 일이, 한국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예상 외로 많은 것에 놀랍다. 나물도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어느 나라도 들이나 산에서 나는 야생 나무나 풀을 음식의 재료로 상식하는 민족은 없다. 약초로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전 국민이 산이나 들에서 풀과 나뭇잎을 상시로 뜯어다가 밥상에 올리는 나라는 없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프리카나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에 허덕이지만 나물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야생하는 나무와 풀들의 약리 성분과 독특한 맛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탐구심이 강하다. 끝까지 파고들려는 기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어이 달성하고 마는 강인함이 있다. 나는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인생은 우연이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우연은 준비되어 있어 인연과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인연은 우연을 가장해서 온다고 말한다. 내가 한국인을 만난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을 만나면서 인생도 달라졌다. 한국인의 놀라운 세계가 나를 흥분시켰고, 나를 즐겁게 했다. 들어갈수록 오묘한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들어본다. 세계 어느 나라의 건국이념이 경계를 허물고 인간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내용을 가진 나라가 있을까. 한마디로 없다. 다 같이 이롭게 잘 살자는 홍익인간은 인류공존의 기틀을 만드는 초석이 될 건국이념이다. 다시 뛴다, 인생은 육십부터 인생에 불을 질러라.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은 독립된 섬이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가 있고, 새가 있지만 인간은 고립되어 있다. 고립을 피하여 배를 만들었지만 외롭다. 사람, 고립된 섬이다. 손을 잡고 있어도 너는 내가 될 수가 없다.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어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키운다. 그래서 나는 ‘삶아 난 너를 사랑한다’고 선언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지 않고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기만임을 알았다. 나를 사랑한 후에 남을 사랑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쉬운 듯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속성을 알아야 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자기보호본능이 있다. 자기보호본능은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초적인 방어기제였다. 자기보호본능의 핵심이 이기심이다. 생명체의 기본 속성이 자기보호본능이고, 자기보호본능의 핵심이 이기심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 한가운데 기둥처럼 서 있는 것이 이기심이라는 이론이다. 이기심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다.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이 가져오는 것이 이기심이다. 경쟁과 싸움이 따른다. 하지만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봤다. 이기심은 적을 만들지만 진정한 이기심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타인이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만들면 적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진정한 이기심은 배려와 봉사였다. 또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어떤 길을 가도 내 인생임을 자각하는 순간 두려움은 상당 부분 없어진다. 신에게 기도하는 손보다 실천하는 손이 더 아름답다고 우긴다. 모자라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데리고 사는 것이 힘들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모자라고 어리석은 자신을 자각하고 완성을 향하여 한 발씩 나아간다는 데 있다. 욕망이 아름다우면 노래가 될 수가 있다. 꿈이 아름다우면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글쓰기를 인생의 과업으로 설정한 것이 고난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즐겁게 가려 한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는 만큼 장애를 도전으로 넘어보려 한다. 글쓰기와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 곤란을 안겨 주겠지만 웃으며 갈 것이다. 아름다운 욕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따뜻한 이기심은 배려와 봉사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한 이기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한다. >> 신광철 시인, 작가 한국문화콘텐츠 연구소장으로 한국, 한국인,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언제나 ‘긍정이’와 ‘웃음이‘를 반려동물처럼 데리고 다니세요”라고 당부하는 문학가이자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다.
- 2016-06-2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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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경험을 디지털로 연결하면 나눔이 된다-디지털 자원봉사
- 글 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 전략명함 코디네이터 디지털 자원봉사란? 주변을 보면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 많다. 가까운 지인들만 봐도 복지관, 양로원 혹은 자원봉사 센터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자원봉사를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두 번 나가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뜻에서 시작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내가 원하는 활동이 아니라서라는 등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생기고 결국 그만두게 된다. 자원봉사는 거창하게 시작하면 지속하기가 어렵다. 작지만 가볍게 그리고 재능과 어울리는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자원봉사를 생각해 보자. 디지털 자원봉사는 해외에서 프로보노라는 전문가 봉사활동에서 나온 개념이다. 디지털 자원봉사를 하려는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 준비시간을 준다. 그리고 기업생활의 경험이나 전문적인 능력을 비영리단체가 처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토록 한다. 직접 찾아가서 돕는 게 아닌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궁금한 점을 알려주거나 컴퓨터를 원격으로 제어하고 어려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디지털의 힘을 빌리면, 무쇠팔? “디지털 자원봉사를 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디지털과 사람을 연결하면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오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 중 다쳤거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언어가 안 통하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이럴 때는 주위에 언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는 방법도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번역 봉사를 하는 사람과 연결해주는 방법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bbb코리아라는 NGO단체가 있다. 통역을 도와주는데 특이하게 휴대폰으로 통역을 도와준다. 길에서 만난 외국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bbb통역이란 어플로 해당 언어를 선택하면 통역을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와 연결이 된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19가지 언어가 있어서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당황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다. 비록 나에게는 없는 통역 능력이지만 연결해 주는 것만으로도 도울 수 있다는 게 디지털의 힘이다. 필요할 때 요청하는 봉사활동 bbb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는 우리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공부나 일을 하는 중에 스마트폰으로 도움 요청이 울리면 일을 잠시 그만두고 통역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렇듯 봉사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가도 스마트폰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짬을 내서 도와준다. 이와 비슷한 봉사가 있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활동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많지만 그중에서 유독 불편한 상황이 있다고 한다. 우유를 사왔는데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거나, 약을 먹으려 하는데 약 봉투에 쓰여진 글자를 보고 싶을 때 난감하다고 한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be my eyes’라는 어플이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봉사자에게 연결되고 봉사자는 시각장애인과 연결된 스마트폰 화면을 동시에 보면서 말로 설명해 준다. 떨어진 물건을 찾아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외출할 때 색깔 옷을 골라주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입소문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내어서 하는 봉사가 아닌 짧지만 요청이 있을 때 도와주는 디지털 방식의 봉사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짧지만 누군가를 도와준 강력한 경험이 다른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나눔의 경험을 만들어 보자.
- 2016-06-2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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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강추하는 아름다운 사람
- 필자의 이민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이민 가기 전에 이민1세가 살아야 할 삶의 행로가 불보 듯했다. 이미 필자보다 먼저 이민한 언니로부터 기능도 익혀오지 말고 노동력이나 강화하여 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한 이민 준비는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밭매기 봉사 두어 달 한 것이었다. 흙과 함께 잔뼈가 굵은 농군의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 뉘엿뉘엿 긴 그림자 드리우는 저녁까지 보수도 없이 긴 하루를 농사일 했다 보수로 받은 신선한 야채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알짜의 이민정보와 마음의 준비로 미국 땅을 밟았건만 여전히 복병은 있었다. 취미로도 하지 않았던 바느질을 해야 하는 세탁소를 인수했다. 드랍 오프(drop off)다. 세탁은 자체 처리하지 않고 옷수선만 하는 가게인데 주수입원이 옷수선이다. 재봉틀에 실 꿰는 법도 모르는 필자를 전 주인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준 아이디어는 “ 처음에는 쉬운 것만 소화하고 어려운 것은 반반 나누는 외부로 보내세요”다 필자도 걱정하였고 주위의 사람들도 걱정하였던 그 어려운 일이 들어왔다. 한 눈으로 봐도 고급여성 수트인데 소매의 끝을 완전히 디자인 바꾸는 일이다. 주문받는 순간부터 가슴이 벌렁거려 그 일을 밀어내고 싶었다. 가격 높게 불러 손님 쫓아내리라 생각하고 높은 가격을 불렀건만 손님이 쾌히 받아들인다. “고급이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수트이니까 일이나 잘해줘. 왕창 세일해서 400달러야” 한다. 할 수 없이 납품일을 최대한 멀찌감치 잡았다. 혹 손님이 그 시간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필자에게 맡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여전히 좋단다. 두 주 약속의 시간동안 필자는 늘 수트만 생각하였다. '할까, 말까, 외부로 보낼까'를 왔다 갔다 했다. 400달러 공탁 걸고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실수하면 변상하겠다. 인명이 왔다갔다하는 일도 아닌데 위험부담 줄이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다른 일 다 마쳐놓고 하루를 잡았다. 기도하는 자세로 옷을 손에 잡았다.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면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온 몸과 마음을 다한 정성이지만 역시 기술적인 작업이라 메뚜기 뛰어봤자의 결과다. 약속한 날 손님이 왔고 필자는 감히 손님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손님의 실망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게 뻔했다. 형량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 짧은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한참 만에 손님은 “탱큐”라는 마지못해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5달러의 팁을 놓고 옷을 낚아채 듯 내 가게를 떠났다. 그 손님의 얼굴을 다시 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한 달 후에 그 손님은 필자를 찾았고 단골이 되었다 6개월 후 어느 날. “숙, 너 내 옷 망친 거 아니? 그날 나는 너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날 네가 이민 초년생이란 걸 알 수 있었기에……. 내 부모가 처음 이태리에서 미국 왔을 때의 어려움이 생각나 너에게 불평을 할 수가 없었지. 잘 버티라고 힘주려고 팁을 놓고 갔다. 하지만 너 아주 스마트하다. 겨우 여섯 달 짧은 기간에 좋은 심스트레스(seam stress)가 되었네! 이제부터는 내 친구들 데리고 올게.” 이 일방적인 약속은 철저히 지켜졌다. 캐더린이 데리고 온 가족과 친구들은 오랜 동안 단골손님이었다. 작은 몸집의 줄담배인 캐더린은 필자 가슴에 온정이라는 작은 불을 켜들고 있다.
- 2016-06-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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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기획... 내가 이 독립투사에 꽂힌 이유] “박열의 사랑이야기”
- 조국의 역사가 안겨다 준 수많은 비극이 있다. 그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독립 투사와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애절한 감동으로 다가와 그 여인이 옥중에서 쓴 수기 내용을 우선 써 내려가본다. “박열을 처음 사랑하던 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박열의 식민지 조선 독립운동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고…. 아무리 독립운동이 나의 사상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박열을 사랑했다.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사랑하는 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즉, 그것은 자아의 확대라 할 수 있다. 나는 박열을 사랑했고 박열은 조선을 사랑했다. 그래서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 독립을 위해 나섰다. 박열의 동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우리를 비웃어 달라고. 다음 재판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모든 것은 권력이 만들어낸 허위이고 가식이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달라! 나는 박과 함께 죽을 것이다. 박열과 함께라면 죽음도 오히려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 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박열, 그는 1902년부터 1974년의 생애로 마감을 한 독립투사로 본명은 박준식이다.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태어나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로 전학하여 재학 중에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한다. 1919년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했고, 조선 최초 아나키즘 사상단체를 만들어 일본제국 왕을 폭탄으로 제거하려는 등 온몸으로 반제국주의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1920년 1월에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고학생들과 동경 조선고학생동우회를 결성해 조직활동을 시작했다. 박 열은 불령사(不逞社)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가, 그 해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인 연인인 가네코후미코( 金子文子)와 함께 1923년 10월에 일본 왕자 히로히토의 혼례식 때 암살을 기도한 죄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박 열과 가네코후미코는 1926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두 사람은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박 열은 젊은 청년시절 22년 2개월간의 기나긴 옥살이를 마치고 1945년 10월 아키다 감옥에서 미군에 의해 석방되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에서 우익 교포 단체인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1947년 10월 민단 정기대회에서 이승만 계열의 남한단독정부수립 노선을 지지했고,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의 초청으로 1949년 영구 귀국했다가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납북되었다. 북한에서도 군대 축소 및 국제 중립국화 등에 노력을 기울였고 1974년 서거하여 그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 능에 묻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 장이 추서되었다고 한다. 1926년 박 열과 옥중부부가 된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조선을 사랑한 일본여인이다. 요코하마에서 사생아로 출생한 그녀는 가난한 가정환경과 성적학대로 불우하게 살아왔다. 제국주의 일본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군국주의에 반감을 가져온 자유여성으로 23살의 짧은 삶을 살았다. 젊은 시절 약7년 동안 조선 부강 땅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고 1919년 에는 부강에서 횃불 만세운동을 목격한 바가 있다. 그녀는 도쿄시내의 작은 오뎅 집에서 일하면서 조선유학생들과 교류하였고, 우연히 한 조선잡지에 실린 박 열의 자작시를 읽고 강한 감동과 함께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곧 사상공감에 이르렀고, 민족적 차이를 넘어 계급적 동지로서 뜻을 같이하고 항일활동을 함께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히로히토 암살을 기도한 후 체포되었고 서로 다른 감옥에 수감되었다. 옥중 부부가 된1926년 불과 몇 달 후 그녀는 결국 감옥에서 목을 메어 자살인지 타살인지 미스테리한 의문사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한다. 죽은 후에는 일본 내에 그녀의 시신을 거둬줄 사람이 없어서 옥중에서 결혼서류를 작성하고 박씨 집안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박 열의 형은 그녀의 유골을 인수하여 남편의 고향인 문경, 박 열 의사 기념관의 옆에 안장시켜 놓았다고 했다. 우리 조국의 사랑뿐만 아니라 투철했던 한 독립투사와 일본인 가네코의 끈질긴 사랑이 잔잔하게 가슴에 울려온다. 서로가 원수의 국적이었지만 남녀의 사랑으로 함께한 굳은 의지가 죽음도 불사했다. 한 독립투사는 조국을 위해서 앞장섰지만 일본인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아내로 두었던 것이 오히려 해가 된 것이었을까? 무서운 권력 앞에 처절히 죽어가며 한 남성을 사랑하는 어느 여인의 절규가 애절하기만 하다. 박 열의 업적과 가네코의 항일운동의 업적은 현재 남 북한 양쪽뿐만이 아니라 고향인 문경에서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두 남녀의 시신은 남과 북으로 서로 떨어져 있어 더욱 깊은 아픔 으로 남는다. 필자에게는 지금도 의사 박 열은 가네코의 기일이 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애달프게 다가온다. 가네코 후미코 그녀의 자서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도 구입해 봐야 할 것만 같다. [출처] “한 독립투사의 사랑이야기”|작성자 로즈와이
- 2016-06-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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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유혹 Part 6 성형]“100세 시대, 좋은 인상에 대한 요구가 커졌습니다”
-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불사약을 구해오라며 서복에게 동남동녀3천명을 거느리고 가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실제로 제주도와 오키나와에는 서복이 다녀간 흔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영생, 늙지 않고자 하는 영생을 대표하는 일화로 자주 인용된다. 이런 욕망에 시달리는 이들은 진시황뿐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이들은 제주나 일본이 아닌 성형외과를 찾는다. 그래서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성형외과장 박은수(朴殷秀·48) 교수를 만났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많죠. 적지 않습니다.” 바삐 수술을 마치고 나온 그에게 다짜고짜 성형외과에 시니어 환자가 많은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 외였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은 개원가의 개인 병원에 비해 사정이 다를까 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정확한 통계는 자료를 봐야겠지만, 제 체감으로 시니어 환자의 비중은 한 35% 전후가 아닐까 싶네요. 젊어지거나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나이와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욕망이니까요. 생각보다 남자 환자도 꽤 됩니다.” 남자도 많다고? 성적 편견인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은 여성이 아니던가. 이 의외의 현상에 박은수 교수가 내놓은 답은 이랬다. “성형외과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바로 100세 시대로의 진입입니다. 과거만 하더라도 기대수명이 짧기 때문에 노후에 어떤 질환이 나타나더라도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본인들도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려면, 다른 사회활동을 위해서 좋은 인상과 외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투자에도 과감해질 수 있는 것이고요. 성형에 대한 욕망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사회로부터 받는 좋은 인상에 대한 요구 기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환자 중에 봉사활동 과정에서 더 나은 리더십을 얻기 위해 성형을 선택한 환자도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는 학계에도 영향을 줘, 학계에서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질환으로 보고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특히 항노화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박 교수는 늘어나는 시니어들의 성형을 설명할 만한 또 다른 요인으로 시술 방법의 변화와 정보를 꼽았다. “비침습적(非侵襲的) 시술, 그러니까 째거나 꿰매지 않고 시술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큰 각오를 하지 않아도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됐죠. 또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정보 교류가 되는 것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들에게는 갈수록 기능적 개선과 성형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를 들어 눈꺼풀이 처져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하면, 단순히 시야만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외모도 개선되고, 자신감도 생기고, 그 과정에서 삶의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시니어의 성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균형이죠. 간혹 젊은 여성들은 본인이 성형을 했다는 흔적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고, 그 이유를 알 것 같긴 해요. 간혹 중년분들도 그런 요구를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적극적으로 이해를 구하는 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에요. 시니어들의 성형은 티를 덜 내면서 인상을 밝게 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 2016-06-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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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이주! 찬성 VS 반대] 친구 많은 서울에 그냥 살겠다
- 방송이나 잡지들이 꿈의 도시 제주에 자리 잡은 일반인과 연예인을 앞다투어 취재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수시로 걷는 사람, 특수과일농사로 일하면서 비용 창출하는 사람,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맛있는 제주특산물로 식사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특히 제주의 예쁜 바다 색깔을 보면 마음이 상당히 흔들릴 때도 있다. 사는 도시에서 뻔질나게 쏘다니던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면 서울은 배울 곳도,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매우 많다. 나이 든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가족이나 지인들이 근처에 있는 것에 편안함과 기존에 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느끼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장수 예상 나이의 규정하는 것 중에는 화장기없는 얼굴로 슬리퍼 끌고 나오라 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냐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큰 제주이주는 꿈도 못 꿀 내용이라고 여긴다. 죽기보다 싫은 출근을 여행 다녀와서 바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난번 날씨 때문에 제주국제공항이 마비된 사건 이후로는 제주지하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제주는 기후가 나쁜 곳이다. 여행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거기 산다? 주저하는 사람 투성이일 것이다. 교통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제주 사람이 서울에서 모임 있을 때 와서 몇만원 짜리 저녁 식사하면서 15만원 짜리 밥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가항공을 주 중에 노리면 비행기 항공료가 저렴하다고 하나 제주 사람이라고 항상 주 중에만 다닐 수 없는 거 아닌가.
- 2016-06-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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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행복추구 모든 것 <번영학>에 담았죠” -3년 걸쳐 인생 역작 펴낸 이형구 전 노동부 장관
-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을 통해서 말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2008년 이 전 장관이 출간한 에서 그가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담긴 책이 바로 이다. 단순 명료한 책 제목만 보아도 이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책을 낸 것은 아니다. 은 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자 사명감, 후세대를 위한 바람이 담긴 ‘인생작’과 같다.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다”며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다. “2005년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준비했던 책이 입니다. 번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역사, 정책, 문화적 상황에 따라 설명했어요. 그 책을 쓰면서 꼭 그에 대한 결론을 내는 책을 쓰고 죽겠다고 결심했었죠. 한 10년쯤 후에 쓸까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보다 훨씬 앞당겨 쓰게 됐어요.” 그가 예상보다 책을 일찍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다. 번영학은 신자유주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 논리와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를 바탕으로 한다. 리먼브라더스 사건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이 왜곡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무너뜨렸다. 갑작스러운 경제 상황의 변화로 그는 하루라도 일찍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위적인 통화 공급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무너져버렸죠. 여러 가지 발전 전략이나 가치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신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이 경쟁이거든요. 발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 수 있죠. 신자유주의의 경쟁체제를 가지고 개발도상국 시대의 발전의 의지를 접목하자.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조금 확대돼야 한다는 게 번영학의 기본이자 의 결론과 같아요.” 모두 다 한번 잘살아 보세~ 번영(繁榮)이란 번성(繁盛)과 영화(榮華)를 이른다. 번성은 객관적으로 번창하고 풍성한 상황, 즉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한 경제적 풍요를 의미한다. 영화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화로움과 영예를 뜻하는데, 객관적인 경제적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의 주관적 상황과 개인의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번영이란 경제적으로 풍족한 조건과 더불어 개인의 영예, 행복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거기에 현재의 번영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내가 현재 연간 소득이 1억원이라 하면, 10년 후에도 1억원이면 되겠어요? 현재보다 발전한 소득수준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이 많다고 행복한가? 그 돈이 영예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도둑이 훔친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고 하면 소득 수준에는 문제없겠지만 내 가족이나 이웃에는 떳떳하지 못하잖아요. 나를 번창하게 하는 그 돈이 영예로워야죠.” 그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래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 우리는 너무나도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는데, 그런 내가 삼시 세 끼 챙겨 먹으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소위 절대빈곤 타파라 하는데, 그저 세 끼 먹는다고 만족할까요? 매일 채소만 먹는 것보단 고기반찬도 먹고 해야 좋을 거 아녜요. 그게 생활의 질이에요. 그러면 내가 좋은 반찬을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할까요? 이웃도 잘 먹고 잘살게끔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죠. 그래야 ‘저 사람 참 훌륭하다’는 인정도 받고 개인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 행복 조건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현재 삶의 행복 점수, 70점 행복 가치 추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그에게 자신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70점 정도”라고 대답했다. 이 전 장관은 현실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30에 연연하기보다는 소소하게 채워진 70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을 쓰는 일도 행복하고, 손주를 보는 것도 즐겁죠. 다들 그런 재미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집 근처에 서재를 마련했으니 글을 쓰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것도 행복해요. 이번에 책을 내고 동료들이 의견을 내서, 실제 관련 일을 했던 이들 중심으로 한국번영학회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6월에 시작하는데, 내가 일을 벌였으니 학회장을 맡았죠. 근데 뭐 그게 일인가요. 이제 나이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일종의 놀이인 셈이죠. 아주 즐거워요.” 아쉬운 30점에 대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돈을 좀 더 잘 모아둘 걸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랬다면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봉사나 기부도 그렇고요. 그런데 내가 재벌이나 기업가도 아닌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 되겠어요?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평가거든요. 본인이 기준을 잘 설정해서 만족하고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얼마나 많겠어요.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고맙게 생각해야죠. 나름의 기준은 있어 점수를 매길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 나이에 그것에 좌지우지되거나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현재의 삶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는 인터뷰 중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인터뷰 전 날이 바로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해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챙겨드릴 부모님이 이제는 안 계시다는 것이 못내 허전하다고 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그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어머니는 100세를 사시고 금년 1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1990년대에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오셨어요. 그때부터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는 여의도에 집을 마련하시고 생활을 하셨죠. 아마 두 분이 계속 시골에 사셨더라면 부모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적었을 것 같아요. 근처에 사시니 매일 보고 이야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진정한 은퇴 라이프의 시작 3년을 투자한 끝에 출간한 . 자기만족만을 위해 썼다면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며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 후손들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리라는 바람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로 대학교 4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도 참 보람 있고 좋았어요.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무관부터 시작해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계획에 참여했다는 거예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 더 많았죠. 다른 점에서 볼 때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안 되지만, 그만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서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했던 일도 아니니 후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남겨야죠. 그들이 보고 ‘과거의 경제 계획은 이랬구나. 이러한 이론이 있고 상황은 어떠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자신은 잠시도 가만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일을 할 때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했고,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겼으며, 요즘도 중국어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3년간은 해외 일정이나 모임 등을 자제하고 원고 작성에만 몰두했다. “책 출간하느라 바빠서 운동도 잘 못 다니고 해외도 거의 못 나갔어요. 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흔히들 말하는 은퇴 라이프가 다소 건조하긴 했죠.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충만하게 하고 즐거움을 줬는지도 모르겠어요. 최근까지는 원고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요. 정말 죽기 전에 꼭 하자 하는 것을 이뤘으니, 이제 죽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지내려고 해요.”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라 그가 지금까지 낸 책은 모두 경제와 관련된 전문서적들이다. 그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남들이 선망할 만한 일을 많이 해왔는데도 자서전을 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노년기 삶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 그런 데에는 아내의 조언이 한몫했다. “아내에게 매일 듣는 말이 ‘노인네가 되면 안 돼요. 어르신이 돼야 해요’입니다. 상당히 좋은 충고라고 생각해요. 노인네가 된다는 게 뭐겠어요. 목소리 높이고 잔소리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 사람 참 잘 늙었구나’해야 어르신이 되는 거죠. 전에는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서 정부가 뭐를 한다 그러면 언론에 글도 쓰고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그런 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떠들어봐야 늙은이 잔소리니까요.” 그는 최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관한 글을 읽고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사위가 쓴 글이었는데, ‘장인어른은 가족 문제나 자식 일에 대해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자식이나 손주의 일에 가능한 한 나서지 않고 간섭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 생각하는 게 늘 나라 경제 운용에 대한 것이니까, 물론 얘기야 하고 싶죠. 내가 볼 때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나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현재의 장관이며 총리며 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처럼 바뀌겠어요? 아니거든요. 결국 잔소리거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에 담았어요. 거기에 그동안 살면서 쌓은 경험, 지식, 조언 등이 담겨 있으니 자서전과 다름없지요.”
- 2016-06-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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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 시대, 제조업의 변화 방향은 무엇인가?
- 국가 경제에서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분야가 제조업이다. 그런데 최근 조선업의 구조조정 등 제조업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 인천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은 지난 8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쉐라톤인천호텔에서 아침포럼으로 '기로에 선 한국의 제조업'이란 주제로 산업연구원 주현 부원장의 강연회를 열었다. 주 부원장은 “한국이 2015년 GDP 규모 세계 11위, 수출 규모 세계 6위, 경상수지 1,075억 달러(약 126조760억 원) 흑자(2016년 980억 달러)고 세계은행(WB) 기업환경평가 세계 4위,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 무디스와 S&P 국가신용등급 각각 Aa2 등급, AA- 등급으로 중국 및 일본보다 높은 점 등은 긍정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30.3%로서 중국 28.3%, 독일 22.6%, 일본 19.0%, 미국 12.1%, 영국 10.6%보다 높으나,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 한계기업 비중이 매년 증가(2002년 4.5%, 2007년 6.9%, 2012년 8.0%, 2014년 11.6%)하고 조선,철강,전기 전자업종의 수익성이 크게 하락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주 원장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 요인을 보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기술,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신기술로 노동력 대체와 일자리 양극화 등 고용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 세계 GDP에서 아시아는 34.0%(동아시아 비중 22.2%)이고, 전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2%(동아시아 비중 21.3%)로서 세계 경제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 중이고, 특히 중국경제의 비중이 급등세를 보인다”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2030년까지 세계 에너지 수요는 50%, 수자원 수요는 40%, 식량 수요는 35%(US NIC 2012)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이나 경제개발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기후변화에 직면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한다. 이에 따라 2016년 잠재성장률 생산요소별 기여도(한국경제연구원)는 2016~20년 2.7%(총 요소생산성 1.3, 자본 1.5, 노동 –0.1), 2021~25년 2.3%(총 요소생산성 1.3, 자본 1.3, 노동 –0.3), 2026~30년 2.0%(총 요소생산성 1.3, 자본 1.2, 노동 –0.4)로 전망된다“고 했다. 주 원장은 “그동안 한국은 투입주도형 경제성장 구조로서 1980년대의 경우 풍부한 저임 노동력, 90년대는 설비투자 확대, 2000년대 이후는 연구ㆍ개발(R&D) 투자 확대로 경제가 성장했고, R&D 투자 규모가 2014년 기준 63조7,341억 원으로 세계 4위, GDP 대비 R&D투자 총액은 4.29%로 세계 1위로서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러나 정치와 정부의 신뢰성(정치인 94위, 정부규제 97위, 정책 투명성 123위 등), 기업경영의 전근대성(기업윤리 95위, 이사회 유효성 120위, 소수 주주 이익보호 95위 등), 노동시장 비효율성(노사협력 132위, 고용 및 해고 관행 115위, 정리해고비용 117위, 조세의 근로유인 효과 99위, 남녀근로자 비율 91위), 금융시장의 미성숙(금융서비스 유용성 99위, 대출 편이성 119위, 금융 건전성 113위) 등 구조적 비효율성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다변화, 다양화 추세에도 최상 기업집단에 대한 의존성이 크고, 중국기업의 대거 진입 등으로 대기업의 투자수익률이 하락함에 따라 대규모 자본투입을 통한 대량생산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고,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이 적체되는 등 기업가 정신의 퇴조현상이 뚜렷하며, 시장에서 상시적 구조 조정 부재와 공공금융기관의 과도한 개입 등으로 인해 역동성도 저하되고 있다" 했다. 그는 끝으로 한국은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으로 “△노동은 생산가능인구 하락 저지(출산율 제고), 여성 및 고령자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이민정책 등 외국노동자 문제 제고 △자본은 지식재산 생산물 투자확대 △총요소 생산성은 노동생산성 향상, 인적자본 투자 확대, R&D 투자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뉴노멀 시대의 산업정책으로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발전, 첨단기술 선도형 전략으로 전환, 기술혁신 친화적 규제시스템 구축, 기후문제 능동적 대처, 제조업의 소프트화, 글로벌 고부가가치 전략 추진, 여성 및 고령자 친화적 산업환경 구축, 경제민주화와 역동성 강화, 사회 전반의 투명성 제고, 기업경영의 선진화, 사회적 대화 촉진, 시장 친화적 산업정책,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 구조 모색 등으로 산업정책 방향 전환””을 주문했다.
- 2016-06-14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