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대의 눈물 버튼을 누른 드라마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다. 점점 개인화되는 시대에 옛 유물처럼 여겨지던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소환해낸 가족드라마.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폭싹 속았수다’,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가족
“애순아, 엄마가 가난하지 니가 가난한 거 아니야.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광례(염혜란)가 어린 딸 애순(김태연)에게 하는 그 말은 1950~60년대 엄마들의 마음을 담았다. 본인은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았지만, 자식만큼은 배불리 먹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다. 제주의 해녀가 되어 험한 물질을 하며 생계를 이었던 광례는 겨우 스물아홉의 나이에 생을 등진다. 엄마는 푸지게 살라 했지만, 백수나 다름없는 새아빠와 배다른 동생들의 생계를 어린 나이부터 감당해야 했던 애순은 소처럼 밭을 일궈 가족들을 건사한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도 접고 시장통에 나와 양배추를 팔아야 했던 애순(아이유)이었지만, 무쇠처럼 서서 기댈 수 있게 해준 관식(박보검)이 있어 그 모진 삶을 버텨낸다.
부부가 되어 아이들을 낳아 가족을 이룬 애순과 관식은, 세상은 거칠었어도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서로 보듬고 기대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1970년대 부모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금명(아이유)과 은명(강유석)은 부모의 그늘 아래서 자라나 1980~90년대에 청년기를 지낸 현재 중장년 세대의 삶이 묻어난다. 부모의 없는 살림을 팔아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고, 엄마가 못 이뤘던 서울살이나 대학 생활 같은 꿈을 이뤄낸 세대다. 그들이 살 만해지는 동안, 그들의 그늘이 되어주었던 부모의 몸은 부서져 나갔다. 무쇠 같던 관식은 닳아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에서 따온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금명과 은명 같은 현세대가 애순과 관식, 그리고 그 윗세대인 광례에게 보내는 헌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광례-애순-금명으로 이어지는 3대의 삶을 1950년대부터 199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 그려낸 ‘폭싹 속았수다’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가족의 달라진 양태를 담아낸다. 광례와 어린 애순이 살았던 1960~70년대는 딸이라는 이유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차별이 있던 시대다. 하지만 애순과 관식이 결혼해 가부장적인 시댁에서 독립해 살아가는 1980년대에 이르면,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긴 해도 서로를 존중하는 깨인 부모들 또한 있던 시대다. 그리고 금명이 대학에 들어가고 사랑을 하고 결혼하는 1990년대 이후의 삶은 핵가족화되어 개인의 삶이 가족만큼 중요해진 시대를 보여준다. 이처럼 ‘폭싹 속았수다’는 가족드라마의 틀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 시대극 요소를 넣음으로써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가족의 양태를 들여다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세대의 입장만 두둔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세대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관점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세대가 달라 가족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느 세대의 잘못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세대가 살아내야 했던 모진 시대에서 비롯됐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은 그래서 후세대가 기성세대에게만 건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버텨낸 전 세대에게 건네는 말인 셈이다.

현시대와 공명하는 가족드라마들
한때 가족드라마는 우리네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지만, 현재는 유통기한이 지난 장르처럼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된 건 1인 가구가 전체의 30%를 넘어서면서 과거 같은 대가족이나 가부장적 가족의 삶이 현실이 되지 못한다는 점과, 그만큼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현실의 변화에 과거의 가족드라마들이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KBS 주말드라마는 여전히 옛 가족드라마의 문법, 이를테면 출생의 비밀이나 신데렐라 스토리, 고부갈등 같은 것을 반복함으로써 갈수록 시청자의 외면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는 기성 가족드라마의 게으름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가족 서사 자체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폭싹 속았수다’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그 가족 서사 안에도 당대의 현실이었던 고부갈등이나 남녀차별 같은 소재들이 들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시대의 한 장면일 뿐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시대 전체를 내려다보는 이 드라마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부모 세대의 삶을 현재와 병치해 비교하고 또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의 개인화된 삶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그럼에도 자신이 존재하기까지 가족의 헌신이 있었다는 걸 빼놓지 않는다. 이것이 이 가족 서사가 전 세대의 눈물 버튼을 누른 이유다.
‘폭싹 속았수다’가 그러하듯 최근 몇 년간 기존 가족드라마의 서사를 뒤집는 시도가 있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남남’, ‘조립식 가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라고 뭐든 다 알 것처럼 치부하며 함부로 구성원을 대하면서 쌓인 오해를 그 인물들 하나하나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추적함으로써, 드디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 가족 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곤 했던 과거의 가족 형태가 이제는 개개인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남남’은 자유로운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딸을 통해 전통적인 모녀 관계의 틀을 뒤집음으로써 혈연이나 핏줄이 아닌 ‘남남’ 같은 개인으로 구성되는 가족을 새롭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갑작스런 친부의 등장에 함께한 경험과 관계가 부재한 그를 ‘아버지’라 받아들이지 않는 대목이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아버지가 되어가는 친부의 모습은 우리 시대 가족의 달라진 개념을 보여준다.
중국 드라마 ‘이가인지명’을 리메이크한 ‘조립식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은 핏줄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봄을 나누면서 형성된 가족이다. 오히려 이 가족의 위기는 갑자기 나타나 ‘너는 내 자식’임을 강요하는 생물학적 부모들로 인해 발생한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함께 살아가는 ‘조립식 가족’의 서사는 우리 시대에 진짜 가족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중심 테마는 가족
실제로 대가족은 해체된 지 오래고 핵가족이 일반화되었다. 1인 가구 또한 급증하고 있고, 비혼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으며, 다양한 성 정체성과 이로 인한 새로운 가족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제도 밖 동거와 양육의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정상 가족’의 범주로 굳어진 가족드라마는 더 이상 현시대에 공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개개인으로 흩어져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가족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 중심 테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뿔뿔이 흩어져 있기에 더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이 가족일 수 있어서다.
본격적인 가족드라마는 아니어도 가족이라는 테마는 우리네 드라마의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고 있다. ‘나쁜 엄마’는 남편을 살해하고 아들마저 차로 치어 7세 아이의 기억으로 만들어버린 악당을 응징하는 복수극이지만, 돌아온 아들을 회복시키는 엄마와 고향 공동체의 따뜻한 가족 서사가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최근에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청춘이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애와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며 회복하는 서사가 자주 등장한다. ‘웰컴 투 삼달리’, ‘닥터 슬럼프’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청춘 로맨스가 이 작품들의 주 장르지만, 그 안에서도 가족의 테마는 빠지지 않는 중요한 서사다.

우리네 가족 서사는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디즈니+에서 방영돼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무빙’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을 잡아주는 건 이미현(한효주)과 김두식(조인성), 그 아들인 김봉석(이정하) 같은 가족의 끈끈한 사랑이다. 즉 우리에게 진짜 관심사는 슈퍼히어로가 지구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가족 서사에 대한 유별난 관심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같은 초능력 가족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초능력을 가진 가족이지만 저마다 현대병에 걸려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 평범한 여성이 들어오면서 가족애를 회복하고 초능력도 찾아가는 이야기다.
최근 쿠팡플레이에서 방영된 ‘가족계획’도 어려서 특수한 조직에 끌려가 혹독한 훈련을 받아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된 이들이 조직을 탈출해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가면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처럼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가족 서사는 ‘정상 가족’의 틀을 넘어 ‘대안 가족’으로까지 나아가는 새로운 서사로, 판타지든 스릴러든 어디에서나 등장한다.
우리 시대에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장르 속에서 새롭게 변주되며 드라마의 중심 테마로 자리하는 가족 서사를 보면, 과연 그 말이 온당할까 싶다. 우리네 정서 속에 존재하는 가족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해체된 건 아니다. 다만 달라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