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우리 전통문화을 계승하는 거리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악거리를 조성하는가 하면, 한양도성 길을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알리고 계승할 수 있는 거리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또한 최근 각종 개발 등으로 위기에 빠진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지키기에 대한 의견도 모았다.
◇ 돈화문~종로3가역 잇는 국악거리 조성 = 우선 2016년 개관하는 돈화문 국악예술당을 주축으로 돈화문에서 종로3가역까지 구간이 ‘국악로 문화지구’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이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국악로 활성화, 인프라 확충, 국악 창작역량 강화, 국악대중화를 목표로 구성됐다. 시는 우선 창덕궁 돈화문부터 종로3가역에 이르는 770m를 국악으로 특화하기 위해 주민의견 수렴을 거쳐 2016년 지구단위계획으로 국악로 문화지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문화지구로 지정되면 현재 인사동이나 대학로 문화지구처럼 관련 분야로 입점 업종이 제한될 수 있다. 돈화문에는 한옥 구조 국악전문공연장인 ‘돈화문 국악예술당’이 2016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국악예술당은 지상 1층, 지하 3층, 연면적 1800㎡ 규모로 건설된다.
시는 남산국악당부터 돈화문 국악예술당을 거쳐 북촌에 이르는 구간에 산재한 국악 인프라와 자원을 통합해 ‘남산∼국악로∼북촌 국악벨트’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춰 국악로에서 발굴한 국악명소, 상설공연, 국악행사 등을 묶은 국악 테마관광코스도 개발된다.
국악 교육 강화와 대중성 제고 등 국악 저변 확대 정책도 추진된다. 시는 신진 국악인 발굴·육성을 위한 창작경연대회를 열고, 시가 운영하는 ‘예술영재 교육지원사업’에 국악을 추가하기로 했다.
또한 국악 대중화를 위해 시는 초ㆍ중ㆍ고교에 국악강사 250명을 파견해 학생 16만7000명을 대상으로 국악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지역단위 어린이 국악오케스트라 육성사업도 시범 실시한다.
한문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가장 전통적 우리 문화인 국악이 새로운 한류의 축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존·육성하겠다”고 말했다.
◇ 한양도성 해설투어 프로그램 운영 = 서울시는 한양도성 해설투어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시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한양도성을 둘러보는 ‘도성길라잡이와 함께하는 한양도성투어’를 이달 초부터 운영하고 있다. 시는 이 프로그램을 연말까지 매주 일요일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다.
투어를 인솔하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는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 투어 코스를 따라가며 한양도성의 역사와 내력을 설명한다.
한양도성투어는 4개 코스를 주당 1코스씩 돌아가며 진행한다. 투어는 선착순 예약제로 운영하며 매회 정원은 80명이다.
투어 신청 접수는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 웹사이트(http://yeyak.seoul.go.kr)와 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에서 25일 시작됐다.
시는 또한 △한양도성 달빛기행 △한양도성 힐링투어 △성곽마을 투어 △한양도성 작은 음악회 등 한양도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음달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시는 이와 함께 겨울철 중단됐던 한양도성 회현자락 발굴을 재개키로 했다.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 발굴 예정지는 남산의 옛 식물원 부지부터 성곽까지 약 278m 구간이다.
시는 이번 발굴 작업에서 한양도성 성곽 터를 찾아내고 생성·훼손 과정에 대한 규명뿐만 아니라 회현자락에 남은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함께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시는 발굴 중에도 일반인의 기존 등산로 이용은 가능하지만 주차장 이용이 일부 제한된다고 전했다. 시는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 보존·정비 및 공원조성 설계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발표(發表)를 바탕으로 한양도성 복원과 공원 조성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남산 회현자락(숭례문∼옛 남산식물원)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외에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안중근 의사 기념관, 분수대 등 여러 역사의 현장을 품은 공간이다.
◇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보존 vs 개발 의견 팽팽 = 서울 인사동 전통문화거리를 두고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개발로 지역경제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인사동 ‘주가로변’ 일부 구역에 호텔 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 업체가 실제 고층 호텔 건설계획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는 지난 1월 열린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인사동의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문화지구변경안)을 상정했다.
문화지구변경안은 인사동길 20-3ㆍ20-5ㆍ22-6 등 인사동 문화지구 내 24개 필지를 인사동 문화지구의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인사동 사거리 북쪽(안국역 방면) 인사ㆍ관훈ㆍ낙원동 일대는 2002년부터 지구단위계획상 인사동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높이가 최대 4층으로 묶여 있고 업종도 제한된다.
인사동 사거리 남쪽(종로 방면)의 경우 1978년 ‘공평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지만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인사동문화지구 관리계획에 따라 업종 제한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가로변으로 지정된 구간은 전통문화 관련 업종만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시와 종로구가 상정한 문화지구 변경안대로 주가로변에서 제외되는 곳은 업종 제한이 풀려 그동안 금지된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시는 작년 8월 확정한 ‘공평 도시환경정비계획’에 따라 공동개발구역에 속한 주가로변 구간의 업종제한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원 서울시도시계획국장은 “작년에 변경한 공평도시환경정비계획은 기존의 큰 구역을 소규모로 쪼개 인사동 등 주변 일대의 특성에 맞춰 정비하는 계획”이라며 “다만 해당(인사동길 인근) 부지는 기존 정비계획에 따라 건물주의 동의가 상당히 진행돼 (개별 필지로 쪼개지 못하고) 공동개발구역으로 묶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통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서울의 대표 전통문화거리인 인사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주가로변 제외 대상에 포함된 인사동 일부 부지에는 업종제한 해제를 예상하고 호텔 건설계획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사동 지역사회는 전통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강하다. 올 초 열린 심의위원회에서 문화지구변경안은 민간위원인 윤용철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장의 문제 제기로 일단 보류됐다. 윤 회장은 “호텔 사업에 대한 지역의 우려를 전하며 추가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아직 재심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시와 지역사회가 어떤 합의를 이뤄낼지 주목된다.
어느덧 40년. 명창 김영임씨가 국악에 몸담은 세월이다. 20년 전부터는 효(孝)를 주제로 한 공연을 펼치며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그동안 자그마치 100만여 관객이 그의 소리를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울고, 덧없는 인생역정이 떠올라 울고, 자식들이 헤쳐가야 할 인생 험로가 근심스러워 운다. 관객 모두가 자식이자, 부모이기에 더욱 깊이 공감한다. 그렇게 한껏 눈물을 쏟아내면 용솟음치는 카타르시스와 그 뒤로 잔잔히 우러나오는 애뜻함이 있다. 그래서 김영임의 소리는 효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한 예술인이 20년 가까이 한 주제로 콘서트를 했다면 이젠 눈 감고도 레퍼토리를 술술 외울 정도로 익숙해졌을 터.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위기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경계하듯 김영임씨는 그날그날의 공연이 마지막인 것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놓는다.
“무대에 설 때마다 오시는 분들에게 감동이나 관객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드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거든요. 젊을 때에는 부족해도 예쁘게 봐주셨지만,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더 좋은 소리를 내야 하고 관록이 드러나야 하죠.”
오는 5월10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효 대공연-소리’에서 깊은 감동을 선사하게 될 그녀를 만났다.
-국악인으로 40년을 사셨다. 효 공연은 초연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관객들의 흐름도 보일텐데요.
우리 소리라고 하면 연세가 많은 분만 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우리 공연은 어린아이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이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어요. 효 이야기를 담은 우리 소리와 연극이 함께 어우러진 공연이에요.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고, 부모는 자식을 기르면서 헤쳐온 길을 돌아보게 되죠.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마음가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수원시는 효의 고장이잖아요. 5월이면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달이고. 공연의 컨셉과 가장 잘 맞는 거죠. 우리가 항상 부모님에게 잘 해야겠지만, 늘상 마음 뿐인게 우리의 걱정이잖아요. 공연이 가정의 달인 5월에 열리는 만큼 여러분들에게 오랫동안 우리 소리를 지켜온 김영임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딸이자 며느리, 어머니, 또는 아들, 사위, 아버지의 삶을 거쳐가게 되는데 공연을 통해 효에 대한 생각과 ‘김영임이란 사람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구나’하는 감동을 주고 싶어요.
-수많은 공연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 텐데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주일 동안 14회의 공연을 소화했던 적이 있어요. 하루에 2회씩 연달아 무대에 올랐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거든요. 그렇게 마라톤 공연을 해도 다시 무대에 설 힘이 나는 이유는 제게 선물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죠. 공연마다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광경이 한 장면씩은 꼭 있어요.
한번은 어머니를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이불을 싸서 휠체어를 태워서 오시는 며느리나 딸이 있었어요. 경희대학교 명예의전당에서는 3일간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날에는 비가 엄청나게 왔어요. 더욱이 그곳은 주차장에서 공연장을 오려면 언덕을 올라와야 해서 객석이 많이 빌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수많은 자식들이 어머니를 들쳐업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옆에서는 며느리나 딸들이 우산을 받치고요. 그날도 객석 5천석을 가득 매웠어요. 그런 광경을 보면 제가 먼저 무대 뒤에서 감동을 받죠.
-해외 공연요청도 많이 다니시죠?
네. 198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죠. 카네기홀은 모든 아티스트가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잖아요. 그곳의 3천석을 다 매웠는데, 레드카펫에 리무진에서 한복을 입고 내리는데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공연이 스케일이 크다보니 외국에서 개인적으로 섭외가 많이 들어와요. 지금은 LA,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영국 로얄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 적도 있는데,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니까 파란 눈의 단원들이 바이올린 활대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해줬어요. 무채색 계열의 오케스트라 의상과 화려한 색감의 한복이 보여주는 대비는 소름끼치도록 멋있었어요.
-남편 이상해씨도 함께 무대에 오르고 계시는데, 파트너로서의 남편 이야기도 해주시죠.
콘서트 내용은 가족 이야기거든요. 사실 효 공연을 시작하게 된 것도 남편의 아이디어였어요. 남편이 연예인이다보니 관객들이 먼저 원하죠. 제 남편도 어르신들을 위해 무대에 서야겠다고 결심해 한 무대의 주인공이 됐어요. 처음엔 서먹하고 창피했지만 이제는 익숙하죠. 가끔은 나보다 이상해씨가 더 박수를 많이 받아요. 잊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주는 올드팬에게 항상 감사하죠.
최근에는 대중에게 그간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에 무료 공연을 하고 있어요. 형편 탓에 공연장에 올 수 없는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해요. 제게 이런 일을 하도록 한 것도 남편이에요. ‘재능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돈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공연을 해드릴 수 있지 않느냐’하는 동기부여를 계속 주거든요. 저도 이제는 환갑인 만큼 앞으로는 재능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국악인의 길을 가게 된 강렬한 계기가 있을텐데요?
어릴 적부터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 좋아했던 가수가 은방울자매, 이미자 등이었죠. 집안에 국악을 즐겨듣는 사람이 없어서 민요는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러다 언니와 함께 여성국악극단의 공연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고 국악에 빠져들었죠. 하지만 부모님은 ‘쟤가 커서 뭐가 되려고…’하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옛날엔 공부 웬만큼 해서 좋은 남편 만나서 결혼하는 걸 바람직하게 여기는게 어른들의 생각이었거든요.
오빠가 미국에 있었는데, 노래 못하게 미국으로 보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어요. 결국은 큰언니가 수원으로 시집을 가면서 저를 데리고 갔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까 시집 보내려고 문화센터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꽃꽂이도 가르쳐줬거든요. 그런데 그게 하나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노래만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집에서 노래만은 안 되고, 무용을 가르치는 걸로 결론을 냈지만, 무용을 하면서 경기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가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19세 때였죠. 제가 무용은 14세부터 했는데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창부타령, 한강수타령 등의 노래가 나오는데 몸에서 소름이 끼치는 거예요. 그때 경기민요 명창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로 바꾸게 된 거예요.
노래를 하기까진 수원에 계시던 큰스님이 큰 역할을 하셨죠. 언니네 집에 붙들려가서 가위로 머리카락이 다 잘릴 지경이었는데, 마침 언니가 불교신자였어요. 큰 스님이 집에 오셨을 때 언니가 ‘동생을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더니 그 스님이 말하길 ‘동생은 보살님 마음대로 하는 동생이 아니다. 동생이 하고싶은 대로 놔둬야 한다’고 얘기해 준거죠. 그때 언니가 저를 놔준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제가 있게 됐죠.
-한때 가수로서, 연기자로서 활동할 기회도 많았는데 왜 굳이 국악을 고집해오셨나요?
실제 드라마를 했었고, 광고도 출연했어요. 한때에는 가요를 하라는 제의도 있었죠. ‘동백아가씨’를 작곡한 고(故) 백영호 선생님이 ‘제2의 이미자로 키워주겠다’는 제의를 해서 음반을 낸 적도 있지만, 결국 내가 갈 길은 ‘소리’였어요. 소리를 하면 온 몸에 전율이 오고, 잠을 자도 환청이 들리고, 24시간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일상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문하생들을 보면 ‘너희는 왜 수업이 끝나고 책을 덮으면 거기서 끝나니?’란 말을 자주 해요. 화장실을 가든, 설거지를 하든, 차를 타고 어디를 가든 노래가 입에서 맴돌아도 노래가 될까말까 한데…. 이건 전공자에게 하는 얘기거든요. 아마추어라면 노래 한자락 배우고 나면 끝이지만, 이 노래로 인해 우리 국악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들은 달라야 하잖아요.
-김영임씨의 국악은 옛것이 아닌 현대적인 느낌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이라면 반드시 쪽지고 개량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대에서만 완벽하게 보여주고, 찢어진 청바지 입는 것도 좋아해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것도 좋아해요. 다만 노래방에 가는 건 싫어해요. 막힌 공간에서는 노래가 잘 안되거든요.
-개인적 취향의 문제군요.
네. 저는 국악도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 수 있는 양면성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는 소양도 키워야 해요. 때로는 무대 분위기에 맞게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옷도 입을 줄 알아야 해요. 그게 똑같지가 않거든요. 제가 나이 60세여도 꼭 비녀를 찌르고 개량한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저는 청바지도 좋아하고, 래깅스도 입어요. 다만 무대에서는 쪽머리를 짓더라도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어요. 40년간 사극만 한 전문적인 선생을 모셔와서 완벽하게 기름 발라서 머리를 하죠. 화장도 전문가에게 맡기고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야 프로페셔널한 공연을 할 수 있죠.
-국악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일들이 선행돼야겠지만 스타도 많이 발굴돼야 한다는 것 같아요.
우선 어린 국악인을 키우는게 시급하단 생각이 들어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돈과 관계없이 어린 학생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교육시키는 사업이거든요. 또 제가 올해 상반기부터 국악예고를 출강나가고 있어요. 자청해서 나가는 건데 대학교는 8년 정도 출강하다가, 어린이 저학년이 중요하단 생각이라 지금 국악예고도 나가고 있어요. 시흥에 있는 국악예술고등학교. 국립이라서 국립전통예술 고등학교예요. 후진양성을 위해 길을 많이 열어놓고 싶어요.
경기일보 박성훈 기자 pshoon@kyeonggi.com
‘내일’을 키우죠”
베이비부머 귀농의 정석 전북 고창의 송인보씨
목에 힘주고 자신감 넘치던 삶은 세월에 밀려 점점 작아져만 갔다. 도시생활을 툭툭 털어버리고 선택한 고창행. 우리 부부는 따뜻하게 맞아준 이곳에서 허리 꼿꼿이 펴고 농사짓는 포도와 복숭아를 선택했다. 몸은 힘들지만 강소농을 꿈꾸는 새 인생이 즐겁다.
◇귀농 3년차, 몸은 축나고 수입은 없지만…= 지금은 여름, 할 일이 무지하게 많다. 과수묘목을 키우는 농부는 2년차에 나무를 얼마만큼 키우는가 하는 게 향후 농사의 갈림길이다. 풀과 전쟁하고, 벌레와의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친환경을 고집할 경우에는 더더욱 힘든 싸움이 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포도밭에서 일하다보면, 복숭아밭 주변 개암나무는 어느새 풀로 덮혀 있다. 회양목 잡초라도 뽑으려 하면, 포도넝쿨은 엄청 자라있기 일쑤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한낮에 잠깐 쉴라치면, 무슨 일이 또 생기는지 컴퓨터를 켜고 글을 올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고창에 귀농 또는 귀촌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담바우농장에도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 귀농에 대한 자문을 듣겠다고 할 때면 아직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귀농해서 2년차에 바로 수입을 짭짤하게 올리는 사람도 무지 많은데, 햇수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몸만 축내고 수입 한 푼 없는 놈에게 자문이라니….
하지만, 담바우의 내 자신이 귀농을 했고, 고창의 많은 귀농인들과 인연도 쌓으면서 느낀 점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귀농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다 보니 귀농에 관한 내 개인적 소견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서울출신이고, 서울과 그 변두리지역(좋은 말로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소위 ‘기역자를 보고 낫을 연상’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렇듯 우리도 그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왔다.
젊어선 종합상사 입사를 목표로 공부했고, 결혼해서는 출근시간은 알아도 퇴근 개념이 없는 것을 당연시 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문 닫을 거란 자만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40대에는 성질난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한다고 은행에서 대출받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며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다시 일을 벌이기도 했다. 50대 초반을 넘기면서는 사업을 다시 하자니 겁이 나고, 취직을 하려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버티다보니 자연스럽게 벼룩시장 구직란도 기웃거리게 됐다. 이런 생활의 반복을 옆에서 지켜보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에게 겨우 한다는 말이 “여보, 우리 시골 내려가서 살래? 당신 생각은 어때”라면서 인터넷 검색어에 ‘귀농/귀촌’을 치고는 엔터키를 팍 눌렀다.
어디서 무슨 귀농박람회를 한다거나 또 어디서 도시민유치 설명회를 한다고 하면 찾아가고 귀농책자와 조그만 찹쌀떡봉지 하나 받고는 터덜터덜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이곳 고창으로 오게 됐다.
◇따뜻하게 맞아 준 고창에서 발품 팔아가며 정착 = 남들에겐 “지도를 펴놓고 손바닥에 침을 탁 쳤더니, 침이 고창에 떨어져서 왔노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연히 들른 고창에서 귀농귀촌협의회와 기술센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의 귀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나가다 들린 부부에게 빈집을 소개해 준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그분들은 마침 빈집이 있어서 소개해 주었겠지만), 처음 보는 분들의 따뜻한 애정이 우리에게는 감동이었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그렇듯 떠밀리듯, 흘러들듯 귀농(?)을 했다. 처음엔 귀농이라고 하자니 농사기술도 없고, 몸도 부실하고, 경작할 토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귀촌이라 하자니 돈도 없는 주제에 염치도 없었다. 그래서 귀농을 했다고 할지, 귀촌을 했다고 할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귀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거의 6개월을 우리 부부가 정착할 수 있을만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고창에 온지 6개월 후인 2011년 11월에 선운사 뒤편 담바우라는 산속마을에 3000평의 밭을 매입했다. 또 어떤 작물을 택할지를 결정하기위해 고창의 선진농업인들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많은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포도 한그루에 2000송이를 맺는 유기농포도의 장인이며, 대한민국 신지식인인 도덕현 선생님을 멘토로 친환경시설포도와 노지 복숭아를 재배하게 됐다.
◇‘왕년’은 중요하지 않다, ‘내일’을 보라 = 우리가 귀농 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특히 도시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왕년의 자기스펙에 자만하고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들이나 프랜차이즈의 유혹에 솔깃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경청하기를 바란다.
첫째, 귀농하고자 하는 지역을 먼저 확실히 정해야한다. 먼저 발품을 팔고, 그 지역의 기술센터나 귀농상담소를 찾아봐야한다. 정착지를 선택하는 것도, 향후 어떤 작물로 먹고사느냐 만큼 중요하다. 지원이 많은 지자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수 있고, 지원이 적은 지자체는 귀농해 봐야 찬밥일 뿐 먹고살기 힘들 수도 있다.
수도권 주변 땅은 거의가 서울의 있는 사람들의 소유이고, 기획부동산이 훑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정해져 있다면, 거기에 맞춰 지역을 찾아야 한다. 무화과를 심으려면, 장류를 제조하려면, 소를 키우려면 어디가 좋을까? 복분자를 짓고 싶다면 고창을 우선순위로 두듯이 말이다.
둘째, 집이나 땅을 먼저 사지 않는 게 좋다. 100여 평이 넘는 대지위에 그럴듯한 기와지붕의 농가주택이 3000만~4000만원이라면 도시인 개념에선 “우~와, 싸다”이겠지만 그 집을 중심으로 활동범위의 제약을 받게 된다. 집주변에서 땅이 없다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먼저 전세든 월세든 아님 공짜든 거주할 집을 구하는 게 첫 번째지만 사는 건 심각하게 고려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귀농 후 발품을 팔며, 매입이든 임대든 땅을 먼저 알아보는 게 집을 매입하는 것보다는 우선일 것 같다.
셋째, 작물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 가장 안전하다. 고창이라면 수박, 복분자, 고추 등 일단은 수매가 확실한 작물이 좋다. 남들이 안하는 것을 했다가 만약 수매가 안 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수익성이 아무리 좋아도 10개를 생산해서 3개만 판
다면 문제다. 때문에 농사지을 땅의 날씨, 바람의 방향, 주변 환경, 땅의 성질, 멘토의 확보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용인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고창에서 땀 흘려 가족농사를 짓는 성은주 목사님은 “농사에는 하층농사, 중층농사, 상층농사가 있다”고 우스개를 하곤 한다. 하층농사는 고추, 수박, 고구마, 양파 등 온갖 과채류를 지칭하는데 이 작물들은 바닥을 박박 기며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것이다. 중층농사는 블루베리, 복분자, 버섯, 아로니아 등으로 이건 서서 허리를 약간 숙이고 농사를 짓는다. 상층농사는사과, 배, 복숭아, 감, 포도 등 온갖 과수류를 말하는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농사를 짓는 것을 빗댄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상층농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귀농 3년차인데 아직도 수입이 없고, 돈만 나간다. 거품은 많이 줄었지만 농촌 살림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생활비가 있다. 남들이 복분자를 몇 킬로그램 팔아 얼마를 벌었다고 말하면 괜스레 힘이 빠지고 주눅이 든다. 또 예측 못 할 기후조건에 한순간에 성목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의 소득을 바라고 하층농사를 택하면, 30~40년은 기본인 기존 원주민의 발끝만 따라가야 한다. 몸 고생은 장난 아니게 힘들고, 항상 몸으로 때울 뿐 향후 미래소득이 지금보다 나아지진 못한다. 이렇게 힘들다 보면 집에 계신 사모님께서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는 고추, 저기는 오디, 나머진 감나무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더 힘들 수도 있다. 작물의 선택은 신중해야한다.
◇작지만 강한‘강소농’이 해답이다 = 넷째, 강소농을 꿈꿔야 한다. 땅의 크기는 상관없다. 재배 면적이 크면 수입이 배로 생기겠지만, 인건비도 배로 나가고 만약 잘 안될 때는 손해도 곱절로 볼 수 있다. 작지만 강한, 작지만 알찬, 작기에 덜 힘든 강소농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착 후 교육을 잘 받고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귀농과 귀촌을 같이 생각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센터를 활용한 각종교육과 멘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진정한 강소농의 꿈을 실현하기 바란다. 누가 뭘 심어 얼마를 벌었더라는 풍문들은 무시해야 한다.
다섯째, 지원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귀농하는 사람들 중에 “고창에 오면 뭘 주나요?” “돈은 얼마나 줘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도시에서 시골 오는 게 다 자기 개인사정 때문이지, 시골에서 오라고 애걸하는 건 아니다.
지원을 목표로 사업을 하게 되면, 그래서 자신입장과 상관없이 지원 사업을 받게 되면 결국엔 자부담금액은 날아가고 융자부분은 빚으로 남게 된다. 열심히 하다보면 지원받을 기회도 온다. 지원이 목표가 되면 안 될 것이다.
·귀농 전 거주 지역: 경기도 수지
·귀농 전 직업: 기업 퇴직 후 자영업
·귀농 결심동기: 노후준비
·귀농 선택작목: 복숭아, 포도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만 55세
·귀농지 선택사유: 농업특화도시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땅 3000여평(1억원), 집 건축비용 1억원
·현재 영농규모: 포도하우스 800평, 복숭아 1000평
·연간 수익: 아직 없음(내년 3000만원 예상)
정부는 지난해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고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고용이 안정되고 전일제와 비례한 임금·복리후생ㆍ사회보험이 보장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야심차게 제시한 시간선택제에 대한 경영계와 노동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게다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정부측 입장을 반박하는 노동계뿐 아니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경영계조차도 비용 부담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감’과 ‘부담’ 공존 = 재계는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에 대해 일ㆍ가정 양립문화 확산과 시간제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이 함께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또 실업률로 노동시장을 평가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고용률로 평가하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뤘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시간선택제는 일자리의 양적 확대를 넘어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을 통해 중산층 회복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시의 적절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해 기업들의 공감도는 높지만 이를 실행하거나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기업 비율은 상대적(20% 미만)으로 낮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3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일·가정 양립 관련 기업의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44.6%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의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응답했지만 채용을 실천했거나 채용 예정인 기업은 6.8%에 그쳤다. 또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기업도 10.7%에 불과했다.
시간선택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부정적으로 검토 또는 결정을 보류한 기업(33.8%)은 결정적인 이유로 ‘적합직무 부족’과 ‘업무연속성 단절로 인한 생산성 저하’ 등을 꼽았다. 물론 인건비 부담 역시 이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경영계 관계자는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시간제를 적극 수용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로, 이 같은 상황에서는 인건비 부담만 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 경총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확산을 위해 시간제에 적합한 직무 개발이 시급하며 동시에 생산성 저하에 대한 기업의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며 “시간선택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가 생산성 격차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동일 수준의 높은 임금 지급이 강제될 경우 특히 중소기업에서 더욱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질의 일자리 아니다… 우려도 커 = 노동계는 정부의 시간선택제에 대해 “용돈 벌이용 알바에 불과하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대비 50%가 채 안되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평균 근속기간도 비정규직보다 낮아지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결국 비정규직을 양산하라고 사용자들을 부추기는 데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라며 “진정 노동자, 특히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면 정부가 먼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보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해 경력이 단절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저임금이 강요되는 시간제 일자리의 열악함을 정부가 거짓 홍보로 은폐하려 하고 있다”며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와 청년층에게 ‘실업이냐, 시간제냐’를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지속적 정규직 채용을 통해 민간을 선도하겠다고 공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근로 조건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ㆍ확대하고 있다”며 “부천 방문간호사 사례에서도 보듯이 시간제 일자리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총은 “시간제근로의 확산을 위해서는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문제 해결은 물론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한 고용 유인을 제공하는 투트랙(two-track) 접근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노동시장 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인력 활용의 유연성 제고가 가장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현대자동차가 신입사원부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이중임금제’ 도입을 적극 추진한다. 이 제도의 도입은 사측의 임금피크제 적용과 노조의 퇴직금 누진제 제안의 주고받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돼 내년에 실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윤여철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은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빅3’와 BMW, 폭스바겐 등 선진 업체들은 이미 이중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선진 업체에서 이중임금제를 시행하는 것은 당위성을 갖췄기 때문인 만큼 우리가 노조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윤 부회장은 “이중임금제 도입이 바로 되지 않는다 해도 사측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준비 중인 이중임금제는 업무 분야에 따라 임금을 차별 적용하는 제도다.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의 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이중임금제는 현재 국내 대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연봉제와 비슷하다. 다만 기존 생산직 근로자들과 임금체계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이중’이라는 명칭이 쓰인다.
미국 빅3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이중임금제를 도입했다. 이중임금제를 통한 임금제도의 유연화는 이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이 됐다. 고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고용 확대’라는 ‘3박자’를 얻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GM과 포드는 2011년 고임금 근로자의 퇴직으로 생긴 여유 비용을 통해 저임금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을 3달러 인상했다. 이는 고임금 근로자의 기득권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 간의 상생도 이룬 사례다. 현대차는 중국 충칭에 4공장 설립 등 해외 생산물량이 크게 늘면서 해외 가격 경쟁력이 실적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이중임금제는 근로자 간에 차별을 두는 제도여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 부회장은 노조의 통상임금 확대 시도를 우려했다. 그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법정 다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의 상여금은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있어도 법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상여금을 2개월에 한 번 100%씩 지급하고 있다. 단,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아 고정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013년 3월말 현재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보유자산은 3억2557만원이고 이중 금융자산은 26.7%인 8700만원이다. 50대 가구의 평균보유자산은 4억2479만원으로 금융자산은 25.5%,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보유자산은 3억2587만원으로, 금융자산은 17.3%에 불과하다. 가구주 연령대가 높을수록 금융자산비중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이제 50~60대가 된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최근에 정년퇴직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는 60세 정년시대가 도래했지만 현재 근로자의 평균퇴직연령은 53세로 은퇴 이후에도 30년 정도의 삶이 남아 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등 노후생활을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혜택을 누리는 은퇴자는 많지 않다.
얼마 안되는 금융자산을 가지고 30년간 노후생활을 하게 될 은퇴자를 위한 자산관리는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자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시장상황에 맞는 자산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를 정기적으로 조정하고 관리하는 적극적인 자산관리가 필요하다.
KDB대우증권이 발표한 주식, 채권, 예금, 부동산, 금 등 5가지 주요투자자산의 2003년 말 대비 2013년 말 기준 10년간 가격변화를 보면 주식과 금이 190%씩 올라 가장 성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채권은 69%, 예금은 50%, 부동산은 3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률이 높은 주식투자 수익률은 배당금이 포함된 ‘KOSPI Total Return Index’기준 으로 2003년 말 172.9에서 2013년 말 501.6으로 올랐다. 금 가격은 온스 당 415.45달러에서 1205.65달러로 10년간 790달러 상승했다.
그런데 수익률이 높은 ‘KOSPI Total Return Index’를 보더라도 차트는 장기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급락했다. 주식을 투자할 때에는 마켓 타이밍(주식시장이 상승할 것인지 하락할 것인지를 예상하고 투자 하는 행위)에 따라 수익률은 천양지차인 것이다. 실물자산인 금 상품 투자도 동일하다. 때문에 일반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워렌 버핏 회장도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들은 여러 종목을 한데 묶은 펀드에 간접투자하거나 인덱스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가 직접투자 또는 간접투자를 할 경우에는 유능한 컨설턴트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은행, 보험, 증권 등 모든 금융회사들이 자산관리, 은퇴설계 컨설팅서비스를 하고 있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조언해 주고 있다. 은퇴자들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금융 컨설턴트를 찾아 자산관리를 효과적으로 해 나가면 좀 더 윤택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봄 축제 일정
봄을 맞아 봄 축제 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4일 각종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봄 축제 일정'과 '나들이 계획'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13일 기상청은 올해 벚꽃이 이달 27일 제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은 4월1~12일, 중부지방은 4월7~11일, 경기북부와 강원북부 및 산간지방은 4월10일 이후에 개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벚꽃은 개화 후 만개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봄 축제 일정 가운데는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추억의 그때 그 놀이'와 같은 기간 전남 구례군의 '구례산수유꽃축제' 등이 있다.
충남 서천군에서는 22일부터 4월 4일까지 '동백꽃 주꾸미축제'가 열리고 대구 달서구는 21일부터 4월 14일까지 '대구 이월드 야간 벚꽃축제'를 준비해놓았다.
서울 교외를 중심으로는 2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비교적 길게 진행되는 경기도 양평군의 '2014 양평 딸기체험 축제'와 3월 22일부터 5월31일까지 경기 가평군이 실시하는 '아침고요수목원 야생화전' 등이 봄 축제로 갈 만한 곳이다.
이밖에 한국관광공사는 봄을 맞아 벚꽃, 산수유, 유채꽃 등 봄꽃 축제 홍보를 위해 '2014 봄꽃지도'를 선보이는 등 봄 축제 일정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봄 축제 일정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봄 축제 일정 맞춰 꼭 가야지", "봄 축제 일정, 봄만 되면 마음이 설렌다", "봄 축제 일정, 연인과 함께하는 축제 즐기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난다. 새싹은 공기 중으로 나와 광합성을 작용을 할 수 있는 파아란 잎사귀를 만들고 땅속으로는 뿌리로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 물기가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영양성분을 빨아들이며 필요한 영양소를 빨아들이어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그런데 그 새싹을 피우는 종자 즉 씨 속에는 효소가 움츠린 체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일단 효소가 공기 중으로 나오거나 빗물이나 물 등에 노출이 되면 효소로서의 활동을 하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고 만다. 하지만 씨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 속에 가만히 있게 되면 몇 백 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살아서 활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뱀이나 곰처럼 살아서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동물처럼 말이다.
그래 효소를 냉동건조하여 보관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나도 효소로 이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액상으로 존재하는 경우 냉장고에서는 몇 달까지 보존이 가능하기도 하나 대부분 효소들은 죽게 되며 효소의 활성이 떨어진다.
우리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효소들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죽고 만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미생물들이 만들어 내놓는 효소들의 종류는 대략 6000여 가지가 있으며 그 수는 수백 조에 해당할 만큼 엄청나게 많다.
이들이 하는 역할도 매우 다양하여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들 효소들의 작용이 멈추거나 또는 효소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앓게 되거나 또는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끊임없이 효소를 만들어 낸다. 어떤 효소들은 그 필요성이 떨어져 더 이상 만들어 내지 않아서 그 기능이 퇴화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릴 적부터 우유를 먹어 왔다면 우유 속의 젖당(유당)을 분해하는 효소들이 꾸준히 만들어질 수 있으나 오랜 기간 우유를 먹지 않아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퇴화되어버린 상태에서 우유를 마시면 설사나 복통 심한 경우 출혈을 일으키게 되는 유당불내증이라는 병을 유발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유제품이 함유된 식품을 먹을 때 꼭 락테이스라는 효소를 함께 먹어주어야 한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다름 아닌 효소인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태아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는 아직 우리 몸의 소화기관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아직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단백질이 분해된 아미노산중 하나인 페닐알라닌을 산화하여 타이로신으로 만들어주는 효소가 체내에 없다면 보통 식사를 하였을 때 이 아미노산이 뇌에 축적되어 뇌의 기능을 떨어뜨려 저능아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같은 효소가 만들어지지 못할 때에는 페닐알라닌이 함유되지 않은 식사를 해야 하는데 매우 힘든 일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식품업체에서 이런 환자 2000여명을 위하여 별도의 특수 처리된 밥을 만들어 제공을 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회사로서는 몇 십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더 성장하면서 소화기관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면 이런 문제는 해결이 된다. 그러나 잘 모르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아이의 미래에 불행을 안겨다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효소가 우리 몸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효소는 우리 인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먹는 식품에서도 매우 중요한 반응을 하는 것이 효소인데 우리들이 즐겨먹는 발효식품들 이를테면, 김치를 알맞게 익혀 준다거나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의 원료 성분이 잘 분해되어 맛있는 맛을 제공하여 준다든지 막걸리나, 맥주, 포도주에서처럼 알코올을 만드는 것 외에도 특유의 향을 제공하는 역할을 대부분 효소들이 작용을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간장이나 요구르트, 치즈처럼 효소들의 작용에 의해 소화가 잘되는 성분으로 분해시켜 다양한 영양성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치매 환자의 가파른 증가에 맞춰 치매 조기 진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조기 진단지표 개발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1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치매 조기 진단지표 개발을 촉진하고 치매 연구를 위한 국가 인프라와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 대응전략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는 치매 병리 및 진단지표 개발 전문가들이 참석해 유전체, 혈액, 뇌척수액, 뇌영상 등을 활용한 치매 진단지표 개발의 국내외 현황을 살펴보고, 조기진단 개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과 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치매 임상진단은 신경심리검사도구(MMSE 등)에 의존하고 있으며, 확진에는 뇌영상진단(MRI, amyloid-PET 등)이 이용되고는 있으나 뇌위축(brain atropy)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이 가능하여 치매 조기발견은 어려운 실정”이라며 “발병 시기를 좀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지표를 이용해 조기 진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현재 우리나라는 급속한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치매의 사회 경제적 비용 증가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 치매 조기진단 R&D 인프라 및 연구정보 공유체계 미흡 등 치매 조기진단 및 예방‧치료제 개발에 관한 투자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번 전략토론회에서는 치매 바이오마커 개발 국내외 현황에 대한 기조발표(제1부)에서 치매 진단마커 개요, 유전체 진단지표, 혈액 진단지표, 뇌척수액 진단지표 및 뇌영상 진단지표 등에 대한 국내 기술개발 현황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패널 집중토의(제2부)에서는 치매 조기진단 개발기술에 대한 선진국과의 격차 해소 및 치매 R&D 국가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치매연구 민‧관 협력체계 및 인프라 구축을 통한 효율적 연구생태계 구축방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지난 2006년 특별계획구역 지정 이후 지지부진했던 지하철 1호선 서울역·숙대입구역 일대 후암동 개발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5층 이하로 묶였던 건물 높이는 평균 12층(최고 18층) 까지 높아지고 전체 구역도 3개로 분할돼 개발이 쉬워졌기 때문.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는 서울시는 지난 12일 열린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용산 지구단위계획 변경결정안’을 통과 시켰다.
시는 기존 대단위 개발계획을 수정해 후암동 특별계획구역 32만1282㎡ 부지를 3개의 구역으로 분할하고 7개의 획지로 구분할 수 있도록 획지분할 가능선을 추가했다. 1구역(동자동 7만300㎡)과 3구역(갈월동 7만9852㎡)은 각각 2개의 획지로 나누고 2구역(후암동 17만1130㎡)은 3개의 획지로 나눈다.
아울러 지금까지 최고 5층(20m) 이하로 제한됐던 건물 높이는 평균 12층(90m)까지 올릴 수 있게 했다. 다만 주변 경관과 인근 건물 높이 등을 고려해 기존 용도지역(2종 일반주거지역)은 유지하도록 했다. 이외 남산 조망권 확보를 위해 비워두는 공간인 통경축 5곳을 두도록 했다.
이에 후암동 주변 부동산시장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후암동 M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특별계획구역 내 빌라 급매물들이 이미 소진된 상태고, 최근 매물가격이 2000~4000만원 올랐다. 또 나왔던 매물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980년에 입주한 후암동 ‘후암미주’아파트도 특별계획구역 내 포함된 단지로, 작년 10~11월에 전용 62.78㎡, 63.44㎡가 각각 3억6000만원 선에 매매거래가 이뤄졌지만, 현재 매물가격이 4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서울역 주변 동자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동자동 A공인중개사 대표는 “기존의 나왔던 빌라 물건들이 매수자가 나서면, 매도자가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매물 가격도 전용 60㎡에 대지지분이 33㎡이하인데도 4억 원에 매물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갈월동 H공인중개사 대표도 “용산가족공원 조망권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의 물건이 오름세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다. 투자 문의가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전했다.
후암동 특별계획구역과 인접한 아파트들도 개발호재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 개발에 힘입어 주변 환경이 쾌적해 지는데다, 초고층 주상복합의 경우 구역 내 들어설 단지들보다 높은 층고로 탁트인 조망권이 비교 우위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 분양관계자는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은 개발을 통해 낙후됐던 주변 환경이 쾌적하게 탈바꿈하고, 인근에서 희소가치 높은 최고 35층의 초고층 주상복합인 만큼 개발 구역 내 형성되는 단지들과 비교시 탁월한 조망권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