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관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나?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역이 만주까지 넓혀졌을 것인데..’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검토하면 이것은 이루기 어려운 목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 간의 관계에만 주력한 신라, 백제와는 달리 고구려는 중국 왕조들을 비롯하여 만주의 여러 민족들을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 계보를 살펴보라고 하면 차범근과 함께 빠뜨리지 않고 등장할 인물이 있다. 스포츠 올드 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한국 축구 선수 계보는 일제 강점기 유일하게 올림픽(1936년 베를린 대회)에 출전한 김용식을 첫머리로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에 이어 이번 호의 주인공인 이회택(李會澤)을 거쳐 차범근 그리고
필자의 ‘버킷리스트 여행지’ 중의 한 곳은 영국의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엔 ‘비틀스’가 있기 때문이다. 통기타로 번안 곡들을 들으며 젊은 시대를 보낸 사람들. 소위 말하는 ‘팝송 세대’들은 여전히 올드 팝을 들으면서 스멀스멀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감성에 젖곤 한다. 젊을 적 추억은 팝송 음률에 남아 첫사랑을 그리워하듯, 명치끝을 아프게 꼭꼭 찌른다. 비
이번 호부터 우리의 역사로 돌아가자. 한국사에서 ‘최대의 위기’를 꼽는다면 어떤 사건일까? 한 국가의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란 일반적으로 국가멸망을 말하겠지만 보다 높은 차원인 민족말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역사에는 고대로부터 고구려의 수-당 전쟁, 몽고의 고려침공과 지배, 임진왜란, 한일 강제합방, 6·25전쟁 등등... 많다.
결론부터
러일전쟁이라면 국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이 먼저 떠올라 우리에게는 결코 유쾌한 사건이 아니다.
전쟁의 쟁점도 한반도라고 믿고 싶겠지만 서양 학계에서는 러-일 양국이 다툰 것은 만주라고 평가해 왔다. 지난 20~30년 전부터 ‘한반도’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지난 호에서 청일전쟁을 ‘일본과 이홍장 간의 전쟁’이라고 평한 바 있는데 러일전쟁
광복 70년을 맞아 우리의 근세사를 회고하면서 교훈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방송사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KBS는 7월 말 1894~1895년 청일전쟁에 관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전쟁은 조선에서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다툰 전쟁이다. 아산만에서 시작된 전쟁이 황해해전으로, 일본군이 평양전투에서 승리한 후 만주, 요동반도, 그리고 중국본토로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작업과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보 수집행위와 분석/판단능력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외우고 계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천재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암산능력은 컴퓨터를 이기지 못하고 암기할 것도 컴퓨터에 다 저장되어 있다. 오늘날 천재는 정보를
국제관계에서 애매모호한 표현을 ‘외교사령적(外交辭令的)’ 혹은 ‘외교적 수사’라고 한다. 외교관이 명확히 yes라고 하지 않으면, no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요구를 거절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다. 당연히 외교관들은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시중에 나도는 ‘혼자 사는 법’에 관한 어느 자기계발서는 무려 마흔여섯 가지의 과제를 제안한다. 목차가 온통 ‘~하기’로 빽빽하다. 하긴, 목록대로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 혼자 살기는 이미 성공적일지 모른다. 마흔여섯 개를 외우느라 지루할 틈이 없을 테니까.
나는 그 방대한 과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광야를 내달리는 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 현재, 스포츠는 경제와 함께 신생 대한민국이 압축 성장한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대한제국이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된 이후 한국인들의 스포츠 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으면서도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1920년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를 창립하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글 신명철 스포츠 평론가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