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하러 가세요? 점심이나 간단히?”
“점심 같이 먹자. 내가 살게. 나이 들어갈수록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대.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미리 생각해두렴.”
“네~ 12시에 제가 차 가지고 모시러 갈게요. 310동 도로에서 뵈어요.”
그렇게 만나 함께 낙엽 쌓인 율동공원을 산책하며 가을날 오후를 즐겼다.
K와의 인연은 2년 전쯤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65세 아들이 10년째 치매에 걸린 92세 노모를 위해 매일 밥상을 차리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요즘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벅차고 힘들다. 하지만 젊고 건강했던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처럼 ‘자물쇠가 있으면 반드시 열쇠가 있는 법’이니 힘든 면만 보지 말고 열쇠를 찾아보려 한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30년 지기 친구 K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결혼 전 동거해 아이까지 낳고 그렇게 불같은 연예와 출산의 과정을 거친 후 결혼을 했다.
K의 남편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데다가 잘난 여성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좀 고리타분한 성격의 남자였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그럭저럭 사는가 싶었는데 이 남자, 연애할 때는 느
4월 14일 동년기자단 2기 발단식이 열렸다. 지난 1년간 감동과 연륜이 묻어나는 글로 두각을 나타냈던 1기 동년기자 26명을 포함한 총 48명의 2기 동년기자단이 꾸려졌다. 각자의 인생과 삶의 철학은 다르지만, ‘동년(同年)’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게 될 그들이 첫 만남을 가졌다.
3월 1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 지원과 서류 심사를 거쳐 선발된 48
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
필자의 고교 동기동창들이 동창회를 창립한 것은 졸업한 지 13년째 되는 1975년 3월이다. 당시 L동문이 사장으로 있던 시내 S호텔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동창회는 첫 번째 행사로 바로 다음 달인 1975년 4월에 역시 같은 S호텔에서 제1회 동창회 바둑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때 후배인 프로기사 홍종현 4단(당시)에게 지도를 부탁하였으나 선약을 이유로
글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1945년 8월 15일, 한 사상가의 표현대로 ‘도적처럼’ 찾아온 해방은, 고통스러운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과 맞닥뜨리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준 이날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박탈당했던 모국어의 근원적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이때는 일제 강점기에는
광복 이후 출판시장은 1950년의 6·25,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 1972년의 10월 유신,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9년의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말미암아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많이 읽히는 책의 유형이 달라진다. 광복 이전이 암흑기였다면 광복 이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