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에 TV에서 영화를 하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 같았다. 처음엔 그 시간대에 열심히 재방되는 ‘애마부인’, ‘산딸기’, ‘뽕’ 같은 에로물 들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옛날에 서갑숙이라는 탤런트가 동명의 에세이집을 내서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제명을 차용한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때가 1999년이었고 서갑숙은 그 때문에 사실상 연예계 활동을 접어
히 식스(He 6). 1960~1970년대 미8군 무대와 이태원·명동 일대 음악 살롱을 격렬한 록 음악으로 장악하던 여섯 명의 청년(권용남, 김용중, 김홍탁, 유상윤, 이영덕, 조용남)이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거울과 같았던 그들은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세대의 거울 앞에 섰다. 중·장년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고, 낭만을 추억하는 그
잘 부푼 팝콘 같은 탐스러운 벚꽃, 어릴 적 병아리 떼 종종종, 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샛노란 개나리, 화전에 쓰이던 고운 분홍빛 진달래, 그 자태가 너무나도 우아한 자목련 백목련, 어느 향수 못지않은 향기로운 라일락, 거기에 쌀밥처럼 풍성해 보여 붙여진 이팝, 조팝나무 등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봄을 알리는 전령 꽃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즈음 우리는 계절
남편을 잃은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두 딸과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고 있던 그때 집 안에서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그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빈정거림을 참아가며 모았던 그 그림들. 그리고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뒤 다시 찾아온 인생의 위기에서 그림은 또다시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판교에서 만난 하효순(河孝順·66)씨의 이야기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 야구 KBO 리그 35번째 시즌이 지난 4월 1일 시작했다. MBC 청룡과 삼미 슈퍼스타즈 같은,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구단을 비롯해 6개 팀으로 닻을 올린 KBO 리그는 올 시즌 10개 구단으로 두 번째 페넌트레이스를 펼친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고척스카이돔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올해 프로 야구 관중은 800만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나오고…’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중장년이라면 금세 알지만 10~30대 젊은 층은 거의 모르는 노래다. 1970년대 활동했던 정미조(67)가 부른 ‘개여울’이다.
그 정미조가 37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정미조뿐만 아니다. 정미조처럼 1970년대
마침내 소줏고리의 주둥이 끝에 작은 이슬이 맺힌다.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정재식(鄭宰植·53) 예도(藝道) 대표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진다. 그러기를 잠시, 이슬이 모여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부드럽고 무거운 향이 주위를 감싼다. 향기의 끝에서 달콤함이 느껴지자 안심했다는 듯 어머니 유민자(柳敏子·73) 명인이 허리를 펴고 일
필자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안방 한편 하얀 창호지를 바른 창살 한 부분에 한 뼘 정도의 작은 유리 조각을 덧대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앞에 앉아 계셨던 모습이다. 할머니의 쇠약한 손에는 항상 갈색의 묵주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우물이 있는 마당과 함께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을 향해 있었다. 한옥이라 대문이 열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나에게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는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오봉산 꼭대기에 숨어 있었으며, 거기는 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북으로 도망치는 인민군에게 발각돼 아버지는 혼쭐이 났다. 우리 집은 인민군의 숙소가 됐고 주인인 아버지는 눈치를 보느라 산 속에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