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새로 나왔을 때 지금의 세련된 감각으로 본다면 그건 분명 ‘무전기’라고 부를 만했다. 크기가 좀 얇은 벽돌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시간이 아주 짧아서 4시간 정도면 다시 충전해야 했다.
온갖 단점밖에 없었지만 핸드폰은 일단 부의 상징이었다. 기기 하나 가격이 유선전화 값의 몇 배에 달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이것을 갖고 있으면 세련되고,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때는 18세기 중반. 유럽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를 놓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1755년 9월 북아메리카에서 전쟁을 시작한 영국과 프랑스가 지중해에서 맞붙은 것이 1756년 5월의 미노르카 해전이다. 이 해전을 계기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 개입하면서 유럽 전
2000년대 초반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강의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주제를 보고 필자는 대단원에 나이 들어 얼굴에 잔주름 가득한 미국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두건을 한 채 뼈만 앙상한 흑인 어린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넣기로 했다. 이 사진만큼 ‘아름다움의 지속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필자는 완전 컴맹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그 폭염 열기가 계절을 초월해 최고조를 달린다. 이에 상응이라도 하듯 나라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그 애도의 열기도 식을 줄을 모른다. 가습기 사건, 강남 묻지마 화장실 사건 등등.
희생의 아픔보다 더한 무기력을 채우기 위해 햇살 가득한 베란다 밖으로 세상을 내다보았다. 자연은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계절의 기운을 창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구청에서 1998년 컴퓨터교실이 처음 만들어졌지만 필자는 신청을 미적거렸다. 컴퓨터나 인터넷이 지금같이 ‘대단한 물건’이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통장인데 어쩌겠는가. 참여할 수밖에. 그리고 ‘한글 문서의 달인’으로 대변신하고 싶은 맘도 있었다.
그러나 문외한이 뭔가를 배우는 데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하는 법. 그놈의
세계적 경영컨설팅 업체 ‘머서’가 2016년 2월 발표한 도시별 ‘삶의 질’에서 오스트리아 빈(Wien)이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스위스 취리히, 뉴질랜드 오클랜드, 독일 뮌헨, 캐나다 밴쿠버가 2∼5위를 차지했고 서울은 73위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합스부르크 왕족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도시에 가면 허리 잘록한 드레스를 입고
‘제로 TV’ ‘코드 커팅’ ‘N 스크린’…전통적 TV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용어들이다. 1995년 1~2월 시청률 60%대를 돌파한 방송 시간에는 거리가 텅텅 비었다. 를 보기 위해 TV가 있는 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는 ‘귀가시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2016년 4월. 한국과 중국 동시에 방송돼 양국에서 신드
정열과 환희가 넘치는 섬 필리핀 보라카이 섬을 다녀왔다. 눈부신 햇살, 블루레몬에이드 같은 바다, 먹어도 먹어 도 물리지 않는 망고쥬스. 우리가 꿈꾸는 홀리데이 그 이상을 채워줄 보라카이를 소개해 본다.
필리핀은 총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다도해 국가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섬을 자랑한다. 그 중에 800여 개의 섬에 사
“저 매화 화분에 물 주어라[灌盆梅].”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매화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했는지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마디 말입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라고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이란 문집에 전하고 있습니다. 생전 100여 편이 넘는 매화시를 짓기
윤무부(尹茂夫·75) 경희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 TV 톱스타였다. 에 나와 조근조근 새 이야기를 해주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스포츠 스타도 아닌데 지금도 ‘새 박사님’하면 떠오르니 대단한 인기인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최고의 팬은 아마 아들 윤종민(尹鍾旻·42) 박사가 아닐까? 다른 공부를 해도 됐을 텐데 아버지를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