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경읍(59)의 경력을 보니 그가 처음 뮤지컬을 한 것은 이라는 작품으로,
어언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야말로 한국 뮤지컬 1세대라고 불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후로도 그는 꾸준히 뮤지컬 활동을 하며 척박했던 뮤지컬 장르를 지금의 보편적 문화계로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또한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의 활약으로 정통 연기자
‘안동 역에서’라는 노래를 폭발적으로 히트시킨 가수 진성이 최근 노래 부른 ‘보릿고개’를 들으면 가난했던 옛날기억이 떠오른다. 보릿고개란 예전에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로서 음력 3, 4월에 해당한다.
요즘
평범한 문학관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위치한 이 작은 문학관은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안정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문학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설가 이동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농민문학기념관은 그의 소장품들과 사유물 그리고 농민문학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번듯한 입구나 잘 차려 입은 안내인은 없지만 농민문학이 표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강화도에 접어들어 관광객이 붐비는 도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 보면 앳된 군인이 차를 막아선다. 그가 전해준 비표는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쳐 낡아 있었지만, 잃어버렸을 때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쥐어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때마침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에 잡음이 끼어들며 괜한 으스스함을 더한다. 그렇게 언덕을 넘으니 교동대교가 시야에 들어
기쁠 땐 흥을 돋워주고, 슬플 땐 조용히 위로가 되어주었던 술. 그렇게 우리는 술과 많은 추억을 함께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줄만 알았던 술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요즘 대세인 술을 알아보자.
전통주의 개념을 탈피한 막걸리의 등장
“막걸리카노….”
얼마 전부터 편의점에서 심상치 않은 이름의 음료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경원선 백마고지역 개통 후 기차를 타고 철원평야에 처음 갔다. 경원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인 백마고지역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철도역이며 2012년 개장되었다. 이 역은 한국전쟁 중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공방전을 기념하기 위해 역 이름으로 명명했다. 신탄리 고대산에서 멀리 내려다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철원군의 남부는 대체로 산지를 이루
국내 최고의 술 전문가가 마침내 세계와 겨룰 명주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재료는 오미자였다. 패스포트, 썸씽스페셜, 윈저12, 윈저17, 골든 블루… 27년 동안 동양맥주에서 한국 위스키 시장의 거의 모든 술에 관여해, 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 불릴 만큼 주류 역사의 산 증인이 된 이종기(李鍾基·62) 오미나라 대표. 오랜 세월 한국 술 문화 발전에
말하자면, 그때도 “오빠 믿제, 한잔해?”라는 말이 있었다는 뜻이다. 2천여 년 전, 고구려 건국 전이다.
주인공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 부인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의 기록을 따라간다. 하백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유화, 훤화, 위화다. 이들이 강가에서 놀다가 해모수를 만난다. 청춘 남녀가 만났다. 게다가 ‘천제의 아들’
우리는 지금까지 평범한 결혼식을 해왔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부한 것도 아니어서 보통 사람들이 해온 방식대로 그렇게 혼례를 준비하고 양가에서 교통이 편리하고 부담 없는 예식장을 잡았다. 그러나 필자가 지켜본 요즘의 결혼식은 다양했다. 필자는 이러저러한 사유로 제자들이 혹은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주례를 부탁해 지금까지 100여 차례 주례를 섰다. 이러한 경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