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남편은 왕복 비행기 표 1장과 이민 가방에 달랑 옷가지 몇 벌을 담아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6개월에 걸쳐 필자가 설득시키고 단행한 1차 이민이었다. 온 나라에 경제 위기와 그 도미노 현상으로 가정이 휘청거려 별다른 대책이 없어 무조건 단행한 모험이었다.
온 살림에 빨간 딱지가 붙고 집은 경매로 날아갔다. 게다가 여기저기 쏟아지는 빨간
1999년. 필리핀에서 가장 덥다는 3월의 어느 바닷가 마을, 그곳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끌고 온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많은 미국인이 참여했고, 한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 단체도 있었다. 그 많은 외국인 사이에서 땀 흘리는 한 중년 한국인 남성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가 한국에서 특별히 휴가를 내고 참여한 대형 금융회사의 대
장진 감독의 영화 을 원작으로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레이션이라는 형식을 더한 작품이다.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 중 15년 만에 특별 귀휴 대상자로 선정돼 처음 아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감정을 담아낸 다양한 음악 레퍼토리로 눈과 귀가 즐거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 작품 속 아들과 같은 또래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 가더라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계곡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은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 같은 계곡 정신을 그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했다. 진정한 승자는 세월이 지나봐야 드러
평균을 알면 자신이 평균보다 높은지 낮은지 판단이 가능하다. 내 집이 있다, 없다는 이제 무의미하다. 내 집이 있는 ‘거지’가 있는가 하면 ‘무주택 부자’도 많다, 10년도 더 지난 옛날에는 정부가 무주택 서민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중소도시에서 2000만원도 안 되는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유주택자, 서울 강남에서 15억원에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사
필자는 취미로 바둑을 아주 좋아하지만 워낙 둔재라 바둑과 50여년을 함께 했으면서도 실력은 겨우 인터넷 바득 7단의 기력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형님에게서 처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서 취미란에 바둑이라는 글씨를 써넣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오래고 질긴 인연이다. 예전에는 직장에서 또는 기원에서 주로 바둑을 뒀다면 요즘은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거리, 장소,
김태준(金泰俊·79) 동국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1731~1783) 사상의 권위자로 잘 알려졌다. 담헌은 서른다섯 살 때 작은 아버지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연행(燕行)길에 올라 두 달간 중국에서 머무르며 자신의 세계관을 깨부수고 새로운 견문을 넓힌 인물이다. 그처럼 아버지인 김태준 교수의 자제군관으로 연행
어떤 의사들은 좋은 의료기관의 조건으로 ‘의사가 두 명 이상 근무하는 병원’을 꼽는다. 의료기술은 수시로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서로 상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족이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다면 어떨까?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가업으로 선택한 곳이 있다면. 그런 가족을 찾아 만난 이가 치과의사인 유영규(劉永奎·77),
7년에 걸쳐 200여 일 동안 15개 나라, 111개 도시를 여행한 부녀의 이야기를 담은 . 아빠와 딸은 낯선 여행지에서 동고동락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소하고 꾸밈없는 그들의 여행기 속에는 진한 가족의 사랑이 담겨 있다. 여행이후 가장 든든한 동지가 생겼다고 말하는 부녀, 이규선ㆍ슬기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딸ㆍ아빠
윤무부(尹茂夫·75) 경희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 TV 톱스타였다. 에 나와 조근조근 새 이야기를 해주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스포츠 스타도 아닌데 지금도 ‘새 박사님’하면 떠오르니 대단한 인기인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최고의 팬은 아마 아들 윤종민(尹鍾旻·42) 박사가 아닐까? 다른 공부를 해도 됐을 텐데 아버지를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