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지난 삶길 70년보다 더 귀한, 앞으로 살길 30년이 내 앞에 다가왔다. 시니어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 대목이다. 석양에 휘파람을 부는 시니어가 되어야 한다.
시니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ㆍ고독ㆍ경제ㆍ일자리ㆍ가정 문제가 녹록치 않다. 노인의 빈곤, 복지의 사각지대, 고독사 등 어느 것이나 우리 스스로 해결하여야 하는 사회문제다. 시니어에게 30년은 긴 세월처럼 보이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때다.
수 년 전 사회은퇴 후부터 사회평생교육에 참여하였다. 50~60세대를 대상으로 인문교양을 주제 교육에는 70대도 많이 참가하여 노후의 보람을 찾곤 하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수강자의 나이제한을 두기 시작하였고, 40세부터 취ㆍ창업 교육이 확대되면서 65세 이상은 교육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시니어가 발붙일 곳은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니어 절벽’ 앞에 섰다.
봄비가 이슬처럼 내리는 휴일, 경춘선을 타고 산행을 다녀오던 중 일행과 헤어져 지하철로 환승했다. 동년배로 보이는 등산객과 경로석에 나란히 앉았다.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이제는 완연한 봄이네요.”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지요. 세월은 틀림없습니다.” 시큰둥하게 대답이 갔다. “아직 다리는 안 아프지만, 올해부터는 숨이 좀 찹니다.”
동안의 얼굴에 건강하게 보이는 상대에게 “하기야 우리 나이면 그런 현상이 당연하지요.” 하였더니, “60, 70대 때와는 다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세부터 고쳤다. 동년배 산행 친구가 없어 가끔 한참 후배들과 산행을 한다는 80대 중반의 대 선배이셨다. 스틱을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면 기구나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하였다.
‘시니어’는 어르신, 노인, 고령자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것처럼 나이로 구분하기도 일치된 견해가 없다. 55세 이전부터 보통 은퇴가 시작되며, 60세가 되면 법정 정년, 소득세 부양가족공제 대상이 된다. 65세는 고령사회 구분기준이 되며 전철 무임승차, 국민연금 수급자격이 생겨 손에 잡히는 시니어 대우를 받는다.
70세가 되면 소득세 추가공제 대상이 되며 75세까지는 시니어가 일하고 싶은 나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정년ㆍ사업정리ㆍ폐업으로 은퇴준비ㆍ은퇴진행ㆍ은퇴자 등 수입이 감소되고 활동이 축소된 실제 은퇴자가 시니어다.
왕성한 현역생활 때는 수입극대화가 실현가능한 목표였다. 이제는 재산증식만이 능사가 아니다. 언젠가 빈손으로 갈 것 아닌가! ‘현금흐름 수지균형 유지’가 시니어의 진정한 재무 설계목표가 되어야 한다. 수지균형이 플러스인 경우에는 상속ㆍ증여ㆍ사회기부 등 지출을 늘려 재산을 서서히 줄이고,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수입을 창출하고 지출을 억제하여 재산을 늘려서 수지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시니어가 부는 석양의 휘파람, 많은 사랑 부탁합니다.
마치 부드럽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그 강은 사람들이 쉬이 찾지 않는 산속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길을 내어 고고히 흘러가는 강이다. 한 시간 동안 윤석화와 인터뷰를 끝내고 든 느낌이다. 42년간 활동한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배우로서,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늦깎이 엄마로서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그런 엄격함이 빚은 솔직한 결론들을 청명한 울림으로 던져줬다. 배우와 모성에 대해 그리고 고난을 감히 축복이라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윤석화는 인터뷰하는 동안 쑥스럽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리고 아직 사진 찍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외다.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인을 꼽으라면 항상 첫 손가락에 들어갈 그녀가 사진에 익숙하지 않다니?
“연극배우란 것이 늘 배역에 대해 면밀히 연구한 후 제 마음속에서 새로이 만들고, 조금씩 조금씩 표현하는 연습을 통해 저한테 그 인물을 오게 하는 거죠. 저는 그런, 어찌 보면 미련한 작업에 익숙한 사람이라…. 제가 처음부터 꿈이 모델이었다거나 어찌어찌하다 모델이 됐다면 이렇게 쑥스러울 것 같지 않은데, 그렇게 미련한 작업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게 굉장히 부끄러워요. 그리고 나이가 드니(웃음), 아주 쑥스러워요 정말.”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소녀
미련한 작업에 익숙한 사람, 윤석화의 어린 시절 꿈은 다름 아닌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꿈도 어느 정도 이룬 그녀는 연극인으로서 살아온 지 올해 42년. 불꽃같은 ‘돌꽃’ 윤석화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물론 저에겐 소망이 있죠. ‘무대에서 참 아름다운 배우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속일지 몰라도 저 자신은 속이기 힘들죠. 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작품을 선택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왔어요. 연극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생각해보면, 늘 똑같아요. 어떤 때는 제가 참 괜찮은 배우 같고, 어떤 때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고.”
그녀의 토로에는 살아온 시간에서 증명되는 모종의 깊이가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녀가 여전히 현장에서 뛰는 배우임을 깨닫게 해줬다. 그녀는 ‘속도야 달라지겠지만 은퇴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배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존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나 좋을 수는 없고 언제나 나쁘지도 않고.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아직도 배우 윤석화에게 하고 싶은 역할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이제는 한계가 있는 것도 인정을 해야겠죠. 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대해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에요. 후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저의 식지 않은 열정을 얘기하죠. 예전에는 어떤 작품을 꿈꾸게 되면, 예를 들어 열 작품을 꿈꾸면 최소한 다섯은 현실로 이뤄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신감이 예전 같지 않아요.”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배우가 가진 고민은 허심탄회하게 흘러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와 그 한계를 순순히 인정했다.
“연극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졌지만 연극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예전에 비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환경과 싸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죠. 십 년 전만 해도 작품을 할 때 ‘거침없이 하이킥’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도들이 조금 겁도 나고 두렵고…. 나이가 드니 계획을 세우면 젊었을 때는 이삼 일 정도면 실행했는데 지금은 일주일이 되어야 움직이는 것 같아요(웃음). 이러다 혹시라도 직무유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죠. 제가 생각하는 최선에 이르지 못했을 때 다음 스텝에 많은 걸림돌이 될 테고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삶의 가치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윤석화는 맺고 끊음이 분명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때때로 삶에 대한 깔끔한 태도는 나이가 주는 지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나이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지혜가 발휘되는 거겠지요. 내 앞의 현실을 수용해야지, ‘이래도 할 수 있어’라고 우기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추해보일 수도 있고, 교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나이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수용을 추구하는 본인의 기준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을 고집한다. 그녀의 꿈은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지금 기자 앞에 있는 그녀는 자신의 꿈을 충실히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보톡스를 안 맞는 거죠. 배우는 자기를 관리하는 게 의무입니다. 그런데 너무 인위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면 안 예뻐 보이더라고요. 예전부터 하는 얘기지만 나이든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책임지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사실 굉장히 두렵죠. 저도 그것에 대해선 자신 없죠.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냥 잘하려고 노력해요. 가능하면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도하고 기뻐하고 내게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라는 거죠. 그렇게 나이 들다 보면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웃음)?”
배우로서 사랑받는다는 의미를 깨닫다
윤석화는 연극배우로서 살아왔고 연극배우로서 세상을 익혔다. 그래서 그녀의 삶의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연극이다.
“제가 연극배우로서 삶을 배우고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관점이 저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TV나 영화나 음반 제의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유명해지는 게 싫어서 연극을 했어요. 연극을 해보니까 이건 유명해지지도 않고,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 같았죠.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연극이 무엇인지 깨달을 무렵 내가 평생을 걸어도 좋을 나의 업이다 싶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을 갔죠.”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언론은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꾸밈조차 싫었다.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가 없었다면 좀 더 자유롭게 큰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을지도 몰라요. 늘 주목을 받는다는 게 제게는 자유를 뺏기는 기분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도 넘고 저 강도 건너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스타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백 명이 날 좋아한다고 쳐요. 그중 구십 명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이고 열 명은 정말 윤석화를 사랑하는 팬으로 남을 수 있겠죠.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찌됐든 인기가 있다는 것, 윤석화를 보러 그 연극을 보러 온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거예요. 인기가 있었으니 그만큼 연기를 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감사해요.”
연극에 뼈를 묻고 살아온 윤석화가 변신을 하려는 걸까? 그녀는 최근 SBS 드라마 에 출연했다.
“드라마를 무조건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워낙 안 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됐죠. 물론 제 본분은 연극이니 선배로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고집들에서 좀 자유로워졌어요. 뭐든 때가 있는 거겠죠(웃음).”
어머니는 위대하다
연극인으로서의 삶만큼이나 윤석화의 삶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늦깎이 엄마로서의 삶이다. ‘가슴으로 낳은’ 수민(아들 14세), 수화(딸 10세)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 걸까?
“어머니는 정말 희생이에요. 육아를 해보니 힘들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머니가 된다면 어떤 이유라 해도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꿈꾸면 안 될 것 같아요. 어머니는 그 아이가 정말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아는 게 중요하죠.”
‘제일 부러운 사람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있어서 급할 때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그간 겪었던 육아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저의 경우 가장 힘든 것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그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죠. 공부를 하라고 해야 하는지 놀라고 해야 하는지, 야단을 쳐야 할지 칭찬을 해야 할지… 정말 ‘뇌가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그녀는 어머니가 가정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단적으로 말했다. 가정은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인내심도 많아야 하고 포용력도 있어야 되고 단호함도 있어야 해요. 그게 여자예요. 남자는 그게 안 돼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결과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
국내 입양 위한 일곱 번째 자선 콘서트
아이에게서 너무 멀찌감치 떨어져 생각 없이 말하는 것보다는 다치고 상처받더라도 다가가야 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윤석화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니 그렇게 예뻤던 애가 지금은 내 아들이 맞나 싶고…. 한편으론 애가 컸구나 싶어 뿌듯하지만 ‘잘못 크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돼요. 말하는 것만 봐도 ‘으유~!’ 이러고 싶을 때 있죠. 그러나 ‘엄마 말 들어봐~’하며 인내심으로 달랩니다. 이론은 쉽죠. 저는 말하는 게 굉장히 직설적인데 아이한테는 그럴 수 없어요.”
아이를 키우기로 했을 때,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가 과감한 결정을 한 것은 열악한 국내 입양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래서 그녀는 국내 입양을 위한 자선 콘서트와 바자회를 지금까지 여섯 차례 열었다. 2015년에는 이틀 동안 가수 이문세, 배우 황정민과 박건형, 기타리스트 함춘호 등 그녀와 친분이 있는 유명인사들이 무대에 나와 그녀를 도와줬다. 올해는 하루 더 늘려서 5월 5, 6, 7일 3일 동안 동숭동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일곱 번째 콘서트와 자선 바자회를 연다. 그녀는 2003년부터 국내 입양기관과 미혼모 자립을 위해 자선 콘서트를 계속 열어왔으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도 모두 기부하고 있다.
의연하게, 담대하게, 온유하게
“제가 오늘 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에요. 기쁘게 죽을 거예요. 저 자신을 위해선 할 만큼 했고 누릴 만큼 누렸어요. 누군가는 가소롭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그릇이 그러니까요. 물론 제 신념은 ‘죽을 때까지 결코 죽지 않겠다’예요. 미리 죽지 않고 그래서 그냥 인생을 다 사는 여자(웃음).”
시원시원한 목소리 톤만큼이나 인생을 논하는 그녀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후회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에게도 아직 해보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왜 없겠어요, 많죠. 하지만 사람이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뭘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것 자체가 살아있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걸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면서 길을 가야겠죠.”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저는 저답게 살기를 바라요”라는 말에는 윤석화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마침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사람이 말할 수 있는 확신에 찬 결론이기도 했다.
“누구처럼 멋있게, 누구처럼 돈 많게, 누구처럼 가난하게도 아니고 저다운 저를 바라보고 생각하며 저답게 살고 싶었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십 넘게 살면서 약간의 후회는 있죠. 부족하고 거칠었던 철없던 날들이었지만 다시 다잡고 살았어요. 그래도 살아오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의연하고 담대하고 온유하게 산 것이 바로 저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조금 더 깊어지면 예쁜 할머니가 되겠죠(웃음).”
2016년 10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정두언(鄭斗彦·60)이라는 이름 석 자는 빈번하게 오르내렸다. 바로 그가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검증을 진행했던 이였기 때문이다. 많은 뉴스들이 그에게서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한마디를 캐고자 열중했다. 그러나 오늘 이 인터뷰에서는 그 정치 얘기를 잠시 치우고, 그의 비밀들 중 좀 색다른 어젠다를 캐보고자 한다. 이 자리는 오로지 국회 패셔니스타 정두언을 만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옷 잘 입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정 전 의원이 말하는 패션의 법칙이란 무엇일까?
같은 능력을 지녀도 깔끔하게 개성 있게 차려입은 직원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게 사람이다. 같은 자동차를 팔아도 단정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세일즈맨에게 사고 싶은 게 사람이다. 꼬질꼬질한 약사 가운을 입고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한 약국 약사에게 손님은 약을 구매하고 싶지 않다. 즉 패션도 능력과 경쟁력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옷을 못 입는 남자는 사회에서 아주 조금 영향을 끼치거나 아예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의복은 단순히 스타일의 표현을 넘어서 보다 넓은 영역에서 힘을 발휘한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중요한 참고인 역할을 했던 정두언 전 국회의원을 만난 것은 그 복잡한 정치 소용돌이를 다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순전히 그의 패션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매력 발산으로 당신만의 품격을 입다
올해 60세라는 정두언 전 의원은 그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동안과 패션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국회의원 중 최고의 패셔니스타라고 불리는 그다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은 비단 패션뿐만이 아니다.
“되돌아보면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삼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나머지 이삼십 년을 살아선 안되겠다 싶어요. 그래서 그동안 연기를 하려고 많은 곳을 두드려봤죠. 근데 아직 답이 안 오더라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예술적인 끼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꾸준히 연기에 도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반까지 냈다. 정규 앨범이 무려 4장에 이르고 베스트 앨범에 팝송을 부른 앨범까지 있다. 모두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그런데 뭐 히트곡이 하나도 없으니(웃음). 국회에서 밴드 만들어서 공연도 했어요. 대학 때 같이했던 친구들, 각 분야의 후배들이죠.”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능기부를 위한 카운슬러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카운슬러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나이 들어야 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루한 옷은 NO, 리폼하는 패셔니스타
“내가 패셔니스타라고요? 그런 얘기가 되게 웃겨요. 집에 와서 내 옷장을 보면 패셔니스타 옷장에 옷이 왜 이리 없어 할 거야(웃음). 내가 생각할 때는 옷이 많은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게 잘 입는 것이 패셔니스타라고 봐요.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 몇 가지만 있으면 되지 유행에 안 맞는 옷 수십 가지 있어봐야 소용없어요.”
그래서일까. 정 전 의원은 옛날 옷들을 수선해서 입고 있다. 즐겨 입는 옷 중 가장 아끼는 옷을 묻자 ‘사람들 반응이 좋은 옷을 아낀다’고 말할 정도로 일종의 실용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옷을 한 번 사면 대략 7년 정도 입는다고 한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외국 국회의원들을 의식하며 입었죠. 이탈리아 등 유럽 국회의원들은 멋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패션 감각이 좀 없습니다. 저는 옷을 볼 때 재질을 봅니다. 모양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질이에요. 재질이 좋은 옷을 입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속옷 색도 맞춰 입는 패션 철학
그저 털털할 것만 같았던 그의 패션 철학도 인터뷰를 계속하니 조금씩 까다로운 부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입는 패션의 중요한 포인트는 ‘깔맞춤’이다. 바로 색깔을 중시하는 패션을 추구하는 것이다.
“옷을 안 어울리게 입었다 싶으면 하루 종일 찜찜하고 불편합니다. 저는 속옷도 맞춰 입어야 해요. 남에게는 안 보이지만, 일단 나 자신이 그게 맘에 걸리니까요. 예를 들면 브라운 계통을 입었는데 파란 속옷을 입으면 스스로 불편해져요.”
그에게 있어 패션은 직업의식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정치인은 연예인과 같아요. 인기를 얻어야 먹고사니까 패션을 신경 써야 합니다.”
그는 대학생일 때도 옷을 평범하게 입지 않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공무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총리실에 있을 때는 옷을 특이하게 입는 공무원으로 소개된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의 패션을 평가할 때는 어디에 포인트를 둘까?
“뒤태인 것 같아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뒤태를 보면 그 사람의 감각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모가 다소 부족한 사람이면 앞모습에서 편견이 생길 수 있지만, 뒤태는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아내는 패션에 민감한 그의 행동을 터치하지 않는다. 서로 존중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가 즐겨 입는 브랜드는 중·상위대 가격인 제일모직. 그는 기성 양복을 입을 때 상의 리폼은 비용이 비싸더라도 손기술이 좋은 전문가한테 맡겨야 한다는 팁을 전했다. 잘못되면 아예 안 입게 되는 게 상의라는 설명이다.
멋을 낸다는 것은 삶의 촉매
“스스로 약간 흥분되지 않나요? 멋을 낸다는 건 삶의 촉매라고나 할까요.”
옷 잘 입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 정 전 의원은 그렇게 불리는 게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경멸받게 되는 ‘허영’과는 결이 다른 대답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일파티에서 ‘생일 축하합니다’를 즐기면서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다 어색하게 부르죠. 그런데 그런 조그마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옷 입는 행위도 나를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요. 작은 흥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앞서 얘기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는 삶의 특별한 순간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가 수집한 패션도 그러한 성향을 따르고 있다. 말하자면 보편적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거의 곤색 양복이나 쥐색 양복을 입죠. 백화점에 가도 거의 그래요. 저도 옷장 안에 양복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양복들이죠. 그렇지만 곤색 양복을 핏하게 입으면 옷매무새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스타일링
정 전 의원이 패션의 마무리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넥타이다.
“전 넥타이가 좀 많은 편입니다. 정작 타이 매는 것은 싫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타이 하나로 유행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넓은 타이는 요즘은 촌스럽죠. 어떻게 사람 눈썰미가 그렇게 바뀌는지 신기하기도 해요.”
그가 또 하나 중시하는 포인트가 있다. 바로 양말이다.
“양말을 잘 챙겨 신는 사람은 틀림없이 멋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말까지는 신경을 잘 안 쓰니까요. 옷, 신발, 양말이 함께 코디가 돼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양말이 되게 어렵습니다. 맞추기가 쉽지 않거든요. 요새는 양말 가게들이 많이 생겨서 색도 다양해졌는데 옛날에는 검은색, 회색, 베이지색이 대부분이었죠.”
뒤태, 넥타이, 양말을 중시하는 그의 패션에 대한 관점을 보니 ‘작은 부분,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잘 챙기는’ 성향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러한 꼼꼼함이 양복을 리폼해서 7년을 입는 그에게 패셔니스타라는 별칭을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옷에 대한 그의 세심함은 패션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멋있게 입고 나가면 ‘이 사람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구나’라고 상대가 생각하게 됩니다.”
관심이 곧 예의로 발전해가는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정 전 의원과 얘기하다 보니 다채로운 취향과 세심한 욕구들이 보인다. 인간 정두언이 정치인이 안 됐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난 피디가 됐을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연예인은 부모님들이 결사반대했고. 난 무슨 일이든 재미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학문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박사논문도 좀 재밌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딱딱하게 쓰는지 이해가 안 가요. 장정도 새까맣게 만들어서 내고. 좀 컬러풀하게 하면 안 되나?”
마지막으로 그에게 요즘 가장 사고 싶은 옷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역시 허심탄회한 대답이 정두언다웠다.
“매장에 걸려 있는 옷이지. 왜 걸어놨겠어요? 파는 사람이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걸었겠죠.”
패션이 삶의 촉매라는 정 전 의원의 말처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상승할 수 있다. 지루한 옷은 벗어던지고 타인에게 호감을 줄 수 있고 스스로의 자존감은 높일 수 있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매력을 은은한 향기처럼 풍기게 만들 열쇠일 것이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여행’이라고 답한다. 여행은 일상과 다른 새로운 시간으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좋은 기회다. 평소와 다른 일을 준비하다 보면 사소하든 중요하든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데,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체크리스트다. 은퇴도 일종의 여행이다. 그것도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그 끝을 알기 힘든 긴 여행이다. 그만큼 은퇴 여행에서는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돈과 관련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알아보자.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
◇ 은퇴대비자산의 충분성
가장 기본적인 은퇴대비자산은 공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다. 이들 연금으로 은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 다른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으로 은퇴생활비를 보충해야 한다. 소유 주택이 있다면 주택연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 외의 부동산이 있다면 임대소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매각해야 한다면 매각시기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매각을 서두르다 보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매도시기를 결정하려면 시기별로 필요한 은퇴생활비와 준비된 자금의 차액을 알고 있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소비자정보포털(fine.fss.or.kr)인 ‘파인’에 접속하면 본인이 가입 중인 금융상품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파인’의 서비스 중 연금저축어드바이저(advisor.fss.or.kr)를 활용하면 희망하는 연금액과 현재 준비된 연금액의 차액을 직접 계산해볼 수 있다. 또한 부족한 연금액을 준비하는 데 활용할 만한 연금상품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연금저축어드바이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연금포털(100lifeplan.fss.or.kr)에 미리 회원으로 가입해두면 좋다. 통합연금포털은 ‘파인’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 향후 소득창출 능력
과거에는 공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3층 보장만 제대로 준비해도 큰 어려움 없이 노후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금리·고령화 사회의 본격화로 3층 보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준비한 자금이 필요 은퇴자금보다 적다면 추가로 소득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에도 소득창출과 관련한 본인의 능력을 점검하고 실행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소비습관
수입이 중단된 상태에서 소비는 가계경제의 우량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이성은 소비통제를 외치지만 습관에 젖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갑작스런 소비통제는 특히 배우자와의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적·외적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소비통제와 관련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예산(budget)’을 활용하면 좋다. 예산을 세우고 주기적으로 체크하면 소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부채관리 능력
과도한 부채를 안고 은퇴를 하면 가계경제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신용대출은 은퇴 직후 대출이 중단되거나 대출금리가 높아진다. 부채청산은 은퇴 이전에 꼭 달성해야 할 것 중 하나다. 부동산 같은 투자자산의 구입으로 생긴 부채라도 가격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예상수익과 대출이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과감하게 매각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 현재 가입 중인 보험 점검
은퇴 후 생활비는 의료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후에는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이에 대비해 별도의 자금을 준비해도 좋지만 보험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과거에 가입한 보험이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가입한 보험의 보험기간이 만료되었거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입 중인 보험들의 보장금액과 보장기간을 검토해보고 필요하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보강해야 한다. 금융소비자정보포털(fine.fss.or.kr)인 ‘파인’에 접속해 ‘내보험다보여’를 클릭하면 보험가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단 2006년 이전에 가입한 보험상품 정보는 가입한 보험사의 콜센터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한다.
◇ 기타 체크해야 할 사항들
① 현금흐름의 갑작스런 중단에 대비한 비상예비자금(손해를 보지 않고 바로 찾아 쓸 수 있는 현금 및 현금등가물)
② 기부나 자선 등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필요한 자금
③ 자산의 양도 및 임대, 기타 사업 등으로 인해 발생할 소득세나 자산의 증여 및 상속에 대비한 증여세와 상속세
④ 아직 은퇴 전이라면 은퇴대비저축이나 투자금액 등
◇ 전시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일정 5월 28일까지 장소 디뮤지엄
자유, 반항, 순수, 열정 등 유스컬처(Youth Culture)의 다양한 감성을 선보이는 대규모 사진전이다. 래리 클락, 라이언 맥긴리, 고샤 루브킨스키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28명의 사진, 그래픽, 영상, 그라피티 작품 240여 점을 총망라한다. 일탈과 자유, 반항과 열정 등 청춘의 내면에 공존하는 다면적인 감정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유스컬처의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청춘의 불안이 기쁨과 환희로 승화됐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 Saimdang, Her Garden
일정 6월 11일까지 장소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최근 TV 프로그램, 드라마, 도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시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선시대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의 기획 전시다.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자기계발에 매진했던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의 면모와 생애를 재조명한다. ‘초충도’를 비롯한 그의 대표 수묵화를 통해 뛰어난 미의식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관 이래 처음으로 ‘묵란도’를 소개한다. 화폭에 자연의 이치를 담고자 했던 그녀의 예술정신이 농묵과 담묵의 절묘한 조화로 발휘됐다.
◇ 도서
두 번째 서른 살: 사랑을 이야기할 나이(마리 드 에느젤 저·베가북스)
프랑스 심리학자 마리 드 에느젤이 10여 년간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얻은 성(性)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저자는 시니어의 성생활에 대한 이상주의를 경계하면서 다양한 연구와 인터뷰, 대담 사례를 통해 사랑과 성을 추구하는 노년의 삶에 대해 피력한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히로세 유코 저·인디고)
50세가 되면서 달라진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저자의 산뜻한 시선과 경험이 담긴 에세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점들을 담담하고 편안한 어조로 풀어냈다.
◇ 영화
눈길
일제강점기 말,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났지만 위안부라는 비극을 함께 겪은 두 소녀의 가슴 시린 우정을 그렸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2월 3일 와디즈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오픈해 30분 만에 목표금액(4000만원)을 달성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영화 수익금 일부는 위안부 피해자 시민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개봉 3월 1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나정 출연 김영옥, 김향기, 김새론, 장영남 등
아빠는 나의 여신
가상의 동네 오가와에 있는 작은 술집 ‘사요코’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 아빠와 딸의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랜스젠더라는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일본 영화 특유의 따스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케이노스케 감독은 낡은 술집에 다녀가는 손님들의 인간미 넘치는 사연을 통해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유쾌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애틋한 가족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개봉 3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하라 케이노스케 출연 스도 리사, 후지모토 이즈미 등
◇ 공연
유도소년
2014년 초연, 2015년 재연 당시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세운 흥행작이다. 유도선수 경찬이 고교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도·복싱·배드민턴 훈련을 거친 배우들이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펼친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3월 4일~5월 14일 연출 이재준 출연 허정민, 박정복, 신성민 등
혜은이 콘서트 '열정'
가수 혜은이가 데뷔 45주년을 맞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다. 팬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달간 공연을 이어간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제3 한강교’, ‘열정’ 등을 마음껏 들어볼 기회다.
장소 대학로 SH아트홀 일정 3월 3일~4월 2일 출연 혜은이
머더 포 투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코미디 뮤지컬 의 국내 라이선스 첫 무대다. 두 명의 배우가 13명의 인물을 연기하며, 형사와 용의자 간의 실랑이를 그린 2인극이다. 의문의 총격 살인사건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극으로 빠른 전개가 흡입력을 높인다.
장소 DCF대명문화공장2관 일정 3월 14일~5월 28일 연출 황재헌 출연 김승용, 안창용, 박인배 등
윤동주, 달을 쏘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창작가무극이다. 일제강점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순수한 애국심을 노래한다. 윤동주의 대표 시 8편이 독백 대사와 노래가사 속에 담겨 있다.
장소 예술의전당 일정 3월 21일~4월 2일 연출 권호성 출연 온주완, 박영수, 김도빈 등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5070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재무설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속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새로운 길이므로 낯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관점을 바꿔야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산관리, 소비관리, 가치관리라는 3가지 측면에서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의 은퇴재무설계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 자산관리
아무리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눈높이가 평균적인 시선보다 높은 만큼 돈의 역할 역시 크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 돈을 잘 관리하여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돈을 더 잘 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인데, 은퇴재무설계에 대한 이해는 그 선결 과제다.
먼저 관점을 ‘자산에서 소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2040 시절 재무설계의 핵심은 내집마련. 노후자금, 자녀교육비 등 목적자금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목돈을 모으는 것이다. 즉 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다. 그러나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5070세대의 재무설계는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현금흐름, 즉 소득창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연금을 활용하면 쉽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일시적으로 자금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즉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생활비와 유동성을 함께 고려하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둘째로는 ‘자산에서 소득으로’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축적에서 인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산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일시금 방식, 연금 방식, 프로그램 방식 등 다양한데 이들을 흔히 인출 방법이라 부른다. 각 방식은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 장단점이 다르므로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감안해 특정 방식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방식을 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인출 방법의 구체적 형태는 월 지급식 상품 선택으로 나타나는데, 예금형·즉시연금형·수익배분형 등이 있다.
셋째로는 ‘수익률에서 위험관리로’ 전환되는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한다. 2040세대는 임금 또는 사업소득 형태로 계속 현금이 유입되고 투자기간이 길어 수익률 중심의 자산관리를 할 수 있다.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현금으로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매입할 수 있어, 가격상승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5070세대는 수명 연장으로 과거보다 투자기간이 길어졌다 해도 유입되는 현금의 양이 크게 줄어들어 수익률보다는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5070세대에게 유입되는 현금은 대부분 생활자금 용도여서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해 유입되는 현금이 크게 줄거나 들쭉날쭉하게 되면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 소비관리
5070세대는 축적해놓은 자산은 많은데 일을 통한 수입이 없거나 적다. 저축해놓은 돈에서 곶감 빼먹듯 생활비를 조달해야 한다. 합리적인 소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무조건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5070세대의 특성을 감안한 소비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로, 가족 중심의 소비에서 나 중심의 소비로 소비의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가치 중심의 소비다. 5070세대는 중년으로서 2040세대와는 삶의 중심축이 다르다. 2040세대의 삶의 중심축이 성장에 있다면 5070세대의 삶의 중심축은 의미에 있다. 가족의 성장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소비에서 기부·자선·봉사 등 가치 있는 소비로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사회적 관계망은 육체적·심리적 건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 가치관리
‘가치관리’는 일반적인 재무설계에서는 쉽게 간과되기도 하지만,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화목, 건강, 행복을 바란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판단과 구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가족의 파탄을 불러오는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속 및 증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직 젊은데 서두를 필요가 뭐가 있냐며 뒤로 미루면 안 된다. 판단력이 좋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관리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꾸준한 실천과 그 가치다. 노후에는 의료비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재무적 측면에서 건강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일본의 노후파산 사례에서 보듯이 노후에 건강이 악화되면 재정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에 직면해 급기야 노후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노후의 의료빈민(medi-poor)은 정말 비참하다. 건강관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면서 돈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또한 급격한 건강 악화에 따른 인생의 하드랜딩을 방지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2월의 막바지인 지난 주말 새봄을 기다리며 '따뜻한 콘서트'가 열렸다.
경제신문 '이투데이'가 2013년 이후 5년째 개최하고 있는 음악회라고 한다.
오전부터 하루 종일 눈보라가 흩날려 저녁 나들이가 좀 걱정스러웠지만 출연하는 어떤 가수 때문에 필자는 꼭 참석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KBS 콘서트홀에 가니 오랜만에 보는 동년 기자님들이 많이 계셨다.
글로만 대하던 동년 기자님들과의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는데 부부가 동행하신 기자님도 여러분이셔서 보기에 참 좋았다.
우리 동년 기자의 좌석은 2층으로 자리에 앉으니 벌써 무대는 화려한 조명으로 예쁘게 반짝여 신나는 공연을 기대하는 설렘으로 마음이 들떴다.
출연 가수를 보니 어린 걸그룹 '모모랜드'의 귀여운 아이들과 중견 여가수 '린' 그리고 독보적 존재를 자랑하는 '전인권' 씨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김장훈' 씨가 있다.
김장훈 씨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고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는데 김장훈 씨와는 몇 년 전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 사이이다.
노래도 잘하지만, 기부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는 멋진 사람이라 필자는 그의 왕 팬이 되었다.
오늘 약간 실망스러운 건 좌석이 2층이라 가수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김장훈 씨는 공연 중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유명한 가수이다.
앞자리였다면 언젠가처럼 좀 더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몇 년 전 강남 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김장훈 콘서트가 있었다. 제법 큰 무대를 춤과 노래로 종횡무진 휘저으며 신나는 공연을 펼치던 중 갑자기 김장훈 씨가 어시스턴트가 필요한데 누가 도와주겠느냐고 물었다.
같이 간 친구 삼총사가 내게 손들라고 부추겼고 나는 용감하게 조용한 침묵을 깨고 “저요!”하고 소리를 치고 말았다.
누가 나오시겠느냐고 했지만 점잖은 관객들이 잠시 생각하는 동안 아줌마 기질을 발휘한 필자가 큰 소리로 답을 한 것이다.
좀 더 젊었을 때라면 부끄러워서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나이가 들으니 너무 용감해지는 것 같아서 우습기도 했다.
용감하게 소리친 덕분에 무대에 올라가 김장훈씨 옆에 서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본 김장훈 씨는 매스컴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잘생기고 훤칠했다.
잠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고 필자가 도와야 하는 일을 말해 주었다.
무슨 큰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고 김장훈 씨가 하모니카를 불 때 필자는 마이크를 그 앞에 잘 대어주는 일을 맡았다.
별일이 아니었으므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졌고 무대도 매우 화기애애해졌다.
하모니카 연주가 끝난 후 감사하다며 불었던 하모니카를 선물로 주었는데 꽤 값이 나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그 작고 앙증맞은 하모니카를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고 신나는 공연을 즐겼다.
그렇게 김장훈 씨는 공연 도중 관객과의 소통을 꼭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래층의 어떤 여성관객이 전의 나처럼 큰소리로 답을 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만약 필자의 좌석이 가까웠다면 필자가 소리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어린 아이돌의 무대도 깜찍했고 ‘린’의 노래도 좋았지만, 김장훈 씨와 전인권 씨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노래에 감동적이었다.
신나는 콘서트의 여운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가운 바람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이투데이에서 매년 주최한다니 다음에도 초대되어 꼭 콘서트를 보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이승연은 꽃 선물도 싫어하고 이벤트도 싫어해서 남편과 그 흔한 프러포즈도 없이 결혼했다. 결혼한 지 9년째인데 매일매일 연애하는 것같이 짜릿하고 즐겁단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억만금을 줘도 과거로 돌아가기 싫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 이승연은 행복하다. 나이 50에 해탈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그녀와의 털털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봉규 시사평론가
이승연이 벌써 50세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보통 스타들이 나이를 먹어서 미모가 예전 같지 않을 때 자기합리화나 자기최면을 걸듯이 “지금이 좋다”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많이 봐왔지만 오늘 만난 이승연의 표정은 정말임을 딱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술 더 떠 60이 기다려지고 늙어진 자신을 보는 날을 꿈꾼다니 의외였다. 잘 나이 들고 싶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본인의 얼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용감한 발언을 한다. 남들이 들으면 돌팔매를 맞고도 남을 망언이라고 오해받기 쉽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미녀 스타인데 그런 망언을 하다니? “피겨 스타 김연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얼굴”이라는 이승연의 평가를 듣고 난 후에 비로소 이해가 갔다. 분명 김연아와 이승연은 다른 스타일의 미모다.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진한 서구적인 얼굴의 이승연은 자신과 반대의 이미지인 한국적 눈매를 지닌 김연아의 얼굴이 부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나와 다른 스타일의 미모에 대한 부러움일까? 여느 보통 여자들이 하는 그런 시샘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승연의 성격에는 아마 김연아 같은 얼굴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털털하고 쿨한 여자
실제 김연아는 성격을 묻는 질문에 “단순무식하고 쿨하다. 혈액형이 O형인데 전형적인 O형 성격에 딱 맞는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승연도 O형이고 털털하기로는 김연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니큐어도 안 칠하고 평소에는 귀찮아서 화장도 안 하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털털하다. 남편이 선물을 사서 줄 때도 예쁜 포장지에 싸서 주는 것보다 흰 종이나 광목천으로 둘둘 말아서 주는 걸 더 좋아한다. 꽃 선물도 싫어하고 이벤트도 싫어해서 남편과 그 흔한 프러포즈도 없이 결혼했다. 한량 이봉규의 난데없는 해석이지만 그녀가 김연아의 얼굴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연의 가족사랑은 유별나다.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것이고 두 번째로 잘한 일은 남편과 결혼한 것이란다. 그녀는 한 방송(TV조선 )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길러준 엄마가 사시사철 학교를 데려다줬다. 혼자 학교를 못 갔다”라며 “내가 세 살 때 언니가 선천성 탈구라는 질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부모님이 날씨가 안 좋으면 날 학교에 안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에 혼자 있어서 그런지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가지 말라고 선물을 많이 줬다. 그런데 친구들은 장난감만 받고 금방 가버렸다. 너무 외로웠다. 그 상태로 쭉 자라오다가 애늙은이처럼 컸다”라며 “그 보상심리가 있는 거 같다. 내 딸은 나처럼 자라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나한테 부족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 채워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큼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이승연은 자녀교육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한다. “사랑만 해주면 애는 저절로 알아서 크는 것”이라는 그녀의 철학이 멋지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저절로 큰다는 생각을 안 하고 억지로 아이들을 훈련시키면서 키워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녀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경험 때문일까? 나이 50에 해탈한 느낌이란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술자리 때문에 늦어도 잔소리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룸살롱에 간다면 제일 예쁜 아가씨를 옆에 앉히라고 주문한다니 놀랍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도 있어서 더욱 쿨하게 이해해준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뉴스에도 불구하고 이승연을 믿어준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존 킴이라는 이름보다 ‘이승연의 남편’으로 불리며 사는 남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연애시절 자동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6~7시간 대화해도 시간가는 줄 몰랐을 정도로 코드가 잘 맞는다. 사귄 지 두 달이 넘어서야 첫 키스를 했을 정도로 그녀의 감정을 아껴준 남편에게 감사해한다. “B형 남자는 O형 여자에게 절대 못 이긴다”고 자랑하는 그녀의 속뜻은 아마 남편이 자기를 더 사랑한다는 진단일 것 같다. 그렇다면 남편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이승연과의 결혼일 것이다. 이승연은 두 번째로 잘한 일이지만. “행복을 찾아준 남편은 항상 고마운 존재”라며 “결혼할 때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뿌듯해한다. 그러면서 “입에 찬 소리 해서 행복이 날아갈까 겁이 난다”고 엄살까지 부린다. 그녀의 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런지 어떤 시련이 올지라도 남편과 절대 이혼은 안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족의 사랑이 절대적 힘
두 살 연하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남편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남편 존 킴(한국명 김문철)은 의류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미국 시민권자다. 두 사람은 2005년에 다른 사람 결혼식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는데, 이승연이 남편에 대해서도 잘 아는 지인에게 툭 던진 말이 두 사람의 인연을 맺게 해줬다. “저 사람, 여자 친구 많겠다. 혼자 놔두면 못 믿을 것 같은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근데 저런 사람이 진국일 거야.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일 거야!”라고 평가한 것을 나중에 남편에게 얘기했다는 것. 얼마 후 다른 자리에서 만난 남편은 이승연에게 “어떻게 나를 그렇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냐?”면서 감탄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됐다.
결혼한 지 9년째인 두 사람은 매일매일 연애하는 것같이 짜릿하고 즐겁단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억만금을 줘도 과거로 돌아가기 싫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 이승연은 결혼 잘했다.
수줍어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기 싫어하고 방콕을 즐기는 이승연에게 남편과의 행복은 절대적 가치일 것이다. “그렇게 수줍음이 많은데 어떻게 수영복 심사를 하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갔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친구 따라 미용실에 갔는데 원장이 대회에 나가면 미스코리아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적극 권유했다. 그때 마침 승무원 생활을 3년쯤 하던 권태기여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출전했다”고 술회한다.
인생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때부터 톱스타 이승연의 삶이 시작됐고 50세가 되기까지 숱한 화제도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각종 뉴스에 오르내리면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견뎌냈다.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긍정의 DNA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해한다. “말 한마디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몇 년 전에 비로소 깨달았다”면서 “이제 빚을 갚고 싶다. 긍정의 말 한마디를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전하면서 보답하고 싶다”고 말한다.
가족에게든 각종 인연을 맺었던 주변 사람들에게든 누구에게라도 보답하겠다는 의지에 날이 서 있다. 분에 넘치는 팬들의 사랑도 받았고 그 관심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그만큼 패대기 처지면서 수렁으로 밀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이 50이 돼서야 해탈한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해졌다. 남편의 사랑이 절대적인 힘이 돼주었고 가족들과 주변의 격려 덕분이지만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잘 이겨낸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나 자신을 믿어준 스스로에게도 보답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자기 삶의 가치가 중요해
보답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방송도 중요한 방법일 수 있겠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사람이기에 처럼 프로그램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로 영향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승연은 타고난 방송인 자질이 있기에 안성맞춤. 또한 패셔니스타의 자질을 잘 활용해서 남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승연은 패셔니스타의 원조다. 드라마마다 걸치고 나오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크게 유행시키기는 완판녀의 원조 격이다. 뛰어난 패션 감각 덕에 본인이 직접 스타일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재능을 살려 재능기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어떻든 이승연의 삶이 남달랐던 만큼 앞으로는 더 의미 있는 인생이 펼쳐질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간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내 방식의 가치대로 사는 게 중요하지 남의 평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승연에 대한 남들의 평가도 이제부터일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로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본인의 삶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주당 이봉규이기에 술 한 잔도 못하는 이승연과의 인터뷰는 약간 아쉬웠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 이상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이승연과의 데이트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르신ㆍ노인ㆍ시니어 등으로 부르던 고령자의 이름이 장년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생의 정점을 지나 조용히 내리막길에 들어선 은퇴자다.
사회은퇴를 앞둔 몇 해 전, 먼저 은퇴한 친구에게 경험담을 들었다. 친구가 “현역과 은퇴자의 돈은 10:1 차이가 있다.”고 말하였다. 당시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귀에 들리지 않았다. 사회은퇴가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 에서 벗어나는, 행복의 시작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다니랴 친구 만나랴 꿈같은 세월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 날, 비상금 얼마정도 채워졌던 지갑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통장잔고는 생각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사라졌다. 수입은 확 줄었는데 지출은 은퇴 전과 별 다른 게 없음을 확인하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은퇴 자축연까지 하고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10:1이 아니야. 100:1도 넘는 것 같아!” 호떡집에 불 난 것처럼 마음에 비상이 걸렸다.
젊은 시절 압축성장기에 노력한 만큼 알찬 열매도 맛보았다. 수입극대화가 실현가능한 목표였다. 이제는 재산증식만이 능사가 아니다. 언젠가 빈손으로 갈 것 아닌가! 현금흐름 수지균형 유지가 장년의 진정한 재무목표가 되어야 한다. 수지균형이 플러스인 경우에는 상속ㆍ증여ㆍ사회기부 등 지출을 늘려 재산을 서서히 줄이고,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수입을 창출하고 지출을 억제하여 재산을 늘려야 한다.
장년에게는 현금 확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에 투자하여 어찌하여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만질 수 없는 남의 재산이다. ‘부동산은 자식의 것, 보험 등 장기투자는 배우자의 것’이라는 말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아니 된다. 현역도 은퇴해야 하는 시기이다. 새롭게 수입창출하기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욕망이 지나치면 다단계에 속고 고수익 유혹에 당하기 쉬운 장년이다. 허망한 과욕이다.
소비지출을 검토하여 낭비억제 방법부터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 30년 이상 장기 재무 설계를 하여야 한다. 월 10만 원이면 3천만 원, 100만 원이면 3억 원이 넘는다. 낭비하면 없어지는 것이요, 절약하면 남는 돈이다. 사회은퇴 후 별로 사용하지 않는, 무디어진 운전감각을 생각하여 자동차 운행을 확 줄였다. 세계 최고수준 대중교통이 매우 편리함을 몸소 느끼고 있다.
재능기부 봉사활동과 취미생활에 자동차 몰고 다닐 이유가 없다. 차량유지비를 꼼꼼히 따져보면 답이 나온다. 앞으로 차 구입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감가상각비까지 합하면 상당한 액수다. 걷기 운동하여 건강해지면 병원치료비와 약값을 절약할 수 있고, 건강식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알량한 체면치레만 하지 않으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장년은 어느 날 얇아진 지갑을 발견하고 비로소 장년임을 깨닫는다. “지난날의 귀중한 경험은 깊이 간직하고, 화려했던 과거는 내려놓아라. 장년이 살아갈 길이다.” 사회은퇴 선배의 귀중한 경험을 깊이 새겼다.
군대 복무시절 초등학생이 보낸 위문엽서 한 장이 마음에 들어 호주머니에 고이 간직하였다.
필자가 군대에서 복무한 시절은 월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전사자와 부상자가 다수 발생한 가슴 아픈 때였다. 월남전 소식이 주요 뉴스가 매일 등장하고 온 국민이 군가를 부르면서 국군장병을 위로하였다. 6월에는 전 국민이 위문품을 모았고, 학생들은 위문편지를 단체로 군인에게 보내곤 하였다.
현충일이 한참 지난 후에 위문엽서가 한 다발 부대에 배달되었다. 고등학생 엽서는 상급부대로, 중학생 것은 중급 부대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사진엽서가 배당되었다. 내용은 단체 받아쓰기 수준으로 읽을 만한 것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행정업무를 담당한 필자는 무더기 속에서 눈에 띄는 엽서 한 장을 고르고, 나머지는 부대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무도 초등학생의 엽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당시 유행하였던 펜팔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연필로 또박또박 쓴 엽서였다. 칠판에 적어준대로 쓰지 않고 성의껏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었다. 절반으로 접어서 하복 상의 호주머니에 넣은 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몇 달이 지나서 하복을 정돈할 가을이 왔다. 관물정돈하려고 상의를 정리하는데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뭉치가 손에 잡혔다. 펼쳐보니 연필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여름에 받았던 위문엽서였다. 막내 동생 같은 초등학교 4학년생에게 답장을 썼다.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답장도 오지 않았다. 완전히 잊고 해가 바뀌었다.
새해가 되자 발신자 주소도 이름도 없는 그림엽서가 한 장 날아왔다. 여자의 글씨체이고 내용은 자작시나 수필처럼 느껴졌으나 도통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답장할 방법도 없어 갑갑하게 느끼고 초등 4년생에게 편지하였으나 대답이 없었다. 한참 후에 이름이 있는 엽서가 오고, 또 시간이 지나서 주소가 있는 답장이 왔다. 비로소 초등학생의 언니라는 사실을 알고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꼬맹이는 학교로 보냈던 답장을 뜯어보지도 않고 한 구석에 방치하였다.
큼직한 글씨가 마음에 들어 동생 대신 답장을 썼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편지쓰기에 온 정신이 빠져들었다. 예쁜 글씨에 맞추려고 글자를 그렸다. 글 수준에 뒤지지 않으려고 썼다 지우기를 되풀이 하였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갔다.
그가 ‘국군의 방송’에 필자를 위하여 신청한 희망곡이 방송을 탔다. TV커녕 변변한 라디오도 없어 방송청취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고참병의 트란지스타 라디오로 휴식시간에 국군의 방송을 듣는 것이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방송의 내용보다 정말 나오느냐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저녁 6시 귀한 휴식시간도 잊은 채 부대원이 주위에 빙 둘러 앉았다. “백외섭 상병에게 보내는 희망곡입니다.” 아나운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부대 내무반이 발칵 뒤집혔다.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갓 데뷔한 정미조의 감미로운 노래였다고 기억한다. 자기 일처럼 좋아하면서 함성을 질렀다. “멋있다”면서 손뼉을 쳐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새 달랑 한 장 엽서가 두툼한 봉투편지로 바뀌었다. 사진을 교환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전지에 글을 가득 써서 소포처럼 보내기도 하였다. 가슴 설레는 즐거움이 있었다. 군대 생활하는데 활력소가 되었다. 주고받았던 많은 편지는 ‘가보’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제대 후 첫 만남을 가졌다. 꿈같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아들ㆍ딸 가족과 쌍둥이 손녀ㆍ손자와 외손자를 거느린 할아버지ㆍ할머니가 되어 곱게 산다.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부지런히 살았던 사회에서 은퇴하고 재능기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내는 시인으로 활동한다. 세 손주들의 얼굴만 쳐다봐도 입이 귀에 붙는다.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즐겁게 산다. 앞으로 긴 여정을 더 보람차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