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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치회로 봄을 알리는 바닷가 마을 장고항
- 4월 초순경, 장고항 어부들의 몸짓이 부산하다. 실치잡이를 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실치가 적을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지만 많을 때는 수시로 바다에 나가 바쁘게 작업을 해야 한다. 흰 몸에 눈 점 하나 있는, 애써 눈여겨봐야 할 정도로 작은 물고기인 실치가 작은 몸집 흐느적거리면서 장고항 앞바다를 회유한다. 실치는 장고항 봄의 전령사다. 지형이 장고의 목처럼 생긴 어촌 마을 해돋이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오전 6시가 채 못 돼 부스스 일어나 장고항 우측 끝자락의 노적봉과 촛대바위가 잘 보이는 위치를 찾는다. 마치 뫼산[山] 형태의 기암은 장고항의 지킴이다. 오랫동안 먼 바다에 조업 갔다 오는 어부들의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계절, 기암 사이로 멋지게 떠오르는 해돋이를 기대하진 않는다. 단지 장고항을 대변해주는, 육지 끝자락에 있는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물이 빠져 갯벌이 다 드러나는 서해에서 바라보는 일출. 동해에서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아침 햇살은 빠르게 사위를 밝게 해준다. 서둘러 장고마을로 들어선다. 장고항은 ‘지형이 장고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장고목’이라 불리다가 후에 장고항 마을로 개칭되었다. 이외에도 가낭골, 당산 마을이라는 이름이 있다. 여행자들도 바닷가 마을만 한갓지게 배회한다. 서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인 장고항이 특히 유명해진 것은 ‘실치’ 덕분이다. ‘실치’로 이름 알린 장고항 장고항 사람들은 1970년대 초, 실치잡이가 본격화되면서 다들 실치포를 말렸다고도 한다. 실치잡이가 성행할 때는 150여 가구가 소위 멍텅구리배로 불리는 무동력 중선으로 실치잡이를 해왔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연안에서의 실치잡이 어선이 자취를 감춘다. 지금은 인근 앞바다에서 개량 안강망 그물로 실치를 잡는다. 2000년 초부터는 장고항 실치회 축제를 만들어 ‘실치회의 원조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을 안쪽 건조대에서는 실치포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샅 건물 벽에 씌인 손글씨를 따라 실치포 작업장을 찾아낸다. 아주 오랫동안 실치포를 만들어왔음이 느껴지는 작업장이다. 실치포 만드는 작업은 눈으로 봐도 힘겨워 보인다. 마치 김 한 장 만들 듯, 물그릇 담긴 실치를 그릇으로 적당량 떠서 사각 나무틀에 쏟아 납작하게 모양을 잡는다. 연륜이 깊고 숙련된 사람일수록 실치의 양을 정확히 가늠하고 평평하게 할 수 있다. 발에 붙은 실치는 신기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 몇 시간 해풍을 맞으며 건조되면 실치포가 완성될 것이다. 두껍고 살색이 흴수록 좋은 실치포라는 상식을 알게 된다. 기꺼이 실치포 몇 묶음을 산다. 젓가락으로 건져낼 정도로 아주 작은 물고기 건조대를 지나 마을 끝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수산물유통센터가 나온다. 2012년 4월 28일, 제9회 축제를 맞춰 개장한 곳으로 7209㎡의 부지의 1153㎡의 1층 건물에는 20여 곳의 횟집이 들어서 있다. 난전, 포장마차를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간판을 달고 한곳에서 영업하고 있다. 싱싱한 활어는 물론이고 실치와 간재미 등이 지천이다.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일까? 바닷물을 가득 담은 고무 대야에 살아 있는 실치들이 헤엄치고 있다. 흰 몸에 점이 하나 있는, 마치 실처럼 가는 물고기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 살아있어요” 하는 듯하다. 횟집들마다 부산하게 실치를 씻으며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 없다. 실치 씻는 방법도 아주 특이하다. 튀김을 건져낼 때 사용하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실치들을 휘휘 저어댄다. 젓가락에 실치가 걸쳐지면 소쿠리에 담아내는 일을 반복한다. 워낙 작은 물고기라서 손품이 많이 필요하다. 기암 촛대바위가 멋진 해안 수산센터를 지나 방파제로 가는 길목에서 멀리서만 봤던 기암을 가까이서 조우한다. 붓을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바위가 촛대바위다. 양쪽으론 기암이 감싸고 있다. 바다 쪽, 높은 바위를 노적봉이라 부른다. 바다 쪽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석굴(해식동굴)이 있다. 용천굴이라고 부르는데 으레 그렇듯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천장이 뻥 뚫려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이곳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전설도 있다. 200여 년 전, 나라에 큰 정변이 일어나서 사람들은 피난을 갔단다. 그때 한 아이가 이 동굴에서 7년을 공부해 장원급제를 해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다.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동굴을 신성시해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올망졸망 배들이 매어 있는 선착장으로 가 본다. 조업을 마친 배들이 들어오고 몇 팀의 낚시꾼들은 부산스럽게 배를 타고 떠난다. 한편에서는 남편의 고깃배가 들어오는지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는 아낙도 있고 일찍부터 막걸리 한 사발로 술추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물망에 걸린 실치 작업에 한창인 어부를 만난다. 이들은 실치 철이 끝날 때까지 자주 바닷가에 나가 작업을 한다. 실치가 적게 잡힐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고, 많이 잡힐 때는 수시로 그물을 털 것이다. 내겐 볼거리이지만 어부들에게는 생계의 그물이자 돈 줄 아닌가. 씹힐 틈 없이 살살 녹는 실치회 이제는 ‘당진 8미(味)’ 중 하나로 꼽히는 실치회를 먹어야 할 시간이다. 실치회 한 접시를 시킨다. 아주 작은, 흰색의 물고기가 무더기로 뒤섞인 접시 위로 깨소금, 참기름, 파 등의 양념이 흩뿌려져 있다. 여기에 오이, 깻잎, 쑥갓, 당근 등 갖은 야채에 고추장 양념이 더해지면, 함께 쓱쓱 버무려 입에 넣기만 하면 된다. 실치가 미끄러워 반드시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 한입 먹어본다. 작은 물고기라서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는 식감이 일품이다. 아욱을 넣어 끓여낸 고소한 실치 국에 실치 전, 실치 계란찜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실치라는 물고기가 어떤 놈인지 궁금해진다. 실치는 일반적으로 뱅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도라치’라는 이름도 있다. 서해에서는 흰베도라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실치는 ‘흰베도라치의 새끼’란다. 꽤 긴 이 이름을 외우려면 시간깨나 걸리겠다. 초봄 한 달간 ‘잠깐’ 먹을 수 있는 요리 첫 그물에 걸려드는 실치는 너무 연해서 회로 먹기는 어렵다. 3월 말부터 4월 초순경 적당히 몸집이 커져야 횟감으로 먹을 수 있다. 6월 말까지 잡히지만 4월 중순이 넘으면 뼈가 굵어져 맛을 잃는다. 그래서 실치회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약 한 달간으로 눈 깜짝할 새다. 실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얼마 안 가 죽어버린다. 당연히 먼 곳까지 운반할 수 없다. 산지에나 와야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 이후부터 잡히는 물고기는 실치포를 만든다. 멸치처럼 데쳐서 말리는 실치포는 칼슘이 풍부한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 돌아와 장고항에서 구입한 실치포로 밑반찬을 만들어본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낸 포를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르면 된다. 밥하고 같이 먹으면 바삭바삭 과자 같은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과장 없이 놀라운 맛. 장고항의 바다 향이 어느새 따라와 있다. Travel Data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송악IC→38번 국도를 타고 대산 방향으로 진행→석문방조제를 지나 615번 지방도로→5㎞ 정도 직진→장고항으로 우회전. 추천 별미집 용왕횟집, 고향나루 횟집 등을 비롯해 다수의 맛집이 있다. 미식가라면 우렁이 박사는 꼭 들러야 한다. 또 당진 시내의 장춘 닭개장도 유명하다. 장어구이를 먹고 싶다면 옛날돌집장어구이, 원조장어구이를 찾으면 된다. 주변 여행지 삽교천도 좋지만 당진 시내 탐험을 해보자. 봄철 당진 장날(5일, 10일)의 장터 풍경이 정겹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실컷 들을 수 있는 색다른 여행 체험이다. 충남에서는 1위를 차지한 명품 쌀에 쑥이 어우러진 왕쑥송편, 기름을 바르지 않은 호떡을 사들고 남산 건강공원으로 가보자. 산이라기보다는 마치 구릉 같다. 그래도 당진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어 눈앞이 시원하다. 봄철에는 꽃 천국이다. 왕벚꽃이 만발한 봄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당진향교(충청남도기념물 제140호), 의인, 역대 현감, 군수 등의 선덕비, 공적비, 기념비 등 비석문화재 21점의 유적도 있다.
- 2017-03-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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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반해버린 바람의 섬, 미코노스
- ‘에게 해의 진주’와 ‘바람의 섬’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코노스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손꼽힌다. 영화 등 촬영지로도 인기를 누리는 섬. 특히 동양인에게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섬에 머물며 소설 를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 에는 이곳의 ‘한 달 반’ 생활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예술가나 특정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곳은 절대 아니다.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아폴론의 손자 미콘스의 이름을 딴 섬 그리스는 섬들의 나라다. 6000개가 넘는 섬 중에서 유인도는 227개. 에게 해의 섬들 중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미코노스다. 미코노스 선착장에서 ‘워터 택시’를 타면 코라(구항구)에 금세 다다른다. 이 섬의 첫 느낌은 ‘눈부신 흰색’이다. 그리스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미코노스는 그리스령 키클라데스 제도 가운데 하나다. 북서쪽에 티노스 섬, 남쪽에 낙소스 섬과 파로스 섬이 있고, 델로스 섬과는 2㎞ 떨어져 있다. 면적은 86㎢로 작으며 최대 고도는 364m로 산토리니 섬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는 달리 평지다. 지질은 주로 울퉁불퉁한 화강암이고 신선한 자연수가 적어 염분을 제거한 해수도 이용한다. 미코노스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BC 11세기경으로 이오니아인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프텔리아 해변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카레스(Kares)족의 유물은 BC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코노스 섬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됐다.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과 거인족 기간테스가 신들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10년간이나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제우스를 도운 헤라클레스가 거인족을 섬멸하기 위해 던진 바위 조각이 바로 이 섬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의 손자인 미콘스(Mykons)의 이름을 딴 섬이 됐다고 한다. 만토 광장, 좁은 골목길 걷다 만난 보니스 풍차 바닷가 옆, 마토이아니 거리에서 만토 광장으로 들어서면 만토 마브로게누스(1796~1848)의 동상이 있다. 그녀는 그리스 독립운동(1821~1832)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다. 그리스 동전(1988~2001)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는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만토 광장을 비켜나면 아기자기한 부티크숍, 레스토랑, 호텔, 작은 박물관 등이 있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여름철, 화사한 부겐빌레아꽃이 피어나면 ‘흰 빛’의 가옥들은 차라리 눈이 부시다. 화분으로 치장한 발코니가 있는 앙증맞은 집들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보니스(Boni´s) 풍차가 보인다. 더 이상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미코노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자리다. 구항구에 떠 있는 큰 배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작은 배들, 그리고 교회, 하얀 집들이 어우러진 섬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미코노스가 산토리니와 다른 점은 건물 색이다. 획일화를 싫어하는 그리스인들의 성격을 보여주듯 흰색에 밤색, 청색을 덧칠했다. 보니스 풍차를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선사유적지가 있고 동쪽 끝으로는 다섯 개의 풍차(Kato Milli, Lena´s House)가 있다. 원래 16대였던 풍차는 이제 5대만 남아 미코노스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 풍차들은 육지에서 가져오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 역할을 했다. 현재는 바람을 거절하는,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농업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에게 무료 공개되고 있다. 풍차를 등지면 에게 해가 에둘러 섬을 감싸 안고 알록달록한 ‘리틀 베니스’ 건물들이 휘어진 해안선을 만난다. 그리스 정교회가 400개를 웃도는 섬 미코노스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작은 교회가 유난히 많다. 무려 400여 개나 있어 미코노스 작은 시가지에서는 엄청난 교회와 맞닥뜨린다. 가장 유명한 곳이 파라포르티아니(Paraportiani) 교회다. ‘중세 성채의 뒷문’이 있던 곳이어서 뒷문을 뜻하는 ‘파라포르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지인들은 ‘성모 마리아 파라포르티아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교회는 독특하게도 5개의 예배당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지상에서 보면 한 개의 건축물(1425년)이지만 지하에 4개의 예배당이 더 있다. 지상 건물이 가장 오래됐고 지하는 16~17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비잔틴 스타일에 미코노스 섬과 서구 교회 양식이 조합돼 오묘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키클라데스 군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건축 양식이다. 교회 앞쪽으로는 ‘리틀 베니스’로 불리는 골목이 이어진다. 때때로 펠리컨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 섬은 낮보다는 밤 문화가 발달된 도시로 고요함보다는 생동감이 넘친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섬이다. ◇ Travel Data 항공편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터키 여행과 함께 그리스를 선택한다.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직항 노선이 있다. 터키 항공사를 이용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11시간 40~50분 소요. 현지 교통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나 그리스 국내 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항공편으로는 약 35분 정도 소요. 초고속 페리는 3시간, 완행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파로스, 산토리니, 크레타, 테살로니키 등에서도 페리가 연결된다(배편 인터넷 예약 사이트는 hellenicseaways.gr). 주말, 연휴 때는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 표를 직접 구하기 어려울 때 항구 주변의 여행사를 통하면 알아서 척척 저렴한 가격의 표를 만들어준다. 현지 정보 올드 타운은 걸어 다니고, 그 외 델로스 섬은 투어 상품을 이용하면 된다. 파라다이스 해변 등은 올드 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피크 시즌에는 숙박 가격이 매우 비싸다. 시즌을 피해서 가는 것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호텔보다는 가정집을 빌려주는 아파트를 이용하면 저렴하다. 그리스의 일반 식당으로 알려진 타베르나(taverna)가 많고 문어, 새우 등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화덕에 굽는 숨은 빵집(Gioras Wood Medieval Mykonian Bakery)이나 피아노 바인 몽파르나스도 기억해두자. 기타 정보 그리스 경기가 불안하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체감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우 밝고 친절하다. 통화는 ‘유로’이고 물가는 싼 편이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미코노스를 기점으로 델로스, 시로스, 파로스, 낙소스, 산토리니 등 주변 섬 여행을 해봄직하다. 섬 여행이 지루하다면 아테네로 나와 그리스 내륙 여행을 즐기면 된다. 메테오라, 테살로니키, 델피, 칼라마타 등 그리스는 한 달 이상 머물러도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
- 2017-02-2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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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어드바이스] 시니어는 뭐든 잘한다! 배낭여행 베테랑이 되어보자
- 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임 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1만20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침대에서 죽느니 길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꼼꼼히 기록했다. ‘나이 듦’은 생각하기에 따라 젊음보다 오히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 살고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이미 쓴 노트의 페이지는 되돌릴 수 없다. 아직 남아 있는 빈 여백에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쓰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하자. 이 글은 필자의 현장 경험을 가감 없이 반영한 ‘생생 정보’다. 여행지 선택,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망명국으로 선택한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그들이 유럽을 정착지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은 소도시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유럽 여행 좀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여행지를 나라가 아닌 도시로 구분 짓는다. 다양한 ‘인문’을 접할 수 있는 것 이 유럽 여행의 큰 매력이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서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계절이 여행하기 좋을까? 여행 갈 때는 좋은 계절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봄이 가장 좋다. 여름이나 가을도 무난하다. 유럽의 여름은 지중해성 기후라 한국보다 훨씬 뜨겁지만 대신 습도가 낮다. 더우면 바닷가 근처에서 머물며 해수욕을 즐기면 된다. 가을 단풍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며, 겨울에는 설경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북유럽 쪽의 겨울은 낮이 아주 짧다. 오후 3시쯤 해가 지기 때문에 관광할 시간이 너무 짧다. 겨울 여행은 긴긴 밤 속에서 보내는 날이 많을 수도 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굳이 타지에서 돈 써가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비자 등 각 나라별로 주의해야 할 사항 유럽의 많은 나라가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다. 솅겐조약은 180일 이내에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그래서 솅겐국 내에서 총 체류가 90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한 달 체류는 문제되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총 28개국에서 영국이 탈퇴(2016년)하면서 27개국이 되었다. 알기 쉽게 권역별로 정리하면, 서유럽권(프랑스, 이탈리아, 몰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권(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폴란드, 헝가리), 북유럽권(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다. 숙소 구하기와 추천 사이트 소개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박이다.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독채를 빌려 쓰는 게 좋다. 외국에는 캠핑시설이 엄청 잘되어 있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할 경우 캠핑장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외국의 시니어들은 값싼 호스텔을 많이 애용한다. 단, 호스텔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 숙박기간은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며칠 동안 지내보고 더 연장할 것인지는 그때 정해도 늦지 않다. 사람 마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숙소를 서로 바꿔서 지내는 방법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이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경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추천할 수 있는 대표적 해외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 부킹닷컴www.booking.com 여행 경비 줄이는 방법 우리나라 환율을 기준해서 환율이 낮은 나라를 선택하면 된다. 참고로 동유럽이나 발트 3국은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피서철의 유명 관광지를 피하는 것도 경비를 아끼는 방법이다. 환율이 낮은 나라라도 피서철에는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행태가 일상화되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신용카드와 현금,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쓸 카드는 미리 만들어가는 게 좋다. 분실이 염려되겠지만 해외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카드를 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비상시에 쓸 현금은 옷 속이나 자신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넣어둔다. 여행 가방은 최대한 간편하게 싸라 여행은 가볍게 해야 한다. 휴식을 하러 떠난 여행지에서 많이 가져간 짐 때문에 이런저런 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골목들은 한국과 달리 엄청나게 울퉁불퉁하다. 옛것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기에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부족한 물품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실제로 의류 등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최악의 영어 실력, 여행지에서 괜찮을까? 각 나라별 언어를 익힐 시간은 없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디선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최악이라면 짧고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언어를 구사하면 상대가 충분히 알아듣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현지인들도 영어 실력은 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영어를 못한다고 절대 고민하지 말라. 무엇보다 전 세계 공용어인 ‘제스처’가 있으니 여행에 있어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해본 적 없는 배낭여행, 어떻게 하나? 모든 일이 숙달되기까지는 누구나 초보 시절을 겪어야 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은 없다. 패키지여행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배낭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생하고 돈 많이 쓰는 여행을 왜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배낭여행의 매력을 백번 설명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지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방법이 있다. 패키지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바꾸면 된다. 패키지여행을 가서 가이드 안내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일행들에서 빠져나와 자유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패키지여행 반 자유여행 반으로 구성된 이색적인 여행 프로그램들이 많다. 패키지여행이 온전한 배낭여행보다는 안전성을 보장해주니, 그렇게 몇 번 실행해보라. 어느새 배낭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여행자 보험, 반드시 들어야 하나? 여행자 보험은 3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지역 경찰서에 가서 확인서를 받아오면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을 청구하면 의외로 황당할 때가 많다. 잃어버린 물건 가격에 상관없이 소정의 액수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건 변상은 기대 이상으로 박하지만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 또 현지에서 몸이 아플 경우 병원에 가는 데 도움을 준다. 강도를 만났을 때 대처법 여행지에서는 가끔 ‘강도’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지의 도둑들은 혼자 행동하지 않고 대부분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은 처음에는 ‘여행자’인 척하고 따라 붙는다. 그러고는 경찰이라고 하면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제복을 입었는지 확인부터 하라. 말대꾸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그들의 허점을 먼저 공략하면 된다.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라고 말하거나 ‘경찰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들은 도망가기 바쁘다. 동양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푼돈’을 뜯으려는 자들이지 사람까지 해치려는 생각은 안 한다. 예방접종주사, 꼭 맞고 가야 하나? 예방접종을 하고 가면 훨씬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주사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특별히 ‘위험지역’이라는 보도가 없는 나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지역을 자주 이동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아플 때 도움 받는 법 현지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 젊은 약사가 있는 곳을 선택하라. 나이든 약사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해서 설명이 어렵다. 현지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픈 곳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주는 병원도 있다. 이럴 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도움을 받아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가능하다. 교통수단 이용 방법 여행지에서 이동은 필수다. 인터넷으로 미리 교통 정보를 알아보고 가겠지만 이 방법보다 유용한 것은 현지에 도착해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는 것이다. 친절한 가이드가 있는 곳도 있고 달랑 지도 한 장만 주는 곳도 있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특히 어려운 지명은 발음이 어려워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메모지에 써서 보여줘라. 그들은 전문가다. “싼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 2클래스를 알아서 척척 끊어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익숙해져도 직접 티켓 창구로 가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라. 자동기계를 잘못 이용하면 티켓 값을 순식간에 날릴 수 있다. 티켓을 발부받으면 정확한 날짜에 예약이 되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정확한 날짜가 아닌 ‘이틀 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의 날짜 계산이 잘못될 수도 있다. 여권을 잊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 중에 여권은 생명줄과도 같다. 복사본을 준비해가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증명사진 두 장 정도는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큰 도시의 경찰서는 이런 과정이 훨씬 복잡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작은 파출소를 선택해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고 후 그 나라의 수도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임시 여권을 만들어준다. 계획했던 여행 날짜만큼 충분히 머물 수 있다. 국세환급금(Tax Refund) 받는 요령은? 여행지에서 특산물을 살때는 ‘Tax Refund’가 표시된 현지 숍에서 사라. 물건을 구매했다고 말하면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영수증 발급을 안 해준다. 영수증은 모아놨다가 마지막으로 여행하는 나라 공항에서 제출하면 된다. 대부분은 자국의 영수증만 환급해준다. 다른 나라의 영수증은 ‘Tax Refund’ 바로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푼돈이라도 아끼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기타 주의해야 할 사항들 여행지에서는 늘 변수가 있다. 이럴 때는 벌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빨리 바꿔야 한다. “끝까지 해볼 테야” 하는 고집이 더 큰 변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에 한국에 비상연락책을 두어 명 구해놓는다. 현지에서 일이 생기면 필자의 블로그(www.sinhwada.com)에 댓글을 남겨도 된다. 인터넷의 세상은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가깝고 빠르다.
- 2017-02-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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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투어] 시니어들의 ‘한 달 별장 만들기’ 좋은 도시들❷
- 풍차의 고장, 네덜란드에서도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 풍차’ 마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킨더다이크-엘샤우트(Kinderdijk-Elshout)는 ‘풍차’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풍차마을은 캘린더 속 그림처럼 아름답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마을이기도 하다. 근교에 위치한 로테르담에서는 영화제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건강도 다지고 문화 충전도 하면 인생이 훨씬 다이내믹해지지 않을까? 수줍은 처녀의 모습 같은 풍차마을 로테르담(Rotterdam)은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는 큐브하우스, 펜슬하우스 그리고 거대 쇼핑몰 마크트할레 등 온 도시가 건축학도의 실험실을 연상케 한다.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면서 실험적 건축물들이 도시 전체를 장식하게 됐다. 한국의 리움 미술관과 서울대 미술관을 건축한 렘 콜하스(1944년~)가 이 도시 출신이다. 특히 박물관 단지는 창의적인 예술작품들 말고도 200년이 넘는 나무숲과 운하가 어우러져 마치 북유럽의 자연친화적 도시 같은 분위기를 드러낸다. 숙소지기가 알려준 네덜란드 전통 음식점에서 스탬폿(stamppot)을 먹는다. 식당에서 만난 손님은 “스탬폿은 대부분 집에서 해먹는 음식이라서 일부러 식당에서 사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풍차마을을 가겠다는 필자에게 킨더다이크와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는 다른 곳이라고 일러준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서 만난 킨더다이크는 로테르담에서 고작 16km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그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갈대밭에 숨어 있는 몇 채의 건물들, 운하와 그 위에 떠 있는 유람선 그리고 운하를 따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시골의 풍차마을은 도심과는 오랫동안 담을 쌓고 살아온 듯하다. 마치 수줍은 처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저지대의 애환을 보듬은 1700년대 풍차들 운하를 사이에 두고 사람 키보다 더 웃자란 갈대밭 ‘풍차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눈으로는 19개의 전통 풍차 수를 헤아리고 있다. 그저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달력 사진이 될 정도로 아름답다. 썰렁한 겨울 풍경조차 아름다운 킨더다이크의 풍차마을은 시간의 빛에 따라 그 느낌도 다르다. 사람들은 많지 않다. 눈으로는 아름다운 풍차가 가득 담기지만 이 마을의 애환이 담긴 현실도 있다. ‘킨더다이크’라는 지명은 ‘어린이의 둑’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알블라서바르드(Alblasserwaard) 해안의 해수면보다 6m나 낮아 항상 거센 밀물과 썰물의 피해를 입어야 했다. 1421년, 일명 ‘성 엘리자베스’라는 대홍수가 발생했는데 요람에 쌓여 있던 어린아이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 둑 위에 얹혔다고 한다. 풍차는 네덜란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도구였다. 배수용으로 만들어진 1700년대의 풍차들은 200년 넘게 해안 간척지의 물을 빼내 주변 지역에 홍수가 나지 않도록 해줬다. 이 마을에는 레크 강과 왈 강 사이의 평지 위로 오래된 8각 원추형의 풍차들이 이어져 있는데 그중 한 곳은 풍차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표원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풍차 안에서 지금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풍차에는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무게가 아직도 묵중하게 실려 있다. 풍차 안으로 들어서면 팽팽 돌아가는 방향기에 따라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이 있는데, 실내 공간을 절반 이상이나 차지하고 있어 생활공간이 비좁아 보인다. 또 풍차 소리가 너무 커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연상된다. 지독한 악조건 속에 마련된 주거공간이다. 좁은 공간을 활용한 가파른 계단은 위층으로 이어진다. 층의 여백마다에는 가족들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부엌, 화덕, 거실, 부부의 침실, 아이들의 좁은 방들이 절묘하게 보일 정도로 옹기종기 배치돼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수년, 수십 년간 풍차 집에서 생활했을 주민들. 지금은 관광지로 거듭났지만 과거 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짐작이 된다. 장수비결? 가족 간의 사랑이 최고야! 야모리 일본 교토대 의대 교수와 세계보건기구(WHO)의 협력으로 10년간 세계 25개국 57개 장수마을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는데, 그 연구마을 중 한 곳이 킨더다이크다. 관광안내소 지킴이에게 “이 지역이 장수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장수비결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수 비결은 없다. 그냥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특별한 비결은 없는지도 모른다. 만약 비결이 있다면 열악한 풍차 집에서도 알콩달콩 지낸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차가운 바람을 피해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다리 근처로 가 마스 강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날따라 마스 강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글썽였다. “나 죽으면 이곳에 뼛가루를 뿌릴까?” 그날 서글픈 내 마음을 알기나 했을까? 우연히 만난 헬스 트레이너 에밀레가 날 웃게 만들었다. 그는 요새도 내게 묻는다. “리, 언제 다시 올 거니?” 스쳐 지나간 인연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더치(duch)인들. 그들이 사는 도시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로테르담에서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주드플렌(Zuidplein) 역(D, E라인)에서 하차 후 154번 버스를 타면 된다. 45분 정도 소요된다.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다리 옆 스피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도 된다. 로테르담 현지 교통 정보 시내 일일권 교통카드를 사면 편리하다. 지하철, 버스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로테르담 시내버스에는 승무원이 있다. 필히 교통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장기 체류 시에는 지하철역에서 일일권을 사면 된다. 별미 음식 네덜란드인들은 청어 요리인 더치헤링과 발효식품인 하우다 치즈, 요구르트 등을 자주 먹는다. 이러한 식습관이 장수 비결이 됐다. 요즘은 삼발 울렉(인도네시아 고추장)이 건강식으로 인기다. 네덜란드는 팁 문화가 없기 때문에 식당에서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숙박 정보 킨더다이크에는 숙박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로테르담에 싼 값의 숙박지가 아주 많다. 한 달 여행 포인트 로테르담에서 머물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거대 쇼핑몰 마크트할레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2017년 제46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1월 25일~2월 5일, iffr.com)도 펼쳐진다. ‘조선’에서 14년간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1630~1692)의 고향인 호르큄(Gorcum) 시도 멀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와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다. 헤이그도 30분이면 닿는다. 단기 숙소 렌트 방법 유럽에서는 가정집 등을 단기 렌트하는 업체들이 일반화되어 있다. 에어비앤비가 유명하다. 숏스테이그룹(shortstaygroup.com)은 네덜란드, 파리, 바르셀로나의 숙박지를 전문으로 제공한다. 로테르담 시니어 여행 포인트 암스테르담보다 물가가 싸다. 시니어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국철 등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 2017-02-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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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시니어들의 ‘한 달’ 별장 만들기 좋은 도시들❶
- 이유 없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곳에는 으레 세계적인 부호나 유명한 배우들이 별장을 짓고 살지만 그 도시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여행자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 도시에서 한 달 정도만 살면 별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호부터 아름답고 특별한 별장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해 유럽의 멋진 도시들을 골라 시리즈로 소개한다. 글·사진 이신화( 저자, www.sinhwada.com)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소도시 얼마 전 “폴란드에서 사는 것은 어때?”라고 필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지인이 있다. 평생 ‘일이 내 삶의 전부’라며 살아온 그도 ‘딴 나라’에서 살 생각은 가끔 하나보다. “폴란드는 아닌 것 같아. 체코의 남모라비아 쪽이 더 나아”라고 답변했더니 귓등으로도 들은 척하지 않던 그가 TV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술 좋아하는 그가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인심 좋은 포도 축제에 홀딱 반한 것이다. 지인이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어떠리.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의 질 차이는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인이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결정됐을 때 필자가 나서주면 될 일이다. 지인이 홀딱 반한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시는 ‘텔츠(Telc)’다. 필자에게 “체코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텔츠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느낌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체코의 대표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도 자신의 책 에서 “우리나라에서 텔츠보다 아름다운 광장을 가진 도시는 없다”고 말했다. 체코 관광청도 “텔츠는 예술가들과 몽상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스럽고 연약한 분위기를 내는 도시다”라고 소개한다. 텔츠는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매력이 있는 도시다. 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 프라하보다 물가가 50% 싼 모라비아 지역 모라비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텔츠는 프라하에서 150km, 브르노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관광객이 90%나 되는 복잡한 대도시 ‘프라하’를 벗어나 모라비아의 가장 큰 도시 ‘브르노’에 도착했을 때 체감하는 것은 ‘물가’다. 과장 없이 50% 정도 물가가 싸다. 쉽게 예를 들면 커피 값이나 와인 한 잔 값이 1유로를 조금 웃돈다. 브르노를 떠나 텔츠 역에 도착해 10여 분 정도 걸어 호르니브라나 문을 들어서면 올드 타운의 자하리아스(Zacharias)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엇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텔츠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교회의 은신처로 언덕 위(해발 522m)의 늪지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목조 가옥이었으나 1530년에 큰 화재가 났고 당시의 시장이었던 자하리아스 폰 노이하우스의 통치 아래 대대적인 재건축에 들어갔다. 가옥들은 르네상스식 석조물로 바뀌었고 타운을 에워싼 성벽과 인공 연못도 요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때도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을 했다. 시장이 사망한 뒤 이 도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유서 깊은 마을(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수 있었다. 텔츠에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85개의 구조물이 있다. 바로크, 로코코 건물이 길게 이어진 유네스코 도시 광장 옆으로는 긴 회랑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건축물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 몸이지만 제각각 모양새와 색깔을 달리한다. 건물의 정면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칠해져 있다. 뷔르게하우스(Burgerhaus Nr.15)는 다른 집과 달리 건물에 장식물이 달려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또 한 곳은 미하일 베커 시장의 집인 61호 저택이다. 미하엘 베커는 빵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훗날 텔츠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의 집은 스그라피토(sgraffito) 장식으로 1555년에 개축했다. 스그라피토는 텔츠 성에서 일하던 조각가가 개발한 공법으로 ‘긁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석회 반죽을 이용한 작품이나 도자기 제작에 많이 응용된다. 이외 59호, 520호, 522호 저택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광장에는 페스트 종식 기념탑인 성모 마리아의 기둥이 있다. 조각가 다비드 리파트에 의해 1718년에 제작된, 이른바 구름 형식의 바로크 탑. 마리아의 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각각 6각형 못이 있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된 후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개조됐다는 성령성당도 있다. 영화 등 로케이션 현장 ‘텔츠 성’과 종탑 광장 북쪽으로 가면 텔츠 성과 정원이 있다. 고딕 양식의 성은 여느 지역과 달리 소박하다. 14세기, 자하리아스에 의해 지어진 이 성에서는 스그라피토 장식의 벽면과 홀 내의 격자무늬 천장,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1945년까지 리히텐슈타인 포드슈타트슈키 백작이 살았던 이 성이 몰수되자 백작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현재 성의 예배당에는 자하리아스와 그의 아내, 여러 성인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때때로 음악회가 개최되는 텔츠 성은 영화 촬영지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성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성 뒤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성 야곱성당의 종탑(60m)이 있다. 종탑은 멋진 ‘뷰포인트’다. 종탑에 오르면 바로크 양식의 쌍 탑이 두드러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1651~1669년에 제수이트회가 세운 예수회 성당과 대학으로 텔츠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텔츠의 백미는 올드타운을 양 안으로 감싸 안고 있는 울리츠키와 슈테프니츠키 인공 연못. 도시를 복원하면서 만들어진 ‘물의 요새’는 텔츠를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텔츠의 가옥들을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여행정보 교통 정보 프라하 플로렌츠 역에서 매일 2회(13:55, 16:15)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총 2시간 40분 소요. 브루노를 기점으로 찾으면 편하다. 브루노에서는 기차와 버스가 운행된다. 버스는 완행버스처럼 여러 마을에 정차하므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여행 포인트 텔츠 성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정원이나 숲길을 따라 트레킹,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산악 바이크, 보트놀이를 할 수 있고 낚시도 가능하다. 기타 정보 메인 광장 주변에 호텔은 물론 펜션 등 숙박업소들이 있다. 직접 만든 수제 와인이 유명하다. 토굴 형태의 와이너리도 방문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주변 여행지 브루노, 올로모우츠를 비롯해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의 여행이 쉽다. 알폰스 뮤샤(Alfons Mucha, 1860~1939)의 개막식에서 만난, 체코 문화원에 있는 미하엘라는 미쿨로브스키를 적극 추천한다. 이곳은 알폰스가 오스트리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 발길을 멈춘 도시다. 텔츠 안내 사이트 www.telc.eu/, www.discoverczech.com/telc/index.php4
- 2017-01-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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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들의 ‘한 달’ 별장 만들기 좋은 도시들①
- 이유 없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곳에는 으레 세계적인 부호나 유명한 배우들이 별장을 짓고 살지만 그 도시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여행자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 도시에서 한 달 정도만 살면 별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호부터 아름답고 특별한 별장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해 유럽의 멋진 도시들을 골라 시리즈로 소개한다. 글․사진 이신화( 저자, www.sinhwada.com)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소도시 얼마 전 “폴란드에서 사는 것은 어때?”라고 필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지인이 있다. 평생 ‘일이 내 삶의 전부’라며 살아온 그도 ‘딴 나라’에서 살 생각은 가끔 하나보다. 처음에는 “영국이 좋을 것 같아” 했다가 “미얀마, 라오스는 어때?”라며 급선회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폴란드를 묻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는 아닌 것 같아. 체코의 남모라비아 쪽이 더 나아”라고 답변했더니 귓등으로도 들은 척하지 않던 그가 TV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술 좋아하는 그는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인심 좋은 포도 축제에 홀딱 반한 것이다. 지인이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어떠리.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의 질 차이는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인이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결정됐을 때 필자가 나서주면 될 일이다. 지인이 홀딱 반한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시는 ‘텔츠(Telc)’다. 필자에게 “체코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텔츠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느낌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체코의 대표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도 자신의 책 에서 “우리나라에서 텔츠보다 아름다운 광장을 가진 도시는 없다”고 적었다. 체코 관광청도 “텔츠는 예술가들과 몽상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스럽고 연약한 분위기를 내는 도시다”라고 소개한다. 텔츠는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매력이 있는 도시다. 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 프라하보다 물가가 50% 싼 모라비아 지역 모라비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텔츠는 프라하에서 150km, 브르노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관광객이 90%나 되는 복잡한 대도시 ‘프라하’를 벗어나 모라비아의 가장 큰 도시 ‘브르노’에 도착했을 때 체감하는 것은 ‘물가’다. 과장 없이 50% 정도 물가가 싸다. 쉽게 예를 들면 커피 값이나 와인 한 잔 값이 1유로를 조금 웃돈다. 브르노를 떠나 텔츠 역에 도착해 10여 분 정도 걸어 호르니브라나 문을 들어서면 올드 타운의 자하리야슈(Zacharias)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엇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텔츠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교회의 은신처로 언덕 위(해발 522m)의 늪지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목조 가옥이었으나 1530년에 큰 화재가 났고 당시의 시장이었던 자하리야슈 폰 노이하우스의 통치 아래 대대적인 재건축에 들어갔다. 가옥들은 르네상스식 석조물로 바뀌었고 타운을 에워싼 성벽과 인공 연못도 요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때도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을 했다. 시장이 사망한 뒤 이 도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텔츠는 유서 깊은 마을(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수 있었다. 텔츠에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85개의 구조물이 있다. 바로크, 로코코 건물이 길게 이어진 유네스코 도시 광장 옆으로는 긴 회랑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건축물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 몸이지만 제각각 모양새와 색깔을 달리한다. 건물의 정면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칠해져 있다. 뷔르게하우스(Burgerhaus Nr.15)는 다른 집과 달리 건물에 장식물이 달려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또 한 곳은 미하일 베커 시장의 집인 61호 저택이다. 미하엘 베커는 빵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훗날 텔츠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의 집은 즈그라피토(sgraffi to) 장식으로 1555년에 개축했다. 즈그라피토는 텔츠 성에서 일하던 조각가가 개발한 공법으로 ‘긁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석회 반죽을 이용한 작품이나 도자기 제작에 많이 응용된다. 이외 59호, 520호, 522호 저택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광장에는 페스트 종식 기념탑인 성모 마리아의 기둥이 있다. 조각가 다비드 리파트에 의해 1718년에 제작된, 이른바 구름 형식의 바로크 탑. 마리아의 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각각 6각형 못이 있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로 건립된 후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개조됐다는 성령성당도 있다. 영화 등 로케이션 현장 ‘텔츠 성’과 종탑 광장 북쪽으로 가면 텔츠 성과 정원이 있다. 고딕 양식의 성은 여느 지역과 달리 소박하다. 14세기, 자하리아슈에 의해 지어진 이 성에서는 즈그라피토 장식의 벽면과 홀 내의 격자무늬 천장,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1945년까지 리히텐슈타인 포드슈타트슈키 백작이 살았던 이 성이 몰수되자 백작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현재 성의 예배당에는 자하리아슈와 그의 아내, 여러 성인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때때로 음악회가 개최되는 텔츠 성은 영화 촬영지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성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바토리(Bathory, 2008)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성 뒤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성 야곱성당의 종탑(60m)이 있다. 종탑은 멋진 ‘뷰포인트’다. 종탑에 오르면 바로크 양식의 쌍 탑이 두드러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1651~1669년에 제수이트회가 세운 예수회 성당과 대학으로 텔츠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텔츠의 백미는 올드타운을 양 안으로 감싸 안고 있는 울리츠키와 슈테프니츠키 인공 연못. 도시를 복원하면서 만들어진 ‘물의 요새’는 텔츠를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텔츠의 가옥들을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Travel Data 교통 정보 프라하 플로렌츠 역에서 매일 2회(13:55, 16:15)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총 2시간 40분 소요. 브루노를 기점으로 찾으면 편하다. 브루노에서는 기차와 버스가 운행된다. 버스는 완행버스처럼 여러 마을에 정차하므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여행 포인트 텔츠는 작지만 의외로 즐길 거리가 많아 오래 머물러도 심심하지 않다. 텔츠 성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정원이나 숲길을 따라 트레킹,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산악 바이크, 보트놀이를 할 수 있고 낚시도 가능하다. 골프장도 세 곳(www.siskuvmlyn.cz, www.czgolf.cz, www.czgolf.cz/golf-resort-telc)이나 있다. 기타 정보 메인 광장 주변에 호텔은 물론 펜션 등 숙박업소들이 있다. 직접 만든 수제 와인이 유명하다. 토굴 형태의 와이너리도 방문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주변 여행지 브루노, 올로모우츠를 비롯해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의 여행이 쉽다. 알폰스 뮤샤(Alfons Mucha, 1860~1939)의 개막식에서 만난, 체코 문화원에 있는 미하엘라는 미쿨로브스키를 적극 추천한다. 이곳은 알폰스가 오스트리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 발길을 멈춘 도시다. 브루노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길목에는 포도밭이 많다. 가을 수확 시기에 맞춰 가면 금상첨화다. 텔츠 안내 사이트http://www.telc.eu/, http://www.discoverczech.com/telc/index.php4
- 2016-12-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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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서서히 걷힌 안개 속에서 드러난 리기 산의 비경
- 스위스 중부의 호수 도시, 루체른. 로이스 강에는 14세기의 목조다리 카펠 교가 긴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변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밤이 되면 호수 물길 따라 흔들리는 야경이 더 멋지다. 스위스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난 곳. 1897년 여름, 이곳을 찾은 마크 트웨인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격찬했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루체른 호수의 또 다른 이름은 ‘월광소나타’ 루체른(Luzern, 해발 437m)은 취리히와 인터라켄의 중간쯤에 있다. 알프스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루체른의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리하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음악가는 물론 빅토르 위고, 괴테, 실러, 바이런 등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월광소나타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루체른이 있다. 베를린 태생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음악평론가인 루트비히 렐스타프(1799~1860)가 베토벤의 제1악장에 대해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고 평했기 때문이다. 루체른이 외부에 알려진 시기는 8세기, 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다. 도시 명은 켈트어와 로망스어가 혼합된 로체리나(Lozzerina, 늪의 거주지)에서 유래했다. 13세기에는 장크트 고트하르트 고개(2108m)가 개통되면서 알프스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고, 1332년에 합스부르크로부터 독립했다. 루체른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은 로이스 강을 길게 잇는 목조다리 카펠(Chape, 204m) 교다. 1333년에 축조된 카펠 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 지붕이 있는 다리의 천장에는 축조 당시 새겨진 그림과 글씨가 이어진다. 다리 중간의 팔각형 석조물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 겸 방위 탑이었다. 카펠 교 위쪽으로는 1408년에 세워진 슈프로이어 교(Spreuerbrucke)가 있다. 바그너가 결혼한 마테우스 교회와 빈사의 사자상 로이스 강과 루체른 호수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Altstadt) 골목이다. 곡물 시장, 와인 시장, 뮐렌 시장 등이 있는 그곳에 마테우스(matthaus) 교회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코지마(1837~1930)가 결혼식(1870)을 한 곳이다. 리스트의 딸이었던 코지마는 당시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었다. 바그너와 24세나 나이 차이가 났던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기 전에 이미 바그너의 아이를 낳았다. 어쨌든 둘은 평생을 같이했다. 또 빙하공원으로 가면 ‘빈사의 사자상’(Lo ¨wendenkmal)이 있다. 작은 연못 위 바위 절벽 속에 들어앉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상이다. 이 사자상에는 스위스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좁은 국토의 스위스는 농경지가 적은 산악지대인데다 지하자원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젊은이들은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외국 부대 용병으로 참가해 돈을 벌어야 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던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다른 국가들의 용병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죽어간 이유는 단 하나. 후세들에게 용병자리를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선대의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은 1820년,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 발센이 시작해 1821년 독일 출신인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자의 발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했다. 또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눈길을 끄는 호프 교회(Hofkirche)가 있다. 735년, 이 도시에 처음 세워진 수도원이다. 17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1645년에 후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525년,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두 개의 첨탑은 화재 때 피해를 입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1640년에 495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건물 주변으로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묘석들이 남아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루체른 호수 따라 찾아가는 리기 산 루체른에는 멋진 리기(Rigi, 1797m) 산과 필라투스(Pilatus, 2132m) 산이 있다. 특히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리기 산은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Vitznau)까지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유람선 여행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위스 풍치를 보여준다. 호반을 정원 삼은 300~400m의 언덕 위에 터전을 잡은, 아름다운 스위스 가옥들과 전원 풍경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작은 도시, 비츠나우에 도착하면 산악열차 리기 쿨름(Rigi Kulm)이 눈앞에 있다. 리기 쿨름은 1871년 5월 21일에 개통한 유럽 최초의 산악열차. 리기 산 중턱 마을인 리기 칼트바트(Rigi Kaltbad, 1453m)를 거쳐 30분 정도 가면 정상에 이른다. 그곳에는 1861년, 스위스 최초로 산정에 세워진 호텔이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다. 여러 갈래의 산책로(30km)를 따라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키나 썰매를 탄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르는 이유는 멋진 풍치를 보기 위함이다. 미텔란트(Mittelland) 지방의 13개 호수와 켜켜이 이어지는 산들이 파도를 친다. 마치 ‘천국이 여기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산은 리기 칼트바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Weggis)로 10여 분 내려오면 된다. 435m 고지에 위치한 휴양도시 베기스는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Travel Tip! 현지 교통:루체른 선착장에서 비츠나우까지 매시간 유람선이 운행된다. 스위스 패스(www.swisstravelsystem.com)가 있으면 무료. 시내는 걸어 다니면 된다. 맛집과 숙박:호수 주변이나 구시가지에 레스토랑이 많다. 강변 옆의 라트하우스 양조장(Rathaus Brauerei)은 하우스 비어를 생산하는 곳으로 블론드 비어가 대표적이다. 또 뮐렌 광장에는 대형 쿱(coop) 마켓이 있다. 숙박은 루체른 시내를 이용하면 된다. 리기 산 중턱에 있는 리기 칼트바트 호텔(www.hotelrigikaltbad.ch)에서는 온천욕이 가능하다. 여행 포인트:필라투스 산을 가려면 알프나하슈타트(Alpnachstad) 역에서 등산 철도를 이용해 필라투스 역(2070m)까지 오르면 된다. 눈 덮인 필라투스 산 풍치가 매우 빼어나다. 문의 루체른 홈페이지:luzern.ch 유람선:lakelucerne.ch 스위스정부관광청:myswitzerland.com/ko
- 2016-12-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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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외레순 해협의 매력 도시, 스웨덴 헬싱보리
- ‘외레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웨덴 헬싱보리와 덴마크 헬싱괴르가 인접해 있다. 뱃길로 고작 7km.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배들에게서 선박 통행세를 거둬들이던 황금의 도시. 서로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싸움을 벌이던 곳.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도시이지만 매력은 폴폴 넘친다.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북스테후데가 처음 오르간 연주를 했던 성모교회 스웨덴 남서부 말뫼후스 주 북부의 항구도시인 헬싱보리. 느릿느릿 여유롭게 쿨라가탄(Kullagatan) 쇼핑가를 배회한다. 골목은 넓지만 길지 않고 골목 숫자도 많지 않아 길 헷갈릴 일도 없다. 다행히 하늘은 맑고 햇살도 따뜻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양식의 멋진 생마리 교회(St. Mary)에서 발길을 멈춘다. 100년(1350~1450년경)에 걸쳐 만들어진 이 교회는 단아하면서도 멋스럽다. 경내에는 아름다운 제단이 있고 바닥에는 16~17세기의 무덤 석판이 흩어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창문으로는 옅은 햇살이 스며든다. 2층 발코니에 걸친 듯한 두 개의 오르간 파이프가 시야에 들어온다. 17세기, 청년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이 아련히 스쳐간다. 청년 때는 헬싱보리(1657~1658), 그 후에는 헬싱괴르(1660~1668), 31세부터는 독일 뤼벡에서 40년 넘게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북스테후데는 헨델, 바흐 등 후기 바로크 거장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705년, 20세 청년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곡에 매료당해 아른슈타인에서 뤼벡까지 400마일을 걸어 그를 만나러 갔고 그곳에서 3개월간 머무른다. 당시 북스테후데는 68세의 고령으로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단, 자신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북스테후데의 딸을 본 바흐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북스테후데의 딸은 엄청난 박색이었다고 한다. 헬싱보리의 위대한 영웅 ‘망누스 스텐보크’ 중앙광장으로 나가 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시 청사를 본다. 네오-고딕 형식으로 지은 시 청사 건물엔 63m의 탑이 있고 매일 차임벨이 연주된다. 1967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축물이다. 시 청사 앞에는 헬싱보리의 전쟁 영웅인 망누스 스텐보크(Magnus Stenbock, 1665~1717)의 말 탄 동상이 있다. 보기만 해도 위상이 느껴지는 스텐보크는 헬싱보리 전투(1710년 2월 28일~3월 5일)에서 덴마크를 물리치고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중앙거리를 벗어나 체르난(Ka˙˙rnan) 요새를 향해 오른다. 오르는 길목에 거인 골리앗의 목을 잘라 짓누르고 있는 다윗상이 있다. 헬싱괴르를 째려보면서 ‘넘보면 죽는다’고 위협하는 느낌의 모습이다. 성벽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짙은 가을색이 내린 요새에 탑 한 기(높이 35m, 폭 15m)가 우뚝 서 있다. 원래 14개였으나 전투 때 다 부서졌다고 한다. 체르난 요새는 덴마크령일 때인 1310년에 짓기 시작해 1320년에 완성된 감시탑, 방어탑이다. 19세기에 개·보수해 원형을 복원했고 1967년에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둔커 기업가, 웃손 건축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을 만나다 요새를 비껴나 외레순 해협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방파제처럼 길게 이어지는 위티 다리의 이름이 재미있다. 세계적인 조각가 칼 밀레스(Carl MIlles, 1875~1955)가 만든 긴 석조물 꼭대기의 천사 조각상을 고개를 외로 꼬고, 눈을 치켜뜨고 쳐다본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둔커문화센터(Dunkerskulturhus, www.dunkerskulturhus.se)도 기웃거린다. 이 문화센터는 전시, 공연, 연주회 등이 열리는 종합예술센터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한 요른 웃손(Jorn Utzon, 1918~2008)의 아들인 킴 웃손(Kim Utzon, 1957~현재)의 작품. 웃손 집안은 3대가 유명한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둔커하우스는 헬싱보리의 기업가이자 사업가인 헨리 둔커(1870~1962) 가의 소유다. 둔커 일가는 고무공장을 1981년에 짓고 고무장화를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헬싱보리 대극장(1921년 개장) 앞에서 만난, 해학이 넘치는 햄릿 돌조각 표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길 건너의 대극장을 바라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1918~2007) 감독을 생각한다. 1944년, 26세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이 극장의 전임 연출가가 된다. 그의 첫 직장이었다. 당시 말뫼후스에 새 극장이 생기면서 헬싱보리 극장은 존폐위기 상황. 그는 부임해서 시나리오 을 썼는데 영화화됐다. 다음해(1945년)는 라는 작품을 첫 연출했다. 2년간 머무르는 동안 그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받았다. 보조금은 되돌아왔고 그는 본격 영화감독이 되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영화인들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작품들. 그가 머물렀던 집, 담벼락 사진 속의 젊은 감독은 예리한 눈빛이었다. ◇ Travel Tip! 가는 방법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운항하는 직항이 없다. 핀란드 헬싱키와 서울 간 직항노선은 있다. 헬싱키를 경유해 페리 여객선을 타고 스톡홀름을 기점으로 헬싱보리까지 이동하면 된다. 헬싱보리에서 스칸드라인을 타면 5분 만에 덴마크 헬싱괴르에 도착한다. 스칸드라인은 매시간 20분 운항된다. 현지 교통 도시가 작아서 도보로 다니면 된다. 통화 정보: 스웨덴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지만, 유로화가 아닌 스웨덴 크로나(SEK)를 공식 통화로 사용한다. 현지 은행이나 ATM을 이용하면 된다. 맛집과 주류 헬싱괴르 마리 성당 주변이나 쿨라가탄 거리의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스웨덴은 주류 숍이 따로 있는 것도 특색. 코파르베리(Kopparberg, 사과맥주, 7%)가 맛있다. 언어 공용어는 스페인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잘한다. 헬싱괴르 여행 정보사이트 www.helsingborg.se 주변 연계 여행지 구스타프 아돌프(Gustav Adolf, 1882~1973) 6세와 첫 번째 왕비인 ‘코넛 공녀 마거릿(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1882~1920)’이 사랑한 여름 궁전인 소피에로 궁전이 있다. 소피에로 궁전은 오스카르(Oscar, 1829~1907) 2세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받았다. 아돌프 6세와 마거릿은 식물에 관심이 많아 궁전을 영국식 정원으로 가꿔 ‘스웨덴 정원 꾸미기’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소피에로 궁전은 현재 카페로 이용되고 있으며 헬싱보리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 2016-11-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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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론 알프스의 동화 속 호수 마을 ‘안시’
- 프랑스 남동부, 론 강과 알프스가 합쳐진 지역을 ‘론 알프스(Rhone-Alpes)’라고 한다.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07m)이 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접경지대다. 스위스 제네바와 이탈리아 토리노, 밀라노와 가깝다. 이 일원을 사부아(Savoie)라 일컫는데 안시(Annecy)는 오트 사부아(Haute-Savoie) 주의 중심 도시다. ‘안시’는 동화 속에서 꿈을 꾸는 듯한 마을이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첫 방랑길에 오른 16세의 루소와 바랑부인이 만난 골목 프랑스 리옹에서 출발한 열차(ter)가 안시에 다다를 즈음, 종일 내리던 가을비는 서서히 멈추고 알프스 산맥에 걸친 구름은 빠르게 하늘로 퍼지고 있다. 안시 역에서 멈춘 기차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론 알프스를 기대고 사는 안시는 1860년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좁아진 티우(Thiou) 운하 사잇길에서 장 자크 루소 골목으로 접어든다. 생 피에르 성당(Cathe´drale Saint-Pierre) 옆 작은 마당에는 루소의 흉상이 놓여 있고 이런 문구가 있다. “Jean-Jacques Rousseau rencontrait Ici Madame de Warens(장 자크 루소가 여기에서 바랑 부인을 만났다).” 의 저자로 잘 알려진 루소(1712~1778)는 무작정 16세에 고향 스위스 제네바를 떠나 방랑길에 나선다. 그가 처음 도착한 도시가 안시였다. 그날 성당에서 하룻밤을 보낸 루소는 다음 날 운명의 여인 바랑 부인을 만난다. 그가 ‘엄마’라고 부르던 이 부인은 29세로 루소와는 13년 차이가 났다. 루소는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일이 잘 안 풀리면 바랑 부인을 찾아오던 그 관계는 13년간 이어진다. 바랑 부인은 루소의 후견인이자 연인, 스승이었다. 그의 암흑기나 다름 없던 청년기 추억을 남긴 곳이 안시였다. 티우 운하에서 만난 동화 속 올드 타운 루소 거리를 비껴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소로로 접어든다. 티우 강 구 시가지(Viellie ville) 속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는 꽃으로 치장한 카페,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12세기에 지은 중세풍의 건물과 작은 운하가 어우러진 골목은 마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 주황색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들 사이로 운하의 물결이 일렁거리면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내 마음까지 넋을 놓아 버린다. 운하 양쪽을 잇는 페리에르(Perriere) 다리 근처에는 12세기 초에 지어진 팔레 드 릴(Palais de L'lsle)이 있다. 안시를 소개하는 엽서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운하 한가운데 건축된 건물은 ‘섬의 궁전’이란 뜻이다. 제네바 공작의 거처였던 이곳은 이후 행정관청, 법원청사, 조폐국 등으로 사용되었다. 중세 시대와 2차 세계대전 때는 감옥으로도 쓰였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운하 끝,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헌신회가 보이면서 넓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깊은 호수에서 안시를 조망하다 둘레가 약 40km인 넓디넓은 안시 호수(Lac d’Annecy) 위 저 멀리 산정의 구름들이 하늘로 향한다. 안시 호수에 알프스 산의 반영이 비친다. 유람선은 정박한 채로 있고, 시뉴 섬(Ile des Cygnes)에도 가을색이 짙어지고 있다. 큰 정원을 끼고 에둘러 난 호숫길에는 프랑스의 의사이며 화학자인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Claude Louis Berthollet, 1748~1822)의 동상이 있다. 그는 안시 근처의 탈루아르 몽맹(Talloires-Montmin) 태생이다. 또 바스(Vasse) 운하의 시작점에는 사랑의 다리(Pont des Amours)가 있다. 마을 언덕 위에는 12~16세기에 지어진 안시 성이 있다. 제네바의 영주들과 느무르 공작들의 거주지였던 이 건물은 1953년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현대미술과 종교미술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인적 없는 골목을 따라 걸어 오르면 안시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다. 그곳에 성모 방문 수녀회(Basilique de la Visitation) 성당이 있다. 작고 조용하며 고풍스러운 안시 가옥의 지붕들을 조망하면서 사르르 상념에 빠져든다. ‘난 지금 그림책에 있는 프랑스 동화마을에 있는 거야’라고 말이다. Travel Tip! 현지 교통편 인근 도시 리옹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2시간 정도 소요 된다. 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안시행 정기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음식과 숙박 관광도시인 만큼 음식들이 맛있다. 퐁듀 등 사부아 지역의 전통 요리(사부아야르드, Savoyarde)가 특색이다. 일요일에는 노천시장이 열린다. 고급 휴양도시여서 명성 있는 국제 호텔은 물론 작은 가족적인 호텔들이 있다. 기타 정보가을에는 안시 이탈리아 영화 축제(10월), 사과와 꿀 페스티벌(11월) 등이 열린다. 겨울에는 알프스 산맥 능선에서 스키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안시의 스키 리조트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동계스포츠의 메카이도 하다. 오트 사부아주 웹사이트(www.haute-savoie.gouv.fr)
- 2016-10-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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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람 PART2] '우리에게 책은 무엇인가?' 책의 집, 여백서원(如白書院) 주인 전영애 서울대 교수
- 여백서원(如白書院)의 주인장 전영애(全英愛·65) 서울대 교수에게 “정말 나이가 안 들어 보이신다”라고 말하자 “철이 안 들어서”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각박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서원이라는 고풍스러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철이 안 든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서원에서 확인한 책과 책의 가치에 관한 문답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의 여백서원(如白書院)은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아버지의 호 여백(如白)을 빌려 와 ‘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이 공간에는 전원의 한적함과 생명력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늦은 매미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소장한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부터 이뤄졌다. “우와, 책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요. 그런 거 알아 뭐해요.(웃음)” 서원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다 전 교수는 올해 모교인 서울대에서 2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2009년에 국내 최초로 괴테 시 전집을 번역하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는 등 독일문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탄탄히 쌓은 그녀에게 아쉬운게 있는지 궁금했다. “늘 그렇죠. 절대적인 낙원이 어디 있겠어요. 이곳도 사람들 보고 숨 좀 쉬라고 만들었지만, 언제나 위협이 있죠. 예를 들면 여기에 조경을 잘 해놓으니까 주변에서는 농사도 못 짓는 땅인데 비싸게 내놓고. 갑자기 수영장 딸린 별장을 짓는다는 등 뭐 그런 얘기들도 있고. 도리 없죠.” 못다 한 걸 물으니 개인이 아니라 서원을 먼저 생각한다. 서원의 완성을 떠올린다. 전 교수에게 여백서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세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더 바랄 게 없어요. 조경하시는 분도 오고, 을 읽으시고 암 치료 받는 분도 오시고. 그분들 중에 놀라운 분들이 많아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리 쳐도 귀한 분들이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여기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그래요.” 전 교수는 만난 사람들에 대해 연신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거듭했다. 마치 세상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 좋은 분이어서 순전히 조상 덕에 잘 사는 게 아니냐며 웃음 짓기도 했다. 귀하게 여긴 책에서 느낀 힘 전 교수는 오래된 보자기에 싸 놓은 책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먼저 어머니(김한섭)의 책. 1990년에 작고한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평생 고생만 한 그 어머니가 필사한 책이 있다. 배움에 대한 욕망이 컸던 어머니는 책이 귀했던 시절, 한지에 책을 베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외웠다. 소설본, 조선시대 가사를 적은 두루마리들이 전 교수의 손에 남았다. 그리고 아버지(전우순)의 책.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60대 후반에 등산을 시작해 90세까지 매년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의 조부는 소수·도산서원장을 지낸 유학자인데, 250년 전 괴테의 글은 줄줄 읽는 딸이 증조부의 글을 못 읽는 게 안타까워 조부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1000장의 종이에 붓으로 썼다. ‘91세 우순이 피로 번역하고 쓰다’라고 서명한 번역 작업을 2011년 6시간 반에 걸친 담도암 수술을 받은 뒤 마무리하고 6개월 만에 별세했다. 여백서원에는 괴테의 초간본(1819), 희귀본(1853)을 비롯한 200여 권의 독일문학 관련 서적이 있다. 바이마르 괴테학회 재정 감사였던 홀레씨는 별세하기 직전 다시 전 교수를 식사에 초대했고, 며칠 후 “당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좋겠다”면서 항공편으로 자신의 장서를 부쳐 왔다. 홀레씨가 임종을 앞두고 정리를 해서 보낸 것이다. 다들 훌륭한 사회인들인 당신 자녀들도 있는데 홀레씨는 가장 귀중한 책들을 전 교수한테 보냈던 것이다. “그 책들을 누구에게 보내야 가장 귀하게 읽히고 잘 보관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11일 동안 그 집에 쌓인 수많은 편지를 보고 여러 일화를 들으면서 그의 생애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지요.” 여백서원에는 이 책들과 함께 전 교수가 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동독 출신 시인 라이너 쿤체의 책, 학문의 스승으로 모시는 헨드릭 비루스 교수의 책, 자신이 쓰고 번역한 책, 교양수업 ‘독일 명작의 이해’를 수강한 제자들이 종강 때 각자 한 권씩 만든 책, 서원에 다녀간 사람들의 책까지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전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이처럼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 시인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책이 있는 집, 서원에서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고. 힘들면 책을 읽어요 전 교수는 몸이 힘들면 책을 읽고 책을 읽다 머리가 아프면 몸을 움직인다. 그녀는 글을 알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려고 배우거나 출세하려고 배우는 건 너무 불쌍하다고도 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사람이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을 읽는다는 건 상당히 많이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나이 먹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무 거나 읽어도 좋은 거예요.” 그녀와 괴테의 인연은 남다르다. 어떻게 괴테를 접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중학교 때 어디선가 시를 하나 봤어요. 그때는 괴테도 모르고 시 제목도 몰랐어요. 그런데 괴테가 쓴 이라는 만년의 시집이 굉장히 중요하고 정말 어렵거든요. 그 책 한 권을 다 읽으니 끝에 괴테가 그 시집에 넣지 않고 버린 것을 편집자가 넣은 시가 몇 편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중학교 때 봤던 시가 들어 있는 거예요. 하도 놀라서 중학교 때 읽은 그 시가 어떻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까,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그 시를 분석하는 게 제가 독일의 출판사에서 낸 괴테 연구의 첫 페이지입니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괴테의 시 중학교 때 본 시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남아 있는 괴테 시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괴테 본인이 많은 힘을 거기에 쏟은 거예요. 그게 읽는 사람에게 다가온 거죠. 놀라운 체험이었어요.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건 하나도 안 썼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평생 연시를 썼어요. 그렇다면 평생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 저지른 게 아니고 아름다운 글을 남김으로써 그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전 교수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숭고한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괴테가 전 교수에게 어떤 롤모델로 작용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다. “괴테에게서 탐나는 점이라면 자만이 아닌 자긍심이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계단을 꼭 뛰어다녀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스포티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바쁘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계단을 뛰어다니는 건 계단을 걷는 게 힘들어서예요. 물론 괴테가 계단을 뛰어다니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생활 태도가 그랬어요. 힘든 게 있을 때 그렇게 극복하더군요. 그게 자긍심이죠. 눌리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 세상을 대하는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죠.” 우리 의젓하게 살자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드니까,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잘하시는 분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의젓하게 살아야 해요. 옆도 좀 돌아보고. 애들이에요? 울기만 하면 돼요?” 최근에 흔히 쓰이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녀는 매섭게 비판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치고, 우리를 누가 여기에 넣은 건가요? 우리가 만든 건데. 금수저, 흙수저… 뭐 어쩌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건 다 알지만 누구나 어려워요. 그런데 승복이라는 게 없고 ‘넌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난 재수 없어서 이러고 있어서 너 미워’, 이거 아니에요? 나보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돌아보면 나도 힘을 얻고 그러는 건데 애들처럼 찡찡거려서 되겠어요? 부딪혀서 아프면 자기가 부딪힌 거지 그게 기둥이 때렸어요, 땅바닥이 때렸어요? 자꾸 남 탓하고 여건 탓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정서가 그렇게 가는 것 같아서…. 남 탓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잘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건 못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우리 좀 의젓하게 살자고요.” 책이 즐거우면 계속 하고 싶어진다 서원 본관을 둘러보니 그녀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만든 책들이 보였다. 한 학기 교양 수업을 듣고 만든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들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교재가 없고 시험이 없는 대신, 각자 학기말에 교재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공부 철학이다.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 정도로 제가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요. 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독자들이 물어보는 말, 손주가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 읽게 하느냐는 고민에 대해 전 교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려 하면 읽지 말아야죠. 왜 읽어라 마라 해요. 아이는 책 읽는 시간이 즐거우면 나중에도 즐겁게 책을 읽게 돼요. 전 아무리 바빠도 잘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줬어요. 아이들도 그 시간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책에 익숙해졌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 배우라고 들들 볶으면 아이들은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라 들들 볶는 걸 배우게 돼서 대대로 들볶게 돼요. 그러나 엄마가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 애들도 피아노를 치죠. 그걸 왜 억지로 시켜요? 책을 같이 재미있게 읽으세요. 즐거우면 즐거운 시간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어지죠. 그런데 즐거운 시간이 안 만들어지니 책과 멀어지는 거죠.” 고서의 향기를 품고 즐거움과 보람은 전 교수가 지향하는 공부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해졌다. “사람들이 운동이 중요하다는 거 다 알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고도 안 하기도 하고. 하지만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노동이에요. 노동을 하면 보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일을 안 시키면 약해져요. 제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현관에서 냉장고까지 우유를 배달하는 거였어요. 자기가 우유 배달을 안 하면 온 식구가 우유를 못 먹게 되죠. 얼마나 보람 있어요?” 전 교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말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대신 ‘올바른 목적이 있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이 그녀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지금 여백서원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녀다웠다.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은데요. 저는 젊었을 때도 나이 들기를 소망했어요. 언제나 지금이 좋은 때여서, 두려움 등의 온갖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고서(古書)의 기품이 나는 전 교수 같은 분들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으면 그게 바로 세상이 나아지는 길이 아닐는지. 여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이 서야 나라가 선다’던 함석헌 선생의 문구가 맴돌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모교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올해 은퇴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 , (공저), , , , , ,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16-09-30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