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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뉴얼
- 회식하고 오는 길 잠실에서 8호선 전철을 탔다. 일반석 빈자리는 있었지만 경로석은 만원이라 습관대로 문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석촌, 송파 지나 가락시장역에서 승객이 내리고 탔다. 대개 전철은 승객이 내리고 타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문이 닫히고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시간이 지났지만 문이 안 닫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다른 승객들도 궁금증이 났나보다. 왜 안가지? 에이 무슨 일 있으면 방송하겠지. 마침 문가에 서 있었기에 슬그머니 목을 빼고 밖을 쳐다 보니 걸음 거리가 많이 불편하신 할머니 한 분이 전철을 타시기 위해 걸어오고 계셨다. 대단히 불편하신 듯 천천히 오시는 것이었다. 밖을 보고 있던 저는 할머니께 응원을 보냈다. 할머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할머니께서는 한 치 머뭇거림 없이 계속 전철 출입구를 향해 전진 하신다. 승객들이 더욱 웅성대기 시작한다. 드디어 할머니께서 타셨다. 재보지는 않았어도 평소 출입문 닫히는 시간의 2배는 족히 걸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도 할머니 자리에 앉으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정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철. 아!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태워드리기 위해 문 여닫기 담당 기사분이 시간을 끄셨나보구나. 크게 보면 그 시간만큼 다른 승객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나, 다른 한편으론 기사분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지하철은 지하철대로 나름의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필자 생각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기다렸다가 문을 닫으라는 사항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할머니 한 분을 위해 시간을 지연시킨 것은 이 열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뒤에서 오는 열차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어느 승객은 초를 다투는 시간개념의 급박함도 있을 수 있다. 열차를 개인적인 개념으로 지연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사 분은 문책 받을 사항을 저지른 것이다. 기사분도 문책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 사람이 사는 전철. 약자를 배려하는 전철. 지하철공사에 상신하고 싶어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되어 하지는 못 할 것 같다. 하루를 흐믓하게 해 준 기사분이 고맙다 덜컹, 아차 졸았구나. 내려야지, 꿈이었구나.
- 2016-08-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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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끼는 필요하다
- 자리끼=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 여러분은 잠자고 일어나 무엇을 가장 먼저 하나. 많은 사람이 잠자는 동안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주고 위와 장의 활동을 촉진시켜 배변활동에 도움을 주면서 식사 전 위산이 과하게 나오는 것을 방지해주어 아침식사전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고 알고 있어서 물 한잔은 대부분 모든 분들이 갈증때문이라도 잠잔후 아침이면 꼭 마신다. 예전드라마에서는 꼭 연세드신 부모님 머리맡에 조그만 쟁반에 주전자와 컵 이 놓여 있고 꼭 어머니나 며느리가 준비하여 안방 부모님주무시는 자리옆에 두고 나가는 장면이 많았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잠자다말고 근심에 찬 일이 있으면 더더욱 컵에도 안 따라마시고 주전자들고 바로 마시거나 하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요즘은 인기 TV프로그램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젊은 남자 인기배우 차승원이 자고 일어나 자리끼를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건강에 관해 특별히 관심이 없더라도 잡지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의사분들의 말씀 중에 공통적으로 많이 나오는 식품은 콩,들깨,우유,야채,계란,물등이 공통분모로 나오는 단어이다. 그 외에 최고의 교집합은 역시 물이다. 물을 평소 많이 마시라고 한다. 커피나 차를 비롯해 각종 음료도 수분이기에 수분을 이미 많이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의사분들의 말은 귀에 쏙 들어오는데 몇 년전 당뇨판정을 받고 더욱 신경써서 자리끼를 준비하고 잔다. 당뇨판정받은 사람을 물론 수시로 입이 마르는 노인들에게는 필수품이다. 옛날처럼 사기이나 스텐국그릇을 준비하지 않아도 요새는 아이들 이유식컵중에 빨대꽂혀있는 것이나 카페에서 판매하는 워터보틀을 준비하여 머리맡에 해놓으면 어르신들이 주무시다말고 목이 마를 때 귀찮다고 주무시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일을 미리 막았으면 한다. 이에 맞으면 어느분들은 이온음료를 자리끼로 대신하여 드시는 분들도 많다. 자리끼라고 모르고 먹는 분들도 많지만 실제로 샬라라한 음악과 함께 젊고 아름다운 손예진이 자전거타고 등장하던 그광고에서의 국민이온음료 제품설명서에도 자리끼에 유용한 수분공급용임을 밝혀두고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많이 마셔도 오히려 지장있다고 한다. 몸의 균형을 주게 꼭 잠자기전 배우자나 부모님혹은 본인을 위한 자리끼를 준비해보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을 권한다. 아니면 안부전화할 때 자리끼 준비해 두시고 주무세요 라고 하면 자식의 배려심에 감동하고 아주 좋아하실 것이다. 살아계실 때 생각못한 말이 왜 이리 돌아가신후 아쉬운 내용이 많은지 생각하며 본인을 위해 자리끼를 나를 위해 준비한다.
- 2016-08-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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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함에 대한 나의 소고(小考)
- 길바닥에 나 뒹구는 주인 없는 명함을 주어서 찢은 후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에는 순간이나마 서로의 성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필요 없다고 분신과 같은 남의 명함을 길바닥에 던져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남도 내 명함을 짓밟게 될지도 모릅니다. 길바닥에 명함이 던져 졌다는 것을 명함 주인이 모르니까 모르면 약이라고 그나마 다행입니다. 명함을 주고받는 면전에서 명함 예절이 너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수모를 당한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와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런 인사 예절이 학교 수업에도 없고 부모로부터 배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터득한 명함에 대한 나의 예절을 말하고자 합니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는 일어서서 걷 옷을 입고 단추를 채우고 단정한 자세에서 주고받아야 합니다. 명함 집에서 깨끗한 명함을 건네는 것이 예의입니다. 구겨진 명함이나 손때가 잔뜩 묻어 더러운 것을 건네는 것은 실례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명함을 공손히 드려야 합니다. 같은 직급이라면 동시에 주고받습니다. 명함을 건넬 때 명함 끝을 잡고 상대가 읽기 쉽도록 드립니다. 내가 명함이 없을 때는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명함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밝혀야 합니다. 남의 명함을 받고 자기 것은 주지 않으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명함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백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주면서 상황 설명을 하는 것도 센스입니다. 명함을 받았으면 가볍게 확인을 해야 신뢰감을 줍니다. ‘아! 기술과장님이시군요’ 또는 ‘사무실이 방배동에 있군요.’ 라고 하면 나에게 관심을 표현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또 이를 빌미로 대화를 풀어갈 실마리도 됩니다.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도 발음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한자 이름의 발음을 물어봐도 실례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름의 한자를 몰라서 물어보기는 좀 쑥스럽지만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물어봐야 합니다. 지레 짐작으로 그 글자일 거야 하고 틀린 이름을 계속 부르면 더 망신입니다. 내 이름자의 한자가 어려운 자가 있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압니다. 상대가 멈칫하는 표정을 지으면 ‘무슨 자 인데 잘 안 쓰는 글자입니다.’ 라고 말해주면 배려 깊은 사람으로 점수를 따고 들어가고 이름을 잘못 부르는 어색함도 예방됩니다. 명함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그냥 넣어버리거나 책상 한 구석에 제쳐 놓는 것도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입니다. 대화 중에는 테이블 위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일어설 때 곱게 챙겨야 합니다. 내 명함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말은 안 해도 상대방은 관심을 갖고 곁눈질로 지켜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명함을 잡고 대화에 열중한 나머지 명함을 구부리기도 하고 책상을 명함으로 탁탁 치는 사람도 봤습니다. 아주 몰상식한 행동입니다. 상대가 아랫사람이거나 약자인 경우 어쩔 수 없이 수모를 당하고 있지만 속에서는 울화가 부글부글 끊고 있습니다. 직장이 없는 시니어들이 과거 경력을 화려하게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슬퍼 보입니다. 막연한 ‘삶길 전문가’ ‘행복전도사’ 라는 추상적이 직명도 추천할 일이 아닙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넣은 간결한 명함이 후한 점수를 받습니다. 아니면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곧 귀촌 예정입니다.’와 같은 미래 희망을 담는 것은 좋습니다. 혹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명함 예절이 인간관계의 처음을 열어갑니다. 명함을 볼 때마다 명함 주인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다시 상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2016-08-0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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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을 처음 시작하도록 권유해 준 분
-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거 같다. 필자가 40세 넘어서도 화장기 없이 용감하게 다녔더니 조금 위인 꽃꽂이선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장은 왜 안 하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자연스러운 게 좋고 편해서 그런다고 궁색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의 얘기가 “그러면 안 된다”며 “화장을 곱게 해야 여자가 비로소 된다“고 했다. 이유는 “당신은 자신의 얼굴을 거의 안 보고도 살아갈 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보게 된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배려로 언제나 밝고 고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게 많았다. 화가 난 얼굴, 수면 부족의 얼굴, 땀이 가득 흐르는 얼굴, 벌레 물린 얼굴 등 봐서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닌 얼굴을 보여 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에 동감을 했고 그다음 날부터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꼭 그의 말대로 정성 들여서 화장하게 되었다. 혼자 화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메이크업 학원’이라는 곳에 입학을 해서 초급과정을 이수했다. 화장을 두껍지 않게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특히 이 말을 들은 후엔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표정관리까지 하고 있다. 팔자 얼굴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어느 방송이 ‘일본에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일까’를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첫째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말을 가장 중시하면서 그렇게 살도록 어려서부터 거의 강요당하고 살아오는 민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 백화점이나 길에서 어머니가 남자아이들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작지만 날카롭게 꾸중하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남에게 이유 없이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것이었다. 예쁘진 않아도 정갈한 모습으로 단장하게 남에게 얼굴 보이는 예법도 하나의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 모두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자주자주 생각해 가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술 먹고 왕왕대는 사람들…. 우리도 조금만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사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을까?
- 2016-07-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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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단보도위에서
- 누구나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건너기 위하여 신호를 기다린다. 파란불이 껴지고 횡단보도위에서는 안전지대라 생각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러나 K씨에게는 두려운 장소이다. 그는 1주일에 2~3 차례 병원에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선다. K씨 집에서 병원까지 1Km 정도의 거리는 가면서 횡단보도를 한 차례 건너야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걸어서 가는데 부담 되지 않는 거리이다. K씨는 7-8차례 쉬었다가 병원까지 간다. 그러다가 횡단보도를 만나면 잔득 긴장하고 빨리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려한다. 그러나 몸이 제대로 반응 하지 못하고 횡단보도 중간에 멈춘 적이 있다. 횡단보도위에 서있는 K씨를 보고 양쪽에서 차량이 빵빵거린다. 잔득 긴장하여 횡단보도 위에서 마비된 다리로 인하여 발걸음을 한 발 자국도 뗄 수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다. 움직이는 차량을 보며 그 공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두려움이 몰려오지만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나가는 차가 빵빵거릴 뿐만 아니라, 창문을 열고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 했어” 등등... 이어서 온갖 욕을 하고 비난하면서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의 야휴에도 그 자리에 서있어야만 했다. 누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차량이 사이에 서있고 싶겠는가? K씨는 스럽게 멈추어선 택시기사와 학생의 도움으로 횡단보도를 겨우 건너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저앉아 있다. 누가 횡단보도를 정해진 신호에 건네고 싶지 않겠는가? 택시기사와 학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k씨에게는 상상하고 싶지 않는 악몽으로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경험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안전지대가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두려워하는 장소로 기억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관심과 배려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도록 잠시 눈을 돌려 보아야하지 않을까? 횡단보도는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횡단보도(橫斷步道)는 도로를 건너기 위한 보행자 시설이다. 하얀 선을 도로와 수평으로 그어 놓은 것과 신호등이 있다. 보통 평면 교차로에 설치되며, 인구의 통행량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도로 한 가운데에 그어 놓기도 한다(위키 백과).그래서 황단보도는 사람들의 안전이 확보된 곳이다. 도로는 보행자를 보호하는 곳이어야 한다. 차량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던 도로가 이제는 보행자중심으로 변화되고 안전지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건강한 사람들은 교통약자를 보면 도와주고 관심을 가지며 도로가 안전지대가 되도록 노력하여야겠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난 K씨의 경험을 보면서 눈을 돌려 더욱 관심과 돌보아야할 이웃이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 2016-07-2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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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 데스크의 ‘독자 전상서’]친구는 ‘배려’의 동의어
- 친구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잔뜩 안기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때론 배에 칼을 푹 박을 수도 있는 게 친구입니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를 보면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는 어린 시절 죽고 못 사는 친구 사이입니다. “친구 아이가”라는 대사가 모든 걸 웅변해줍니다. 하지만 둘이 다른 폭력 조직에 몸담고, 양쪽 조직이 대립하면서 둘은 죽고 못 사는 사이에서 죽이지 못해 안달인 사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준석이 동수에게 마지막으로 화해를 제안하지만 거절하자 준석 쪽 조직원은 동수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동수는 죽으면서 “고마해라, (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애틋한 명대사를 남깁니다. “친구 아이가”와 “(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두 대사는 친구들의 엇갈린 운명을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수십 번은 봤는데 그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였는데 서로 죽일 처지가 됐다면 그 전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우리 조직 생활 접자. 이러다 서로 칼 박겠다. 이 생활 청산하고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모두 행복하게 살자. 서로 하트(♥) 뽕뽕 쏘면서”라고 할 수 없었을까요. 친구란 ‘배려’의 동의어이기 때문입니다. 8월호엔 ‘친구, 이럴 때 의 상한다’는 주제로 동년기자들의 글 네 편이 실렸습니다. 이 가운데 두 편은 친구 사이에서 배려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알려준 글이어서 마음 절절했습니다. 우선 ‘나 보험 안 든다 한마디가 남긴 것은’(소현영 동년기자)이란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명의 기복은 친구의 신뢰를 시험한다고 로마 정치인 마르쿠스 키케로가 말했는데 필자는 바로 그 시험에 걸려 넘어졌다. (중략) 1980년 필자는 직장을 나가면서 대학을 다녔다. 그 친구도 같은 대학에 다니면서 가난을 벗 삼아 공부하는 동병상련을 앓고 있어 서로 의지하며 아주 친했다. (중략) 그러던 중 그 친구가 1990년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보험설계사를 한다는 아픈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에 필자는 다시 연락할 수밖에 없었고, 갖은 설득 끝에 그 친구가 필자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기로 한 날 전화가 걸려와 반갑게 인사가 끝나고 약도를 알려주고 나서 필자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이 ‘근데 숙아, 난 보험은 안 들을 거다’였다. (중략) 보험을 들라고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친구이기에 당연히 만나러 오는 것인데…. (중략) 당연히 그 친구는 집에 오지도, 연락도 없었다. 그러고는 영영 소식이 끊겼다.” 소 동년기자는 ‘배려의 부재’로 친구를 잃었습니다. 친구에게 “얼마나 힘드니. 용기 잃지 말라”는 말 한마디만 던졌어도 그 친구는 아직 곁에 있을 겁니다. 반면 ‘수다쟁이는 못 참아’(백외섭 동년기자)는 산악 모임에서 말로 회원들을 고문했던 친구를 배려로 끌어안은 내용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부디 친구에게 항상 풍성한 배려를 보내길 기대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 합니다.
- 2016-07-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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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의 지혜가 사실일까?
- 나이가 들면 순수기억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상상력이나 추리력은 살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더욱 깊어집니다. 젊었을 때 당연시하던 옛날 고사도 그게 진실일까? 하는 의문도 품게 되고 때로는 교훈적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지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는 아이를 낳은 두 창녀 중 한 창녀의 아이가 죽으면서 시작됩니다. 서로 산 아이가 내 자식이라고 때를 쓰면서 솔로몬 왕을 찾아와서 진짜 엄마를 가려달라고 합니다. ‘너희가 살아있는 아이를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하고 죽은 아이는 남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구나’ 라고 하며 칼을 가져오게 한 다음 ‘ 산 아이를 둘로 잘라서 한쪽씩 나누어 주어라’ 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서 왕에게‘ 인금님 그건 아닙니다. 제발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시고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이때 왕은 ‘그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녀가 저 아이의 진짜 어머니다.’라고 판결합니다. 다시 읽어봐도 어미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야기고 명 판결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제 이런 판결을 했다면 진짜 엄마를 가려내지 못하고 자칫 아이를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판결입니다. 자기자식이 죽어 반미치광이가 되어있는 가짜 엄마는 살아있는 아이가 진짜 자기자식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따라서 가짜 엄마도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말할 확률이 있습니다. 또 아이를 자르면 죽는 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가짜 어머니도 반쪽의 죽은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포기를 선택하고 아이를 죽이자말라고 말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솔로몬의 지혜는 더 이상 지혜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마리 어미 말과 새끼 말이 있습니다. 새끼의 진짜 어미 말을 골라보라는 문제입니다. 정답은 먹이를 주어보면 새끼 말이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는 말이 진짜 어미 말이라고 합니다. 새끼를 배려하는 어미의 본능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사람도 부모 자식 간에 밥을 같이 먹는데 식욕의 본능이 더 발달된 짐승인 말이 새끼와 같이 먹지 않고 새끼가 다 먹은 뒤에 자기가 먹겠다고 물러서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다른 말이 옆에서 먹고 있는데 자기만 물러나 있는 다는 것도 현실성이 희박합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아는 것을 잘 분별하여 슬기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재미있는 비교 글이 있습니다. 두 친구가 길을 걸을 때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지혜가 있는 친구는 신발 끈을 힘껏 맵니다. 지식이 있는 친구는 아무리 빨리 뛰어도 100m 전에 잡혀 먹힌다는 것을 알고 도망가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친구는 옆 친구보다 한발만 먼저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지혜와 지식의 차이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식만 갖고 원리원칙 적이고 기계적인 사고(思考)에만 매몰되면 주위에 사람은 다 떠나고 인생은 단조롭고 낭만이 없어집니다.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의 지혜가 나이든 사람의 덕목의 첫 번째라고 봅니다.
- 2016-07-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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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연결시대, 프라이버시의 미래
- 아주 어렵게 던지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소금과 빛이 된다면 더 없는 기쁨이다. 생각의 차이로 표현하는 가벼운 노크도 상대를 배려한 어쩌면 깊은 예의이다. 정신없이 변화하는 SNS의 시대, 잠시 머물러 여유로운 삶의 한 면목을 공유하고 싶다. 바야흐로 남녀노소 누구나 몸에 품고 있는 핸드폰 시대다. 모든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초스피드로 돌아가고 손과 손에서 황금알을 쏟아내는 거위의 꿈은 불과 얼마 전에 시작되었다. IT 강국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한국은 이제 엄연한 선진국의 대열에 우뚝 서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조그마한 사각형 전화기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잠을 잘 때도 사각형의 위력은 건강을 위협하며 머리맡에 자리하고, 옆에 없으면 마치 전쟁이라도 날것처럼 안절부절못한다. 사람들은 정서적 마음보다 괴상한 문자를 남발하며, 손가락의 움직임은 밤낮으로 의미 없이 활개를 친다. 바빠서 죽겠다는 사람들이 피아노를 치듯 더 신나게 때려댄다. 눈과 손가락도 과로가 넘칠 텐데, 너무 힘들어 고립된 정서가 마치 한풀이를 하는 것만 같다. 손가락 하나로 다 연결되는 세상, 이제는 모두가 미디어 시대이고, 문명이 가져다준 또 하나의 병폐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한 모임의 이름, 브라보 동년 기자단이 있다. 이 모임만 해도 전화기 하나 안에 밴드와 카 톡 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카 톡만 해도 동년 기자단 운영위원회 방, 동년 기자단 제1기 방, 각 분야 별 방, 개개인의 따로 방, 최근에 가입된 연극모임 방, 등등이다. 도대체 불과 한 단체의 카 톡 방안에 또 몇 개의 그룹으로 구분되어 정신이 없다. 그렇다면 있는 것도 털어버려야 하는 이 시대에, 과연 무엇 때문에 그것들이 존재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개인의 의견은 개인 카 톡 방을 조용히 이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가끔씩은 공동의 공지사항 방이 쓸데없는 개인의 감정 공간으로 도배되어 활용이 된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굉장한 피로와 소음이다. 더구나 쓸데없는 동참으로 의미 없는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카톡 카톡 소리는 시끄러워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럽다.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면 역시나 개인의 자랑이나 쓸데없는 잡담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값없는 수다가 오히려 기자라는 가치를 떨어트린다. 본인이 눌러대는 가벼운 손놀림이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마구 누르기 전에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보며 자신을 감추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를 조심스러운 한마디로 살며시 기대해본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다른 사람들 기분을 생각하기에 미안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물론 귀찮고 보기 싫으면 떠나면 되고, 진동으로 바꿔놓으면 아무 상관은 없다. 지금은 개인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주장하는 개인 프라이버시의 시대다. 젊은이들은 특히 더한 것 같다. 기자단 시니어 님들만이라도 자신의 과시나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본인의 할 말을 다하기 전에, 한발 물러서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변별력도 성숙한 아름다운 행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래의 시대는 어쩌면 개인만큼이나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도 더욱 중요하게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동년 기자단이란 과거시험을 통과한 인격체 사람들처럼 일컬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자단의 명함에 어울리는 멋진 자세, 성숙하는 노년의 아름다움이 함께 하기를 정성 들여 기원해본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모든 관계를 맺기 위한 초 연결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전달을 위한 전문 별 중요 공지사항도 초 스피드로 이루어져야 하며, 미래에는 더욱 간결하고 간편해질 것이다. 공유하는 자숙이 바쁜 이 시대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지 않을까 싶어 아주 겸손하게 노크해 본다.
- 2016-07-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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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거 땜에 친구와 의 상한다] 친구, 그 흔들리는 우정”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려와 성의'는 어쩌면 기본이다.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 관계에서는 더욱 그 기본을 지켜야 한다. 어느 날인가 오래도록 간직된 깊은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참아왔던 앙금의 감정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어 폭발을 한 것이다. 조금도 더 참을 수 없는 너그럽지 품성을 뒤늦게 후회도 했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필자는 10여 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를 찾았고, 그 친구는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보챘다. 지난날의 추억과 못 보고 살아온 날의 궁금함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친구는 흘러간 수많은 시간 속에서 모습이 전혀 달라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 조금은 서먹했으나 그래도 옛 때묻은 추억들과 각기 다른 삶의 진한 이야기들로, 삶의 풍파를 넘어선 중후한 아줌마들로서 수다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삶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가끔씩은 눈물도 글썽거렸고, 잘 나가는 아이들 얘기까지 끝이 없었다. 친구는 어느덧, 긴 시간 속에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고 이제는 제주 땅부자까지 되었다며 자랑을 쏟아냈다. 커다란 얼굴에는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그늘이 서려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있는 그대로를 기쁨으로 다 경청해주었다. 대단하다며 축하와 격려도 해주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친구는 밥 먹자는 소리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필자가 먼저 식사하러 가자고 하니 친구는 대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황당한 대답에 말문이 막히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필자는 배가 많이 고팠지만 하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해야 했고,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서 커피값을 내야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친구가 보이지를 않았다. 필자가 먼저 계산을 했지만 조금 기분이 그랬다. 그럴 수도 있다며 일단 이해를 하기로 했다. 얼마 지난 후 또 만나자고 그 친구가 연락했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해서 선뜻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친구는 잘 사는 동네, 5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으로는 달랑 자장면을 시켰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먼 곳까지 자기 편한 곳으로 불러놓고 소박한 된장찌개는 고사하고 도대체 성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친구는 함께 쇼핑을 가자고 했다.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세일을 한다며 그리로 필자의 차를 타고 나갔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지갑을 놓고 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방 속에 아무것도 없다며 돈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했다. 할 말도 없고 어이가 없었지만 순진하게 카드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가 좀 그랬다. 우선 지하 마켓으로 갔다. 싱싱하게 잘 말려진 꼬들꼬들한 굴비가 값이 싸고 맛이 있어 보였다. 필자는 손가락질을하며 어떠냐고 했더니 친구는 너무 좋아하며 아무 생각 없이 엉뚱스럽게도 남아 있는 것들을 자기가 몽땅 다 사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말문이 딱 막혀 입이 벌어졌고 양심이 없는 인간으로 너무 뻔뻔해 보였다. 친구가 어떻게 그 모양으로 변해 버렸는지 앞서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얄밉기도 하고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데, 또 팥빙수가 먹고 싶다며 태연하게 함께 먹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을 수가 있었다. 차라리 필자가 사주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기분이 안 좋기는 했지만 돈이 없다니 도리가 없었다. 마음을 상하게 한 친구와 함께 마주 보며 먹으려니 영 불편해서 옆자리로 옮겨 앉아 횡설수설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았다. 문제는 결정적으로 빵집에서 일어났다. 백화점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반값 세일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 중에 필자가 골라 놓은 것을 자기가 사고 싶다며 얼른 자기 쟁반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아주 큰소리로 “뭐 하는 거야! 네가 친구냐? 네가 사람이야?” 있는 대로 화를 내고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대며 그 자리를 거침없이 떠나왔다. 흥분해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핏발을 세워가며 소리를 질러대긴 했으나 주차장으로 내려와 운전대에 올라앉았을 때는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때까지도 따라 내려 오지 않았다. 정상의 사람이라면 잠시 만나 스치는 사이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있어야 했다. 하물며 가까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배려는 고사하고 나이를 먹은 중년의 성품에는 고얀 욕심만 가득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참아 줘야 할까 싶었다. 그후로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사람이 변해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젊었을 때는 착하기만 하고 순수했던 친구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그리도 당돌하고 얌체처럼 달라질 수가 있는지 필자의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그 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련하게 슬퍼왔다. 오래된 우정이었기에 미련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흔들려버린 우정을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든 탓 일수도 있겠지만 필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제 단순하고 명료하게 싫었다.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남은 시간이 짧기만 한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상대를 위한 배려와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 이제는 고민하고 이해하며, 애써서 만나야 하는 관계의 삶은 심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삶의 가치관이 다른 이상한 친구들은 멀리하고 싶었다. 필자에게도 전혀 상상치 못 했던 일, 아주 오래된 우정이 마음이 상해 흔들리고 있었다.
- 2016-07-0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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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나눔교실 교육을 다녀오다
- 필자는 지난달 6월 23일부터 24일까지 1박 2일 간의 ‘인생나눔교실’ 멘토봉사단 강원권 1차 교육 워크숖을 다녀왔다. 2개월 전 지인의 소개로 사업을 알게 되었고 지원신청서를 접수한 후, 1차 서류 심의와 2차 면접 심의를 거쳐 멘토봉사단 후보로 선발되어 이번 워크숖에 참석하게된 것이다. 인생나눔교실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간단히 소개해 드린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업 지원 및 운영 총괄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멘토 선발과 교육을 담당하며 사업의 전반적인 세부계획을 수립합니다. 전국의 5개 권역(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제주권)에 있는 지역주관처는 멘토 관리와 활동을 지원하고 멘티 기관에 매칭 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튜터는 멘토를 가장 가까이서 지원하는 기획자로 멘토링 프로그램 설계 시 멘토의 경험과 지혜가 멘토링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5개 권역별로 튜터 5인, 멘토 50인 내외를 선발하여 멘티기관(중학교, 지역아동센터, 보호관찰소, 군부대, 북한이탈청소년대상기관 등 총 250개 그룹)과 연계하여 멘토링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동기는 급속히 진행되는 핵가족화와 전통 커뮤니티의 붕괴는 각종 사회문제로 이어져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 세대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결혼, 육아, 취업, 입대 등의 문제가 그리 큰 어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나, 현대에는 초보자들에게 커다란 어려움과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이러한 다양한 문제는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눔·소통·배려의 인문정신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사업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인생나눔교실은 이와 같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고 극복한 숙련(은퇴)세대와 초보자(새내기)세대 간에 나눔과 배려·소통·공감의 인문정신가치가 체계화 되도록 하는데 주요한 목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교육내용은 인생나눔교실에 참여하는 핵심주체인 멘토는 숙련세대, 은퇴세대, 노년세대 등으로 지칭되지만, 고령사회로 전개되는 현대사회 흐름 속에서 멘토로 새롭게 인생2막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변화에 긍정적인 인식을 확장하고, 다양한 환경과 세대 층으로 구성된 멘티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멘토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소양과 마음가짐을 갖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물질적 성장이 정신적 풍요로 이어지지 못하고 점점 더 마음이 빈곤해지는 현재의 안타까운 현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전 세대가 함께 고민하는 과정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사회변화 속에서 전 세대 모두에게 중요한 물음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노년(숙련)세대는 삶을 통해 켜켜이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여러 세대와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인생 선배이자 삶의 길잡이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선배세대의 삶속에 녹아 있는 인문적, 정신적 가치를 다른 새내기 세대와 나누고 교류하며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인생 나눔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교육을 다녀오며 특히 지금까지의 삶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미천한 필자의 경험과 지혜일지라도 봉사하려는 마음과 열정을 되새기는 좋은 기회였다. 인생선배인 시니어 세대가 삶을 통해 쌓아온 지적, 정신적 자산과 몸소 겪으며 체득한 지혜와 연륜은 훌륭한 가치가 있다. 이를 다른 세대들에게 나누고자 할 때 가뭄에 단비처럼 촉촉이 마음을 적시고 세대를 넘어선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 2016-07-07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