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사람이 털북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살갗을 다치지 않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아가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거기에 맞는 옷을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원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질기고 편하고 보기 좋은 옷을 입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사람인데 자기에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잘 어울리는 아름
KBS홀에서 이투데이 초대 신춘음악회 '따뜻한 콘서트'가 있다는 연락을 SNS로 받았다. 곧바로 댓글이 달리고 여러 사람들이 신청했다. 그러나 신청을 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지, 신청을 안해야 도와주는 것인지 헷갈렸다. 한정된 좌석일 경우 안 가는 게 도와주는 일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면 다른 커뮤니티에도 소개해서 여러 사람이 가게 하는 것이 도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사극은 역사 속 인물을 소환해 현재적 의미를 부여한 뒤 생명력을 불어넣고 오늘날의 사람들과 만나게 한다. 그동안 이순신, 정조, 사도세자, 장희빈, 이성계, 광해군, 연산군, 허준, 윤동주, 김원봉 등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새로운 시각에서 극화됐다. 또한 드라마 의 장금처
스마트폰 알람소리를 듣고도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늑장을 부리고 있다. 깊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새벽잠이 들 때면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방바닥에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깊은 잠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니 알람소리가 달가울 리가 없다. 그러나 통근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생으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무턱대고 늑장을 부릴 수도 없으니 주섬주섬 이불을
광화문에 갈 일이 생겼다. 우리 집에서 광화문 방면으로 나가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미아리고개를 넘어 혜화동을 거쳐 창경궁과 창덕궁을 지나며 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반대의 방향으로 국민대학교 앞을 지나 북악터널을 통과해 평창동과 고즈넉한 부암동 길을 거쳐 효자동 쪽으로 가는 방법이다.
버스 창밖으로 복잡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시내를 통과하는 것
동네 당구장에서 정기적으로 동네 사람들과 당구를 친다. 초보자도 있고 대부분 100~150수준으로 배우는 사람들이다. 나는 200이라 고점자 측에 든다. 물론 250도 있으나 200부터 고점자로 불러주는 경향이 있다.
나는 매너에서는 어디가나 흠 잡히는 일이 없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매너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까칠하기로 소문 난 노인인데
고향에 둥지를 틀고 주말부부로 생활한 지도 어느덧 6개월로 접어든다. 아직도 마음은 반반이다. 사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달랑 보낸 시간은 불과 14년이지만 나머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어찌보면 내고향은 서울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없으련만 아직도 고향은 영종도라는 고정관념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고향은 영종도일지도 모르겠다
춘삼월(春三月)이라고는 하나, 산골짝의 계절은 아직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 가깝습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깡말랐고 산기슭과 계곡엔 갈색의 낙엽이 무성하게 쌓여 있습니다. 낙엽 밑엔 미끌미끌한 얼음이 숨어 있어 함부로 내딛다가는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입니다. 저 멀리 남쪽에선 2월 하순부터 보춘화가 피었느니 변산바람꽃이 터졌느니 화신(花信)을 전해오지만, 높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