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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인상학] 삶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색깔이 있다
-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샤워를 하거나 화장을 할 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자기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가끔은 눈에 안 띄었던 점이나 잡티, 기미 등이 발견되어 속상해지기도 한다. 또 좁쌀 모양의 돌기들이 피부 위에 우둘투둘 돋아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얼굴색만 봐도 건강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일면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얼굴색으로 가까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데 지인의 이마 색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어 보였지만 묻기가 조심스러워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직장 일이 많이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의 건강도 좋지 않다며 한숨을 쉰다. 그 고단함과 염려스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취업 준비생들의 이마에는 여드름 종류의 뾰루지가 많이 난다. 이마가 붉은 색을 보이면 심장에 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걱정이 많거나 신경 쓰는 일이 많다. 신경이 예민하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이마를 덮는 헤어스타일은 피부에 붉은 반점 등 염증을 일으킨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마에 붉은 색의 뾰루지가 나면 관상학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특히 여행을 가거나 중요한 업무로 먼 길을 가야 할 때는 이마(특히 머리카락이 나 있는 경계 부분)를 잘 살펴보자. 이마 윗부분이 검은 구름이 낀 듯 어둡거나 뾰루지가 나 있으면 여행지에서 건강이 나빠질 수 있으며 재산 등의 손실을 볼 수 있다. 과거에 필자는 여행 전날 이마에 붉은 뾰루지가 나더니 여행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고 배탈까지 나서 여행을 망친 경험이 있다. 그 후로는 더욱 조심하게 됐다. “연애하고 싶으냐, 눈 밑을 밝혀라.” 어느 회사의 한방화장품 광고 카피다. 눈 밑 살은 와잠(臥蠶) 또는 애교살이라고 부른다. 힘들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왔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고되면 가장 먼저 티가 나는 곳이 눈이다. 빨갛게 충혈이 되고 다크서클이 생기는 것이다. 오랫동안 눈에 이상이 있다면 건강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 건강은 잃고 나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틈틈이 자신이 무리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눈 밑이 어두운 사람은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관계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얼굴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곳은 뺨이다. 얼굴을 전체적으로 빛나게 해주고 건강미를 자랑할 수 있는 부위다. 뺨에 가장 많이 생기는 것은 기미와 잡티다. 특히 뺨에 생기는 기미는 아름다운 얼굴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건강하지 않아요”라고 호르몬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기미와 잡티는 위가 좋지 않을 때 생긴다. 다이어트 부작용이 심할 때 검은 기미가 올라와 고생한 분들은 알 것이다. 필자의 지인도 다이어트 약 부작용으로 위궤양을 심하게 앓고 기미까지 생겨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다이어트도 건강을 먼저 챙기면서 해야 한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데 뺨에 기미와 잡티가 생기면 자신의 위상이나 체면에 손상이 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또 남 일에 휘말려 책임 질 상황이 생기거나, 모함을 받거나, 좋은 일을 하고도 억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열이 오른 것처럼 뺨이 불그스레하게 물들면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의 두 뺨이 붉은 복숭아 빛처럼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관상을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콧방울에 뾰루지가 나면 돈 나갈 일이 생긴다고 걱정을 한다. 콧방울 뾰루지는 원하지 않는 일로 지출이 생긴다는 경고 메시지다. 경미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다든가 지인과 사소한 오해로 다툴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콧방울에 뾰루지가 생기면 가족들에게 돈을 쓴다. 기분 좋게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을 사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지출에 대한 걱정이 즐거움으로 바뀐다.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에 있는 점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입가에 있는 점은 먹을 복을 가져다줘서 좋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늘 “아니요, 빼세요”라고 말한다. 입 주변에 있는 점은 지출을 부른다. 먹을 복은 곧 먹을 것을 많이 사야 하는 의미도 될 수도 있다. 입은 출입(出入)을 담당하는 부분이기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 얼굴에 있는 점이나 잡티는 어둡고 힘든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밝은 기운이 아닌 검은 기운과 같다. 점이나 잡티는 어느 한순간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생긴다. 색깔이 짙을수록 오랜 시간에 걸쳐 생긴 것이므로 원인을 잘 파악해 근심 걱정을 없애야 한다. 붉은색 뾰루지나 반점은 급한 일이 생길 수 있는 조짐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이나 건강상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비립종이나 흰색 얼룩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힘든 일이 생기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 어느 날 피부로 확 올라와 당황하게 만든다. 레이저 시술을 받아도 또 올라오므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얼굴에 흰색이 보이면 놀랄 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침착한 마음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은 입술일 것이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는 강하고 건강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다. 여성의 얼굴에서 입술의 색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밝고 건강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라고 강조한다. 가끔 멋을 좀 알고 좋은 인상을 풍기는 분들이 어둡고 흐린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몇 년 전, 한 여성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늘 회색 또는 보라색 옷을 입고 다녔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색깔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특히 어둡고 빛바랜 듯한 색의 립스틱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립스틱을 밝은 색으로 바꾸시면 안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녀는 바꾸지 않았다. 그 뒤 남편의 사업이 많이 기울어졌다. 립스틱 색깔 때문에 사업이 기울었다고 하면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술은 60세 이후의 운을 관장한다. 우울한 색에 이끌리는 것은 먼저 그 기운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련되고 멋있는 색이라 해도 자신의 건강과 재물과 행복의 기운을 억누르는 색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여성들이여, 건강하고 여유 있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밝고 건강한 색깔의 립스틱을 발라보자. 아름답고 건강한 붉은 입술을 만들자. 내 얼굴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 행복과 건강도 담겨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자. >> 박정희(朴正姬)전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 인상학 교수 혜담 인상코칭연구원 원장으로 기업체와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tv조선 인상학자 패널, 관상학 전문가 패널로 밝고 아름다운 인상미학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 등이 있다.
- 2016-10-2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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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미술관 걸으면서 즐기기
- 최근 걷기 운동을 하면서 서울에 가볼 만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가본 곳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된 곳도 많다. 이런 곳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관람시간을 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입장료가 아주 비싸지 않으면 간 김에 관람을 하는 것이 좋다. 서울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대부분 강북에 위치해 있다. 신흥도시인 서초구, 강남구는 그래서 삭막한 동네다. 강남은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후 새로 형성된 도시라서 역사도 당연히 없겠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짓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려면 시간을 얼마나 잡을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마음먹고 제대로 돌아볼 생각을 하고 나왔다면 한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큰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는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좋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고 싶다면 독립문역 서대문형무소, 이촌역 중앙박물관 및 한글박물관, 삼각지역 전쟁기념관, 한강진역 리움미술관, 풍납토성역 한성백제박물관 등을 추천하고 싶다. 경복궁역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도 규모가 크다. 시청역 근처 서울시립미술관도 있다. 전철로 가기에는 경복궁역에서는 좀 멀지만 부암동 서울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월드컵공원역에서 30분은 걸어야 하는 박정희기념관도 그렇다. 작은 박물관으로는 경복궁역 경찰박물관, 농업박물관, 경교장, 동아일보 신문박물관, 동대문역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제기역 한방박물관 등이 있다. 양재시민의숲역 윤봉길기념관, 강서 쪽에는 허준박물관도 있다. 인사동에는 작은 미술 전시회들이 상시 열린다. 박물관은 귀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으로서 국가나 지자체가 만들기도 하고 개인들이 희사해서 만들기도 한다. 역사가 있는 민족이라면 당연히 박물관이 많아야 한다. 미술관도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전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귀중한 장소다.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전시 관련 홍보물이나 작가소개 등을 미리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너무 빨리 변하고 바뀌는 세상이라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멀쩡한 물건들도 주저 없이 내다버린다. 구식이라거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게 이유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서는 공간 활용이 빤하기 때문에 옛 물건들을 무작정 쌓아둘 수 없어 버리기도 한다. 다듬잇돌 등과 같은 옛날에 흔하던 물건은 다 내다버려서 이젠 골동품에 속한다. 혼수용품으로 집집마다 있던 재봉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옛 물건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옛것들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봐왔던 것을 보는 시니어들과 어디에 쓰는 용도인지도 모르고 보는 젊은 세대들과 관람하는 느낌은 다르겠지만 각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올 가을에는 산책과 함께 박물관,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자.
- 2016-10-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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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인상학] ‘세 번째 스무 살’
- 글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요즈음 신중년이란 말에 어울리도록 멋지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카페나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다과점에 모여 담소를 즐기는 모습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그 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인다. 많은 시간을 지내고 보니 지금 이순간이 가장 소중하기에 최선을 다해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매 순간을 즐겁고 행복한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이다. 주름진 얼굴에 생기 없는 피부는 즐거운 삶의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신(神)이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탱탱하고 밝고 화사한 얼굴을 만들어 주세요’ 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고,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고 부작용도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낡고 색이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우리의 얼굴도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지 말고 우리의 얼굴에서 나이를 찾을 수 없게 하는 비법을 연마해 보자. 작은 노력으로 남들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을 만들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까? 고여 있는 물은 모기와 해충을 키우지만 흐르는 물은 많은 생명이 공존하며 희망이란 단어를 만들어 간다는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의식도 흐르는 물처럼 역동성을 발휘해 보자. 하나, 자주 보지 않던 거울을 다시 보자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멀어지는 것이 거울이다. 거울 속에서 만나는 주름과 탄력 없는 얼굴을 만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의 하나라고 한다. 전장(戰場)에 나가려면 먼저 적의 상황을 알아야 하듯이 먼저 내 얼굴에 나타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강한 몸은 얼굴에 나타난다. 먼저 귀의 색을 살펴보면서 기운(氣運)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아야 한다. 귀의 색이 어두우면 에너지가 고갈된 것으로 무리한 일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 바쁜 일을 잠시 쉰다고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귀의 색이 어두울 때 계속 무리한 행동을 하면 결국은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코끝이 검거나 턱에 어두운 색이 보이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여야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다. 코끝(콧방울)이 검은 것은 원기가 부족한 것이고 턱이 어두운 것 역시 신장 기운이 약해졌다는 신호이니 무리한 외출이나 힘든 일은 자제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 좋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이기에 자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체크해 주어야 한다. 관심은 건강한 삶을 만드는 첫 번째 원칙이기도하다. 둘, 시간을 정해서 물가를 걸어 보자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걷는 것이 좋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한두 번이라도 물가를 걷자.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水]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 것이다. 젊어서부터 물가를 걸었다면 자신의 건강이 걷지 않은 사람보다는 10년 이상 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은 생명을 키워 가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 주변의 생명들에게 힘의 원천을 선물하고 있기에 물가를 걸으며 그 힘의 원천을 받아들이면 생기(生氣)가 저절로 보충 되는 것이다. 필자 또한 물가를 걷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어서인지 건강 보조 식품은 아직은 애용하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이 자부심이기도 하다. 셋, 단호한 ‘NO’가 필요하다 혼자라는 것에 겁먹지 말자. 싫다는 표현을 못하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은 혼자가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하지 않는 일을 마지못해 하고 있는 자신이 화나고 짜증이 나지만 참고 해 주면 상대는 나를 인정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의 ‘첫 번째 스무 살’ 시간에는 강요나 책임감, 두려움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 시절 결정권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두 번째 스무 살’에는 가정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면 지금은 나를 위한 결단은 단호할수록 좋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고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인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야 행복한 것이다. 고집을 위한 고집이나, 내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에 들지 않고 좋아하는 것아 아니면 ‘NO’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가 생길 것이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은 건강하고 여유로움도 함께 하게 된다. 넷, 미래보다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얼굴은 거울 속에 있는 현재의 나이이다. 아끼고 저축하며 부지런하게 살아온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하기에 작은 불안이 늘 내제되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세 번째 스무살’에 시작하여 ‘네 번째 스무 살’에는 아주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자. 무엇을 하든 내가 행복하여야 한다.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만족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얼굴을 보면서 ‘이 부분이 불만이야’란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부분이 내포 하고 있는 것(코=재물, 입=주변 사람들 등)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체크해 보자. 다섯, 변해 가는 내 모습을 인정하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주름일 것이다. 주름은 내 삶의 흔적이라고 늘 이야기 하지만 주름이 있으면 나이 들어 보인다며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먼저 필자의 생각은 주름도 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가의 주름은 많이 웃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고 입을 감싸는 주름[法令]은 재물을 잘 지키고 있다 것이다. 너무 많은 주름이나 어지럽게 여러 방면으로 난 주름은 삶의 고단한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라 없애는 노력을 하여야 하겠지만 좋은 기운을 주는 주름은 단지 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없애려 하지 말자. 지금까지 제 몫을 하고 있던 부분들이 한순간에 날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화려함은 가을 단풍의 선물이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이지만 나무에게는 자신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기간이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빛나지는 않지만 은은한 색으로 화려함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실한 빛은 결코 번쩍이지 않는다[眞光不煇].” 마음의 여유는 얼굴을 밝고 화사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 2016-09-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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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인상학] 빛나는 이마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 삶의 길은 누가 만들어 줄까 하는 의심이 들던 젊은 시절엔 스스로가 개척하여야 한다는 강한 의지 하나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들고 삶의 연륜이란 것이 묻어 있는 지금은 거울 속의 나와 마주하면서 지금까지 만들어 온 시간들을 점검하게 된다. 날마다 보는 내 얼굴이지만 그 얼굴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얼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잘 만드는 것이 보여주는 얼굴이다. 언젠가 TV 공익광고로 ‘당신은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나요’가 방영된 적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지만 자신을 보는 시각은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에 정작 중요한 일은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눈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다. 흔히들 ‘다 속여도 눈은 정직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너무나 영리하기에 훈련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게 관리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눈을 보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기가 한 행동은 스스로 잘 알 수가 있다. 지금의 행동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기에 자신의 행동을 헤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보자. 세상의 중심은 나[我]란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공정한 마음으로 상대를 살펴보는 것이다. 상대를 볼 때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이 이마일 것이다. 이마는 우리 얼굴의 가장 위에 위치하며 하늘과 소통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기에 운(運)이 들어오는 첫 번째 통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운이 들어오면 이마는 밝고 환하게 빛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이마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이마의 주름이다. 세 줄이 뚜렷한 주름은 좋은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유인즉슨, 주름은 편안한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주름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마음고생이다. 심신(心身)이 함께 힘든 상황을 겪었기에 의지력이 강해지고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는 경향이 있어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주름이라는 설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삶에는 힘든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원하는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그 힘든 상황을 감내하는 힘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이마 주름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면 심기를 바로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연습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마를 보면서 상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많이 들어 본 이야기는 아닐 것이지만 우리의 얼굴은 각자의 역할이 있으므로 그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이마는 넓고 작은 동산처럼 둥그런 모양이면 좋은 이마라 할 수 있다. 넓은 이마는 사업 운이나 가정 운 모두 좋다고 할 수 있다. 성격도 포괄적이라 다방면으로 능력을 발휘하며 대인관계도 좋아 많은 사람들과 넓은 관계망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이마가 넓은 사람은 특별히 작은 흉터라도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여야 한다. 자신의 운이 늘 좋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작은 장애물이 도리어 큰 재앙처럼 보여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마가 좁다는 것은 자신의 활동 영역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가서 활동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 요즘의 시대 상황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개발하여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정받을 수 있고 남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그러면 행운이 오는 이마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먼저 이마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 모두 앞이마를 덮고 있다. 불황기에는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고 한다. 옷이 한 시대의 생활상을 대표하는 문화라고 한다면 얼굴은 우리의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마를 가리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면 경제가 어두워진다고 강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마는 하늘의 기운을 받는 부분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으면 밝은 기운을 받을 수 없어 습하고 어둡게 된다. 밝은 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지만 그것을 차단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수험생이나 입사 시험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님에게 늘 당부하는 사항이 앞머리를 내리지 말고 이마를 잘 드러내서 상대에게 밝은 기운을 전달해 주라는 것이다. 유행을 따르면서 즐겁기보다 원하는 일을 성취하는 기쁨과 보람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 이마를 가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머리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우리나라는 유난히 머리가 없는 것을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세계적인 스타 율 브리너는 모두가 멋진 배우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 배우들도 요즘은 자신의 대머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트렌드로 만들어 성공한 경우가 많다. 천기(天氣)를 더 많이 받아서 곧장 내려 보내기에 운의 흐름에서 좋은 기운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마에 난 작은 뾰루지나 상처는 가능한 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일 때 주로 상처가 많이 생기는데, 부모의 무관심으로 상처를 방치하면 그 아이가 자라면서 운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마가 좁고 작으면 생각이 치밀하고 집중적이며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이런 상대에게 활발하고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면 불행해진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영역을 인정해 주고 하고 싶은 연구나 공부에 매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작은 별이기에 스스로 빛을 내면서 살아가야 한다. 먼 곳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별은 모두가 다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진다. 주변에 밝고 빛나는 별들이 많으면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진다.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보태지면 무한대로 소유할 수 있다. 지금 내 이마를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점검해 보자.
- 2016-08-2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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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혜옹주’ 영화를 보고
- 우린 가끔 영화를 본다. 서둘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집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는다. 조조영화는 거의 반값이다. 한 사람 표값이면 둘이 볼 수있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이리저리 쇼핑도 하고 여유를 즐긴다. 평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TV 채널 돌려가며 좀 보다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된다. 아내와 제대로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 언젠가 약속을 했다.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는 영화를 보고, 1년에 한 번은 멀든 가깝든 여행을 하기로... 그래서 지금도 실천중이다. 이번에 본 영화는 덕혜옹주다.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덕혜옹주 영화다. 고종황제의 외동딸로 태어나 귀여움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귀하게 자란 덕혜옹주는 불과 열 세살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종황제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덕혜옹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결국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 왕족과 정략결혼을 당하고, 완전히 한국인들의 기억에서 잊어버리게끔 되었다.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딸을 하나 낳았지만 그 딸 마저도 집을 나간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덕혜옹주는 결국 정신병을 앓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병원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늙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일제는 전쟁에서 패하고 대한제국은 해방이 되어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더 이상 황실을 인정하지 않아 누구도 귀국시키지 않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이런 변동의 시기에 어린시절 덕혜옹주와 약혼할 뻔 했던 김장한이라는 사람의 친형인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에 의해 덕혜옹주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1950년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김을한 기자는 덕혜옹주의 근황을 일본에 살고있었던 영친왕에게 듣게 되었고 이들을 고국으로 귀국시키고자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정신병원에 찾아가 독방에 몰골이 험한채 아무런 의지도 없이 앉아 있는 왕녀를 본 김을한 기자는 백방으로 정부요인들을 찾아 간청하게 되었다. 결국 이승만 정권이 바뀌고, 일본에 들른 국가최고재건회의 의장인 박정희소장의 협조아래 덕혜옹주는 38년만에 병든 육신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 낙선제에서 생활을 하다 1989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끔 정신이 맑았을 때 썼다는 한 장의 낚서가 그의 힘들었던 여생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 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참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나라를 빼앗긴 섦음이기도 하지만, 가장 귀한 몸으로 태어난 한 여성의 불행한 일생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에서는 영화로서의 특성상 독립운동하는 스토리로 만들어 졌지만 한 여성의 한을 느끼게 한다. 몇 해 전 영국 여행길에 영국여왕이 살고 있는 왕궁을 본적이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받고 추앙받으며 왕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부럽기까지 했다. 아직도 왕정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다. 실제 정치에는 개입을 하지 않지만 상징적으로 그들을 온 국민이 존경하고 따른다. 영화가 끝나고 우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나라 없었던 섦음, 한 여인의 불행한 일생,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지금 숨쉬고 있는 이 나라는 우리게게 얼마나 소중한가?
- 2016-08-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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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인상학] ‘마음의 창’ 눈빛이 운(運)을 만든다
- ‘상대방의 눈으로 보고 상대방의 귀로 듣고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 인상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인상학자라는 것을 아는 상대를 만나면 가장 많이 물어 오는 말이 “저는 언제 돈을 벌 수 있어요?”이다. 그러면 “그러게요, 언제 돈을 벌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제일 먼저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다. 그 이유인즉 그 말을 하는 상대의 눈에 얼마나 진실함이 담겨 있는가를 보기 위함이다. 사람의 마음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눈이기 때문이다. 눈은 운을 끌어당기는 첫 번째 관문이다. 먼저 눈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시선이 머무는 곳에 기운이 함께 머문다. 언젠가 자신의 아들이 사업 자금을 보태달라고 한다며 몹시 화가 나서 찾아오신 사업가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주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더 크기에 이번에는 사업이 잘 되어 더 이상 손 벌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분의 눈동자는 크게 확장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작은 시비라도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눈에서 번개가 나오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우려가 현실을 만든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것이 정답이 없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자식이 사업한다는 소리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자신의 노후를 힘든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한다. 어차피 주어야 할 상황이면 의심이나 불신을 하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긍정적이면 부드럽고 편안한 기운이 갈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부정적이고 불편한 기운이 담길 것이다. 우리가 보내는 기운은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와 자신을 행복하게도하고 힘들게도 하기 때문이다. 내 모습은 거울보다 사람들이 더 잘 알아 눈은 자신을 지켜주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늘 만나는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하루를 계획하고 좋은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다듬는다. 눈을 뜨면서 시작한 하루는 많은 상황을 만나지만 먼저 보고 판단하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피하게 만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을 보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삶의 부분이다. 인상을 보는 이유는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상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상대의 눈을 잘 보고 상대의 지금 상태를 파악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상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면 지금의 상황이 싫거나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면서 상대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이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놀랐다는 것이며 곁눈질을 하는 사람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파악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눈의 역할이기도 하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란 말이 있다. 옛 시대에는 거울이 없었으므로 물을 거울로 삼았다. 자신의 모습을 물에다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고 한 것이다. 진정한 내 모습은 물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닌, 상대의 눈에 비친 모습이 진정한 내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눈은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향기가 난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변을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빛에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려한다. 희망사항이지만 먼저 사랑한 만큼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매의 눈’으로 돈의 흐름을 살펴보라 눈의 가장 큰 역할은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형이상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은 결코 군자가 할 일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돈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라는 말을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더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웃는다. 돈은 우리의 생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돈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적게는 내 지갑에서부터 크게는 사회 전반에서 쓰이고 있는 돈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생활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매의 눈이란 어떤 눈일까? 매의 형상이 아닌 기운을 말하는 것이며 길고 깊은 눈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이 담겨 있으며 지혜와 사랑을 겸비한 눈이라 할 수 있다. 에선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의 눈동자를 보라”고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보는 것은 중요한 덕목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먼저 자신을 바로 알고 사물을 바라봄에 끝까지 탐구하고 바로 보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에게 오는 운을 잘 받아들여서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정희(朴正姬) 前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 인상학 교수 혜담 인상코칭연구원 원장으로 기업체와 대학에 특강을 하고 있다. tv조선 인상학자 패널, 관상학 전문가 패널로 밝고 아름다운 인상미학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등 저서가 있다.
- 2016-08-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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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자서전] 인생의 터닝 포인트
- 1915년 5월 27일생이신 아버지와 1922년 11월 1일생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1946년 1월 4일 8시께 1942년 8월 13일 누님에 이어 둘째로 태어났다. 2년 뒤 여동생, 4년 뒤 또 여동생이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과는 9살 터울이다 어릴 적 기억은 4세 때 한국은행 돌계단을 오르면서 엄마 손 잡고 명동 가던 것뿐이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 늘 전교 1등이었는데 그 동생은 말썽꾸러기라서 늘 창피하다며 야단을 쳤었다. 학교에서 누나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필자는 야단을 적게 맞고 반대로 장난은 늘어만 갔다. 드디어 누나가 5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경기여중을 들어갔다. 누나 졸업과 동시에 필자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무엇 조금만 잘못해도 엄청 꾸중을 들었다. 아마도 그동안 적립해 놓은 야단을 한꺼번에 듣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학교 주변은 피난민이 많이 살았는데 대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자제였다.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그들 몇이 모여 한 아이를 끌고 가 여럿이 골목에서 때리는 것을 보았다. 말썽부리고 공부는 잘못 해도 남을 해치고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뛰어들었고 우릴 아는 애들이 뒤따라 들어와 패싸움이 되어 일이 엄청 커졌다. 다음날 부모가 들어왔는데 그악스런 이북말씨에 네 일도 아닌데 싸움판에 끼었다는 요즘 말로 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계를 먹었다. 다행히 초등학교여서 퇴학이 없어 전학으로 결정됐다. 5학년 후반 남대문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과를 끝내고 집에 오려는데 왠지 많은 아이가 빨리빨리 교실을 빠져나가고 열 두어 명이 남더니 뒤에서 양동이를 머리에 씌우고 몰매를 놓는 것이었다. 학교 근처에 서울역 양동이라는 사창가가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이 뭉친 게 한패, 남대문 시장 뒤 고아원 아이들이 한패로 그들만의 리그가 볼만했다. 전학생이 왔는데 패싸움 때문에 전학 왔다니까 기선을 잡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망치를 하나 들고 갔다. 노는 시간에 하면 여러 명에게 당할 것 같아 공부시간 중간에 뒤에서부터 한 명씩 깼다. 당연히 학교가 난리 났다. 결국 3개월 만에 멀고도 먼 교동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곳은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실감 나는 곳이었다. 한반이 72명인데 왜 이렇게 조용히 공부만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필자도 할 일이 없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 달 후 6학년이 되었다. 72명이 어깨 맞대고 촘촘히 앉아 시험을 봤다. 그래도 두 달 공부 열심히 했다고 아는 문제가 많아 정말 신나게 시험 봤다. 일요일이 주일 후 시험성적표가 성적순으로 나와 뒷벽에 붙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시험도 잘 봤는데 팔저 이름이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 이름은 없는데요?” “그래? 번호는 몇 번까지 있니?” 72번이요.” “그럼 맞는데 어디 보자.” 갑자기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야 임마 여기 있잖아. 너는 네 이름도 못 읽냐.” 아차 필자 번호 67번에 필자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필자 생전 그렇게 재미있게 시험 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재밌게 봤는데 이상했다. 시험지 확인을 해보니 평균 82점인데 67등이었다. 그렇다면 점수 18점 안에 66명이 있다는 것 아닌가. 6년 내내 최고 점수 평균 91점 받아봤지만 등수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해 공부 좀 하려는데 집에 큰일 생겼으니 빨리 가보라는 담임교사 말에 어리둥절해 가보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다. 5남매 장남으로 7식구 돌보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문 배달뿐이었다. 대학도 안 가려는데 어머니가 앞으로는 대학 졸업장 없으면 행세를 못 하니 앞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오더라도 졸업장은 반드시 가지라고 말했다. 공부 잘하는 누나 한 사람 대학 보내기도 쉽지 않은데 필자 덜컥 시험을 봐 경희대에 턱걸이로 합격하니 어머니는 얼마나 심란했을까. 그 시절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고 불안의 나날이기도 해다. 필자는 누나가 결혼한 뒤 군대에 갔다. 훈련을 마쳐 각자 본대로 가는데 그 많은 훈련병 다 호명해 갔으나 마지막까지 혼자 남았다. 알고 보니 육군본부였다. 군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필자 복에 육군본부라니 말도 안 됐지만 사실이었다. 근무 중 월남파병 백마부대에 차출되어 강원 화천 오음리서 훈련받았다. 만기 제대를 하고 도저히 경희대 주간을 다닐 형편이 되질 않아 건국대 야간대학으로 옮겨 낯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경희대 다니며 친구들과 만든 “포도원”이란 모임은 지금도 50년 넘게 만나고 있는데 이혼, 상처, 상부, 본인 사망한 친구가 없는 모임이다. 건국대 야간은 낙원동에 위치한 96%가 직장을 다니며 주경야독하는 백전용사들이다. 지금도 매월 첫 수요일 저녁은 그들과 함께하는데 시멘트에서도 싹 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는 지독한 독서광들인 친구들이다. 건국대 야간 경제과를 졸업하고 학사가 되었다. 어머니 말대로 앞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그해 10월 아내와 결혼했다. 그리고 1973, 75, 78년 생 딸 2, 아들 하나 아이 셋을 낳았다. 그리고 큰애가 아들과 딸, 작은애가 딸 둘을 낳았다. 1998년 소마라는 개인회사를 만들었다. 특수방식의 사료 첨가제였다. IMF가 왔지만 사료비를 아끼려는 농가가 많아져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크기를 키워 주식회사로 만들고 상호도 (주)지니 바이오로 변경했다. 이후 회사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사옥도 사고 직원도 늘리고 거의 수직 상승곡선이 그려졌다. 하루 운행 거리가 최고 762km. 평균 500km가 넘을 정도로 영업하고 다녔다. 그리고 영업을 위해 삼성 SM5를 샀다. 이 차는 세상에 차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내게 알려준 최초의 차였다. 차 뺀 지 2년 만에 35만km를 달렸지만 잔 고장 하나 없이 잘도 달려주었다. 그런데 2000년 구제역이 왔다, 매출이 100%에서 3%로 떨어졌다. 1년 후 재기를 노려 농가를 다니길 약 20일. 그러나 다시 구제역이 왔다. 사옥도 팔아가며 버티고 버티며 2011년까지 왔지만 역부족 결국 남에게 넘겼다. 그러는 사이 나라에서 지하철 공짜카드가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가 벌써? 대한노인회에 이모작 준비에 관해 문의했다, 그런데 답이 “집에서 가까운 경로당에 가서 봉사하라”라고 하는 것 아닌가. . 잔버들 경로당에 가서 한 달을 버텼다. 경로당은 구립이라 지원금이 일 년에 36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근처 절, 성당, 교회, 기업체를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께 점심 기부를 해 달라’며 다녔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적인 필자 일도 아닌 금전적인 것을 부탁하러 다니다 보니 얼굴만 벌게 지며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40여년을 오로지 스피치 교육만 하고 있다는 ’한국언어문화원’을 찾아갔다. “지금처럼 서로 마주 보고 일대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낚시법이라 한다면 저희는 일대 다중을 설득하는 투망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는 원장 말에 뿅 가서 그날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발성 연습을 하며 우리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6개월 하고 나니 발성이 제대로 나오게 되었다. 얼마나 배웠는지, 남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는지 알아보려 2012년 11월 3일 전남 광주시에서 열리는 제38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에 그 당시 한참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는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웅변했다 . 결과는 특등.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연단 공포증을 단숨에 없애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매주 월요일이면 스피치 공부하러 다니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언어문화원에서 교수진에 등록되어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특등으로는 성이 차질 않았다. 2015년 11월 7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41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 주제는 그해 대단히 가물어 식수마저 끊기는 지역까지 있어 ‘환경은 생명이다’”라는 원고로 참가해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1년 후 조선에듀케이션과 유어스테이지(주) 시니어파트너즈에서 강사 과정이 있다기에 응시해 생애 재설계를 배웠다.건강, 인식, 관계, 경제, 직업, 주거, 여가, 계획과 실천, 교수법을 배웠다. 그렇게 죽을 만큼 공부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합격. 필자가 강사가 되다니 꿈만 같았고 그 길을 계속 가고 싶었다. 2013년 3월 11일 강사자격인증서를 받았고 3월 21일 드디어 강사위촉장을 받으며 강사생활이 시작됐다. 필자는 무엇이든 빠르지 않고, 재주부릴 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절대 뒤로 가지는 않는다. 필자는 강사 과정을 함께 공부했던 사람 중에 대단히 해박하고 아는 것이 많았다. 공부해 보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회 각당복지재단에서 웰다잉을 공부하라 지도해 주셔 죽음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의 의미를 알아보는 로고테라피 강의는 그 중에도 백미였다. 다모작포럼협동조합에서 “한(정수) 이사”의 준말인 ‘하니’란 애칭으로 교장 선생 일도 보람 있게 하고 있다. 필자에게 강사라는 꿈이 있었을까? 연단에서 누굴 가르친다는 게 가능했을까? 필자는 돈만으로 격을 따지는 세상에서 인성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 배운 모든 과정을 녹이고 녹여 재미있는 강의를 하다 보니 지금은 공무원연금공단 변화관리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직접 겪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전환 과정'을 중장년에게 전수해주려 하고 있다. 아울러 '다가치포럼 협동조합' 전무이사로 '중장년 미래전략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정부 지도자 과정도 다음 달에 개설할 예정이다. 교육이 대세라는 생각은 팔저를 생각하면 당연한 길이다.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이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 2016-08-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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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읽기] 하나의 무대, 두 가지 감동! 연극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병훈·박정희 연출
-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대표작 와 가 한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은 노령화, 치매, 빈 둥지 증후군, 우울증 등 현대사회 중·장년이 겪는 사회적, 심리적 증상들에 대해 다룬다. 다른 해에 발표됐던 작품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은 점에 착안해, 하나의 무대에서 주중에는 번갈아가며 공연하고 주말에는 연이어 상연한다. 독특한 점은 는 박정희, 는 이병훈이 연출을 맡아 여자가 바라본 아버지, 남자가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다. 두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하며 아버지/어머니가 가장 생각났을 때 [이병훈] 어렸을 때 효자상도 받고 해서 그런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를 연출하면서 그동안 내가 과연 어머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동물적 사랑도 느낄 수 있었고, 자식을 향한 집착이나 다 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비극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서운 박탈감, 집착 그리고 사랑의 한계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정희] 작품 후반부에 아버지 앙드레와 안느가 얘기하면서 간병인 로라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앙드레는 로라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즐거워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여행을 많이 다니셨던 내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이면 큰 기대감으로 즐거워하셨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과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곤 했는데, 그러한 아버지와 앙드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많이 겹쳐졌다. 의 윤소정/의 박근형 두 배우와의 호흡이 어땠는지 [이병훈] 연습 초반에는 윤소정 선생님과 서로 스타일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을 하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윤소정 선생님은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약점을 듣고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소위 ‘쿨’하게 받아들인다. 뿜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보다는 본능적인 감각과 즉흥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그런 선생님의 연기술을 이해하며 좀 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 [박정희] 박근형 선생님과의 호흡은 좋았다. 코멘트를 받으면 꼭 실행하고 더 발전하기도 했다. 앙드레라는 역할에 대해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원로배우이시지만 영리한 배우라고 느꼈다.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만한 부분 [이병훈] 중년에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의 삶의 비극성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어머니 자신들의 사랑과 좌절을 통해 의타적 삶에서 주체적 삶으로 바뀌어 가기를 희망한다.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족들에서 발견하는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떠나보내고 삶의 허망함에 맞닥뜨렸을 때 보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우리는 살면서 ‘나’를 주장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인들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적으로 맺는다. 하지만 ‘나’라는 정체성은 ‘기억’이라는 모래 기둥처럼 부실한 발판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다. 기억은 뇌가 노화되거나 병들면 점차 사라지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한 사람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허상을 깨닫고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이 치매를 다루긴 하지만, 공연의 메시지는 충분히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일정 8월 14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박정희, 이병훈 출연 박근형, 윤소정 등
- 2016-08-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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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자서전]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 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다. 봄날은 길고 보릿고개는 높았다. 봄에 장리쌀 한 가마니를 빌려오면 가을에 한 가마니 반을 갚아야 했다. 50%의 이자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과히 살인적인 이자요, 착취다.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해만 보릿고개를 넘을 때 장리쌀의 고리에서 벗어나면 되었지만 굶을 수는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필자가 해보리라 결심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1년만 포기하기로 했다. 1년 동안 돈을 벌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어린 필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절이었다. 필자 동네도 정부에서 구불구불한 논둑을 똑바로 펴는 경지정리 작업을 시행했다. 지금 말로 하면 공공근로다. 읍사무소 담당 공무원이 나와서 그날 할 일을 지정해주고 저녁 무렵 성과를 측정해서 실적에 따라 밀가루 티켓을 나눠 줬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최저임금에 버금가는 적은 밀가루 지급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농사일이 다 끝난 겨울에 하는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논둑에 한 뼘 정도 들어 올릴 만큼의 범위를 정하고 곡괭이로 논둑에 구명을 낸다. 거기에 쇠로 된 긴 지렛대를 넣고 논둑을 들어 올리면 논둑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 직선화된 새로운 논둑을 만드는 일이다. 공사가 다 되면 바둑판처럼 반듯한 직선화된 논둑과 논이 만들어진다. 경지면적도 커지고 농토가 반듯해서 농사짓기에도 편하게 된다. 요즘 같으면 포크레인 등 기계로 하겠지만 당시는 순전히 사람의 노동에 의한 작업이었다. 공공근로라는 것이 다 그렇듯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하루 할당된 일의 양도 5~6시간이면 다 마칠 일이었다. 밀가루를 매일 주는 것이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읍사무소에 가서 받아왔다. 이렇게 받은 밀가루가 10포대 정도 되었다. 필자가 벌어온 밀가루로 수제비도 해먹고 콩가루 넣은 칼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늙은 호박에 팥을 넣은 호박범벅도 해먹었다. 덕분에 쌀이나 보리를 아낄 수가 있었다. 그해 장리쌀의 고리를 끊고 보릿고개를 넘었다. 이제 빚은 없어졌다. 어머니가 두고두고 필자 공을 인정해주었다. 당시는 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먹어야 사니까 흉년에는 콩죽 한 그릇 하고 논 서 마지기를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방직공장에 취직한 나이 어린 소녀들이 봉급 받은 다음 날 우체국에 줄을 서서 고향으로 돈을 보내는 모습도 봤다. 고향 집에 보내기 위해 손에 쥔 그 돈이 달랑 300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돈으로 오빠나 동생들 학교 다니게 하고 살림 밑천인 송아지도 샀다. 이런 돈들이 모여 논, 밭도 사고 고향 집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공신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다. 땅값이나 집값이 지금처럼 비싸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는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는 다음 해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진학했다. 적성도 모르고 오직 취업이 잘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공고를 택한 이유라면 이유다. 당시는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빠른 취업을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 동급생들이 하나둘씩 취업되어 학교를 떠났다. 필자도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전매청 연초제조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담배를 만드는 기계는 이태리 제품인데 요즘처럼 완전자동은 아니나 당시로는 획기적인 자동화 기계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동화 설비에 대해 도면 보는 법을 익히고 고장 난 기계들의 점검하고 수리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군대에서 기술을 더 배워보려고 육군 발전기술병으로 지원했다. 처음에는 대대 참모부에서 군수품을 담당하는 행정병 보직을 받았다. 그런데 전기 일을 하게 될 운명이었는지 부대 목욕탕 관리 병사가 전기 감전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후임으로 전기를 안다는 이유로 필자가 선발됐다. 목욕탕 관리사병은 보일러를 다룰지 알아야 하지만 필자는 보일러에 대해서는 통 몰랐다. 인근 부대를 다니며 독학으로 보일러의 운전법을 배우고 무난히 목욕탕 관리사병의 임무를 마쳤다. 한 번은 목욕탕에 사성장군인 군사령관이 방문했다. 별 4개를 보는 순간 벌벌 떨었다. 35개월을 마치고 제대한 후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하게 됐다. 27세 때었다. 필자 인생에서 전기안전공사를 빼놓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 공부도 시키고 60세 정년퇴직을 했으며 노후생활도 보장받았다. 안전공사 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간부시험에 일찍이 합격한 것이다. 간부는 60세 정년이지만 직원은 58세가 정년이었고 급여에서도 차등이 있어 경쟁이 심했다. 간부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하는 근속연수 점수와 상급자가 매기는 고과점수를 합한 기본점수가 있다, 여기에 필기시험을 쳐서 학과 점수를 보태어 성적순으로 뽑았다.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필기시험이었다. 필자는 상급자인 주임들을 제치고 간부시험에 입사 3년 만에 합격하였다. 간부로 첫 부임지가 공교롭게도 과거 근무한 적이 있는 사업소였다. 간부로 발령받고 보니 옛날 상사인 주임들이 부하로 바뀌어 있었다. 필자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주임들도 필자를 대하기에 곤혹스러웠다. 이런 때일수록 필자의 상급자인 과장이 잘 컨트롤 해 줘야 하는데 상급자인 과장도 주임들과 오래 근무한 정으로 심적으로는 주임들과 더 가까운 편이었다. 공식적인 술자리에는 필자가 참석했지만 주임들과 과장 간의 사적인 술자리에는 필자를 고의로 배제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힘으로 간부의 위치를 찾아갔다. 두 번째 사건은 고등학교 후배가 많은 지역에 과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공고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동문회 야유회 때는 장난 비슷하게 선배가 후배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나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매이니까 웃으며 맞았다.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도 다녔는데 선배들이 후배 벌주는 것을 부인들이 다 보고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고착화된 선후배 간 전통이었다. 그런데 회사 간부인 필자를 때리기는 아무리 선배지만 버거워했다. 필자로 인해 벌씌우거나 매를 드는 것은 차츰 없어졌다. 하지만 선배들을 사적인 장소에서는 더욱 깍듯하게 모셨다. 술을 따를 때도 3년 이상 선배한테는 무릎을 꿇었다. 세 번째 사건은 기술직으로 감사반장이 된 것이다. 감사는 회계감사가 중요한데 기술회사에서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감사반장을 해야 한다는 사장의 경영방침에 의해서 필자가 선택되었다. 부서별 부장급 감사반원을 이끌고 사업소를 순회하며 실무 감사를 했다. 잘못하는 점보다 잘하는 점을 찾아서 타사업소에 전파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징계도 했지만 표창도 많이 했다. 올바른 비판력과 판단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네 번째 사건은 전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맡은 일이다. 기술사 자격을 갖고 있고 현장 경험이 많다는 점을 들어서 대학교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사장이 허락해 교수직을 겸임한 것이다. 전기응용 과목을 맡았는데 전기응용은 조명, 전동력응용, 전기철도, 전기화학 등 폭이 넓은 실무 분야다. 4년간의 겸임교수 시절은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다섯 번째 사건은 전기안전 부문에서 필자가 노력한 일들을 정리하여 공적조사로 만들어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한국전력공사가 후원하는 에너지대상을 신청한 결과 국민봉사 부문 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굵직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부상으로 대만 여행을 보내주고 금 20돈의 황금 열쇠를 받았는데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60세 정년퇴직을 했다. 1남 1녀의 자식도 결혼하여 필자 곁을 떠났다. 비록 나이에 의해 정년퇴직했지만 아직은 신체 건강하여 일자리를 찾았다. 급여는 적지만 필자를 필요로 하는 곳에 다니고 있다. 나이 더 들면 직장에서 완전히 은퇴해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취미가 있는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글쓰기의 자산은 역시 독서이므로 도서관의 ‘책 읽기 마라톤’에 3년간 참가하여 언제나 1등을 하였다. 귀촌을 위해 도시 근교에 땅도 사두었다. 나이 들어서 버티는 힘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금도 부었다. 체력도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올해 동호인 테니스대회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 기쁘다. 앞으로 전국테니스대회에 노년부로 참가하려고 한다. 우승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70세가 넘으면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에 매진할 것이다. 이것도 공부해야 한다. 사회봉사의 이론을 갖추기 위해 인터넷으로 사이버대학을 수강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니라 육체가 따라가는 봉사를 위해 발마사지와 경락안마도 배우고 민간자격증도 취득했다, 경험을 얻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치매센터에 치매전문 자원 봉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 세상살이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신념을 늘 갖고 있다. 필자의 생애가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돌이켜 보니 준비하며 여기까지 잘 왔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 2016-07-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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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인상학] 성인에게서 배우는 지혜
- 한동안 TV 드라마 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데 놀랐다.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본 여인들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떠나 더 유명해지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점점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용도로 사용하던 온라인 서비스가 이제는 자신을 알리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과감하게 노출시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의 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하면 그들은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아 어느 순간 자신의 얼굴이 천지허공을 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행복을 가늠하는 가치 기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다. 우리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잠을 설친 기억도 있다. 인상학자로 살면서 ‘사람 개개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근본은 무엇이며 변화하는 삶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나?’는 평생을 풀어야 할 숙제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 성인들은 가장 높은 것이 하늘이고 모든 생명은 천지에 근원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은 형체(形體)와 기질(氣質)이 결합된 음양오행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형체는 몸을 이야기하며 몸 안에 기질이 흐르면서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천지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순자(荀子)는 “하늘이 사람에게 형체를 부여하면 그에 따라 정신이 생겨나니 이것이 하늘의 신기한 능력이다. 하늘은 사람을 낳음과 동시에 본성을 부여한다. 나면서부터 그러한 것이 본성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해 준 생명과 함께 본래 갖추고 있는 우리 고유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과 욕구는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눈을 뜨면서부터 느끼기 시작하는 배고픔은 먹고 싶은 욕구를 만들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충족하고 싶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학습하였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어보자. 맹자(孟子)는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순자는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고 시험지 답을 적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화두 역시 “인간의 근본은 과연 착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 필자는 “근본은 착하다 그러나 태어남과 동시에 이기심을 만나서 그 이기심과 타협하는 과정을 겪으며 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 한다. 그 이유인즉 탄생하는 순간의 아기의 얼굴을 보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이 세상에 나왔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순수의 세계로 몰아간다. 한순간 자신의 마음에 담겨 있는 순수한 본성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탄생 순간의 얼굴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이라 할 수 있고. 지금의 모습은 시간이 만들어 준 후천적인 얼굴, 즉 운명을 만들고 다듬어서 가꾸어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선설’을 신봉하고 따른 사람의 얼굴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는 삶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구가 있다. 욕구하는 것을 얻으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지려 하고 구함에 법도와 분수가 없으면 싸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본성을 ‘예의’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하고 익히게 하여 욕망을 누르고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얼굴이 사람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며, 그의 언사가 상대를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한다고 하였다. 지금의 얼굴을 만든 것은 자신의 생각과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잘생기고 호감 가는 얼굴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신 있게 마주 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얼굴을 가져야 하고 그 얼굴이 사람과 소통하면서 상대와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하여 보려고 한다.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본다.
- 2016-06-29 0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