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어린이집에 간 손자, 손녀만 청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낮잠 자는 시대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잠시라도 편히 쉴 곳, 잘 곳을 찾아 나서고 있는 세상. 노곤하고 피곤한 삶을 보듬고 치유하고자 낮 시간 잠시라도 누울 자리를 찾고 또 내어주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낮잠이 관심의 중심에 있다.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
한 잔의 와인을 따르자.
그리고 잠시 와인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유와 낭만을 가져 보자. 1년 내내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절대 필요조건인 최상의 포도를 생산하려 땀을 쏟으며 온갖 정성을 다한 농부의 숨결이 서사시처럼 짠하게 전해 온다. (포도밭) 포도가 충분히 땅의 기력과 태양의 따스함을 받으며 당도와 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팔다리는 물론 얼굴에까지 뜨듯한 오줌이 그대로 튀어요. 얼굴은 똥, 오줌 범벅이 돼도 ‘똥은 흙, 오줌은 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때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때거든요.” 7개월 동안 돼지의 생활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박찬원(朴贊元·72) 사진작가가 겪은 일이다. 그는 돼지만 사진을 찍어서 ‘사진작가는 미친놈이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돼지였는지도 모른다
IT시대 아지트는 하드웨어 성격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적인 측면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지트란 원래 비합법적인 운동의 근거지로 사용되는 집합장소를 뜻하나 여기서는 영어로 숨겨진 나만의 장소 ( Hiding place, safe house)의 의미로 해석해주면 좋겠다. 내가 편안하게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책이나 신문을 읽을 수도 있는 아주 편안한 곳
‘버리는 것’이 정리의 처음과 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중에 책을 버리기는 더 힘들다. 책을 정리하다보면 선물을 받은 책 중에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은 책도 있다. 그런 책은 아까워서 못 버리고 몇 번 읽었던 책은 그 유익함 때문에 다음에 또 읽게 될 것 같아 못 버린다. 당장 내가 필
1, 어렸을 적 아지트의 추억
마을 뒷동산에 바위틈사이로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 비를 안 맞게 바위 위에다 나무를 서까래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가마니를 덮었다. 물론 맨 위에는 진흙을 올리고 농사용 비닐로 덮었다. 중학생 사춘기 우리 또래의 아지트였다. 그 속에서 먹을 것들을 갖고 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유행가 가락도 불렀다. 아지트는 남
정동 전망대 카페에서
차 한잔 하면서 오랜 역사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나를 돌아보게 되고 수많은 세월 동안 스처 간 사람들의 숨결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1동 13층에 있는 정동 전망대이다. 덕수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인왕산과 백악산이 펼쳐 보인다. 가까이 서울 신청사가 우람하게 서 있고 빌딩 숲 속에 옛 고
강원 속초시 하면 누구나 바다와 산을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속초시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조용한 호수다. 그곳에 나의 작은 아지트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무작정 속초시로 여행 가서 영랑호를 찾았었다. 천천히 한적한 호숫가를 걷는데 예쁜 집 두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회색 지붕의 모던하면서 아담한 집 두 채가 나란히 호수를 내려다보고
아주 오래전 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의 일이다. 국어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고 이가 몇 개 빠진 할아버지였고 성함은 ‘김이홍’이었다. 당신 이름에 세 가지 성씨 즉, 김씨, 이씨, 홍씨가 들어있다고 자주 자랑하셔서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내재되어 있던 작문 소질
그 날 국어시간에는 작문을 하라고 하셨다. 작문의 주제는 ‘국어 선생님’이었
“집에서 엄마가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엄마를 닮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지인의 말에 아들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엄마가 책을 안 읽는다는 건지, 아니면 집에서는 읽지 않는다는 건지 분간이 안 돼 헛웃음을 웃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살면서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들이 엄마 책 읽는 광경을 볼 수 없었던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