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이 빡빡하다고 했다. 아침 시간에는 요양원 봉사에 오후에는 영화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바쁜 일정 쪼개서 만난 이 사람. 발그레한 볼에서 빛이 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웃으며 나왔을 것 같은 표정. 미련 없이 용서하고 비우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그 누구에게도 남부끄럽지 않은 환한 미소의 주인공이 됐다.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이 꿈의 무대. 시니어
그에게 정원은 놀이터다. 아침마다 커피 한 잔 들고 문을 나서면 그만의 소우주가 펼쳐진다. 오감이 천천히 깨어나면서 확장된 시간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마음속 풍경은 매일매일 꽃사태다. 이 놀이를 제대로 한번 즐겨보고 싶어 도시 탈출을 감행한 건 40대 중반 무렵. 김형극(金炯克·66) 씨는 마치 특별 초대장을 받아든 사람처럼 성큼성큼 자연 속으로 입장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회사가 있다. 구성원이 6명인 작은 회사. 다른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무실을 조금만 둘러보면 독특한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 회사 구성원은 60대 이상으로 모두 정년을 마친 사람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년 걱정이 없어 고용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동료들과 함께 보람 있는 제2인생
별별 생각과 궁리를 다하고도 망설이게 되는 게 귀촌이나 귀농이다. 그러나 김석봉(62) 씨는 별생각 없이 시골엘 왔더란다. 무슨 성좌처럼 영롱한 오밤중의 현몽이 그를 이끈 건 아닐 것이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거니와, 자나 깨나 귀촌을 숙원으로 여긴 바가 없었으니 하필 후미진 산골로 데려가는 계시를 받았을 리 만무하다. 여하튼, 별 생
불교 성지 순례단의 한 사람으로 미얀마를 여행했다. 맨발로 다녀야 하는 사찰 경내에서 여행객이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해준 후 “원 달러! 원 달러!” 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얼굴 군데군데에 진흙 같은 것을 바르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피부 보호를 위해 바르는 미얀마 전통 화장품 ‘타나카(Thanaka)’였다. 곱게 보이기 위한 화장
2분에 한 번씩 접객을 하는 직업이 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 하지만 그의 업장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명은 이곳을 지나친 사람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한 업무이지만 사선에 선 사람들은 그가 건넨 희망의 한마디를 꼭 붙잡는다. 강동성
전쟁 직후이니까 한 해를 보태면 70년 전 일입니다. 그해 겨울을 간신히 지내고 이듬해 이른 여름에 저는 ‘길에서 주워온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저는 6세에서 12세까지 아이들 여섯 명이 기거하는 방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기묘한 구조의 커다란 한옥 구석방이었는데 햇빛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까지 모두 일곱 명이 나란히 누울 수도
딸애가 오래된 책들을 내놓으며 버려달라고 한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무슨 무슨 개론 따위의 이론서 사이로 얼핏 얼핏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4대 비극’, 희랍 비극‘, 브레히트 연구’ 등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보관해 보았자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버리기는 아까워 며칠을 그대로 뒀다. 책을 못 버리는 습성은 왜일까? 이사할 때에도 책은 애
재즈’ 하면 대개 분위기 좋은 바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듣는 모습을 떠올린다. 황덕호(黃德湖·54) 재즈평론가는 이러한 선입견이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재즈는 화려한 레스토랑의 만찬보다 시장 골목 외진 식당에서 그날그날의 재료로 말아주는 즉석 국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개성 있는 연주자들이 즉흥으로 이루는 재즈 앙상블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선글라스로 반쯤 가린 무표정한 얼굴, 근육질의 몸. 경호원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다. 게다가 이 세계는 한동안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다. 꽤나 케케묵은 이 통념을 깨트린 이가 있다. 2002년 국내 보안 업체에 ‘첫’ 여성 경호원으로 입사해 톰 크루즈, 빌 게이츠, 히딩크, 고르바초프, 박세리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