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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돌봄, 지역사회가 열쇠다⑦] 활동적 노후 위해 온‧오프라인 생활 환경 닦는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는 흔히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국가다. 영어를 사용하고, 사회적 인프라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며 부동산 투자가 활발한 점 등을 들어 은퇴자를 위한 해외 이주 정보를 다루는 미국 매체 ‘인터내셔널 리빙’에서 ‘은퇴자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로 여러 차례 추천된 바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6.5%이다. 그러나 5년마다 장노년 인구가 약 2%씩 증가해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노인을 위한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2020년 열린 온라인 포럼 ‘고령친화도시: ’MyAgeing™‘과 함께 가꾸는 미래의 삶’에서는 은퇴자, 연금 수령자, 노인을 위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시니어 주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패널들은 말레이시아의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새로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은 채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으로 쫓겨난 시민들이 나이가 들어 필요한 때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면, 나중에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 노인들 또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Aizan Hamid 연구교수는 포럼에서 “말레이시아의 노인 약 77%가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늙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노인들이 연령이나 소득, 능력 수준에 상관없이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의 지역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페락(Perak)주 타이핑(Taiping)시 페락 주 서부의 타이핑은 고원 휴양지인 라루트 언덕을 비롯, 녹지가 많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에 타이핑 시는 노인에게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지역 이니셔티브를 조성하고,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GNAFCC)에 가입했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는 이동 시 진동을 최소화한 고령자 및 장애인 친화적인 중형 전기버스(EV-Bus)를 운행하고 있다. 도시 개발을 위한 ‘페락2030비전’ 중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도 포함돼 최근 관광지를 경유하는 노선을 신설했으며, 시범 운행 이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는 할인된 가격에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을 예정이다. 또한 노인과 장애인 등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타이핑 시의회와 말라야 국립 대학교는 2017년 ‘마치노에키 프로젝트’를 타이핑에 도입했다. 마치노에키란 일본의 쇠퇴한 도시 중심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된 프로젝트다. 지역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해 화장실이나 휴식 공간 등의 시설이나 지역에 대한 지식, 안내를 제공한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고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굴러가는 이 프로젝트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마을 환경 정비로 인한 보행성 개선으로 주민들이 차를 타는 대신 걷게끔 이끄는 효과까지 수반한다. 타이핑 시의회는 이러한 정책들과 그로 인해 축적한 지식들을 푸트라자야시 노인 협회에 공유하며 고령친화도시 조성 프로젝트에 있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페낭(Penang) 주정부와 페낭2030비전 페낭주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의료관광지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은퇴 이민지 중 한 곳이다. 또한 페락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으로, 2020년 60세 이상 인구는 14.9%이나 204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6.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는 2018년 ‘페낭2030비전’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활동적인 노후’(Active aging)가 중요 요소로 포함됐다. 페낭학회(Penang Institute)에 따르면, 주정부는 이를 위해 고령친화적 인프라를 강화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등의 형태로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페낭2030비전이 제시하는 장노년 친화도시 정책’ 보고서가 소개하는 내용에 의하면 페낭 주정부는 ‘안녕 디지털’(#Dah Digital)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클리닉’(Digital Clinic)에서는 동영상 편집기술이나 구글렌즈 사용법, 스캠, 피싱 등 사이버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 등을 무료로 교육한다. ‘디지털 페낭’(Digital Penang)의 2022년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캠페인으로 2022년 101개의 강좌가 개설됐으며 총 2465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다.
- 2023-05-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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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투어리즘, 그곳을 찾는 이유
-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이날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발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진범이 따로 있는지, 배후에 누가 있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궁금증을 마음에 담은 관광객들은 아직도 이곳을 찾는다. 암살범인 오스왈드가 저격했던 딜리 플라자의 그 자리는 ‘6층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 현상을 관찰한 영국의 연구자들은 ‘다크 투어리즘’이란 개념을 착안해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형태의 여행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역사교훈 여행’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크 투어리즘이 주창된 초창기에는 위험한 장소를 탐사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체르노빌 같은 핵 재난 지역이나 국제적인 분쟁 지역 인근에 접근하는 형태까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익히고, 인간의 잔혹함이나 고통에 대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스릴과 모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몰리면서, 희생자들의 고통을 재밋거리로 희화화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내전으로 홍역을 앓은 시리아다. 인구의 절반이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난 이곳의 전흔을 일부 여행사들이 ‘볼거리’로 홍보했다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관광자원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지역의 관광자원을 살리는 가치 부여 과정, 즉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념관 등 관련 시설의 정비를 통해 ‘여순사건’을 정확히 알리면서 관광자원으로 삼은 여수시가 대표적이다. 여수시는 2021년부터 ‘여순사건 다크 투어리즘 및 남해안 명품 전망 공간 조성 등 관광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관광 상품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묻고 잊어버리려 애쓰기보다는 계속해서 애도하며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선영 홍익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장소는 철거해버리고 없애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이 더 옳다는 관념이 지배했지만,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고, 지속 가능한 관광 대상으로 만들어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 목적지의 보존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관광 수입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장소 복원과 유지 비용을 지원하거나,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을 높여서 장소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전파하고,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제주4·3평화공원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최근까지 일부 정치세력을 통해 왜곡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은 희생자 유족의 트라우마를 회복하고,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리는 중심지이자 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나타난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호기심을 더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다. 호찌민의 독립궁이나 메콩강의 구찌터널 등 그곳의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들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이나 우리나라 입장에선 패전의 기록인 셈이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승전의 기록이자 전리품으로 남아 있다. 승전국 입장에서 작성된 현장의 기록을 읽는 경험은 미국 관점의 역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경한 경험이 된다. 지나친 엄숙주의 경계해야 특별한 장소를 찾는 만큼,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도 특별한 태도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여가활동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영 교수는 “당초 목적이 비극의 역사를 느끼고 다시 생각하기 위해 찾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보다는 진지하고 숙연해질 필요는 있지만, 말 그대로 관광의 한 과정이므로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 2023-05-0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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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딛고 희망 아이콘이 된 ‘빨간 마후라’
- 김경오(89) 명예총재의 영웅담은 끝이 없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군대에서 끝끝내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단독비행을 성공했다. 이후 유학을 떠나 기죽지 않고 나라를 알렸고, 자전거 한 대 갖기 어려운 시절에 비행기 한 대와 함께 귀국했다. ‘마담 킴’의 비행 아래, 우리나라는 괄시받는 가난한 국가에서 국제기구 총회 유치에 성공하는 항공 선진국이 됐다. 그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전후(戰後)의 어둠을 걷어내는 새벽별과도 같았다. 김경오 명예총재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 비행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스무 살의 나이에 6·25전쟁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업무를 전개했다. 예편 후 후학 양성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생활고를 버텨낸 끝에 ‘조국과 후배들을 위해 비행기 한 대를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꿈을 이뤘다. 또한 자신의 뒤를 이을 여성 비행사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여성항공협회를 창설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최고의 비행사이기도 하다. 공군 창군 50주년이던 1999년, 최고의 조종사에게 주어지는 훈장(Command Pilot Wings)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비행사인 그는 국제항공연맹에서 항공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비행사에게 시상하는 ‘에어골드메달’ 훈장을 수여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 세계여성파일럿박물관에는 한국 여성으로 유일하게 개인 전시관인 ‘김경오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조종을 못 하고 있습니다” 비행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됐다. 그는 교장선생님의 호출에 무작정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시험을 치렀다. 이북데기(이북 출신을 낮잡아 부르던 말)라고 놀림받던 것을 설욕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던지라, 시험에 이은 면접과 신체검사까지 통과했다.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은 날에야 알았다. 제1기 공군 여성 조종사 후보생을 모집하는 시험에서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사실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공군사관 생도를 뽑으면서 여성 항공병도 따로 뽑도록 지시했기 때문인데, 김경오 명예총재는 실질적 목적은 따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젊을 때 미국 유학을 떠났었죠. ‘하늘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던 아밀리아 에어하트를 비롯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조종사들을 보면서 생각했을 거예요. ‘우리나라가 독립해 자주국가가 되었음을 알려야 하는데 이를 위한 홍보 수단으로 여성 조종사만큼 좋은 아이콘이 없겠다’고요.” 하지만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전쟁이 터졌고, 여성 생도들은 소위로 임관되어 비행기를, 전투기를 타며 참전하기만을 꿈꿨지만 유야무야 시간만 흘렀다.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동기들은 하나둘 떠났고, 김 명예총재만이 군에 남게 됐다. 홀로 남은 여성 소위를 향한 회유와 협박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됐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비행기를 몰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공군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며 정복을 정갈하게 다려 입었다. 행사 당일, 이대로 대통령을 보내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대통령 앞으로 튀어나가 보고했다. 헌병들도 다 얼어붙어서 말릴 틈도 없었단다. “‘경례! 공군 소위 김경오입니다. 각하, 저는 1949년 대통령의 뜻에 따라 공군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조종을 안 시켜줘서 못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딱 두 마디 했죠. ‘아, 기억나요. 잘하고 있습니까?’ 막사로 돌아왔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헌병들이 날 잡으러 오겠구나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그 다음 날 명령을 받았어요. ‘공군 소위 김경오 명(命) 비행 훈련, 사천 훈련장.’ 공군참모총장의 특명 제1호였죠.” 우여곡절 끝에 그는 1952년 대구에서 최초의 단독비행에 성공했다. 단독비행을 하던 날 아침, 그는 손톱·발톱과 머리카락을 깨끗한 종이에 싸서 유서와 함께 어머니에게 건넸다고 한다. 전쟁 중이어서 위험했거니와 비행 사고가 나면 시신을 수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서다. 전쟁에 참전하여 비밀문서를 전달하거나, 결혼하고 큰딸을 낳은 뒤 6개월 만에 일본과의 친선비행에 나설 때 그는 유서를 남겼다.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유서를 태워버렸고, 다음 비행에 나서기 전에 새로운 유서를 썼다. 타잔처럼 멋지게, 마음먹은 대로 사는 인생 ‘누가 뭐래도 네 인생은 네가 컨트롤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은 너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김경오 본인이 그런 삶을 살았다. 두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적었다 태우기를 반복한 유서처럼, 남에게 기대지 않고 목표한 바를 이룰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삶. 그는 남다른 투지와 인내심으로 계속해서 기적을 일궈냈다. 다치거나 죽는 이들도 많았던 단독비행을 성공해냈고, 민간항공을 공부하고 후학을 양성하라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고,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생활고까지 감내하며 버틴 나날은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훈련용 경비행기 한 대를 고국에 가져가는 것. 당시 우리나라에는 훈련용 비행기가 없어 공군 생도들이 실전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채 졸업해야 했다. 김 명예총재는 후배들을, 우리나라 항공의 미래를 위해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한국전 참전 용사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조종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타임’, ‘뉴스위크’, ‘라이프매거진’ 등 유수의 매체에 그의 인터뷰가 실렸고 6·25전쟁의 참상을 알리러 강연을 다녔다. “초대받은 자리에는 빠짐없이 나서서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활동이 민간 외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비행기를 가지고 돌아가겠다는 제 목표를 들은 기자들은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은 해냈죠. 당시 미국의 여성 비행사 1만 명이 저를 돕기 위해 ‘We Help Captain Kim’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모금을 진행했어요. 모금이 유명해지면서 한 경비행기 회사에서 경비행기 ‘파이퍼 콜드’ 한 대를 기증해줬거든요. 덕분에 목표한 대로 비행기 한 대와 함께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한국군 유일한 여성 비행사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체득한 군인 정신으로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임했다고 말하지만, 호방한 성정도 한몫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있다. “초등학생 때는 장래 희망으로 ‘밀림의 왕 타잔’을 적어냈어요. 동화책을 보는데, 호령 소리만 들리면 작은 동물부터 맹수까지 한 번에 달려오는 게 너무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나도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담임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여자애가 무슨 타잔이냐 교사나 하지 하면서 머리를 쥐어박혔죠.” 밀림의 왕처럼 하늘을 누비던 그는 2009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20분간 마지막 비행을 했다. 그림처럼 예뻤던 하늘에서 내려온 그는 세계여성파일럿박물관의 김경오 전시관을 둘러본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객기를 탔다. 그는 주문한 샴페인을 마시고, 남은 한 모금을 머리에 부으며 하늘에 인사를 건넸다. ‘Good bye, dear my blue sky.’ 성격만큼 호쾌한 인사였다. 한계 대신 지금에 집중하는 삶 이후 직접 조종석에 앉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국제항공연맹, 국제여류비행사협회 등의 국제회의에 꾸준히 참석하며 우리나라 민간항공의 성장을 도모했다. 미래는 하늘에 있으리라는 것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석대표로서 회의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물론,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선진국 대표들과 안면을 트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다. 모두 그만의 ‘민간외교’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다. 그의 공로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으로 인정받았다. 2009년 인천의 제103차 국제항공연맹총회 유치에 성공하기까지 김 명예총재의 기여한 바가 컸다. 아흔을 앞둔 지금도 삶을 대하는 자세는 군인 시절과 다르지 않다. 일찍 전역했지만 어릴 적부터 군대 제식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직까지 그렇게 생활하게 되더란다. 오전 3시 30분이면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침대에서 내려온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화장을 하고 나선다. ‘나이 들어 화장해서 뭐하느냐’고 말하는 친구에게는 따끔하게 한 소리 한단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자연히 몸에 배어 있다. “매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는 ‘백세시대’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백세시대라고 말해버리면 내 나이를 백세까지로 한정 지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나는 이 나이에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공상하기를 즐깁니다. 이를테면 내가 연애를 한다면 어떤 남성이 어울릴까, 즐겨 보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면 재밌겠다, 이렇게 지내면 매일이 즐겁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비행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떠날 것인지 물었다. 망설임 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네요. 평안북도 강계요.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하늘에서라도 빙 둘러보고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공군이, 비행사가 되어 하늘을 날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갈고닦겠다는 김경오 명예총재. 미국의 시인 새뮤얼 울먼이 말했듯,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그가 늘 푸른 청춘이 아닐 리 없다.
- 2023-04-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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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럽이 말하는 명성, “삶의 목표 아닌 결과물 되야”
- “명사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움직이며 우리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명성의 본질과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는 명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인간의 ‘명성’(名聲)과 각계의 ‘명사’(名士)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는 관련 이론·데이터 분석, 수양·실천 컨설팅 전략의 발굴 제시는 물론, 각계 명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학술적 통찰을 끌어냈다. 본지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입수해 창간 특집으로 독점 게재한다. 연구 결과물은 ‘셀럽시대’(한울엠플러스)란 책으로 오는 5월 출간될 예정이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사진을 보고 경탄하며 ‘칠리치즈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해요. 그런데 실제로 나오면 양념이 풍부하고 느끼한 그걸 다 먹어야 하냐는 부담감을 느껴요. 그때 ‘일반 감자튀김’을 시켰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후회하죠. 인간에게 명성이란 바로 이런 존재예요.” ‘그릿’(Grit, 2016)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21년 2월 28일 미국 팟캐스트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나와서 한 얘기다. ‘명성’은 자아실현 욕구를 지닌 인간의 본능이자 인생의 성공 가도에서 간절하게 그리는 꿈이다. 동시에 앤절라 더크워스의 말처럼 ‘약’과 ‘독’이란 양면성을 지녔다. 명성은 인생 경험과 성과의 소산이자 자신을 웃고 울게 만든 가치이기에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지닌 시니어들에게 더욱 친숙한 어휘다. 명성은 사회적으로 신뢰와 참여를 촉진하고, 정치적으로는 투표율과 지지를 견인하며, 경제적으로는 그 존재량이 희소해 ‘관심경제’는 물론 명성에 대한 선망, 추종, 숭배를 극소수에 집중시키는 ‘슈퍼스타 경제학’을 구성한다. 인터뷰에서 문인·철학자는 대체로 명성을 경계하고, 정치인·경제인·의료인은 능력과 신뢰에 바탕을 둔 적극 활용론을 강조했으며, 예술인·체육인은 조건부 활용론에 방점을 두었다. 명성은 ‘약’과 ‘독’ 양면성 지녀 경계해야 ‘풀꽃 시인’ 나태주는 2015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은 바 있는 ‘풀꽃(1)’을 썼다. 시구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인데, 그는 이 시에 대한 폭넓은 사랑으로 ‘국민시인’으로 떠올랐다. 나태주 시인은 ‘명성’에 대해 “전적으로 남이 알아주고 평가해주는 고귀한 가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명성을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버리고 아첨하고, 반칙하며, 사술(詐術)을 부리며 아등바등하는 것은 거부했다. 심지어 신춘문예 당선이나 등단에 조급증을 갖거나 빨리 쓰려고 하는 문단 후배들까지 꾸짖었다. 그는 “명성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데다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혼을 망가뜨리기 쉬우므로 존엄과 품위가 가미되어 더 가치가 있는 ‘명예’를 중시한다. 명성은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져버리는 젊은이의 ‘화장’과 같고, 명예는 경륜 있는 노인들이 갖는 가슴속 숨겨진 ‘흉터’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잘 지워지지 않아 영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과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투영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날이 선 언어로 소통을 확대해왔다. 그는 명성을 절대 추구해서는 안 될 ‘노예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철학과 인문학의 견지에서 명성 추구는 주인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따라가야 하는 ‘노예의 전략’”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명성을 추구하는 삶은 자기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삶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을 좇는 것이기에 결국은 꼭두각시의 삶을 사는 것”이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부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정치인 정세균(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국내 헌정사 최초로 여야의 정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해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으로 통한다. 국회의원(6선), 장관(산업자원부),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일종의 세평(世評)이지만, 명예는 본인 성과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과 자부심의 척도다. 명성은 반드시 공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일에 열정을 발휘해 얻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한보청문회’(1997년)에서 한보의 로비 자금을 거절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밝혀져 일약 명사로 부상한 이후 지금껏 겪은 성찰을 집약한 것이다. 그는 “국민이 우러러보는 ‘정치인 명사’가 되려면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맡은 공직의 무게를 온전히 떠안으며 일하는 ‘책임의식’, 정성과 투명성을 기본으로 국민을 받드는 ‘신뢰성’, 매사 분별력을 발휘하며 신사 숙녀처럼 처신하는 ‘품격’이 몸에 배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정직해야 명성 쌓아” ‘카리스마 리더’ 김종인(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내로라하는 경세가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관·학의 풍부한 경험 축적은 물론 ‘차르’란 별칭,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란 비유가 말해주듯 강한 소신과 뚝심으로 진보에서 보수를 망라하는 정당을 모두 이끌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에게 목숨과 같고, 국민 앞에 서서 정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갖고 이를 드높여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국민에게 피해만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의 명성 축적과 유지의 기본 요소는 정직성, 일관성, 신뢰성인데,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정직”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정치적 경륜과 지략이 풍부해 ‘정치 9단’으로 불린다. 그는 “정치인은 오늘을 잘해서 내일을 사는 사람이다. 국민의 인정(認定)을 받아야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고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명성은 정치인에게 존재 자체이자 전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얻으려면 철두철미하게 지식을 쌓고, 국가 사회와 국민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미래 상황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등의 자기계발을 하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영향력, 기능, 효과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인 언론을 하늘같이 알고 받들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나는 신혼여행 이후로는 아내와 여행 한번 같이 못 갔을 정도로 정치 행위 그 자체를 즐기며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아예 동일시(同一視)하며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김세연 전 의원(청년정치학교 운영자, 3선 의원)은 ‘36살의 집권당 최연소 당선’이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계에 입문해 개혁보수와 우파혁신을 주창한 ‘청년정치 리더’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명성은 오직 정치인 본인의 의도나 의사와 무관하게 공직에 대한 열정적·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그 결과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외려 명성과 거리를 둘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위해 일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왜곡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는 정치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욕망이나 의도를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시적으로 위임된 권한과 권력을 사유물인 양 착각한 나머지 여의도 정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명성 지향’, ‘명예 지향’의 정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거부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관된 목표·방향성 갖고 혁신경영” 차석용 LG생활건강 전 대표이사 부회장은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조직, 제품, 서비스 혁신 분야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해 2022년 말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이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는 “기업과 CEO의 명성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소비자들의 명민한 감각과 반응으로 시시각각 정확하게 측정되는, 영예롭고도 두려운 양면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기업과 CEO는 소비자를 ‘진정한 보스’로 모시고 기업의 증진을 위해 분명하고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혁신경영에 몰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CEO로서 LG생활건강에서 강조한 기업과 제품의 명성 증진 전략은 정직, 진정성, 신뢰, 디테일(세심함과 정확함)이었다. 이종천 ‘다나딸기농장’ 대표(충남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는 독보적인 반전의 귀농 성공신화를 쓴 ‘딸기왕’으로 농업계와 지역사회에서 명성이 높다. 이종천 대표는 “농민의 명성은 자신이 재배한 작물이 말해준다. 저에겐 풋풋하고 탐스러운 저 딸기가 그걸 상징한다. 온갖 정성, 노력, 풍상, 고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묘미는 자연과 함께 인생을 즐기며 향긋한 결과물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기 특구’이자 딸기 수출 전진기지인 충남 논산의 성공한 농업인이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위촉한 농업 후계자를 교육하는 현장의 교수로 활동하며 농촌의 미래를 가꾸는 데 헌신하고 있다. 건설사 임원 출신인 그는 퇴직하고 시작한 통신 서비스 사업의 실패 후 무작정 귀농해 8년간 딸기 농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재 비닐하우스 딸기 재배동 7개 동과 딸기 육묘장 2곳, 청년귀농장기교육장과 딸기현장실습교육장을 함께 운영하며 연 7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명성은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 서울 용산의 ‘메이플라워/술술상점 용산’ 정미희 대표는 최근 SNS에서 매우 뜨거운 유명인사다. MZ세대 CEO로서 뛰어난 외적 매력을 바탕으로 최근 10년간 미식 탐방, 새벽시장 장보기, 술 시음과 술집 탐방, 여행과 골프 체험기 같은 일상적 콘텐츠를 페이스북에 게시해 인기를 끌면서 ‘SNS 셀럽’으로 떠올랐다. SNS를 한 시대의 문화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정 대표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2022년 1월 20일 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명성은 불편함도 크지만, ‘존재감 미약한 편안함’보다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이란 나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사업보다 친교에 도움이 된다. 수상한 접근을 하는 ‘가짜 친구’도 많이 생기긴 하지만 일생을 함께할 친구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석 미래본병원 대표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서울 잠실)은 ‘경추·요추 부위 내시경 수술(수술 경력 9000건)의 명인’이다. 김 원장은 “의사의 명성은 환자를 사랑으로 극진히 돌봤는지에 대한 자화상 같은 척도다. 그것은 오직 환자와 직결되며, 환자를 떼놓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는 신뢰와 사랑을 토대로 사력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좋은 의사’, ‘훌륭한 의사’, ‘명예로운 의사’의 출발점도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의사가 명의(名醫)란 명성을 얻으려면 환자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공감 능력’과 ‘좋은 인품’, 환자를 제때 제대로 치료하는 ‘뛰어난 실력’,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와 자신감 표출’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주대 의대 출신으로 군의관 시절 선구적인 내시경술 수련과 아프간 의무부대 참전, 척추 전문 병원인 우리들병원 수련원장과 의무원장, 우리들의료재단 부이사장을 거쳤다. 그는 “높은 명성을 지닌 의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과 오만, 그리고 그것의 연쇄반응으로 나타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에게 명성은 삶의 기적과 고귀” ‘대장금 한류’의 주역 양미경 배우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을 맡아 드라마가 국내는 물론 동남아·중동 지역까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로 부상했다. 양미경 배우는 “‘명성’은 삶의 기적이며 고귀(高貴)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명성(名聲)은 이름이 소리가 나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선(善)함을 바탕으로 인고의 노력과 울림을 통해 영롱한 새벽이슬처럼 만들어진 것이기에 ‘명성은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연기를 통해 맑고 선한 성정, 곱고 단아한 이미지를 각인하는 독보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해온 명성과 관록에서 나온 통찰이다. 라마단(Ramadan) 기간에도 ‘대장금’을 시청할 정도로 경이적인 시청률(90%)을 나타낸 이란에서 2009년 5월 그를 ‘국빈’(國賓)으로 공식 초대했다. ‘대장금’이 2015년 홍콩에서 방영되었을 때 시민의 약 절반인 328만 명이 시청(최종회 최고 시청점유율 50%)해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팬들이 몰렸다. 그는 “‘대장금’ 출연 당시 홀연히 찾아온 에너지처럼 새로운 차원의 명성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강한, 삶에서 흔히 만날 수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였다”라고 술회했다. ‘골프 여신’ 최나연 프로는 우리나라 ‘여성 골퍼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라는 명성을 안겨준 원동력은 전적으로 태생적 자질인 강력한 도전정신과 성취욕이다. 나는 일관성과 꾸준함을 가장 잘 보여준 프로 골퍼로 골프사에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매력·저력’을 완비한 골퍼로 ‘롱 아이언 샷의 명수’이자 ‘골프계 최고 얼짱 스타’로 불렸다. 2004년 11월 데뷔 후 18년간 미국여자골프(LPGA) 최고의 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2012)은 물론 LPGA 대회에서만 우승 9회, 준우승 12회, 3위 7회의 저력을 보여준 뒤 2022년 말 전격 은퇴했다. 그는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집중력, 경험, 실력, 운(運)이란 4가지 요소가 경기 당일 어떻게 최적의 조합을 이뤄 경기력으로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를 잘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4가지 요소를 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스타 골퍼’들이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겸손한 성품, 끊임없는 실력 증진 노력, 선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3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명성,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어”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명성이란 사람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기자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은 이메일과 SNS를 통해 내가 쓴 기사에 대한 공감과 긍·부정의 평가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명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이 앞서 균형감각 유지에 대한 강박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32년 차 기자로서 ‘AP통신’ 기자 시절인 1999년 9월 30일 영구적으로 묻힐 뻔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특종 보도해 2000년 한국인 기자로는 처음으로 서구 언론계에서 ‘언론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받아 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 나를 만든 힘은 강한 성취욕과 성실성이다. 노근리 사건의 취재는 어떤 피해자가 쓴 논픽션 실록의 출판이 당시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 내용에 두려움을 느낀 출판사에 의해 거부되고, 한미 양국이 피해자들을 외면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다. KBS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계에서 경쾌한 에너지와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춘 ‘MZ세대 아이콘 뉴스앵커’로 통한다. 그는 “나에게 명성은 방송사에서 일을 더 열심히, 더 잘하게 하는 동기부여 요인이자 원동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11월부터 공영방송 KBS의 ‘KBS 뉴스 9’(주말) 뉴스 진행을 맡고 있다.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프로그램을 봐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한테도 그것이 일할 때 항상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명사로 인정받을 만한 유능한 앵커가 되려면 첫째 기사를 보고 핵심을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깊게 질문하는 능력, 둘째 명쾌하고 유려한 전달력, 셋째 진행 능력과 같은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BTS, “기본적인 것, 결과에 따른 신뢰” 한편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한몸에 받은 피겨 스타 김연아는 언론 매체를 통해 명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11월 미국 패션 잡지 ‘페이퍼’(PAPER)와의 화보 인터뷰에서 글로벌 스타로 유명해지면서 점점 높아진 명성에 뒤따르는 부담감을 고백했다. ‘멤버들은 명성이 주는 부담감이 큰가?’란 질문에 대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저는 요즘 사명감으로 살고 있어요. ‘완벽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 결과에 따라오는 신뢰를 기억하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제이홉),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지민),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슈가), “여전히 우리는 무대 위에서 정말 잘하고 싶어요”(리더 RM)라고 각각 답했다. 김연아는 명성의 유무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운동선수가 갖는 명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19세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3년 전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때는 혼자 외롭게 싸웠다”라고 울먹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둬 명사가 된 후에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다 보니까 좀 불편한 건 피해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행복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내비쳤다.
- 2023-04-1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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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세 시대, 소비력 크고 활동적인 새로운 중년 ‘후기청년’ 등장
-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23-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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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직업백과 ③주택관리사] 정년 없고 취업 용이해 제2직업 선호도 높아
-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세 번째 순서로 ‘주택관리사’에 대해 알아봤다. ◇ 주택관리사, 왜 유망할까? 2020년 4월부터 주택관리사 의무채용이 확대가 되어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공인중개사와 비슷하게 응시자격 제한이 없고, 나이 70세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김경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장 아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관리하고, 주민들이 결정한 일을 진행하는 관리자다. 최근 공인중개사와 함께 꾸준히 인기가 있는 직업으로, 안정적인 고정 급여가 장점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시 이해 갈등 조정 능력이 요구되며, 유사 업무 경험이 있다면 유리하다. 여성 주택관리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흔히 ‘아파트관리소장’ 등으로 알려진 ‘주택관리사(보)’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을 운영 관리하며 입주민들의 생활에 편의를 제공한다. 시설 관리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 직원 관리, 민원 해결 등 다양한 소양과 업무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사회 경험이 많은 중장년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공동주택, 아파트, 빌딩의 관리소장 또는 공사 및 건설업체의 운영·관리 책임자로 취업하거나 합동사무소나 주택관리업체를 창업하는 형태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정년 없이 활동 가능한 덕분에 제2직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업무는 크게 행정 관리와 기술 관리로 나뉜다. 먼저 행정 관리의 경우 예산 편성 및 진행, 관리비 산정 및 징수, 물품 구입 등 회계 관리를 비롯해, 사무(문서 작성 및 보관), 홍보(화보 발간), 인사(관리사무소 행정 및 기술 인력) 등을 이른다. 여기에 입주자 관리까지 담당하게 되는데, 일반 민원 처리는 물론 입주자대표와의 논의 등을 진행해야 하기에 소통 능력이 요구된다. 기술 관리는 건물의 유지 보수, 소화 설비, 안전 교육, 전기·가스·배수 및 승강기 설비 등의 업무를 아우른다. 장비 관리 및 유지 보수 등을 통해 입주민들의 안전 보장과 더불어 주택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커리어넷 직업정보에 따르면 주택관리사는 리더십과 통솔력, 책임감, 공정함 등을 갖춰야 한다. 입주민들 간의 각종 이해관계와 요구사항들을 조화롭게 중재하여 해결하는 합리적 사고방식과 문제해결능력, 대인관계능력도 필요하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전현국 대리는 “관리사무소장(주택관리사)은 공동주택을 전문적이고 계획적으로 관리하여 입주민의 생활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행정·기술 등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다. 책임자로서 근무의 어려움이 따르지만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활기찬 성향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동주택의 증가와 의무 관리 대상 아파트 및 주택관리사 의무 채용 확대 등으로 주택관리사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의무관리대상 아파트란? 해당 아파트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자(주택관리사)를 두고 자치 의결기구를 의무적으로 구성하여야 하는 등 일정한 의무가 부과되는 아파트를 말한다(규제「공동주택관리법」 제2조제1항제2호). 의무관리대상 아파트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규제「공동주택관리법」 제2조제1항제2호 및 규제「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조). △300세대 이상의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된 아파트 △150세대 이상으로서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지역난방방식을 포함)의 아파트 △규제「건축법」 제11조에 따른 건축허가를 받아 주택 외의 시설과 주택을 동일건축물로 건축한 건축물로서 주택이 150세대 이상인 건축물 △1.부터 4.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공동주택 중 전체 입주자등의 3분의 2 이상이 서면으로 동의하여 정하는 아파트 ◇ 주택관리사, 나도 될 수 있을까? 주택관리사가 되려면 먼저 국가자격인 ‘주택관리사보’를 취득해야 한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 합격 후 일정 기간 실무 경력을 쌓으면 ‘주택관리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택관리사보는 응시 자격 제한이 없으며, 시험은 1차, 2차로 나뉜다. 1차는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 민법, 2차는 주택관리 관계법규 및 공동주택관리에 대한 내용이다. 응시생들의 합격률을 살펴보면 2차보다 1차 합격률이 저조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차 시험 합격률은 평균 15.5%로 타 자격시험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같은 기간 2차 시험 합격률은 평균 70.9%로 1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택관리사로 경력 인정 받으려면? △50세대 이상 500세대 미만의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장으로의 근무 경력 3년 이상 △50세대 이상 공동주택관리사무소의 직원(경비원, 청소원, 소독원은 제외함) 또는 주택관리업자의 직원으로서 주택관리업무에의 종사경력 5년 이상 △한국토지주택공사 또는 지방공사의 직원으로서 주택관리업무에 종사경력 5년 이상 △공무원으로서 주택관련지도·감독 및 인·허가 업무 등에 종사경력5년 이상 △주택관리사단체와 국토교통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공동주택관리와 관련된 단체의 임직원으로서 주택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력 5년 이상 △앞에 언급된 경력을 합산한 기간 5년 이상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73조) 이에 전현국 대리는 “주택관리사(보) 1차 시험 과목은 민법,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으로 평소에 접할 일이 없는 내용이라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차분히 습득하길 권한다. 2차 시험은 공동주택 관련 법규, 공동주택관리실무로 1차보다는 공동주택의 관리업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아파트에 거주하시거나, 평소 관리사무소와 단지의 상황을 관심 있게 봐뒀다면 좀 더 쉽게 접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응시 현황을 살펴보면 전 연령대 중 50대 응시자가 가장 많다. 합격자 수도 마찬가지다. 가령 2022년의 1차 시험의 경우 50대 합격자는 1482명으로 20대(48명) 합격자의 30배가 넘는 수치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수치가 실제 50대 주택관리사의 수요가 높은 현상을 보여주는 결과라 해석했다. 전 대리는 “주로 40~50대 쯤 퇴사를 하는데, 정년이 없다는 장점 덕분에 주택관리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일찍이 주택관리사를 선택하는 젊은 세대도 늘어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정년이 없는 것과 더불어 자격증 취득 후 취업으로의 연결이 용이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자격증 취득 후 주택관리사(보)가 되면 법규상으로는 500세대 이하의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제 막 자격만 취득하고, 주택관리에 대한 경력이 없다면 즉시 현장에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되기란 쉽지 않다. 대한주택관리자협회 관계자는 “매년 2차 합격자 발표가 날 때 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위탁사(주택관리업자)들은 공채를 모집한다. 이 시기를 잘 활용하면 취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관리사무소장 배치 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교육·안전 홈페이지를 통해 의무교육을 미리 받아두거나, 협회 산하 각 시도회에 문의해 취업 관련 오리엔테이션 등에 참여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Interview] 정우석 주택관리사 “정년 없이 워라밸 지키며 일할 수 있어 만족해” 2018년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정우석(42) 씨는 현재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체로 50~60대가 선호하는 직업이었던 주택관리사에 일찍이 관심을 보이게 된 건 친구 어머니의 조언 덕분이었다. “친구 어머니께서 주택관리사 일을 하셨어요. 정년 없이 능력이 되는 한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 진입 장벽도 높지 않다며 추천해주셨죠. 그런 설명이 제겐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2018년에 자격증 시험 준비를 시작해서 그해에 취득했습니다. 이전에 부동산 관련 일을 했었는데,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시험 과목이 유사해 공인중개사와 연달아 준비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정우석 씨는 자격증 시험 합격 후 한 달 여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는 시험 준비부터 취직까지 탄탄대로 흘러간 셈. 그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격 취득 후 구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1년 이내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취업 후 업무 환경과 강도는 어떨까? 주택관리사 6년차, 정우석 씨는 현재 하는 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기본적으로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보장되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나 대체 휴일 등이 잘 이뤄진다는 게 주택관리사의 장점인데요. 사실 어떤 사업장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업무 환경이나 강도는 다를 수 있어요. 저도 예전에 일했던 곳은 업무 강도가 센 편이었죠. 이 또한 어느 정도는 구직자가 선택적으로 조절 가능하다고 봐요. 만약 업무 강도가 세더라도 주택관리사로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수입도 올리고 싶다고 하면 그에 맞는 사업장에 지원하면 되고, 아니라면 규모가 작고 월급이 적더라도 좀 수월한 곳을 찾으면 되니까요.” 관리소장으로 일하며 정우석 씨가 체감하는 주택관리사의 주요 덕목은 대인 관계와 소통 능력이다. 아무리 행정과 관리 업무를 잘해도 입주자나 입주자 대표와 마찰이 생기면 업무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입주민과의 다툼으로 쫓겨나듯 해고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때문에 이런저런 민원을 응대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택관리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계나 운영 관리는 물론이고 법령에 대한 정보나 기술적인 부분도 숙지해야 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입주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봐요. 아무리 작은 단지라 해도 150세대고, 많게는 2000세대도 관리해야 하는데,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응대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정서적 노동 강도가 적지 않은 편이죠. 대인 관계가 어렵거나 이러한 감정 노동을 원치 않는 분이라면 이 일이 힘들 수도 있어요.” 정우석 씨 역시 입주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주택관리사로서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체력이 되는 한 이 일을 오랫동안 해나갈 계획이다. “한때는 이 일로 어떤 경지까지 올라가겠다, 돈은 얼마를 벌겠다는 포부도 있었는데요. 요즘은 그런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일 이외의 삶에도 충실하려고 해요.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이라고도 하죠. 한 20~30년은 능력이 닿는 한 이 일을 하면서, 제 일상을 돌보고 싶습니다. 그런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는 게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이 갖는 메리트이기도 하죠. 한편으론 그런 점에서 현역 때보다는 더 유연한 직업을 원하는 퇴직자들이 주택관리사를 선호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자료 제공 및 도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 2023-03-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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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 가이드 ④일본 편] 퇴직연금제도 선호도 낮아 개혁 진행 중
-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이번에는 일본의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본다. 일본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많지 않다. 한때 활성화되었던 기금형 제도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AIJ 사건 등에 따라 선호도가 낮아지면서 가입이 감소하는 추세다. 자리 잡지 못한 퇴직연금제도 일본은 종신고용과 연공급여 체계 등 기존의 고용 방식에서 능력과 실력 위주의 고용방식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거쳤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경제 성장기를 거쳐 저성장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퇴직연금 개혁을 진행했기에 우리나라가 참고할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일본의 퇴직연금제도는 1960년대 도입된 후생연금기금(EPF), 세제적격 퇴직연금제도(TPP), 2000년대 초 도입된 확정급부기업연금(DBP), 확정갹출연금(DCP)로 나뉜다. EPF는 후생연금보험법에 따라 후생노동성의 인가를 통해 기업이 법인형태로 연기금을 설치하는 DB형(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다. TPP는 세제적격 요건을 충족한 계약을 국세청장이 승인하는 형태로, 사업주가 금융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며 역시 DB형 제도다. DBP는 DB형을 가져가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기금형과 규약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금형은 후생연금기금 구조와 동일하며 규약형은 기업이 스스로 동의와 승인 절차를 거쳐 수탁자(은행, 증권, 보험사 등)와 계약해 운용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DCP는 규약형으로만 운영되며 미국의 401k를 참고한 기업형과 우리나라 개인형 퇴직연금을 참고한 개인형으로 나뉜다. EPF는 2014년부터 신규 가입을 금지했으며, 올해 폐지된다. TPP는 2012년에 폐지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퇴직연금제도지만 이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일본 인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의 퇴직급여제도 도입률은 91.9%다. 이 중에서 퇴직금제도를 운용하는 기업은 복수응답 기준 91.2%지만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45.8%에 불과하다. 퇴직금제도는 대부분 기업이 도입했지만 연금의 형태가 아니라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기업이 절반에 이른다는 의미다. 퇴직연금제도는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먼저 시작됐는데 해당 국가들은 '신탁'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혀 있었기에 퇴직연금으로 백만장자가 된다는 사례들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신탁이 활발하지 않은 일본은 다른 국가들처럼 연금 관련 제도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없었다. 기금형 제도, 퇴직연금 제도, 디폴트 옵션 모두 실패 사례로 꼽힌다. 기금형 연금제도와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도 실패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일본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에서 퇴직연금제도 개혁은 여전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연기금 연쇄 파산의 비극 일본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퇴직연금 가입률은 25%이며 근로자 가입률은 37.7%다. 퇴직연금 자산 규모는 2020년 기준 98조 8000억 엔이다. TPP와 EPF는 감소하는 추세고 DBP와 DCP가 2020년 기준 각각 67조 5000억 엔, 16조 3000억 엔 규모를 이뤘다. 기금형만 따로 보자면 EPF가 15조 엔 수준(2001년에는 57조 엔 규모였다)이며 DBP 기금형은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다. KIRI는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기금형 가입자 수는 DBP와 EPF의 DB형 가입자 중 약 52%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EPF에서 이탈한 가입자들이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며 “2020년 기준으로 DBP 기금형과 규약형 도입률이 각각 19.5%, 41.9%로 기금형 도입률이 낮다”고 분석했다. 기금형 도입률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서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자산운용 실패로 인한 EPF의 부실화, AIJ 퇴직연금기금 사기 사건에 따른 EPF 폐지 등으로 기금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KIRI의 분석처럼 일본의 기금형 제도가 감소한 데는 AIJ 퇴직연금기금 사기 사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운용회사가 자금을 불법 투자해 가입자의 은퇴 자산이 사라지고 연기금이 연쇄 파산한 사건이다. 당시 AIJ투자자문사(이하 AIJ)에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맡긴 퇴직연금기금(EPF) 자산을 AIJ가 파생금융상품 등 대체상품에 불법 투자했다가 원금의 90%를 잃었다. 84개의 EPF 연기금과 약 88만 명의 중소기업 가입자가 맡긴 연금자산 1458억 엔 중 1377억 엔이 사라졌다. 이에 AIJ에 운용을 맡긴 퇴직연금기금이 연쇄 파산했고, 은퇴자금을 맡긴 가입자들이 노후 파산을 직면해야 했다. 시사점은 ‘관리 감독의 중요성’이다. 앞서 살펴본 미국, 호주, 영국은 모두 수급권보호와 수탁자 규제를 강하게 하고 있었다. KIRI는 “후생노동성과 금융청으로 나뉘어 있었던 연기금 감독 기관의 협력체계 부재와 역할 분담의 불투명, 감독 당국 정보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며 “연기금 대부분이 비전문가에 의해 자산운용 등의 주요 의사결정을 수행했고, 위험자산 비중 확대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 정부는 수급권 보호와 수탁자 규제 강화를 위해 후생노동성의 자산운용 방법을 개선했고, 사후감시 기능 강화를 위해 퇴직연금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금융청의 금융상품거래법규 개정 등을 시행했다. 원금 까먹는 디폴트 옵션? 미국이나 호주가 퇴직연금으로 백만장자를 꿈꾸게 한데는 디폴트 옵션의 도입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일본은 디폴트 옵션 정착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19년에는 퇴직연금 자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우리나라에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할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이 ‘원금 보장형’ 상품을 두느냐 마냐다. 당시 연금 가입자의 자금 보호를 위해 원금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일본처럼 디폴트 옵션을 선택할 때 ‘예금’이라는 선택사항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퇴직연금을 어떻게 굴려 수익률을 낼 건지 선택하는 제도인 디폴트 옵션에서 ‘예금처럼 둔다’는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다. 원금 보장을 원하는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측면도 있겠으나,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이유가 ‘수익률을 높여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본 정부는 2016년 확정기여연금법 개정을 통해 디폴트 옵션 제도 안착을 다시 시도했다. 법 개정 전까지는 신규 가입자의 디폴트 옵션 선택 비율이 15% 수준이었으며, DB형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96% 이상이 디폴트 옵션으로 ‘원금보장형’ 상품을 지정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연금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DBP 자산은 기금형과 규약형 모두 원리금 보장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디폴트 옵션에서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을 지정하도록 디폴트 옵션의 정성적 기준과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 교육에 중점을 둔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다.
- 2023-03-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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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자살률 1위 대한민국, 고령자 항우울제 처방의 ‘명과 암’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우울증 치료제인 SSRI* 처방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발률 1위인 만큼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항우울제 처방이 늘어 우려스럽다거나, 우울증 약인 줄 모르고 먹는 고령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자 항우울제 처방, 현실을 들여다본다. 2017년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31명. OECD 국가 중 1위다. 의사들은 노인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우울증 유발률과 자살률은 1위인데, 우울증 약 처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기운 나는 약’, 쉽게 처방되는 항우울제 노인 우울증은 ‘60세 이상 인구에서 발생하는 우울 증상’이라고 따로 정의할 정도로 일반 우울증과는 별개로 다뤄진다. 노인 우울증의 특징은 ‘온갖 병원을 다 가봐도 아프다’는 것이다. 우울 증상이 여러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체적 질환과 동반되어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규만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우울증뿐 아니라 공황장애, 범불안장애와 같은 노년기 불안장애도 늘고 있어 1차 치료제로 항우울제가 처방되고 있다”면서 “내외과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지속되는 원인 불명의 신체 증상이나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 예민도를 낮추기 위해 처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령 세대는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약에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정신과에 가보세요’라는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는 우울증 치료에 대한 문화적·법적 낙인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정신과 진료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진단서에 남는 ‘F코드’를 우려해 ‘죽어도 정신과는 못 간다’며 버티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 진단서에 F코드가 남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고지조차 되지 않는다. 권 이사는 “쉽게 처방할 수 있도록 항우울제 처방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고령자의 우울증 치료는 다방면으로 살펴보고 이뤄져야 하는데, 낙인이 두려워 정신과를 찾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권 이사는 “사람의 뇌에는 혈류장벽(Blood Brain Barrier)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대부분의 약물은 이것을 뚫지 못한다. 아세트아미노펜(해열진통제)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 성분이 뇌에 영향을 줄 위험은 없다는 뜻이다. 이 장벽을 넘는 약을 향정신성 약물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SSRI가 꼽힌다. 노인들은 뇌 혈류장벽이 느슨해져 있기 때문에 부작용에 더 쉽게 노출된다”면서 “아세트아미노펜 하나를 처방하는 것보다 렉사프로(항우울제) 하나를 처방할 때 용량 계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항우울제는 뇌에 작용하기 때문에 적은 용량으로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전문적으로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항우울제를 먹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약물을 복용할 확률이 높은 고령자의 경우 한 번 문제가 발생하면 목숨도 위험할 수 있을 만큼 부작용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치료 접근성의 명과 암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서는 진료 시간이 길수록 병원의 적자도 커진다. ‘3분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를 설득하고 약에 대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기운 나는 약’으로만 알고 약을 복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권 이사는 “렉사프로와 같은 대표적 항우울제는 기존에도 타 과에서 처방이 가능했으나 60일이 경과하면 정신과에 갈 것을 권유하고 협진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해당 고시 내용을 없애기로 했다”면서 우울증 치료 접근성의 명과 암을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쇠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는 필연적으로 우울감과 같은 정신건강의학적 문제를 수반한다. 신체형 장애 환자를 진단했지만 SSRI 처방 제한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런 환자들이 찾는 병원이 주로 내과나 신경과임을 고려하면 SSRI 규제 완화로 고령자 우울증 치료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령 환자를 진료할 때는 적극적으로 기분장애를 확인하고 약제 처방을 하는 적극적 진료 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 역시 고령자는 다약제 복용을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병원을 전전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진료와 부작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항우울제가 치매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노인 우울증의 40~60%는 인지 기능 저하가 동반돼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인다”면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우울증이 치매를 유발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진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고령 환자분들 중에는 우울한 기분이나 의욕 저하보다 무기력감, 식욕 저하, 가슴 답답함, 소화불량 등의 신체 증상으로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환자 스스로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에 관해 설득이 필요하지만, 치료 후 신체 증상이 호전되면서 이전의 삶을 되찾고 기뻐하는 분들이 많다”며 치료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SSRI: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우울증 치료 약물 중 하나.
- 2023-03-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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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광 받는 기업재난관리자 "현장서 중장년 경험 빛나, 자격 취득도 용이"
- 지난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으로 주목받는 기업재난관리자는 예측불허로 일어나는 기업의 각종 재난을 최소화하고 이에 대응한다. 지난 1월 본지가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 전망에서도 해당 분야의 발전을 밝게 점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료 수집이나 데이터 활용, 계획 수립 등의 업무에 자신 있는 중장년이라면 체력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효성그룹, 웅진그룹 등 굵직한 기업에서 30년간 근무 경험이 있는 봉영권(63) BCM협동조합 대표도 기업재난관리자에 도전장을 내밀어 재해경감 컨설팅을 주업으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그는 과거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퇴직 이후를 대비해나갔다. 초반에는 준비의 일환으로 지인들과 교류하며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컨설팅이나 외부 강의를 조금씩 진행했다. “경영 컨설팅과 더불어 산업안전 컨설팅도 준비했어요. 산업안전 컨설팅은 제조업체 사업장의 산업안전을 지도하고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죠. 그러던 중 2013년에 국내 재난 안전 관리 분야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행정안전부에서 관련 교육과 자격 취득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저 또한 눈여겨보던 산업 안전 쪽과 연관 있고, 전망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국가자격 취득, 대행분야가 고비 기업재난관리자 시험 및 교육 과정은 크게 재해경감활동 실무분야, 재해경감활동 계획 수립 대행분야, 우수기업인증 평가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맞는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해당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실무분야-대행분야-평가분야 순으로 취득해야 다음 단계 응시가 가능하다. 봉영권 대표는 2014년 실무분야 취득 후 2018년 대행분야, 2019년 인증분야까지 섭렵했다. “실무, 대행, 인증 과정 각각 교육 수료, 시험 단계를 거쳐야 해요. 실무는 35시간 대행은 70시간, 인증은 35시간 교육을 수료해야 시험 자격이 주어지죠. 다른 조건은 따로 없어요. 실무 분야 시험은 객관식이라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교육 과정만 따라가면 취득이 용이한 편이라고 봐요. 고비는 대행 분야입니다. 5과목으로 이뤄지는데 주관식으로 단답과 기술형 출제가 있어서 집중적으로 충분히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어요.” 인증분야의 경우 대행분야를 취득하면 비교적 쉽게 합격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인증과정의 경우 기업재난관리사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안목과 시스템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는 단계라고. 그는 직장에 다니는 경우라면 교육기관에 따른 수강 시간을 고려해 일정 계획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 기관마다 시험에 대한 팁들을 잘 주기 때문에, 교수분들과 소통을 하면서 시험 대비를 하면 좋습니다. 취득 이후에는 컨설팅 대행기관이나 인증기관에 연락하셔서 본인 상황에 맞는 역할을 찾아가길 추천 드려요. 제 경우엔 자격증 취득 후 대행기관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재해경감활동계획수립사업이 공공기관 중심으로 많이 전개되고 있고, 2021년 하반기부터는 민간 기업들에도 확대돼 컨설팅 대행기관들이 이 일들을 담당하는 상황이에요.” 젊은이 거의 없어, 노련한 중장년이 적합 기업재난관리 컨설팅 완료 후 해당 시스템이 적정한 것으로 검증되면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서를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검증 역할을 인증 대행기관에서 진행하는데 이때 인증분야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대행기관에 상임이나 비상임 위원으로 등록하면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봉영권 대표 또한 인증 대행기관의 비상임으로 소속돼 수시로 활동 중인 셈. 국가자격 시행 10년, 초창기부터 관련 분야에 몸을 담아온 그에게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 취득이 중장년에게 유리할지 물었다. “현재 기업재난관리 분야 관련 학과가 많이 없는 편이라 젊은 인력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종합적으로 기업을 지도해주고 시설의 요구 사항을 해결해주려면 사회경험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여러 기업에서 실무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중장년들에게 유리한 분야라고 판단됩니다.” 현재 그는 재해경감 컨설팅 대행기관에서 여러 기업들의 재난안전 대응 관련 컨설팅과 시스템 인증평가원 업무를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근래 코로나19 등 감염병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재난안전 분야는 계속해서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그에 반해 현재 관련분야 시장이나 시스템 마련은 초기 단계인 상황. 역으로 그만큼 재난안전관리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유추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봉영권 대표 또한 남다른 자부심과 열정으로 관련 업계 성장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이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재난 안전 대비나 연속성 계획 수립의 요구는 향후에 더욱 심화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더 늘려 나가야 하고, 시스템 수준도 고도화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관련 분야 생태계를 담당하는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협회, 컨설팅 대행기관들이 각자 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끄는 BCM협동조합 또한 이러한 부분에 이바지하고 기업의 안전문화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해나가는 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하고자 합니다.”
- 2023-03-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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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돌봄, 지역사회가 열쇠다⑤] 스페인, 경험 앞세워 노인을 사회 주체로
- 경제협력기구(OECD)는 스페인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불평등 노령화 예방 보고서’(Preventing Ageing Unequally)에서 스페인의 65세 인구 비율이 2050년에 40%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초고령화시대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 고령층 건강 대책을 시행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노인복지청(IMSERSO)을 정부 부처 내 독립 부서로 두고 국민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복지청의 사업으로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령자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스페인 관광지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지난 2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의 보도에 따르면 여행 상품과 여행지를 다양화해 스페인 내 52개 지방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은 문화나 자연 경관을 선호하는 노인의 요구에 근거해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회인권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용 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지난해 연금 인상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스페인 대학들은 55세 이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험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를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접근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학 내에서 사회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하고 △노인이 아닌 다른 집단에게도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인문학, 과학, 사학, 예술 분야 등의 강의를 제공하는 이곳의 이름은 노인을 단지 나이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외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주 도시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드리드, ‘영원한 현역’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 스페인에는 기업의 전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중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세콧’(SECOT)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는 스페인 내 도시 외에도 유럽 연합(EU) 22개국의 조직이 모여 30세 미만의 실업자 혹은 실직자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45세 이상 중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콧 회원은 창업, 마케팅,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무 관리 방식 등에 대한 강의를 무급 자원봉사로 제공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전 직장과 업무를 고려해 업무를 배당한다. 또한 실전 강의를 나가기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의 모의 강의에서 통과해야 기업에서 강의할 수 있다. 마드리드 내 자치지역인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에서는 지난해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와 공원 내 벤치, 횡단보도 등을 점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60세 이상 지역 주민 50명이 직접 18개 구와 2개 공원의 GPS 사진을 수집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웃에게 이동 편의나 접근성에 대해 직접 확인하는 등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서 1인 고령가구 챙기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2017년 말 기준, 총인구 160만 명 중 65세 이상 30만 명이며 이중 4분의 1은 홀로 거주한다. 시 정부는 홀로 거주하는 노인을 위해 ‘빈끌레스바르셀로나’(VincleBCN)와 ‘내 나이가 어때서?’(Soc gran, i que?) 프로그램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빈끌레스바르셀로나는 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관계를 형성, 강화하고 노인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됐다. 행정상 바르셀로나에 주민으로 등록된 65세 이상 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는 곳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노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는 프로그램과 이름이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가족과 친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커뮤니티 구성원과 일상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스마트 기기가 없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시에서 기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앱은 노인의 사용 편의를 위해 메시지를 텍스트 외에 음성으로도 입력할 수 있고,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일정을 기록해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등의 기능이 탑재돼있다. 2021년 10월부터는 청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 연동 기능을 추가했으며, 수화가 가능한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행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블로거다’(soy blogger).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아동‧청소년‧노인 서비스국의 노인 홍보부서에서 추진하는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르셀로나 노인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시니어 시민을 위한 시 웹사이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자원봉사 기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이들은 활동 전 디지털 및 저널리즘 교육을 사전에 이수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오늘날 자주 쓰이는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직접 도시에 얽힌 콘텐츠를 취재해 제작하고, ‘시니어 웹’(Web de la Gent Gran) 블로그와 바르셀로나 시립 SNS 계정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이 운영 중이다.
- 2023-03-03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