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영길이

기사입력 2016-11-22 10:31 기사수정 2016-11-22 11:49

▲내 친구 영길이(박종섭 동년기자)
▲내 친구 영길이(박종섭 동년기자)
참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다녀왔다. 가락동에서 몇 번 전철을 갈아타고 택시를 한 번 더 타고서야 친구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어릴 적 돌담을 사이에 두고 십 여년을 살았던 이웃이었다. 그러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먼저 이사를 하고 필자도 5학년 때 고향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동네가 커서 50여 호의 집들이 있었고 자녀를 보통 5~6명씩 낳는 것이 기본이어서 남녀 또래 친구들도 많았다. 이사를 간다 하니 어린 마음에 여자친구들이 이별의 선물을 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나이가 예순이 막 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서야 서로 연락을 하게 되어 김영길이란 친구도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외가가 있는 안성으로 이사해서 중학교 때 이미 키가 180CM 가까이 되어 배구 선수를 하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특기자로 뽑혀 갔다 했다. 그런데 그 후 185cm까지밖에 안되어 더는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고 울산에 있는 H 중공업에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였다 한다. 나이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큰 사업을 맡게 되어 활발하게 일하던 중 현장에서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치고 그 여파로 척추까지 주저앉자 머리에 대 수술을 하고 하반신도 못쓰는 장애가 되었다 한다.

이런 친구가 이제야 연결이 되어 만나보게 되었다. 현재 안산 근처 상록수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고생하며 살아왔을 생각을 하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어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대면하게 되었다. 자신을 비관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았다면 아마 인상도 어둡고 성격도 우울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만나본 친구의 모습은 어두운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 모습은 변하여 어릴 때 윤곽이 약간 있을 뿐이지만 횔체어를 타고 필자를 대하는 모습에서는 기쁨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해 보니 그동안 혼자 성경책을 수없이 읽고, 영어, 한자 등 공부도 많이 하고 밝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고향에 있던 여자 동창이 아이를 낳고 암으로 일찍 사망하자 고육원으로 보내게 된 아이를 데려와 30년 동안 키우고 가르쳐 주며 작년에 결혼시켜 분가해줬고, 세 명의 아이를 더 돌봐 자녀를 네 명이나 두고 있다고 했다. 본인도 장애이면서 당시 보상금과 산재에서 나오는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아왔던 것이다.

점심을 함께하면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릴 때 추억이 오롯하게 되살아났다. 수십 년이 지나 머리가 희긋한데도 당시로 돌아가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모래를 헤치고 나오는 사금처럼 세상으로 살아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밝고 긍정적으로 사는 친구에게 필자는 고마움을 전했다. 대학에서 이 나이가 되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에게 성공했다고 치켜세우기에 필자는 그 말에 단호하게 선을 그어줬다. 성공은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각자가 있는 곳에서 행복한가? 만족한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본인도 힘들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기쁨을 주며 긍정적 삶을 사는 친구야말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필자는 힘주어 말해줬다.

그는 진정 성공한 사람이다.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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