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학교로부터 집이 더 멀었던 필자는 등굣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같이 가고 하굣길에도 친구 집에 먼저 들렀다가 귀가하곤 했다. 둘 중 하나가 청소당번에 걸리는 날에는 서로 기다려줬다. 중학교도 같은 학교로 가게 되어
3년 내내 또 그렇게 붙어 다녔다.
고등학교는 서로
사람이 가잘 절절한 아픔을 느낄 때는 바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이 아닐까? 옛날 중국에서는 엄격한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어 남녀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천시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경우만큼은 그 절절한 심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는데, 이를 도망시(悼亡詩)라 불렀다. 이 도망시의 원조인 시가 바로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3수다. 반악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인출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좋건 싫건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는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지 등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들이다. 반면 오늘 점심을 누구와 먹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편한 것이 좋고, 느린 것은 싫고. 오랜 것은 쉬이 버려버리는 요즘 세상, 옛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그리워하는 문인들의 안식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이 바로 그곳. 문학관을 가득 메운 모든 공기와 기운은 이 세상 모든 문인에게 보내는 연정이다. 컴퓨터 모니터 앞, 최첨단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되겠어?” 하는 의심부터 한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흙 한 번 밟기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 얘기를 꺼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밥상에서 곁들일 채소 몇 가지 정도 심는 그런 텃밭이 아니다. 제대로 수익도 올리고 양봉까지 한다. 행촌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사고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소에 충분히 잔병치레를 했다고 봐주는 일은 없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어도 피해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강서 나누리병원에서 만난 이미정(李美正·54)씨도 그랬다. 연이어 시험에 들듯 시련이 다가왔지만, 그저 묵묵히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배정식(裵政植·41) 병원장을
부모란 자식이 아직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버텨 낸다. 도요새도 새끼를 공격하려고 하면 다리를 절며 천적을 유혹하여 새끼들이 안전하게 도망치게 한다. 어쩔 수 없는 타고난 본능이다.
아이들은 커가며 능력이 향상되지만 노인들은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지켜주던 부모는 이제 지켜주어야 할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부모로부터 향토장학금을 타 쓰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가 몹시 아파 시내에 있는 치과로 무조건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치료실 의자에 앉은 필자의 치아 상태를 보더니 신경치료를 하고 순금으로 씌워야 오래 쓸 수 있다고 했다. 값이 어느 정도이든 치료를 당장 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아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중 현관 옆 우편함에 낯선 우편물이 들어 있어 “이게 뭐지?” 하며 뜯어봤더니 세상에, 생각지도 않았던 교통범칙금 고지서였다.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범칙금 액수였다. 3만원도 아니고 5만원도 아닌 무려 13만원이었다. 13만원짜리 교통범칙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