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여고 시절 제2 외국어를 선택할 때 영어 선생님께서 문학이나 웅변을 하려면 독일어를 택하고, 사랑을 하려면 불어를 택하고, 돈을 벌려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 하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셨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친정 아버지는 의사이면서 정치를 부업으로 하셨다. 비록 정치에 실패를 하셔서 많은 돈을 날리셨지만, 본업인 의사로 재기를 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남편 친구 자녀의 청첩장을 받고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이제 부모님들의 나이가 거의 고희를 넘어서 자녀들의 결혼도 거의 끝나 가나 했는데 아직도 시키지 못한 자녀들이 많은가 보다. 요즘은 하도 결혼 연령이 늦어지니까 작은 결혼이라고 해서 부모님 친구들에겐 알리지도 않고 신랑 신부 친구들만 부르기도 한단다.
우리 젊었을 때는 맞벌이가 흔하지
망망대해에 고깃배 한 척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떠 있다. 주변에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바다에 튕겨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의 잔치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심해와 같은 적막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바다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늘한 느낌마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요즘 ‘청산별곡’을 부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해 귀농·귀촌한 사람도 50만 명에 달한다. 자연과 농촌, 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TV 화면 속으로 옮겨졌다. 자연·자연인 열풍이 TV를 강
지난해 가을 결혼식이 많은 토요일이었다. 양재역에서 지하철을 탈까하다가 논현동에 있는 호텔 결혼식에 늦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문을 열고 좌석에 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운전석에서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언뜻 백밀러로 비치는 기사님의 얼굴은 백발의 노신사였다. 요즘 택시를 타면 싸움이라도 하고 막 돌아온
얼마 전에도 우리는 ‘잠깐 다녀올까?’ 하면서 한 마디씩 나누고 강원도로 냅다 달려 북쪽의 끝머리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향해 치달았지요. 거진항에서 찝찔한 갯내음을 맡으며 싱싱한 생선회를 먹고 일상에서 묻힌 마음의 먼지를 바닷바람에 훌훌 날리고 새벽을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가보아도 동해의 푸른빛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네 삶은 왜 그리도 잘 변하는 빛깔을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인 줄 알았다. 부처님이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현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얻는 고귀한 생각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친한 친구 삼총사 중 한 명인 이 여사는 독실한 불자다. 그래서인지 폭넓게 우리를 포용해주고 마음 씀씀이가 컸다.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절에 열심히 다니기도 하고
“홍어회 드실 줄 아세요?”
새 친구를 만나면 필자가 꼭 해보는 질문이다. 홍어도 음식이니까 다들 잘 먹을 줄 알았는데 홍어회를 못 먹는 사람이 많았고 그 냄새가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홍어회를 좋아한다면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홍어회를 진짜 좋아한다. 한 입 물었을 때 알싸하게 퍼지는 맛과 식감이 너
주사(酒邪)는 ‘술을 마신 뒤에 나쁜 버릇으로 하는 언행’을 말한다. 생전의 아버지는 주사가 심했다. 언행에 더해 고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 당시는 필자가 사춘기라서 그런 주사를 참지 못하고 욱하곤 했다. 그 결과는 가출이었다. 한창 감정이 예민했던 고등학생 때 무려 4차례나 가출을 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맨손으로 상경해 서울에서 장사를 하며 자리를
한때 홍콩 감독 허안화(1947년~)에 관한 국내 평가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실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주는, 높낮이가 심한 연출자”였다. 그러나 필자는 (1997)과 같은 범작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서극, 담가명 등과 함께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드라마에서부터 액션, 시대극, 멜로를 아우르며 홍콩과 홍콩인이 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