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면서 다양한 피부 증상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후기의 걸출한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당헌 서매수(戇憲 徐邁修, 1731~1818)의 초상화를 보노라면 심한 여드름 자국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피부과학을 전공한 뒤 그동안 수많은 여드름 환자를 진료해온 필자가 보기에도 서매수 초상화에 묘사된 여드름 자국은 생생하기
“샤오메이즈(小美子, 이쁜아) 넌 죽지 않아. 꼭 살아날 거야. 걱정하지 마.” 오빠는 막내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서해를 넘어 한국까지 날아온 오빠가 동생은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게 오빠의 조혈모세포는 동생 몸으로 흘러들어 생명을 살렸다. 바로 중국 출신의 귀화인 등희하(滕希霞·38)씨의 이야기다. 이 감동적인
며느리나 사위는 내가 낳은 피붙이는 아니지만 친자식과 함께 사는 자식 같은 존재 관계다.
며느리보고 ‘나는 널 딸처럼 생각한다’ 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딸이 아니라는 말이다. 막역한 친자식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눈치도 보지만 때로는 할 말 다 못하고 사는 사이다.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딸은 남처럼 대해야 된다하고 사위는 백년손님 이라 하여 씨 암 닭도
마치 전투복을 입은 것 같다. 여기서 전투란 미(美)를 향한 전투다. 여용기(64)씨를 처음 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옷을 잘 입는 사람이 있나’ 하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여씨는 단순히 옷만 잘 입는 사람이 아니다. 1953년생인 그는 부산의 남성 패션숍 ‘에르디토’의 마스터 테일러로 근무하는 패션 전문가이기도 하다. 화려한 남자다. 들여다보니
승승장구, 탄탄대로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천운을 타고났나?’, ‘사주팔자가 좋은가?’라며 그들의 성공을 진단해보기도 하지만, 뭐든 타고난 운만 가지고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들의 유형을 살펴봤다.
◇ 운명개척형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손 마사요시) 대표는 젊은 시절 자
군대 복무시절 초등학생이 보낸 위문엽서 한 장이 마음에 들어 호주머니에 고이 간직하였다.
필자가 군대에서 복무한 시절은 월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전사자와 부상자가 다수 발생한 가슴 아픈 때였다. 월남전 소식이 주요 뉴스가 매일 등장하고 온 국민이 군가를 부르면서 국군장병을 위로하였다. 6월에는 전 국민이 위문품을 모았고, 학생들은 위문편지를 단체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필자에게는 연년생으로 성별이 같은 아들 둘이 있다.
두 아이는 여친도 한 해 시차를 두고 생기더니 결혼도 한 해 시차로 한다. 배우자와의 나이도 한 해씩 연하이다. 그러다보니 가정의 모든 일들이 장남, 차남이란 연령별, 서열이 아예 없다. 아들들이 결혼하고부터 며느리들 주도로 필자 생일을 치룬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며느리들 간에는 생각이 같을 확률은
얼마 전 TV에서 90세가 넘은 송해 선생님을 봤다. 목적지로 갈 때 이동 수단으로 뭘 이용하냐고 누군가 묻자 B. M. W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B(BUS) 버스를 타고, M(METRO) 지하철을 이용하고 W(WALK)걷기도 즐겨한다는 의미다. 송해 선생님처럼 B. M. W를 이용하면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 늘 다니는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풍경이 다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지난해 연말 편집부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열어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간의 끝이 없는 탐욕의 수렁으로 인해 빚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