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산포 건너편 바다에 있는 우도(牛島)는 제주도민들도 익숙하지 않은 섬이다. 그러나 ‘신비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볼거리도 꽤 있어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우도를 찾아봤다.
우도의 행정구역은 제주시 우도면이다. 과거에는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연평출장소였으나 1986년 4월 1일에 구좌읍에서 분리되어 우도면으로 승격되었다. 직접
1983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제목을 몰라도 “몸~ 바쳐서~ 몸 바쳐서~”라는 후렴구만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 노래, 바로 ‘논개’다. ‘논개’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 이동기(65)는 현재 2700여 명이 가입한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 위원장이다. 가수들을 위한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
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 살았다. 그러니 일이 터질 수밖에. 주목할 만한 기록이 나왔고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고서 도달할 길이 없다. 선무당처럼 대충 미쳐서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수 없다. 지구상의 극한적 험지인 세 극지(히말라야, 남극, 북극)를 찾아 누빈 탐험가 허영호(65). 그의 격렬한 모험이 거둔 성과가 경이
‘따듯한 남쪽 나라’라고 하지만 겨울은 그 어느 곳에서나 역시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듭니다. 거센 바닷바람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불더니, 어느 순간 다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종잡을 수 없게 춤을 춥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와 거무튀튀한 현무
대구 청라언덕으로 가는 길에 가곡 ‘동무생각’을 흥얼거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어릴 적 배운 노래인데도 노랫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근대 풍경을 묘사한 벽화 골목을 지나자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났다. 정원으로 가꾼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 주택 세 채가 그림처럼 자리했
파도와 바람을 벗하여 가을을 걷는다. 영덕블루로드B코스
770km를 따라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이 나있다. 속이 꽉 찬 가을 대게처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해파랑길 중 영덕블루로드 B코스를 걸으며 가을바다를 만난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이라 불린다. 영덕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서 경정리, 죽도산전망대, 축
한평생 덧난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 일은 아픔과 함께 크나큰 두려움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뻔뻔한 일본의 만행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김복동 할머니.
"우리가 죽으면 진실이 잊힐까 두려웠다. 나이 골 백 살을 먹어도 잊히지 않아, 이건 알려야겠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 거야." 심장에 박힌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수도
“10여 년 전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친구랑 여주 도자기 축제에 갔어요. 덥고 갈증이 너무 나서 뭘 좀 마시고 싶은데 마땅히 차를 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어느 도예가의 집에 들어가서 ‘물 좀 마실 수 있겠냐?’고 했더니 ‘차도 드릴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반가웠어요.”
‘다유’와 구자완(61) 원장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주 출신인 구
로마 시내에 있는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돌과 기둥 몇 개만 남아있는 이곳이 로마 제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유적지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바로 시간을 넘나드는 우리들의 상상력 때문이다. 이곳에 입장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 이상은 보았던 장면을 상상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나른한 퇴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그를 보고는 자동으로 인사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참 오랜 친구였다. 뽀뽀뽀 체조로 아침잠을 깨면 항상 볼 수 있던 뽀병이었고, 주말 밤에는 두루마기나 정장을 입고 앵커석에 앉아 “지구를 떠나거라~” 혹은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를 쉴 새 없이 제조하던 웃긴 아저씨였다. 문득 생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