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훈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온라인 게임에서 통용되는 단어인 본캐와 부캐. ‘본캐’는 주로 사용하는 본래 캐릭터, ‘부캐’는 본캐 생성 이후 만든 부차 캐릭터를 말한다. 근래 유명인들이 기존과는 다른 활동명과 캐릭터로 대중의 인기를 끌며 ‘부캐 열풍’이 일기도 했다. AI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을 성공적으로 이끈 옥상훈(53)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그런 부캐가 있다. 바로 인스타그래머 ‘컵누들러’다. 아직 본캐만큼 왕성하진 않지만, 여러 가능성을 품고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캐를 일컬어 ‘히든캐’(숨겨진 캐릭터)라고도 부른다.
먼저 본캐 이야기부터 해보자. 본캐 타이틀은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얼핏 앞뒤 키워드만 떼어 보더라도 국내 굴지의 IT 기업인 네이버에서 특정 사업의 리더인 셈인데, 일단 본캐의 레벨도 심상찮게 느껴진다. 참고로 사스(SaaS)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네이버클라우드’다. 옥상훈 리더는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을 ‘BD’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도 본래 뜻과 그만의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흔히 업계에서 BD라고 하면 비즈니스 디벨로퍼(Business Developer)를 말합니다. 직역하면 사업 개발자인데, 대개 새로운 사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담당하죠. 그것도 맞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비즈니스 디자이너(Business Designer)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AI 생태계를 만들어 클라우드 사업을 키우고 파트너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같은 단어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본캐의 전환, 본업 모먼트 시작
옥상훈 리더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가 보면, 그때도 본캐와 부캐가 있었지 싶다. 한양대학교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물학이 전공임에도 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더랬다. 그러다 졸업할 즈음 IT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는데, 마침 관련 업계에서 개발자를 양산하던 분위기였다. 부캐도 쏠쏠히 키운 덕에 그는 IT 세계로 진입해 SI(System Integration)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부캐가 본캐로 전향된 것이다.
이후 본캐를 성장시키며 네이버와 인연을 맺었다. 2011년 입사 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관련 사업을 만들고 제휴 맺는 업무를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0여 년간 네이버 개발자센터 개편, 오픈 API 표준 제작,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 론칭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최근 그가 집중하는 사업은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이다. AI 기술을 적용해 어르신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억까지 해내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시작된 사업이에요. 당시 코로나 감염자에게 발열 여부 확인 전화를 사람이 일일이 했는데, 어느 순간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며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됐던 거죠. 처음에는 성남시와 협력해 전화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후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입하는 지자체가 더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자체 쪽에서 아이디어를 주시더군요. 발열 여부만이 아니라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로도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렇게 부산 해운대구랑 도모해 처음 케어콜을 선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초반 성적은 저조했다. 실제 사용자인 독거노인들이 보인 만족도는 50% 남짓이었다. 옥상훈 리더는 실패에 가까웠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나갔고, 생성형 AI와 하이퍼 클로바 기술 등을 적용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AI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나가며 발전을 이뤄온 것이다.
“아무래도 대상자가 어르신이다 보니 AI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셨죠. 때문에 최대한 AI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덕분인지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로 조사했을 때는 90% 정도의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놀라운 성장이죠. 그런데 이런 피드백이 있더라고요. AI가 말귀도 알아듣고 공감해주는 건 좋은데, 이전 대화를 기억 못 하니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였죠. 결국 2022년에 기억하기 기능을 탑재해 출시했어요. AI가 질환이나 병원 이력 같은 걸 기억해주는 덕분에, 이제는 케어로봇처럼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쪽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아직은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으로 대상자가 한정되지만, 장차 누구나 자기 편의에 맞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전망합니다.”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최고의 궁합
본업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에도 그의 시선은 호시탐탐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촬영 소품으로 기자가 준비한 컵라면. 비닐봉지라는 베일에 가려진 컵라면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제 본캐는 접고 부캐 이야기를 해보자고 운을 떼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웃음) 좀 꺼내봐도 될까요? 이야, 다 새로 나온 것들이네요.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골라오셨어요?”
옥상훈 리더는 신기한 듯 물었지만, 방법은 간단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400여 가지 컵라면 리뷰가 올라와 있는데, 첫 사진은 늘 위에서 찍은 컵라면 뚜껑이다. 메인 페이지만 봐도 그가 어떤 컵라면들을 먹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리뷰도 간단명료하다. 면발, 맵기, 염도 등을 5점 만점으로 표기하고, 총평도 한두 줄 정도로 짤막하게 남긴다.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리한 방식이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컵라면 종류가 워낙 많아 특정 제품의 리뷰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맞습니다. 저도 늘 새로운 컵라면을 사려고 하는데, 가끔은 ‘이걸 내가 먹어봤던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오죽하면 아예 내가 컵라면 검색 엔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뭐 마음만 먹고 아직 시도는 못 해봤습니다.”
지금의 컵라면 리뷰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시점도 클로바 케어콜이 탄생한 시기와 맞물린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바깥에서 타인과 식사하는 일이 어려워진 터였다. 혼자 먹는 식사이니 간편하면서도 기왕이면 요리다운 메뉴였으면 했다.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게 컵라면이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컵라면을 잘 안 먹었어요.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 나름의 철학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항상 이야기하는 건 ‘컵라면은 요리’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저 인스턴트식품 정도로 치부하지만 저는 하나의 요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궁극의 맛을 잘 응축해서 편리성을 극대화한 형태잖아요. 물만 부으면 끝나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면발 상태나 수프, 건더기 맛도 다양하고 훌륭해졌어요. 또 컵라면끼리 조합해서 먹어보는 것도 흥미롭죠. 가령 짜장과 짬뽕, 크림소스와 매운소스처럼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아요. 또 이건 저만의 팁인데 짜장컵라면에 콜라를 한 숟갈 정도 넣어보세요. 단맛이 확 우러나서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거 말고도 팁은 무궁무진해요.”
컵라면 이야기라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는 옥상훈 리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컵라면 먹는 일도 줄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부캐의 장점 중 하나는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 아닐까. 본캐처럼 책임이나 강박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이따금씩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족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함은 덤이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컵라면을 찾았을 때예요. 라임 향 나는 컵라면이나 침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특별 제작한 컵라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도 잊을 수 없네요. 그렇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찾아가는 게 참 흥미로워요. 편의점을 가더라도 컵라면 코너부터 둘러보고, 해외나 낯선 지역에 가도 컵라면부터 확인하죠.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게 편의점이고 컵라면인데,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또 그런 경험을 기록해가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나름 잘 정리해놓은 거라 라면 회사에서 제안이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아직 깜깜 무소식이네요.(웃음)”
본캐를 성장시키는 힘, ‘통찰력’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부캐를 키워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은퇴 이후쯤이 될 테다. 아직은 본업에서 할 일이 많고,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키우려면 더 오래 현업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늘 선도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분야다 보니, 그에 따른 고충도 있으리라. 실제 그와 동년배인 50대 직장인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MZ세대의 문화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때때로 버거움을 느끼지만 독서와 학습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편이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그가 본업에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분야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가령 클로바 케어콜의 경우에도 지자체로 치면 100곳, 사용자로 치면 2만 명 정도 되는데요. 더 다양한 범위로 확장해서 사업적 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실 기술이라는 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과 도구이지, 어떤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기술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면 꽤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옥상훈 리더는 IT나 신기술 관련한 책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책도 고루 섭렵 중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국 ‘통찰력’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끝으로 그에게 다소 엉뚱한 말을 던져봤다. ‘자신의 인생과 컵라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윽고 우문현답이 나왔다. 그간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든 컵라면이든 결국 ‘맛’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숙성되고, 그것이 우러나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죠. 정말 괜찮은 컵라면은 물을 붓기 전에도 그 가치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뜯기 쉬운 포장, 친절한 설명글, 풍부한 건더기 등. 역시나 먹어보면 맛도 진국이죠. 반면에 별로인 컵라면은 겉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정말 대충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생도 마찬가지 같아요. 스스로가 만든 인생의 가치를 정성스럽게 담아내고, 잘 표현해야 하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너무 맛없어서 못 먹고 버린 컵라면이 딱 두 개 있는데요. 제 인생도 잘 가꿔서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고, 좀 먹을 만한 컵라면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방정식은 미지수(χ) 값에 의해 참 또는 거짓이 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지수라도 방정식 내 상수와 숫자, 사칙연산 등을 잘 따져보면 결국 답이 나온다. 이러한 방정식을 인생에 대입해보자. 나라는 상수와 주변인, 그들과의 연관성에 따라 ‘관계’라는 미지수 값이 매겨진다. 그렇게 적합한 미지수를 잘 찾으면, 참다운 인생이라는 등호도 성립된다. 생애주기에서 중년의 관계 방정식은 어쩌면 가장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알아둘 만한 몇 가지 조언을 담아봤다.
[1] 평생 현역 시대라는 ‘관계 전제 조건’
은퇴 후에는 비즈니스로 형성됐던 인맥이 자연스레 축소된다. 과거라면 섭섭한 마음은 들지언정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까지 예견되는 요즘,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평생 현역 시대를 사는 중장년에게 경제적 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며, 가급적 기존의 비즈니스 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굳이 이러한 조언이 없더라도, 스스로 그 필요성을 체감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는 “최근 중장년들을 보면 가급적 직장 생활을 오래 하려 애쓰고, 은퇴 후에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이때 본업이 내가 좋아하는 쪽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제2의 직업으로 전향한다 해도 또 다른 비즈니스 관계 형성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평생 현역 시대를 살아내려면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공적인 관계 확장은 꼭 필요하다. 다만 순수하게 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른 사적인 관계도 형성해둬야 한다. 노후에는 일과 즐거움을 두 축으로 균형감 있게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했다.
[2] 때때로 탈피하는 ‘관계의 알고리즘’
중장년이 애용하는 유튜브에는 ‘알고리즘’이라는 기능이 있다. 이는 원하는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작용하지만, 자칫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 독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부작용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오십의 기술'을 펴낸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우리는 흔히 편한 친구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나이 들수록 친구 관계는 줄어들고 압축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나의 사고방식 또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압착된다. ‘내가 맞구나’라며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확증편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늘 비슷한 사람들과 치우친 생각만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래도 지겨울 수밖에 없다. 긴 노후에는 삶의 영역, 특히 대인관계가 다채롭고 다양해야 한다. 안정적인 관계가 때로는 지루함을 준다. 때때로 제한된 관계의 알고리즘에서 탈피해보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낯선 곳에 나를 던져보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늘 만나던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거나,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면 새로운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새로운 인생도 열리게 된다. 사실 아주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위험한 면도 있다.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계속 새로운 관계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3] 최대 수명 대비한 ‘최소 사회망’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수명의 최댓값이 날로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독거노인 수도 이에 비례하는 양상을 보인다.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이나 졸혼, 사별 등으로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즉 수명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홀로 살게 될지도 미지수인 셈이다. 이렇게 독거 신세가 됐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향을 보인다. 족쇄라도 풀린 듯 대인관계를 더 왕성하게 펼쳐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립된 상태로 외톨이를 자처하는 이도 있다.
김동철 박사는 “본래 기질이나 성향이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다. 노후 관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타고난 성향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땐 직접적인 일대일 관계가 아닌, 상대적으로 관계망이 느슨한 모임의 일원이 되어볼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강연이나 공연을 보러 가는 등 다수 속에 섞이는 경험을 해나가면 도움이 된다. 특별히 누군가와 인맥을 쌓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방식의 간접적인 사회 관계망이라도 형성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고립이 일어나고, 노인성 우울증이나 고독사 등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염려했다.
[4] 더할수록 즐거운 ‘친구들의 집합소’
이호선 센터장의 조언대로 기나긴 노후를 함께할 친구가 기왕이면 여럿 있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존에 친구들을 함께 볼 수 있는 모임이나 동창회 등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새로운 공동체 관계망을 찾아봐도 좋다. 더욱이 요즘에는 블로그나 카페, SNS 등을 이용하는 중장년이 늘어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게 어렵지 않다. 독서, 여행 같은 취미 동호회도 많고, 소셜 다이닝이나 자원봉사 등 사회 관계망을 이어주는 공동체 모임도 상당하다.
이 센터장은 “꼭 참여하길 추천하고 싶은 건 학습 공동체다. 오십 이후에 노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사라진다. 반면 배움은 늘 우리를 새롭게 한다. 때문에 학습 공동체는 가장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모임 형태라 할 수 있다. 지식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시험과 과제를 거치면서 서로 성취를 확인하고, 나와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는 이들과 토론해가며 상호 돌봄 과정도 경험하게 된다. 학습은 과정만으로도 성숙을 이루고, 학습 공동체는 성숙을 통한 자아실현을 가능케 한다. 노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싶다면 학습 공동체에 참여해보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
참고 '오십의 기술'(이호선 저, 카시오페아)
이럴 줄 몰랐다. 인천시 부평구에 일제가 만든 대규모 군수 병창 시설이 생생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걸. 1941년에 완공해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각종 무기를 생산했던 일본육군조병창(이하 ‘조병창’) 유적이다. 조병창의 터는 광활했다. 2023년 인천시에 반환된 미군기지(캠프마켓)와 부영공원 일대의 부지 115만여 평에 갖가지 시설물을 지었다. 건립 당시의 원형을 유지한 건물 30여 동이 현존한다. 허공으로 높이 치솟은 굴뚝과 대형 건물들의 규모에서 일제가 조병창에 쏟아부은 공력과 품은 야욕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가 부평에 거대한 무기 생산 공장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촉발했다. 이렇게 전쟁의 규모가 확산되면서 무기의 대량생산과 보급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병창에서 생산한 병기는 다양했다. 소총과 탄환을 주로 만들었지만 자동차, 잠항정, 항공기 부품까지 생산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무기는 부평을 가로지르는 철길을 통해 인천항으로 운송됐다. 전국 각지에서 수탈한 놋그릇, 제기, 엽전 등 무기 제작의 재료도 철길을 통해 날랐다. 이 철길은 풀덤불에 묻혀 현존한다.
일제의 수탈 정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며 알 수 있는 국내 유적은 오늘날 대부분 철거돼 사라졌다. 부평 조병창은 다르다. 다수의 건물이 원래대로 남아 참혹했던 옛일을 웅변하는 게 아닌가. 침탈의 역사 한 자락이 이렇듯 증거물과 함께 숨을 쉰다. 이는 일본이 패전 뒤 달아나면서 버린 조병창을 미군이 접수해 80여 년 동안 사용했기에 가능했다. 개발 바람이 침투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한편 조병창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극비문서까지 발견됐다. 경향신문은 2021년 8월 7일자 보도에서 ‘일제는 한반도를 총알받이로 쓰려 했다’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조건 동북아역사문화재단 연구위원이 일본 방위성 문서철 속에서 찾아낸 조병창 관련 극비문서에 관한 기사였다. 극비문서의 제목은 ‘1945년 3월 예하 부대장 회동 시 상황 보고, 인천육군조병창’이다. 120쪽에 달하는 이 비밀문서를 분석한 경향신문은 두 가지 사안에 주목했다. 하나는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조병창을 지하화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 도쿄 조병창을 부평으로 옮긴다’는 것.
일본엔 여러 개의 조병창이 있었다. 극비문서는 그중 도쿄의 조병창을 부평으로 이전하고 지하화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전략상의 이점에 착안했음을 보여준다. 일제는 도쿄가 미군의 폭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했던 것이다. 즉 전쟁은 이어가되 위험은 한반도에 전가하려 했다. 조병창이 운영되면서 부평은 사실상 전쟁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갔다. 만약 일제가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지속했다면? 거대한 병참기지였던 부평은 미국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을지도 모른다.
극비문서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을 명시한 대목도 참담한 감정을 야기한다. 조병창을 지하화하고 도쿄의 조병창을 수용하는 데에는 방대한 공사와 노동력 투입이 필연적이었다. 일제는 이를 강제동원한 조선 노동자들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극비문서는 ‘1945년 3월 1일, 부평 조병창에 소속된 노동자 중 9000명이 조선인’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1만 5000명을 추가로 동원할 계획도 수립했다. 강제동원은 전방위적으로 감행되었다. 인천과 경성은 물론, 경상도와 전라도 등 각지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했다. 주목할 것은 학도 동원이 많았는데 초등학생까지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더 있다. 조병창에서 있었던 독립투사의 행적이 그것이다. 조병창에서 무기 조작 기술을 익혀 독립운동을 하고자 잠입했다가 붙잡힌 오순환, 조병창에서 고려재건당을 만들고 무기를 입수해 임시정부에 넘기려다 체포된 황장연 등이 조병창의 어두운 역사에 한줄기 빛을 뿌렸다.
어린 학생들까지 강제동원돼
발길은 이제 부평구 산곡동 함봉산 자락에 닿는다. 이곳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만든 인공동굴들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동굴만 27개로 통틀어 부평 지하호라 부른다. 이 지하호들은 일제가 획책한 조병창의 지하화 작업에 따라 만들어진 것들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침략전쟁에 광분한 나머지 남의 나라 지하까지 마구잡이로 파고들어 무기 생산을 도모한 만행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또렷한 증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동굴들이 조병창에 딸린 군사시설인 걸 알지 못했다. 독립군들이 판 굴이라는 풍문이 나돌았지만, 흔히 새우젓 저장 창고로 알았을 뿐이다. 비로소 굴의 정체를 확인해낸 사람은 김규혁 부평문화원 과장이다. 굴의 정확한 내력을 알고 싶어 조사활동에 나선 그는 2016년, 이곳에 강제동원돼 굴 파기 노역을 했던 증언자들을 찾아내 실체를 규명했다. 이후 조병창 지하화를 계획한 극비문서가 발견되었고, 이로써 굴의 실체가 확연하게 밝혀졌다. 그는 중학생 신분으로 굴착 작업에 강제동원됐던 이로부터 노무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이었다는 증언을 듣기도 했다.
부평동에 있는 ‘미쓰비시 줄사택’도 희귀한 역사 현장이다. 줄사택은 일제가 강제동원한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쥐어짜 무기를 제작, 이를 조병창에 납품했던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운영한 노무자 합숙소였다. 애초 143개 동에 1000여 명의 노무자들이 살았으나 광복 이후 점진적으로 줄어 현재는 4개 동만 남아 있다. 상처의 전시장이라 할까. 줄사택의 형상은 낡고 찌들어 간신히 버티어 선 고목등걸처럼 처연하다. 하지만 이 역시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내장한 유적이다. 인근 주민들은 줄사택을 도시 경관을 해치는 흉물로 간주했다. 동네 집값을 떨어뜨리는 애물단지로 여겼다. 철거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따라 부평구는 모두 뜯어내고 공영주차장을 설치할 계획을 수립했으나 사회단체들의 보존 요구에 떠밀려 추진을 중단했다. 문화재청 역시 줄사택을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부평구는 2021년 지역사회 각계 인사들을 구성원으로 포함한 ‘미쓰비시 줄사택 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아직 문화재 등록도 되지 않았으며, 보존과 활용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조병창, 지하호, 줄사택, 이 모두 일제가 획책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유적이다.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수구세력,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장단을 맞춰주는 일부 국내 세력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나아가 세계인에게 알려야 할 가치와 당위가 충분한 역사 현장이다. 그럼에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골방에 방치된 형국이니 아쉽다. 기억만으로 간직한 역사는 연약하다. 오독되고 편집되고 훼손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의 생생한 단서로 존재하는 역사는 강철처럼 굳건하다.
신동욱 부평문화원 원장
조병창 유적, 어떻게든 보존해야
인천시 부평구는 예로부터 곡창지대였다. ‘수확이 많은 넓은 들’이라는 뜻을 지닌 부평(富平)의 지명을 통해 전통적인 농업지대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산업지구로, 베드타운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외지인 유입도 매우 활발하다. 신동욱 원장은 이러한 부평의 특색을 문화에 접목하고자 한다.
“전라도나 경상도의 도시들과 달리 부평엔 토박이가 드물다. 겨우 8%에 불과하다. 전국 각지에서 온 주민들이 혼재됐다는 특색을 지닌 것인데, 이와 같은 다양성을 문화로 융합해 조화로운 도시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부평의 역사 가운데 주목할 만한 대목은 어떤 것일까?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사회상에 큰 변동이 있었다. 일제가 만든 대규모 군수공장이 미친 영향, 광복 후 설치된 미군기지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조성된 부평산업단지가 불러들인 경제 효과 등도 부평에서 펼쳐진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부평엔 일제에 의한 조선인 강제동원의 수탈사를 볼 수 있는 조병창 유적이 있다. 조병창이 부평에 들어선 배경은?
“육로나 해양 수송로가 발달한 한편, 전시에 식량 조달이 용이한 곡창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 같다. 공습 차단을 위한 지형이나 기후 여건도 고려한 걸로 본다. 일본인들은 부평을 숫제 경성시로 만들 장기적인 플랜도 구상했다.”
신 원장은 조병창을 비롯한 강제동원 관련 유적들의 보존과 활용 필요성을 처음으로 지역사회에 제기했다. 현재의 진척 상황은 어떤가?
“보존 가치를 인식한 이들이 많지만 아직 진척된 게 없다. 보존 쪽으로 가자는 결정조차 완전하게 나지 않은 상황이니까. 이는 주도권을 가진 인천시장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은?
“가능성은 높지 않다. 원형이 훼손된 부분이 있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는 일이다. 이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이 여의치 않다며 보존사업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 지자체의 태도다. 그들은 역사유적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해 거둘 수 있는 경제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줄사택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보다 나은 역사 교육장이 드물겠다.
“철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보존해야 한다. 너무 퇴락해 보존이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단견이다. 현대의 기술로 재생하지 못할 리가 있겠나.”
반환된 미군기지의 활용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형 식물원이 있는 공원을 만든다고 하지만 안일한 방향이다. 조병창 재생과 고품격 공연장 건립을 첨가한다면 유수의 관광지구로 부상할 수 있다. 특히 강제동원의 역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조병창을 역사문화공간으로 살린다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문화원의 역점 사업 하나를 소개한다면?
“부평에선 매년 풍물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를 주민 화합의 매개로 삼고 싶다. 주민들 각자 출신 고향의 고유한 풍물을 축제에서 자랑 삼아 경합할 수 있는 공연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복길이’ 이미지에 가둬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 이미지를 벗기 위해 김지영은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덧 데뷔 30년 차 배우가 됐는데, 이제는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연기학과 교수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으며, 삶을 관망하는 여유도 생겼다. 유명인과 일반 대중의 관계는 ‘인기’로 증명되는 터. 그는 “인기란 야속한 것 같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면서 양면성을 언급했다. 현재는 큰 인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들한테 인기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희귀병을 앓아 부모님 속을 썩였다고 생각하는 딸이기에 자식을 향한 애정이 더욱 특별하다.
‘전원일기’와 가족의 탄생
MBC ‘전원일기’와 복길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복길이 이미지 때문에 다른 역할을 못 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보고, 사이코패스 악역, 유흥업계 인물 등 갖은 역할에 도전해봤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복길이로 인해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나이 들고 보니 배우로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고마운 작품이죠.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하면서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전원일기’는 결국 저의 학교였다고 생각해요.
SBS ‘토마토’에서 악역 연기를 펼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때가 전성기였을까요?
MBC에서 ‘그대 그리고 나’(1997년)로 신인상을 수상한 후라 자신감이 올라와 있었죠. 악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겠단 생각에 출연했고, 촬영도 재밌게 했죠. 광고도 그때 제일 많이 찍었어요. 그렇다고 그때를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번 진심을 다해 연기해서 작품 할 때가 늘 전성기라고 느껴요.
남성진 씨와는 동료에서 남편이 된 케이스인데, 관계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전원일기’를 8년간 촬영하면서 정말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죠. 이후 남편의 고백으로 사귀었는데 연애 기간은 불과 6개월이었어요. 그중 5개월은 제가 중국에서 촬영했죠. 연애다운 연애를 한 적이 없는데 바로 결혼하려니 조금 무섭고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우정과 사랑을 구분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사람, 내 가족이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사이가 깊어졌고, 고마워하고 있어요.
부부간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저희 부부는 성격이 극과 극이라서 지금도 종종 싸워요. 남편이 화가 많고, 버럭하는 스타일이에요. 불 같은 성격이죠. 그래서 말다툼으로 번지는데, 다행히도 저희 둘 다 금세 잊어 버리곤 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 차가 커도 남편한테 ‘고쳐줬으면 좋겠어’, ‘맞춰줘’ 등의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지만, 내용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가 될 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려고 해요. 특히 아이 문제로 대화할 때는 아이의 생각을 가장 먼저 수렴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을 내리죠.
얘기를 나눠보니 아드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제 꿈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 네 삶이 너무 없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이 옆에 많이 있어 주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에는 편지나 메모를 남겨서 마음을 표현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죠.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같이 있는 시간이 줄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여자 친구가 생기면 나와 놀아줄 시간이 있을까 싶어요.(웃음)
과거 방송에서 보니 아드님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하던데요. 3대 배우 가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모님, 조부모님한테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더라고요. 그 부담감은 당연한 것 같아요. 저도 시부모님이 배우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남편은 평생 그 부담을 안고 살았죠. 우리 아이는 그 부담이 배로 커진 거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연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해라. 너의 색깔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시어머니인 배우 김용림 씨와의 고부 관계가 특히 주목받는데요.
굉장히 순탄한 고부 관계라고 생각해요. 같은 분야에 있으니까 잘 이해해주세요. 제가 종갓집 며느리인데 촬영 때문에 제사를 못 지낼 때도 있고, 촬영이 늦어져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어머니께서 이해를 넘어 ‘얼마나 힘드니’라고 위로해주시죠. 그런데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어머니께서 섭섭했던 부분을 말씀하시면, 저도 속상한 점을 얘기하기도 하죠. 어느덧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20년 이나 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어떠신지 알겠더라고요. 전화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달려갑니다.(웃음)
삶과 인연을 소중하게
부모님에게는 어떤 딸이었나요?
어릴 때부터 희귀병으로 몸이 약했으니까 늘 집안의 걱정거리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었어요.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몸도 안 좋은 애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겠죠. 그런 마음을 아니까 창피하지 않은 자식이 되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느 순간, 너무 우리 애만 챙기느라 부모님에게 신경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후회가 남지 않게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희귀병 투병으로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겠어요.
등에 혈관이 엉겨 붙는 혈종이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가족들이 저를 살려보겠다고 별걸 다 해봤는데,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유서를 써놓기도 했어요. 말로 전하지 못한 얘기들을 남겨놓기도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수술 후 완치돼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다시 주어진 삶이 감사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찌 보면 배우 활동이 체력이 강해진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50대가 되었는데, 중년 배우의 삶은 어떤가요?
20대 때는 작품을 한 번에 2~3개씩 하면서 바쁘게 보냈어요. 결혼 후인 30대, 40대 때 삶도 안정되고, 연기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5년 전쯤부터 선배로서 안주하고 싶지 않고,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려고 했죠. 선배님 또는 감독님이 부르면 예술 영화도 카메오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예술대학교 연기예술과 학과장을 맡은 지도 7년이 됐네요.
저는 선생님이라기보다 선배라고 생각해요. 먼저 연기한 사람으로서 습득한 기술을 알려주려고 하죠. 오히려 제가 열정을 수혈받고 있어요. 사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아이도 돌보면서, 학교 일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학생들과의 연계성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지영에게 ‘관계’란 무엇일까요?
저는 소심하기도 하고, 관계에 예민한 편이에요. 지인들에게 마음 표현도 잘 못 했는데, 이제 용기 내서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모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관계도 성립되고, 많은 상처를 받지 않을 테니까요. 또 너무 애쓰지 않아야 재밌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Bravo Question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감사한 마음 아닐까요. 저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마음을 간과하느냐, 신경 쓰고 있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한데, 그 마음을 품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힘이 큰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출중한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쌓여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나하나 이루어온 거죠.
베이비붐 세대, X세대, MZ세대 등 직장 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요즘, 세대 갈등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기업 문화를 흩트리고 업무 성과를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불러오곤 한다. 기업에서는 세대 간 화합과 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최근 각광받는 솔루션 중 하나가 ‘리버스 멘토링’이다. 단순히 나이와 직급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세대 간 고정관념이나 생활방식을 뒤집어보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금천구청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배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기존의 ‘멘토링’과 반대 개념인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역멘토링) 또한 멘토(시니어)와 멘티(주니어)의 역할을 바꿔봄으로써 세대 간 학습과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령화 흐름에 따라 리버스 멘토링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한 논문(‘기업 내 세대 교류의 가능성: 국내외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및 성공요소 사례연구’, 2021)에서는 “한국 사회가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리버스 멘토링이 노동 현장에서 고령 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단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측면뿐 아니라 일자리 다양성, 삶에 대한 가치관, 글로벌 감각 등 신세대의 감각과 관점을 접하고 배우는 측면까지 포괄한다. 이를 통해 기업 내 임직원과 각 세대가 서로 분리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적극적으로 통합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리버스 멘토링의 장점과 효과를 내다봤다.
시니어도 원하는 리버스 멘토링
이러한 이점들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도 인지하고 리버스 멘토링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채용 포털 ‘인크루트’가 2021년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및 X세대 등 기성세대 직장인의 92.4%가 ‘회사에 리버스 멘토링 제도가 도입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28.9%), ‘세대 간 소통할 수단이 필요해서’(25.3%)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의 시초로 알려진 건 글로벌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젊은 엔지니어에게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면서, 500명 넘는 고위 간부들에게 젊은 사원과 1대1로 팀을 이뤄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한 사례다. 이러한 일화가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을 통해 전파되며 IBM, 구찌,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수 기업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상당수 기업이 이러한 효과에 착안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도해나가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 나이와 연공서열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목표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공공기관 및 기업 등에서 조직 내 ‘리버스 멘토링’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그 예로 서울에서는 금천구와 강서구, 지방에서는 안양시·포천시·제천시 등이 있고, 한국해양공사·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경기주택도시공사 및 삼성생명·KB라이프생명·유진그룹·동양 등이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했다. 특히 정부 조직인 인사혁신처와 법제처는 조직 내 기관장을 포함한 국·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MZ세대 공무원들이 소통하는 ‘역으로 조언하기’(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난해 최초로 기관 간 리버스 멘토링을 위한 ‘거꾸로 학교’를 시행했다. 이는 후배 공무원이 다른 기관 선배 공무원의 멘토가 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형식적으로는 상하관계를 역전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솔직한 생각을 기성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타 기관 선후배 간 역멘토링을 진행함으로써 더욱 허물없는 교류를 꾀한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 톡톡히
올해 초 금천구는 국장급 공무원(4급)과 과장급 공무원(5급) 등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대 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해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앞서 금천구는 당해 행정혁신 과제 중 하나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종이 없는 회의’를 도입했다. 이에 주요 회의 자료를 종이에서 전자 문서로 대체하면서 태블릿 PC를 도입했는데, 이러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간부 공무원을 위한 적응 교육 차원에서 리버스 멘토링을 활용하게 됐단다.
프로그램을 기획‧담당한 금천구 기획예산과 조성익 주무관은 “종이 없는 회의를 실현하려면 태블릿 PC 사용이 필수였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는 데 조직 구성원, 특히 간부 공무원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다”며 리버스 멘토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태블릿 PC 사용에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거리낌 없는 신규 직원들(7급 이하 직원 7명)이 모였다. 이들 리버스 멘토끼리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운영 방안을 마련한 후,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실행했다.
조 주무관은 “태블릿 PC 사용 능력은 간부 공무원 간에도 개인 편차가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디지털 기기의 사용 방법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종이 없는 회의라는 정책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멘토-멘티 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며 “간부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리버스 멘토링이 긍정적 수단이 됐다. 아울러 상명하복 관계라는 관료제의 분위기를 탈피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리버스 멘토링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천구 멘토·멘티의 후일담 “리버스 멘토링 직접 해보니”
“당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6개월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새내기 어린 공무원이 간부급 공무원을 가르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에, 멘토링 전 긴장을 꽤나 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뭐하러 이런 걸 하냐’라는 분위기이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멘티로 나온 국장님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교육에 응해주셨습니다. 알려드리는 것 외의 기능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면서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셨습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완전히 뒤바뀐 위치에서 국장님들의 질문에 답해드린 경험이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국장님들이 적극적으로 태블릿 PC를 활용하려는 의지도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경직된 공직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많이 보았습니다. 시니어 멘티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 적극적인 참여가 뒤따른다면 오랜 시간 굳어졌던 체계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정은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추진해야 하므로, 역할과 기능상 경직성을 띠게 됩니다. 더욱이 공직사회는 연공서열로 이루어진 큰 조직이라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곤 합니다. 하지만 민간의 변화에 따라 행정에도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직사회에도 사회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우리 구에서는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행정 혁신을 일상적으로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중 한 사례가 ‘리버스 멘토링’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선배’의 지식이라도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후배’가 아는 것이 없다고 외면하기엔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중 값진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령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조직 구성원은 누구에게든 배우고 공유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겠습니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KAIST와 자생한방병원이 손을 잡았다. 자생한방병원·자생의료재단은 KAIST와 한의치료 고도화 연구개발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25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은 서울 강남구 소재 자생한방병원에서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 박병모 이사장, KAIST 이광형 총장 등 각 기관의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KAIST는 전 세계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끌어가는 이공계 교육 기관 중 하나로, 한의학과 과학 기술의 융합을 통한 국가 바이오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KAIST와 자생한방병원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퇴행성 척추·관절 질환을 비롯한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과 천연물유래 신물질 발굴 및 상용화를 위한 공동 연구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한 한의학과 의학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생명과학, 인공지능의 융합적 지식을 갖춘 한의 과학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추진한다. 이에 양 기관은 국가연구과제 공동 수주와 수행, 학술 및 인력 교류 등 한의학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활발한 상호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은 “한의학은 국내·외 여러 연구와 논문을 통한 과학적, 임상적 근거를 확보 중일 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한의치료 기술의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번 업무협약이 한의학, 보건의료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건강 및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3년 인력 부족을 이유로 기업들이 도산하고, 종업원이 없어 단축 영업을 하거나 임시 휴업하는 음식점도 생겨났다. 일본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가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여전히 일본은 일손이 부족하다. 게다가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일본의 일자리 매력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4월 1일부터 일본 물류업계 운전자의 근무시간이 제한된다. ‘배송 기사의 근로시간은 다른 산업에 비해 20% 긴 반면 수입은 20% 적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운전자의 고령화, 만성적인 인력 부족, 장시간 노동의 장기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물류량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이와 관련해 ‘2024년 문제’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물류업계 인력 부족과 업무 방식 개혁이 큰 이슈가 됐다.
인력 부족해 문 닫는 기업들
운전자 부족은 물류업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시장조사 업체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 인력 부족을 이유로 문 닫은 기업은 110개사가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해 같은 기간보다 80.3% 증가한 수치로, 2013년 해당 데이터를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100건을 넘어섰다.
멘주 도시히로(毛受敏浩) 일본국제교류센터 집행이사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인구가 연간 80만 명 이상 감소하고 있어, 노동자 확보가 모든 산업에서 사활을 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멘주 이사의 우려처럼 앞으로 일본의 노동력은 더 부족해질 전망이다. 일본 싱크탱크 리크루트웍스 연구소에 따르면, 2040년 일본의 노동인구는 약 1100만 명 모자랄 예정이다. 특히 교통과 건설 등의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택시업계 운전자 평균 연령은 2022년 기준 58.3세로 고령 인력이 대부분이다. 버스 역시 고령화로 운전자가 부족해 버스 노선이 사라지거나, 버스 업체가 문을 닫기도 했다. 일본버스협회는 2030년이면 일본 전역에 버스 운전기사가 9만 3000명으로 줄어 3만 6000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총무성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는 1997년 685만 명에서 2022년 479만 명으로 30% 이상 줄었다. 그런 데다 고령화로 55세 이상 노동자가 36%에 달해 앞으로 노동인력은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외국인 노동자 더 받겠다지만
일본 정부는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물류나 교통업계에 취직할 수 있도록 비자제도를 점검하기로 했다. 최장 5년 동안 외국인의 취업 체류를 허가하는 ‘특정기능 1호’ 대상이 되는 12개 업종에 자동차 운송, 철도, 임업, 목재산업 4개 분야를 추가하기로 했다. 앞으로 버스·택시·트럭 운전사, 철도 역무원·차장, 슈퍼마켓 내 반찬 조리 직종 등에도 외국인 인력이 유입될 전망이다.
또한 특정기능 체류 자격을 허가하는 인원도 늘릴 것을 제안했다. 3월 19일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특정기능 수용 전망 인원으로 최대 82만 명을 제시했다. 2019년 특정기능 1호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제시한 34만 5000명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특정기능 체류 자격은 간호, 건물 청소, 건설, 자동차 정비, 숙박, 농업, 어업, 외식 등의 일자리 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면서 만든 제도다. 수용 인원은 5년 단위로 정한다.
비숙련 노동자의 취업을 허가하는 기술실습제도를 대체하는 ‘육성취업’제도도 새롭게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기술실습제도는 전직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육성취업제도에는 인재를 육성하고, 전직을 인정하며, 지방의 인재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제도로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시킨 뒤 특정기능 1호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에 따라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는 꾸준히 늘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3년 일본의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4만 명을 넘어섰다. 2008년에는 49만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근로자가 15년 만에 네 배로 늘어난 셈이다. 외국인 고용 신고를 의무화한 2007년 이후 최고치라지만 인력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제협력기구는 일본 정부가 제시한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2040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가 지금보다 500만 명 더 늘어야 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에게 일본이라는 일자리 시장의 매력은 점차 낮아지는 모양새다. 일본의 외국인 근로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인력이 부족한 간호, 건설의 경우 베트남 자국에서 일할 때 받을 수 있는 임금과 일본에서 받는 임금의 격차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 하락으로 실질임금이 낮아진 데다 물가까지 고려하면 일본에 살면서 일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고 지적한다.
세금이 높은 점도 외국인 근로자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평균 임금은 일본인의 75%지만 소득세율은 10%에 달한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32년이면 베트남의 현지 급여 수준이 일본의 50%를 넘을 것”이라며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은 더 이상 일본으로 일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그의 손과 눈과 귀는 바삐 움직인다. 손목으로 주전자를 돌리며 커피를 내리고, 필터로 빠져나오는 커피 방울을 눈이 빠지게 지켜본다. 방울이 컵에 또르르 떨어져 쌓이는 소리를 듣는다. 박이추(74) 명장은 지금 커피와 대화 중이다. 커피 생각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가끔 꿈에서도 커피를 만난다.
“이런 제가 비정상이라거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미치지 않으면 맛있는 커피는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보헤미안박이추커피공장’에서 커피업계의 큰어른 박이추 명장을 만났다. ‘바리스타 1세대’ 1서 3박(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 가운데 유일하게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 드립커피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다. 박 명장은 어른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치며 “바리스타 1세대로 불리는데, 짐을 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부담이 아닌 숙제를 안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박이추 명장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본점에 출근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쉬는 까닭은 손목과 팔을 우려해서다. 하루에 300잔의 커피를 만든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도 하루 100여 잔을 손님에게 대접한다. 바리스타로 일한 지 4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커피가 탄생했을까. 그럼에도 명장은 아직 커피에 대해 다 깨우치지 못했노라고 겸손한 고백을 한다.
“몸, 마음, 커피가 하나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사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죠. 그러나 아직 맛있는 커피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만족, 납득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커피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해야만 하죠. 내가 발전해야 커피 맛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 강릉, 그리고 울진
“커피를 배우지 않았다면 목장을 운영하고 있겠죠?” 갑자기 웬 목장이냐 하겠지만, 박이추 명장의 본래 꿈은 낙농인이었다. 재일교포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와 경기도 포천에서 2만 5000평의 목장을 일궜다. 이후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에서도 소를 키웠지만, 모두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다시금 도시에 살고 싶어져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려면 기술 하나쯤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바로 커피 만드는 방법이다.
“외식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를 배우다가 우연히 커피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커피에 대한 마음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죠. 커피는 커피콩 수확, 로스팅, 핸드드립으로 내리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커피나무를 볼 때가 가장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연을 좋아하나 봅니다. 2018년 라오스에 6000평짜리 커피 농장을 세웠습니다. 보통 3000평에 2000~3000그루를 심는 편입니다. 코로나 후에 못 가봤는데 나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네요.”
1988년 다시 한국에 돌아온 박이추 명장은 서울 혜화동에 ‘가베 보헤미안’을 열었다. 이후 고려대 인근인 안암동으로 옮겨 10년을 보냈다. 믹스커피가 커피의 전부인 줄 알았던 1990년대. 박이추의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새롭고 고급스런 커피 맛이 입소문 나면서 카페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 카페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컸지만, 정작 커피 만드는 실력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손님을 만났지만, 서울에서 카페 할 때 만난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이었는데, 의사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한 달에 한 번은 저를 찾아왔죠. 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셨기에 커피 내리는 입장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던 박이추 명장은 이번에는 강원도로 내려갔다. 강원도 곳곳을 전전하던 그는 2004년 지금의 본점인 카페를 차리며 강릉에 정착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강릉까지 찾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더해 2009년 강릉 커피축제가 개최되면서 강릉은 현재 커피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사연으로 강릉 커피의 원조로 통하는 그는 “저는 그냥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는 서울에 두 곳(상암동·여의도), 강릉에 세 군데 있다. 연곡면의 본점, 사천면의 커피공장, 그리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커피를 배운 아들 박태철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경포점. 이처럼 강릉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박 명장은 2025년 경상북도 울진군으로 옮겨갈 계획을 갖고 있다. 그곳도 그가 가면 커피로 유명해질지 모를 일이다.
“강릉은 제게 특별한 곳이고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진으로 가려는 이유는 강릉이 싫어져서가 아니에요. 서울을 떠나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사람이 아닌 커피와 대화하고 싶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커피와 가까워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년이면 삼척~ 울진~포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다고 해서 조금 걱정입니다. 하하.”
행복을 주는 사람
대한민국은 어느새 커피 공화국이 됐다.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 세계 소비량(152잔)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박이추 명장은 “현대인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 전환도 됩니다.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저는 하루에 커피를 2~3잔 마십니다. 커피 마실 때도 물론 좋지만, 커피 생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로 행복을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제가 만든 커피로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또 행복 아니겠습니까?”
커피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커피 산업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커피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손을 거치는 모든 커피에 애정을 쏟는 박이추 명장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지점이다.
“제게 커피를 배운 제자들도 커피를 돈으로만 볼 때가 있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커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마음이 급해져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카페를 열게 되죠. 커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카페를 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페 사장이기 이전에 바리스타로서 커피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죠. 저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위해서 커피를 만듭니다. 그저 주인공인 커피가 빛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니까요.”
로봇 바리스타의 등장에 대해 박 명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커피를 한땀 한땀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사람으로서 허무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AI가 우수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니 신기하다”면서 “맛은 사람만큼 안 날 수 있지만, 일손 해결 등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로봇 바리스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커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은 마음을 잘못 품은 것이기에 그 점을 질책한 것이라 해석된다.
박이추 명장은 커피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커피를 못 만드는 날은 아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앞으로도 커피를 인생의 친구로 두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명장은 어느 책에서 본 ‘맛있는 커피는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꾼다’는 문장을 언급하며, “나는 이 말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 말이 사실이 될 수 있음을 박 명장은 이미 증명하지 않았는가.
노년에 접어들면 사회의 어른으로 기능하려는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순 없기에, 부담은 커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른’의 책임을 노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청년·장년·노년 등 우리 사회 성인들이 세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의 어른으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서로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년의 책임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살며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노인의 모습이 고령사회 존경받는 어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
본지는 우리 시대 어른의 표상을 논하고, 세대 간 존경심을 엿보기 위해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5060세대(500명)의 약 80%, 즉 대다수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10년 전 본지가 진행한 동명의 조사 결과보다 10%p 이상 높아진 수치로,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 셈이다. 평소 노년의 삶을 연구하고, 세대 간 교류를 고민해온 정순둘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경각심’을 드러낸 결과로 보여요. 갈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뭔가가 나타나서 문제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갖고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가령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제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각심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 높이는 갈등, 세대와 시대 이해해야
앞서 언급한 ‘노인 혐오’처럼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고 존경하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노시니어존’(노인 출입금지 구역)까지 생겨나며 자꾸만 세대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교수는 먼저 세대 갈등을 다루고 이해하려면 ‘생애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 세대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고려하는 과정이다. 한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만을 잣대로 삼았다간 자칫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5060세대도 20~30대를 살아왔지만, 현재 2030세대가 사는 세상은 당시와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아예 달라요. 1970년대 20대와 2020년대 20대를 비교할 순 없죠. 기성세대의 청년기와 다르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부모 세대만큼 풍족한 일자리 기회나 좋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5060세대보다 더 불행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르죠. 그런 데서 오는 좌절감,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해요. 역으로 현재의 5060세대는 고성장 시대 주역으로 살며 많은 것을 이뤘고 경제력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처럼 봉양을 받긴 어려운 처지잖아요. 게다가 유례없는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는 2030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쏟아지고, 나날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요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30세대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 세대 또한 사회 변화와 생애주기 간 속도가 어긋나는 괴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느려지는 상황입니다. 과거 20~30대라면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만, 요즘은 그 시점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장년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춰 ‘왜 아직도 취직을 못 했냐’, ‘나이가 몇인데 여태 결혼을 안 하냐’며 2030세대를 재촉하고 나무라곤 하죠. 즉 현재보다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살아왔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느린 기성세대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과거보다 느린 라이프사이클을 사는 젊은 세대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데서 오는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5060세대, 고령사회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현재의 5060세대가 겪는 고충은 또 있다. 그들이 본보기로 삼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윗세대보다 노후가 훨씬 늘어난 데다, 그로 인해 일자리, 여가, 관계 등 다방면에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듯, 그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앞서 말한 본지 조사에서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을 묻자,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25.8%, 복수 응답)를 꼽았다. 정 교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내비쳤다.
“존경받는 어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해요. 그러한 존재가 없다면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현재 5060세대는 고령사회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고 하면 어쩐지 부담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그런 이들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냄으로써 어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년, 즉 스스로 액티브 에이징(Ative Aging)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건강한 존재로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게 노년의 역할이자 책임일 수 있죠. 긴 여생을 아무런 역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당사자도 힘들지만, 사회의 짐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력이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사회활동을 해야 여러 세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외나 고립도 예방한다고 봐요. 기왕이면 노년에는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헌 활동이면 더 좋고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평생 일자리와 고령 인력 활용이 이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령사회연령통합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교수는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연령통합은 곧 연령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는 거예요. 가령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고령자는 고용이 어렵다, 다 ‘나이’가 기준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결국 연령을 기준으로 삼던 제도들의 개혁이 필요해요. 이렇게 연령통합은 연령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연령의 다양성 측면도 있어요. 지금은 세대가 너무 끼리끼리 뭉치잖아요. 카페나 식당을 가도 ‘여긴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분위기면 들어서길 민망해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세대가 분리되기보다는 함께 섞여 지냈으면 하는 거죠. 제도적으로나마 세대 교류 공간을 확충해갈 수 있다고 봐요. 요즘은 아파트 몇 세대 기준으로 경로당을 짓잖아요. 그런 공간을 노인만이 아닌 아이들도 놀러 가고 청년들도 차 한잔하러 가는 동네 사랑방 같은 장소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주는 ‘노인’ 타이틀, 괘념치 말아야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10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노인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 있는 사회’를 목표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역할을 통해 정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65세라는 나이의 틀, 그로 인해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해요. 나이가 들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은 통상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모두를 아우르는 거잖아요.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젊은이, 누구는 늙은이 나누지 말고,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해요.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게 바뀌어야겠죠.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연령통합 사회’라고 봅니다.”
정 교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령통합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끝으로 오랜 세월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그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물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나이 제한이 있으니, 65세가 되면 저도 은퇴하겠죠. 제2의 인생에서 선택은 두 가지예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 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경험과 지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꼰대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노후의 좋은 모델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요. 한편으론 저 같은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교육이 있지만, 이 또한 세대를 분리한 교육이잖아요. 가령 어떤 분은 50세 넘어도 반도체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물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죠. 나이를 떠나 더 자유롭게 대학에서 제2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Exhibition
◇유람일지: 유(儒)를 여행하다
일정 4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는 충청 유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고택’, ‘서원’, ‘구곡’(九曲)으로 나눠 소개한다. 집, 학교,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고 자란 선비의 삶의 궤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1부 ‘고택유람’은 충청도 명문가인 파평 윤씨 가문의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다. 윤증의 초상 초본, 문중의 교육 공간인 종학당의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2부 ‘서원유람’에서는 충청도 유일의 유네스코 등재 서원인 돈암서원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지향한 선비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 송시열은 서원의 대표 선비로 꼽힌다. 3부 ‘구곡유람’에서는 율곡 이이의 정신적 이상향이자 선비들이 자연에 은둔하며 학문을 수양했던 공간인 ‘구곡’을 디지털 화폭에 담아낸 수묵 미디어아트 영상을 전시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비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 일상의 가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품은 풍류 등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제길 : 빛 사이 색
일정 5월 12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평생 ‘빛’을 쫓으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우제길(1942~) 작가의 회고전.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빛’을 주제로 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과도기적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에서는 절단된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과 어두운 배경에 작가 특유의 직선이 강조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구도가 다양해지고 밝은 색채가 등장하며 확장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4부 ‘색채의 빛’은 원색의 빛을 다양한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5부 ‘지지 않는 빛’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Book
◇어른의 말습관(김진이·다른상상)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반감을 사고, 어떤 사람은 호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하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경인방송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진이는 책 ‘어른의 말습관’을 통해 성숙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어른답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말투만 바꾼다고, 기술만 답습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패턴, 즉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바꿔야 한다. 노력만이 말습관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책에서는 서투른 언어를 다듬어 말하는 법, 각각의 상황과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태도를 장착하는 법,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법, 부정적 말의 패턴을 소거하는 법, 감정을 차분히 다스려 담백한 말로 갈무리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 말의 주인이 되어 일, 관계, 인생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김옥림·미래문화사)
‘가슴이 뛰는 한 영원한 청춘’이라는 시인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위험하고 매혹적인 제로 이야기(찰스 세이프·DKJS)
제로(0)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철학, 종교, 수학, 물리학의 근간이다. 저자는 0의 출현, 억압, 성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시니어를 위한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조진화·임지윤·포레스트북스)
디지털 전문 강사인 모녀가 합심해 만들었다. 스마트폰·키오스크 사용법 등 부모님이 알았으면 하는 디지털 정보 10가지를 안내한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4월 4일 ~ 4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민정
출연 정보석, 박혁권, 하희라, 유선
연극 ‘러브레터’는 30개 언어로 공연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밀도 높은 2인극이 특징으로, 무대에는 50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앤디와 멜리사만 존재한다. 글을 사랑하는 모범생 앤디 역은 정보석과 박혁권이 맡아 연기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 역에는 초연 당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하희라와 함께 유선이 캐스팅됐다. 제작사 측은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랑과 이별, 그 무수한 사연들도 디지털 기기의 버튼 하나로 정리되는 요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성을 깨워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친정엄마
일정 4월 20일 ~ 5월 26일
장소 서울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이효춘, 신이현, 선예, 김도현, 박장현 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친정엄마’는 2004년 원작소설 출간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뮤지컬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수로 통하며,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번 시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 봉란 역에 김수미와 이효춘이 캐스팅됐다. 김수미는 초연부터 봉란 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효춘은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다 이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 딸 미영 역은 신이현이 지난 시즌에 이어 연기하며,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새롭게 합류했다.
◇클로저
일정 4월 23일 ~ 7월 14일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김지호
출연 이상윤, 진서연, 김다흰, 이진희, 최석진, 유현석, 안소희, 김주연
연극 ‘클로저’는 1997년 초연 이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극은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공연은 8년 만인 가운데,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가 연극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역을 맡은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와 관객들과의 교감에 긴장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이 있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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