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편이 못 되다 보니 가능하면 이럴 땐 피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 혹은 동행 한 명쯤과 다니기 좋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은 어수선함이나 소음으로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좋다. 혼자서 자기 속도대로 구경하고 한참씩 멈춰 있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말이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생각의 방향으로 돌아보고 나서 만나면 된다.
이번에 가본 안성의 한국조리박물관도 그렇게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조리박물관의 메인 전시관과 요리아트스쿨 교육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너른 공원과 잘 정돈된 조경, 예쁜 카페와 식당까지 고루 잘 조성된 테마파크형 박물관이다. 서양요리 100년의 역사를 갖춘 한국조리박물관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전시관은 국내 서양요리 역사, 조리인, 메뉴 레시피, 식문화 조리단체, 조리기구와 도구, 소스와 향신료, 커피·바리스타·와인·베이커리 등 8개 테마로 구성되었다. 공간 구획에 따라 준비된 각종 자료들이 생생한 역사를 전달한다. 찬찬히 돌아보며 만난 도구 하나하나, 맛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나 작은 소스 하나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뜻깊은 관람이다. 이를 이루고자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이며 나아간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총 부지 1만 평 정도의 테마파크형 박물관으로, 자연 속에서 관람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번엔 조용히 혼자 전시장을 돌아보려던 생각을 바꿨다.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려는데 안내석에 계시던 분이 말을 건넨다. “해설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사실 해설을 들으며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며 그냥 들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대로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해설사로 교육받으신 분답게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친절한 안내와 꼼꼼한 설명으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안내를 하시는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연륜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성시청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현재 이곳 한국조리박물관에서 파견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문화해설사는 20명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이어서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합니다. 이곳의 문화해설은 팀마다 다르지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경우에 따라 세 시간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관람객들도 즐겁고, 잘 따르도록 리드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 즐거움이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합니다.”
맡은 일에 자부심이 넘치신다.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귀에 잘 들어오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주어진 일이 즐겁다고 연신 말한다. 유용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전해진다.
“내가 7학년입니다, 하하하. 건강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하는 일이 대가 여부를 떠나서 보람이 큽니다. 문화 관련 일을 접하는 것도, 또 전시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다워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람찬 나날 속에 보내는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사는 시니어에겐 안정된 노후나 취미 생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후의 경제활동이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필요하다.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처럼 일이란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진취적인 삶이 행복을 유지해준다.
마침 한국조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최수근 관장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경희대 교수를 은퇴한 최 관장은 여러 호텔 근무 경력도 지닌 식품학 박사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분이다. 특히 ‘소스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요리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 르코르동블루로 유학을 갔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개인박물관이었어요.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셰프의 기념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방 관련 사업을 하는 이향천 대표를 만난 겁니다.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한국 최초의 조리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요리 분야 원로들이 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고 저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지금도 콘텐츠 발굴이나 행사 진행을 하고, 자문을 얻으며 공부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언제든 이곳에 찾아오시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넓은 공원의 자연과 전시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조리박물관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성의껏 이야기해주셨다. 일정 때문에 급히 이동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다해 조리박물관의 의미를 전해주시는 마음이 와 닿았다.
한국조리박물관에 가면 근현대 요리와 조리의 방대한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된다. 조리계 원로들과 한국 조리명장들이 분야별 자문위원단으로 동참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요리학교, 셰프들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며 진행해온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주방 제조업계의 이향천 대표와 한국 조리업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려는 최수근 관장의 열정이 힘을 합친 결과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의 밥상’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요리사가 들려주는 대통령의 밥상 이야기와 청와대 요리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의 식기가 역사 순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빈 만찬에 일본 도자회사의 그릇을 사용해왔다. 이를 본 육영수 여사가 한국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고, 그 뒤로 국빈들에게 당당히 우리 그릇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가히 요리와 먹방의 시대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맛의 역사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 알차다. 조리인들의 철학과 발자취를 돌아보며 흥미로운 요리 세계로 빠져볼 만하다. 안성 일죽면에 가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맛의 원천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서일농원 한국조리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서일농원이 있다. 볕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장독대에서 우리의 장맛이 익어가는 옛 정서를 만끽해볼 만하다. 연못가를 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차분히 사색에 빠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문이 비로소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죽주산성 죽산면 쪽으로 조금만 더 달려보자. 시원하게 죽주산성에 올라 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프랑스 면적은 우리나라 5.5배, 인구는 6530만 명이다. 행정구역은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레지옹이 18개, 시군에 해당하는 데파르트망이 95개, 동에 해당하는 코뮌(Commune)이 약 3만 5000개 있다. 리옹시와 파리시는 특별지위에 있다. 프랑스 전역에 811개 골프 코스가 있다.
테르 블랑슈 호텔스파&골프리조트(Terre Blanche Hotel Spa Golf Resort)는 유럽 최고의 호텔로 손꼽힌다. 하루에 150만 원의 초고가로 프랑스 1위, 유럽 2위의 명문 골프텔이다. Terre는 ‘땅’, Blanche는 ‘하얗다’는 의미로 ‘하얀 땅’이다.
테르 블랑슈 골프클럽은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에 위치한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은 역사상의 프로방스 지방과 거의 일치하며, 중심지는 마르세유, 그 밖의 주요 도시는 니스, 툴롱, 칸, 엑상프로방스 등이 있다.
유럽 전체에서 손꼽히는 명문
36홀 규모로 샤토 코스(Parcours Le Château)는 프랑스 8위, 유럽 대륙 28위에 랭크된 최고의 명문이며, 리우 코스(Parcours Le Riou)는 프랑스 48위에 랭크되어 있다. 데이브 토마스(Dave Thomas, 1934 ~2013)가 설계해 2004년 개장했다.
테르 블랑슈 골프클럽은 유럽에서 가장 좋은 교수법이 사용되는 훈련 센터를 갖추고 있으며, 최첨단 친환경 시설 덕분에 GEO®(Golf Environment Organization) 인증을 받았다. 2018년에는 ‘골프월드UK’(Golf World UK) 잡지에서 유럽 대륙 최고의 골프 리조트로 선정한 바 있다. 이곳의 자연은 계곡, 호수, 폭포, 숲과 같은 것으로 코스에 영감을 준다. 가장자리가 움푹 파인 벙커는 두 코스의 특징이다. 그린피는 190유로(27만 원) 정도다.
리우(Le Riou) 코스(파72, 6005, 5591m)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전략과 정확성을 보상하는 18홀의 기술 골프 코스다. 5개의 티 박스를 갖고 있다. 블랙, 화이트, 옐로, 블루, 레드다. 샤토 코스와 달리 회원 및 호텔 투숙객에게만 개방된다. 매년 LETAS(Ladies European Tour Access Series)가 열린다.
코스 전체가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업앤드다운이 심한 전형적인 마운틴 타입이다. 몇 개 홀은 매우 심한 내리막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오르막을 이루는 홀들도 있어 멋져 보인다. 물은 거의 없지만 9번 홀과 18번 홀은 페어웨이 오른쪽을 따라 길게 흐르면서 그린까지 도달하는 멋진 디자인이다. 전장은 길지 않지만 업앤드다운과 도그레그 홀의 특성상 만만치 않았다. 블라인드 홀이 많아 거리보다는 정확도가 요구되는 코스로 전략적인 라운드가 필요하다.
1번 홀(파4, 353, 319m) 내리막이 심한 왼쪽 도그레그 홀이다. 180m 지점에 큰 벙커들이 있으며, 200m 지점부터 왼쪽으로 도그레그의 매우 심한 내리막을 보여주는 멋진 블라인드 홀이다. 홀 전체가 울창한 수목으로 가득하다.
9번 홀(파4, 398, 368m) 긴 파4 홀로, 티 박스 오른쪽부터 흘러내리는 크리크가 그린 앞 30야드 지점에서 왼쪽으로 지나며 매 샷마다 물과의 싸움이다. 크리크의 폭은 10야드 내외로 작은 바위들과 잘 어우러진 멋진 풍광과 운치 있는 코스 디자인이 돋보인다.
17번 홀(파4, 384, 360m) 큰 내리막 홀로, 홀 주변은 큰 수목들로 가득하며 멀리 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린 앞 60야드에 크리크가 페어웨이를 가르며 그린 왼쪽으로 길게 큰 벙커들이 이어지는 위협적인 모습이다. 갈수기로 인해 물은 없었다. 멋진 레이아웃이다.
18번 홀(파5, 450, 445m)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난이도 있는 스펙터클한 내리막에 오른쪽 도그레그 홀이다. 페어웨이 왼쪽 150m부터 오른쪽 230m까지 크리크가 흐른다. 비거리가 짧거나 티 샷을 실수하면 최소 더블보기가 나오는 상황. 슬라이스는 매우 위태롭다. 250m 지점에 보이는 멋진 하얀 벙커가 더욱 빛난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이 매력적
크리크는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며, 그린 앞에는 큰 호수가 형성되어 그린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그린 왼쪽에는 큰 벙커 세 개가 이어져 있으며, 그린은 오르막이 심한 2단 그린으로 핀의 위치에 따라 정확한 티 샷이 요구된다. 그린 좌우에 모두 해저드가 있어 심리적으로 부담되는 상황이라, 강한 멘털이 스코어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800여 개의 프랑스 골프 코스에서 48위에 랭크된 위용을 18번 홀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클럽을 방문한다면 멋진 코스와 1박에 150만 원이 넘은 프랑스 최고의 골프텔, 라운드 후 3시간에 걸쳐 정통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만찬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화 ‘토이 스토리’는 살아 있는 장난감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다. 우리에게도 영화처럼 장난감을 진짜 친구라 여긴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동심을 간직한 덕분일까. 어른들은 고장 난 장난감을 버리면서도 아이가 실망할까봐 “장난감이 아파서 병원 갔다”는 식의 말을 종종 꾸며낸다. 그리고 그 하얀 거짓말을 참으로 만들려는 이가 있다. 김종일(77)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이다.
1만 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의 베테랑이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을 투자하라는 얘기다. 이 시간을 채우기까진 대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난감병원 ‘키니스’가 문을 연 지도 어느덧 만 11년이 흘렀다. 최초가 된다는 건 꽤 그럴싸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에 외롭고 험난하다. 이럴 땐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10여 년 전 장난감병원 설립을 앞둔 김종일 이사장에게도 뜻을 나눌 동료가 필요했다.
“인하대 금속공학과 교수를 지냈는데, 일찍부터 은퇴 후를 고민했어요. 내가 가진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다 지금의 장난감병원을 떠올렸는데,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장난감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게 많아요. 애들이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음료를 흘리면 쉽게 고장 나 버리죠. 이걸 고치려면 전자 신호나 회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거든요. 일단 주변에 알고 지내던 동료 교수들이랑 전자업체 연구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고맙게도 대부분 흔쾌히 승낙해줬어요. 덕분에 은퇴 후 바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죠.”
그렇게 지원군이 모이자, 김종일 이사장은 사비 3000만 원을 들여 비영리 민간단체 키니스장난감병원을 설립했다. 그를 비롯해 함께하는 이들 모두 봉사하는 마음으로 무보수 재능기부를 택했다. 선한 마음으로 모인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박사’라 부른다. 대부분 60~70대로 본업이 박사인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난감 박사’라는 뜻으로 통한다.
“돈 받는 일도 아닌데 다들 사명을 갖고 임해주니 감사하죠.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분들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최고의 장난감 박사라 자부할 수 있어요. 장난감 수리 쪽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열심히 연구해온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웃음)”
사연 안고 입원하는 장난감 환자들
키니스장난감병원을 방문하려면 먼저 온라인 진료실에서 ‘입원 치료 의뢰서’를 작성해야 한다. 김 이사장은 의뢰서에 올린 사진과 사연을 보고, 70% 이상의 치료 확률이 있을 때 입원 결정을 내린다. 치료가 안 됐을 경우 오히려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기에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물론 희박한 성공 확률에도 의뢰자가 원한다면 치료를 시도해보는 편이다. 이렇게 입원하는 장난감이 매년 1만 개에 달한다. 이 많은 장난감을 박사 6~7명이 고쳐내려니 종일 허리 펼 새도 없이 치료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또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들어오는 장난감들도 60대 후반인 막내 박사가 송장 붙이기부터 포장까지 도맡아 해낸다. 인터뷰 당일에도 실시간으로 방문객과 택배 박스가 정신없이 오갔다. 봉사가 아닌 혹사에 가까운 업무량이지만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박사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장난감마다 사연이 있잖아요. 특히 돌 전 아이들 장난감 중에는 모빌이 가장 많이 들어와요. 그맘때는 엄마들이 온종일 애랑 붙어 있는데, 그나마 모빌이라도 틀어줘야 엄마도 밥 먹고 쉬거든요. 근데 그게 고장 났으니 얼마나 쩔쩔매겠어요. 또 애착하던 장난감이 없어서 잠 못 잔다는 아이들도 있고, 이런저런 사연 떠올리면 얼른 잘 치료해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일반적인 가전제품과 달리 아이들 물건의 경우 다소 허술하게 만들어져 고치기 난해한 게 많다고. 키니스에서는 택배비 외의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데, 치료를 위해 부품을 새로 사거나 박사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할 때도 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고쳐지지 않는 장난감은 나오게 마련. 간혹 고장 난 제품을 그대로 다시 받은 고객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단다.
“가끔 장난감이 안 고쳐졌다거나 더 고장 나서 왔다면서 안 좋은 후기를 남기는 분들도 있죠. 우리 박사들은 실명제로 일하는데, 자기가 치료한 장난감이면 글만 봐도 다들 알 수밖에 없거든요. 참 속상하고, 어떨 땐 상처도 받아요. 치료가 잘 안 됐을 때 슬퍼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도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은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장난감 잘 고쳐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더 많습니다. 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노는 사진도 자주 올라오고, 고사리손으로 감사 인사를 적어 보내는 꼬마 손님들도 있고요. 그럴 때 정말 즐겁고 보람을 느낍니다.”
고장 난 장난감, 기부로 환골탈태
아픈 장난감 치료와 더불어 키니스의 주요 활동은 나눔이다. 설립 이래 해마다 저소득층 가정을 비롯해 보육기관, 장애인 시설, 치매센터(어르신들의 인지력 향상에 장난감을 활용) 등 곳곳에 1000여 개의 장난감을 기부해왔다. 특히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절대 거르는 법이 없다고. 보내는 물품의 일부는 다른 곳에서 기부한 고장 난 장난감이다. 물론 박사들이 성심껏 치료한 후 전달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 맞은편에는 ‘아나바다 본부’가 있다. 익히 아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기증받은 장난감들을 전시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난감과 교환해 갈 수 있다. 미래에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며 자원을 아끼고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성장 시기마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계속 바뀝니다. 아이들이 쉽게 질려 하기도 하죠. 또 얼마 안 하는 장난감은 조금만 고장 나도 쉽게 버리더군요. 그렇게 계속 새 장난감을 사주면 돈도 들지만 자원 낭비가 심하잖아요. 그러니 가급적 쓸 만한 것들은 고쳐 쓰고 바꿔 쓰고 하자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환경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부분을 일러주고 함께 실천하면 좋은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해요.”
비슷한 취지로 최근 지역마다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곳이 적잖이 생겨났다. 일정 기간 단위로 회비를 내거나 보증금을 내면 무료로 장난감을 빌려주는 식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장난감을 경험하게 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물론 이 역시 훌륭한 서비스지만, 김 이사장은 아쉬운 부분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경험해보니 장난감은 고장 안 나기가 힘들어요. 아기들은 물고 빨고 던지면서 놀잖아요. 조금 큰 아이들도 먹다가 음식물을 흘린다거나 실수로 떨어뜨려서 망가지기 일쑤죠. 그런데 대부분 대여점의 정책을 보면 장난감이 고장 났을 때 수리비 명목의 비용을 내야 하더라고요. 키니스에 장난감 맡기는 분 중에도 대여점에서 빌린 게 고장 나서 갖고 오신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도 못 고치면 그만큼 돈이 나갈 테죠. 그러다 보니 엄마들도 애들한테 맘껏 갖고 놀게 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더군요. 또 장난감에 애착이 생겼는데 반납한다고 하면 아이가 슬퍼하고 실망할 거 아녜요. 그런 점들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은퇴 후 장난감 박사를 추천합니다
최근 키니스는 인천광역시 고령사회대응센터와 함께 ‘장난감 수리 전문가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난감 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인데, 이를 통해 양성된 인력은 인천 무료 장난감 대여소에서 장난감 수리 전문가로 활동한다. 지난해에는 인천시노인인력개발센터와 ‘장난감 척척박사 사업 활성화와 맞춤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이러한 인력을 전국의 장난감 대여소에 배치한다면 앞서 언급한 수리비 부담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아울러 그 어느 세대보다 은퇴 이후 중장년들이 장난감 박사로 함께 해주길 바라고 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초반에는 공구랑 장비 마련한다고 사비를 많이 썼어요. 또 그때만 해도 박사님들 경험이 부족하니 기술도 지금만 못했고요. 요즘은 여기저기서 후원도 꽤 들어오고, 우리만의 노하우도 웬만큼 쌓였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우리 일을 권할 만한 좋은 여건을 만들었다고 봐요. 간혹 기술 없다고 주저하는 분들도 있는데, 와서 익히면 되니 큰 문제는 아녜요. 중요한 건 ‘봉사하려는 마음’ 그게 얼마나 진심인가죠. 게다가 나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데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나처럼 너무 나이 든 노인은 좀 그렇고(웃음) 60대 후반이면 딱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 여생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앞두고 있을 때 한 꼬마 손님이 찾아왔다. 장난감이 잘 치료되어 기분 좋은지 껑충껑충 뛰며 병원 문을 나서려는데, 김 이사장이 황급히 무언가를 챙겨 아이에게 다가갔다. 막대사탕이었다. 손님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는 아이들을 보면 과자든 풍선이든 꼭 뭔가 하나를 쥐어 보내야 직성이 풀린단다. 사탕을 받아 들고 신이 난 꼬마를 보는 김 이사장의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표정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이내 예상 답안이 흘러나왔다.
“내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고칠 겁니다. 이렇게 매일 뜻밖의 동심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지금처럼 다른 욕심 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해요. 아, 욕심나는 타이틀이 하나 있긴 한데요(웃음). 어린이날 창시자 방정환 선생처럼, 먼 훗날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장난감병원 설립자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그만큼 키니스가 오래오래 아이들 곁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이고요. 그게 제가 미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니스에 머물면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 중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모나코와 칸이 있다. 버스나 지하철로 한 시간 이내면 모두 가능한 거리여서 누구나 당연히 여행 코스에 넣지 않을 수 없다. 꼭 니스가 아니어도 근교의 생폴드방스나 에즈빌리지에서도 연결되는 교통편이 있으니까 알뜰한 여행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니스 일주일 살기가 끝나간다.
◇모나코(Monaco)
모나코에 대해서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밖에 아는 게 없다고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부터 그레이스켈리의 모나코에 간다는 기분이다. 모나코행 버스 타는 곳에 기다리는 줄이 의외로 길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30분쯤 달린 버스 차창 밖으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서울에서 시외버스 타고 가까운 수도권 도시 어드메쯤 온 듯하다. 니스 역에서 기차를 타도 30분 남짓 가까우니 잠깐 교외 나들이 나온 듯하다. 그러나 관광 국가답게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움과 넘치는 볼거리가 금방 압도한다.
여긴 미국의 영화배우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모나코다. 모나코는 국경선 길이 4.4㎞, 면적 1.95㎢., 로마 바티칸시티(0.44㎢)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 소국이다. 1297년 1월 8일에 독립한 나라로 프랑스 남동부 끝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몬테카를로가 가깝다고 했지만 일단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몬테카를로...”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저쪽으로~”라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이들의 당연한 손짓이 이 작은 나라의 주 수입원이 국제 중계무역과 카지노 산업이라더니 이렇게 체감시킨다. 몬테카를로로 가는 길에 있는 열대 정원 Jardin Exotique에는 주민인듯한 사람들이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 중인 모습이다. 몇 걸음쯤 더 걸어가니 오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카지노 몬테카를로(Casino De Monte-Carlo)가 보인다. 그 옆의 노천카페엔 모나코를 즐기는 모습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게 뭐라고 무수한 저들은 이곳에 모여드는 걸까.
도박을 하는 건축물이라고 하기엔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설계했던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덕분에 고급 사교장 느낌이다. 카지노 앞에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고급 자동차 전시장처럼 번쩍거리는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다. 이곳 카지노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모두 국가의 재정이 되고 중요한 관광산업으로 관리된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럭셔리하고 화려함이 더해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모나코 국왕에 의해 모나코 국민들의 도박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또한 병역과 세금이 없는 나라다. 그래서 세금을 피해 이주해온 부자들 덕분에 유난한 사치스러움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시내 전체가 관광지화되어있어서 지나가는 누구나 여행자 같아 보인다. 휴양도시인 모나코의 풍족한 삶을 보여주듯 카지노 주변엔 일반 가게처럼 쇼핑센터나 명품샵이 즐비하다. 유명 브랜드의 스포츠카가 내 옆을 계속 지나간다. 어쩐지 도박장 귀빈들의 거리로 특화된 양 요란하다. 볼거리 놀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풍경이다.
우리가 태어나 세상을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또는 아프거나 뿌듯해하며 기쁘고 성내고 노력하며 산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일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놀이터에 온 느낌이다. 그런 곳을 대충 챙겨 입은 여행자의 모습으로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느슨하게 온 몸의 긴장을 풀고 그렇게 어슬렁거리는 맛을 즐긴다.
모나코 사람들을 먹여 살려주는 카지노였기에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 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뿐이다. 모나코의 유일무일한 브랜드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의 왕자 레니에 3세와 결혼하여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았던 그녀다. 전설의 허리우드 여신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것이다. 모나코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녀의 나라에 와 있다.
구시가지 언덕에 위치한 그녀가 살았던 화려한 모나코 궁전을 바라보며 살짝 가슴이 뛰기도 했다. 어릴 적 TV 명화극장에서 자주 보았던 그녀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해안가의 거리에도 바닷가 미풍에도 그녀의 삶이 녹아있을 것만 같았다. 절벽의 절경에 잘 앉혀져 있는 이쁜 집들, 에흐귤르 항구에 가득하게 정박해 있는 고급 요트, 궁전과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를 지나 해양박물관도 볼거리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나코 빌리지의 골목까지 걸어볼 수 있다면 아쉬울 게 없다. 해안가로 나와 눈앞에 펼쳐지는 도박꾼들의 화려한 요트로 가득 찬 항구를 멍하니 구경하다 보면 하나둘씩 가로등이 켜지고 지중해 저편으로 서서히 노을이 찾아온다. 어릴 적 알았던 영화배우의 나라에서 확인하듯 내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잠깐 머물다 온 ‘그레이스 켈리의 나라’ 모나코였다.
◇칸(Cannes)
일주일 동안 머물며 여유롭게 지내던 니스를 떠나는 시간이 오후 네 시다. 느슨하게 반나절 시간을 칸에서 보내고 출발하기로 했다. Nice Ville에서 Ter기차를 타고 열 정거장쯤 지나면 Cannes 기차역에 30분 만에 도착한다. 호기심과 신기함과 설렘으로 보내기 딱 좋은 30분이다. 기차 2층 칸에서 보이는 외곽의 풍경이 마치 서울을 벗어난 지하철 1호선 같다.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칸느역에 오가는 사람들. 긴장감이라곤 일 그램도 안 느껴지는 모습들. 여행 중엔 이런 모습을 부러워할 틈 없이 바로 전염되듯 나 역시 빠르게 긴장감 풀고 무장해제~.
지중해에서 가장 화려한 휴양도시 CANNES. 남국의 화려한 꽃과 달콤 새콤 향의 과일들이 길거리로 나오고 사람들은 어디든 마음대로 걷거나 주저앉거나 세상 편함 그 자체다. 칸느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이란 건물이 앞에 있다. 매년 5월이면 영화 축제가 열리는 곳,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느,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중의 하나인 Cannes 국제영화제는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가는 길엔 공사가 한창이다. 전도연이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곳을 그렇게 쓰윽 한번 보며 지나간다. 올해는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도 탔다. 영화 배경 속을 걷듯 칸의 햇살 속을 걷는다.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시간 또한 즐겁다. 종려나무들이 즐비한 해안가에서 느긋하게 놀아보라. 해피바이러스는 이런 것이란 걸 알게 된다.
해안가로 나가보면 햇살 쏟아지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고급 휴양 요트들이 줄지어 있다. 지중해에서 가장 럭셔리하다더니 요트의 화려함이 아찔하다. 쏟아지는 태양, 짙푸른 바다가 마냥 눈부시다. 어딜 보아도 여유가 뚝뚝 떨어지는 풍경이다. 도무지 다른 세상이다. 이 도시는 사실 영국과 이탈리아를 오고 가던 유럽 사람들이 별장들을 세우고 요트들로 항구를 오고 가며 휴양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호텔과 카지노가 많아서 프라이빗한 휴가를 즐기거나 돈 많은 도박꾼들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길거리 노천카페는 이미 테이블 세팅을 마쳤다. 칸느 역 주변으로 앙티브 거리(Rue d’Antibes)는 내가 보아도 알만한 명품 브랜드들이 줄줄이 있다.
프랑스 남부의 지중해 도시 칸. 도시 전체에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내맡기고 카푸치노 한 잔 마신다. 지중해를 향해 앉아 그 햇살 한 번 원 없이 받아본다. 환한 태양 아래서 마음껏 누리던 사람들이 기억될 칸(Cannes)이다.
남프랑스 니스에서 일주일 살기
어느덧 니스에서 일주일 살기도 중반을 넘어간다. 니스에서 10km 남짓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중세마을 에즈 빌리지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하늘이 유난히 눈부시게 새파랗다. 니스의 숙소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역시 짙푸르다. 어쩐지 하루의 예감이 좋다. 작은 손가방에 머플러와 500리터 물 한 병 담아서 호텔을 나섰다.
바닷가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이 내 옆을 휙휙 지나간다. 모래밭으로 내려가 아침 햇볕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면 남부의 여행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다. 선탠하거나 알콩달콩 연애 중인 이들 옆을 지나가며 나도 너그럽게 행복해진다. 이곳에 일주일 머물면서 니스의 해변을 즐기는 일은 이렇게 틈틈이 해야 한다. 그게 새벽이든 한낮이든 밤바다이든 언제든 바라볼 수 있고 다가갈 수 있어서 어찌나 뿌듯한지.
니스에서 버스로 여행하기
니스에서 에즈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먼저 트램으로 여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여섯 정거장 거리의 트램 안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차서 꼼짝달싹 못하고 서 있다가 Vauban역에서 내렸다. 그런데다가 에즈 빌리지행 112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어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고 빈자리가 없다. 서서 가야 한다. 참고로 니스 가리발디 광장에서 82번 버스도 있다. 버스비는 편도 1.5 유로 정도. 물론 기차편도 가능하지만 불편함이 커서 대부분 여행자들은 에즈행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여행 중 삼사십 분을 서서 가는 건 버스 창가에 앉아 편하게 지중해 풍경을 보는 즐거움 하나를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지중해의 차창 밖은 어디서 바라보아도 언제나 무한 아름다움이다. 해안가를 즐기려면 버스의 오른편에 앉는 게 좋다. 아침부터 짙푸른 하늘과 바다를 멋지게 보여주더니 잠깐 이렇게 다리품을 팔라고 한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선채 버스 차창 밖으로 에즈의 산비탈과 지중해의 풍광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에즈 빌리지(Eze Village)에 도착했을 때는 온 산하가 투명한 햇살의 빛 내림으로 환했다.
니스 근교의 선인장 마을 에즈빌리지
눈앞에 교회의 시계탑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여행길에 시계탑을 만나면 대부분 그곳이 목적지 인양, 마치 이정표 삼아 시계탑을 향해 걷는다. 어차피 느슨하게 보낼 셈인 하루다. 먼저 거길 오르지 않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아랫동네를 즐겨본다. 골목마다 햇볕이 뿌려져 있고 몇 마리의 잘생긴 개가 왔다 갔다 한다. 마을조차 한가롭고 헐렁하게 여유만만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로움이 번진다. 언덕 돌담에 걸터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할 일 없이 두리번거리며 마음껏 여유 부리며 가벼운 마음을 얻는다.
아껴두었던 걸 꺼내먹듯 이젠 비탈진 에즈 빌리지 언덕으로 올라간다. ‘사실 중세마을이 다 비슷하지 뭐’ 하면서 별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무심히 걸었다. 비좁은 골목마다 콕콕 박혀있는 작은 상점들이나 갤러리, 교회 건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걸을 수 있다. 직접 만지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여행 시작이다. 손바닥의 감촉으로 거슬러 가보는 중세기 마을이다.
중세기의 언덕에서 만난 지중해, 그리고 니체
동굴과도 같은 조붓한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해발 427m의 작은 성벽 마을, 그 모습대로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도 있다. 에즈는 13세기 로마의 침략을 피해 산꼭대기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마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흑사병이 한창이던 14세기에 이곳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지금껏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중세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 예쁜 공방이나 기념품점이 줄지어 이어지고 테라스가 매력적인 갤러리가 자꾸만 튀어나온다. 남프랑스의 따스하고 환한 햇살과 꽃들로 어우러진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넘친다. 느릿느릿 에즈 빌리지의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걸으며 만나는 가시를 뻗치고 있는 다양한 선인장과 여신의 조형물들이 이 마을의 수호신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정원에 뿌리내리고 오랜 시간 동안 저렇게 지중해를 지키고 있구나 하는...
13세기 지중해 높은 절벽 위에 만들어진 작은 요새 마을 에즈 빌리지. 수백 가지의 선인장이 독특하게 가꾸어진 길을 걸어 400m 높이에 위치한 열대 정원에 서면 바람결이 확 다르다. 해변 마을에서 에즈 빌리지까지는 니체의 오솔길이 있다. 니체가 사랑했던 연인 루 살로메에게 실연당하고 찾아온 니스와 에즈 빌리지에 머물며 가장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고 한다. 14세기에 지어진 문이 마을 입구에서 맞는다. 그 길을 걸으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상했다는 철학자를 떠올려 본다. 걸으면서 사유하기를 좋아했던 니체의 자연을 마주하는 비탈진 산책로를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걷는 성벽 마을의 시간여행이다.
사방을 빙 돌며 파노라마 전경을 바라보느라 가슴이 벅차다. 가슴이 뻥 뚫린다. 좁은 골목의 올라오며 느꼈던 신비로움과는 달리 탁 트인 해방감으로 시원하다. 절벽 아래 붉은 지붕의 마을이 해안선의 아름다운 결을 따라 평화롭다. 발아래 지중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눈앞에 펼쳐놓은 건 누구일까. 내가 본 지중해 풍경 중에서 최고다.
지중해 마을 정원의 기억
니스에서 모나코 가는 길목에 위치한 보석처럼 매력적인 마을, 놓쳤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아랫마을로 내려와 노천카페에 앉아 토르티야 샌드위치로 때우는 늦은 점심도 충분히 즐겁다. 오래된 중세 마을에 부는 가을바람 속에서 한나절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내게 에즈 빌리지는 여행길에 잠깐 들러 보는 곳이었다. 아니 누구에게나 작은 마을일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머무르려는 발걸음이 되어 느릿느릿 길게도 놀았다. 돌아와서도 종종 생각나는 걸 보면 나와 잘 맞는 곳인 듯하다.
에즈 여행은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이어야 한다. 푸른 지중해를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 마을, 에즈 빌리지(Eze Village)다. 지중해와 이토록 아름답게 어우러진 선인장 마을의 정원, 그 옛날 이곳엔 누가 살았을까. 그곳은 누구의 정원이었을까.
파리에서의 1박 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애초에 생미쎌의 소르본느 주변에서 어슬렁 놀다가 미술관 한 군데 돌아보는 걸로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기에 쫓기는 기분 없이 잘 보낸 1박 2일이었다. 틈새 여행으로 아쉬움 없다.
오를리 공항에서 탄 작은 비행기는 새하얀 구름 속 푸르디푸른 하늘 구경에 잠깐 정신 팔린 사이에 금방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의 하늘과 구름은 어찌나 푸르고 새하얗던지 반짝거리는 니스의 푸른 바다와 콤비를 이룬다. 온통 코발트블루의 세상을 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니스만의 블루다. 지중해의 니스 블루라고.
지중해의 니스 블루
사실 니스는 여행지로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여행지를 다녀볼 수도 있다는 게 기분을 달뜨게도 한다. 공항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는 칸느와 모나코행 버스가 늘 대기하고 있다. 또 한쪽엔 니스 역 방향의 98번 버스가 서 있다. 우리는 니스 해변 쪽으로 가는 99번 버스로 지중해가 펼쳐지는 숙소 앞에서 내렸다. 환한 햇살이 맞이할 것 같았던 니스는 비가 내린 후의 한기가 엄습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니스의 햇빛 좋은 날씨가 날마다 이어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코발트블루의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가의 전망 좋은 방. 호텔 방에 앉아 광활한 지중해의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위치 좋은 곳의 전망 값을 더 지급했다. 발코니에 앉아 새벽을 바라보고 찬란한 햇빛을 눈부시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 휘어진 니스의 해안선에 내리는 노을을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짜릿했다.
니스에서는 모든 것을 털어내고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맨발로 몽돌을 밟으며 걷는 해변엔 여행객들의 거리낌 없는 일광욕 자세가 민망할 것도 없이 금방 적응된다. 느릿한 트램을 타고 거리를 지나거나 메세나 광장에 나가보아도 무표정하거나 심각한 얼굴은 보기 어렵다. 경직된 근육 없이 자유를 가득 품은 몸짓이었고 더없이 편안한 표정들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적대감 따윈 하나 없이 무장 해제된 표정들. 구시가지의 고풍스러운 골목을 걷다가 나와서 길 가던 노신사에게 지도를 들고 길을 물었더니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아예 다리 사이에 내려놓고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낸다. 그리고 내 지도에 동서남북을 그리며 상세히 설명을 한다. 그냥 "조~오기로 돌아서 가면~"이라고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기분이 든다.
노천카페마다 의자에 팔걸이를 하고 느긋하게 앉아 지중해를 즐기고 니스를 즐기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와인과 지중해의 해산물 샐러드를 앞에 놓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모습이 여행자에게 전해지고 덩달아 행복감 충전이다. 하루쯤 지나면서 긴장감이라곤 일 그램도 없는 나를 발견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니스(Nice)는 나이스(Nice)다.
가끔 가십 기사로 프랑스 배우나 허리우드 스타들이 니스에서 휴양 중인 파파라치 사진들을 기억한다. 따스한 햇살로 반기는 곳 니스는 누구라도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하는 도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알프스 산맥을 모두 품은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여유와 풍요함이 흘러넘친다.
니스가 좋은 이유
니스는 프랑스 남부의 항만 도시로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모나코와 칸느가 옆동네이고 이태리 국경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당일코스로 하루씩 칸과 모나코를 다녀올 수 있다. 현재 니스는 프랑스령이지만 역사적으로 이태리와 영토분쟁이 있었고 한때는 이태리 령이기도 했다. 그래서 니스지방 사람들의 이름 중엔 이태리식 이름이 많고 풍습이나 음식도 이태리풍이 많다. 무엇보다도 신선한 지중해의 식재료로 요리한 해산물 요리가 풍성하면서도 가격도 부담 없는 편이다. 숙소 또한 비싸진 않지만 찾는 이들이 많아 성수기엔 예약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곳은 평균 기온이 15℃이고 연중 고르게 온난한 날씨다. 여름엔 덥고 건조한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로 시기와 상관없이 사계절 니스를 즐길 수있는 기후다. 내가 갔을 때는 시월인데도 해변가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이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다정히 손잡은 연인이 서 있고 바다를 향한 벤치에 어깨를 감싼 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자전거를 탄 젊음이 쌩쌩 지나가고 잘 생긴 개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이 여유롭다. 이처럼 여유자적한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지끈지끈한 일상의 피로나 두통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듯했다. 마음껏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거리를 지나가다 아무데나 들어가서 홍합이 가득 뒤덮인 지중해의 해산물 파스타를 먹는다. 골목길이든 대로든 해변가든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걷다가 야자수 가로수길 어드메쯤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 지중해의 반짝거림을 언제까지나 멍하니 바라볼 수 있다니. 며칠 후면 다시 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괜찮다.
남프랑스 맛의 기억
물론 남프랑스의 맛이란 제목으론 당치도 않다. 여행 중에 그곳의 맛을 골고루 맛본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먹은 것도 아니다. 그나마 먹는데 정신 팔려 사진으로 남길 생각을 못해서 찍히지 못하곤 했다. 어쩌다 먹고 어쩌다 찍힌 별스럽지 않은 사진 몇 컷 일뿐이다.
니스의 메인스트릿을 지나 골목길 포장마차처럼 생긴 레스토랑 Temple Bar. 가족단위의 손님이거나 연인들이 가득 차서 바글바글했던 저녁시간. 파스타도, 홍합요리도, 감자튀김도 푸짐 푸짐했다. 이런 인심 대환영이다. 맛있다. 그런데 국물이 간이 좀 세다. 조금만 덜 짰으면 좋으련만, 하긴 괜한 트집이다. 그 분위기 속에선 이렇게 잊지 못할 또 다른 맛을 낸다는 사실이다.
니스의 호텔 조식은 메뉴가 다양했다. 그 중에서 자그마하고 대충 만든 듯하지만 부드러운 크레페가 따끈따끈 금방 구워져 나와 그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크레페(Cr^epes)의 생김새는 동그란 금빛 형태로 밝은 날 떠오른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춥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하고 밝은 봄을 맞을 때 먹는 빵이었다는데 이제는 우리의 호떡처럼 길거리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의미를 떠올릴 틈이 없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빨강과 보라, 그리고 노랑과 초록으로 선명한 색감이 빛나는 지중해의 채소와 과일들이 가게마다 넘쳐났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시간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온다. 맛의 기억이 여행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 친구가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아?” 1967년 프랑스 정부의 해외연수 담당부서. 담당관은 긴장한 한국인 유학생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프랑스어 실력은 기대 이하였지만, 돌려보낼 수는 없기에 체념해서 나온 말이었을 거다. 재미있게도 그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담당관이 베푼 작은 선의는 훗날 프랑스에 큰 기회를 제공했다. 그 청년은 프랑스의 고속열차 TGV와 선진 항만 기술의 도입을 주도했다. 또 그곳의 아름다운 와인을 소개하는 명사가 되었다. 최훈(86) 前 철도청장 이야기다.
“필연이죠.”
최훈 전 철도청장은 그의 인생에서 프랑스와 계속된 관계를 그렇게 설명했다. 사실 청년 시절 그의 관심은 오직 취직뿐이었다. 프랑스와 길고 긴 인연을 이어갈 것이란 생각은 꿈에서도 못 했다.
“경북대 사범대학을 졸업했을 때 한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전쟁을 겪고 난 시기여서, 학교도 많지 않고 선생에 대한 수요도 적었죠. 일자리를 찾다가 국토건설단에 지원한 것이 공무원 생활의 계기가 됐어요. 영어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외무부 쪽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다가 교통부 쪽에서 외무 업무를 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길래 배속을 받았죠.”
그렇게 영남 출신 청년의 서울 상경 생활이 시작된다. 1961년의 일이다. 바라던 해외 공관 자리는 아니었지만, 맡은 일은 재미있었다. 대한민국이 이제 막 제대로 된 국가의 형태를 갖춰가던 시기.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그 과정에서 외국과 교류하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필수적인 업무였다.
그의 첫 임무는 국제민간항공기구에 한국의 항공 운항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후에 미 제5공군 관할이었던 김포공항을 이양받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우리 의사를 정확히 제공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사전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며 “그때 들인 습관을 아직까지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책상 정면에는 손때 묻은 낡은 사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 같았던 프랑스 유학
“교수님 믿어주세요.”
1967년 심사를 담당하던 교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 정부의 부탁을 받아 국비유학생을 선발하는 자리. 교통부에서 신청한 청년의 프랑스어 실력이 문제였다. 퇴짜 맞을 가능성이 컸지만, 자신을 뽑아주지 않으면 선발 예산은 다른 나라로 전용될 것이라는 이유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교통부에서 활약할 실력이면 현지에서 금방 배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결국 교수님이 제 설득에 넘어갔죠. 낭만이 넘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죠. 프랑스 정부에서는 매년 국비유학생 형태로 지원자들을 받아 프랑스 유명 관광지의 호텔에 배치했어요. 프랑스의 선진 문화를 후진국에 전하면서 모자란 인력도 해결하는 정책이었죠. 결국 어렵게 프랑스에 도착하니, 현지 호텔에서도 제 프랑스어 실력 때문에 난리가 났어요. 다행히 현지 지배인이 기회를 줘서 프랑스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죠.”
그렇게 그의 프랑스 생활은 시작됐다. 세 개의 5성급 호텔에서 매니지먼트 과정을 이수했다. 고된 일들이 이어졌지만, 센강과 에펠탑, 샹송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했던 그의 가슴속 목마름과 호기심은 조금씩 기쁨으로 변해갔다. 임계점을 넘어 끓어 넘치던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는 열정 넘치는 청년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니스의 호텔에서는 모나코 왕비가 된 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파티에서 쟁반을 들고 수백 명의 귀부인 사이를 누비기도 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죠. 드레스를 차려입은 부인들로 가득했고, 하루에 수백 병의 최고급 샴페인이 소비될 정도였으니까요. 단순히 화려한 모습에 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회 문화나 와인 다루는 법 등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체득한 지식은 후에 제게 큰 도움이 됐죠.”
짧은 1년이었지만, 그의 인생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71년 교통부로 돌아온 그는 다시 프랑스행을 명받았다. 이번엔 출장이었다. 당시 영어와 프랑스어가 가능하고, 현지 경험 있는 공무원이 흔할 리 만무했다.
“인천에 항만 시설을 지어야 하는데, 서해의 심한 조석간만의 차를 극복할 갑문 운영 기술은 국내에 없었어요. 우리 바다의 조건과 유사한 선진국 항구에 가서, 항만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할지 배워와야 했죠. 그래서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의 항구를 차례차례 들렀어요. 르아브르와 케르크, 안트베르펜, 브리스톨 같은 곳들이었죠.”
당시 그가 만들었던 항만 운영 시스템 규정은 인천항 갑문 운영의 뼈대를 이루었다. 선진국의 운영 노하우를 집약한 결과물은 세세한 부분이 바뀌었어도, 기본적인 운영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항만청 국제과장 시절에는 항만 개발을 위한 차관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개발은행 등 각종 국제기관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오일쇼크로 중동에 돈이 넘친다는 말을 듣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까지 달려갔다. 무엇보다 종교가 우선시되던 시절, 알라에게 절을 하라는 무례한 요구에 머리도 숙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기 위한 자금이었다. 그는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확보한 차관을 합치면 1억 8000만 달러 정도 될 것”이라며 웃었다.
운송실장 시절, 부처 내에서 다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번에는 열차였다. 국내 고속철도 도입이 검토되던 시기였다. 당시 국내 기류는 ‘당연히 신칸센’이라는 분위기였다. 철도 기술자 상당수가 일본을 통해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자연스레 익숙한 일본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 최고의 열차는 프랑스의 TGV였다. 최고 영업 속도가 일제에 비해 시속 90km 이상 빠른 기술력을 자랑했다.
“당시에 프랑스나 독일의 고속철도를 경험해본 사람이 부처 내에 많지 않았죠. 전 각종 국제회의나 조약 협상을 위해 왕래가 잦았으니 익숙했고요. 또다시 그렇게 프랑스를 상대해야 하는 것은 필연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우리 열차의 속도는 시속 80km 정도였으니까 신칸센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열차는 지연 없이 대량 수송이 가능한 최고의 물류 효율을 자랑하는 수단이었으니까, 경제 발전에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도 많았지만 세계 최고의 열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웠던 와인과의 재회
“여보! 이게 그 술이야! 바로 이 맛이야!”
1977년. 업무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그는 한국에서도 와인이 나온다는 소식에 가게에서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마주앙 와인이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제조가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와인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모금이면 충분했다. 입에 대는 순간 의심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연수 시절 워낙 애주가였던 저는 밤마다 숙소 주변의 작은 가게에서 와인을 사 마셨어요. 1프랑짜리 싸구려 와인이었지만, 같은 값인 물을 사 먹을 순 없었죠. 저녁을 대신해 커다란 소시지 하나를 구워 와인 한 병을 비우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마주앙을 먹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확 떠오르더라고요. 그 시절 추억의 맛이었어요. 미군에 연줄이 없으면 와인을 구하지 못하던 시절, 와인에 대한 갈증을 달랠 수 있었죠.”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그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핑계 삼아 여행도 갈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해답은 와인으로 귀결됐다. 우선 와인의 기본 정보를 요약해 알리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작품이 1997년 600페이지 분량의 저서 ‘포도주 그 모든 것’이라는 책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와인 불모지였으니까요. 와인에 대한 개론을 상식선에서 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책을 내고 나니까 주변에서 문의가 늘더라고요. 그래서 자원평가연구원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보르도 와인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을 세웠어요. 지금의 ‘와인 리뷰’라는 월간지도 그때 시작했죠. 처음엔 광고도 많지 않아 고생을 꽤 했지만, 몇 년 지나고 나니 업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지더라고요.”
2005년에는 국제 와인 대회인 코리아 와인 챌린지를 시작했다. 일본의 대회를 롤모델로 삼아 시작해 지금은 세계적인 대회가 됐다. 업계에서는 해외 와이너리의 와인을 가장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대회라는 평가를 듣는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21개국 888종의 와인이 출품됐다. 만나기 어려운 조지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의 와인도 참가했다. 대회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대회 심사위원들도 자긍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발행하는 ‘와인 리뷰’를 살펴보면 발행인인 최훈 前 철도청장이 작성한 기사들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주요 기사의 대부분을 소화해내고 있다. 기사의 깊이도 대단하지만, 작성량 자체가 젊은 기자들을 뛰어넘는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유튜브도 시작했다. 와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이 필요하다는 유통업체들의 요청이 있었다. 와인 산지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특징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지잖아요. ‘와인 리뷰’를 발행하면서부터 새벽에 원고 작성하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새벽에 차분하게 글을 쓰다 보면 기사에 필요한 추가적인 자료나, 과거에 썼던 원고들이 머릿속에 떠올라요. 과거에 다녀왔던 여행의 기억까지 말이죠. 기본적으로 와인을 이야기할 때 제가 가보지 않은 곳의 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부끄럽더라고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것 같아서. 지역의 로컬 와인이나 토양, 기후 등을 겪어봐야 그 와인에 대해 정확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마트에서 칠레 와인만 사다 마신다는 말에 그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그저 털털한 인상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순간 ‘무언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그의 조언으로 오해는 풀렸다.
“어느 나라의 와인이라도 시작을 위해 저렴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좀 더 좋은 와인을 찾는 모험을 권하고 싶어요. 여러 나라에서 훌륭한 와인이 나오고 있으니까 너무 빨리 한정 지어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체험으로 와인의 즐거움을 누려보세요.”
“다리가 너무 구부러졌네요. 다리를 쭉 펴야 운동이 제대로 됩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을 때 듣는 말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모바일 카메라로 움직임을 인식해 동작이 제대로 됐는지 평가한 뒤 건네주는 말이다. 홈트레이닝에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홈트’(홈트레이닝)가 등장하며 피트니스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도움 메모핏
스마트 홈트의 특징은 ‘상호작용’, ‘개인 맞춤형’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현장에서 트레이너의 지도를 직접 받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좋은 장점을 만들어냈다. 원격으로 트레이너와 실시간으로 만나고, 첨단 기술이 동작을 포착하여 교정해준다. 시간, 반복 횟수 등 운동량이 자동으로 기록되고, 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개인 맞춤형 운동을 추천하고 계획을 짜준다.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니 평소 만나기 힘든 유명 피트니스 강사에게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포인트를 돌려주는 리워드 프로그램, 여러 참가자와 함께 대결을 펼치는 챌린지 프로그램도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첨단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운동은 그 효과도 크다. 시니어 전용 스마트 헬스케어 앱 ‘메모핏’의 자문위원인 김미정 한양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그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적어도 주당 150분의 중등도 강도의 신체 활동 또는 적어도 75분 이상의 좀 더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줄이면 하루 2회 10분 정도의 중등도 신체 활동을 하는 것을 권한다. 고령자도 주 2회 근력 강화 운동을, 특히 균형과 낙상 예방을 위한 운동을 하길 권하며, 개개인의 취미와 성격에 맞춘 운동 프로그램을 권장한다. 매일 꾸준히 20분씩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운동을 무리하게 할 경우 근육이 오히려 손상될 수 있으니 본인에게 맞는 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로 확산세 커져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헬스장을 직접 찾기 어려워지고, 집에서 운동하는 이들이 늘면서 스마트 홈트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후 홈트 관련 검색량이 급증했다. 영상통화로 트레이너에게 실시간으로 코칭을 받는 앱 ‘리트니스’는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된 이후 하루 운동 참여자와 앱 구매 건수가 모두 4배가량 늘었다.
시니어 중에서도 스마트 홈트 이용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화재의 헬스케어 모바일 앱 ‘애니핏’은 중장년 이용자가 지난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삼성화재가 발표한 ‘2020년 애니핏 앱 이용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이상 이용자는 23만3266명으로, 2019년 10만3462명 대비 125.4%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이하 가입자는 79.8% 늘어난 9만2302명이었다. 중장년이 30대 이하 대비 이용자 수도, 증가율도 높았다. 삼성화재는 중장년 이용자 증가 요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 중장년층의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 상승을 꼽았다.
스마트 홈트 앱, 가까운 곳에 있다
알고 보면 스마트 홈트 앱은 이미 우리 곁 가까운 곳에 있다. 스마트폰에는 각 제조사가 제공하는 피트니스 앱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헬스’, 애플은 ‘건강’, LG전자는 ‘LG헬스’ 앱이 있다. 각 앱은 운동량을 측정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데이터가 걸음 수 측정이다. 스마트폰은 운동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소지하고 있기에 정확도가 높고 측정이 용이하다. 또한 분석 능력이 높아서 오른 층계, 보폭, 보행 속도, 보행 비대칭성 등 세밀하고도 다양한 기준으로 데이터를 해석해준다.
스마트폰에서 기본 제공되는 만큼 이용량도 많다. 삼성헬스는 2020년에만 전 세계에서 2억100만 명 이상이 사용했으며, 이들은 30억kcal를 소모하고 78조 걸음 수를 기록했다. 해당 걸음 수를 거리로 환산하면 지구와 태양을 200번 왕복한 것과 같다.
각 사는 이들 앱의 기능을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 삼성헬스는 운동 콘텐츠, 명상, 수면 패턴, 심박수, 혈압 측정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전 세계 이용자들과 함께 걸음 수 대결을 하는 챌린지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등 종합 피트니스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애플은 애플워치, 아이폰, 아이패드와 연계한 ‘피트니스 플러스’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적합한 운동을 추천해주고, 요가, 자전거 타기, 근력 운동 등 여러 영역에서 세계적인 트레이너들의 수업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시중에는 디지털 기술과 피트니스를 결합한 다양한 앱이 출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알아보자.
디지털 기술을 집약한 대표 홈트 앱, 카카오 스마트홈트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이용자의 실시간 관절 움직임을 추출하고 분석하여 바른 운동 자세를 알려준다. 운동을 시작하면 이용자의 자세를 트레이너의 자세와 비교하면서 코칭을 받을 수 있다. 관절 추출을 통해 포착된 동작이 트레이너와 일치하면 녹색, 그렇지 않으면 빨간색으로 표시돼 정확도를 쉽게 알 수 있다. 운동이 끝나면 부위별 운동 시간, 소모되는 칼로리, 동작별 정확도를 분석한 정보를 제공한다. 요가, 근력 운동, 필라테스, 스트레칭에 관한 200여 편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고, 손연재의 리듬체조, 양치승의 근력 운동, 황아영의 요가 등 부문별 인기 트레이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한 달간 운동을 완료한 날짜 수에 따라 메달을 주는 챌린지 프로그램,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촬영하면 칼로리를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식단 카메라 기능도 제공한다.
시니어 전용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 메모핏
시니어만을 위해 설계된 피트니스 앱으로, 각종 운동 프로그램부터 화면 구성까지 중장년층에게 적합하게 꾸몄다. 시니어의 신체 특성을 고려해 관절에 무리를 주는 동작은 제외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장년들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구성했다. 두뇌와 근력을 동시에 쓰는 맞춤형 듀얼태스킹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와 치매 예방을 한 번에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치매에 효과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재활의학과, 치매 전문 신경외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았고, 대한노인재활의학회의 검수도 진행했다. 기저질환 유무 등 사용자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앱에 가입해 ‘체력 테스트’를 진행하면 생년월일, 키, 체중은 물론 수술 여부나 질환 유무가 입력되고,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개인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체력검사는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스마트폰 앱을 TV와 연동시킬 수도 있다. TV와 무선랜 또는 HDML로 연결하여 큰 화면으로 보면서 동작을 따라 하기 수월하도록 했다.
실시간으로 트레이너와 함께, 리트니스
실시간으로 홈트레이닝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코어 운동, 필라테스, 줌바, 요가 등 다양한 운동 수업을 집에서 라이브로 수강할 수 있다. 매주 지정된 시간에 진행되는 라이브 수업을 예약해두면 당일에 알림 문자를 준다. 코칭은 영상통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트레이너에겐 모든 참여자가 보이고, 참여자들에게는 트레이너와 자신의 모습만 보인다. 트레이너가 실시간으로 개인별 피드백을 주기에 정확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트레이너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이름을 불러준다는 점만으로도 중간에 영상을 끄고 운동을 포기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AI 트레이너의 개인 레슨, 875
국내 최초로 AI(인공지능) 코치를 도입한 앱이다. AI 코치가 개인별 신체 상태를 고려해 운동 습관을 밀착 관리한다. 사용자가 AI와의 채팅 상담을 통해 운동 계획과 실행, 성과 분석 과정에 도움을 받는다. 5주간의 운동 계획을 짜고, 올바른 운동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밀착 관리 스케줄을 정한다. AI 코치의 최대 장점은 방대한 데이터와 분석력이다. 사용자의 신체 상태, 목표, 체력을 분석해 최대 2만4000여 가지 운동법 조합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정해 5주간의 운동 계획을 설계한다. 정확한 설계를 위해 모션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보디 밸런스 체크, 인바디 체성분 검사 결과, 1분 체력 테스트, 자세 습관 자가진단 등을 통해 사용자의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루 8분 내외로 할 수 있는 맞춤형 운동을 권유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앱 개발사인 ‘티랩’이 현장에서 진행한 4만2000회 이상의 트레이닝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MINI INTERVIEW] 최윤정 플래닛350 대표
시니어 전용 스마트 홈트레이닝 앱을 개발한 계기는? 활기찬 시니어 라이프를 위해 운동은 필수입니다. 운동을 통한 건강 유지는 은퇴 후 찾아오는 고립감과 우울감을 없애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피트니스센터와 노인복지관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홈트레이닝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홈트레이닝 콘텐츠 및 서비스들이 출시되고 있는 와중에 정작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가 꼭 필요한 시니어들을 위한 콘텐츠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모핏만의 차별화된 서비스, 프로그램은? 앱 내 체력 테스트를 통해 이용자의 건강 상태와 운동 능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이용자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생성해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운동 프로그램을 설계합니다. 운동 프로그램은 의학 전문가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건강관리뿐 아니라 근감소증 및 낙상, 치매 등 노화 위험 요소를 예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치매 예방에 중요한 하지 균형 감각과 근력 운동에 초점을 두고, 상·하지를 전반적으로 고르게 사용하는 운동을 제공합니다. 또한 운동 동작을 따라 함과 동시에 뇌 활동을 요구하는 듀얼태스킹 운동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두 발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 덧셈 뺄셈을 계산해 손가락을 접으면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한 번에 성공하기 힘듭니다. 몇 번 반복해 성공하면 성취감도 큽니다.
자수로부터 출발했지만 더 창의적이고 복잡하며 섬세한 미감을 자랑하는 예술로 거듭난 실그림. 손인숙(70) 예원 실그림 문화재단 작가는 1500여 종류에 달하는 색실을 다루는 실그림의 대가로서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을 현대예술로 이으며 독자적인 미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예술 선진국 유럽에서 먼저 인정받은 그녀의 실그림은 단순히 그림의 틀을 넘어 다양한 전통 장식 등 공예의 세계와 결합했고, 이제는 건축과의 컬래버까지 진행 중이다. 거침없는 예술가적 도전의식으로 한국 예술의 큰 숲을 수놓고 있는 그녀의 뜨거운 예술혼과 작품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봤다.
“전통은 예술이 넘어야 할 무의식적 소재의 바다인 동시에 의식적으로 넘어야 할 산과도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숙명은 전통과 창작의 끊임없는 대화와 변형의 연속인 셈이죠.”
손인숙 예원 실그림 문화재단 작가는 우리 예술의 현재를 말할 때, 전통과 현대의 만남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일 것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길, 바로 전통 자수를 현대예술로 승화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마음을 홀린 실그림
손 작가의 작품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곳은 다름 아닌 서구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였다.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실그림을 감상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과 창의성이 완벽히 맞아떨어진 모습입니다. 너무나 모던하기도 하죠. 이 작품들을 볼 때면 신선한 숲속을 걸어갈 때 받곤 하는 자연의 향취가 느껴지는 듯해요.”
또한 유럽에서 가장 큰 동양미술 전문박물관인 기메박물관 관장인 소피 마카리우의 찬사도 여기에 더해질 가치가 있겠다.
“한국인의 내밀한 속, 한옥의 안채를 들여다보듯 흥분됩니다. 이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강하면서도 절제된 섬세함이 기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소피 마카리우를 비롯한 프랑스 예술계 저명인사들의 찬사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손 작가 작품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표시로 기메박물관에서 전시를 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손 작가는 2015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에 정부 후원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문화원 전 다니엘 올리비에 원장, 소피 마카리우 관장은 그녀의 작품이 한국의 전통문화 자수를 예술로 승화한 놀라운 성과라며 적극 나서서 한불 수교 130주년 공식 행사 인증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프랑스의 ‘르 몽드’ 지와 ‘르 파리지앵’ 지 문화면에 손 작가의 실그림 관련 기사가 대서특필되면서 처음 유럽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6개월간의 기메박물관 전시로 성공적인 유럽 데뷔를 이뤄냈다. 250여 점이 출품된 이 전시회는 3개월 만에 8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전시회로 기록되며 대성공리에 끝마쳤다. 이어서 프랑스의 니스동양미술관과 스위스 제네바 바우어재단 극동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현재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 작가의 작품은 세계 각 분야 문화 예술인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더 큰 문화예술의 아트코어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화가의 붓처럼 색실로 그려지다
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자수에서 비롯됐지만 자수라고 하지 않고 ‘실그림’이라고 칭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왜 그렇게 지칭되는지 바로 깨닫게 된다. 우리가 과거에 보고 접한 자수와는 다른, 훨씬 고도화된 미술 영역의 세계를 보여주며 손 작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실그림이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틀에 씌운 빈 천에 자신의 감성과 내면의 세계를 충실하게 투영해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재료와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창작 방식이다. 마치 화가가 캠퍼스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바늘이란 붓으로 실을 채색하듯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실그림을 완성한다. 틀에서 벗어난 자유를 보여주며 영혼을 수놓는 것 같다. 화풍으로 보면 동양화와 서양화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이다. 이때 전통 자수의 색채와 질감은 더 깊고 풍부하게 표현된다. 일반적인 전통 자수는 100여 개 안팎의 색실을 사용하지만 그녀가 쓰는 색실은 1500여 개에 이른다. 그 숫자의 차이만 봐도 그녀가 갖는 자부심의 합당한 근거를 알 수 있다. 그녀의 실그림 작품들이 기존 전통 자수의 색채와 질감을 넘어 풍부한 미학을 선보이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추상화, 풍경화, 목공예, 보자기, 회화 보자기, 인물화, 불교미술, 풍속화, 산수화, 서예, 한방 문화, 노리개, 복식, 주머니, 열쇠꾸러미, 걸개장식, 우드아트, 물푸레나무 조형물, 장신구, 병풍, 그리고 건축에 이르기까지 22가지 장르를 넘나든다.
세계가 먼저 알아본 실그림
손 작가의 작품들에 쏟아지는 호평의 근거는 무엇보다도 실그림만이 창조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예술적 디테일에 있다. 자수 작품은 앞면만 아니라 뒷면도 볼 수 있다. 뒷면을 보면 작품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손 작가는 이 부분의 디테일까지 신경 써서 작품을 만든다.
그녀 작품의 섬세함은 재료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자수 뒷면에 풀칠하는, 즉 배접 과정에 쓰이는 풀은 전통 방식으로 2년여에 걸쳐 만들어진다. 인물의 머리카락을 표현할 때는 실제 머리카락을 쓰기도 한다. 목재를 쓸 때도 경도를 따져서 10년 이상 말린 통나무를 사용한다. 이 모든 것들이 작품을 대하는 그녀의 엄격한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며 그녀의 실그림이 해외 갤러리에서의 감탄을 유발케 하는 근거들이다.
전통 건축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자수라는 특별한 소재가 만들어내는 독자적 미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의 결에 따른 음영과 입체감까지 고려해 표현한 것이 생생한 공간감을 색다르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만든 작품의 색감과 요철감을 확실하게 감상하려면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
실그림과 건축의 결합이라는 도전
실그림으로 표현한 건축물은 그녀로 하여금 실그림과 건축의 융합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무려 20여 년째 제작한 것이란다. 어느 누가 자수와 건축이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겠는가?
“옛 선인들의 옷과 귀중품을 보관하던 대형 의걸이를 만들고 있어요. 흑단나무를 주재료로 해 전체를 꽃살문으로 디자인하여, 248개 서까래의 끝 부분에는 연화 문양의 실그림이 들어가게 됩니다. 몸체에는 96개의 문짝에 한국의 문살을 디자인해 단청 이미지의 실그림으로 표현했고 지붕에는 암키와 수키와가 조화를 이루며 네 귀퉁이 상단에는 용마루를 앉혔습니다. 곡선이 내려오는 처마 위에는 잡상을 얹어놓았으며 축 하단에는 운룡을 조각하고 봉황의 길을 만들어 집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하단 사방에는 건축을 지키는 해태를 조각해 대우주를 지키는 의미를 드러냈죠.”
단순히 자수틀에 수만 놓는 게 아니라 디자인한 큰 그림을 여러 영역의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또 다른 대작으로는 ‘수월관음도’를 들 수 있다. 수월관음도는 투명한 사라를 걸친 관음보살의 고귀한 자태가 어둠속에서 마치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신비롭게 묘사돼 있다. 표현기법상의 우수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고려 불화 중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들에 의해 대부분 해외로 유출되었고 국내에는 몇 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손 작가는 수월관음도를 실그림으로 창작해보고 싶었다.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가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도는 길이 419.5cm, 너비 254.2cm로 현존 불화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수월관음도는 배경 부분과 정병, 선재동자로 이어진 부분에 손상과 훼손이 더러 있어서 손 작가는 화원의 입장이 되어 상상하고 디자인하여 창작하는 게 작업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재해석한 수월관음도는 각고의 노력 끝에 길이 5m가 넘는 대작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2편에 계속)
‘실그림’이라는 한국문화의 깊이와 이채로움을 만나볼 수 있는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가 해외 문화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자리 잡은 아파트 1층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경탄을 금치 못하는 방문객이 대분분이다. 손인숙 작가의 아틀리에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손인숙 작가의 실그림 작품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지난 2016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6개월간 특별 전시됐던 적이 있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이 한 개인의 작품을 반년 동안 전시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다. 그러다보니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손인숙 작가는 우리 예술의 세계적 위상을 가다듬는 전략을 모색하려면 예술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참다운 의미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각 분야 문화예술인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더 큰 문화예술의 아트코어 역할을 해 나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된다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제 작업실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해외 국빈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 출판 제안차 방문
실그림 작품은 이후 니스에서도 전시돼 유럽 전역에서 극찬을 받았다. 이후 실그림 아틀리에 명성도 높아지면서 이제 예술 관련 문화 관련 명사와 해외 유수 박물관장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최근 손 작가는 프랑스 대형 출판사 갈리마르(Gallimard)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으며 지난 10월 25일부터 3일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장과 예술 담당 편집자 등 프로젝트 책임자가 실그림 아틀리에를 방문해 작품집 출판 협의를 심도 있게 나눴다.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서 만난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장 캐롤라인 레베스크는 “2015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전시 작품을 봤을 때도 놀라웠지만 서울에서 직접 보니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손 작가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세계적으로 통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호평을 쏟아냈다.
1919년에 설립된 갈리마르는 20세기 프랑스 제일의 출판사로 알려져 있으며 그동안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카뮈를 비롯한 많은 유명 작가의 주요 작품을 출판했다.
캐롤라인 레베스크 편집장은 “작업실에서 본 손 작가의 작품 중 ‘수월관음도’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독특한 작품세계에 매료됐다. 갈리마르가 실그림 작품을 소개하는 일은 저희에게 엄청난 모험이 될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손 작가의 대형 작품을 저희 회사에서 출판하는 작품집을 통해 프랑스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그녀는 출판하고자 하는 손 작가의 작품집 콘셉트는 작가의 정신을 드러나게 할 것이고 작품의 앞보다는 뒤를 더 배려한 손 작가의 작품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질감을 밀도 있게 보여줄 수 있도록 디자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내년 가을쯤 출간을 목표로 일정을 체크하는 등 짧은 방문기간에 손인숙 작가와 의견을 다양하게 나누는 등 작가의 개인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점검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갈리마르 출판사 프로젝트 팀들은 작품집 판형, 페이지 분량, 표지 콘셉트, 내지 용지, 목차, 카테고리, 가격, 사진 구도등 전체적인 디자인 구성 체제를 세워놓고 있다.
실그림 작품을 통해 한국 문화에 취한 갈리마르 출판사 프로젝트 팀들은 손인숙 작가의 작품집이 프랑스에서 유일한 베스트셀러로 탄생할 거라는 설렘을 안고 돌아갔다. 내년에 출간할 프랑스어판·영어판 작품집은 ‘실그림의 거장’ 손인숙 작가가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美 조지아 귀넷카운티 방문단 영접
지난 10월 28일 강남구청(구청장 정순균)이 미국 조지아 주 귀넷카운티와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귀넷카운티(의장 살럿 나시) 방문단 12명을 손인숙 작가 아틀리에에서 영접했다.
2009년 귀넷카운티와 자매결연 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강남구는 예원 실그림 문화재단(이사장 이기수)을 통해 강남구의 우수 행정을 홍보하는 기회를 특별히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월 29일에 작업장을 방문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디자이너는 “손 작가 작품을 보고 너무 행복했다. 환상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듯, 불타는 듯했다. 지난 수년간 보았던 아름다운 다른 작품들 중 단연 최고이며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감동을 전했다.
지난 10월 31일에는 소피 듀어르망 루이비통 이사가 손 작가와 인증 사진을 찍으며 “숨이 막히는 발견이었고 실을 이용하여 강한 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며 방문객으로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소피 루이비통 이사는 지난 10월 30일 서울 청담동서 열린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 ‘루이비통 메종 서울’ 오픈 행사 참석과 국내 주요 면세점과 백화점 방문을 위해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처럼 25권이 넘을 정도로 찬사와 극찬을 하며 기록을 남기고 간 방문객들의 방명록이 아틀리에의 보물이기도 하다.
최근 손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셀럽들만 봐도 실그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로르 슈왈츠 극동박물관장, 소피 마카리우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 이사장, 올리비에 갸벨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장, 다니엘 올리비에 전 프랑스 문화원장,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전 프랑스 장관 장 마르크 에호의 부인 브리지트 에호,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상원의원, 오렐리 사무엘 입생로랑 박물관 컬렉션 디렉터, 프랑스 건축가 장누벨 수석 디자이너, 프랑스·독일·일본·인도네시아·모로코 등지에서 온 대사와 그 부인들이 다녀갔다.
손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을 마주한 외빈들은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에 감탄을 연발했다고 한다. 실그림이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에서 창조적이고 철학적으로 작업을 펼쳐온 손 작가의 아틀리에를 보고 해외 문화예술인들은 어떤 콜라보를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