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분량의 문제다.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싶은 만큼 쓰면 못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정해진 분량만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지 10매 분량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이는 원고지 10매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하고 싶은 말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 글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주제에 따라 어떤 내용은 길게 쓰는 게 쉬울 수 있고, 또 어떤 내용은 짧게 쓰고 싶으나 분량에 맞춰 써야 한다.
분량과 관련하여 글 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많이 쓰고 줄이는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몽땅 쓰고 정해진 분량이 될 때까지 줄인다. 다른 하나는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조금씩 늘리는 것이다.
요약으로 쓰기
우선 많이 쓰고 줄이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많이 쓰고 줄이는 걸 ‘요약’이라고 한다. 요약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쓸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 강의를 하며 만나본 사람 중에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기로 마음만 먹으면 책 열 권 분량도 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들이 있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분은 막상 쓰기 시작하면 거미가 엉덩이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을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이렇게 쓸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없는 사람은 밖에서 찾으면 된다. 자료 검색을 통해 쓸거리를 끌어모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있든, 검색으로 그러모았든, 다음 할 일은 요약이다. 그러니까 쓸거리 아니면 검색 능력, 그리고 요약하는 역량만 있으면 줄이기로 글을 쓸 수 있다.
요약하는 게 뭐 대수냐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간혹 있다. 학교 다닐 적 선생님 말씀 받아 적고, 교과서나 참고서의 중요한 곳에 밑줄 긋는 등 늘 하던 게 요약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요약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작업 중 하나다. 가장 단순한 요약은 발췌다. 바로 밑줄 긋기와 별표 치기. 다음은 불필요한 걸 버리는 요약이 있다. 중복되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걸 버리고 남는 것으로 요약하는 방식이다. 버리는 요약 방식과 반대로 중요한 걸 뽑아내는 요약도 있다.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사람은 불필요한 걸 삭제하며 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중요한 걸 추출하면서 읽는다. 가장 어려운 요약은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주제를 파악한다는 건 글의 배경과 맥락을 통해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처럼 요약에도 발췌하기, 버리기, 뽑아내기, 주제 찾기 등의 방식이 있다.
손쉬운 요약 요령
청와대에 들어간 2000년,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글쓰기는 요약의 역순이다. 요약이 줄이기라면 글쓰기는 늘리기다. 잘 줄이는 사람이 잘 늘릴 수 있다. 군대에서 총기 분해를 잘하는 사람이 조립도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글을 잘 쓰려면 요약 능력부터 키워라.” 그러면서 칼럼을 서른 개 뽑아오라고 한 후 다섯 가지 숙제를 주었다. 첫째, 각 칼럼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라. 둘째, 각 칼럼을 세 문장 이내로 압축해라. 셋째, 각 칼럼에 중간 제목을 달아라. 넷째, 각 칼럼의 주제문을 파악해라. 다섯째, 파악한 주제문으로 글을 써라. 이렇게 다섯 단계의 요약 훈련을 한 후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자, 이렇게 요약 능력을 키웠다면 이제 실전 요약 글쓰기를 할 차례다. 요약 글쓰기 1단계는 쓸 수 있는 만큼 쓰는 것이다. 2단계는 써둔 것과 관련 있는 내용을 이곳저곳에서 찾아 붙인다. 이때 최대한 양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는 ‘생각하기’가 아니라 ‘행동하기’다. 행동으로 양을 늘려라. 양을 늘리는 데는 재능이 필요 없다. 늘어난 양이 재능으로 둔갑하도록 하라. 양은 많을수록, 주제와 관련성이 높을수록, 흔하지 않은 최신 것일수록, 무엇보다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일수록 바람직하다. 3단계는 요약하는 것이다. 4단계는 요약한 것을 비슷한 내용끼리 분류한다. 5단계는 분류한 덩어리 하나하나를 갖고 글을 쓴다. 6단계는 덩어리를 배열한다.
첫 문장으로 쓰기
많이 써서 줄이는 글쓰기가 있다면, 적게 써서 늘리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늘려서 쓰는 방식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첫 문장부터 쓰기다. 첫 문장을 쓴 후 계속 이어나가는 글쓰기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알듯이, 좋은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물고 오고, 그다음 문장은 또 다른 문장을 낳으면서 줄줄이 글이 써진다. 문제는 첫 문장을 떠올리는 일이다. 글에서 첫 번째 문장을 찾는 일은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는 일과 같다.
내가 처음 글을 쓸 때 하던 방식이 있다. 신문 칼럼 100개에서 첫 문장만 긁어다 빈 문서에 붙인 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그랬더니 첫 문장으로 쓰인 내용이 10여 개 남짓으로 정리됐다.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나 최신 트렌드 등을 소개한다, 무언가의 정의를 내린다, 필자가 겪은 일화나 경험을 언급한다, 글의 주제를 밝힌다 등등. 첫 문장은 짧으면서도 전체 내용을 암시하거나 함축해야 한다. 또 그러면서도 글의 내용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내야 한다. 글쓰기는 이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연결하는 일이다. 좋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면 글을 상당 부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이 그랬다. “첫 문장은 대단한 문장일 필요가 없다. 조잡한 문장이어도 좋다. 일단 첫 문장을 써라. 그 문장의 마침표를 찍기 무섭게 다음 문장을 써라. 그러면 된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글을 다 쓴 후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반드시 첫 문장을 손봐라. 그만큼 첫 문장은 중요하다.
보태기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두 번째 방법은 야금야금 보태기다. 눈덩이 굴리듯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식이다. 이 방식은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나, 계속 해나가면 속도가 붙는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이 방식으로 글을 쓸 때는 노트북 화면 정중앙에 내가 써야 할 문서를 갖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에 들어갔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나다가 오후에 들어가면 불현듯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차를 마시다가도 보탤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태기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몰입이다. 써야 할 주제에 몰입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이 주제에 관해 말해본다. 그러다 보면 불쑥불쑥 보탤 내용이 추가된다.
먼저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으로 글쓰기에 착수한다. 이렇게 시동을 걸어놓으면 우리 뇌는 여기에 살을 붙이고 여백을 채우려고 힘을 쓴다.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동네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들이 계산이 끝난 주문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직 서빙하지 않은 주문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 뇌는 끝나지 않거나 진행하고 있는 임무는 그것이 끝날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한다. 보태 쓰기는 이런 뇌의 특징을 활용하는 글쓰기인 셈이다.
정리하면 보태기로 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글을 쓰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인터벌을 두어 머릿속에 고여 있던 추가할 내용이 그 시간 동안 숙성 발효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읽기와 듣기 등으로 외부에서 자극을 줌으로써 보탤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다.
문단으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세 번째 방법은 문단 쓰기다. 문단은 하나의 짧은 글이다. 글쓰기는 어휘에서 시작해 문장으로, 문장이 모여 문단으로, 문단이 쌓여서 완성된다. 긴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문단 수준의 짧은 글을 쓰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한 쪽짜리 글을 쓰려면 네댓 개의 문단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쪽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각의 짧은 글, 문단 네댓 개를 쓴 후, 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자는 얘기다. 네댓 개의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쓴 후 순서를 부여하면 된다. 통상 우리는 글을 쓸 때 다음에 나올 내용까지 염두에 둔다. 그래서 글쓰기가 힘들다. 그러니 짧은 글 하나만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문단을 만들자.
단 문단은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문단은 하나의 완성된 글이어야 한다. 그 문단만 따로 떼어냈을 때 홀로서기가 가능한 글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문단의 완결성’이라고 한다. 둘째, 문단은 하나의 메시지를 갖고 있어, 제목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 하나의 메시지와 관련 없는 내용은 모두 빼야 하며, 한 문단에 메시지가 두 개면 두 문단으로 쪼개야 한다. 그러니까 한 문단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야 하고, 모든 문장이 그 주제와 일맥상통해야 한다. 이를 ‘문단의 통일성’이라고 한다. 셋째, 문단 안에 있는 문장들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를 ‘문단의 연결성’이라고 한다. 나는 주로 주제 문장을 문단의 맨 앞에 배치한다. 결론부터 내놓고 다음 문장을 쓴다. 두괄식으로 쓰는 것이다. 그게 쓰기도 쉽고, 읽기도 편하다.
개별 문단을 다 쓰고 나면 문단과 문단을 연결해야 하는데 시간 순이나 공간 순으로 할 수도 있고, 인과관계 순으로 할 수도 있다. 개연성 있게,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된다. 다만 비슷한 내용의 문단이 중복되거나, 문단과 문단 사이에 내용 비약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마다 짧게 쓰기가 편한 사람이 있고, 길게 쓰는 게 쉬운 사람이 있다. 나는 길게 쓰기가 어렵다. 아마도 머릿속에 쓸 말이 많지 않고 자료를 찾는 데도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짧게 쓰기가 어려운 사람은 요약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시나 광고 카피 등 함축적 문장과 친해지길 권한다.
아무튼 글을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이 써서 줄이거나, 조금 써서 늘리거나. 이 두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못 쓸 글은 없다.
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이 든 사람의 이미지가 썩 좋지 않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초라하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읽은 두 권의 책이 ‘곱게 늙기’(송차선)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근후)이다.
‘곱게 늙기’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내면도 잘 가꾸어 곱고 품위 있게 늙어가는 것을 꿈꾼다. 저자 송차선 신부는 곱기 늙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을 8가지로 정리해 들려준다. 마음을 비우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겸손하라. 노인의 모든 품위는 겸손함에서 나온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지갑을 열고 좋은 향기가 나는 향수를 쓰라는 현실적 조언도 마음에 담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양보와 겸손을 갖춘 노인이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고 지갑까지 잘 연다면 누구라도 환영할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는 것들이니 곱게 늙기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치와 덕목들이다. ‘곱게 늙기’이지만 ‘곱게 살기’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러운 노년은 따로 있다. 5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돌보았던 이근후는 사람들로부터 재미나는 인생을 산다는 평을 듣는다. 퇴임 후에도 문학활동과 의료봉사를 활발히 벌이고 수십 권의 책을 쓰며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서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거나 행복이 가득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나는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 고혈압 등 일곱 가지 병을 앓고 있다. 4년 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구르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쳐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젊어서는 지독한 가난과 전쟁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4․19 시위에 참여해 감옥생활을 하는 바람에 변변한 직장도 없이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어쩌면 내 인생은 사람들 생각과는 반대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쪽에 더 가까웠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든 작은 즐거움을 애써 찾아 누리려고 했다.”
인생이란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노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사소한 즐거움을 많이 찾아내려고 애쓰라.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외로운 노년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즐거움을 찾아 유쾌하게 지내야 한다는 게 그의 책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 들려주는 메시지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다. 이런 즐거움은 스스로 마음만 먹는다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곱게 늙기’보다 훨씬 쉬워 보인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 두 권이 동시에 새로 나왔다. '나를 알기 위해 쓴다'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둘 다 글쓰기 책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잘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밑줄 그으려고 연필을 들면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되는, 놀라운 밀도의 글쓰기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희진이라는 이름을 단 책을 고르는데 망설임이 없다. 다만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나를 알기 위해 쓴다'를 집어 들었다.
이 책에는 정희진이 읽은 64권의 책과 그의 생각이 담겨있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놓았는데 한 권 한 권 꼭꼭 눌러 쓴 독후감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글쓰기가,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를 쓰는 것 보다는 그 경험을 해석해 내는 것이라면, 정희진의 똑 부러진 글들은 그가 읽은 책들을 통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읽은 책을 죄다 읽고 싶어진다. 정찬의 소설을 두고 '숲 속을 걷다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는 세상 같다'고 했다. 정찬의 소설이 궁금해져서 밀리의 서재에서 정찬의 소설집을 내 책꽂이에 옮겨두었다. 이창호의 바둑책에 관한 글도 나온다. 바둑은 두고 나면 복기를 한다. 승패와 관계없이 바둑의 내용을 검토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기도정신이다. 정희진은 글에서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복기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진일보의 계기가 된다'라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이 발생하는 것도 차이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의 고민이다. 이 고민에 대해 정희진은,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라면서 글은 '살아내는 대로 쓴다'라고 말한다. 글쓰기가 어렵고 두려운 것도, 그런데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고 '내가 쓴 글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까?’ 라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바뀐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눈을 갖고 싶어진다. 50 이후 제대로 된 독서가 왜 필요한 지 이 책이 제대로 알려주었다.
연극을 보면서 울고 웃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나 이곳에서는 좀 다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와 나를 알아간다. 배움의 영역에서 연극의 역할을 알차게 사용하는 교육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를 찾아갔다.
서울시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내의 몸짓교실. 교육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이하 재미사마)의 신체 및 이미지 훈련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교육연극지도사들이 모이는 날.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번개파워” 등 다소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며 서로 악수를 하고, 특이한 신체 표현도 함께 따라해본다. 엉뚱한 말과 행동이지만 진지함이 느껴졌다. 남들에게는 참 이상해 보일지 모르나 연극인들에게는 아주 필요한 훈련 중 하나. 이 워크숍은 3년째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서하경 대표는 말했다.
“매달 한 번씩 진행해요. 다들 강사이다 보니 본인의 역량이나 수준도 좀 올리고요. 실제로 조합원들 앞에서 시범강연도 해보고 정보를 주고받아요. 교육연극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각자 다양한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사마가 협동조합이 되기 전 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공동 사무실에 심사를 거쳐 들어왔습니다. 1년 반 정도 됐어요.”
연극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재미사마는 2014년 소모임으로 시작해 2018년 11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 5명에 회원은 40여 명, 전국적으로 재미사마와 함께 협업할 수 있는 교육연극교사는 100명이 넘는다. 초창기에는 교육연극의 미래와 발전을 걱정하며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졌다. 정작 만나서는 술 마시는 일이 몇 년 동안 반복됐다고 신미정 총괄PM이 말했다.
“교육연극지도사들이 오프라인 워크숍을 한다고 해서 서울에 왔다가 재미사마 구성원들이랑 서하경 대표를 만났어요. 그때는 ‘술 마시는 재미사마’가 있었습니다.(웃음) 술을 한동안 마셨던 것에 대해 우리는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왜냐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서로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는 의미로 보거든요.”
5년 정도 워크숍하면서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이 술 한잔씩 하면서 얘기를 하다가 “그만 놀자!”라고 결론냈다.
“놀고 친해지는데 엄청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그러다가 이제는 사람과 가치에 대해 표현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설립한 것이 재미사마입니다.”
재미난 인생을 꿈꾼다
조합원 대부분은 50대로 구성돼 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들 열심히 하나 할 정도로 교육연극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작년 말 50플러스 축제에서 만났던 재미사마 사람들을 생각하면 열정과 기운이 솟는다.
수학강사로 꽤 큰돈을 모아 고급 취미에 빠져 살 수도 있었던 서하경 대표. 연극을 좋아해 용돈이 모이면 숨을 쉬듯 연극을 제작하고 연출하며 살아왔다.
“30여 년간 수학강사로 살면서 극장주를 꿈꾸며 틈틈이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잘나가던 강사 자리를 박치고 나와서 본격적으로 교육연극과 인연을 맺었죠.”
현재 재미사마의 대표이고 별빛도서관도 운영한다. 사회적 관계 확장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과 축제/문화기획, 연극 등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였던 신미정 총괄PM은 대치동에서 논술강사를 하다 결혼을 하면서 경력이 단절된 주부였다. 춘천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알음알음 책 수업’을 진행했다. 교육연극을 만나 지금의 동료들과 단체까지 만들었다. 역사·환경·문화 등을 접목한 교육콘텐츠, 문화기획 프로그램 등을 기획한다고. 교육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의 총괄PM이자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커뮤니티 학교 멘토다. 희곡을 쓰고, 영상도 찍는 만능재주꾼이다.
“저는 재미사마의 꽃입니다.(웃음) 총괄PM(프로젝트매니저)이라는 직책으로 저를 부르는데 JB로 바꿔야 맞을 거 같습니다. 잡부요. 대부분의 프로그램 기획이나, 기관을 비롯해 저희를 원하는 곳에서 요청을 하면 그것들을 정리해요.”
취재 당일 얼굴을 비치지는 않았지만 3명의 조합원이 더 있다. 재활 관련 전공을 한 이미정 이사는 주부로 살아오다 어느 날 자연 체험을 하고 숲을 만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지금은 경기환경네트워크 사무처장으로 있으며, 경기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필환경 탈플라스틱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연 이사는 미쓰비시도쿄UFJ은행에서 정년퇴직한 후 서울시50플러스 인생학교에서 재미사마와 인연을 맺었다. HP Korea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현길용 감사도 인생학교를 통해 재미사마와 인연이 닿아 조합원이 됐다.
교육연극은 나이 든 이들에게 필요
교육연극이 중년과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시점은 신미정 총괄PM을 제외한 4명의 조합원이 50플러스 인생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교육연극은 우리나라 중년들에게 필요한 수업 형태라고 서 대표는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세대는 더 이상 밑줄 치고, 외우고, 필기해가며 공부할 필요가 없는 세대들이잖아요. 시험 봐서 인생의 관문을 넘어야 할 일은 끝났죠. 예를 들어 교육연극은 연극을 통해서 직접 역사 속에도 들어가 볼 수 있어요. 환경을 배울 때는 맹꽁이를 연기하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고요. 즉흥극을 통해 현재의 나를 연기하고 서로 공감도 합니다. 그게 교육연극의 매력입니다.”
재미사마를 통해 교육연극을 체험한 후 삶이 달라진 여성도 있다.
“원주청소년문화의집에서 ‘딴짓주부’를 공연할 때 만난 경력단절 주부들이었어요. ‘주부들의 자존감 여행’이 주제였는데 그림책 서점 운영을 꿈꾸던 분과, 결혼하면서 무용 활동을 접은 여성이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한 분은 내레이션으로 연기했고, 다른 분은 무대에서 춤으로 표현하셨어요. 그 후 무용하셨던 분은 다시 꿈을 찾아 무용 강사를 하게 되셨고요 한 분은 그 공연이 계기가 되어 도서관 등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하시더라고요.”
세대를 연결하는 통로는 연극
재미사마가 공연했던 작품 중 ‘멋진 하루’는 1인 가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미정 총괄PM이 한 달 반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를 수집해 공들여 쓴 창작극이다. 이후 마포문화재단 후원을 받은 서울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커뮤니티 ‘햅번’이 이 작품을 ‘빨래방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해 재공연했다.
“이후에 평균 나이 75세인 서초구서리풀스마트시니어학교 수료생들이 연기했습니다. 중년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청년들 애환도 들어 있어요. 시니어가 후배 세대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가서 봤는데 관객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더군요.”
이렇듯 교육연극이라고 해서 교실 안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는 것은 아니다. 자축의 형태가 됐건 어떤 형태로든 공연을 한다.
“무대에 서는 경험을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연극을 하고 싶었던 분들을 모아 정식극단은 아니더라도 임의단체 수준의 조직을 만들어보려고요.”
올해는 작년에 했던 사업들이 이어져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부평5060인생학교’, ‘남양주 인생多모작학교-모두의 학교’, ‘서초구서리풀스마트시니어학교’ 등이 예정돼 있다. 특히 지금까지 계절학기로 진행했던 ‘50플러스 우리들의 연극교실’은 정규수업으로 편성됐다.
재미사마의 특징은 모두가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함께한다는 점이다. 일을 같이한다는 건 서로 견뎌주는 사이가 됐다는 거라고 서 대표는 말했다.
“주고받는 과정을 지나 걱정해주는 사이가 되면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거 같아요. 재미사마는 앞으로도 서로의 믿음으로 함께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연극지도사 취득 과정
교육연극지도사 취득준비과정 1, 2, 3 까지 모두 수료하면 한국국공립대학평생 교육협의회 ‘교육연극지도사’ 자격취득시험 응시자격이 된다.
모집대상 교육연극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모집인원 200명
수강료 9만4500원
- 방송대 및 프라임칼리지 학위과정 2019년2학기 등록생과 졸업생 7만6500원
- 국가유공자 본인 및 배우자, 자녀는 수강료 면제
신청기간 2019년 12월 23일~ 2020년 1월 10일
신청방법 프라임칼리지 평생교육과정 홈페이지(prime.knou.ac.kr)
문방구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맘에 드는 오색 볼펜을 한 자루 샀다. 책이나 신문을 볼 때, 언제든 좋은 구절을 발견할 때 밑줄을 치기 위해서다. 한 번 읽고 치우기에는 아까운 글이나 문장에 오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으면 시각적 효과도 있고,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흑백을 컬러로 살려낼 문장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루 만에 그 볼펜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참 난감했다. 생각해보니 볼펜은 내가 사용하고 있을 때만 내 것인 것 같다.
볼펜은 내 옷 주머니마다 들어 있다. 아랫바지 주머니에도 하나, 윗도리 주머니에도 하나, 그리고 속주머니엔 몇 개가 한꺼번에 들어 있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든 출동 준비를 할 수 있는 전투부대 같다. 이렇게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안하다. 메모를 자주 하는 습관이 있어서다. 신문을 읽을 때, 괜찮은 문장을 발견할 때 밑줄을 긋는 건 이제 일상화되어 있다. 쏟아져 나오는 많은 정보를 또다시 읽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주머니에 볼펜이 없으면 항상 불안하다.
그런데 볼펜은 한꺼번에 몰려 있다가도 어느 날엔 모조리 수해지구 출장 나간 주민센터 직원들처럼 한 개도 없을 때가 있다. 아무리 주머니 위아래를 뒤져봐도 그 많던 볼펜이 한 개도 없다. 이럴 때는 몽당연필이라도 줍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도 어느 때가 되면 다시 둥지로 돌아오는 물새 떼처럼 가득 들어차 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산 볼펜이 며칠 안 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처음 보는 볼펜도 내 주머니에 들어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구매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을 골라도 그때뿐, 사용하다 보면 디자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잉크가 고루 잘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다. 한때 가격이 저렴해서 뭉텅이로 사놨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잉크가 부드럽게 나오지 않아 동그라미 하나 긋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중국에서 수입해온 물건들은 불량품이 많았다. 그래서 볼펜은 사용하던 제품을 또 쓰게 된다.
볼펜은 소유와 집착에서 자유로운 물건 같다. 볼펜이 없어져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다.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도구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마도 볼펜은 공동의 물건이요, 나눔을 실천하는 표징인지도 모른다. 내 주머니에서 들락날락 자유롭다. 쉽게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임에 틀림없다. 자주 들락거리는 자유가 있는 볼펜, 소유했으나 구속되지 않는 모습이 재미있다.
2017년 4월 4일 MBN의 토크 프로인 황금알에 '고수'로 출연했다. 주제가 '인생에 정년은 없다'였다. '밑줄 쫙 긋고'란 말로 유명한 국어강사 서한샘 씨를 포함해 유명인사 총 아홉명 '고수'들이 녹화에 참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다. 저녁 4시 반부터 녹화를 시작해서 밤 9시 반에 끝났다. 저녁까지 굶으며 녹화했는데 어찌나 재밌는지 몰랐다. 녹화 내내 즐거웠고 기운이 펄펄 났다.
'하루를 살아도 재미있게’
이 말은 오랫동안 추구해온 내 삶의 모토이다. 자식들을 다 키웠으니 이젠 내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며 즐기며 살면 된다. 그래서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교사 시절부터 퇴근 후 인근 대학교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왈츠를 수강했고, 주말에는 상경하여 압구정동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MBN에서 고수로 출연했던 당시 내 콘셉트는 압구정 날라리였다. 금요일에는 2번 출구로 나가서 클래식 음악감상실 무지크 바움에 가서 오페라 감상을 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압구정역 4번 출구에 있는 탱고 동호회 '땅게리아'에 가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웠다. 운동 차원에서 왈츠와 탱고를 춘 것이다. 음악에 맞춰서 한 시간 춤을 추다 보면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이 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니 마음 또한 힐링됐다. 다른 시니어에게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다.
시니어 미디어 일인자를 꿈꾼다
퇴직 후 제일 불행한 사람은 집에 우두커니 있는 사람이다.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첫 번째 행복한 사람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고,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이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세 번째로 행복하다고 했다. 전반생인 퇴직 전의 삶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기간이 후반생인 퇴직 후의 삶이다. 요즘 트렌드인 일인 미디어의 주역을 꿈꾸며 올해는 한국방송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3학년에 편입해 공부하고 있다. 시니어도 하고 싶은 일을 차례차례 다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다 보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모르는 것을 아는 기쁨이 크니 그 과정을 그냥 즐기면 된다. 공부하고 글쓰기를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지금 나의 일상이다.
시니어 생활 이렇게 하자
즐기자 삶은 즐기는 것이다. 부부가 같이 왈츠와 탱고를 추자. 서로 교감하며 춤추는 동안 기분은 좋아지고 충분한 운동이 된다. 더불어 심드렁하던 부부간의 애정도 높아진다.
공부하자 우리나라는 교육인프라가 너무 잘돼있다. 지자체의 프로그램도 우수한 콘텐츠가 많다. 한국방송대 강의 또한 훌륭하니 방송대에 편입해서 질좋은 강의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을 이루자 글쓰기, 독서, 사진작가 등 그동안 하고 싶어도 전반생에서는 여건상 못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그 과정을 즐긴다는 마음가짐이면 된다.
문화를 즐기자 오페라 감상, 음악회, 그림 전시회 등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골고루 누려보자. 진동하는 예술의 향기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나를 몇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것이 예술의 향기이다.
여행여건이 되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삶과 색다른 풍광,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해보자.
감사하자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다. 더 갖고 싶은 욕망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마음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비우고 덜어내며 하루하루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
김형석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학습하고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라고.
후반생의 삶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될 수 있으면 나누며 살자.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렇게도 살고 싶은 내일이다' 하루하루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흥미, 재미, 의미를 추구하며 살도록 하자.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그 유머러스한 제목에 궁금증을 안고 공연장을 찾았다. 무대는 저마다 사연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수많은 서랍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창문을 막 넘으려는 100세 노인의 앙상한 다리를 비추고, 제 할 일로 부산한 4명의 배우가 등장하며 시끌벅적하게 막이 올랐다. 길고 긴 100년의 숨 가쁜 세월과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 5명의 배우가 시대를 나눠 주인공 알란을 연기했다. 조실부모하고 배움도 짧지만 알란은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각 나라의 지도자를 만나는 등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혁혁하게 등장한다.
작품 속 알란은 세상 피곤한 인생 수레를 탄 듯 고단한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매 순간 지혜의 기근을 겪지 않는 인물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수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언제나 따끈하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 제아무리 장수시대라 하더라도 숱한 고비를 겪은 그가 100세를 누린 비결이 궁금해졌다. 1905년 출생해 2005년까지, 100세를 맞이한 이 현명하고 바쁜 개구쟁이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은 어느 귀퉁이에 숨어 있는 것일까?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어머니가 남긴 이 말을 평생 빼지 않는 반지처럼 간직한 것이 알란의 장수 비결 일등 공신으로 보인다. 웬만한 일에는 불평불만 않고 순응하는 삶이랄까? 명심보감에도 ‘세상 만물이 순리로 찾아오거든 거부하지 말고, 세상 만물이 가버렸으면 아쉬워 뒤좇지 말라’고 나와 있다. 그 이치를 깨달은 것을 보니 어쩜 알란의 어머니도 공자를 공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생각할수록 만사는 그 자체로 놔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뭐든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둬야 하지. 왜냐하면 만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거의 항상 그래.”
비를 막겠다고 술잔에 우산을 씌우는 게 우리네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알란은 자신에게 벌어진 수많은 날벼락 같은 일들도 순순히 받아들임으로써 스르르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노년기 알란은 “누울 수 있는 침대, 술 한 잔, 식사 한 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만 있다면 괜찮다”고 말한다. 100세 노인이 녹여낸 수수한 인생 철학이다. 듣고 보니 그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그 외에 더 필요한 게 있을까? 먹을 것과 잘 곳, 거기에 좋은 벗까지 있다면 인생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욕심을 내지 않으니 조바심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 장수한 알란에게 너무 많은 것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버리고 홀로 남았지만 나는 어디론가 다시 떠난다.”
100세 알란의 발걸음은 조금 느려졌지만 도전정신은 여전히 퍼덕인다. 일하는 노인이 장수한다는 건 평범한 이야기지만 마음에 든다. 평생 일하며 도전해온 삶 또한 알란의 장수 비결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거세를 당했지만 사랑까지 끊어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만다와의 결혼 덕분에 거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또, 나이 때문에 사랑에 뒷걸음질 치는 것은 알란답지 않다. 격동의 세월을 사느라 만나지 못했던 사랑을 이제야 품은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이든 잔잔한 사랑이든 사랑은 꽃그늘이다. 나이를 셈하지 않고 사랑을 꿰찬 것도 그만의 장수 비법인 듯하다.
연극이 끝났다. 배우들이 남기고 간 땀 냄새 끄트머리엔 알란이 달려있었다. 이런저런 방법과 통찰로 건강한 100세를 기록한 알란이 결국 마음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우리는 모두 자라나고 또 늙어 가는 법이지. 어렸을 때는 늙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유쾌한 알란은 “백 살이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야”라며 밑줄까지 그어준다. 마치 “아직도 사과는 다 익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귀가 닳도록 듣던 말이다. 세월이 갈수록 이 말이 실감 나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강건한 정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것인가. 건전한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 화두를 놓고 심혈관 세계적 권위자로서 대중을 위한 건강전도사로도 활약 중인 엄융의(73)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봤다. 대학로에 있는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영국 출장에서 돌아와 전작 ‘내 몸 공부’에 이은 후속작을 집필 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온 세상 천지가 헬스 클럽이다’란 문장에서 커서가 반짝이고 있었다.
심혈관 분야의 권위자이신데, 요즘 일반인을 위한 강연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건강 전도사로 나선 동기가 있으신지요.
“한마디로 내 몸을 알자는 것입니다. 건강 정보는 넘치는데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선 몰라요. 발에 신발을 맞춰야 하는데, 신발에 발을 맞추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심장이나 혈관 건강에 좋은 식품, 심지어는 약 이름까지 줄줄 꿰면서 그것들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아무리 많은 건강 정보를 알고 있어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건강은 ‘내 몸 스스로 알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는 “육체적 건강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건강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도스토옙스키나 마르셀 프루스트가 대표적인 경우. 간질병을 앓고 있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에서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간질의 전조증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내면 의식의 흐름을 추구한 것은 신병인 천식의 영향도 크다. 천식 발작으로 고생한 그는 외출하기가 힘들어 실내 생활을 주로 하며 내면에 집중했다. 모두 자신의 지병을 수용, 강점으로 역전시킨 경우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작가의 건강을 유추할 수 있군요. 혹시 사람을 처음 만나실 때 상대의 건강 상태 등을 유의해 살피십니까.
“그런 직업병은 없습니다. 다만 술, 특히 와인을 잘하게 생겼나, 아닌가는 꼭 봅니다.(웃음) 제가 와인을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프렌치 패러독스를 언급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기름진 것을 자주 먹고 담배도 많이 피는데 미국, 북구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심장질환이 걸리는 비율이 낮은 것은 지중해식 식생활 때문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매일 적당량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뇌졸중에도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평소 식습관과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젊은 제자들과 와인 담화를 나누는 게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신세대 제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시는지요.
“저는 제 동료, 동년배들보다 제자들,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재미있어요.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비결은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지요. 훈계하기보다 그들의 관심사, 와인에 얽힌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 집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예요.”
지난해 출간하신 저서 ‘내 몸 공부’는 서울대학교 비자연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셨던 교양강의를 기본으로 저술한 것이지요. 강의 당시에도 파격적 평가방식으로 화제였다고 들었습니다.
“평가를 내 방식대로 했어요. 출석, 시험은 각각 25%로 하고 나머지는 ‘우리 몸의 이해’를 자신의 전공과 연결해 자유 형식으로 제출하라고 했지요. 에세이든, 음악이든, 무용, 미술작품이든…. 단 자신의 주장을 담으라는 게 제 요구사항이었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제한 범위를 정해주면 잘하는데요.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 해요. 늘 밑줄 좍, 별 세 개의 참고서식 요약정리, 받아쓰기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은 내 주장을 펼치는 연습을 하는 곳이란 게 제 신조입니다."
그는 연구실에 놓여 있는 손 모양의 조각상을 가리켰다. “강의 때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이라며 “창의성 부족을 탓하기보다 자극하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님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 외에 사회적 건강을 함께 강조하십니다.
“사회적 건강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 지표는 배려지수입니다. 정신과 육체처럼 개인과 사회의 건강도 분리되지 않아요. 사회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개인이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 경쟁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분노조절장애는 비교-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객관성이란 명목 하에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다른 항목은 배제하고, 인정을 안 해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실력으로 인정되니 모두 한줄서기, 1등만 하려고 목을 매게 되는 것이지요. 내 뜻대로 이기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우울증, 사회적으로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사회적 건강 회복 운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엄 교수는 선진국에서 어린이들에게 팀 스포츠, 청년들에겐 오페어(Au-Pair) 제도를 활발히 시행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딸이 영국에서 워킹맘으로서 직장과 가정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오페어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페어 제도는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받고, 자유시간에는 어학공부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도 점수따기 경쟁보다 이 같은 폭넓은 사회경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사회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말하는 대로는 실행하고, 하는 대로는 실행하지 말라”는 시쳇말이 있지요. 교수님이 직접 행하시는 건강 습관이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 방식에 맞춰 마음 편하게 사는 겁니다. 저는 의학 통념이나 유행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요. 진리라기보다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한시적 학설이니까요. 먼저 나를 알고자 하고, 나에게 직접 실험해보는 편입니다. 평균적인 인간의 리듬은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요. 내가 거기에 반드시 속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유행이나 학설이 내 몸에 맞나 실험해보고 관찰하는 게 내 기본 신조예요. 가령 예전에 ‘아침형 인간’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에요. 새벽 두세 시까지도 너끈히 일하지만 아침엔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헌 나라의 노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아침형 종달새 스타일에 맞춰 생활하는 실험을 해보니 나랑 영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 올빼미 스타일대로 살기로 했지요. 나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것이 건강 비결입니다.”
엄 교수는 스마트 밴드를 팔목에 차고 있었다. 이를 통해 깊은 잠, 얕은 잠을 몇 시간 잤는지, 심장박동수를 체크해 그에 따른 생체리듬을 읽고, 자신의 건강상태는 물론 라이프스타일도 조정한단다. 이외에 그가 실천하는 건강 습관은 걷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되도록 앉지 않으며, 목적지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중년 이상이 되면 영양제든 뭐든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모든 약은 기본적으로 독입니다. 한 가지 증상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기관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요. 자연식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치유하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음식은 가공이 안 된 것일수록 몸에 좋고요. 접시에 담겼을 때 원래의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음식일수록 몸에 좋습니다.”
그는 “한국의 의사들이 지나치게 복잡한 검사와 약, 주사 위주의 처방에 의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의료수가 시스템, 보험 체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이요법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 불행을 겪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청·장년기 이후의 건강관리는 예전과 달라야 하는지요. 특히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건강에도 내려놓기가 필요합니다. ‘건강 과신하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장년기 이후 건강 적신호가 울리는 사람은 두주불사의 타고난 건강체질파입니다. 이들은 젊었을 때의 건강을 과신하기 쉬워요. 오히려 한두 가지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이 건강한 것은 평소 주의를 하고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만보계를 갖고 걷더라도 참여자 비교 순위를 체크하며 경쟁에서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어요. 피트니스 클럽에서 트레드밀을 뛸 때도 옆 사람의 속도를 따라 하려고 하거나 더 빠른 속도로 뛰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경쟁심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기 스타일, 페이스, 리듬을 알고 즐기세요.”
교수님은 50대 중반부터 기러기 부부 생활을 시작, 1년 반 정도를 떨어져 사시는데 어떠십니까.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집사람과도 그렇습니다.(웃음)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50대 중반에 애 다 키워놓고 영국 유학을 가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 해보라’고 찬성했지요. 우리 부부가 45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원만히 해온 비결은 ‘덜 간섭하기’예요. 부부 갈등은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는 데서 옵니다. 우린 체질, 습관, 성향이 다르지만 최대한 존중하려고 해요. 제가 주례사를 할 때 늘 강조하는 것도 ‘상대를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지 말라’입니다.”
교수님은 황우석 교수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활동을 같이하셨죠. 또 지금은 정계에 있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스승이기도 하셨고요. 이들의 부침(浮沈)을 보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황 교수, 안 대표 모두 재능 있는 인물인데요. 황우석 교수는 능력보다 너무 많이 나갔어요. 자신의 관리 범위를 벗어났는데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몰랐다고나 할까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학문 분야는 적절히 위임해야 합니다. 그걸 못 한 게 문제였어요. 안철수 전 대표도 기대가 되는 제자였지요. 학계에 딱 적합한 사람인데… 생각이나 꿈이 커도 현실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 기다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진득함, 그게 아쉽지요. 너무 빨리, 높이 가고자 하기보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즐기며 가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인생 의미이자 재미입니다.”
공자는 일흔의 나이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종심(從心)은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도, 나의 기분에 휘둘리지도 않는 중심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풀어놓지도(방심, 放心), 잡아놓지도(조심, 操心) 않고 고삐를 늦췄다 당겼다 조절할 수 있는 경지…. 엄융의 교수의 인생 키워드는 종심과 통한다. 새로 보는(see) 내 몸,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새 봄맞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리더의 언어병법’, ‘성공하는 CEO의 습관’, ‘하이터치 리더’, ‘용인술, 사람을 쓰는 법’ 등이 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됐다. 희끗희끗한 머리에다 깊이 파인 얼굴 주름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렵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십견 때문에 팔을 들기 어렵고,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뻐근하다. 게다가 소화력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50줄에 들어서니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은 젊고 한번은 늙는다.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지금껏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노년의 시기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면서 육체와 더불어 정신적인 강건함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를 펼쳐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소노 아야코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훌륭하게 늙어가는 작업을 나이 들어서 시작 한다면 이미 때늦은 게 아닐까? 어린아이 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듯 노인이 되기 위해 인간은 어쩌면 중년부터 차차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만 40세의 나이에 쓰기 시작한 메모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1972년 41세 때 ‘계로록’이란 제목으로 책을 낸 후 51세와 65세 때 수정, 가필하였다.
소노 아야코는 나이에 상관없이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을 노인으로 생각키로 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아주 적은 돈이나 물건, 시중에 이르기까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심해지면 그것을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로 보아도 좋다’고 했다.
저자는, 몸이 불편한 노파가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오는 여행자를 위해 매일 밤 도로로 난 창가에 등물을 켜놓았다는 예화를 통해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노파였지만 단지 등불을 켜놓는 행위 만으로 스스로가 무언가 할 수 있단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받는 즐거움 보다는 주는 즐거움이 훨씬 행복한 법이다.
노인이라고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시 하면 안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며 그럴 때 즐거움이나 자존감 높아진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에게 잘 해주지 않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불만만 가득하게 될 것이 뻔하다.
책 속에는 밑줄 그어가며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적으로 해줄 사람을 선택할 것, 건망증이나 다리나 허리의 불편함을 일일이 변명하지 않을 것,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물건을 줄여나갈 것,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비바람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
이만한 나이에 이 책을 만난 것이 감사하다. 생과 사, 어디 쯤 존재하는 인생의 석양녘을 향해 걸어가면서 ‘어른답게 나이 들어가기’ 혹은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의 세계가 구름이 가는 속도만큼 잔잔히 흐른다.
북한산 신선한 공기가 김수영과 어우러지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수영에 대해 그저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 정도로만 밑줄을 치고 그대로 외운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김수영의 글을 읽어보니 자유라는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세련된 문장도 문장이지만 소재의 다양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우울한 시대를 희망차게 살아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진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든다. 그런 김수영을 기리는 문학관이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도봉구 한적한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시를 쓰며 살았던 그의 본가와 묘, 시비 등이 있는 도봉구에 2013년 11월 김수영 문학관이 문을 연 것이다.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김수영 문학관은 개관 이후 한 달에 1500명, 연간 1만8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도봉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문화시설이 없던 동네에 사람들이 찾아들고 활력이 넘치는 곳을 만든 이가 시인 김수영이다.
김수영 문학관은 5층 건물에 1층과 2층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제1전시실(1층)은 김수영 연보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4·19혁명, 5·16 군사정변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경험하며 써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수영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영물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시를 낭독하고 녹음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외에 관람객이 참여해 만드는 시작 코너와 김수영에게 편지를 쓰는 공간으로 전시실을 알차게 구성했다. 무엇보다 김수영의 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꾸며놓은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원문 전시와 함께 활자화시킨 시를 서랍장 형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원문을 본 뒤 서랍을 열면 희미하게 보이던 원문의 모든 글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제2전시실은 김수영의 산문과 번역서, 일상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어느 한 집안의 벽면처럼 김수영의 어릴 적 모습에서부터 가족들과 찍은 사진 등 소소한 기록들이 펼쳐져 있다. 김수영의 서재도 이곳에 옮겨놓았다. 전시장에 소개된 글은 김수영이 서재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 편의 시나 산문이 완성되면 김수영 시인은 항상 아내 김현경을 찾았다. 그러면 집안 살림을 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던 일손을 멈추고 달려가야만 했다고 한다. 서재에 들어서면 김수영 시인은 빽빽하게 쓴 시의 초고를 건넸고, 그 시를 정리해서 원고지에 깨끗하게 정서하는 것이 김현경의 못이었다고 한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쓰는 작업을 마치면 ‘산고(産苦)’를 겪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서재 오른쪽으로는 김수영이 살아생전 남긴 번역서 등을 전시해놓았다. 왼쪽으로는 시인의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아늑함을 더했다. 이외에도 3층은 구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과 아동열람실, 4층에 대강당, 5층은 휴게 공간이다.
김수영 유족이 함께하는 ‘김수영 문학관’
김수영 문학관은 도봉구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만 유족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일하는 김은씨는 김수영 시인의 조카다. 수학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문학관의 명예관장이자 고모인 김수명(83)씨의 부름을 받고 문학관에 들어왔다. 김수명 명예관장은 김수영의 다섯째 동생이다. 문학관에 전시된 전시물 대부분을 기증했다. 40년 동안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김수영의 모든 육필원고 등을 싸들고 다닐 정도로 오빠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마침 취재를 갔던 날 김수명 명예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여든셋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찬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김수영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서 특히 “아이들에게 자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수영 시인의 시 세계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날씨가 풀려가고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문득 김수영 문학관을 찾아가보자. 자유 그 이상의 세상을 꿈꾸던 천상의 자유시인 김수영이 문학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관람 정보
휴관 매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40분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TEL 02-2091-5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