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섬이었다. 세상의 변화로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뭍이 되어 자동차로 이어진다. 전북 부안의 계화도를 향해 달리는 새벽길에 정적만 가득하다. 도로 양옆의 들판은 어둠 속에서 박하 향기보다 짙은 기운을 뿜어내고, 새해의 쨍한 새벽 공기는 차창에 서릿발을 만들어낸다. 어스레한 불빛 저편으로 광활한 농경지와 갈대숲이 함께하고 물 빠진 갯벌도 드러난다.
광복 이후 최대의 간척 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는 계화도(界火島). 한때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식량 자급을 위한 1호 간척공사로 인접한 부안군 동진면과 방조제로 연결되었다. 바닷가에 둑을 쌓고 고인 물을 빼내니 섬은 곡창지대로 변했다. 농경지 조성이 활기를 띠고 쌀이 생산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의 계화미(米)를 브랜드화하기도 했다. 계화마을은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각종 조류가 서식하고, 겨울철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지내기도 한다. 여전히 계화도라 불리는 섬마을에서 이제는 빼어난 운치의 새해 해맞이를 한다.
계화마을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소박하다. 들어서자마자 바다를 막은 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나무 행렬이 잔잔한 반영을 이루며 맞는다. 간척지와 마을 사이의 좁고 긴 물길의 계화조류지는 1km에 이르는 방풍림 소나무를 품었다. 언제나 온갖 철새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검푸른 새벽하늘의 구름과 수면 위로는 물결의 잔상이 신비롭다. 마을을 마주 보는 방죽의 고요함으로 차분해진다.
차츰 주변의 어둠이 옅어지고 이윽고 하늘 저편으로 불그스레한 기운이 번진다. 해 뜨기 직전의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살짝 바람이 불면서 잔잔하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숨죽이며 정지된 시선은 생동감 있는 자연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짧은 순간 고요한 세상을 뒤덮은 매직이다. 단조로운 듯 반듯한 제방 위 소나무 사이를 헤치고 세상을 일깨우는 아침 해의 운치는 계화리 작은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다 수평선 위에서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렇게 장엄한 해맞이를 하고 새로운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왔다.
눈부신 겨울 서정, 변산해수욕장
해돋이의 위엄으로 얻은 에너지를 장착하고 아침 햇살 반짝이는 해안길을 달린다. 조금 전 일출의 여운을 지닌 채 만난 변산해수욕장은 온 누리가 환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는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밖에 없네’라고 했건만, 하루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출의 장엄함을 이미 보여주었고, 밀물과 썰물의 변산해수욕장 앞에선 희고 고운 모래가 눈앞에 펼쳐진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하늘을 실컷 볼 수 있는 철 지난 바닷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두 눈에 꾹꾹 담는다. 송림으로 둘러싸인 백사장과 조화를 이루며 평온하게 휴식의 시간을 안겨주는 여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기는 겨울 바다다.
아득한 전설 속으로, 채석강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물속에 잠겨서 지금에 이르렀다. 파도에 씻기고 기온과 압력의 변화에 따라 형성된 비경을 변산 격포리에 가면 마주 보게 된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채석강’이다.
자연이 만들어온 억겁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흔히 공룡을 떠올린다. 지질학적으로 공룡 시대보다는 비교적 짧은 약 7000만 년 전부터 형성되어온 채석강의 퇴적암이다. 지금도 암석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자연 속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켜켜이 쌓이고 겹겹이 맞물린 퇴적암 앞에 서면 그동안 자연이 이끌어온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변화무쌍한 파도의 침식을 받으며 쌓아 올린 퇴적암층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문득 아득한 전설 속의 인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이 가득 차오른 채석강은 층층의 아찔한 해안 절벽과 먼 바다의 풍경으로 아련하다. 이윽고 물이 빠져나가고 드러난 바닥의 넓은 암반 위로 간간이 파도가 훑다 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 위로 온전히 드러낸 채석강의 비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들과 분주히 해식동굴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오간다. 외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참고로 격포항 물때를 확인하고 간조 시간 1~2시간 전후로 방문하는 게 좋다.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절집, 내소사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현판의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약 600m에 이르는 사철 푸른 전나무 숲길이 사랑받는 내소사. 마치 절 마당에 닿을 때까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마련된 듯한 전나무 숲길이다. 명품 치유의 숲길로도 알려져 있다. 침엽수 특유의 맑고 그윽한 향이 경건함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통과의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소사는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기세 좋게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과, 일주문 앞과 천왕문 뒤의 당산나무인 천년의 느티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목적이 되기도 한다. 전나무 숲이 끝나면 벚나무길과 요사채 옆의 보리수와 산수유, 그리고 피안교부터 천왕문 가는 길의 단풍터널이 또한 그렇다. 계절마다 은은하게 자연 속에 푹 잠긴 내소사는 특히 눈 내린 설경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으뜸이다.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우리가 보아야 할 곳 중에 내소사를 꼽았다. 자연을 닮은 모습이 조화를 잘 이룬 사찰이라고 했다. 특히 대웅보전의 솟을연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수백 년을 견뎌낸 나뭇결이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보여주어 눈여겨볼 만하다.
내소사 안에서는 무엇이든 자연스럽다. 절 마당에서 둘러보는 능가산의 산세가 낯선 느낌 없이 편안하다. 무채색의 사찰 색감이 고고하고 정갈하다. 도회인들에게 주는 한적함으로 유달리 힐링을 얻는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습되지 못한 마음이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이곳에 오면 새롭게 태어난다’는 절 이름(來蘇) 때문인지 새해 들어 찾아가 보기에 걸맞은 절집이다.
곰소염전의 겨울
염전의 소금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다. 변산반도를 돌아보면서 철이 지났다고 곰소염전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요즘 후쿠시마 원전 방류 문제로 소금 이야기가 분분한데, 천혜의 땅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곰소염전은 겨울이 되어 쉬는 중이다. 한때 전통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궁(宮)에 진상까지 했다는 곰소염전이다. 지금은 퇴락하여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품질은 최상으로 평가받는다. 군데군데 염부들이 염전을 손질하고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고, 건너편 산이 염전 속으로 들어와 반영을 이룬다. 부근의 곰소항으로 가면 곰소젓갈단지에서 질 좋은 젓갈을 구입하고, 감칠맛 나는 젓갈정식을 맛볼 수 있다.
자연의 집,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에서 머물다
채석강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은 국립공원공단의 체류형 생태관광 시설이다. 숙소 창밖으로 서해의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호젓한 자연 속 숙소에서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고, 노을이나 별을 볼 수도 있다. 2023년 7월에 개원해서 내부 시설이나 집기 등이 깔끔하고, 저렴한 이용료까지 금상첨화다. 숙소를 보유한 본관 건물과 언덕 위 자연의 집이라는 독채 객실의 풍광이나 환경 또한 수준급이다. ‘숲나들e’에서 예약하는 전국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이곳은 국립공원 생태탐방원 홈페이지에서 매월 1일 예약이 시작된다. 생태 프로그램을 필수로 예약해야만 객실 예약이 가능하다.
아프리카의 중심 국가 모로코에는 60여 개의 골프 코스가 있어, 최근 새로운 골프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각광받고 있다. 2018년 10월에 개장한 미쉬리펀(Michlifen Resort & Golf Hotel, 파72, 6671m, 6055m)은 잭 니클라우스가 무려 5번이나 직접 와서 세심하게 설계한 북아프리카 최초의 IMG 관리 골프장이다.
삼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스위스
원래는 바위였던 부지 위에 골프장을 만들어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페어웨이와 작은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링크스만의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가 거의 없어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스 외부는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특히 삼나무가 가득하다.
삼나무는 레바논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공으로 심은 것이고, 이곳은 자연적인 삼나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미쉬리펀(Michlifen)은 현지어로 ‘큰 눈발이 날리다’(Big Snow Flakes)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골프장의 가장 큰 특징은 위치다. 이곳이 위치한 도시는 모로코의 이프란(Ifrane)으로, 페스(Fez)와 메크네스(Meknes)를 잇는 아틀라스 산맥을 등지고 있어 모로코에서는 작은 알프스로 불리는 곳이다. 모로코라 하면 더운 기후와 사막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빼곡한 침엽수림과 설경, 호수까지 즐길 수 있는 웅장한 경치를 자랑한다.
빠른 그린 스피드에 당황
그린 스피드가 12피트를 넘어, 이보다 빠른 곳에서는 못 쳐본 것 같다. 그린의 엘러베이션도 심해서 볼을 세울 수 없을 정도였으며, 더욱이 오후 늦게는 바람이 불면서 그린이 건조해져 그린 스피드가 더 빨랐다.
페어웨이는 켄터키블루와 윈터 그래스인 라이그래스를 9월 중순부터 식재했으며, 그린과 티잉 구역에는 벤트그래스를 식재했다. 파크랜드 타입이며 링크스의 모습도 보인다. 해발 1650m에 지어져 거리가 일반 코스보다 더 나갈 수 있다.
9번 홀 티잉 구역 앞은 바로 천 길 낭떠러지다. 멀리 그린 왼쪽으로 크고 멋진 클럽하우스가 있다. 슬라이스는 곧 절벽 아래다.
16번 홀에 와서야 비로소 포레스트가 나타난다. 허허벌판만 나오다 이 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7번 홀(파3, 161m, 137m)과 18번 홀(파4, 384m, 346m) 왼쪽으로는 거대한 절벽이, 오른쪽으로는 그린 오크 숲이 이어지면서 천하의 멋진 장면을 연출해낸다. 그야말로 황홀경에 빠진다. 두 홀의 티잉 구역에서 멀리 보이는 클럽하우스는 동화 속에 나오는 언덕 위의 집처럼 환상 그 자체다. 페어웨이는 너울거리는 셰이핑을 보여주며 살며시 오르막 홀로 그랜드 피니시다. 이처럼 광활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감동을 안겨주는 홀이 얼마나 있었던가.
골프호텔은 71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을 갖췄다. 30m 길이의 실내외 수영장, 헬스클럽,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스파와 온천, 그리고 레스토랑이 있다. 최고급 대리석과 원목으로 꾸며진 호텔은 명품 가구와 도자기가 곳곳에 장식되어 있어 5성급이라는 명성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연속으로 월드 골프 어워즈(World Golf Awards) 시상식에서 모로코 최고의 골프호텔, 2022년 아프리카 최고의 골프호텔로 선정되었다.
산바람이 맵차다. 그러나 설경이 눈부셔 추위를 녹인다. 접때 내린 눈발, 그대로 겹겹 쌓여 발목에 휘감긴다. 해발 600m 산협 사이 오지다. 설원에 나는 새 한 마리 없다. 산마루 양달에 선 소나무들 점점이 푸르지만 오롯이 적막하다. 산정 아래론 일망무제한 설경. 적요를 넘어 적멸이다. 그러니 심오하게 아름답다 할 수밖에. 여기는 유산양(乳山羊) 목장(괴산 하늘목장)이다. 눈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라고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게 산양의 습성이지만, 눈이 쌓여도 너무 쌓였다. 축사 안에 들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이 목장은 눈에 뒤덮이지 않더라도 오가기가 쉽지 않다.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고선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방문자들이 많다.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구경 삼아 찾아온다.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산세는 자못 묘하고 깊어 세속 도시를 잊게 한다. 3만 평이나 되는 너른 목장의 초지를 뛰놀며 풀을 뜯는 산양들의 모습은 충분히 목가적이다. 마음에 평화와 낭만을 안겨준다.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풍광이다. 입장료 같은 건 없다. 목장 주인 김운혁(61)은 성가시지 않을까? 불시에 문득 들이닥치는 외지인들로 인해 일에 방해가 될 텐데. 그러나 그는 생각과 처신에 경계를 두지 않고 산다. 오는 사람 굳이 막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목장 둘레에 꽃길과 돌담길을 만들어 산책자들의 정취를 북돋아준다. 살림집까지 개방, 응접실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차 대접하기를 관습으로 삼았다. ‘그대여! 어차피 오셨으니 근심일랑 내려놓고 맘 편히 쉬어가시라!’ 아마도 이게 그의 메시지. 이건 일종의 보시(報施)?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양들이 놀라지 않도록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언제든 방문자를 환영한다. 요즘 농업의 트렌드로 부상한 치유농업을 내가 추구하지는 않지만 농업 체험의 치유 효과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따라서 도시를 벗어나 이 오지 목장까지 찾아온 이들이 편하게 쉬어가도록 자그만 배려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일단 찾아온 이들이 해가 저물어도 좀체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웃음) 어떤 이들은 산자락에 텐트를 치고 야생의 밤까지 즐기고 돌아간다.”
선택 작목이 무엇이든 농사란 자칫 사람 망가지게 하는 고행을 닮았다. 농업이라는 고도의 난제에 매달려 살다 보면 멀쩡하던 성격과 정신마저 거칠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김운혁은 정반대 길을 간다. 방문자를 대하는 그의 양상엔 너그러운 이타심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이는 그의 목장 사업이 이미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반증이거니와, 아울러 수신(修身)을 부업으로 하지 않았을망정 탁 트인 마음 여유까지 보유하게 됐다는 징표로 보인다.
구제역 이후 ‘동물복지’ 실천하다
물론 귀농 초기엔 어지럽고 괴롭고 서러웠다.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커리큘럼으로 하는 농업 수련기를 길고 깊게 섭렵했다. 귀농 전 그는 도시에서 잘나가는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아내와 함께 귀농열차를 잡아타고 이 꽉 막힌 오지에 도착했다. 이곳이 진정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인생의 참다운 종착역이거니 하고.
“건설업이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직업이다. 직원은 많았고, 따라서 사고도 잦았다. 여러모로 견디기 어려웠다. 정신적·육체적 고생이 심했으니까. 이건 아니다, 쉬엄쉬엄 살아야겠다,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릴 적 꿈이었던 목장을 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귀농을 했다.”
처음엔 산양 아닌 염소를 길렀다지?
“원래 이곳엔 한우를 방목하다가 포기해 방치된 목장 부지가 있었다. 그걸 사들여 흑염소를 입식, 염소목장을 가동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찻길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지게로 자재를 져 날라 축사 보수 등 필요한 작업을 해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염소 사육 기술이 없어 실패를 거듭했다.”
사육 교육조차 받지 않고 뛰어들었나?
“딱히 기술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덤벼들었던 셈이지. 비교적 수월한 게 육용 염소 기르기라고 알려졌지만 질병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 난감했다. 첫해에 150마리를 길렀으나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폐사하고 말았다. 차마 예상하지 못한 가혹한 실패였다.”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대책을 찾아낼 수 있었나?
“실패가 곧 공부였다. 서서히 사육 기술을 터득하게 됐고, 치료 방법에도 요령이 붙어 직접 약을 만들어 쓸 만큼 발전했지. 하지만 시련이 잦았다. 날이면 날마다 종일토록 축사에 매달려 사는 식으로 공을 들였지만 뜻밖의 복병엔 속수무책이더라.”
가장 큰 시련은 어떤 것이었을까?
“(침울한 어조로) 2011년에 발생한 구제역 파문 때였다. 전염병이 우리 목장까지 덮쳤다. 기르던 염소 350마리 전체를 매몰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겪은 당시의 참변을 잊을 수 없다. 너무도 가슴 아팠다. 경악스러웠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염소들을, 가족과 다름없는 아이들을 땅에 파묻었으니까. 우리 내외의 상처가 컸지만 자금 손실도 막대했다.”
보상금이 적었나?
“남들은 대단한 금액을 받았다고 오해하지만 축산 농가들의 실질적 피해는 컸다. 목장 복구엔 보상비의 두 배쯤 되는 자금이 들어갔다.”
애지중지하던 염소들을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구제역의 참극은 김운혁의 생각을 일깨워 목장 운영 방식을 일신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염소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전염병균은 고도로 지능이 뛰어나 바람처럼 침투했지만, 그걸 슬기롭게 미리 차단하지 못한 김운혁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던 것 같다. 그래 친환경 사육법을 도입했다. 나아가 동물복지를 구현함으로써 한결 단단한 단속을 했다. 사육 환경을 청결하게 개선하고, 염소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은 물론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게 이전보다 한결 적극적으로 배려했다. 염소들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걸 또렷이 인식했다.
“오랫동안 수익성을 중심에 두고 염소들을 길렀다. 어쩌면 마구잡이로 사육했다. 그러다 보니 염소나 사람이나 쌍방이 다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불완전한 사육 방법으로 염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병에 걸리면 나 역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이치를 비로소 알아차렸던 것이다. 결국 염소들이 행복하게 살아 건강해야 나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진실을 구제역 직후에야 이해했던 셈이다.”
단지 ‘마음 부자’를 지향했다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뼈아프게 인식하고 생각을 바꾸어 실천하자 목장 운영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염소들이 건강하게 자라 단 한 마리도 병들어 죽는 경우가 없었다. 잘 키운 염소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팔려나갔지만 산 아래에 차린 염소 요리 식당을 통해서도 수익을 거두었다. 2018년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염소 사육을 청산하고 뉴질랜드에서 들여온 유산양으로 목장을 채웠다. 야심에 찬 새 출발이었다. 현재 산양 사육 두수는 300여 마리.
“염소와 달리 산양을 통해서는 젖을 판매해 수익을 거둔다. 아들이 동참한 덕분에 분업 시스템도 구축했다. 우리 부부는 사육과 착유를 하고, 아들은 판매와 마케팅을 전담한다. 이렇게 분업화되자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오전 두어 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이후엔 한가한 편이다.”
젖을 이용한 가공 상품도 생산하나?
“전량 젖 그대로 판매한다. 가공 필요성이 없어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니까.”
염소와 산양의 생태는 어떻게 다른가?
“염소는 야생성이 강해 사람을 경계한다. 염소 사육법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분리해 사육하는 산양은 나를 거의 어미로 여긴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는 걸 아는 동물로 보이기도 한다. 강아지 못지않은 친화력을 가지고 사람을 잘 따른다. 그러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축사에 들어갔다가 놀랐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산양들이 거침없이 다가와 스킨십을 해서. 게다가 조잘거리듯 주둥이로, 표정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것 같아 흥미롭더라.(웃음)
“알고 보면 아주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다. 민감한 눈빛과 행동으로 욕구와 요구를 표현한다. 심지어 사람이 하는 짓을 따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단지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자주 오해하는 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여긴다는 점이지 않을까? 풀 한 포기를 비롯해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인간보다 못한 자질을 가진 존재가 얼마나 될까 싶다.
“산양의 생태에서 느끼는 게 많다. 온순하고 다정해 가축이라기보다 가족으로 느껴진다. 귀농 이전 도시에 살 때 난 비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성급한 성격대로 화를 품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산속에서 순수한 동물들과 함께 살며 나도 모르게 순한 인간으로 바뀐 거다. 스트레스에 찌들어 옹색했던 사람에서 꽤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했다.”
당신의 최대 난적이었던 스트레스를 귀농으로 처리했다? 그렇다면 귀농은 널리 장려할 만한 최선의 행위라 보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도시에서 몸에 밴 물질적 욕구를 다 내려놓지 않고선 지속하기 어려운 게 시골 생활이자 농업이다. 특히나 시니어의 서툰 귀농은 금물이다. 다 까먹기 십상이니까. 주변에서 많은 사례를 봐서 하는 말이다. ‘난 귀농하길 참 잘했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경쟁을 축으로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은 괴롭고, 외롭고, 지겨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부른 귀농으로 활로를 찾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충실한 귀농교육과 자금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단다. 더 중요한 건 세속적인 욕망 덜어내기다. 돈의 추구보다 자연 내지는 작물과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소소한 행복감이 방문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내가 귀농 이후 지향한 건 ‘마음 부자’다. 이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산중에서 아내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행복감. 이보다 나은 삶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운혁이 주는 귀농 Tip
•농업 관련 공부를 사전에 충실히 하라.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애와 결혼이 다르듯이 귀농의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농촌에서 최소 한 달만이라도 살아보고 결정하라.
•순소득이 아닌 매출액을 내세워 성공담을 전달하는 매체들의 미화된 정보에 현혹되지 말자.
•귀농 교육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달콤한 얘기를 다 믿지 마라. 농업 현장을 통해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 가령 과수농가의 경우 잘나가는 농가와 실패한 농가를 답사, 비교 분석해보라.
•자금력만이 다는 아니다. 끈기와 용기도 필수니까.
•산양목장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권하고 싶지 않다. 소규모로 한다 해도 시설 구비와 허가 등에 자금이 너무 많이 든다. 산양 관리에 얽매어 여가를 즐길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외옹치 바다향기로
강원도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이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은 사색하며 걷기 좋다. 인근 아바이마을도 들러볼 것.
초량 이바구길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급경사 구간에서는 모노레일을 이용해도 된다.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오밀조밀한 초량동 주택가와 부산항,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경도 으뜸.
만항재 하늘숲정원
함백산의 지맥 강원도 정선군의 만항재 정상 부근이다. 겨울이면 낙엽송 가지마다 서리가 얼어붙어 상고대가 생성된다. 눈 온 뒤 방문하면 겨울왕국을 보는 듯 새하얀 설경이 펼쳐진다.
곶자왈 동백동산
제주의 여느 동백꽃 군락지와 다르게 소박하고 은은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다. 동백동산 숲과 습지에서는 한겨울에도 덩굴식물과 열대식물이 어우러져 푸릇푸릇한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삼척 나릿골마을
담벼락 곳곳에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좁다란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시설들과 만나게 된다. 전망대에 서서 청량한 겨울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뻥 뚫린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한국문화원연합회(이하 연합회)가 9월 30일 기념식을 시작으로 10월 1일까지 양일간 지역문화박람회를 연다.
킨텍스 제1전시장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30일 오전 ‘한국문화원연합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으로 화려한 막을 연다. 기념식에는 연합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이동환 고양특례시장, 지방문화원 임직원 및 포상 유공자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대한민국 문화플랫폼’이라는 연합회의 새로운 슬로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축하공연과 비전 선포, 유공자 포상 등이 진행됐다. 연합회 측은 “창립 60주년을 맞은 연합회가 향후 새로운 60주년을 준비하기 위한 참여와 공감의 장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장은 “60주년을 맞은 지금, 지역의 축제, 지역향토문화의 수집과 보존, 지역학의 학문화, 지역주민들의 문화향유 등의 영역에서 지방문화원을 제외하고는 지역문화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며 “이는 그간 231개 지방문화원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를 지켜온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다가오는 60년은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방문화원이 지역문화의 등불이 될 것”이라며 “연합회가 231개 지방문화원의 확성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 직후 열린 지역문화박람회는 올해 처음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오래된 미래, 다시 그리는 대한민국 문화지도’를 주제로 한 박람회에서 한국문화원연합회 60주년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전시와 체험, 공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참관객들은 지역문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확인할 수 있을 예정이다.
연합회는 지역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돕고, 지역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도록 박람회의 규격화된 부스를 없앴다. 또한 콘텐츠 분류 기준을 지역이 아닌 특정 주제로 ‘모으고, 섞고, 어우러지도록’ 융합해내 소개하는 ‘융합형 전시’를 시도했다.
총 5개의 테마로 구성된 박람회에는 지역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재조명이 필요한 지역의 ‘문화인물’, 평범하지만 지역문화를 지켜내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 담겼다.
첫 번째 테마 ‘지역문화 공공수장고’는 지역다움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자원부터, 지역자원을 예술로 승화시킨 명작들을 전시한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지역문화가 변방의 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의 정통성과 예술적인 가치를 담아내고 있음을 경험케 한다.
두 번째 테마 ‘지역문화 아트마켓’은 다양한 지역자원을 모티브로 지역예술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선물’같은 문화작품들을 선보인다. 다양한 소품과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오브제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을 자극할 수 있는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테마 ‘문화원 덕분愛’는 지방문화원의 다양한 교육, 체험 사업 결과물들을 일상적인 공간에 재배치하는 형태의 전시다. 지역정서에 기반해 다양한 세대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지역문화의 단면을 감상할 수 있다.
네 번째 테마 ‘오물樂 조물樂’은 각 지방문화원이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들을 모아 박람회 관람객이 현장에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키트형 체험 도구부터 지역을 상징하는 원형 체험물까지 관람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울산 ‘쇠부리 불매 체험’, 원주 ‘한지 모빌 만들기’, 태안 ‘설위설경 종이 오리기’, 제주 ‘바다의 눈물 공예품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틀간 총 5회차에 걸쳐 운영된다.
다섯 번째 테마 ‘THE 한마당’은 각 지방문화원이 추천한 전통적인 지역 상징 공연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합동공연 형태로 준비돼 있다. 부산 동래문화원의 ‘동래 학춤’, 고양문화원의 ‘대취타’, 서귀포 문화원의 ‘해녀의 바당’ 등 전통적인 공연 장르와 MZ세대 예술가의 공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번 기회는 지역문화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역문화박람회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모든 전시, 체험, 공연관람은 무료로 참여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들의 관광과 이동이 멈췄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관광자원은 제자리에서 살아 숨 쉬며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하얀 눈과 한복의 멋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명혹헌의 설경’을 ‘2021 대한민국 관광공모전’에서 사진 부문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배롱나무로 유명한 여름 관광지 명옥헌을 새하얀 눈꽃에 한복을 차려입은 부부가 걷는 모습으로 담아, 한 폭의 그림 같은 작품을 연출했다는 평을 받았다.
문체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대한민국의 매력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대표 관광 사진과 기념품을 발굴하고자 ‘2021 대한민국 관광공모전’을 개최해, 이날 사진 216점과 관광기념품 12점을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문체부 장관상에는 바다의 작은 폭포와 여명을 담아 한국의 신비로운 풍경을 보여준 ‘모포바위의 일출’ 사진과 전국에 퍼져 있는 아름다운 꽃 관광지 모습을 소개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4계절’ 동영상을 선정했다. 이 외에도 한국관광공사 사장상 5점과 입선작 88점, 특별상으로 스마트폰 사진 120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한편 기념품 부문에서는 대통령상으로 선정한 ‘춘천 감자빵’을 포함해 12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춘천 감자빵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감자 모양 빵으로 지역 특색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수상작으로 매력적인 국내 여행지가 널리 알려져, 코로나19로 침체된 한국 관광에 활기를 불어넣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연 스님(1206~1289)은 몽골의 침입이라는 국난에 맞서 한민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5권 2책의 ‘삼국유사’를 완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나름의 답을 했다.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한민족 역사의 대기록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밝힌 고조선과 단군신화, 14수의 신라 향가는 고대 문학사를 실증하고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을 모아 통일된 서사를 완성했다.
이처럼 한민족 정신사에 족적을 남긴 일연 선사의 자취는 군위의 인각사(麟角寺, 사적 제374호)에 남아 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해두었다는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를 보러 가자. 인각사로 가는 여행은 일연 스님의 정신과 그 비문에 얽힌 간곡한 마음 하나 알아보려고 떠난다.
인각사의 비문에 존재한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떠올려본다. 그 비문의 이름은 보각국사비다. 당시 이름난 민지(閔漬)라는 문장가가 글을 지었고, 왕희지의 서체로 4000여 자를 집자했다고 한다. 인각사라 자리한 군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는 김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다는 혜원(김태리 분)의 근사한 집도 들러보고 추억의 기차역 화본역도 다녀왔다. 카메라와 번역본 ‘삼국유사’ 한 권을 배낭에 짊어지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거쳤다. 과연 온전히 이 글의 주인공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느끼고 비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비에 새겨졌다는 일연 스님을 찬하는 민지의 문장이다.
“말할 때 우스개가 없고(語無戱謔), 꾸며대지 않는 성품이며(性無緣飾),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다(以眞情遇物). 여럿이 함께 있어도 홀로인 것 같았으며(處衆若獨), 높은 위치에서도 낮게 처신했다(居尊若卑). 스승에게서 배워 공부하지 않고(於學不由於師), 저절로 환하게 알았다(自然通曉).”
인각사를 빛내주는 것은 바로 학소대에 노니는 학처럼 고고한 선사의 정신세계다.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힘은 일연 스님의 끝없는 수행의 결과가 아닐까?
경북 군위는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고장이다. 대구에서 가수 김광석 거리와 달성공원을 둘러보고 하루의 일정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군위로 향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앞산 정상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내는 금세 녹았지만 대구를 분지로 만들며 빙 둘러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은 만년설을 두른 듯 하얗다. 군위 방면에 있는 팔공산의 설경은 겨울답게 눈이 부시다. 대구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힘이 눈으로 더욱 영험해진 듯하다.
일연 스님이 말하고 싶은것은?
팔공산의 품은 넓고도 높아 군위로 향하는 내내 시선을 머물게 한다. 군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추위 탓인가, 코로나19 때문인가? 텅 빈 들판과 낙엽이 떨어져 벌거벗은 겨울나무 숲은 조용히 추위를 견디고 있다. 응달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인각사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산길로 접어들어 굽이진 길을 간다.
영천 방향으로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며 가는데 영락없는 산촌 풍경이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 선사가 하안소(下安所)로 인각사를 선택하고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무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얼마나 멀고 먼 땅이던가? 어렵게 산길을 거쳐 왔어도 막상 사찰은 평지에 있었다. 화산의 봉우리 끝에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뿔과 닮은 곳에 세웠다 하여 인각사라 명명했다 한다. 절의 맞은편 위천(渭川)이 흘러가는 강변에는 학이 깃들어 산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우뚝하다. 일반 여행객이라면 절에 눈길을 주기 전에 틀림없이 이 절벽에 주목할 만큼 절은 평범하다.
고려의 명승 일연 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인각사도 온통 추위 속에 서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인각사 경내에는 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도로변 평지에 위치한 인각사에는 엄청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침 주지 스님은 본찰인 은해사에 가서 부재중이었다. 직원에게 딸기 공양을 맡기러 컨테이너로 된 종무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계곡 바람이 차가웠다. 문을 닫고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시골집 아랫목처럼 따뜻했고 뜨거운 차는 반가웠다. 부처님 품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보각국사탑과 비를 본다. 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몇 동강 나 있고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30여 개의 탁본이 남았고 금석학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해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글자가 명필 왕희지체여서 인기가 많아 수많은 탁본을 떴으며,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효험을 보려고 비를 갈아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민지의 비문으로 일연 스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가슴에 새겨진 영원한 비문은 ‘삼국유사’다. 40년간의 몽골항쟁 후 ‘삼국유사’가 쓰였다. 외세 침략을 극복하고 민족 자존감을 고취하기 위해 한민족의 자존 용기와 기백을 그렸다. 스님이 활약하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몽골과의 길고 긴 항쟁을 하던 시기였다. 결국 장년기에 들어서는 원의 간섭을 받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대장경 간행에도 관여했으며, 출가 시절부터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았고 누구보다 그들의 힘을 믿었다. 국사라는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효도의 예를 다했으며, 당시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고 민족혼을 일깨웠다.
700여 년 전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마지막 생을 불태운 그의 기록은 민족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보물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삼국유사’이고 보각국사비인가? 인간이 되려고 인고의 21일을 견딘 웅녀의 끈기와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나라를 세우며 내세운 홍익인간 같은 사상이 필요한 때다. ‘삼국유사’에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한민족 최초의 스트리퍼라 불리는 정수 스님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한겨울 길거리에서 만난 산모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간 스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일연 스님의 생애를 새긴 보각국사비 양기(陽記)의 마지막 문장은 ‘온 산하가 다 불타 없어지더라도, 이 비만은 홀로 남아 전해주소서’라는 뜻이다. 비록 비는 부서졌어도 일연 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뜻과 문장은 향기롭게 남아 시대의 등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군위 여행의 맛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이윤기 작가의 고향이다. 그도 자신의 고향이 ‘삼국유사’의 고향인지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고을의 대표 브랜드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다. 군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수환 추기경의 자서전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지역의 사계와 먹거리를 요리로 표현한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가면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영화는 경쟁적 도회의 삶에 지치고 허기져서 귀향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추억 속의 시루떡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지금 먹는 떡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 영화는 엄마가 딸에게 주는 인생 레시피다. 군위에서 듣는 일연 스님의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군위 여행은 ‘삼국유사’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뜻밖의 깊은 맛이 난다. 우울함을 단번에 행복감으로 바꿔주는 영화 속 음식 크렘 브륄레처럼, 코로나19 시대 위기를 극복하는 ‘삼국유사’의 비기를 찾아가 보자.
언제나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엘사는 자신의 능력(얼음 마법)을 감춘 삶을 산다. 자유인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그녀는 어느 것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부모의 뜻에 따라 외부와 단절된 인생을 산다. 오랜 시간 그렇게 견뎌온 그녀는 자신의 대관식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사람들을 다치게까지 한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녀는 왕국을 뛰쳐나오고, 엘사가 떠나자 왕국은 얼음으로 뒤덮이고 한파가 몰아친다. 그리고 왕국을 나온 그녀는 얼음 설산을 오르며 아이들도 좋아하는 그 유명한 노래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다.
월트 디즈니의 유명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초반 줄거리다. 영화에 나오는 엘사가 얼음 마법을 쓴 매력적인 장면과 배경에 맞게 잘 부른 노래의 시원한 느낌을 현실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의 지맥 강원도 정선군의 ‘만항재’다. 정상의 해발 고도가 1330m로 국내 포장도로 중 가장 고도가 높은 이곳의 겨울은 정돈된 아름다움의 설국으로 펼쳐진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 걸친 11월이면 재의 정상 부근 ‘하늘 숲 정원’은 낙엽송 가지마다 서리가 얼어붙은 상고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그 풍경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다. 야생화가 피었던 초지에 솟은 나무들은 때 이른 크리스마스트리로 변한다. 그리고 이즈음이 지나면 이곳 세상은 새하얀 설경의 환상적인 겨울 왕국이 된다. 이 왕국의 가운데 서면 고독과 자승자박의 차가운 겨울바람 길을 선택했던 엘사를 넘으려는 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온다.
“렛 잇 고!”
자신의 상처에 귀 기울이고, 그 상처를 지혜롭게 어루만져줄 줄 아는 내면의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고한 시내에서 오다 보면 만항재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곳은 ‘야생화 공원’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야생화 천국인 만항재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곳으로 야생화와 사진 등의 전시 마당이 열린다. 이곳에서부터 ‘산상의 화원’으로 올라가는 1km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만항재의 봄꽃은 해발고도가 높은 만큼 늦게 피지만 화려함은 다른 어떤 야생화 군락지보다 더 빼어나다. 어찌나 화려한 꽃밭을 보여주는지 스스로 자라난 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만항재에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로는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바람길’과 하이원 리조트까지 가는 ‘운탄길’이 있어 일정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다.
만항재의 겨울 왕국은 지치고, 안쓰럽고, 미안한, 하지만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의 스위치를 다시 켜주는 곳이 될 것이다.
- 만항재 주소: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109
- 추천 맛집: 정선 메밀촌 막국수 (정선군 고한읍 고한로 79)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2월 중순에. 하얀 눈은 누구나 좋아하고 인기 사진 소재이나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았던 색깔과 사진 속의 색깔이 달라 보여서다. 하얀 눈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다소 어둡거나 칙칙하게 나온다.
왜 그럴까, 사진을 잘 못 촬영해서일까? 아니다. 카메라 스스로가 하얀색 등 밝은 계통의 색을 만나면 너무 밝다고 판단해 어둡게 적용을 한다. 그대로 셔터를 누르면 실재하고 빛깔의 차이가 나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하얀 설경(雪景)을 원래 색감처럼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 화면에 나타나는 사진의 밝기를 더 밝게 조절하면 된다. 우리는 대체로 카메라를 켜고 그대로 셔터를 누르기 일쑤다. 바로 셔터를 누르지 말고 먼저 화면에 나타난 사진의 밝기(노출) 조절 기능을 적용한 후 셔터를 눌러야 한다.
이 점을 놓치고 있기에 제 색감의 사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경과 같은 풍광을 촬영할 때는 카메라가 가리키는 밝기보다 조금 밝게 조절해 찍어야 제대로의 빛깔을 담을 수 있다. 하얀 밝은 색감이기에 카메라 스스로가 어둡게 촬영하려고 하는 것을 되돌려 놓는 일이다. 다음의 사진에서 그 차이점을 느껴볼 수 있다. 그냥 셔터를 누른 경우와 밝기를 조절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설명/앞의 사진이 빛깔이 다소 어둡고 뒤의 사진은 더 하얗다. 밝기조절 막대로 더 밝게 할 수도 있으나 너무 밝으면 피사체의 디테일이 사라지기 때문에 밝기조절 막대 중간에서 약간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음의 사진도 앞의 것은 다소 어둡고 뒤에 있는 것은 눈으로 본 것과 같은 색감을 보여준다]
그 구체적 조절 방법은 이렇게 하면 된다. 촬영하려고 하는, 눈이 내린 풍경에 카메라 렌즈를 맞춘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카메라 화면(LCD)에 나타나는 주요 부분을 손가락으로 슬쩍 터치한다. 이때 작은 원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아래나 우측에 흰색 “밝기조절 막대(상, 하단에 ‘ -’ 표시)”가 나타난다(아래 사진 참조). 그 막대의 중간에 전등 모양의 아이콘이 보이는데 그곳을 손가락으로 누른 상태로 위( )로 조금씩 움직이면 화면에 나타난 설경의 밝기가 점차 밝아진다. 적절하다고 인정될 때 막대에서 손가락을 떼고 셔터를 누르면 완성된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감으로 다시 촬영하고자 할 때는 반복해야 한다. 전등 아이콘을 중간 아래(-)로 내리면 사진이 어둡게 된다. 눈처럼 하얀 색감이나 채도가 밝은 피사체를 촬영할 경우, 같은 방법을 쓰면 된다. 해수욕장의 밝은 모래를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와는 달리 채도가 짙은 검은색이나 빨간색(짙은 빨간 장미 등)의 경우는 카메라가 어둡다고 판단해 실제보다 더 밝게 적용한다. 이런 색감의 피사체 촬영은 설경과 반대로 밝기를 더 어둡게 조절해 촬영해야 제대로 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자주 사용하고 있으나 자동 촬영모드인 셔터만을 누르기 십상이다. 촬영 기능에는 우리가 평소 관심을 두지 않는 유용한 것들이 많고 적용도 어렵지 않다. 전문가처럼은 아니어도 밝기조절이라든지 초점 맞추기, 구도를 위한 수직 수평선 맞추기 등은 적극적으로 활용해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