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일본 고마쓰와 아오모리 정기편 운항을 재개한다. 이번 복항으로 대한항공의 일본행 하늘길을 모두 되살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다.
대한항공 인천~고마쓰 노선은 올해 12월 28일부터 운항을 재개한다. 가는 편은 오전 7시 35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같은 날 오전 9시 20분 고마쓰 공항에 도착한다. 오는 편은 현지에서 오전 11시 15분에 출발해 같은 날 오후 1시 25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대한항공 인천~아오모리 노선은 내년 1월 20일부터 운항을 재개한다. 가는 편은 오전 10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같은 날 오후 12시 50분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한다. 오는 편은 현지에서 오후 1시 55분에 출발해 같은 날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인천~고마쓰, 인천~아오모리 노선은 각각 화·목·토 주3회 운항한다.
고마쓰 공항은 일본에서 매력적인 여행지로 꼽히는 이시카와현에 위치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려 스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17세기부터 이어온 도자기·칠기 기술 등 일본 전통 수공예 중심지로도 알려졌다. 고마쓰 공항은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산악관광루트 ‘알펜루트’에 보다 가깝게 접근 가능한 경로다.
아오모리는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는 일본 소도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시라카미 산지와 산리쿠 후코 국립공원에서 대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성에서 열리는 설등 축제와 자연에 둘러싸여 온천욕도 즐기기 좋다.
이번 복항으로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취항했던 일본 12개 노선(인천발 기준)을 모두 회복한다. 일본 도쿄/나리타·하네다, 오사카/간사이,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 니가타, 오카야마, 가고시마, 오키나와, 고마쓰, 아오모리 왕복편 노선을 운영한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한 데 이어 엔화 가치가 떨어지며 일본행 노선 탑승률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늘어나는 여행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여객 서비스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주: 국민의 30% 가까이가 65세 이상인 나라, 일본.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합니다
치매로 인한 행방불명을 막기 위해 ‘지켜보는 실’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QR코드입니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은 치매로 인한 행방불명자가 10년 연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행방이 묘연해진 치매 환자는 1만 8709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491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차제에서 묘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오키나와현 도미구스쿠시는 QR코드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28일 오키나와현 일간지 류큐신보는 시가 고령 치매 환자가 행방불명 되었을 때 도움이 되는 실을 도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족은 사전에 보호가 필요한 치매 환자의 닉네임이나 생년원일 등을 실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귀가 나쁘니까 왼쪽 귀에 말을 걸어 주세요’,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인공) 심장 박동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등 신체적 특징이나 소통에 관한 내용을 기재하는 겁니다.
실은 옷이나 가방 등에 다리미로 붙일 수 있습니다. 실에 인쇄된 QR코드를 읽으면 등록처에 메일이 가는 시스템입니다. 도미구스쿠시에서는 희망 가구에 실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합니다. 시의 당부입니다. “QR코드를 읽어도 이름이나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는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을 알고, 활용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고즈넉한 한담이다. 아마도 늦은 오후 무렵이었을 것이다. 절대 군주 영조대왕(1694~1776, 재위 1724~1776)과 신하 김양택(1712∼1777)의 대화다. 느닷없이 고추장이 등장하니 길게 인용한다. 당시 영조는 일흔다섯의 노인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음력 7월이니, 늦더위가 한창인 8월 말경일 것이다. 노인들이 입맛이 없을 계절이다. 내국(內局)의 도제조(都提調) 김양택도 쉰일곱 살이었다. 당시로는 노인이다. 두 사람이 ‘입맛’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국에서 입시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송이(松茸)·생복(生鰒)·아치(兒雉)·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 하니, 도제조 김양택이 말하기를, “그러시면 생복을 복정(卜定)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만두라. ‘공자는 꿩고기를 세 번 냄새만 맡고 일어났다’고 하였으니, 때로는 혹 향당편(鄕黨篇)에 성인의 기상을 묘사하였음을 상상하였다. 적복(摘鰒)하기는 공이 많이 들므로 영상(領相)이 어사(御史)로 있을 때에 한 마리 큰 복어(鰒魚)로써 나에게 민폐가 된다는 뜻을 보였다. 방금 충재(蟲災)가 민간에 몹시 지독한데, 정당한 공물(貢物) 외에 때가 아닌 물건을 어찌 반드시 구하여 구복(口腹)을 위하겠는가? 마땅히 바칠 것 외에는 내가 받지 아니하겠다.” 하였다.
김양택은 우의정을 거친 고참 신하다. 사적으로, 두 사람은 먼 사돈지간이다. 김양택의 고모가 숙종의 왕비였다. ‘내국’의 이야기이니, 궁궐 깊은 곳의, 얼마쯤은 사적인 이야기다. 영조가 말한다. 송이버섯, 날전복, 어린 꿩, 고추장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내 입맛이 아주 늙은 것은 아니라고.
송이, 전복, 꿩은 지금도 고급 식재료다. 고추장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추장은 장류의 하나이고 특별히 고급이라고 말할 음식은 아니다. 그런데 고추장이다. 고추장은 매운 장이다. 적어도 영조는 고추장을 각별하게 여겼다. 고추는 임진왜란 무렵, 남방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진다. 정설이다. 고추 전래 후, 170년쯤의 세월이 흘렀을 때다. 고추는 상당히 널리 퍼졌다.
한민족은 매운맛을 즐겼다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다. 매운맛에 한번 빠지면 좀체 헤어나기 힘들다. 한민족은 매운 고추를 즐겨 먹는, 매운맛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매운맛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표현은 맞다. 고추의 매운맛을 즐긴다는 표현은 틀렸다. 매운맛을 고추로만 즐기는 건 아니다.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매운맛을 즐기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초’(椒)는 원래 산초를 의미하지만 매운맛이라는 뜻도 있다. ‘호초’(胡椒), ‘산초’(山椒), ‘고초’(苦椒)는 모두 매운맛이다. 오늘날의 후추, 산초, 고추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도 매운맛은 있었다. 외국에서 수입(?)한 후추와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산초로 매운맛을 냈다.
산초는 한반도 남부지역 야산에서 널리 자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민간에서는 산초를 쓰고 수입산인 후추는 궁궐 사람들과 사대부들이 주로 사용했다. 후추에 대해 지나친(?) 집착을 보인 이는 성종대왕이다. 조선시대 내내 후추 수입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통치자는 늘 ‘만약’을 대비해 국내 생산을 염두에 둔다. 성종은 “만약 외국(규슈 왜인)과의 교역이 끊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염려했다.
후추는 음식과 더불어 약 제조에도 사용했다. 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주고,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하며 음식에 매운맛을 더한다. 더불어 서증(暑症), 더위 먹은 병도 다스리니 후추는 필수적이었다. 성종은 왜인들과 교류가 끊어질 경우 필수품인 후추를 구할 수 없으니 후추 씨앗을 구해 직접 재배하고 싶어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추 씨앗을 구해 한반도에서 기르는 일은 불가능했다. 성종의 ‘후추 씨앗 사랑’은 놀랍고 한편으로는 애처롭다. 이듬해인 성종 13년(1482) 4월 17일의 ‘조선왕조실록’에도 후추는 등장한다. 예조의 보고다.
“본조(本曹)에서 일본국(日本國) 사신을 연회하던 날 후추[胡椒]의 씨를 구해 보낼 것을 말하였더니, 대답하기를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남만(南蠻)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유구국(琉球國)에서 항상 남만에 청(請)하고 본국에서 또 유구국에 청하여, 종자를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당시는 다른 나라였던 유구국(오키나와)에서 구한다. 오키나와도 생산지는 아니다. 남만에서 생산된다. 남만은 오늘날의 태국, 미얀마 등 인도차이나반도다. 성종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이 비록 생산되지 않는다고 말하나, 후추는 일본에서 왔으니, 일본이 유구국에 청하여 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집착이다. 후추는 남만, 유구, 일본 규슈나 혼슈 서남단, 대마도 등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온다. 말을 전해서 원생산지인 남만에 이르면 후추 씨앗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듬해인 성종 14년(1483)에는 신하가,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말하기를, ‘남만에 사신을 보내어 후추씨[胡椒種]를 구하고자 하는데, 남만은 땅이 멀어 3년이 걸린다. 그 내왕에 드는 식량을 죄다 미곡(米穀)만 실을 수 없으니, 동전 2만 꿰미를 내려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청구함이 몹시 번거로운데, 장차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의 후추 씨앗 구하기에 대한 숱한 자료가 기록돼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도 손을 뻗는다. 성종 14년 9월의 기록에는 “관반(館伴)으로 하여금 중국 사신에게 후추씨를 구하게 하라”는 기록도 있다. ‘관반’은 ‘관반사’(館伴使)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벼슬아치다. 중국 사신을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 이들이 후추 종자를 구해보라는 뜻이다.
‘성종의 후추 종자 구하기’는 성종 16년(1485) 11월 무렵에 끝이 난다. 왜인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후추 종자 구하는 일을 미룬다. 남만의 뱃길이 머니 곡식 대신 돈을 달라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측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대장경을 달라’는 요구도 내건다. 성종 16년의 기사에는 일본 측 사신인 앙지(仰之)의 확실한 대답이 나와 있다.
앙지가 대답하기를, “후추의 종자는 남만에서 생산이 되는데, 유구국은 남만에서 무역을 해오고 본국은 유구국에서 무역을 해옵니다. 그래서 본국에서는 후추의 종자를 무역하려고 윤 2, 3월에 이미 사자(使者)를 남만에 보내었으니, 내년 3, 4월 사이에는 돌아올 것입니다. 다만 남만 사람들이 전매(轉賣)할 적에 반드시 그 종자를 삶아버리므로 아마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남만-오키나와-일본-한반도를 거쳐 힘들게 씨앗을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씨앗은 한 번 삶은 것이다. 싹이 날 리가 없다. 설혹 구했다 해도 후추는 우리 땅에서 자라지 않는다. 열대성 식물이기 때문이다. 성종이 힘들게 후추 종자를 구했어도 후추를 생산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성종의 후추 종자는, 매운맛에 대한 그리움이다.
자료 제공 및 도움말
1~4세 괌, 사이판, 오키나와 영유아와 함께라면 비행시간 4시간 이하의 근거리 지역을 선택하자. 여행 콘셉트는 관광이나 체험보다는 휴양 위주로 잡아 아이와 물놀이 등을 하며 쉴 수 있는 곳으로 잡는 게 좋다. 대표적 휴양지인 괌과 사이판,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 오키나와도 떠오르는 여행지다. 세 곳 모두 물놀이와 간단한 관광이 가능하며, 비행시간도 4시간 이내로 부담 없다. 렌터카 이용도 쉬워 어린아이의 짐까지 편하게 싣고 다닐 수 있다.
5~10세 마카오, 싱가포르 호기심 왕성해지는 어린이들에겐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중국 마카오, 싱가포르를 추천한다. 홍콩과 이웃한 마카오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렉’, ‘쿵푸팬더’ 등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매장이 많은 것이 장점이다. 싱가포르는 깨끗한 환경 속에서 물놀이는 물론 유니버설 스튜디오, 워터파크 등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가 많아 만족도가 높은 가족여행지 중 하나다.
10세 이상 서유럽 10대 손주라면 여러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서유럽여행을 즐겨볼 만하다. 서유럽에는 역사적 문화재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은 물론 걷고 보는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는 배움 그 자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이탈리아 바티칸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이나 유명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유익하다. 특히 옥스퍼드대학교처럼 유명 대학 탐방은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 여행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돌아오는 날 비행기가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오전에는 슈리성을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보며 가벼운 쇼핑을 한 후 호텔에 맡겨둔 여행가방을 찾아 공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슈리성은 숙소가 있는 국제거리에서 모놀 레일을 타고 6~7 정거장을 지나 내려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 정도 되었다. 걸어서 20분쯤으로 알고 왔기에 날씨만 좋으면 여유 있게 산책하듯 걸어가려 했는데 비도 조금씩 뿌리는 데다가 후텁지근해서 택시를 탔다.
슈리성은 2차 대전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되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니 그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건물들이 붉은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중국풍인 듯 느껴진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을 융합시킨 건축물이라고 한다.
사실 슈리성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만한 호기심은 안 생겼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안 볼 수 있겠느냐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일단 들어가 본다. 만일 다음에 다시 온다면 굳이 성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주변의 자연스러운 정원이나 작은 숲이 이쁘니까 성 주변을 둘러보거나 산책하는 시간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본즉 역시 예상했던 대로 류큐왕국의 영화(榮華)를 보여주는 생활상과 전시물품들이 있다. 또한 각종 전시실이나 기획전시실, 왕조시대의 공예품 들을 볼 수 있다. 난 그저 쓰윽 들러본다. 군데군데 지키고 있는 안내원들의 밝은 미소가 보기 좋다. 게다가 뭔가 감시하거나 지키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도와주려는 모습으로 거부감 없는 자세로 보인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슈리성의 정원이 촉촉하니 고즈넉하다. 처마 밑에 앉아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노라니 새삼스러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대충 훑어보고 나오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마침 하루에 두 번씩 하는 공연이 곧 시작한다고 해서 보기로 했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움직이며 표정 없는 얼굴로 절도 있는 리듬감 표현의 춤이다. 몇 개의 무대를 보았는데 이를테면 우리의 꼭두각시 춤이나 민중들의 노동춤, 또는 민속춤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별 기대 없이 봤는데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일본어를 모르긴 하지만 자막에 한자도 많이 섞여있고 눈치로 대충 짐작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우리의 민속춤도 그렇듯이 손끝과 발끝의 섬세한 놀림이 춤을 보는 묘미를 준다.
그 사이 비가 조금 그쳐서 성곽으로 올라갔다. 천년만년 그 자리를 지킨 이끼 낀 긴 성벽을 보면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얽히고 설킨 나무뿌리들이 그 땅을 단단히 해주었겠다.
일본의 옛 국왕들이 머물던 성곽에 서서 오키나와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내겐 아무런 의미도 되어주지 않지만 이젠 단순히 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겨진 공원에서 적당히 휴식의 시간을 즐길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길 내려와 시내로 나오는 모노레일에 오르니 또 비가 내린다. 내 기억 속의 오키나와는 두고두고 무덥고 비 내리는 오키나와 일 것이다. 모노레일에 오르니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창 밖으로 흐른다. 우산을 든 여행자들, 더러는 비 오는 날의 불편한 여행으로 기억하겠지만 훗날 그 또한 즐거운 기억일 것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
그곳으로 가는 길은 분위기가 있다.
안개처럼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주어 아득한 바다가 마음을 더 흔든다. 그리고 빗방울 송골송골 맺힌 초록의 만좌모 벌판이 눈에 가득 들어와서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바다까지 보여주니 더 말해 무엇하리.
눈 앞의 바다에선 유유자적 뱃놀이도 한다. 멀리 해안선을 따라 멋진 리조트에서 쉬며 제대로 휴식하면 더 좋겠다. 그 드넓은 바닷가 들판에 들꽃과 기암괴석도 함께 한다. 필자의 만좌모 여행은 여기까지가 좋았다.
이런 절벽의 바위 하나 보러 무더위에 예까지 올 일인가 싶었다. 물론 기나긴 세월 속에 침식된 코끼리 형상은 볼만하지만 엄지 척 올려주고 희귀한 비경에 탄성을 지르며 강추할만한 곳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름 그대로 만좌모답게 많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일본 오키나와현. 코끼리의 코 모양으로 침식된 류큐 석회암의 단애와 그 위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 곳. 류큐왕 쇼케이가 '만 명이 앉아도 충분한 벌판'이라고 하여 만좌모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오키나와의 나하공항에서 만좌모까지는 자동차로 약 1시간여 걸리는 거리다. 나하의 버스터미널에서 운행되는 버스로는 약 1시간 반정도 걸린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풍경에 신나기도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전환도 하면서 가끔 느끼는게 있다. 어딘가 느낌이 비슷하게 연상되고 비교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좌모의 코끼리 바위를 보면서 몇 년 전 에서 보았던 절벽이 생각났다. 마치 빠삐용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탈출을 꿈꾸던 곳일 것 같은 절해고도의 그곳. 그곳에서 남태평양을 경관을 바라볼 수 있고 오랜 침식과 퇴적으로 겹겹이 형성된 틈이 많이 생겨서 갭(gap) 바위라고도 한다는 곳. 그 두 곳이 겹쳐져서 생각나는 바위였다.
만좌모를 떠나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는 길의 파인애플 농장에서 파인애플도 먹고, 파인애플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이것저것 둘러보며 느릿느릿 놀다 쉬다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하에서 직접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려면 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80년대 초 까지 미군시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런 특성을 살려 면세점 등의 상권이 형성된 곳이어서 지갑 두둑하신 분이라며 여행가방에 담아올 만한 것들이 좀 있다. 누구라도 눈에 들어오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인 대관람차는 일본 영화에 나와서 유명세를 탔고 멋진 저녁노을을 볼수도 있어서 인기다. 그 옆으로 있는 선셋 해변을 즐길 수도 있고 쇼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곳에서 다리를 쉬면서 저녁을 먹었다.
예쁜 집들도 많고 미군들이 주둔했던 곳이어서인지 스테이크가 유명하다는데 구미가 당기지 않아 나는 vegetable curry를 먹었다. 구운 가지와 채소가 듬뿍 들어있어서 보기만 해도 먹음직했고 맛도 good~. 파스타에도 아낌없이 해산물이 올라있어서 이 또한 좋았다.
내내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했던 여행자의 하루가 간다. 점점 검푸른 밤이 내린다.
머릿속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았던 하루. 여행이 주는 효과가 이런 게 아닌가.
뒤엉킨 머리를 말끔하게 헹구어서 돌아오는 것.
통상 어딜 가나 꼭 들러봐야 할 곳이란 게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런 곳이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고 내 마음대로의 코스를 다니곤 했다.오키나와 여행 중 츄라우미 수족관((沖縄美ら海水族館)은 꼭 들러보는 코스라고들 하는데 이곳 역시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즐거운 곳 같았다. 그러나 청정한 오키나와 바다를 보여주는 아시아 최대의 수족관이라 하며 꼭 들러야 한다 해서 할 수 없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는 간간히 뿌리는 비와 함께 습한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족관은 총 4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방대함이란 가히 어마어마하다. 아주 오래전 홍콩에서도 이런 수족관엘 갔던 적이 있는데 내부가 거의 흡사했다.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이고 일본인 여행객들도 꽤 많이 보러 온다는 명소라고 한다. 오키나와현이 일본에서는 우리의 제주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8m의 고래상어나 쥐가오리, 산호초나 심해의 생물들의 풍부한 어종과 신비한 풍경들을 생생하다. 물론 야외에서는 다이내믹한 돌고래쇼가 있는데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관람하는 여행객들이 몰려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바닷속 풍경에 더위를 식혔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흐리고 후두둑 빗방울을 뿌린다. 수족관 건물 아래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면 에메랄드 비치가 있었다. 수질이 AA등급으로 코발트블루의 바다 빛깔로 유명하다고 한다. 구름이 덮이며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고 해변 쪽으로 오는 여행자들도 별로 없다. 인적 드문 해변을 조용히 한 번 둘러본다.
어차피 기왕 왔으니 샅샅이 둘러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건너편 쪽에 있는 해양박물관과, 그 아래쪽에 민속촌처럼 생긴 아주 오래된 옛 마을이 있었다. 여행자들이 거의 와 보지 않아서 관리하는 직원들이 한가로이 있다가 반가이 맞이한다. 어릴 적 읽었던 일본소설이 떠오르던 풍경들이다. 높은 기온과 습도에도 추억어린 듯한 마을을 둘러보니 지친 마음을 상쇄해 주는 듯 하다.
모두 돌아보고 나오니 츄라우미의 바다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이렇게도 후텁지근하고 짜증유발의 날씨는 지금도 기억난다. 고온다습으로 미칠 것 같았던 날씨였다. 어떤 계절이나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관없이 여행했었는데 이젠 인내심이 부족해진 건지 요즘의 여행조건에 계절과 날씨를 빠뜨릴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녀오고 나니 좀 더 잘 참고 찬찬히 살피며 다녀보고 사진도 잘 좀 담을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여행이란 가끔씩 이렇게 일상에서 떠올리며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기억으로 또 하루가 쌓여가는 것이 아닐지.
다리(橋)로 유명한 곳은 많다.
건축공법이나 조형미로, 또는 긴 길이로, 휘황한 조명으로, 전통미나 주변의 멋진 풍광으로, 전설 또는 유명한 사연이 있거나 하는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 오키나와 북부의 고요한 섬에 바다색이 이쁘고 길고 긴 다리로 알려진 코우리 대교 (古宇利大橋)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내가 보았던 고우리 대교는 1960m의 기다란 길이가 여행자들을 달려보고 싶게 한다.
그런데 코우리지 섬과 본 섬을 잇는 중요 역할도 있었고, 오르막 내리막의 언덕이 있는 약 2Km의 다리여서 시원하고 멋진 풍경을 바라보기에 최상이라는 면도 많이 어필된 것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공효진과 조인성의 드라마에서 멋진 드라이브 씬으로 유명해져서 한국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리 아래 펼쳐진 양쪽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마치 남태평야 어딘가를 연상하게 한다. 필자가 갔을 때는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씨여서 푸르른 하늘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바다는 청정한 색감의 여름바다였다.
이제는 다리(橋)가 예전의 강 건너 저 편으로 건너는 수단에서 보고 즐기는 감성의 역할도 포함된 지 오래다. 코우리 대교도 그런 이유로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교량의 미적 감각과 현대인들의 심리를 어루만지는 스피드나 풍광이 빠질 수 없는 중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키나와 남부에 숙소를 두고 북부로 두 시간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남국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자동차로 달리면 2분 정도의 거리인 코우리 대교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면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 속 깊은 곳의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듯하다. 야자수 나무가 가로수길이기도 하고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과일들이 흔하게 보인다. 햇빛 느낌도 우리의 여름과는 다른 뜨거움이 있다.
다리를 건너 차에서 내려보니 해변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그 바닷가를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어딜 가나 셀카놀이도 흔하게 본다. 젊은 청춘들의 발랄한 모습들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덥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간간히 바닷바람이 분다. 아직은 조용한 바닷가, 연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 좋은 곳이다.
근처엔 파인애플이나 곡류, 비치웨어 등을 파는 가게도 있고 푸드트럭엔 먹음직한 시푸드들이 군침 돌게 한다. 약 1000엔 조금 넘는 새우요리가 유명하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근처의 풀빌라나 전망 좋은 숙소에서 며칠 푹 쉬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거길 나오며 천천히 돌아보고 나오니 길고 긴 다리는 막 시작된 여름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쭉 뻗은 다리 위를 달리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잊게 해준다. 언제든 다시 한번 달려보고 싶은 고우리 대교다.
코우리 섬 古宇利島(고우리도)는?
일본 오키나와현 나키진 무라[今歸仁村]에 위치해 있고 면적은 3.12㎢다
일본 오키나와 섬의 북부, 모토부 반도[本部半島] 동안(東岸)에 있는 운텐항[運天港]에서 연락선으로 약 10분이 소요되는 시오야만 [塩屋灣] 입구에 위치한 섬이다.
오키나와 나하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40분 정도.
일본에서 건강한 노인들이 대대로 많이 살아 장수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의 개발 등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장수촌의 특징 또한 ‘백세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건강한 노후야말로 ‘백세인생’을 즐길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의료기술과 건강보조식품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백세인생’의 힌트를 일본의 대표적인 장수촌에서 찾아보자.
지난 2010년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전국 평균수명에 따르면, 남성은 나가노현 마쓰카와촌(長野県 松川村)이 82.2세, 여성은 오키나와현 기타나카구스쿠촌(沖縄県 北中城村)이 89세로 집계됐다. 톱 30을 살펴보면 남성은 나가노현이 40% 넘게 차지했고, 여성은 오키나와현이 20%를 웃돌았다. 특히 나가노현은 2013년 발표에서도 남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남성은 나가노현, 여성은 오키나와현
장수 요인에 대해서는 고령자의 높은 취업률, 지역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신토불이 식생활, 전국 2위의 온천 숫자, 주민과 밀착된 지역의료 등이 언급됐지만, 안티에이징 연구의 1인자인 시라사와 다쿠지(白澤卓二) 교수가 나가노현 북부의 산골인 다카야마촌(高山村)을 집중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시라사와 교수는 장수의 비결로 식사, 운동, 보람 등 3가지를 꼽으면서, 다카야마촌의 고령자들은 그 지역의 야채와 과일, 면역력을 높이는 된장 등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한 옛날 식생활을 계속 지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형적인 산골이라 마을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65세 이상의 고령자 대부분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어 일이 삶에 대한 보람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밖에도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야마다(山田) 온천을 비롯해 다카야마촌에는 온천이 여덟 군데나 있어 온천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온천욕을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칼로리 소비를 촉진해 신진대사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온천 성분에 따라 효능이 달라지지만, 야마다 온천의 유황천은 모세혈관을 넓혀 혈압을 낮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온천은 몸뿐만 아니라 기분도 편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스트레스와 함께 늘어나는 아밀라아제와 같은 물질을 크게 감소시킨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오키나와 장수마을, 오기미촌
오키나와에서 자주 쓰는 ‘하라하치부(腹八分)’라는 말이 있다. 즉 식사를 할 때 전체 포만감(飽滿感) 중 80% 정도 만족할 때까지만 먹고 배가 부르기 전에 수저를 놓는다는 의미다.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는 식습관을 가진 오키나와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기미촌의 노인들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문화·전통 예능이다. 나무들이 우거져 푸른 숲을 이루고 찬연한 빛을 쏟아내는 태양, 맑은 공기와 맑은 물 등 천혜의 자연 속에서 지내는 유유자적한 삶을 꼽을 수 있다. 서두르지도, 무리하지도 않으면서 느긋하게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낙원의 시간’이야말로 자랑할 만한 장수 비결이다.
둘째, 오기미촌 사람은 일본인들의 평균적인 식생활과 비교할 때 육류를 많이 섭취하고, 녹황색 채소의 섭취량이 3배가량 많으며, 두부와 같은 콩류 섭취도 1.5배 많고, 과일 종류도 많이 섭취한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소금 섭취량이다. 일본 후생성이 권장하는 1인 1일 소금 섭취량은 10g인데 오기미촌은 그 목표 이하인 9g밖에 안 되는 지역으로 보고됐다.
셋째, 활발한 사회활동이다. 오키나와의 온난한 기후는 1년 내내 야외활동을 가능하도록 해주는데, 현재 오기미촌의 총인구는 약 3500명이지만, 이 중 90세가 넘는 장수 노인은 80명이나 된다. 이 마을의 노인들은 ‘살아 숨 쉬는 한 현역’이라는 의식이 강해 고령자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밭일을 하거나 마을의 전통 산업인 파초포의 실을 뽑는 등 노동을 하며 마을 행사, 봉사활동과 같은 사회활동도 열심히 한다.
넷째, ‘상부상조(유이마루, ゆいまる)’의 정신이 뿌리 깊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유이마루’란 간단하게 말하면 마을 사람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며 서로 돕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사탕수수 수확, 모내기 등의 농사일뿐만 아니라, 집 신축이나 무덤 공사, 마을 공공사업과 같은 봉사활동 등을 포함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품앗이 정신과도 통한다.
다섯째, 게이트볼과 노래방을 즐긴다. 마을 곳곳에 마련된 게이트볼 경기장에는 날씨만 좋으면 많은 사람이 모여 해질녘까지 지치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또한 노래방에서도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사람이 많다. 고독하게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장수촌의 몰락, 타산지석으로
야마나시현(山梨県) 유주리하라촌(棡原村)은 1968년 도호쿠대학 교수와 의사 등 전문가들에 의해 ‘일본 제일의 장수촌’이라고 불린 뒤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평지가 적고 경사진 산비탈을 이용한 밭일을 주로 했고 식생활은 고기와 생선, 보리와 잡곡, 마, 콩, 야채 등을 주식으로 했다. 노인들은 80세, 90세가 넘어도 원기왕성하게 밭에 나가 일을 했는데, 장내 세균을 조사한 결과 비피더스균은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웰치균은 적어 아주 건강한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허리와 다리가 건강한 덕분에 심폐기능도 활발한 상태를 유지, 심장병과 뇌졸중 등 생활 습관병 환자도 보이지 않았으며, 암으로 죽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제일의 장수촌 마을은 점점 그 명성을 잃어갔다. 1953년 널찍한 도로가 개통되면서 이 도로를 통해 풍부한 물자들이 마을로 들어왔는데 당연히 그 물자 중에는 고기와 생선 등의 식재료들도 있었고, 전통적인 거친 식사는 서구형 식생활로 급격하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80~90대 노인들은 전통적인 먹거리로 식생활을 이어갔지만, 그 자식들인 50~60대들은 거친 밥상보다는 부드러운 밥상을 선호했고 우유, 빵, 햄, 요구르트, 컵라면, 과자 등 서구형 식생활에 익숙해져갔다. 그 결과 젊은 세대들은 점차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 생활습관병에 걸렸으며,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자식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의 장례를 치루는 기현상 속에 장수촌의 존재감도 사망선고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이 차이가 얼마 없는 진짜 남매를 알아채는 방법 한 가지가 있다. 원활한 관계를 위한 친절한 안부는 없고 퉁명스럽게 다짜고짜 본론부터 들어간다면 100%다. 멋진 추억여행이 있다기에 만난 김미혜(42)씨와 김대흥(40)씨는 완벽한 남매 자체였다. 화창한 봄, 꽃향기 살짝 풍기던 어느 날. 인사인 듯 인사 아닌 인사 같은(?) 직설 화법 쏘며 대화를 이어가는 남매. 이들이 만나 두서없이 나누는 이야기는 역시나 여행. 부모님과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여행 이야기였다.
해군 출신 부자, 여행에 추억 더하기
“아버지! 저랑 같이 술 마시고 좀 돌아다녀요. 입원하고 나면 한 달간은 못 마시니까 여행이나 함께 하시죠?”
퇴역 군인 아버지와 배우 아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군에서 복무 중 잠수를 많이 한 탓에 생긴 염증으로 아버지 김성준씨가 고막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들 대흥씨의 꿀맛 같은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술이나 마시게 여행을 가자니.
“동해안 해군 부대를 쭉 둘러보고 오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해군 퇴역 군인이시고 저 또한 해군으로 제대했거든요.”
군복을 벗고 다시 그곳으로 가면 어떤 느낌일까? 군부대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근처라도 닿게 되면 그 또한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원도 봉평에서 메밀전병 사 먹은 것을 시작으로 정동진, 통일전망대까지 쭉 훑고 올라갔다. 아버지 김성준씨가 수술을 바로 앞둔 2012년 3월 중순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여행
여행의 행선지가 동해안으로 정해진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흥씨가 찾아낸 빛바랜 아버지 사진. 발견 당시 기분은 소름끼칠 만큼 신기했다고 대흥씨는 말한다.
“해군에 들어가 얼마 안 됐을 때인 일병 시절, 배 위에서 사진 찍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사진을 뽑고 난 뒤 집에서 앨범 정리를 하다가 아버지 젊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됐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와 아버지가 찍은 사진 배경이 똑같은 거예요. 위치까지도요. 소름이 끼쳐서 ‘아버지 이거 뭐예요?’ 그랬더니 ‘그 배, 내가 미국에서 끌고 온 배야’라고 그때서야 말씀하셨어요. 시간을 초월해서 아들과 아버지가 같은 곳에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언젠가 그 배에 가서 꼭 한번 같이 사진 찍자고 약속했어요.”
“늙은이들끼리 한번 늙은이 보러 갑시다”
여행에서 바라던 최고의 장면은 퇴역 함정과의 해후였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의 ‘강릉통일공원’에는 아버지와 김대흥씨의 군 시절을 함께했던 같은 기종의 구축함이 전시돼 있다. 배와 만난 시대와 그 이유는 달랐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오랜 친구임에 분명했다.
“둘 다 군 생활을 마치고 여행 가서 퇴역 배에 다시 올라탄 거잖아요. 다 고물로 만난 거죠. 배는 고물, 아버지는 퇴역 군인, 나는 제대 군인. 이 셋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다. 이 무심, 무뚝뚝, 무정한 부자는 정말 꼭 같은 장소에서 사진 한번 찍자는 말을 제대로 지키고야 말았다. 단둘이 간 여행에서, 단둘이 찍은 사진이 ‘바로 그 위치’란 곳에서 찍은 단 한 장(!)뿐이란다.
“남자들이 다 그렇죠 뭐(웃음). 만나면 술 먹고. 여행으로 서로 더 돈독해진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낮에는 운전해야 하니까 술은 못 마시고요.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젊으셔서 술 정말 잘 드셨어요. 수술 앞두고 어머니가 술 못 드시게 하시니까 제가 아버지에게 술 실컷 마실 기회(?)를 드린 것이죠. 그러고 딱 돌아오자마자 입원하고 수술하셨어요.”
여행 가서 정치 얘기는 금물
“술 먹고 아버지랑 싸우지 말걸 그랬어요.”
술이 부르는 여러 가지 사건 중 하나가 싸움. 대흥씨도 아버지랑 여행하던 중 다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배에 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시작해 천안함 사건으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더니 결국 정치 얘기로 가고야 말았다. 해서는 안 될 대화였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군인으로 한평생을 산 아버지와 저는 분명한 이견이 있었어요. 여행 가서 아버지랑 얼굴 붉힐 줄이야(웃음). 지금은 싸운 것도 웃기지만 좋은 추억이 더 쌓여서 괜찮아요. 이 여행을 계기로 영화 시나리오도 썼고요.”
여행 뒤 김대흥씨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 를 집필했고 2014년 제주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가작’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솔직히 엄마와 딸은 들어본 적 있어도 다 큰 아들과 나이 든 아버지의 여행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아버지와 싸웠던 것도 시나리오에 녹였죠. 단 정치로 싸우는 거 말고 다른 것으로 상상해 썼어요.”
아버지와 단둘이 또 여행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기회만 되면 언제든 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대흥씨.
“아버지랑 함께 군함에 올랐던 것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가 정말 많이 좋아하셨거든요.”
부모와의 여행은 좋지만 늘 고민되는 일
그러면서도 부모님과의 여행이 쉬워졌다거나 편해졌다고 선뜻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쉽지 않아요. 부모님과의 여행은 아무리 자주 여행을 함께한다 하더라도 늘 대단한 각오가 필요해요. 그게 쉽다고 말하면 정말 제가 이상한 사람이죠. 가기 전에 항상 고민해요. 이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가서 맞출 것도 많고요. 그래도 갔다 오면 잘 다녀왔다 생각하게 됩니다.”
김대흥씨는 시시때때로 사진을 찍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시간을 기록한다. 여행은 부모와 가족 모두를 사진에 담기에 아주 적당한 장치 같은 것이다.
“지금 제 핸드폰에도 부모님 사진이 있거든요. 미혜 누나 결혼식 때도 북촌길을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요. 요즘 보면 대부분 부모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부모님과의 여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누나가 여행에 관해 할 말이 더 많을 거예요. 누나는 엄마랑 대만 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잘 놀다 왔더라고요.”
둘째 누나 김미혜씨의 꽃보다 엄마 ‘대만 편’
이제 그럼 김대흥씨 누나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볼까? 김대흥씨는 삼남매 중 막내. 둘째 누나 김미혜씨가 여행에 조예가 깊다고 귀띔해줬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현재 IT업계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미혜씨는 전직 여행작가다. 거짓말 약간 보태 국내외 구석구석 안 가본 지역과 나라가 없을 정도다. 지금도 호시탐탐 여행 기회를 노리고 있다. 미혜씨는 가방에서 앨범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엄마와 대만 여행 갔을 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었어요. 기념도 될 것 같고요.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제가 원래 여행을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엄마랑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늘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김미혜씨 가족은 제주 출신이다. 해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고 종착지는 부모님이 나고 자란 제주가 됐다. 제주에 살고 있는 부모님. 물리적인 거리가 다소 걸림돌이 되지만 엄마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곳에 갈까 찾아보고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첫 외국 여행지는 대만. 이유가 있었다.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을 재밌게 보셨나봐요(웃음). 일본이나 중국 2박 3일로 갈 수 있는 곳을 추천해드렸는데 갑자기 대만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혈액 투석하는 어머니를 위한 맞춤 일정
미혜씨는 고민 끝에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대만을 자주 다녔고 여행 일정도 짤 수 있었지만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어르신이랑 여행을 할 때는 식사와 동선이 문제거든요. 젊으면 모르겠는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 게 힘들어요. 무엇보다 식사를 특히 잘 맞춰주잖아요. 현지식과 한식을 고루 섞어주니까. 자유여행의 경우 자식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걸 눈앞에서 보시니까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패키지는 여행 전에 돈을 미리 지불하잖아요.”
혹시나 패키지여행의 일정이 빡빡하고 버스 이동이 많아서 어머니가 재미없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매 순간 즐기고 따라다니셨다고 했다. 그리고 패키지를 선택한 이유가 또 있다. 어머니의 건강이 문제였다. 어머니 이경숙씨는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한다. 그래서 멀리 가고 싶어도 2박 3일이 넘는 여행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월·수·금 중 하루 투석이 끝난 오후 시간에 여행을 떠나요. 제주도에서 투석하거나 서울에서 할 때도 있어요. 만약 엄마가 속초나 이런 곳에서 여행을 하시게 되면 며칠을 자야 하니까 제가 미리 그 근처 병원을 알아보고 시설이 어떤지 확인하고 예약해요. 그런데 항상 하는 일이라(웃음). 대만 갈 때는 아주 많이 기대하셨고 다녀와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말씀하세요.”
여행남매, 지금도 여전히 여행 계획 짜는 중
작년 미혜씨는 엄마와의 홍콩여행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 몸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어머니의 투석은 여행을 참 힘들게 하지만 해결하고 넘어야 할 일. 그럼에도 미혜씨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짧게라도 여행을 꾸준히 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오는 10월 아버지 김성준씨의 고희(古稀)를 기념해 김미혜, 대흥 남매는 온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중심은 단연 부모님이다. 아이들은 더 좋은 곳에 많이 갈 것이기 때문에 일정 대부분은 부모님 위주로 짤 계획이다.
김대흥씨는 자신과 누나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부모와의 여행이 불편하다는 편견을 좀 깨주고 싶었다고.
“여행 가고 싶은데 불편해서 못 간다구요? 어머니 투석 챙기는 누나 보세요. 그래도 누나는 하루라도 젊을 때 엄마랑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게다가 저희 부모님은 제주에 사시잖아요.”
돈이 꼭 있어야만, 그리고 건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게 부모와의 여행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터뷰 말미, 호기심이 발동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누나와 동생, 단둘이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이구동성으로 단호히 대답했다.
“없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