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장소라는 표현이 있다. 집(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이 아닌 마음 편한 어떤 곳을 뜻한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없이 푹 쉬고 싶은 장소다. 모두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 편하게 교류를 촉진하는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말은 집과 직장이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에 있으나 직장에 있으나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과 직장이 있어야 제3의 장소도 의미가 있다. 집과 직장에서 뭔가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시간 후에 비로소 쉬고 싶다는 의미도 된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에게는 사치스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비슷한 말로 ‘워라밸’이 있다. 일(Work)과 라이프(Life)의 균형(Balance)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해 어떤 CEO들은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균형 타령이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워라밸은 제3의 장소처럼 일과 삶에서 모두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CEO들은 과연 행복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편으로는 워라밸 역시 일과 삶이 다 잘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말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일은 나의 삶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선 긋는 의미가 포함된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말이기도 하다.
다시 제3의 장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말은 미국 사회학자 올덴버그(Oldenburg)가 1989년에 쓴 책 ‘The Great Good Place’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영국의 선술집(Pub)이나 프랑스의 카페처럼 마음 편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제3의 장소라고 표현했다. 제3의 장소는 중립적이고, 누구나 평등하고, 대화 중심이고, 찾기 편하고, 단골이 있으며, 본인이 눈에 띄지 않고, 즐길 마음으로 찾는 공간이자, 또 하나의 우리 집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라는 8개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가볍게 모여 교류하며 쉬고 즐길 수 있으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사회적 위치나 입장을 신경 쓰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더 확장하면 1971년에 창업한 스타벅스도 제3의 장소가 된다. 자기 방이 있는데 굳이 카페에 가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커피값으로 잠시 나의 공간(부동산)을 임시로 사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어떻게 분석하든 카페에서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한다. 그러나 올덴버그가 제시한 개념을 카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적용해보면, 대화나 교류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완벽한 제3의 장소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로컬의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를 로컬과 연결시켜 연구하는 이시야마 노부타카(石山恒貴) 교수는 올덴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의 8개 특징이 유연하게 사람이 지역과 관계 맺을 때 나타나는 특징과 같다고 말한다. 지역의 공간과 장소 가운데 비영리단체의 공간, 독서회, 커뮤니티 모임 장소, 학습회 등이 제3의 장소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대화와 교류를 더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목적 교류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즉 지역이 도시 생활의 대안도 될 수 있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년간 지역에서 청년 창업이 많이 일어났을 때, 초기에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등을 많이 보았다. 지역에는 소비자도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간은 한꺼번에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에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졌으니 새롭고 예쁘고 좋다며 모두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주민들은 공간이 너무 예쁘고 환해서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되나’ 하는 이질감만 들어서 모두의 공간은 아닌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갤러리 같은 곳에서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망설임을 느끼는 것처럼,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간이 의외로 삶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초기의 청년 창업 공간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제3의 장소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들만의 공간’인 상태였다.
어느덧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의 모습도 조금 더 본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3의 장소 만들기에 대한 수요도 더욱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에서는 수도권이나 인근 대도시에서 끊임없이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누구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혹은 U·J·I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장소를 확보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한달살기를 하든 워케이션을 하든 귀농・귀촌을 하든 우리가 원하는 제1의 장소는 일단 안정된 주거 공간, 즉 집이다. 그러나 여전히 집과 직장 외에도 어울려 지낼 수 있고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제3의 장소도 필요하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제3의 장소나 워라밸이 아니라 집, 직장, 제3의 장소 간의 ‘균형’이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에 대응한다며 전개하는 정부의 지역소멸대응기금이나 수많은 지원사업에서 그런 본질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노인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의 인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노인의 정신 건강과 복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과거의 노년 세대를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지칭하듯,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생애주기 확대와 함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는 말 그대로 전국의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하고 생활관리사를 파견해 생활을 돕는 기관이다. 2011년 처음 기관이 설립되었을 때는 독거노인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2020년부터는 노인 부부 세대까지 아우르는 중앙노인돌봄지원기관으로 발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기관의 역할이 재평가되는 계기였죠. 전염병 공포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어르신들이 저희 생활지도사들만은 환영했으니까요. 단지 마스크나 생필품을 전달해서가 아니라,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저희가 유일한 사회와의 소통 창구였죠.”
마음의 병, 우울증이 대표적
특히 노인 세대의 정신 건강 관리에 한몫했다. 독거노인들은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고 김 센터장은 지적한다.
“우울증이 가장 흔하죠. 아무래도 노년 세대의 상당수는 독거노인이고, 홀로 지내다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기 마련이에요. 특히 코로나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어요.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은둔형 질환자도 많아요. 이 밖에도 최근에는 감정기복이 심한 조현병이나 저장강박증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센터가 참여하고 있는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는 일반적인 직접 서비스 외에 우울형과 은둔형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기관에서도 이들을 가볍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우울감을 가진 분들은 일단 우울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죠. 자존감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본인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요. 그래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력이 생기니까요.”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매일 안부를 확인하며 우울감을 줄이고,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유도한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게 하고, 식사를 함께 만드는 등의 방식이다. 우울감이 심하면 의료기관과 연계해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도록 한다. 우울감 해소를 위해 기업들과 협력해 첨단기기를 보급한 것도 센터의 성과다. 센터는 SKT와 업무협약을 맺고 인공지능 기반인 NUGU 비즈콜을 보급해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의 안부를 확인했다.
우울증은 이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인식도 과거에 비해 나아져, 노인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거나 치료에 협조적인 편이라고 김 센터장은 설명한다. 문제는 은둔형 어르신이다.
찾기도, 대하기도 어려운 은둔형
“은둔형 어르신은 남성이 많아요. 황혼 이혼을 했거나 비혼인 상태에서 퇴직 후 사회와 단절된 경우죠.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요. 전입 절차를 밟지 않은 무연고인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장기 투숙하거나 고시촌 같은 곳에 머물러 외부와의 접점을 찾기도 힘들고요. 문제는 이런 분들이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어려워하고, 위생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자살률도 높다는 점이에요.”
이런 은둔형 노인들은 생활보호사들도 대하기 어려워한다고 설명한다.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문전박대는 기본이고 협박이나 욕설은 예사이기 때문이다. 또 돌봄 인력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성범죄 대상이 될 수 있어,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수고까지 발생한다.
최근에는 저장강박증과 관련한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말 그대로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물건의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많은 물건을 집 안에 쌓아두는 증상이다.
“원주에서 저장강박 어르신을 직접 뵌 적이 있어요. 인지장애까지 앓고 계셨죠. 물이 끊겨 위생도 엉망이었는데, 고장 난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계셨어요. 벌레 꼬인 고기를 봤을 땐 경악할 수밖에 없었죠. 저장강박증은 위생적으로 문제를 야기해 본인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문제가 돼요. 그분의 경우엔 지자체와 함께 수도 공사도 다시 하고, 냉장고도 고치고, 물건도 치워드렸어요. 이런 저장강박증은 물리적으로 물건을 치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재발하지 않아요.”
조현병이나 치매도 노인의 ‘마음의 병’에 자주 등장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이런 병의 경우 본인이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발이 엄청나게 심해요. 우울증은 순순히 인정하시는데, 치매나 조현병은 흥분하면서 화를 내고 대화를 단절해버려요. 심지어 이미 진단을 받았음에도 저희에게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생활지원사들이 의심스러운 소견을 발견하면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해 전문적인 진단과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심하면 노인 범죄로 발전
이러한 정신 건강 악화는 단순히 노인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노인 범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경찰청이나 보험연구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장년층의 범죄는 계속 증가세에 있다. 50대는 강력범죄 증가가 눈에 띄고, 65세 이상의 경우 폭력과 절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증가율은 남성을 웃돌기도 한다.
“힘없고 노쇠한 노인만 생각하면 안 돼요. 이제 체력적으로 중년 못지않은 노인들도 많아요. 성욕이 유지되면서 성범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범죄 이력이 있는 분들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주변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어요. 때문에 기관에서도 생활보호사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들이 쌓이면 결국 돌봄 인력 부족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질환이 아니어도 생활보호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노인들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거나 생활보호사를 가정부 정도로 여기는 경우다.
“소통을 좋아하시는 분은 생활보호사와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딸보다 더 가깝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적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면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경우예요. 금전 거래는 절대 안 된다고 교육하지만, 소액의 무언가를 사다달라고 한다든가 소액을 요구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집안일을 시키기도 하죠.”
때문에 센터에서는 돌봄 인력의 이런 정신적 ‘소진’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관련 교육은 물론이고, 1일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다. 상담이 필요할 경우 일부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 있어도 고립 사례 발생
김 센터장은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 대상자가 아니지만, 사회와 단절되고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노인들도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죠. 자녀가 부동산을 부모 명의로 돌려놓고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재산이나 소득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예외 대상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쌀 등을 긴급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경제적 여력은 되지만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범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정부는 노인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2021년 고독사예방법을 시행하고, 지난 5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전체 사망자 100명당 1.06명꼴인 고독사 발생을 20% 줄여 2027년까지 0.85명 정도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 중심에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 문제에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마음의 병은 다각도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이제 노인들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생활 형태까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요. 정부의 복지 체계가 꼼꼼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이웃이 함께 돌봐주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방송인 박수홍의 친형 박진홍 씨가 10월 7일 구속 기소됐다. 출연료와 수익금 등 연예 활동과 관련된 자금을 횡령한 혐의다. 박 씨의 부친은 “횡령한 재산을 내가 관리했다”며 주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씨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죄를 뒤집어쓰면 큰아들 박진홍 씨를 방어할 수 있고, 친족 간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처벌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친족 간 도둑질에 관한 특례’다. 형법 제328조에 따르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배우자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절도죄·사기죄·공갈죄·횡령죄·배임죄·장물죄·권리행사방해죄 등)에 대해 그 형이 면제된다. 그 외의 친족이라면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배우자의 혈족, 즉 사돈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사돈을 친족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사돈은 친족의 일종인 인척에서 제외돼 법적으로 친족이 아니다.
박수홍 가족 사건으로 주목
박진홍 씨는 2011년부터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며 10년간 박수홍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했다. 인건비 허위 계상 등의 방법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렸을 뿐 아니라 박수홍의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공인인증서를 비롯해 통장 4개를 관리하며 약 29억 원을 무단 인출했다는 것이 박수홍 측의 주장이다. 검찰 조사 결과 박진홍 씨의 횡령 혐의 대부분은 연예기획사인 ‘법인’을 상대로 저질렀기 때문에 친족상도례와는 관련이 없다. 박수홍 개인을 상대로 한 일부 범죄에 대해서도 형이 박수홍과 동거하고 있지 않아 친족상도례 적용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계혈족이기 때문에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박 씨 아버지가 횡령 주범을 자신으로 지목해 친족상도례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박수홍 씨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인터넷 OTP와 공인인증서를 활용해 법인과 개인 통장을 모두 관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박수홍 씨의 계좌 비밀번호조차 모른다”며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붙은 존폐 논란
친족상도례 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했다. 가족 구성원 간 재산 범죄에 대해선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 당시의 입법 취지였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족 공동체주의 사회인 데다, 가정 내에서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친족 사이의 유대가 옅어지면서 가족을 대상으로 한 재산 범죄가 증가했다.
박수홍 사례 외에도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친족 범죄에 더욱 취약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2021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학대 중 92.6%는 가정에서 발생했다. 치매 환자의 친족이 도장을 훔쳐 부동산 명의를 바꿔두거나, 부모의 노령연금을 자식이 가져가는 경우다. 때문에 친족상도례가 현재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의 개정 검토’에 따르면, 한 설문조사에서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 3만 2458명 중 85%(2만 7702명)에 달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형법은 유사 규정을 둔 외국에 비해 친족상도례 범위가 넓은 데다 형 면제가 포함돼 가해자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은 1947년 형법 개정으로 친족상도례 조항에서 ‘동거가족’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절도·부동산침탈죄 등 적용되는 범죄 범위도 한국보다 좁다. 미국과 영국은 친족상도례 규정이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민들의 변화한 인식과 친족상도례에 대해 높아진 관심을 고려할 때, 현시점이 관련 조항 개정 검토의 적기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전화 주실 줄 알고 기다리다 다시 해요.”
“응… 손님 만나는 중이어서….”
“그랬어요? 그럼 그렇다고 문자라도 주시지… 나는 함께 점심하려고 전화했던 건데.”
“손님과 점심 약속을 했던 터라… 미리 말하지 그랬어?”
“미리 말한다고 약속 잡아주실 것도 아니면서.”
“뭐 어쨌든. 그나저나 잘 지내고?”
“네, 저는 잘 지내요. 조만간 점심 사드리고 싶네요.”
“점심은 무슨. 됐고.”
“그럴 줄 알았어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예의 그 ‘손님’이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는 바람에 통화가 오히려 길어졌다. 점심 식사 중에 그 여자의 전화가 왔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 손님과의 자리가 대단히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핑계 삼아 그 여자의 전화를 따돌리고 싶었을 뿐. 손님이라야 등산을 함께 다니는 동네 지인으로 별 용건 없이 그냥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전화했어?”
“보고 싶으니까 했죠.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우리가 얼굴 보고 싶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날 사인가? 아무튼 난 지금 바빠. 그만 끊자고.”
얼굴 보고 싶다며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사이,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이, 껄끄러운 사이. 그렇다, 그녀와 나는 옛 연인 사이다. 눈 씻고 찾으려 들면야 한 자락 추억이야 없지는 않겠지만 그딴 건 찾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수록 씁쓰레함만 남은 관계. 그런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아직도 내게 미련이 있다는 거겠지만, 나는 한마디로 노 생큐!다. 안 그러면 또 뭘 어쩔 건데? 지금 와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다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인데.
사업 실패와 연이은 가정 붕괴
그녀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한 100억 정도 가진 재산가다. 굳이 돈을 강조하는 이유는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다. 그런 조건 좋은 여자가 내게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얼마나 조건이 좋은 남자길래 그런 잘난 여자가 죽자고 매달리는 거냐고? 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렇다고 백수건달이나 제비족은 아닌, 어쨌거나 그녀에게 만만하게 보인 50대 중반 독신남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세 번째 남편감이냐고? 천만에 말씀! 누구 맘대로!
10년 전 나는 사업에 실패했다. 40대 중반이었다. 그 여파로 아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던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자 가족들로부터 보기 좋게 버림을 받았다. 물론 내 잘못이 컸다. 외국 유명 브랜드 의류 수입상을 했던 나는 불황을 맞아 기울어가는 사업체를 정리할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어떻게든 살려보리라 무모한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나를 설득하며 마음 졸이다 못해 인내심이 바닥 난 아내는 반은 홧김에, 반은 살 길을 찾아 미국 친정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정과 사업체가 박살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는 물론 생이별한 자식들의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자살할 궁리만 모색하던 처참한 나날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고통 많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자살 생각으로 가득 찼다. 1년 후 이혼 서류를 보내온 아내의 요구에 이렇다 할 대꾸나 변명 한마디 없이 응했던 것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탓이었다.
그럼에도 늘그막에 외손주 둘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처가의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어쨌거나 두 아이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보다 장래가 밝아진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아내는 나에 대한 원망과 일말의 복수심으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차단한 것이리라.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고 재기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간간이 들어오는 경영 계통 강연 수입으로 그때그때 생활비를 벌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등산과 마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망한 나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아, 그녀는 사업상 나의 고객이었다. 내가 쫄딱 망한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해온 것이었다. 쫄딱 망한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온 거부의 여인. 게다가 한 미모하는 이혼녀. 로또 대박과 맞먹는 행운이 아니냐고? 게다가 아내까지 미국으로 내뺀 상황이었으니. 글쎄, 계속 들어보시라.
나도 처음엔 그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재기를 꿈꿨다. 그녀를, 아니 그녀의 돈을 통해 회생할 가능성을 탐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도 불쌍한 여자다. 그녀의 인간관계, 특히 남자관계는 늘 돈이 중심이었다. 첫 결혼도 두 집안이 서로 돈을 보고 딸과 아들을 교환했던 것이니 애정 없는 혼인 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고, 결국 남편의 외도로 3년 만에 파탄이 났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그녀 측에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탐냄으로써 이뤄졌다. 20년 연상의 재벌급 홀아비, 그녀로서는 재력적 지위가 급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기쁨도 하늘을 찔렀다. 재물에 마음이 꽂힌 사람들은 더 많은 재물을, 권력을 탐하는 부류들은 더 높은 자리를,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무한 인기를 갈구하는 법이니. 사람은 저마다 우상을 모시고 살며, 우상 숭배란 맹목적인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미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돈에 집착하고 돈에 갈증이 든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닌가.
그녀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에너지를 쏟을 곳이라곤 오직 돈에 관계된 것이었기에, 앞뒤 재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화근이 되어 많은 돈을 잃고 그만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두 번째 이혼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만난 것이다. 비록 이혼을 했어도 받은 위자료와 본인 재산 등으로 내게 대줄 수 있는 사업자금은 충분했다.
자, 이런 상황이다. 처음에야 나도 횡재한 기분이었다. 속물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사실이니까. 거처가 마땅찮았던 나는 바로 강남에 있는 그녀의 80평대 아파트로 들어갔고,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됐다. 1년이 지났을 무렵, 한마디로 나는 그녀에게서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오직 돈, 돈, 돈만 알 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돈 타령에, 아마 꿈조차 돈에 대한 것을 꿨으리라.
그녀에게서는 어떤 내면의 향기도, 내적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 책은 고사하고 글 한 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사색에 잠긴다거나 주변이나 일상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자연에 대해서도 교감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아마도 푸른 여름은 만 원권 지폐로, 노란 가을은 오만 원권 지폐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그녀의 아파트를 나왔다. 들어갈 때도 맨몸, 나올 때도 맨몸. 여전히 집도 절도 없었던 나는 TV 프로그램 속 자연인처럼 어느 산자락 빈집에서 한 달가량 몸을 의지해 있었다. 그 후 낯선 소도시로 흘러들어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작은 강연, 독서 모임 등을 이끌면서 내 입을 먹이며 살고 있다.
나와 그녀의 관계에는 환멸만 남고
혹자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면이니 감수성이니 그딴 게 밥 먹여주냐고. 봉을 잡았으니 빌붙어서 몸이라도 편할 수 있지 않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 한번 살아보시라. 입만 열면 돈타령에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나는 열을 준대도 덧정 없다.
만약 그 여자가 그나마 머리에 든 것이 있는 나를 흠모하여 자신에게는 없는 지성이나 교양을 취해보리라는 갸륵함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환멸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애초에 그런 코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서 무엇을 보고, 내가 가진 어떤 점이 그녀를 끌어당겼을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를 자기 재산 증식시켜주고 관리해주는 머슴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디 가서 재산을 불릴지, 하나보다는 둘이 힘이 되니 속된 말로 만만한 나를 ‘꼬붕’으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애초 애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녀에게 애정 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기나 할까. 내가 아는 한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신뢰나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으니. 설혹 내게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는 것에 한해서 허용하는 게 고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녀가 지금도 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불쾌할 수밖에.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지성, 외모, 상식과 자존감을 갖춘 사람이기가 어려울까? 솔직히 그럴 것 같다. 그런 여자들은 남자 또한 엇비슷한 수준에서 만나고 싶어 할 텐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능력 면에서 현저히 기울어져 있으니 두루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 여자들만 꼬인다고 할지. 겨우 한 여자 만난 것을 두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냐고? 내가 설마 한 여자만 두고 그러겠나. 그 사이에 두 여자가 더 내게 호감을 표해왔는데 역시 비슷한 여자들이었다. 돈밖에 없고 천박한. 돈 많고 무식한 여자, 돈밖에 모르는 여자들이 꼬이는 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제게 주어진 숙제를 다 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 같아요.” ‘최초의 대법관 출신 유튜버’로 유명한 박일환(71) 변호사는 40년 넘게 법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사이 직업에는 변화가 있었다. 판사에서 대법관을 거쳐 현재는 변호사 겸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삶에서 법조인이었던 시간이 아니었던 시간보다 더 긴데도 여전히 법을 사랑하는 그를 만나봤다.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 1978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98년 특허법원 부장판사, 2003~200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5년 제주지방법원장, 2005~2006년 서울서부지방법원장, 2006~2012년 대법원 대법관.
박일환 변호사가 법조인이 됐을 당시는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동네나 모교에 축하 현수막이 걸리던 때였다. 현재는 로스쿨도 생기고 많은 변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일환 변호사는 “장점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특허 담당 변호사, 등기 전문 변호사 등 전문 분야를 가진 변호사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짚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조인도 많아졌고, 중요한 법도 달라지고 있다. 박일환 변호사의 법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역사가 보인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법 공부를 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지녔기 때문일 터. 현재 박일환 변호사가 유튜버로 활동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법이라는 것이 지루할 틈이 없어요. 옛날에 있었던 사건은 없어지고 새로운 사건이 계속 나오니 공부를 계속해야 해요. 제가 젊었을 때는 약속어음 문제, 교통사고, 산재 사고 등이 대부분이었어요. 예전에는 교통사고와 절도 사건도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블랙박스와 CCTV가 있으니까 많이 줄었죠. 대신 층간 소음 같은 신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죠. 또 IT 관련 저작권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고요.”
법과 함께한 35년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인 박일환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그때는 1960년대니 직업이 별로 다양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유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 변호사는 스물세 살의 이른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대학 동기들 중에서 시험에 빨리 합격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회사가 많이 생겼는데 종합상사가 특히 인기였다. 동기들 대부분은 회사에 취직했고, 결국 법조인이 된 사람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일환 변호사는 연수를 받고 군법무관으로 근무한 뒤 1978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그때부터 판사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앞서 말했듯이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그리고 ‘이왕 법원에 온 것 방점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법관에 지원했다.
대법관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을 말한다.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특히 대법관은 청문회도 하는데, 박일환 변호사는 탈세·위장전입·표절 등 문제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더불어 현재 박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악플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최초의 대법관 출신 유튜버’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채널은 댓글 청정 구역을 유지하고 있다.
박일환 변호사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2009년부터 2011년에는 법원행정처장도 겸임했다. 그 시기를 회상하며 그는 “1년 365일 계속 일해야 한다. 판결문, 기록물 등 봐야 할 양이 매우 많다. 대법관들은 병이 많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대법관으로서 느낀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전해졌다.
현재 대법원은 상고허가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대법원에 사건이 과도하게 접수돼 적체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고심에서 다툴 가치가 있는 사건은 선별한다는 취지다. 박 변호사는 “사실 대법원에서는 심판만 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변론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아쉽다”면서 상고허가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이 1년에 2만 건 정도라고 해요.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10건 처리하기란 힘든 일이죠. 미국도 적체가 많아서 상고허가제를 도입했어요. 1년에 딱 100건 정도만 대법원에서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중요한 사건을 맡고 변론도 하게 되면 재판의 질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35년을 법조인으로 살면서 수많은 판결을 내린 박일환 변호사.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일까. 그의 대표적인 판결로는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한 것과 ‘초코파이’ 상표와 관련해 어느 회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이 꼽힌다. 또 하나 제주도지사 무죄 판결이 있는데, 박 변호사는 이를 언급했다.
“2007년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에게 무죄를 판결하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원칙’을 적용했죠. 요즘도 그 판결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정보를 수집할 때나 포렌식을 할 때 본인 확인 절차 없이 하면 위조가 가능하고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유튜버로 인생 제2막
박일환 변호사는 퇴직 후 약 1년의 짧은 휴식기를 갖고 2013년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 변호사가 됐다. 왜 변호사를 선택했냐고 묻자 “나이가 60세 넘었는데 새로운 걸 배워서 할 수도 없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불어 지금은 판사 때처럼 치열하게 일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2018년 박일환 변호사는 딸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명은 ‘차산선생법률상식’. 과거 할아버지가 지어준 호로, 한시에 나온 표현인데 ‘저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박일환 변호사가 친근하게 법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 쌓여가자 구독자 또한 점점 늘어났다. 2020년에는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해 실버 버튼을 받았다.
처음에는 영상 촬영을 어떻게 해야 좋은지 전혀 몰랐다. 무작정 휴대폰을 앞에 두고 영상 촬영을 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는 좋은 각도, 좋은 배경 등이 눈에 들어온다. 자막을 입히는 편집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딸이 맡아 하고 있다. 그는 “저도 딸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상부상조하는 셈이다. 딸과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면서 웃었다.
박일환 변호사는 자신의 딸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법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 일종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최신 이슈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조명하고 관련 법을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주제를 정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구독자 대부분은 20·30대로 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제 유튜브에서 특히 많이 본 영상은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이에요. 실제로 회사에서 농담으로 퇴사한다고 했다가 퇴직 발령을 받은 사건을 다룬 것인데,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죠. 또 부모의 빚을 자식이 갚아야 하느냐, 인터넷상 명예훼손은 어디까지인가 등의 영상도 많이 보셨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고, 반응이 좋으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박일환 변호사는 60세가 넘어 70세인 현재까지도 일하고, 심지어 유튜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어쨌든 자기 직업에 전문성을 갖고 3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런 기회도 온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박 변호사는 은퇴 후 무료한 삶을 사는 지인들에게 유튜버 활동을 추천한다. 나름대로 신념도 있다. 유튜버 활동을 일종의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즐겁고 재밌게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하면 전문 유튜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반 회사에 다닌 지인들을 보면 60세까지 일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보통 55세까지 일했죠. 그 사람들은 은퇴한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거든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 기간을 합쳐봤자 16년인데 그에 비하면 17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길어요. 그런데 앞으로 또 17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죠. 한 80%는 그냥 건강하게 살자를 최대 목표로 두고 살아요.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해서 수익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10%도 안 되죠.”
박일환 변호사를 보면서 진짜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단지 똑똑해서,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법과 함께 한평생 살아왔지만 사실 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헌법에서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조항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목숨 내걸고 싸워라’, ‘충신이 되어라’라고 말하는데, 사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념이 인간보다 먼저일 수는 없는 거거든요. 저는 제 인생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죽을 때 편안하게 잘 죽는 일만 남았죠.”
산촌 체험의 범위는 넓지 않고 의외로 단순하다.
① 임산물 채취 및 요리 : 알밤 줍기, 두릅 따기, 산양삼·버섯·산나물 캐기
② 숲길 탐방 : 숲 해설 및 삼림욕, 숲 놀이터, 숲속 음악회
③ 나무공예 : 목공예품 제작, 나뭇잎 조각 및 프린팅
이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산촌 체험은 숲길 탐방이다. 숲길 탐방 중 할 수 있는 체험은 딱 두 가지다. 걷기와 머물기. 세상에 이렇게 쉬운 체험은 없다. 이 중 숲에 그냥 머무는 것을 최근의 신조어로 ‘숲멍’이라고 한다. ‘숲멍’은 사람이 휴양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차원 높은 힐링이다. ‘숲멍’의 명소를 몇 군데 소개한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숲멍’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전나무숲길을 추천하겠다. 강원도 평창의 월정사, 경기도 포천의 광릉수목원, 전라북도 부안의 내소사를 흔히들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길이라고 부른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수도권에 위치한 광릉수목원 전나무숲이다. 500년 넘게 왕실의 능원으로 관리돼온 덕에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규모가 가장 크다.
월정사 전나무숲은 천천히 30분 걷기 코스로서 규모도 적당하고 옆으로 오대천의 맑은 물을 끼고 있어 풍광 또한 다채롭다.
내소사 전나무숲은 이들 중 규모는 제일 작지만, 차에서 내려 내소사로 향하는 진입로를 겸하고 있어서 동선 손실이 없는 가장 효율적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나무, 소나무, 편백나무숲길 등 다양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것을 삼림욕이라 하여 목욕에 비유한 것은 나무가 사람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내뿜기 때문이다. 피톤치드를 마시거나 피부로 접하면 살균 작용을 통해 장과 심폐 기능이 좋아지고 스트레스 또한 해소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의 뜻풀이는 의외로 살벌하다. 피톤(phyton)은 식물체의 최소 단위를 말하며 치드(cide)는 죽인다는 뜻을 지닌 접미사다. 따라서 나무가 사람 좋으라고 피톤치드를 뿜어댄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곰팡이 등 병원균이나 해충 따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독성 물질이 마침 사람에게 약이 됐을 뿐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우리는 나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산림이 체험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피톤치드만이 아니다. 알밤, 두릅, 산양삼, 버섯, 산나물 등 다양한 임산물을 얻어갈 수 있다. 물론 임산물을 얻어가는 체험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우선 산림보호법에 따라 산나물을 포함한 임산물 채취에는 법적 제재가 따른다. 또한 대개의 유실수는 주인이 따로 있는 사유물이므로 함부로 채취했다가는 절도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산촌 체험이란 것이 일정 금액을 내고 제한된 시간 동안 알밤 줍기, 두릅 따기, 고구마 캐기를 해보는 정도에 그친다.
숲길 탐방과 임산물 채취 외에 다른 한 가지의 산촌 체험은 나무공예다. 나무를 재료로 공예품을 깎거나 조립해보고, 나뭇잎 등 부산물을 활용하여 조각을 하거나 프린팅을 해보는 체험이다. 주로 유치원과 초등생을 위한 체험일 것으로 지레 한정짓기 쉽지만 나뭇잎 프린팅은 의외로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으며, 특히 나뭇잎에 음각으로 그림을 새겨 넣는 나뭇잎조각은 최종 성과물이 높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등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국가 자산 활용 측면의 산촌 체험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산촌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라는 것이 매우 한정적이며, 관점에 따라서는 농촌 체험과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산촌에 대한 관심의 문제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인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국민 상식이다. 국토의 70%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시각을 달리해서 바라보면 국가 자산에 대한 방치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치유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숨겨진 자원으로서 산촌을 바라보며 산촌 주변 관광 자원을 매력 있는 체험 콘텐츠로 발굴해야 한다. 그 시작은 산촌 체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될 것이다. 산촌 및 산촌 체험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산림청과 임업진흥원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길 권한다.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실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61세 이상 절도 범죄 피의자는 2016년 1만 4021명에서 지난해 2만 1341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19세 이하, 20~30세, 31~40세, 41~50세의 절도 범죄는 모두 줄었다. 51세~60세 절도 범죄만 소폭 늘었다. 유독 고령층 절도 범죄 피의자만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절도액으로 따지면 특히 소액 절도 범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 새 절도 범죄를 재산 피해액별로 나눈 결과 1000만 원 이하, 1억 원 이하 등 모든 구간에서 절도가 줄었지만 유독 1만 원 이하 소액 절도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만 원 이하 절도는 2016년 1만 1506건에서 지난해 1만 1971건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노인 장발장’이 늘고 있는 셈이다.
절도는 요즘 경찰들 사이에서 가성비 떨어지는 전통 범죄로 인식된다. 도둑질해도 취할 수 있는 돈이 크지 않은 데다, CCTV로 발각될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생계가 나아지지 않고 코로나19로 경제위기에 내몰리자 노인들이 소액 절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만 일각에선 생활이 빈곤해진 것은 개인의 책임인데 세금을 낭비하며 사회가 구제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노인 세대가 한창 경제활동을 할 때 각종 사회복지가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령층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될 때 가입 기간과 기업 규모 같은 조건 때문에 많은 노인이 제외됐다”며 “한국사회에서는 노인을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복지 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후 고용불안정이 오면서 복지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가족까지 노인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 노인 빈곤율은 줄어들겠지만 지금 노인 세대를 손 놓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되더라도 노인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돈뿐만 아니라 의료, 주거, 여가 등 다양한 사회 복지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재훈 교수는 “노인의 사회복지서비스,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주택이 필요하다”며 “미래에 고령 인구가 더 많아질 것을 공공임대처럼 단순 주거 공간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관리를 받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1분기 만 65세 이상 노인 범죄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다. 5%대 수준을 맴돌던 2014년과 비교하면 7년 만에 두 배나 증가한 수치다.
22일 대검찰청이 발간한 범죄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피의자 중 만 65세 이상 고령자(2만7321명) 비율은 10.0%로 지난해(8.8%)보다 1.2%포인트 상승했다.
65세 이상 피의자 비율을 범죄 유형별로 보면 절도·사기·횡령 등 재산범죄(7336명) 비율이 11.5%로 가장 높았다. 노인 재산범죄 비율은 지난 1년간 2.4%포인트 뛰어올라 전체 상승세를 주도했다.
또 폭행·상해 등 폭력 범죄를 저지른 65세 이상 피의자(3814명) 비율도 1년 전보다 1.2%포인트 상승한 8.0%를 기록했다.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390명) 비율은 6.7%, 교통범죄(8106명) 비율은 10.5%로 지난해(6.2%·10.5%)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자 비율의 상승세가 노년층의 신체능력 향상과 함께 코로나19로 정서적 고립감이 강화된 탓이라고 분석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자녀들과 만나지 못하고 사교활동을 하지 못하는 노년층이 많아지자 사회적 연대 의식이 약화되는 등 범죄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또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고령층 생활고와 관련이 깊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고령층 비율이 높았던 대면 서비스 업종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고용이 불안정해진 까닭이다. 또 사회활동을 하는 노인 인구가 많아진 것도 노인 범죄자 비율을 높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21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령 인구 가운데 미취업자가 44%에 달한다. 또한 55~79세 가운데 월평균 연금수령액이 50만 원 미만인 사람이 430만2000명으로 전체 연금 수령자 가운데 60.2%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내변산 탐방센터를 기점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직소폭포까지는 약 2km. 약간의 언덕길이 있으나 소풍길처럼 가뜬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직소폭포에서 내소사나 월명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다.
걷기 좋은 산길이다. 숫제 수묵화로 펼쳐지는 겨울 내변산의 숲길이다. 내딛는 발길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그러자 몸이 환호하며 깨어난다. 산 기운일까, 기분 좋게 엄습해온 어떤 에너지가 근육과 관절, 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걸 느낀다. 몸이라는 탄성체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이는 산길걷기로 얻어지는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깨어나는 게 몸만은 아닌 모양이다. 찬물에 씻긴 듯 정신마저 깨어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완연히 말끔해진 심신으로 자연과 만나는 즐거움이라니. 이를 무상(無償)의 행복이라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오늘은 좋은 날이다.
내변산은 아름다워 예로부터 이름이 높았다. 남쪽의 금강산이라 해 남금강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알아 소금강이라 불렀다. 부처가 설법했다는 능가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저기 산기슭 둔덕에 절이 보인다. 실상사(實相寺)다. 너른 터에 법당과 산신각만 덩그러니 앉아 있다. 과거엔 큰 절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모두 스러졌고, 그걸 근래의 불사로 다시 일으켰다. 연혁은 스산하고 꾸밈새는 허전해 시주하는 불자도 드물겠지. 요즘은 절도 크고 화려해야 인기가 있다. 이게 파행이다. 전각들이 산을 덮고, 불탑이 하늘을 찔러야 부처에 가까워지는가. 아닐 것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화엄의 바다라는 게 부처의 가르침이었다. 절이 작으면 적폐도 적다. 이렇게 보면 작은 절 실상사가 오히려 미덥다.
길은 이제 산의 안통으로 스며든다. 평지 길이 끝나고 소 잔등처럼 부드러운 언덕길이 이어진다. 어느덧 으슥한 첩첩산중이라 풍치도 일변해 어디나 볼 만하다. 눈을 멀리로 던지면, 저마다 우뚝하고 훤칠한 산봉들이 미모 경쟁을 펼치는 걸 볼 수 있다. 도무지 승부를 가르기 어려울 부질없는 경연은 산 아래에서 한결 질탕하게 펼쳐진다. 산의 몸을 어루만지며 교태를 부리는 계곡물과 호수가 경연에 가세한 게 아닌가.
산중의 경연엔 가장이나 성형이 없다. 아귀다툼이나 주먹다짐이 없다. 저마다 순리의 힘과 미덕을 아는 참가자들이 운집했을 뿐이니까. 이 아리땁고도 웅장한 경연을 우리는 ‘조화로운 자연’이라 일컬으며 경이를 느낀다.
선녀탕을 지나 다시 언덕을 오른다. 숨이 차오를 수밖에 없는 비탈과 아슬아슬한 벼랑 가엔 나무나 철로 만든 계단이 설치돼 있다. 덕분에 노약자들까지 쉬 오를 수 있으니 이기(利器)다. 그러나 산중의 지나친 인위여서 생뚱스럽다. 그렇더라도 직소폭포의 허연 물기둥을 바라보느라 투덜거릴 겨를이 없다. 내변산 풍광의 절정으로 꼽히는 폭포이지 않은가. 이 폭포는 바위 벼랑을 거의 수직으로 쏟아져 내려 통쾌한 맛을 선사한다. 수량이 풍부한 철엔 한층 호방한 굉음으로, 세상의 모든 잡음마저 삼켜버릴 기세로 산중을 쿵쿵 울리며 포효하겠지.
직소폭포를 뒤로하고 등산로를 끙끙대며 올라 쌍선봉에 닿는다. 쌍선봉 꼭대기엔 ‘달 보기 좋은 암자’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그리고 명기(名妓) 매창(1573~1610)의 숨결이 서려 있다. 내변산이 있는 부안에서 태어나 일생을 부안에서 살다 떠난 그녀는 조선 기녀사의 전설이었다. 비록 천민 신세였지만 가무는 물론 시에 능한 교양인이었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유교적 윤리의 냉동고에서 벗어난 자유인이기도 했다. 이런 매창이 37세 이른 나이로 죽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애통해한 건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1569~1618)이었다. 두 사람은 10여 년에 걸친 교제를 했던 것이다. 매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허균의 시가 현존한다.
나는 지금 한겨울의 얼어붙은 공기 속에 있는 월명암에서 매창을 생각한다. 매창이 곧잘 찾았던 암자이기에. 매창은 ‘등월명암’(登月明庵)이라는 시를 통해 구도의 마음을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불가에 귀의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일찍이 기방 자체가 절집에 맞먹을 도장임을 깨달았을 듯하다. 경박한 세태를 야유하고 내생의 피안을 노래한 매창의 시편들을 보면 그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하니 매창은 사랑스러운 여인. 고인을 향한 팬들의 사랑은 시간을 초월해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시 구로구가 새해 첫날에 주관한 2020년 해맞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개봉동에 있는 매봉산과 잣절공원을 찾았다. 행사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됐는데 기자가 찾아간 오전 6시에 이미 많은 시민이 와있었다.
잣절공원이라는 이름은 잣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 산에 백사(栢寺)라는 절도 있어서 잣절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울 양천구와 경기도 부천시가 가까이 있어서 양쪽 주민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참여한 시민들은 잣절공원 광장에서 새해 소망 기원문을 정성껏 작성하여 매달아 놓고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추위를 녹인 뒤에 본 행사장인 매봉산 정상까지 함께 올라갔다. 잣절공원에서 매봉산 정상까지는 30여 분이 소요된다.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5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고 구로구는 밝혔다. 해가 구름에 가려 멋진 일출을 보지 못해 시민들이 다소 아쉬워했다.
행사는 매봉산 정상에서 오전 7시 30분에 전 KBS 이정훈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나쁜 기운을 다 날려 보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각 기관장과 다문화가족 등이 차례로 북을 쳤다.
사물놀이 공연팀의 공연과 소망 풍선 날리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행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 잣절공원에 들려서 새해맞이 떡국을 먹고 행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