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엄마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여든셋의 어느 날. 달력 뒷장에 무심코 사과 한 알을 그렸다가 아들의 칭찬을 들었다. 어쩐지 기뻐 읍내에 나가 스케치북 두 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저것 그려서 벽에 붙였더니 사람들이 또 “잘 그렸다”고 했다. 그게 좋아서 그리고 또 그렸다.
나는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학교는커녕 공부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꿈? 생각할 여유 없었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 결혼하고 아들, 딸을 낳았다. 우린 지독히 가난했다. 그저 굶지 않는 것, 네 가족 평안한 것이 꿈이라면 꿈이었다. 하지만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생계를 잇기 위한 노동은 계속됐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낸 나는 추억을 벗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가 됐다.
터를 잡은 곳은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대개 시골의 삶은 무료하다.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심심해서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주워들었다. 아들의 작업실에서였다. 화가인 아들은 낮에는 택배 일을 하고 퇴근하면 그림을 그린다.
“오! 이거 누가 그렸어?”
아들은 내 그림을 처음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색연필과 물감을 건넸다.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고…! 그 후 매일 아침 8시 반, 아침 식사를 한 뒤 그림을 그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을 움직였다.
15년여가 흘렀다. 내 나이 아흔을 넘겼고 현재까지 600여 점을 그렸다. 그동안 수십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미국의 국민 화가’ 애너 메리 로버트슨(1860-1961). 일흔다섯 살에 그림을 시작했다)’라고 부른다.
“15년 차 화가 아흔일곱 살, 김두엽입니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다들 힘냈으면 해요.”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디자인 이은숙
과거에는 나이가 곧 경험이고 지혜여서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었다. 5060세대가 ‘동네 어른’을 추억하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2024년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떨 때 어른이 되었다 느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담 참여자 강용수 작가·백종화 리더십 코치·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 진행 이연지·문혜진 기자
◇강용수 작가(56세,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교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최근 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백종화 리더십 코치(45세, 그로플 대표)
18년 직장생활 후 회사 그로플을 설립,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업 CEO·임원·팀장 등의 리더십 코칭을 한다.
◇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67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다.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아 인지행동·스키마·마음챙김 치료 등을 하고 있다.
진행자 본지에서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어른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책임감 있는’이 꼽혔어요. 2014년 조사에서는 ‘윤리’가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2024년에는 ‘책임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강용수 책임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니체는 타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기대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주권적 개인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어떤 공동체를 아우르는 책임이라기보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백종화 사람마다 책임감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신뢰와 실력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점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될 때 잘해내기 위해 전문성을 끊임없이 확보하는 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희 그러니까 책임이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결과를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과거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부모가 되어 내 자식에게 결핍을 물려주려 하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의사결정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부모가 깨워주고 옷 입혀주고 밥 먹여서 정해준 학원에 보내고, 집에 오면 이 닦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좋든 싫든 올 텐데,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굉장히 불안해하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렵고 두려울 수밖에요.
백종화 조직에서도 의사결정 경험이 중요해요. 리더들이 결정해왔기 때문에 결정하지 않은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구성원들은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리더는 구성원 자신의 일인데 왜 책임지지 않느냐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거든요.
진행자 일상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의미네요. 그래서인지 설문조사에서도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보는 듯한 결과가 나왔어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느낄 것 같은 순간’을 물었을 때 2030은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를, 5060은 ‘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를 꼽았거든요.
최영희 나 혼자도 벅찬데 누구를 돌보겠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적 관계를 70년 넘게 연구한 것이 있는데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가 좋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사람이 고통받는다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고,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나누는 관계를 의미하는데요. 개인주의와는 반대라고 볼 수 있죠. 시대에 따라 우리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기준, 뭐랄까 도덕의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백종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도 있어요. 5060세대는 ‘우리’가 익숙해서 ‘우리 안에서 내가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2030세대는 우리 가족, 우리 회사가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회사라는 개념이라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행자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책·강연·영상 등으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고민에 대한 답도 찾고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비대면으로 어른을 찾는 셈이랄까요?
강용수 사실 제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어른을 찾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어른이라면 쓴소리도 좀 해야 하죠. 다만 남을 가르치려 하고 “내가 겪어봤는데 말이야”라며 나서는 게 아니라, 타인이 어른으로서 인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종화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모든 걸 배우잖아요. 어른한테 고민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지식과 경험이 온라인에 다 있으니까요. 세대 이슈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 이슈라고 봐야 해요. 모두가 똑똑해진 시대라 오히려 젊은 꼰대가 훨씬 많아요. “내가 아는 게 많으니까 내가 맞는데 왜 엉뚱한 소리 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죠. 그런데 SNS에서 보는 것들은 다 결과거든요. 성공한 모습만 보는 거잖아요.
최영희 옛날에는 사회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우리가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뭐 단점도 있고 그래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비치잖아요. 그러니 소위 신화적인 존재가 나오기 어렵죠. 이걸 다시 말한다면,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어른을 정의할 때 아주 완벽한 기준을 들이대는 접근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강용수 공감합니다. 완벽한 어른은 없어요. 고통과 실패를 보여주는 게 어른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려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경험이 오히려 성숙해지는 기회 같거든요. 쇼펜하우어 역시 40대에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외부에서 깨져보면서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패를 거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과정을 보는 게 중요한데, 요즘은 결과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최영희 멀리서 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 따르려고 할 게 아니라, 매일 만나서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죠.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가까이 있으면 학습이 쉬워요. 누군가를 흉내 내겠다는 게 내가 변화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거든요. 거창하진 않아도 나름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 인간다움이 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삼아야 하는 거죠. 삶은 고통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좌절들이 올 때 넘어졌다가도 잘 일어나는 것, 즉 회복 탄력성이 좋을수록 건강한 어른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결과 중심적인 사회이다 보니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서도 ‘가까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83.8%가 그렇다고 했거든요.
백종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어려움도, 고난도, 극복하는 것도 볼 수 있거든요. 어른이라면 그런 걸 보여주는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의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른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에게 배울 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어른, 나쁜 어른이 아니라 나와 맞는 어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최영희 그리스 신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해요. 세대 차이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요즘에는 20대도 10대를 이해 못 해요. 그러니 내가 옳고 내가 항상 중심이라는 생각을 깨야 합니다. 그냥 다른 거거든요.
백종화 맞아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려면 먼저 나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나다움이 먼저인 거죠. 리더십의 핵심 역시 ‘자기 인식’(Self Awareness)입니다.
강용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과정인데요.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개성이라고 봅니다. 부·명예와 같은 외부의 나다움이 있고, 건강·성격 같은 내부의 나다움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기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게 필요하죠. 그걸 알아가는 노력이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어른이 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네요. 다음으로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걸 훈련할 수 있을까요?
백종화 조직에서의 어른을 리더라고 본다면 리더는 태어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과거에는 태어났습니다.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 리더로 성장하는 거라, 그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 팀장, 매니저, 선배 어떤 역할이든 리더에 포함됩니다. 태어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더 다양한 영향력을 키울 필요가 있죠.
강용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면 남과의 차이도 알게 되죠.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도드라진 존재라고 해요. 내가 개성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의욕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가 고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죠. 쇼펜하우어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경험과 학습으로 새롭게 획득되는 성격이 있다고 봐요. 물론 유전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새로운 성격은 아주 어렵게 얻어진다고 합니다.(웃음)그래서 글쓰기, 책읽기 등을 좋은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죠.
최영희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의 모든 선택이나 행동의 결정이 무의식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무의식의 영역을 찾아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 깨달았다고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매일 다니는 산책길을 생각해볼까요. 기존에 있는 길을 걸어요. 그런데 지름길을 내려면 풀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요즘 효율적인 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습니다.
백종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결국 행동이거든요. 행동의 시작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기질과 후천적으로 받은 영향으로 생긴 성격인데요.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행동이 있고, 그것에 익숙해져요. 이를테면 평생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것과 같아요.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려면 어색하죠. 그런데 평생 하던 행동과 반대되는 어색한 행동을 훈련할 때부터 영향력이 달라집니다.
최영희 정신과 진단에 ‘성격장애’라는 게 있어요. 20여 년 전에는 치료가 안 된다고 했어요. 오늘날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스키마 치료도 그런 맥락인데요. 스키마는 자극과 반응 세트의 총합입니다. 백 코치님이 말한 익숙한 행동이라는 게 스키마 이론으로 보면 자극이 왔을 때 내가 하는 반응이 자동화된 거예요. 그대로 살아도 되는데, 그게 자신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를 위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명상 등으로 내 안에 있는 걸 끌어내는 훈련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훈련할 수 있어요. 내 성격은 나 외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백종화 어른이 된다는 것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정답을 고민하는 사이에 시대도 상황도 바뀔 거예요. 결국 기존에 하던 익숙한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됩니다.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해야 변화가 있잖아요. 어색하고 불편하고 실패하겠지만, 그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훈련하다 보면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1991년 3월 15일 그리고 2024년 3월 15일. 정확히 33년의 서사를 쓴 대학로 소극장 ‘학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가수 김민기가 설립한 곳이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들의 못자리가 되어줬다.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이었으며 역사적인 공간이었기에 학전의 폐관은 유독 안타깝다.
3월 15일 폐관 당일. 문을 닫은 학전 앞마당에는 쓸쓸함만이 감돌았다. 2주간 이어진 ‘학전, 어게인 콘서트’도 전날 종료된 상황으로, 장비와 물품 등은 어딘가로 바삐 옮겨지고 있었다.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바로 정리되다니, 너무나도 야속한 속도였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학전을 찾아오는 시민들도 종종 있었다. 학전 앞을 천천히 둘러보며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연출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인 김재엽이었다. 야외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학전에 온 터였다.
19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김재엽 연출가는 학전에 자주 놀러왔고, 문화예술인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학전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학전의 대표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에 출연한 배우 이소영으로, 2월 24일 마지막 공연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김 연출가는 “학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연극인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로가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와중에도 학전은 순수 창작 공연을 지향했다. 사람을 키워내는 예술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고,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이었다”고 말하며, 학전의 정신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본지에 “학전은 제게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떠나 음악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김민기 대표님을 뵈러 가끔 방문하면 큰 나무 그늘 아래 있는 것처럼 편안했고, 시골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며 아쉬움 가득한 소감을 전했다.
수많은 스타 배출한 학전
“모두 다 그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2월, ‘학전 블루 소극장이 2024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밝히며 김민기 대표가 전한 인사다.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아동극 등의 공연을 이어가며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었던 학전. 여기에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고, 위암 진단을 받은 김민기 대표가 투병하면서 결국 폐관을 택했다.
지난 33년간 학전에서 기획·제작된 작품은 총 359개다. 학전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학전은 180석 규모밖에 되지 않는데, 이 작품은 1994년 초연한 이래 4257회 공연, 누적 관객 73만 명을 돌파했다.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는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특히 학전에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설경구는 이 작품에 캐스팅되면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또 학전은 라이브 콘서트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가수 고(故) 김광석은 이곳에서만 1000회 공연을 채웠다. 그래서 학전 앞에는 김광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노영심, 안치환, 동물원 등도 많은 공연을 펼쳤다. 주요 멤버였던 박학기는 “그때의 저는 나름 전성기였다. 학전 개관 멤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을 많이 하면서 김민기 대표님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또한 대단한 영광이었다”고 회고했다.
학전 하면 아동극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독일 그립스 극단의 원작을 김민기 대표가 번안, 연출한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이 대표적이며, 순수 창작물도 많이 공연됐다. 김 대표는 돈을 더 벌 수도 있었으나 2008년 ‘지하철 1호선’ 공연을 돌연 중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이 원했던 아동극 작업에 더욱 몰두했다. TV와 미디어 외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적·문화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터라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김민기라는 존재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폐관 전날인 14일, 학전 소극장에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이는 배우 황정민, 가수 박학기, 권진원, 노래를찾는사람들, 알리, 정동하.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마지막이자 학전의 33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학전 폐관 소식을 들은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연 공연이다. 가장 학전다운 방식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서다.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20회의 릴레이 공연을 펼쳤고, 30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티켓은 단숨에 매진됐으며, 수익금은 모두 학전에 기부됐다. 윤도현을 시작으로 김현철, 윤종신, 유리상자 등 가수와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이정은 등 배우들이 함께했다.
그렇다면 학전은 이제 어떻게 될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장으로 학전 공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내가 없으면 학전은 없다’는 김민기 대표의 뜻을 존중해 ‘학전’ 명칭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 어린이극 등 학전의 기존 사업은 유지한다. 공연장 내부 시설 개보수 등을 거쳐 7월 재개관할 예정이다.
33년의 추억을 남긴 학전은 영영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학전을 일군 김민기 대표는 우리 곁에 있다. 과거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에 노래로 빛이 되어준 그. 이제는 후배들의 응원을 받아 다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학전의 마무리에 쓰라며 1억 원 이상 기부한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김 대표에 대해 “조용하며 나서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묵묵히 책임만 감수하는 순수하고 맑은 시인”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 조승우는 “선생님이 꼭 쾌차하셔서 같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박학기 역시 메시지를 남겼다.
“김민기 대표님은 그저 큰 산이고, 바다 같은 분이셨습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도 필요 없죠. 뻔히 손실 볼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을 해오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분입니다. 우리 문화예술인 모두 대표님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표님의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드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르면 이달부터 식당에서 ‘잔술’ 판매가 가능해질 예정이다. 또한 주류 도매업자가 ‘무알코올’ 음료를 납품하는 것도 허용된다.
기획재정부는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류 판매업 면허 취소의 예외에 해당하는 주류의 단순 가공·조작의 범위를 규정하면서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누어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즉, 주류의 잔술 판매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와인, 막걸리, 위스키 등의 잔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1월 ‘잔에 담아 팔 수 있는 술’의 범위를 ‘칵테일과 맥주’에서 ‘주류’로 확대해 ‘주세법 기본통칙’ 개정안을 내놓음으로서 내부적인 기준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잔술 판매에 대한 규정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에 소주와 같은 주류도 '잔술'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안에는 주류를 냉각하거나 가열해 판매할 때 주류에 물료를 즉석에서 섞어 판매하는 경우를 허용한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또한 종합 주류 도매업자가 주류 제조자 등이 제조·판매하는 비알코올·무알코올 음료를 주류와 함께 음식점에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종합 주류 도매업자는 도수가 1% 이상인 주류만 유통할 수 있다. 현재는 음식점 업주가 무알코올 음료를 판매하려면 마트에서 직접 구매해 판매해야 한다.
앞으로는 음식점 업주가 주류 도매업자로부터 무알코올 음료를 받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제도의 운용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히면서 “입법 예고 기간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0~8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학교 앞 문방구를 가득 채운 프라모델 키트와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즐긴 미니카 트랙을 기억할 것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이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취미로 바꾸고 있다.
누군가는 장난감 취급하고, 누군가는 마니악하다고 평가하지만, 프라모델을 취미로 즐기는 이들은 누구보다 몰입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프라모델은 스케일 모델과 로봇으로 나뉜다. 타미야와 반다이남코가 대표적인 제조사다. 스케일 모델은 네 가지로 나뉜다. 밀리터리, 항공, 자동차와 오토바이, 함선이다. 타미야가 제조하는 스케일 모델 중에는 미니카의 인기가 가장 높고, 로봇 프라모델은 반다이남코의 건담이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어린 시절 미니카와 프라모델을 접해보지 않은 중장년이 없을 정도로 1970~80년대에는 대중적인 놀이였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를 즐기기에는 ‘장난감’ 취급을 받는 데다 심지어 ‘비싸기까지’ 한 취미로 오해받기 일쑤여서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한번 만들기 시작하면 하루 두세 시간은 기본이고, 키트 하나를 만드는 데 서너 달은 매달려야 하기에 기혼자라면 시간, 돈, 아내의 허락 세 가지가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취미로 꼽힌다. 만든 작품들을 집에 두려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가족들의 ‘핍박’(?)도 견뎌내야 한다.
장난감 시장을 주름잡았던 1980년대에 비하면 프라모델은 사양산업으로 꼽히지만, 어린 시절 품었던 프라모델에 대한 로망은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장년의 지갑을 열고 있다.
“건전하잖아요!” 미니카, 밀리터리, 건담 프라모델을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 매력에 대해 묻자 한 명도 빠짐없이 한 말이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도 오해라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이 키트 하나를 사서 완성하는 데 평균 석 달이 걸리는데, 20만 원짜리 키트를 샀다면 한 달에 약 6만 7000원꼴이라며 꽤나 건전하지 않냐는 반론이다. 어찌 보면 구석에 몇 시간이고 앉아 꼬물거리는 게 ‘다 큰 어른이 장난감 하나 붙잡고 뭐하는 거지?’ 싶겠지만, 이들의 세계는 무척이나 심오하면서도 유쾌하다.
달려라 미니카!
본격적인 미니카 붐은 1987년 만화 ‘달려라 부메랑’의 연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이후 서킷과 트랙이 만들어지고, 대회가 열리고, 룰과 규정이 생겼다. 트랙의 모든 레일을 세 번 돌아 출발 지점까지 먼저 완주한 사람이 승리하는데, 코스를 이탈하면 탈락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안정성 두 가지를 다 잡아야 한다. 또한 공인 대회에 나가려면 반드시 본인이 직접 조립한 차로 참가해야 해, 미니카를 취미로 삼았다면 튜닝은 필수다.
‘웨에엥~~~~’ 트랙 세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남짓. 잘 달리는가 싶던 미니카가 점프 혹은 코너 구간에서 튕겨나갔다. “아, 생각처럼 잘 안 되네”라며 강두일(46)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 씨의 작업대 위에는 각종 도구와 미니카 부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트랙에 따라 미니카 튜닝이 달라져야 하니까, 하다 보면 성취감이 엄청 커요.” 강 씨의 미니카 사랑은 어느덧 5년 차가 됐다.
수원 미니카 경기장 ‘브이엑스알’에는 강 씨를 비롯해 미니카에 진심인 ‘아저씨들’이 매일 삼삼오오 모인다. 브이엑스알은 이성원(35) 씨와 최지수(33) 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미니카와 프라모델로 유명한 타미야가 공식 경기장으로 지정한 세 곳(인천, 수원, 부산) 중 한 곳이다. 이 씨는 이전에 VR 체험장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대기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미니카 트랙을 작게 만들어뒀다. 그런데 오히려 아빠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트랙을 보러 방문하는 손님까지 생겼다. 부부가 미니카 경기장을 열게 된 계기다. 수원 브이엑스알의 매력은 개인 지정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주로 40대 초반~50대 초반 고객이 많은데, 대부분 대표님이나 사장님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해서’라는 핑계가 필요해 자녀와 함께 오는 아빠들도 많다고.
매장 내에는 회원들이 받아온 상패 80여 개가 진열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2023년 국내 타미야 미니카 왕중왕전 1위 트로피가 눈에 띄었다. 트로피의 주인공은 김진오(40) 씨. 미니카를 만들기 시작한 지 2년도 안 됐지만 승리를 차지했다. “저희 어릴 땐 문방구마다 미니카 트랙이 있었어요. 또 그때는 뭐든지 고쳐 쓰던 시절이거든요. 아버지 어깨너머로 고쳐 쓰는 걸 봤으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익숙했죠. 지인 추천으로 시작한 취미인데, 다른 취미들의 특징과 매력을 총집합해놓은 게 미니카더라고요.” 김 씨는 미니카의 매력으로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꼽았다.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나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는 게 마치 초등학교 시절 미니카 트랙 앞에 모여 친해진 친구들 같아 재미있다고 했다.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취미라지만, 미니카 인기가 높아져서인지 올해 7월에는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타미야 미니카 아시아 챌린지’가 열린다. 국내에서 국제 대회가 열리는 건 처음이다. 강두일 씨도, 김진오 씨도 예선을 통과해 챌린지에 국가대표로 나가는 게 목표다.
기동전사 건담
중장년에게 미니카 외에 또 하나의 로망은 ‘로봇’이다. 건담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다. 반다이남코에서 제작하는 건담 프라모델(이하 건프라)은 요즘에야 인기가 식었다지만, 중장년에게는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취미다.
공덕수(54) 씨는 건프라 ‘해치 오픈’ 작가다.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로봇 키트를 몇 번 사다가 만들어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30대에 건프라 키트를 처음 구매했는데, 다섯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고 ‘신세계’라고 느꼈단다. 2009년 여름, 건담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싶어 공방을 찾아간 게 본격적인 취미의 시작이었다. 취미는 이제 직업이 됐다. 공 씨가 만든 해치 오픈 작품들이 입소문을 타 작업 의뢰를 받기 시작하면서다. 지금은 작품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수업도 한다. 해치 오픈 설명 이미지를 판매하고 완성품 제작 주문을 받는 사이트 ‘만들자 닷컴’과 유튜브 채널 ‘FHO STUDIO’도 운영하고 있다.
건프라 조립은 방식에 따라 분야가 나뉜다. 설명서대로 만들면 스트레이트, 겉면을 손상시켜 낡게 만드는 웨더링, 건담과 멋진 배경을 만드는 디오라마, 외면에 금속 등 새로운 재료를 붙여 현실감을 높이는 디테일 업 등이 있다. 해치 오픈은 자동차 보닛을 열어 속을 보여주듯, 건프라의 갑옷을 열어 뼈대를 중심으로 2차 창작을 하는 걸 말한다. 공 씨는 해치 오픈이라는 장르를 국내에 널리 알리고 다듬어 정립한 장인이다. 공방에 다닐 때만 해도 2차 창작을 즐기는 사람들이 20여 명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공 씨의 작업실에는 건프라 완성품이 거의 없다. 만드는 족족 판매됐기 때문이다. 2014년 처음 디자인한 이족 보행 로봇 ‘네피림’은 만들자마자 팔렸다. 주로 의뢰를 받아 작품을 만드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로봇인 ‘크샤트리아’는 최고 1200만 원에 팔린 적도 있다. 공 씨처럼 로봇을 분해하고 조립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면 로봇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100% 이해해야 한다. 그는 건프라의 매력으로 ‘커스텀’을 꼽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로봇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제 자신만의 로봇을 만들고자 세계관을 정립하고 로봇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건프라 키트를 모아서 다른 로봇을 만드는 데 부품으로 사용하거나 직접 재료를 자르고 다듬어 만들었는데, 이제는 3D 프린터를 활용하고 있어요. 1~2년 정도 프로그램을 배우고 1년 정도는 프린터로 재료들을 만들어 작업하고 있죠. 머릿속에 상상만 하던 로봇을 이제 직접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건담처럼 저만의 로봇 IP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밀리터리 프라모델
2023년 11월 영화 ‘탑건:매버릭’이 재개봉하면서 중장년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탑건’은 1986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의 지원을 받는 어느 국가와 교전을 벌여 이기는 내용의 액션이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요즘처럼 CG(컴퓨터 그래픽스)가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기에,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실제 항공모함과 F-14 전투기가 등장해 흥행했다. 당시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톰 크루즈가 후속작 ‘탑건:매버릭’으로 36년 만에 돌아오면서 중장년의 향수를 제대로 자극했다.
“‘탑건’이라는 영화 아세요? 이게 바로 그 영화에 나온 실제 전투기예요. 이 오토바이는 톰 크루즈가 탄 거고요.” 유승식(61)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실제 전투기와 오토바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느냐가 스케일 모델의 매력이다. 회계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유 씨는 스케일 모델 중에서도 밀리터리 덕후다. 어린 시절 프라모델을 구하러 다녔고, 일본에 사는 외할아버지가 보내주신 프라모델을 즐겨 만들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아버지에게 일본어로 적힌 타미야 키트 설명서를 읽어달라고 하다가 직접 일본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스케일 모델의 매력은 ‘스토리’다. 실제 존재하는 것들을 크기를 줄여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각 제품마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유승식 씨는 탱크나 전투기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이야기를 알아가는 게 가장 큰 재미라고 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천장까지 밀리터리 키트가 쌓여 있고, 한편에는 일본어 프라모델 책이 가득 찬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스케일 모델을 더 재미있게 즐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는 1991년 초 국내 최초의 모형 잡지 ‘모델러 2000’을 창간했다. 이후에는 군사 잡지 ‘컴뱃암즈’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유튜브 채널 ‘디오라마TV’를 운영하는데, 구독자가 약 1만 2000명에 이른다. 댓글에는 ‘작품으로 만난 분을 보니 반갑다’거나 ‘잡지에서 봤던 분’이라며 알아보는 구독자들도 있었다. 실제로 타미야 프라모델 팩토리 양재 본점에는 유승식 씨 외 세 명이 함께 만든 밀리터리 작품 ‘Lumbering Back to the Base to Refit’가 전시돼 있다.
유 씨는 어떻게 하면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실제 탱크나 비행기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며, 어떤 특징이 있고,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준다. 언젠가는 다시 군사 관련 책을 만들고 싶단다. “이야기를 알면 이 키트가 갖고 싶어지거든요. 저도 창고에 제품이 1500개 정도 더 있습니다. 같이 해야 재미있잖아요. 더 많은 분이 밀리터리 프라모델을 즐기면 좋겠어요.”
올해에는 글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바로 글감이다. 무엇에 관해 쓸지가 문제다. 사실 글쓰기는 ‘어떻게’보다 ‘무엇’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글을 ‘어떻게’ 해야 잘 쓰나요?” 질문의 순서가 잘못됐다. “‘무엇’에 관해 글을 쓸까요?” 이 물음이 먼저여야 한다.
무엇에 관해 쓸지 고민하는 이에게 나는 자신 있게 권한다. “자신에 관해 쓰세요. 자신에 관해 쓸거리는 세 가지가 있어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느낌, 자신의 경험이죠. 이 중 가장 쓰기 쉬운 게 자신의 경험입니다.”
누구나 쓰기 쉬운 ‘경험’
생각과 느낌을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험을 쓰는 건 어렵지 않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이만큼 있다. 내 경험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다. 경험은 또한 차등이 없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돈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가방끈이 길든 짧든 경험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사람이 경험은 더 풍부하다. 또 그렇게 아프고 슬픈 경험, 굽이굽이 험난한 경험이 탄탄대로를 걸은 경험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가르쳐주는 것도 많다.
레프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에서 세 가지 방법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명상과 모방과 경험이 그것이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이 세 가지 가운데 경험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글을 쓰는 데는 명상이나 모방이 더 어렵다.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경험이 더 쉽다.
인생은 경험의 모음이다. 산다는 건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이 모여 삶을 이룬다. 첫사랑, 첫 출근, 첫 등교 등과 같은 첫 경험을 비롯해 숱한 만남과 선택의 경험 등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걸 글로 써보자.
경험을 쓰는 일곱 가지 방법
첫째, 기억을 떠올려보자.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경험을 회상해보라. 떠오르는 기억이 없으면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도 들어보고, 빛바랜 사진첩과 일기장도 들춰보자. 당시 기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둘째,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가장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살면서 가장 후회스런 일은 무엇인가요?’, ‘그 당시로 돌아가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반대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고마웠던 사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요?’,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던 사건이 있다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등등.
셋째, 탐문한다.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수집해보는 것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그분들에게 여쭤보고, 형제자매, 과거 직장 동료, 어렸을 적 친구들을 만나 그 시절 아련한 추억에 잠겨도 보자. 스스로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혹은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내용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의 경험만 글감이 되는 건 아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도 내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된다. 무엇보다 이런 기억 여행은 그 자체로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넷째, 새로운 경험을 한다. 과거 기억만 쓰면 소재의 한계에 부닥친다. 밑천이 금세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살고 있는 현재를 써야 한다. 현재를 쓰기 위해선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 나는 매일 한 일을 기록한다. 기록이 없는 날은 허전하다. 기록이 빼곡한 날은 왠지 뿌듯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혼자서 흐뭇하다. 마치 고기 잡는 어부가 만선을 이룬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 경험하면서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경험이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많다. 현업을 떠난 사람은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그 나이까지 해온 경험이 있어 보다 원숙하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직장에 다닐 때까지는 경험이 제약된다. 맡겨진 일, 시키는 일에 한정된다. 나를 위한 경험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경험이다. 내 말을 하고 내 글을 쓰는 경험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남의 생각을 읽는 경험이다. 나이 들어 하는 경험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어차피 덤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에서의 시도는 하는 만큼 남는 장사다.
다섯째, 미래도 괜찮다.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일, 바라고 소망하는 일도 훌륭한 글감이 된다. 10년 후,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꿈과 목표를 이뤘을 때의 상황을 그려보자. 미래는 상상의 결과물이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말이다.
여섯째, 하지 못한 경험도 글의 재료가 된다. 나는 할 수는 있었으나 하지 않은 일이 있다. 정치인의 일이다. 아마 했으면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하고 싶었으나 못 한 일이 있다. 언론인이 되는 것이다. 아마 했으면 잘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 내용을 글로 쓰면 된다. 이처럼 한 일만 경험이 아니다. 하지 못한 일, 하고 싶었던 일, 안 한 일 모두 경험이다. 미련의 경험, 희망의 경험이다.
일곱째, 독서다. 경험에는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있다. 내 몸으로 한 경험이 직접경험이요, 다른 사람의 경험은 간접경험이다. 간접경험은 책에 널려 있다. 이런 간접경험을 글에서는 사례라고 한다. 사례가 풍부할수록 글은 더 풍부해진다. 책을 읽고 사례를 찾아보자.
경험을 쓰는 방법
이렇게 쓸거리가 마련되면 ‘무엇’이라는 걸림돌은 사라진다. 다음은 ‘어떻게’ 쓸 것인지, 그 문제에 봉착한다.
먼저, 솔직하게 써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관문은 솔직함이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경험을 말하는 용기로 그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오감을 모두 동원하고 육하원칙을 다 집어넣어 써라.
이야기 순서와 비중도 중요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평면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과거에서 미래로 비약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지금 이야기를 하다가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어제와 오늘, 내일을 넘나들면 좋다. 시간뿐 아니라 좋은 일과 궂은일, 도와준 사람과 해코지한 사람, 친구와 천적이 번갈아 등장해야 한다. 또 어떤 이야기는 비중 있게 다루고, 어떤 이야기는 살짝 맛만 보여주는 식으로 무게를 달리해야 글에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경험을 얘기한 후에는 그걸 겪으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써야 한다. 독자들은 글을 재미있게 읽고도, 그것에서 얻는 게 없으면 실망한다. 다행히 모든 경험에는 시사점이 있다. 자신이 겪은 일에 관해 충분히 숙고해서 숙성시키면 깨달음과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바로 그 경험의 의미를 담으면 된다. 같은 경험도 각자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다음으로, 경험의 배경과 맥락을 추가한다. 그 경험이 어떤 배경에서 왜 일어났는지, 무엇이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했는지, 경험이 일어난 사회적·경제적 맥락과 상황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 학교에 진학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면 당시 사회의 경제적 조건은 어떠했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끝으로, 경험을 일반화해줘야 한다. 자신의 경험만 쓰고 말면 독자들이 “왜 당신 얘기를 내게 하는 거야?”라고 물을 수 있다. 그때 일반화를 통해 “이건 나만의 얘기가 아니고, 당신에게도 해당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유사한 경험을 한 유명한 사람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경험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의 것으로 보편화된다.
경험이 주는 혜택
경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선사한다. 그 하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쉰 살 전까지 말하는 게 가장 두려웠다. 어떻게든 말하는 자리를 피했다. 말 안 해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쉰 살 넘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고, 말을 해보니 내가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아니, 말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었다. 만약 쉰 살 넘어서도 직장에 계속 다녔으면 말없이 살았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강의나 방송 일을 경험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경험은 나조차 몰랐던 나를 아는 기회가 된다.
경험은 또한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의 마지막 직장은 출판사였다. 거기서 불과 일 년 좀 넘게 일했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출판업계를 알게 됐고, 내 책을 쓰게 됐다. 당시 나는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우주가 있을까. 정유소, 편의점, 마트, 음식점 등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들 하나하나가 그 안에 우주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 세계에 들어가 경험해보면 밖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가 모르던 신천지가 펼쳐진다.
경험은 치유의 메시지도 준다. 지난 기억을 곱씹어보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기억 모두 의미가 있다. 그런 기억을 더듬다 보면 아픈 상처가 아물고 치유된다.
경험은 다음 세대에게 본보기도 된다. 이 땅에 와서 살았으면 뭐라도 남기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경험이 개인에 머물면 기억에 불과하지만 이걸 글로 쓰면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고,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으며, 다음 세대에까지 전승된다.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그것도 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다. 나만의 경험을 기록하자. 기자같이 오늘의 나를 쓰고, 사관처럼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자.
“저보다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25년 동안 300채의 한옥을 지은 김장권 북촌HRC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한옥을 제일 많이 지었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럼에도 그는 지은 집의 수보다 실패해본 횟수를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김장권 대표는 ‘퍼스트 펭귄’으로 불린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누구보다 먼저 도전해 다른 이들을 뒤따르게 하는 개척자다. 각종 상을 받은 ‘채효당’, ‘#200’, ‘관훈재’, ‘가회동 L주택’에는 그의 도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옥은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그는 ‘한옥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했다. “한옥은 우리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가 버리고 방치했을 뿐. 그러니 한옥으로 들어가자”는 게 그의 뜻이었다. 김장권 대표는 한옥이라는 공간을 다루면서 ‘변화를 주어야 할 것과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을 늘 고민하고 강조한다. 본질과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지어진 한옥을 보면 형태나 구조는 한옥이지만 비례나 모양이 한옥이 아닌 변형된 집이 너무 많다고 했다. 복습과 답습만 해서 그렇단다. “카피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포스트 클래식’한 한옥을 주장한다. 본질을 지키되 현대에 필요한 것들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한옥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대인이 살기에 불편한 점을 하나씩 고쳐나갔다.
김 대표는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 말 정도에 지어진 집들이 우리가 이어나가야 할 한옥의 본질이라고 본다. 본질은 꼭 지키되 몇 가지는 현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에어컨, 냉장고, TV, 전화기 등의 가전제품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또 과거에는 사랑채, 안채 등 대지를 넓게 활용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불가능한 얘기다. 단열도 중요하다. 과거 조상들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흙을 소재로 집을 지었지만, 요즘에는 단열도 잘 되면서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가 많다.
“저는 한옥이 가지고 있는 ‘가구결구식’이라는 양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짜맞춤이죠.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한옥 지을 때 ‘못 하나 안 쓴다’는 말이요. 주먹장이라고 해서 한번 끼우면 빠지지 않고 서로 맞물리도록 설계된 게 한옥입니다. 이런 가구결구식이 한옥의 본질이라고 봐요. 원형은 존중하되, 현대 한옥에 맞는 작법을 담을 수 있겠죠. 요즘은 빗물 재활용이나 태양에너지를 덧대는 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을 담은 작품이 ‘관훈재’다. 21세기 한옥 트렌드를 고민했던 김 대표는 수직적 확장성이 다음 한옥의 트렌드로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 봤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시에서는 한옥을 2층으로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주지 않았다. 그의 설득에 서울시 지원을 받아 처음 2층으로 지은 한옥이 관훈재다. 그는 다음으로 3층 한옥을 만들자고 건축주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단다.
한옥이 가진 ‘공간의 힘’
그는 왜 25년 동안 한옥만 지었을까? 왜 한옥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게을러서 그렇다”며 겸손한 답을 내놨다. 당시만 하더라도 30~40층짜리 건물 하나를 지으려면 엄청난 비용과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김 대표는 사람이 사는 일반 주택을 짓고 싶었다. 요즘은 또 다르다지만 그때는 낭만도 있었다고.
“비 오면 건축주가 술 먹자고 했던 때죠.(웃음) 이사 들어올 집이 아니라 정주의 공간이기 때문에 서두르지도 않았고요. 어음이나 수표로 집 짓는 사람도 없었으니 도산 걱정도 없었죠. 목숨 걸고 하지 않는 일이라 좋았어요.”
일반 건축에 비해 한옥은 진입 장벽이 높은 건축물이었다. 당시에는 궁이나 사찰을 짓는 사람들이 주거용 한옥을 지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지 않는 궁이나 사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건축주에게 ‘살고 싶은 집’에 대해 묻는다. 한옥은 ‘맞춤형’ 집이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과 아파트를 비교하자면 아파트가 담보대출이 더 많이 나온다. 김 대표는 ‘집’이 또 다른 ‘화폐’ 역할을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같은 평수의 같은 형태의 아파트는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화로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은 집집마다 다르게 생겨 비교하기 어렵다. 건축주에게 물어보면 집이 아니라 터만 보고 샀다는 사람이 많았다. 지을 때는 아파트 리모델링보다 더 비싸게 드는 게 주택인데, 잘 팔리지도 않고 대출 담보력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한옥 주택이 아파트와 다르게 가질 수 있는 가치는 뭘까. ‘공간의 힘’이다.
“한옥에는 행태적인 요소가 들어갈 행간이 많아요. 행태라고 하면 문을 열 때 사람이 문고리를 잡는 방식에 따른 문고리 모양,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에 필요한 난간 모양 등을 고려하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지인이 영국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재래시장에 갔다가 울었다고 한다. 물건을 살 때 아주머니가 얹어준 ‘덤’을 보고 ‘아 그래, 이곳이 한국이구나’ 느꼈단다. 서양의 건축은 나무가 휘고 변형되지 않도록 집성을 한다. 하지만 한옥에는 굵은 나무도 있고, 균열이 간 나무도 있고, 문이 딱 맞지 않아 바람도 들어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무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이런 덤과 여백의 문화가 우리 민족성이라고 본다.
“한옥에는 쪽마루나 툇마루가 있어요.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에요. 우체부 아저씨가 오면 잠시 앉아서 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합니다. 덤 문화처럼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만의 요소가 휘어진 석가래, 비뚤어진 문, 마당에 담겨 있습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생활 영역에 흔들림도 파장도 주지 않으면서 방문객을 대하는 유연함이랄까요. 한옥에는 그런 것들을 아우르는 공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살고 싶은 집을 물어요. 주거 공간은 건축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주를 위한 건물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은 생활의 손때 묻은 시간과 삶의 흔적이 완성시키는 것이거든요.”
설계는 감각이 아니라 미학이다
김 대표는 어릴 때 문학 소년이었다. 지금도 소설가를 꿈꾼다. 그는 한옥에서 소설과 같은 매력을 느꼈다. 직유가 아닌 은유가 많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바람이 분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봤는데요. 거기서 비행기 설계에 관한 이야길 하면서 카프로니 백작이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에게 ‘설계는 감각이네. 감각은 시대를 앞서가지. 기술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거야’라고 했어요. 너무 멋진 말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본질을 더하고 싶어요. 저는 ‘설계는 미학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아름다움의 본질이 미학이잖아요.”
많은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주택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사람들이, 먼 미래에 과연 한옥을 찾을까? 한옥의 ‘쓸모’는 미래에도 유효한가 물었다.
“건축은 시간 앞에 거짓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축들을 볼까요? 필요해서 남았나요? 버리고 싶은 건축물이라면 지워졌을 겁니다. 보존된 건물들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게 사회적 가치가 아니어도, 어느 개인에게 가치 있는 건물일 수 있죠. 그러니 건축이야말로 시간 앞에 가장 정직한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바로 보이는 인촌 고택이 100년 된 한옥인데, 이를 현대에 와서 똑같은 한옥으로 지었다고 봅시다. 어떤 집이 더 가치 있을까요? 100년 전에 지은 한옥입니다. 그 이유는 시간의 영속성, 그러니까 그 집에 담긴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그러니 오래된 한옥은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본다. 김 대표는 또 다른 이유로 도시재생을 예로 들었다. 도시재생을 할 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앨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다시 ‘본질과 흔적’으로 돌아온다. 도시재생을 하는 방법으로 ‘멸실형’과 ‘수복형’이 있다. 멸실형은 기존 건물을 없애고 새로 짓는 방식이다. 수복형은 야금야금 본채를 수복하면서 고쳐나가는 방법이다. 아파트는 대개 멸실된다. 그래서 서울이 고향인 사람 중에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가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이들이 많다. 고향이 있지만 고향이 없는 셈이랄까. 그래서 그는 조금씩 수복하며 자리하는 한옥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도시재생이라고 본다.
“설계는 미학이라고 했죠. 그런데 문화가 변하잖아요. 당시에 미학이라고 본 것이 나중에 보면 아닐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을 다시 고쳐나갈 수 있는 게 우리스러운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옥이 가장 완벽한 본질에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옥스럽다’, ‘우리스럽다’고 하는 요소는, 역사와 문화 베이스를 담은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회한을 소급받는 공간, 한옥
김장권 대표는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요소를 담아줄 것이라 믿는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자신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한옥에는 나를 돌볼 공간이 있다. 아파트에는 장을 담글 공간이 없다. 햇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한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는 엄마나 아빠를 위한 공간도 없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묘지 들어가는 것도 경쟁하는 세대라고 했어요. 저도 이제 60이 넘었는데, 우린 여전히 활동해야 하잖아요. 미래에도 유효한 삶, 가치 있는 삶,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하죠. 마치 오래된 미래의 한옥처럼요. 우리는 지난 회한을 소급받고 싶어 하는 나이입니다. 그 회한이란 추억일 수도 있고, 향수일 수도 있겠죠.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공간적 요소가 한옥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곳에서만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가는 한옥을 짓고 싶다고 했다. 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고, 눈 내리는 것도 볼 수 있는, 건축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새와 구름이 공간을 채워주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 말이다.
“흔히 살아온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은 쓸 거라고 그러죠.(웃음) 굳은살투성이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후를 앞둔 우리의 경험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자존감 높은 삶을 살아가는 시니어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구와도 견주지 않는 멋있는 삶을 위해, 내 지난 회한을 소급받고 싶은 마음을 받아주는 곳이 바로 한옥이지 않을까요? 치유하는 공간으로서 오래도록 한옥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연휴. 집안에만 있기 보다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하는 축제와 행사를 살펴보고 신명나게 즐겨보는 것 어떨까?
2024년 제28회 설맞이 작은문화축전
장소 국립전주박물관 일원
일정 2월 9~12일
설 연휴 기간 국립전주박물관이 준비한 문화 축전을 만나보자. 전통민속놀이마당, 소망부적찍기, 공예품만들기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2024 운현궁 설맞이 민속한마당
장소 운현궁 일원
일정 2월 9~12일
설날을 맞아 운현궁 일원에서 흥겨운 민속한마당이 펼쳐진다. 전통놀이마당, 공예체험마당 등을 비롯해 떡국 나눔 행사도 마련했다.
제11회 양주눈꽃축제 눈썰매장
장소 장흥자연휴양림
일정 2월 18일까지
양주시 장흥자연휴양림에서 온 가족이 눈썰매를 즐겨보자. 가족이 함께 타는 ‘줄줄이 썰매’와 동심을 일깨우는 얼음썰매장도 운영한다.
추억의 그때 그 놀이-청춘 여행 8892
장소 한국민속촌
일정 3월 10일까지
한국민속촌에서 만나는 겨울 한정 축제다. ‘청춘 소개팅’, ‘대학입학 학력고사’ 등 중장년 세대의 추억을 소환할 프로그램들로 풍성하다.
근하신뇽! 새해도 9.81파크와 함께해용
장소 9.81파크 제주
일정 2월 13일까지
9.81파크 제주가 청룡의 해를 기념해 기획한 특별 행사다. 설 연휴 동안은 방문객 중 용띠 고객에게 특별한 선물도 제공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엽전으로 떡볶이를 사 먹고, 방 탈출을 즐기고, 시장 재료로 만든 밀키트를 사 간다. MZ세대부터 중장년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전통시장은 더이상 장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온갖 제품과 식재료가 즐비한 좌판 사이를 헤치며 소소한 체험을 즐기는 곳이다.
◇경동시장
“오래된 공간을 활용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느낌을 줘요.” 미국 시민권자 앨리스 김(40대) 씨가 말했다. 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경동시장을 꼭 들른단다. 함께 온 칭 리(대만, 40대) 씨는 방금 체험을 마치고 받은 친환경 화분을 들고 있다. 이제 옛 극장 분위기를 살린 스타벅스 경동1960점으로 가 시간을 보낼 참이란다.
1958년 창업한 LG전자가 1960년에 문을 연 경동시장을 활성화하고자 만든 금성전파사는 열자마자 입소문을 타 하루 3000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오픈 1년 남짓 되었지만 여전히 인기가 많다. 금성전파사 직원은 “MZ세대가 전통시장을 더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중장년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했다. 다양한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경동시장으로 가보자.
※금성전파사 체험 운영시간 11:00~19:00
(고민탈출은 사전 예약해야 이용 가능)
◇수유시장
“수유시장의 식재료로 당일 생산, 당일 판매해서 ‘당당한셰프’예요. 가족이 즐기기 좋은, 술 안주하기 좋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메뉴들을 개발했죠. 1년 남짓 됐는데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김대원 당당한셰프 사무국장이 설명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가 밀키트를 고르고 있었다.
수유시장 내 당당한셰프 오프라인 매장에는 냉장 밀키트 4종과 냉동 밀키트 6종이 준비돼 있다.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도록 양을 늘린 꽈배기 핫도그도 있다. 하루에 얼마나 팔리는지 묻자 김 사무국장은 ‘영업비밀’ 이라며 웃었다. 밀키트는 쿠팡이츠, 네이버동네시장 장보기, 놀장 등 온라인에서도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을 직접 방문해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한껏 즐긴 뒤, 마음에 드는 밀키트를 양손에 들고 전통시장의 신선함을 집까지 가져가 보는 건 어떨까.
※당당한셰프 오프라인 매장 운영시간 09:00~18:00
◇통인시장
“엄마, 엽전 주세요! 제가 낼래요!” 가족들이 엽전을 들고 통인시장 곳곳을 누빈다. 커플, 친구들과 놀러 온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한 상인은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경복궁 근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통인시장 내 ‘도시락카페’에서는 1만 원을 내면 엽전 20개와 빈 도시락을 준다.
엽전은 가맹 가게에서만 쓸 수 있다. 가맹점에는 통(通)이라는 글씨와 함께 엽전 모양의 간판이 입구에 달려 있다. 카페에서 QR코드로 지도를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만두 4냥, 떡볶이 4냥, 김밥 2냥이다. 길거리 음식뿐인가. 연잎밥, 구절판도 있다. 도시락을 채웠다면 카페로 돌아와 음식을 즐기면 된다. 남은 엽전은 환불받을 수 있다. 카페에서는 컵라면, 음료 등도 엽전으로 구매 가능하다. 수저는 무상 제공. 전자레인지도 비치돼 있다. 엽전을 들고 시장의 정취를 물씬 느껴보자.
※엽전·도시락카페 이용시간 11:00~15:00 (주말·공휴일은 16시까지)
매주 월요일·셋째 주 일요일 휴무
멕시코 로스카보스 지역에 위치한 디아만테컨트리클럽 듄스 코스는 멕시코 최고의 골프장이자 세계적인 골프 명소로 손꼽힌다. 2009년에 개장한 이 골프장은 데이비드 러브 3세의 독특한 설계로 모래언덕과 사막, 링크스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파72, 7022야드 규모의 이 골프장은 거대한 사막을 연상케 하는 웅장함과 크고 복잡한 그린이 특징이다.
디아만테컨트리클럽은 ‘듄스 코스’와 타이거 우즈가 설계한 ‘엘카도날코스’, ‘오아시스쇼트 코스’를 포함해 총 48홀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모든 카트 길은 비가 와도 이동이 용이하도록 철도 침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골프장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낸다. 로스카보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하는 이 골프장은 골프 애호가 사이에 꼭 방문해야 할 명소로 유명하다.
사막 같은 모래언덕이 인상적
디아만테 듄스 코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골프장이다. 코스 곳곳에 자리 잡은 사막과 모래언덕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각 홀마다 제공하는 독특한 도전은 골퍼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바다와 연결되는 홀에서는 멕시코 해안선의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골프장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과 평가도 높다. 세계적인 골프 잡지와 평론가들은 디아만테 듄스 코스를 세계 100대 코스 중 하나로 꼽으며 그 품질과 독창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골프 라운드를 넘어 문화적・자연적 가치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증거다.
코스는 거대한 사막을 연상케 한다. 그 규모가 웅장하고 광활하며, 그린은 매우 크고 높낮이의 기복이 있다.
고저 차로 코스 난이도 높아
12번 홀은 거대한 그린 뒤로 모래사장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13번 홀은 티 왼쪽으로 거대한 모래언덕이 압권이다. 그야말로 장엄한 포스에 모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7번 홀(파3, 175/130야드) 짧은 파3 홀이지만 주위가 온통 모래언덕으로 둘러싸여 듄스 코스의 완성을 보여준다. 그린의 높낮이도 심해 파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 코스의 시그니처 홀이라 할 수 있다.
18번 홀(파5, 590/499야드) 페어웨이와 그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짙은 회색과 모래언덕으로 가득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까지 보여준다. 그린 60야드 앞부터는 수직에 가까운 오르막이라 최소 40~50야드는 더 봐야 하는 홀로 스리온이 쉽지 않다. 이 홀도 코스를 대표할 만하다.
이 골프장은 골프를 사랑하는 이에게 단순한 스포츠 활동을 넘어 자연과 예술,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로스카보스 지역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이 골프장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골프 애호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라운드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