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최돈선 님이 제자 최관용 님께 편지를 쓰셨습니다.
벌써 38년이 지났네. 자넬 처음 만난 지가. 이 사람아 자넬 만난 날이 무더운 한여름이었지. 8월의 매미가 지천으로 울어대던 그날, 나는 자네가 공부하는 2학년 2반 교실 문을 열었네.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들어간 자네 교실은 창문을 열어놓아 시원했어. 창가 미루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렸지. 그때마다 미루나무 잎들은 은어떼처럼 바람에 재잘거렸어. 왜 그날 난 그게 선명히 기억났을까 몰라.
먼 바다 섬에서 오셨다고, 유명한 시인이라고,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어서 이 학교가 정중히 모셨노라고… 과장되게 말씀을 마친 교장선생님이 나가신 뒤에도 난 한동안 창밖 미루나무 잎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어. 이윽고 나는 칠판에다 내 이름 석 자를 쓰고 이렇게 말했지. 반가워요,
난 이 나라 남쪽 끝섬 완도에서 왔어요.
그 말에 학생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지. 그런데 그날 유난히도 두 학생이 내 시선을 끌었어. 한 학생은 미남형에 눈빛이 반짝거렸고, 한 학생은 소같이 우직한 인상에 곱슬머리였지. 책상에 앉은 둘의 눈빛이 어찌나 초롱초롱하던지…. 그랬어. 그렇게 자네들과 나는 만난 거야.
당시 강원고등학교에는 소설 쓰시는 선생님이 두 분 계셨는데 자네들은 그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고 있었어. 문예부원인 자네들은 시인 선생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 설랬는지 모른다고 했어. 그래, 그날의 엉뚱한 질문을 내 어찌 잊을 리가 있겠나.
자네 곁에 앉은 눈 초롱초롱한 최준 학생이 벌떡 일어났어. 선생님 한국에서 누가 제일 시를 잘 씁니까. 학생들이 모두 나를 주시했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이렇게 대답했어.
그야 물론…,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그 대답에 학생들이 일제히 와! 환호성을 내질렀어. 책상을 쾅쾅 치는 학생들도 있었다니까? 기억나나?
자넨 그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지. 질문을 던진 최준 학생은 어쩐 일인지 멍한 표정이었고…. 마치 한 방 먹은 표정이었다니까.
자네들은 늘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했지. 하지만 둘은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달랐어. 최준 군은 재기가 넘치는 학생이었어. 글쓰기는 물론이고 운동에도 뛰어난 소질을 발휘했지. 배구, 탁구, 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어. 체육대회 때마다 학급 대표로 선발되어 혁혁한 승리를 따내곤 했지.
최준 군은 재기가 반짝였고 자넨 뚝심이 남달랐고. 그랬어. 확연히 다른 성격임에도 자네들은 단짝이었지. 자네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찾아와 꺼낸 말을 분명히 기억하네. 저희는 강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강원고등학교 문예부를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자네들의 이 오만과 자부심은 어디에서 왔겠는가. 자네들은 정말 시를 사랑하고 시에 온 정열을 쏟기로 결심했던 거야.
그 후 최준 군은 신춘문예와 문예지 당선으로 시작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자넨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장교를 아내로 맞이했지. 그리고 이듬해 강원일보 문화부 기자가 되었네. 바쁜 기자생활 중에도 자넨 이따금씩 내게 찾아와 좀 괴상한 시를 내밀곤 했어. 나는 늘, 생각이 엉뚱한 자네를 두둔했지. 시가 되든 안 되든 그 발상이 남다르다는 데 나는 엄지를 치켜세워준 거야.
아니나 다를까. 자넨 ‘오늘의 작가상’ 최종심에 올랐건만 소설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어. 당시 시와 소설이 함께 겨루는 독특한 작가상이었지. 춘천 출신 최승호 시인이 ‘대설주의보’란 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기억이 나네. 그 후 ‘오늘의 작가상’은 아예 소설 등용문으로 바뀌어버렸어.
하지만 자넨 뚝심의 소유자였네. 이듬해 낙선의 고배를 안긴 민음사 ‘세계의 문학’에 재도전해 당당히 시인으로 등단했으니까. 그 후 난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로 갔네. 그리고 틈틈이 자네 소식을 듣곤 했지.
이보게, 관용이. 그래도 자넨 뚝심의 소유자이네. 서울서 내가 춘천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 자넨 염소를 키우는 농부가 되어 있었지. 밭일과 염소를 키우면서 격일제로 아파트에 보일러 놓는 일을 한다고 했어. 자넨 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지. 전 길을 가다가도 친구나 아는 이를 만나면 얼른 골목으로 피하곤 했어요. 시도 못 쓰는 껍데기 시인, 직장도 없는 백수가 되었으니까요.
언젠가 내가 페이스북에다 자네를 염소시인이라 부르면서 사연을 적은 걸 기억하나? 그래서일까? 자넨 금세 염소시인이 되어 많은 페친과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드디어 자넨 시를 쓰기 시작했네. 길 가다가 골목으로 피하는 일도 없어졌고.
제가 요즘 푼돈을 모아두고 있어요. 시집 한 권 내려고요. 평생 단 한 권뿐인 시집을요. 자네가 그런 말을 내게 했을 때 난 가슴이 뭉클했다네. 그런데 그 모아둔 돈이 갑자기 병마에 시달리는 자네의 예쁜 딸 병원비로 보태어졌지. 그 돈이 있어 참 다행이에요, 하고 자넨 말했어.
빼앗기듯 다 내주고 헐벗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더라도 덕두원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은 꼭꼭 가슴에 품고 싶다. 보석처럼 땅문서처럼 장롱 깊숙이 감추어두고 싶다.
애인처럼 아끼던 염소가 죽어 눈물 흘리며 묻어주면 염소는 밤하늘 별이 되어 시인의 밤길을 초롱꽃처럼 밝혀준다.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 아픈 글인지…. 자네 글을 메모해두었다가 이 편지에다 적어보네. 이 글은 차라리 소슬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아닌가.
그래, 자넨 메모 쪽지처럼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이 아름다운 시가 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가?
결코 외롭다 생각 말게. 자넨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솔직한 시인일세. 춘천엔 염소시인 최관용이 있네. 그 염소시인을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한 노인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길 바라네.
최돈선(崔燉善) 시인
강원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칠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허수아비 사랑’, ‘물의 도시’,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등이 있다. 에세이집으로는 ‘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종이 울린다’가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양양고속도로를 개통했다는데 같이 한번 떠나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대상이 조금 특이했다. 내 절친도 가족도 아닌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란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알게 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번개(갑작스럽게 만나자고 제안하는 것)를 외친 것! 중년 남녀 낯선 이들의 동반 여행! 과연 얼마나 모이고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페이스북 친구들과 난생 처음 마주하다
제보를 받았을 때 과연 이 도발적인 작전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메일을 통해 건네받은 파란하늘 바탕위에 ‘You′ve Arrived’라고 쓰인 포스터가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었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친구는 아니다. 전 세계 사람이 모인 페이스북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한다. 모이자고 해서 호응하고 따를 사람이 과연 있을까? 더군다나 페이스북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사이좋은 댓글을 주고받는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일단 제쳐놓고 이 일을 추진한 이명재씨에게 물어봤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한민국의 중년들이라면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이런 작당모의(?)가 가능할 법도 하다.
“우리 나이대에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 동문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요. 제 페이스북을 봐도 대학 동문을 시작으로 그들과 아는 지인의 지인들이 제 페이스북(이하 페친)친구거든요. 만나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성향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죠. 차 한 대 정도 올까 예상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왔어요. 일이 커진 거예요.”
교육업체를 운영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이명재씨는 연세대학교 공대 출신. 대부분이 연대 동문과 그들의 친구로 구성됐다. 2012년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현재 600명 정도가 페친으로 등록돼 있다.
예상을 깨고 다양한 페친들 모이다
2주 정도 기획했다는 이 모임에 생각보다 다양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속속 찾아들었다. 이명재씨는 이 모임을 위해 사전 답사까지 하는 성의를 보이며 페친들의 구미를 끌어당겼다. 7월 20일 오전 10시 반경. 만남의 장소였던 가평휴게소에서 드디어 페친들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저 페이스북으로만 인사를 나눴던 이들과의 인사는 영락없는 맞선이다. 동문들의 등장으로 동창모임 같아 보였다. 다들 어디서 찾아왔는지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홍삼매장 사장님, 수학선생이 싫다는 수학선생님, 음대 나온 댄스스포츠 강사에 체대 출신 심마니, 알프스 스키장을 설계한 현직 농부 등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구성은 찾아보기 힘들 것만 같다. 최대한 성향을 보고 가리고 가렸다는데 인터넷 세상은 색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이날의 일정은 아주 간단했다. 새로 뚫린 양양고속도로를 달려 가진항에서 물회를 먹는다. 자기소개 뒤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뒤 상경. 끝. 놀라운 일은 이 모든 걸 고속도로 개통으로 하루 만에 끝냈다는 사실이다.
‘페뮤니티’로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
이명재씨는 이런 모임을 통해서 일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능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커뮤니티를 합쳐 ‘페뮤니티’라는 용어도 이미 만들어놓았다.
“일종의 인맥으로 소통을 하자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으로 만난 공동체 내의 재능 품앗이 같은 것이죠. 가령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니까 그것에 대해 나눠주고, 누구는 여행작가니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주고요. 외부에서 누군가를 모실 것 없이 모임 안의 전문가와 함께 심포지엄도 할 수 있고 이렇게 여행도 했으면 합니다.”
중년의 나이.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세대이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란다. 성향이 맞았으면 좋겠고 서로 검증된 사람끼리의 어울림을 원한다고 이명재씨는 말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온라인 중심으로 인맥을 이뤄가는 세상이니만큼 페이스북에 능하고 나름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모임을 자극했던 말 ‘You′ve Arrived’는 ‘당신은 도착했다’라는 의미다. 이번에는 어딘가를 향해가서 도착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언제든지 그 목적과 행동은 또 다르게 바뀔 수 있다고 이명재씨는 말했다.
“뒤에 오는 동사를 바꿔가면서 유동적이고 다양한 모임을 계획하고 싶습니다. 회원의 개념은 아니지만 SNS 플랫폼을 이용해 뜻을 같이하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생각입니다. 봉사는 안 할 겁니다. 즐길 거예요(웃음).”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백수는 옛말로는 한량, 지금 용어로는 프리랜서가 아닐까. 백수는 여유있게 산다. 경제적으로 반드시 풍부하지 않지만 정신적 자유를 만끽하고 산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퇴계 이황, 이덕무, 이익, 김시습, 김삿갓 등이 대표적인 백수가 아닐까. 백수가 되는 동기와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통적인 기질은 구속받고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리라. 연암 박지원 선생은 과거에 일부러 붙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알려진다. 주위 기대에 떠밀려 과거 보러 가면 시험지를 안 내고 나오거나 문제에 대한 답 대신 관련없는 그림이나 낙서를 제출하였으니 낙방을 자초하였다고 보여진다. 어렵게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가도 당파싸움에 연루되어 잘못되면 귀양가거나 사약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생명을 거는 위험한 곡예이었다.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보아 과거에 태어났으면 당연히 백수가 되었을 것이다. 백수는 벼슬길을 포기하고 풍류를 즐기거나 저술활동을 하는 등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10여년 전에 자의반타의반으로 백수의 생활의 접어들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자유를 즐긴다. 백수도 생활을 하여야 하니 아주 일을 안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양심과 철학에 거슬리지 않는 일이 주어지면 한다. 단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무턱대고 일을 선택하지는 않을 따름이다. 일이 주어지면 하고 일이 없으면 하고 싶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쉰다. 정기적인 직장인이나 사업가에 비해 극히 적은 수입밖에 벌지 못한다. 그래서 단순, 소박하게 사는 방법이 몸에 배었다. 차를 처분하고 채식위주로 식사하며 골프를 안 치는 등 단순한 삶을 산다. 마음이 편하니 물질적인 부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친구 중에 존경하는 백수가 있다. 15년 전에 대기업 임원을 과감히 그만 두고 백수로 산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려 수많은 페친을 유지한다. 일년에 몇 차례씩 페친들의 요청에 의해 전국유람을 다닌다. 상당한 글 솜씨와 풍성한 이야기거리를 지니고 있어 출판이나 강의 요청을 받아도 그럴 수준이 아니라고 단호히 거절한다. 글도 절대 유료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닌다. 그래야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마음에 안 맞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한다. 그래 별명이 골통이다. 백수 사부로 모셔야 할 친구이다. 백수도 등급이 있는 셈이다. 도저히 넘겨 보지 못할 수준이다. 백수라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 결국 나이가 들면 다 백수로 돌아간다. 욕심내지 않고 현재의 백수 수준에서 소박하고 멋있게 살려고 한다.
권대웅(52) 시인은 어느 날 머리 위에 뜬 달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왈칵 눈물이 났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차고 기울면서 달은 이 세상 존재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힘들고 슬픈 밤에 달만은 길을 잃은 마음에 등불이 되고 소망이 되어준다 여겼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마음속 어둠과 내일의 불안까지도 환하게 비춰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인은 휘황찬란한 도시의 인공 빛들에 밀려 희미해지는 달빛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이 포악해지고 우리 삶이 팍팍해진 것이 왠지 달빛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으로 보였다.
시인은 그때부터 달의 이야기를 담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고, 이를 페이스북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사람들은 달 그림과 어우러진 이 시들을 '달시(詩)'라 불렀다.
많은 사람이 달시를 좋아했다.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 촉촉한 감정의 울림을 준다 했다. 잊고 있던 그리운 이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했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 찾아보게 됐다 했다.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의 달시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다. 영국에 사는 페친이자 한국교포인 레이첼 박 씨는 달시를 영어로 번역해 올렸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달시를 알리고 싶어서란다. 번역가 백선희 씨는 불어로 번역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신간 '당신이 사는 달'(김영사on 펴냄)은 시인이 달시가 전하는 위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내놓은 책이다. 책에는 '달시' 스물세 편과 시에 미처 담지 못했던 말들을 담은 산문이 실려 달빛 같은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달은 참 좋은 에너지다. 언제나 따뜻하고 밝고 환하고 둥글다. 그런 달의 기운을 받고 또 나누고 싶었다. 선물하고 싶었다. 조금 외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당신의 달을."('작가의 말' 중에서)
여기에 시인이 이국의 여행에서 촬영한 다양한 사진들도 곁들여져 정서의 깊이를 더했다.
달을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차오르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그렇다. 삶의 거울이 되고 위로가 되는 달의 정서를 똑 닮은 책이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가 어디서 무엇과 부딪히는가에 따라 그 소리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소리, 처마 밑 깡통에 떨어지는 소리, 비닐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 나무의 어깨 위에 떨어지는 소리, 호수 위에 떨어지며 둥글게 퍼져 나가는 소리…. 사람도, 사랑도 그렇다.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진다. 깊은 소리, 가벼운 소리, 행복한 소리, 시끄러운 소리, 슬픈 소리, 아름다운 소리….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만나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178~179쪽)
한편, 시인은 이 책 출간을 기념해 다음 달 4~6일 서울 인사동 시작갤러리에서 '달동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기부 시화전'을 열고 손 글씨로 쓰고 그림을 그려넣은 시화들을 전시, 판매한다. 수익금 전액은 달동네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쓰기로 했다.
이 글은 서울보증보험 사보(SGI서울보증 2014년 3-4월호)에 기고한 유종현 SNS칼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SNS에 허세 가득한 사진을 올리는 10년차 골드백수 차백수(31세). 늦은 아침 일어나 양푼에 밥을 비벼 먹고 유명 커피숍의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마시면서도 자신의 SNS에는 이렇게 올린다.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 브런치 후 마시는 콜롬비아 원두 핸드드립 커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중 다시금 휴대폰을 꺼내든 차백수는,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사진을 찍는다. 곧이어 사진과 함께 SNS에 "양주가 지겨울 때면 난 가끔 소주를 마신다. 안주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은은한 달빛 한 스푼이면 충분해"라는 글을 남겼다.
허세에 찌든 차백수는 비루한 현실을 숨긴 채 자기 자신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공원에서 셀카를 찍고는 “그 무엇도 날 구속할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는 비스트”라고 덧붙여 SNS에 전송했다. Beast는 영어 철자를 몰라 한글로 고쳐 썼다. 하지만 네버(Never)를 ‘네이버(Naver)’라 올려 끝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배우 김민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트콤식 옴니버스 예능 드라마 《백수의 품격》속 장면들이다. 김민종의 허세 가득한 코믹 연기를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SNS에는 온갖 ‘있는 척’을 다하고 '좋아요'를 받고 싶어 하는 모습과 심리가 어디 차백수뿐이랴.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SNS 이용 기회가 많아졌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 때문에 현대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SNS를 통해 폭넓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좋은, 혹은 진정한 인간관계는 아닐지라도…)
그런데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하다보면 ‘이게 정말 내 본모습인가?’하고 놀랄 때가 있다. “착한 나, 정의로운 나, 풍요로운 나,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나, 똑똑한 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그럴듯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 모습의 ‘나’로 가득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SNS 이용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과시욕과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데 SNS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SNS에서는 '내가 누구인가'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집착한다. 결과적으로 SNS는 '진솔한 삶'이 아니라 '가공된 삶'을 보여주는 허세의 공간인 셈이다.
SNS에서는 많은 사람, 특히 내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거나 가식적인 표현을 쓰기 쉽다. 허세란 무언가? 없으면서 있는 체하고, 텅 비었으면서도 가득 찬 체하며, 좁은 소견을 가졌으면서도 넓은 견문을 지닌 양…말하자면 실속 없이 과장되게 부풀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SNS에선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도 생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욕을 퍼붓고, 분노하고, 린치를 가하고… 심지어 괴담을 유포하기도 하는데, 누군가 ‘좋아요’나 ‘리트윗’으로 그걸 받아주면 신나서 꽃을 달고 다닌다. 이것 역시 허세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허세를 부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긴 하다. 자기PR시대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손해라는 인식마저 퍼져있다. 더 나아가 허세가 밉지 않고 심지어 매력으로까지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허세가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상황이 지속되면 믿을 수 없게 되고 질려버리게 된다.
'허세의 바다' SNS에 빠져있다 보면 페친(페이스북 친구)이나 트친(트위터 친구)들이 자신보다 더 풍요롭게, 재미있게, 멋지게, 다양한 경험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또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비관적, 열등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도 있다.
SNS에서 쏟아지는 타인의 멋진 삶과 글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그러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허세와 자아도취 경쟁에 말려들게 된다. 그거 대부분 ‘화장발’이고 허상이다. 선동꾼이나 허세꾼, 뻥쟁이, 혹은 나와 비슷한 보통사람들이 만든 SNS 허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 잘 조절해야 한다. 때때로 SNS에서 한발 물러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SNS가 허세경쟁에 불을 지핀 측면이 있지만 허세는 어쩌면 인간 본성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일본 역사영화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인간의 이중성과 이기심을 다룬 자신의 영화 ‘나생문(羅生門, 일본식 발음은 라쇼몽)'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潤色)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나생문(라쇼몽)은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허세는 이기심의 산물인 셈이다. 유달리 남의 눈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허세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명품 옷과 가방, 고가 패딩, 고가 위스키, 고급 자동차 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매 패턴은 나를 위한 ‘가치소비’를 넘어 허세로 이어진다. 명품 매장은 언제나 붐비고,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오히려 판매가 급증한다.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고 없어서 못 판다.
물론, 부자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적극 환영할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부자가 자기 분수에 맞게 소비한다면 명품이 뭐가 문제인가. 다만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허세를 부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허세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어떤 이는 허세로 인해 감당 못할 빚을 지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혼수와 예물 등 과도한 결혼 비용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마침내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부부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어떤 기사를 보니, 강남의 한 의사는 보증금 6억 원에 1000만 원짜리 월세를 내며 100평 규모의 고급 주상복합에 살고 있다. 속내는 월세 내기도 벅차지만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불가피했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다.
우리는 어쩌면 과잉적인 ‘허세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맛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허세를 행복의 도구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허세는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다.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허세.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이니 결국, 남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더 애를 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란 그리 힘 드는 일이 아니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허영심 때문에 자기 앞에 있는 진짜 행복을 놓치는 수가 있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가 남긴 말이다. 허세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자.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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