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최돈선 님이 제자 최관용 님께 편지를 쓰셨습니다.
벌써 38년이 지났네. 자넬 처음 만난 지가. 이 사람아 자넬 만난 날이 무더운 한여름이었지. 8월의 매미가 지천으로 울어대던 그날, 나는 자네가 공부하는 2학년 2반 교실 문을 열었네.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들어간 자네 교실은 창문을 열어놓아 시원했어. 창가 미루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렸지. 그때마다 미루나무 잎들은 은어떼처럼 바람에 재잘거렸어. 왜 그날 난 그게 선명히 기억났을까 몰라.
먼 바다 섬에서 오셨다고, 유명한 시인이라고,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어서 이 학교가 정중히 모셨노라고… 과장되게 말씀을 마친 교장선생님이 나가신 뒤에도 난 한동안 창밖 미루나무 잎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어. 이윽고 나는 칠판에다 내 이름 석 자를 쓰고 이렇게 말했지. 반가워요,
난 이 나라 남쪽 끝섬 완도에서 왔어요.
그 말에 학생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지. 그런데 그날 유난히도 두 학생이 내 시선을 끌었어. 한 학생은 미남형에 눈빛이 반짝거렸고, 한 학생은 소같이 우직한 인상에 곱슬머리였지. 책상에 앉은 둘의 눈빛이 어찌나 초롱초롱하던지…. 그랬어. 그렇게 자네들과 나는 만난 거야.
당시 강원고등학교에는 소설 쓰시는 선생님이 두 분 계셨는데 자네들은 그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고 있었어. 문예부원인 자네들은 시인 선생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 설랬는지 모른다고 했어. 그래, 그날의 엉뚱한 질문을 내 어찌 잊을 리가 있겠나.
자네 곁에 앉은 눈 초롱초롱한 최준 학생이 벌떡 일어났어. 선생님 한국에서 누가 제일 시를 잘 씁니까. 학생들이 모두 나를 주시했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이렇게 대답했어.
그야 물론…,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그 대답에 학생들이 일제히 와! 환호성을 내질렀어. 책상을 쾅쾅 치는 학생들도 있었다니까? 기억나나?
자넨 그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지. 질문을 던진 최준 학생은 어쩐 일인지 멍한 표정이었고…. 마치 한 방 먹은 표정이었다니까.
자네들은 늘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했지. 하지만 둘은 모든 면에서 확연히 달랐어. 최준 군은 재기가 넘치는 학생이었어. 글쓰기는 물론이고 운동에도 뛰어난 소질을 발휘했지. 배구, 탁구, 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어. 체육대회 때마다 학급 대표로 선발되어 혁혁한 승리를 따내곤 했지.
최준 군은 재기가 반짝였고 자넨 뚝심이 남달랐고. 그랬어. 확연히 다른 성격임에도 자네들은 단짝이었지. 자네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찾아와 꺼낸 말을 분명히 기억하네. 저희는 강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강원고등학교 문예부를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자네들의 이 오만과 자부심은 어디에서 왔겠는가. 자네들은 정말 시를 사랑하고 시에 온 정열을 쏟기로 결심했던 거야.
그 후 최준 군은 신춘문예와 문예지 당선으로 시작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자넨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장교를 아내로 맞이했지. 그리고 이듬해 강원일보 문화부 기자가 되었네. 바쁜 기자생활 중에도 자넨 이따금씩 내게 찾아와 좀 괴상한 시를 내밀곤 했어. 나는 늘, 생각이 엉뚱한 자네를 두둔했지. 시가 되든 안 되든 그 발상이 남다르다는 데 나는 엄지를 치켜세워준 거야.
아니나 다를까. 자넨 ‘오늘의 작가상’ 최종심에 올랐건만 소설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어. 당시 시와 소설이 함께 겨루는 독특한 작가상이었지. 춘천 출신 최승호 시인이 ‘대설주의보’란 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기억이 나네. 그 후 ‘오늘의 작가상’은 아예 소설 등용문으로 바뀌어버렸어.
하지만 자넨 뚝심의 소유자였네. 이듬해 낙선의 고배를 안긴 민음사 ‘세계의 문학’에 재도전해 당당히 시인으로 등단했으니까. 그 후 난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로 갔네. 그리고 틈틈이 자네 소식을 듣곤 했지.
이보게, 관용이. 그래도 자넨 뚝심의 소유자이네. 서울서 내가 춘천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 자넨 염소를 키우는 농부가 되어 있었지. 밭일과 염소를 키우면서 격일제로 아파트에 보일러 놓는 일을 한다고 했어. 자넨 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지. 전 길을 가다가도 친구나 아는 이를 만나면 얼른 골목으로 피하곤 했어요. 시도 못 쓰는 껍데기 시인, 직장도 없는 백수가 되었으니까요.
언젠가 내가 페이스북에다 자네를 염소시인이라 부르면서 사연을 적은 걸 기억하나? 그래서일까? 자넨 금세 염소시인이 되어 많은 페친과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드디어 자넨 시를 쓰기 시작했네. 길 가다가 골목으로 피하는 일도 없어졌고.
제가 요즘 푼돈을 모아두고 있어요. 시집 한 권 내려고요. 평생 단 한 권뿐인 시집을요. 자네가 그런 말을 내게 했을 때 난 가슴이 뭉클했다네. 그런데 그 모아둔 돈이 갑자기 병마에 시달리는 자네의 예쁜 딸 병원비로 보태어졌지. 그 돈이 있어 참 다행이에요, 하고 자넨 말했어.
빼앗기듯 다 내주고 헐벗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더라도 덕두원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은 꼭꼭 가슴에 품고 싶다. 보석처럼 땅문서처럼 장롱 깊숙이 감추어두고 싶다.
애인처럼 아끼던 염소가 죽어 눈물 흘리며 묻어주면 염소는 밤하늘 별이 되어 시인의 밤길을 초롱꽃처럼 밝혀준다.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 아픈 글인지…. 자네 글을 메모해두었다가 이 편지에다 적어보네. 이 글은 차라리 소슬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아닌가.
그래, 자넨 메모 쪽지처럼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이 아름다운 시가 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가?
결코 외롭다 생각 말게. 자넨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솔직한 시인일세. 춘천엔 염소시인 최관용이 있네. 그 염소시인을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한 노인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길 바라네.
최돈선(崔燉善) 시인
강원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칠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허수아비 사랑’, ‘물의 도시’,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등이 있다. 에세이집으로는 ‘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종이 울린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