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혼주석에 앉을 나이가 되었다.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버진로드를 걷던 그때보다 더 두근거린다.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오랜만에 준비하는 예식이 떨리고 걱정스러운 이들을 위해 결혼 준비 전후 알아두면 좋은 에티켓을 소개한다.
Step 1 결혼 준비의 첫 단추, 상견례
상견례는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가족이 될 이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자녀뿐 아니라 혼주도 긴장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상견례의 장소나 일정 등은 자녀 측에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혼주는 예비 사돈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집중한다. 단정한 옷차림, 온화한 미소 등 외적인 부분도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상견례에서는 대화 주제가 분위기를 좌우한다. 특히 자녀 입장에서는 어른을 상대로 대화를 주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가 부모가 화젯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처음은 간단한 안부 인사로 시작해 자녀가 고심해 예약한 상견례 장소와 메뉴를 칭찬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그다음 자녀의 어린 시절, 취미 등 가벼운 화제로 이야기를 돌린다. 자녀와 평생을 함께할 상대인 만큼 궁금한 것이 많을 테지만, 가정형편이나 정치, 종교, 학력 등 민감한 질문은 지양한다. 또 학술적 이슈를 논하며 지식을 과시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연예인 가십 등 가벼운 소재도 언급을 삼간다. 이외에 집안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대화 중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자녀에게 미리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견례 중 예물, 혼수 등 결혼 준비에 필요한 요소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하면 금전적인 이유로 얼굴을 붉히게 될 수도 있다. 준비 과정에서 상대 집안과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상견례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 시대 상견례의 ‘웃픈’ 준비물 ▶ 이제는 상견례가 ‘5인 이상 집합 금지’의 예외 규정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찜찜해하는 이들이 많다. 일부 식당은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만일을 대비해 가족관계증명서나 청첩장을 챙기는 것이 좋다. 국제결혼 등의 이유로 대면이 어렵다면, ‘줌’ 등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방법도 있다.
Step 2 일생일대의 순간, 결혼식
예식 당일에는 최소 2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식장에 촉박하게 도착해 허둥대는 혼주가 꽤 있다. 웨딩홀을 둘러보고, 이른 시각부터 식장을 찾은 하객을 맞이하려면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한다.
식 중 혼주의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양가 어머니의 화촉점화는 대부분 당일에 리허설이 진행되지만 신부 입장 시 딸과 손을 잡는 법, 사위에게 손을 넘겨주는 타이밍 등은 예식 직전 간단히 안내되는 경우가 많다. 헷갈릴 것 같으면 유튜브에서 ‘신부 입장’, ‘혼주 입장’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예식 영상을 보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녀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는 등을 토닥여주며 생각해놓은 덕담을 건넨다. 그 한마디가 자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된다. 다만 눈길을 끌 정도로 펑펑 울 경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식이 끝나면 원판 사진 촬영을 깜박하고 곧장 연회장으로 이동하는 혼주가 있다. 혼주가 자리를 비우면 촬영이 불가하고, 다음 예식까지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식순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폐백의 분위기는 덕담이 좌우한다 ▶ 본식 후 신부와 시댁 가족이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폐백은 신부에게 매우 어려운 행사다. 어색한 건 시니어도 마찬가지지만, 어른으로서 용기를 북돋아주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덕담은 신부가 절을 하고 술을 올릴 때 건네면 된다. 높은 어른이 함께할 때도 시부모가 먼저 절을 받는 것이 관례다. 잘살라는 의미가 담긴 ‘절값’도 잊지 않고 준비한다.
Step 3 마무리까지 품격 있게, 답례
첫인상만큼 끝 인상도 중요하다. 식이 끝난 뒤에는 하객에게 답례 인사를 전하는 것이 마지막 매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식사가 그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하객이 줄어 답례품에 더욱 신경 쓰는 분위기다. 답례품 종류는 캔들, 꿀, 홍삼, 와인, 기프트 카드 등 다양하다. 비대면 시대인 만큼 메신저 등을 통해 전해도 되지만, 축의금을 내고 예식에 참석하지 못했거나 모바일 청첩장으로만 초대한 하객에게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자녀와 연결고리 없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초대한 하객은 자녀가 직접적으로 연락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경 써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성의를 표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의 행사에 참여해준 이들을 잊지 않고, 훗날 그들의 경조사에 참석해 받은 마음을 배로 돌려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귀해지는 시니어에게는 가장 고마운 답례가 될 것이다.
은퇴 후 자녀 결혼시키면 하객이 줄어든다? ▶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만, 그 자리를 빛내주는 건 하객이다. 문제는 은퇴를 하면 인간관계가 협소해져 초대할 하객 수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결혼을 독촉할 수도 없는 노릇. 자녀의 결혼식을 북적북적하게 해주고 싶다면, 은퇴 전부터 지인의 경조사를 꾸준히 챙기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SNS)를 활발히 해 많은 이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다.
도움 사단법인 한국웨딩플래너협회
얼마 전만 해도 결혼식장에는 결혼식을 주관하는 주례가 있었다. 보통 신랑이 평소 존경하는 은사나 직장 상사를 주례로 모셨다. 주례사는 외모도 좋아야 하지만 이혼 경력이 없고 아들이 있어야 했다. 이런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본인이 고사하는 경우가 많아 주례 선생님을 찾아 승낙을 받는 일도 결혼 전에 해야 할 큰일이었다. 새롭게 한 가정을 이루는 선남선녀의 주례를 선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주례사나 복장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등 부담도 커 주례 부탁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결혼식 풍경이 달라져 예식장에서 추천해주는, 일면식도 없는 전문 주례를 모시기도 하고 아예 주례 없는 결혼식도 있다.
주례사 없는 결혼식이라 해도 신랑 아버지와 신부 아버지가 주례를 대신해 신랑 신부에게 덕담을 하고 하객들에게 인사말은 해야 한다. 주례의 고민이 부모의 즐거운 고민으로 옮겨왔다. 신랑 아버지가 되는 후배가 결혼식장에서 많은 하객과 아들인 신랑과 며느리인 신부 앞에서 덕담 겸 인사말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자문을 해왔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자식의 결혼식만큼 부모로서 행복하고 기쁜 날이 없다. 나는 이런 인사말을 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랑 아버지 ooo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세인데도 용기를 내어 제 자식의 혼사를 축복해주기 위해 멀리서 이렇게 와주신 일가친척 및 내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혼주로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60도 인사)
이제 결혼식이 끝나면 웨딩마치와 함께 부모 슬하를 떠나 새롭게 한 가정을 이루는 아들 oo와 며느리 oo에게 여러 하객분들을 증인 삼아 우선 몇 마디 당부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야, 내 말을 덕담으로 귀담아 들어라!
첫째,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는 건강부부가 되길 기대한다.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최고의 자산이란다.
둘째, 가정이란 집과 같지만 house가 아닌 home을 만들어야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 없이 백년을 사는 것보다 사랑하며 하루를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라.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홈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낙원이란다. 작은 일이라도 서로 상의하고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면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핀 행복한 스위트 홈이 된단다.
셋째, 모든 일에 성실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대충해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단다. 봄에 게으름을 피우고 가을에 넉넉한 추수를 바랄 수는 없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거라. (3초간 멈추었다가)
-사돈댁을 바라보면서
오늘! 아들의 결혼식날 애비로서 한없이 기쁘고 행복하고 가슴이 벅찹니다.
20여 년간 곱게 키운 딸자식을 저희 집에 보내주신 사돈댁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친딸 이상으로 사랑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사위가 되는 제 아들도 많이 아껴주십시오.
-하객들을 바라보면서
하객 여러분, 이렇게 많이 오시고 축하해주셔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객을 향해 60도 인사와 고개 숙여 3초간 머무름)
청첩장을 많이 받는 계절이다. 모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예식장을 찾으면 혼주가 상기된 얼굴로 하객들을 맞는다. 결혼식 풍경은 거의 예외없이 들뜨고 즐겁다. 하객과 혼주 간에 격식을 탈피, 농담 섞인 유쾌한 인사도 많이 오간다.
“빚 갚으러 왔네!(우리집 혼사에 와줬으니)“ ”저축하러 왔어! 우리집도 곧 혼사가 있을 모양이여...” 하객들의 이런 농 섞인 축하인사말이 예식장 분위기를 띄워주기 시작한다.
주례사도 많이 바뀌고 있다. 우선 시간이 길면 감점이다. 7~8분이 대세다, 젊은이들이 희망하는 주례사 시간은 5분 안쪽이라고 한다. 내용도 예전의 “아들 딸 많이 낳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자 되고...”라는 식은 없어진 지 오래다. 신랑.신부에게 맞춘 이른바 맞춤형 주례사를 매우 짧게 하는 추세다.
정작 신혼부부에 대한 덕담은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들이 하객 테이블올 돌며 인사 드리는 피로연장에서 쏟아진다. 한 잔 걸치고 불콰해진 얼굴로 양쪽 부모와 신혼부부에게 건네는 나이 지긋한 하객들의 덕담이 ‘진짜’다.
덕담 중 ‘명작’ 하나를 소개한다.
신랑을 바라보며 “자네가 여자 보는 눈이 높군. 아빠 닮았어!” 이어 신부에게는 “남자 보는 눈이 높아. 엄마를 닮았나봐!”
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 두 마디가 몇 사람이나 띄워줬는지 저마다 계산하기 바쁘다.
후드득후드득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여니 더욱 요란했다. 아, 이런 날엔 비가 오면 안 되는데…! 하지만 전지전능한 하늘에서 하는 일에 무력한 인간이 대체 무슨 힘이 있을 텐가.
모쪼록 오전 중에나 비가 그쳤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다. 시간은 저벅저벅 흘러 관광버스가 도착했다는 기사님의 전화가 왔다. 처조카의 차를 빌려 바리바리 짐을 싣고 동행할 하객들을 기다렸다.
더욱 거세진 폭우 탓에 하객들의 참석률은 매우 저조했다. 하는 수 없지 뭐, “선생님, 출발하시지요!” 관광버스 기사님도 따지고 보면 지입차(持入車) 형태의 ‘사장님’이다. 따라서 고루하게 ‘기사님’ 내지 ‘사장님’이라고 호칭하기보다는 ‘선생님’이 훨씬 낫다.
수원을 향해 출발한 버스가 도착한 건 예식 1시간 전인 오후 2시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시렁거렸다. 주변의 목련꽃은 진즉에 처참함의 종말을 고했고, 벚꽃 역시 어느새 모두 낙화한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이윽고 하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빗길을 뚫고 와주신 분들이 정말 고마웠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 호텔 직원이 와서 혼주 자리로 가서 앉으란다. 양복 왼쪽에 꽃을 꽂고 아내의 곁에 착석했다.
경력이 풍부해 보이는 사회자가 ‘성혼선언문’은 신랑 아버지께서 하실 거라며 필자를 무대 정중앙에 불러세웠다. 연습한 ‘성혼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바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양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랑 홍관호 군과 신부 강미지 양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여러 하객들께서 모인 이 자리에서 일생 동안 함께할 부부가 되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이 혼인의 증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아울러 시종일관 믿음직하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고, 금지옥엽 고운 따님을 주신 사돈 어르신께도 감사 올립니다.
오늘 탄생한 이 부부가 건강과 사랑, 그리고 행복의 탑만을 견고히 쌓으면서 잘 살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이 덕담 하나를 추가하면서 마칩니다. ‘남편은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아내는 남편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2018년 4월 14일 신랑 아버지 홍경석. 고맙습니다!”
다시금 허리를 꺾어 진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일반 예식장은 대부분 뷔페식이다. 따라서 정작 예식보다는 음식을 먹는 데 더 열중하는 구조다.
하여 신랑신부는 안중에 없고 축의금을 내는 즉시 식당으로 직행하는 게 관행이자 수순이다. 그러나 어제 아들의 예식은 ‘비싼’ 호텔에서 했기에 격부터 달랐다. 예식이 본 궤도에 올라야만 비로소 음식이 나왔다.
따라서 하객들은 꼼짝없이(?) 예식의 전 과정을 눈에 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덕분에 하객들의 이탈 없이 예식은 더욱 화려함을 뽐낼 수 있었다. 예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객들이 앉은 좌석을 돌며 인사를 시작했다.
아내의 옷깃을 잡아끌며 앞잡이에 나섰다. 친구와 동창들, 가족과 친인척 역시 이구동성으로 신랑 신부를 향한 칭찬을 남발했다. 어느새 만취한 죽마고우는 재작년의 딸에 이어 아들마저 결혼을 시켰으니 “너는 이제 아버지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며 부러워했다.
한술 더 떠 심지어 ‘브라보 유어 라이프(BRAVO YOUR LIFE)’라고까지 추켜세웠다.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그보다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가 더 맞는 거 아닐까 싶다.
예식을 마치니 비로소 비가 그쳤다. 집으로 돌아와 참았던 소주를 들이켰다. 술잔 속에서 “자네 오늘 수고 많았어! 이제 당신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더 멋지게 살아봐~”라며 주신(酒神) 바커스(Bacchus)까지 박수를 보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 변두리 산 밑이다.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같은 아파트 사람 이외는 친분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남편은 같이 산에 물이라도 뜨러 갈 때면 언제 사귀었는지 온 동네 사람과 다 인사를 나눈다. 그런 남편이 참 생소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필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들고 들어오는 청첩장이나 부고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동네 사람 경조사에도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남편이 이번 일요일에 동네 아는 분의 자제가 결혼하는데 결혼식 장소가 청주라 버스를 대절해서 동네 사람들과 축하하러 가게 되었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혼주 되는 분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 망설여졌다. 요즘도 이웃 경사에 버스를 타고 지방까지 내려가는 일이 있는 것일까? 변두리 우리 동네 아니면 별로 흔한 일은 아닐 듯했다.
그런데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치르게 되니 축하객이 너무 적을 것 같아 걱정이라는 혼주의 이야기를 전하며 남편이 필자에게 같이 가면 좋겠다고 했다. 이전 같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텐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 모르는 사람들과의 하루 나들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속마음은 어디론가 훌쩍 나서고 싶었는데 잘됐다고 쾌재를 불렀다.
일요일 오전 9시 아파트 앞 도로로 나가니 커다란 대형버스가 서 있었다. 한두 사람은 안면이 있지만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 30여 명 앉아 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기온이 차가웠지만 어디론가 떠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마냥 설레었다. 촉촉한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두 시간쯤 달리니 그제야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며 햇빛이 활짝 피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날 혼사가 있으니 더 경사스럽다는 덕담들이 터져 나왔다.
필자는 이전에 청주를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 친지를 방문하러 오기도 했고 여행으로 들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톨게이트를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필자의 눈을 가득 채웠던, 무성한 플라타너스 잎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였다.
알고 보니 그 가로수 길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거리였다. 풍경이 아름다워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나왔다는데 예전에 푹 빠져 보았던 드라마 에서 최민수가 오토바이로 질주하던 곳도 바로 이곳이란다. 청주에 가까워져 갈수록 플라타너스 거리를 기대했지만 가는 길이 다른지 가로수 길은 보이지 않은 채 어느 새 예식장 앞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대형 결혼식장이었다. 좋은 날짜인지 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아 축하객들도 만원이었다.
머리 올리고 한복을 차려입은 하객이 유난히 많아 축제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랑 신부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게 사람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잘 아는 사람 아니어도 하객 부족할까 걱정하지 않게 동참해주는 이웃이 있는 우리 동네가 정겹다. 비록 변두리지만 인간의 정이 넘치는 자랑할 만한 곳이다. 훈훈한 인심을 가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처럼 즐거운 나들이를 했다.
친구가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필자는 청첩장을 챙겨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모바일 청첩장을 이미 보낸 터라 따로 종이 청첩장을 챙기지 않아도 됐지만 얼굴을 대면해서 직접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친구는 딸의 결혼에 적당한 덕담을 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결혼식에 참석해 못해 미리 준비했다는 봉투는 꽤 두툼했다. 왜 못 오냐는 필자의 말에 친구는
“토요일에 강남에서 하는 결혼식은 너무 복잡해서 힘들어”
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40년 이상 이어온 우정을 생각한다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 막히고 복잡한 서울의 결혼식이 싫어서 불참하겠다는 친구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듯 했다.
“어떻게 결혼식에 안 온다는 얘기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
“형식이 뭐가 중요하니, 마음이 중요하지”친구는 웃으며 말을 했다. 필자 또한 혼주한테 얼굴 도장 찍자고 인사치례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전혀 일지 않았다. 결혼식의 주인은 결혼 당사자들이니 신랑신부를 잘 아는 사람들이 와서 해주는 축하가 진짜 축하라고 친구는 덧붙였다.
딸과 사위는 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결혼식을 원했다. 그러나 작은 결혼식을 알아보면서 하객 규모만 작아질 뿐 전체 예식 비용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양가 부모님이 초청할 하객과 신랑신부의 직장 동료, 교회 친구들을 꼽아 보니 작은 결혼식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인원이 아니었다. 소박하되 낭만적인 결혼식을 원했던 아이들은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버무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결혼식을 치르게 됐다.
필자는 결혼식의 규모와 상관없이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만한 사람들에게만 청첩장을 돌리기로 했다. 결혼식장은 딸과 사위의 지인들로 채우고 싶었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사람으로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을 때 부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부담스럽고 난처했던 적이 있다. 인연이 있었으니 청첩장을 보냈겠지만, 받지 않았으면 부조를 하지 않았을 사람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오면 솔직한 심정으로 이건 아니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조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때가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부조는 빚’이라며 필자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물론 필자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연락을 받지 못해 서운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첩장을 남발해 불편한 것보다는 청첩장을 받지 못해 서운해 하는 사람들을 달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요즘 예식문화가 바뀌고 있다.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편에선 가족과 친인척들만 모여 조촐한 예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기존 형식을 벗어나 개성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한편 축의금을 사양하거나, 화환 대신 쌀을 기부 받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뜻 깊은 결혼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결혼식은 스스로 치르겠다는 결혼 당사자들도 결혼식문화를 바꾸는데 한 몫 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혼하는 가정이 많아 부모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혼식의 주체가 부모에게서 당사자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 얼굴 때문에 봉투 들고 찾아오는 부조문화도 점차 달라 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