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분단 70년, 2015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감격과 환호 속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칠순을 맞기까지 우리는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한국의 70년은 외국의 17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와 맞먹을지 모른다. 이 길고 험난했던 세월 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는 어떻게 달라져 오늘에 이르렀으며 무엇이 시대의 화두였나. 앞으로 8월호까지 부문별로 나누어 7회 특집을 마련한다. 그 첫 순서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분석하는 세대론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자연 생각해보게 된다. 광복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빼앗긴 주권의 회복이자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산업화→민주화→정보화의 이행'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격동의 현대사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좌·우익의 갈등과 대립은 격화됐다. 냉전의 그늘이 짙어진 가운데 1948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선포됐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다. 참으로 험난한 나라 세우기 과정이었다.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를 성취했으되 통일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셈이었다.
나라 세우기에 부여된 두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세계시간 속에서 뒤처졌던 만큼 그것은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로 진행되었다. 추격산업화는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논리야말로 추격산업화의 요체였다. 성장은 가파르게 이뤄지고 경제적 삶은 빠르게 향상됐다. 하지만 추격산업화의 정당성은 그 과정 안에서 고갈되기 시작했다. 1972년 10월유신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함으로써 군사권위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추격산업화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여전히 논란을 안고 있다. 대중의 다수는 향수를 갖고 있는 반면, 지식사회에서는 거부 경향이 두드러진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역사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들이 현재의 곤궁(困窮)으로 인해 과거를 그리워해 왔다면, 지식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발전을 지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추격민주화는 추격산업화 안에서 배태됐다. 군부권위주의는 민주화를 일시적으로 지체시켰지만 역사는 이미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추격민주화를 주도한 주체는 사회운동이었다.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냄으로써 서구민주주의를 단숨에 추격하고자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본격화된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대내적인 민주화와 대외적인 자주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추격민주화에도 그늘은 존재했다. 정치민주화는 이뤄졌지만 ‘거리의 민주주의’가 ‘제도의 민주주의’로 쉽게 전화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와 사회민주화 역시 미완의 과제였다.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돼 온 것은 민주화 과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민주화 과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추격산업화의 조건에서 민주화를 성취하는 게 그만큼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추격민주화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게 정보사회였다. 정보기술이 단순한 도구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삶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정보사회는 경제·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정보기술과 연관된 산업은 경제의 중추를 이뤘고,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공론장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한 중심을 형성했다. 그리고 정보사회의 도래가 가져온 가상문화는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생산 및 소비양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세계화의 충격과 한 쌍을 이루는 정보사회의 도래는 양면적인 특성을 보여 왔다. 한편에서 정보사회는 개인적·사회적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왔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은 정주(定住)사회를 넘어서 유비쿼터스로 상징되는 유목사회의 도래를 현실화해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정보사회는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정보 불평등, 인권 침해 등 새로운 사회문제들을 낳아 오기도 했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갈등
광복 70년의 이러한 ‘압축적 발전’에 대응하는 개념이 세대다. 세대가 갖는 사전적 의미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대략 3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의미한다.
후자의 의미를 특히 주목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앞서 말한 산업화시대, 민주화시대, 정보시대에 각기 대응하는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 ‘정보화세대’가 존재한다. 2015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50대 중반 이상이 산업화세대라면,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는 민주화세대이며, 1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정보화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세 세대 가운데 뚜렷한 대비를 보인 것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다. 산업화세대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전환을 이끈 1960~70년대 산업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보여왔다면, 민주화세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시민운동·노동운동을 통해 진행된 민주화에 드높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의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가 비서구사회의 모범적인 사례였던 만큼 이러한 자부심들은 그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두 세대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다.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려 했던 산업화세대와 말의 자유 및 인권의 증진을 모색하려 했던 민주화세대 사이의 가치의 긴장 및 충돌은 우리 사회 변동의 또 다른 특징을 이뤄왔다. 우리 사회 세대갈등의 주축을 이뤄온 ‘6070세대 대 3040세대’ 간의 갈등은 ‘산업화세대 대 민주화세대’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세대 간의 갈등이 가장 예각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은 정치다. 우리 정치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대통령선거의 경우 언제부턴가 세대갈등은 지역갈등과 함께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예를 들어,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민주화세대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었으며,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산업화세대의 지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흥미로운 세대는 5060세대와 3040세대의 사이에 놓인 50대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인데,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특징을 아울러 갖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현재 50대는 베이비붐 세대이자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이들이다. 이들 다수는 2002년 대선에서 진보적인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50대는 ‘이중적 불안’ 속에 놓여 있다. 하나가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 말한 직장으로부터의 ‘퇴출의 공포’라면, 다른 하나는 고령화에 따른 ‘노후생활의 공포’다. 이러한 불안의 일상화는 50대 다수로 하여금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정치적 구도보다는 어느 세력이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는가의 정책적 구도를 중시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50대를 주목하는 까닭은 이 세대가 갖는 역할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생애를 돌아볼 때 50대는 6070세대와 3040세대 사이의 ‘낀 세대’이지만, 동시에 두 세대를 이을 수 있는 ‘가교 세대’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가교 세대로서의 특징은 이 세대로 하여금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 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정보화 ‘트라우마세대’에 주목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이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진행돼 왔다. 정보화세대라 명명할 수 있는 이 세대가 갖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도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이념보다는 탈이념을 선호하고, 이성 못지않게 욕망을 중시하며, 무엇보다 정보혁명에 익숙한 세대다.
다른 하나는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음으로써 물질적 가치와 탈물질적(post-materialist) 가치가 혼재하는 세대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이건 거시적으로 보면 물질적 가치에서 탈물질적 가치로의 변동이 이뤄져 왔고, 우리 사회의 경우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세대’는 탈물질적 가치의 기수라 할만 했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탈물질적 가치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좌절됐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가 강화되고, 특히 청년실업이 본격화되면서 정보화세대는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영향 받은 물질적 가치와 정보사회의 도래로부터 영향 받은 탈물질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정보화세대는, 이 시대를 규정짓는 ‘정보화’라는 말과는 달리, 개인적 생애에서 그렇게 행복한 세대는 아니다. 이들을 나는 ‘트라우마세대’라고 명명한 적이 있는데, 트라우마세대란 초·중·고교 시절에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 또는 부도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가중된 청년실업에 다시 대면해 있는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을 트라우마세대라고 명명한 이유는 외환위기로 인한 개인적 경험의 기억이 이후 이들의 의식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정보화세대인 트라우마세대에게는 민주화세대의 양대 축을 이뤄온 386세대, 신세대와 비교할 때 특히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 386세대의 상징이 민주화와 학생운동에, 신세대의 상징이 ‘네 멋대로 하라’의 자유주의적 문화에 있었다면, 트라우마세대의 상징은 세계화가 강제하는 무한경쟁과 청년실업에서 찾을 수 있다. 트라우마세대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이제 정보시대와 세계화시대의 한가운데 놓여 있음을 증거한다.
둘째, 세대 내 양극화도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세대라 하면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조되지만, 정보화세대의 경우 세대 내 동질성과 이질성이 공존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물질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이 동질성이라면, 세계화가 강제하는 무한경쟁은 이 세대를 승자 그룹과 패자 그룹으로 분화시키는 양극화를 낳아 오면서 세대 내 이질성을 강화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대 내 분화 및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창한 영어, 경영 컨설턴트, 상층 문화 등이 승자 그룹의 아이콘들이라면, 어눌한 영어, 비정규직 노동자, B급 문화 등은 패자 그룹의 아이콘들이다. 앞선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와 달리 세대 내 동질성과 이질성이 뚜렷한 정보화세대는 탈이념적 성격이 두드러져 다른 세대와의 정치적 긴장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해와 공감의 세대공존을 향하여
어느 나라든 세대 간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 까닭은 세대에 따라 가치와 이익이 다르고, 또 일정한 연령 차이에 따른 사고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세대긴장과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어느 사회이건 매우 중요한 사회·문화적 과제다. 그렇다면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계층갈등이나 지역갈등과 비교해서 세대갈등이 갖는 특징은 그 갈등의 양상이 예각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비록 서로 다른 세대라 하더라도 모두 가족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의 충돌이 격렬한 형태로 나타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연령에 따른 가치의 차이가 가져오는 긴장과 충돌은 매우 분명한 형태로 존재하며, 이는 결국 세대간 소통을 가로막아 세대단절을 강화시켜왔다.
세대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주목해야 한다. 어느 세대건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가 존재하는 법이다.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 민주화가 제공한 인권의 신장,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자유로운 세계시민 등은 모두 소중한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다원적 관점에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것이 바로 세대갈등 해소와 세대공존의 출발점을 이룬다.
어떤 세대든 그늘이 존재한다, 특히 정보화세대는 앞선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청년실업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세대다. 서로 다른 세대가 경험한 시대와 그들이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세대간 소통은 활발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연세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미국 UCLA 방문연구원 역임.
현재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주요 저서 : , 등
70~80년대 나눴던 연애방식을 추억 따라 가보자.
데이트장소, 사랑의 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등에서 묻어난 추억속의 아련한 커뮤니케이션이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
#1986 종로에서...
1986년 봄. 종로 3가 탑골 공원. 한여름 뙤약볕에서 한 남자가 5시간째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 시간은 12시. 여자는 몇 시간째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점심도 거른 채 탑골 공원 주위를 서성일 뿐이다. 지금이었다면 답답한 마음에 연신 휴대폰만 들었다 놨다 했겠지만, 그 시절 그 둘은 휴대폰이 없었다.
‘5분만 더 기다려 볼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마음이 변했나?’.
만감이 교차한다.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5시간이 훌쩍 넘었다. 여자를 만날 생각에 폭발할 것처럼 뛰던 남자의 심장박동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안정세로 돌아섰다. 발밑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도 어느새 동쪽을 향해 있다. 그만하면 많이 기다렸다는 태양의 신호일 것이다. 남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남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돌린다.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나 한 곳을 응시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가 온 것이다. 장장 다섯 시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그 남자 소병국(50)씨와 그 여자 이재정(50)씨의 연애시절이다.
그녀는 늦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날 이씨는 약속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급한 일이 생겼다. 고모 댁에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늦게 된 것이다. 그때가 오후 3시였다. 이씨는 남자친구인 소씨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은 되지 않고 약속 장소에도 갈 수 없으니 이씨도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김씨는 찝찝했다. 당연히 돌아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찝찝함이 그녀의 발길을 종로로 향하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갈 때마다 한 남자의 형상이 점점 커진다. 놀라움에 이씨의 동공이 커진다. 소씨다. 기다리지 않고 간 줄 알았던 그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씨의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몰아쳐 온다. 정식 교제를 시작한 연애 초기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5시간. 지금이라면 휴대폰으로 한 통화면 없었을 기다림이다. 하지만 그 당시 휴대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 상대방의 집에 전화를 하거나, 전화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거나 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하염없는 기다림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낭만이었다. 전자기기 하나에 설레는 감정이 한순간 사그라들지 않으니까. 그때는 기다림이란 곧 설렘이었으니 이 또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었다. 기다림은 휴대폰이 없는 그 시대의 청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시대 남자들에게는 여자에게 진심을 표현할 무기이자 방식이었다. 소씨가 이씨를 기다린 시간은 5시간이었지만,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확인한 시간은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그땐 그랬다.
사실 이들의 첫 만남은 병원이었다.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21층. 그 때 이씨는 소씨의 친구가 환자로 있는 병실을 담당하는 간호사였다. 절친한 친구라 하루가 멀다 하고 병문안을 갔던 소씨는 자연스럽게 간호사인 이씨와 접촉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녀의 청순한 외모에 끌렸다. 그 다음은 뽀얗고 고운 피부, 그 다음은 수줍은 미소가 소씨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그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용기를 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데이트 신청 방식은 말로 하기. 요즘 젊은이들과 같이 ‘저기요. 휴대폰 번호 좀 주실래요?’와 같은 무드 없는 방식이 아니다. 박력 있으면서도 떨리는 감정이 가감없이 전해진다.
“병원 앞 다방에서 O시에 기다리겠습니다.”
병원 앞 다방, 포장마차, 볼링장 등 두 사람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둘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86년 봄 병원에서 시작한 이들의 인연은 현재 예쁜 두 딸을 키우는 부부로 이어지게 됐다.
소병국씨와 이재정씨의 80년대 연애시절 이야기. 아니 모든 80년대 청춘들의 연애 이야기가 그럴 것이다. 그들의 연애의 중심엔 기다림이라는 설렘이 있었다. 휴대폰, 컴퓨터, 전자기기 등은 이들의 떨리는 감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기다리지 못하고 부재 중 통화가 수십 통이 된 이 시대. 80년대 연애시절 기다림이 더욱 멋있는 이유다.
70~80년대 나눴던 연애방식을 추억 따라 가보자.
데이트장소, 사랑의 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등에서 묻어난 추억속의 아련한 커뮤니케이션이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
# 1981 명동...
M.net ‘슈퍼스타K 시즌 5’에서 화제를 일으킨 바 있는 김대성 스테파노(60)씨. 그는 아내와의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방송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20년 전 사별한 아내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결혼 이야기보다 결혼 이전의 이야기가 더 극적이다.
때는 1981년. 그 해는 김씨가 힘들었던 군대를 전역한 해였다. 이 땅의 모든 청춘이 그렇듯 김씨도 전역이라는 해방감을 친구들과 함께 누리고 있었다. 장소는 서울 명동의 조선호텔 건너편 ‘포시즌’이라는 술집. 늘 그렇듯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회포는 거하게 풀었지만 고민에 대한 답은 시원치 않았다. 이윽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김씨의 앞에 눈부신 아가씨가 지나갔다. 대뜸 그 빨간 원피스의 여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지금 세대였다면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끝날 일이었지만, 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락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흉흉한 요즘이라면 자칫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첫눈에 반한 그녀를 놓치기 싫었던 김씨는 버스 안에서 용기 내 운을 뗀다. 정말 ‘대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만납시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그녀가 진저리를 치며 얘기한다. “당신 미쳤어요?” 그야말로 미친 놈 취급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리는 정류장에 따라 내린 것.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집 전화번호를 건넸다. 연락을 달라고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간절하게 부탁했다.
“3월 1일 1시, 명동에 있는 서울 다방에서 기다릴게요.”
떨리는 한마디를 꺼낸 뒤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약속된 날짜가 다가오면서 설렘은 커져갔다. 근데 정말 공교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약속된 날짜를 이틀 남겨놓고 김씨가 급성 맹장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3월 1일 1시 서울다방’ 뿐.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혹시 그녀가 오면 내 상황을 설명해 주라고 한 것. 그러나 그것도 헛수고였다. 그녀는 서울 다방에 나오지 않았다. 김씨에게 ‘3월 1일 1시 서울다방’ 은 메아리 없는 설렘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친구에게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여기에 왔다 갔다는 쪽지를 다방에 남겨달라고 말이다.
메모와 쪽지는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휴대폰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로맨스, 인스턴트 로맨스가 아닌 아날로그 로맨스, 기다림의 로맨스였던 것이다.
김씨에게 그녀는 옷깃만 스친 인연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잊히지 않았다. 퇴원 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였지만 무작정 망원동 홀트아동복지회로 향했다. 첫 만남 당시 알고 있던 정보인 ‘망원동의 조씨’라는 것만 믿고 말이다. 당시 망원동 교통의 요지는 ‘홀트아동복지회’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기다리면 그녀와 마주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그곳으로 출퇴근한 지 하루, 이틀, 사흘을 지나 열흘이 흘렀다. 그러나 마주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었다. 아니 끝인 듯 했다.
그렇게 잊혀가는 듯했다.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어느새 가을이 됐다. 선배가 명동에서 운영하는 구둣가게를 찾았다. 선배와 일상적인 대화의 꽃이 무르익을 무렵 김씨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눈을 찡그리며 실눈을 뜨고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망원동 그녀였다. 이야기를 끊고, 선배에게 물었다.
“저기 일하는 사람 망원동 살아요? 혹시 성이 조씨예요?”
선배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씨는 확신했다. ‘이게 인연이라는 거구나.’ 이후 상황은 급진전됐다.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도 생겼고, 만남도 가졌다. 그리고 3월 1일 서울 다방에 왜 나오지 않았는지, 망원동에서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 모두 들을 수 있게 됐다. 다소 불량해 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만남에 응하지 않았던 것. 망원동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공교롭게도 3월 1일 즈음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음악에 미쳐 베짱이 같은 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만남과 만남이 이어져 애정에 싹이 텄다. 남한강 데이트, 일터 데이트 등을 통해 애정을 키워나간 끝에 그들은 결혼에 골인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애틋한 사랑. 7080을 살았던 세대들의 젊은 시절 연애 이야기에는 순수함이 있다. 요즘 세대들은 편지를 전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편지지를 몇 번이고 찢고 찢은 이야기를 믿기나 할까. 편지와 메모 그 필체에서 전해지는 진한 감성은 점차 사라져 간다. 7080을 살아온 세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길.
베이비부머를 사진 작품으로 꾸민 사진전이 열린다. 서울 영등포구는 20일 오후 2시부터 나흘간 여의도역사(지하철 5·9호선)에서 ‘5060, 내 눈에 담는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사진전에 전시되는 40여점의 작품은 모두 영등포구 시니어행복발전센터에서 운영 중인 사진반 수강생들이 찍은 것이다.
베이비부머를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니어행복발전센터에서는 매주 월요일 ‘내 눈에 담는 사진반’이 운영된다. 사진반은 올해로 2년째 운영 중이다.
정식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사진전의 불을 지핀 것이다.
구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건강한 여가 선용의 사례를 소개하고, 노후대책을 위한 전문기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알리고자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역사에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활기차게 인생2막을 즐기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도 베이비부머 세대와 신노년층의 교육과 일자리, 문화생활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2012년 11월 전국 최초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맞춤형 노후 설계를 위해 설립된 ‘시니어행복발전센터’는 제2의 인생설계, 직업 안내, 여가 및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정보교환, 자원봉사, 사회공헌 등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한 사회참여를 안내·지원하고 있다.
매 분기 50~64세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은 65세 이상도 참여 가능하다. 현재 약 580명의 회원이 등록돼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액티브(Active) 5060’. 사회 활동과 소비 활동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행동하는 5060세대를 이르는 말로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5060세대와 그 이상을 겨냥해 서비스와 상품을 쏟아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니어 산업. 그 중심에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있다. 이들은 자산과 소득이 높고, 능동적으로 소비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활동적이면서 건강한 소비그룹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들을 겨냥 하는 것에 군침을 흘릴 만하다.
2006년과 2011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가계자산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의 순자산이 2006년 평균 2억6381만원에서 2011년 3억1116만원으로 18%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베이비부머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시니어 산업의 전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산업의 전망도 밝다.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국가 중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83.8세로 6위(2009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시니어 산업의 수요자가 많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도 시니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한양사이버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김신영 교수가 발표한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 2010년부터 시니어산업이 성장하는 시기로 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소득이 은퇴 이후 활발한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도 희소식이다. 선진국의 경우, 시니어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니어산업의 규모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2011년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 실버세대보다 높은 경제력을 지닌 베이비부머가 65세에 진입하면 국내 시니어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향후 10년간 연평균 14.2%씩 시니어산업이 성장할 것이며, 2020년에는 2010년(약 33조원)의 3.8배인 약 125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치로 본 시니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국내 기업들의 시니어 층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둘씩 이 산업에 발을 들이미는 이유다.
◇ 시니어 산업의 깃발을 선점하려는 기업들
국내 최대 인구집단. ‘베이비부머’는 동시에 가장 큰 소비력을 가진 집단으로 통한다. 잠재적인 거대시장의 기회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여러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는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열었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시니어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시니어들의 불편사항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상품에 반영·생산한다.
GS샵의 시니어 전문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도 지난 해 4월 문을 열었다. ‘오아후’는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의 상담,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GS샵은 ‘오아후’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경제력을 지닌 50대 젊은 시니어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내의 전문 기업 쌍방울도 시니어 시장에 발을 들였다. 쌍방울의 시니어 기능성 속옷 브랜드 ‘올쏘(ALSSO)’는 18일 대구 대백프라자를 시작으로 30여개 품목이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
기능성 속옷 올쏘는 요실금이 있는 시니어를 위해 강력한 흡수성과 빠른 건조 능력을 갖췄다.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으로 옷맵시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공략할 계획이다.
쌍방울은 최근 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이 향후 시니어 기능 제품의 수요로 이어 질 것으로 판단했다. 시니어 속옷에 힘을 쏟아 올해 전체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내 시니어 산업의 한계,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니어 산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한 깃발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시니어를 겨냥한 산업이 건강 보조 용·식품, 생활 보조 용품 등 시니어 용품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일본과 미국의 성공사례는 국내 시니어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 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량, 사용 시간 등을 IT기술로 체크해 자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준다. 나눔 지원 비즈니스도 있다. 일종의 재능 기부 형태다. ‘경영지원 NPO클럽’에서는 평균연령 70.5세의 은퇴한 대기업 간부 160명을 구성해 중소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 하고 있다. 시니어 세대의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은퇴 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수개월을 예약·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헌츠먼 월드 시니어 게임즈’(Huntsman Wolrd Senior Games)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목적 분명 여가 상품을 개발했다. 테니스, 골프 등을 올림픽처럼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약 4천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이러한 해외 성공 사례는 국내 시니어 산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니어 산업을 창조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시니어 산업, 시니어 커뮤니티와의 연계 필수
시니어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사업적으로 뚜렷하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 LG 경제연구소 고은지 연구위원은 자료를 통해 시니어 산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고령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이해 부족이다. 고 위원은 다수의 기업이 고령화를 통한 사업 기회를 당장의 화제가 아닌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시니어 시장의 수요나 구매력에 대한 분석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시니어 소비자의 양면성이다. 시니어 중 어떤 사람도 ‘올드(Old)’라고 표기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육체적인 노화로 발생하는 독특한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셋째, 잘못된 의사소통이다. 고 위원은 시니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 방법이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방법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위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 커뮤니티와 연구기관, 관련 협회단체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시니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티 활동이 많은 시니어 소비자들을 겨냥해 기업들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소비자 저변을 넓히는 활동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산업의 리딩 컴퍼니(Leading Company)] 시니어가 곧 미래다 - 유한킴벌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지만.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닻을 올린 기업이 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 킴벌리이다.
유한 킴벌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물은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통해 실현됐다. 골든프렌즈가 기존의 시니어 브랜드와 차별화 된 것은 시니어를 능동적인(Active) 주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영한 것이 골든 프렌즈의 대표상품 ‘디펜드 스타일 요실금 팬티’다. 요실금 팬티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불편사항을 받아들여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난 요실금 팬티를 고안했다.
오프라인 매장도 2012년 10월부터 2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종로와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내부의 골든프렌즈 매장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기능성 신발, 가스차단기, 요실금 팬티 등 시니어들의 활동적인 생활을 도와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유한킴벌리는 고령화 문제 해결과 시니어사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니어 기금’을 조성하고, 소기업 육성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와 시니어 비즈니스를 창조한다는 계획이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는 인터뷰에서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된다. 결국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은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별들이 넘치는 계곡으로 가요. 올 여름 바캉스에서 가족과 아내와 남편. 또는 애인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LP곡을 뽑아봤다. 우리 5060이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긴 머리 휘날리며 온 세상을 누비던 시절 들었던 추억의 곡들이다. 올 여름 바캉스에는 근사한 턴테이블 하나 들고 가는 것은 어떨까?
◇ 키보이스, 골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이 바로 이 ‘해변으로 가요’일 것이다. 한국의 비틀즈라는 별칭으로 국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키보이스. 그들의 앨범 골드(Gold)는 여름을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캉스에서 들을만한 LP를 추천해달라고하자 박 대표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앨범이다. ‘해변으로 가요’외에도 ‘바닷가의 추억’, ‘정든 배’ 등 주옥같은 곡이 있으니 가히 여름을 위한 LP라 할만하다.
◇ 한상일, 애창곡집
한상일의 애창곡집 중 ‘애모의 노래’는 노랫말이 몹시 구슬프다. 그러나 멜로디가 꽤나 감성을 자극하고 서정적이다. 박 대표는 바캉스에서 느지막한 저녁.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들을 수 있는 노래로 한상일의 ‘애모의 노래’를 추천했다. ‘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 노랫말처럼 되지 말고, 바캉스에서 옆에 있는 짝과 앞날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 윤형주, 골든 포크 앨범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휘파람 소리와 통기타 소리가 신나게 어우러져 어깨가 들썩거린다. ‘쎄시봉’ 윤형주의 ‘즐거운 하이킹’이다. 통기타를 배운 사람이라면 가족들과 모닥불 피워놓고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물론 기타가 없어도 걱정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스크래치 음성이 들리는 LP가 있으니까. 통기타 대신 가족을 위해 또는 동행자를 위해 이 LP를 준비했다면 그날 만큼은 당신이 쎄시봉의 주인공이다.
◇ 은희, 골든 디럭스 20
분위기 잡기 좋은 노래다. 10대 20대의 자식들과 함께라면 우리 때는 이런 노래가 있었다고 자랑 할 수도 있다. 은희의 ‘물새우는 해변’이다. 드넓은 밤바다가 외로워 보인다면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지도 모른다. 바캉스의 여름밤이 즐거워야만 하랴. 슬픔의 눈물을 훔치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여러 여름 밤 중 하나이니. 사무치는 외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 곡에 빠져 보길 추천한다.
◇ 4월과 5월, 베스트
7월과 8월 듣기 좋은 노래로 박 대표가 추천한 곡이다. 4월과 5월의 ‘바다의 여인’이다.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던 젊은 날의 바캉스. 그러나 그 기대는 한 줌의 모래알과 같았던 적이 많지 않은가. 그 설렘과 허무함이 이 곡에 담겨있다. 추억할 수 있다면 이 곡만 한 것도 없다. 노랫말 그대로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바닷가에서 추억을 맺은 사람’들도 이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 비치보이스 (The Beach Boys), 베스트 오브 더 비치 보이스(Best Of The Beach Boys)
자식들과 함께 들어라. 신나게 발을 땅에 비벼라. 몸을 흔들어라. ‘신난다’라는 표현은 약하다. 가족 사이에 웃음이 만개할 것이다.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의 ‘서핑 유에스에이(Surfing USA)’다. ‘외국곡 추천해도 돼죠?’. 박 대표가 물었다. ‘예’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천했다. 이 곡을 듣자마자 여름곡이라는 확신이 생길 것이다. 다리도 저절로 움직일 것이고, 나도 모르게 ‘트위스트 킹’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 앞이라고 부끄러워 하지말라. 그들도 똑같을테니. 소통? 이 노래하나면 끝이다. 몸으로 말하면 된다.
◇박임선 대표 소개
동굴에 35년 동안 살고 있다. LP의 동굴이다. 황학동에 위치한 ‘장안레코드’의 대표인 박임선(55)씨는 LP와 음반의 산 증인이다. ‘지지직’ 소리가 나는 LP를 CD보다 더 좋아한다. 그야말로 음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2030세대의 워너비 인물을 탐구하면 5060의 현실과 미래가 보인다. 그래서 2030세대 321명에게 물어봤다. 6월 9일부터 20일까지 SNS와 설문지 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다. 2030세대가 원하는 정재계 인물을 통해 5060의 미래를 알아보자.
[워너비(Wanna Be) 정치인]
“시민과의 소통. 탈권위적인 행보가 많은 귀감이 됩니다.” - 1위 박원순 서울시장
2030세대의 ‘귀감이 될 만한 워너비(Wanna Be) 정치인’ 1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었다. 2030세대 321명의 응답자의 37%(117명)가 그를 선택했다. 후보군을 정해 놓지 않은 주관식 설문이어서 박 시장의 117표는 더욱 빛난다.
이 결과는 6ㆍ4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깨끗하고 소탈한 선거유세 방식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활발한 SNS 활동을 통한 시민과의 소통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17명의 응답자들의 다수가 박 시장의 현실성 있는 선거 공약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박 시장이 실행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정 운영에 진정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박 시장의 차분한 말투와 온화하고 친근한 이미지도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소통과 고위 공직자의 낮은 자세 그리고 사소한 공약이라도 지키는 ‘의리’가 2030세대가 박 시장을 선택한 이유인 것이다.
이 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24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21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12표)이 박 시장의 뒤를 이었다.
◇ 이래서 귀감이 됩니다. 2030의 말말말
부드러운 리더십, 온화한 미소와 목소리, 본질을 고민하는 자세 (김지영ㆍ27)
"도시는 시장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속성이 중요해요. 진정한 걸작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됩니다." 다시 엎고 새로운 것을 하기보단 오랫동안 다듬으면서 창조적인 도시로 이끌어 나가겠다고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26세 여성)
선거 기간에 시국을 잘 이해하고 차량 유세를 하지 않았다. 선거기간동안 네거티브로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지 않은 점에서 인품을 알 수 있었다. (박기윤ㆍ30)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정책으로 효율적인 행정집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력과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로만 떠들며 이미지 관리하는 타 정치인과는 달리 진정성이 느껴진다. (윤성현ㆍ27)
◇ BUT! 나에게는 ‘돈 워너비’ 박원순
반대로 9명의 응답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돈 워너비’ 정치인으로 선택했다. 응답자 대부분의 생각은 비슷했다. 포퓰리즘 정치인이라는 맥락이다. 37세의 남성은 “서민 흉내를 내는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권모씨(38)도 “가식적인 느낌의 거지 시장”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2030세대의 워너비 인물을 탐구하면 5060의 현실과 미래가 보인다. 그래서 2030세대 321명에게 물어봤다. 6월 9일부터 20일까지 SNS와 설문지 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다. 2030세대가 원하는 정재계 인물을 통해 5060의 미래를 알아보자.
[워너비(Wanna Be) 경제인]
“삼성이라는 두 글자면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끝이다” - 1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나라 전체가 술렁거린다. 대한민국의 작은 거인이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 이미 대한민국을 넘어섰다. 2030세대가 뽑은 ‘귀감이 되는 워너비(Wanna Be) 경제인’ 1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321명 중 57명의 표를 받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45표)에 근소하게 앞서 1위에 당당히 올랐다.
2030세대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이라는 기업을 초대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회장을 선택한 응답자들은 경영 철학과 시대를 앞서가는 기업 문화는 국내 대기업에 본보기가 됐다고 봤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끌어 올렸다는 응답도 많았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45표로 2위에 오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기술고문도 눈길을 끈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자수성가의 표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본보기’라고 표현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미국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각각 21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18표)이 이들의 뒤를 이었다.
◇ 이래서 귀감이 됩니다. 2030의 말말말
의외로 이건희 회장의 사회적 기여에 비해 국민들의 저평가가 많은 것 같다. 기업 이미지를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 한다. (박용호ㆍ37)
삼성의 성장을 이끈 그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이 마음에 든다. 세월호 사고 때도 크레인을 지원하는 등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양지석ㆍ25)
한국에서 삼성의 위상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의 신조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노고는 인정한다. (박수정ㆍ24)
인내심이 강하며 입체적 사고 능력이 뛰어나다. (남자ㆍ24)
지난 4월 침통했다. 허둥지둥 대는 어른들, 그 모습에 수많은 젊은이들은 허탈한 한숨을 내 쉬었다. 5060세대가 해왔던 관행이나 관습이 2030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30세대. 그들도 5060세대에게 할 말이 많다. 5060세대의 꼴불견 행동이 세대 간의 불신만 키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30세대 250명에게 물었다. 5060세대의 어떤 관행이나 관습을 가장 꼴불견이라고 생각할까.
2030세대가 선택한 가장 큰 꼴불견은 5060세대의 ‘일방통행 소통’이었다.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행위’(35.6%)와 ‘토론이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관행’(19.4%)이 2030세대의 5060세대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는 2030세대가 5060세대의 일방통행 소통이 세대 간의 소통을 방해 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5060세대들은 경제 성장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계획대로, 위에서 지시 받은 대로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도 이러한 수직적 소통방법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 방식은 2030세대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2030세대는 일방적인 통보보다 토론이나 대화를 통한 수평적인 유대 관계가 소통이라고 인식했다. 이런 세대에게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일방통행 소통방식은 ‘케케묵은 것’으로 비쳐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2030세대는 ‘일방통행 소통’의 뒤를 잇는 5060세대의 꼴불견으로 ‘학연·지연·끼리끼리 이익집단화’(18%)를 꼽았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관피아’에 대한 우려와 오랜 시간 끼리끼리 문화로 형성된 경직된 사회 조직에 대한 2030세대의 불만 표출로 보인다.
이 밖에도 △대충대충 문화(7%) △리베이트와 급행료(6.4%) △안전 불감증(6.1%) △빨리빨리 문화(4.1%)가 뒤따랐다. 이러한 결과가 주는 의미는 뚜렷하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주는 메시지다.
소통의 방식을 다변화시켜 세대 간의 격차를 줄여보자는 의미인 것은 아닐까.
2030세대 100명 중 71.9명이 말한다.
“우리가 5060세대가 되면 지금의 5060세대와는 다를 거예요.”
2030세대도 기성세대의 꼴불견 관습에 많이 지쳐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 통합은 뒷전인 정치권, 학연과 지연이 팽배한 사회, 2030세대에게 일방통행으로 주입 시켜 놓고선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났을 때 나몰라라하는 기성세대의 무책임함에 경종을 울렸다고 할 수 있는 결과다.
이러한 결과는 2030세대의 다수가 5060세대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바꿔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