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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전의 대표 마을, 델포이의 매력
- 나의 운명을 누군가가 알려준다면 인생이 편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에게 자신의 운명을 점지 받았다. 무녀가 아폴론 신을 대신한다고 철저하게 믿었던 것은 그 시대의 역대 왕들은 물론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델포이 마을에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파르나소스 바위산과 올리브 나무가 지천인 첩첩 산골마을 델포이.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주민들은 떠나는 여행객의 옷깃을 자꾸만 부여잡는다. 2500여 년 동안 델포이를 지킨 유적지 델포이(오늘날은 델피로 불린다)는 BC 8~6세기 무렵만 해도 아테네보다 훨씬 번성한 도시였지만 현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길을 묻지 않아도 “뭘 도와줄까?” 하고 말 걸어오는 정겨운 사람들이 있다. 델포이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느릿느릿 천천히 돌아다니면 된다. 델포이 마을 주변에는 2500여 년 전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유적지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산허리를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위쪽은 신성 지역이고 아래쪽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이 자리한다. 마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신성 지역이다. 우선 입구에서 박물관도 함께 볼 수 있는 통합 티켓을 구입한 뒤 고대의 시간이 멈춰버린, 유적지 안으로 들어선다. 아폴론 신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종교 용품과 생활 용품을 거래했던 아고라(시장), ‘블레우테리온’이라 불리던 델포이 의사당, 여러 도시 국가에서 보내온 보물을 보관해놓았던 보물창고 등 흥미로운 유적들이 부서진 채로 흩어져 있다. 옴파로스에 앉은 여 사제 아폴론 신전 앞에는 ‘대지의 배꼽(옴파로스)’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 밑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델포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날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이 다시 만난 곳이 델포이의 파르나소스 산(Parnassos, 2457m) 정상이었다. 제우스는 아들 아폴론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 아폴론은 파르나소스 산의 코리시안 동굴에 살던 거대한 구렁이 피톤을 죽이고 신탁소(神託所, oracle, 신이 여 사제를 통해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답하는 일)를 열었다. 아폴론 신이 사는 곳이라 알려지면서 델포이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당시 델포이 신탁소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했다. 아폴론은 신이었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여 사제 피티아(Pythia)를 통해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정갈하게 한 뒤 듣고 싶은 내용을 남자 사제에게 말하면 남자 사제가 피티아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피티아는 그 내용을 아폴론 신에게 전달해 답을 받아 다시 전달했다. 신탁비로 펠리노스라 불리는 세금을 받았고, 제단에 동물을 바치도록 했다. 델포이 신탁소에는 왕은 물론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도 찾아와 무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 리디아의 크리소스 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해서 진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무녀의 말을 듣고 탐구의 길을 떠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렇게 번성하던 신탁소도 서서히 쇠퇴했다. 392년, 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숭배 금지령을 내리면서 델포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마감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현실에서 신이 미래를 점지해준다면 삶의 갈등이 줄어들까? 델포이 원형극장과 스타디움 아폴론 신전을 지나 보물창고를 거쳐 더 위로 오르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델포이 극장을 만난다. BC 4세기에 건설된 델포이 극장은 35단의 관람석이 있어 5000명이 동시에 음악이나 연극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넓은 원형 극장과 부서진 유적들 밑으로 시야가 확 트여 눈이 시원하다. 뒤로는 파르나소스 암산이 턱 버티고 있고,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밑으로는 울울창창 올리브 나무가 경사진 터를 장악한 풍경이다. 골이 깊어 마치 강이 흐르는 듯한 전경도 장관이다. 극장에서 언덕을 따라 조금 이동하면 온통 침엽수로 둘러싸인 곳에 경기장이 있다. 델포이 제전이 개최되던 경기장이다. 바위를 깎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경기장은 길이가 200m, 폭은 50m에 달한다. 델포이 제전은 아폴론이 구렁이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BC 8세기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시와 음악에 관한 행사를 중심으로 8년마다 개최되던 제전은 AD 582년부터 육상과 말타기 기술, 마차경주 등이 더해지면서 4년마다 열렸다. 델포이 제전의 흔적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지로 남아 있다. 김나지움은 그리스어로 ‘운동하는 곳’이고 마르마리아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과 성역이다. 델포이 신탁소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렀던 곳으로, 부서진 아테네 신전과 BC 4세기경에 지어진 원형 건축물인 ‘톨로스’ 등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 톨로스는 현재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적으로, 그리스를 소개하는 포스터와 책자에 자주 등장한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노천 유적지를 다 보고 나면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1902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에는 델포이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내부 전시관은 기원전으로 시대가 돌아가 있다. 1896년에 발굴된 청동상과 작은 도상들,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로마 시대까지 시대별로 그리스의 발전사를 볼 수 있다. 눈여겨볼 것으로는 아르카이크 시대에 만들어진 은판으로 된 황금머리 황소, 낙소스 인의 작품인 스핑크스, 대지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 전차를 모는 청동 마부상,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무희의 기둥 등이다. 또 마을 안쪽 끝으로 올라가면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1884~1951)와 에바 팔머(1874~1952)의 축제 박물관이 있다. 이들은 1927년, 델포이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 공연을 기획했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극단이 모여 벌인 연극 축제였다. 현재도 7~8월의 휴가철이 되면 음악과 고대 드라마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Travel Data 항공편 그리스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가면 된다. 현지 교통 아테네 리오시온(Liossion) 버스터미널에서 델포이로 가는 버스가 1일 2~3회 운행된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맛집 정보 고급 식당보다는 일반 식당인 타베르나(Taverna)가 인기다. 카페에서도 피자는 물론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숙박 정보 대부분의 숙소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조식이 제공된다. 카스탈리아 부티크 호텔, 레토 호텔, 이니오호스 호텔이 상위 순위에 있다. 대부분 4~5만 원 정도면 이용 가능하다. 날씨 정보 그리스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지닌 나라다. 6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평균기온은 25℃ 이상. 7월은 30℃를 웃돈다. 델포이는 첩첩산중이지만 부서진 유적지는 나무가 없는 노천이라서 뜨겁다. 여름옷은 물론 파라솔, 모자는 필수다. 고온이긴 해도 습도가 낮아 불쾌지수는 거의 없는 편. 물가와 화폐 정보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유로 사용. 인터넷 정보 대부분의 식당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델포이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번잡스럽게 움직일 필요 없이 천천히 즐기면 된다.
- 2018-07-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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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가 하석 박원규 제자 모임 ‘겸수회(兼修會)’
- 오랜 세월 붓을 들어 글을 쓰고 연구하다 보니 따르는 이들이 생겼다. 스스로를 제자라 칭했다. 그리고 스승을 따라 정진했다.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서로 의지해 돕는 일이 생겨났다. 눈빛 한 번에 손발 착착 맞는 환상적인 어울림으로 함께 익어간다. 사제지간 정이 쌓일수록 서로가 내는 향기는 깊고, 우정은 돈독하다. 일생일대 대업(?)을 마무리하고 오순도순 나들이 간다는 서예가 하석 박원규와 그의 제자 모임인 겸수회를 따라가 보았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소풍 길에는 기품 넘치는 특별함이 있었다. 何石이 아닌 兼修會가 주인공입니다 6월 초 화창했던 토요일 이른 아침,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주차장. 대형 관광버스 한 대가 겸수회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월 말, 예술의전당 한국서예박물관에서 있었던 하석 박원규(이하 하석) 선생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전’이 잘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는 여행이었다. 하석 선생이 작업한 ‘부모은중경’의 실제 소장자이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원한 석주미술관 류성우 관장이 마련한 자리였다. 지금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하석 선생은 물론, 그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준 제자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는 뜻이라고 했다. 겸수회원들은 이날 광주시립박물관 서예전 ‘예결금란(藝結金蘭)’을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류성우 관장이 20년 넘게 조성 중인 대단위 문화 공원 ‘청사지향(靑思之鄕:영원한 청춘의 고향)’으로 가서 맛있는 요리와 공연을 즐겼다. ‘겸손함과 배움을 아울러 닦는 모임’이라는 뜻의 겸수회(兼修會)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서예가 하석 선생을 따르는 제자 모임이다. 하석 선생의 작업실인 석곡실에 모여 글을 배우고 익힌다. 지역도 세대도 성별도 직업도 너무나 각양각색인 하석 선생의 제자들. 제자라지만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대 스승이기도 하다. 실로 색채 강한 무림고수 모임. 그럼에도 ‘겸수회’란 이름으로 모이는 순간 채도를 낮추고 묵색으로 모여 어우러짐을 즐긴다. 겸수회는 12년 전인 2006년에 생겨났다. 하석 선생이 붓을 잡은 지 55년이 됐다는데 너무나 늦은 출발이다. 하석 선생은 애초부터 본인을 중심으로 한 제자 모임 자체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작은 모임을 만들면 하석 선생은 모임 이름을 지어주는 정도였다. 스승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문하의 의미 또한 커졌다. 겸수회 총무 배효룡 씨는 겸수회 조직 배경에는 일종의 압박(?)과 필요에 의한 떠밀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예가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의 제자 모임인 연우회 때문이었어요. 2006년에 우리 서단의 대표적인 스승과 문하, 문파가 모여서 합동 사대문파 사문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석 선생님은 제자 모임이 없으니까 연우회 임원진이 당황한 거죠. ‘도대체 하석 선생님 제자와는 어떻게 연락을 하냐!’, ‘하석 선생도 전체 제자 모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답니다. 그 바람에 겸수회가 생겨났죠. 2006년에 겸수회 창립전시 도록에 보면 왜 우리가 겸수회를 만들 수밖에 없었나가 적혀 있습니다.(웃음)” 당시 사문전이 없고 다른 서예가 제자의 요청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모임이란 뜻이다. 조직을 만들어 세력을 키우는 데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하석 선생의 뜻도 품성을 잘 알기에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겸수회는 생기고 난 뒤 다양한 면에서 하석 선생을 돕는 전문 지원단이 됐다. 느긋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시 달인들 하석 선생이 6년의 공을 들여 쓴 ‘부모은중경’은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불교 경전 중 하나다. 이를 폭 145cm, 높이 340cm의 한지 여든한 장에 광개토대왕비에 쓰인 서체로 수를 놓듯 써내려갔다. 전시회 당시 눈에 잘 띄지 않는 높은 벽까지 이용해 작품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후세에 역사적으로 남을 대작을 꿈꾸었고 길고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진행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하석 선생은 ‘부모은중경’ 여든한 장 중 마지막 장을 일종의 영화 엔딩 크레디트처럼 장식했다. 겸수회 제자의 활약도 여기에 기록했다. 이번뿐만 아니라 행사 때마다 도록 제작, 홍보, 현장 지원 등을 겸수회원이 도맡는다.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거나 서두르지 않고 잔잔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겸수회다.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는 아무 일 없었단 듯 벼루 앞에 앉아 먹을 갈고, 종이 위에 한 자 또 한 자 글을 써나가는 사람들. 우리 시대의 잊힐지 모르는 것을 지키고 앉아 하루하루를 산다. 평범한 듯 특별한 겸수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 2018-07-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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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야생의 삶을 느껴보는 '몽골 핫 플레이스'
-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리아다. 면적은 156만7000㎢로 한반도보다 7배 정도 크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거주자는 124만 명이다. 인구 밀도는 1.78명/㎢이고, 평균수명은 65.2세로 남자 62.9세, 여자 67.6세다. 몽골인들은 주로 염소, 양, 소, 말, 낙타 등을 키운다. 가축 수는 총 3270만 두에 이른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이슬람교도가 5%를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약 4만 명 추산)에 이른다. 나머지 3%는 무신론자다. 몽골의 국화가 연꽃인 것도 불교의 영향이다. 몽골 표준시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한국과의 거리는 약 2000㎞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몽골 정보 국명 몽골(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 위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 면적 156만 7000㎢, 세계 19위 민족 할흐 몽골족(90%), 카자흐족(5.9%), 브리야트계(2%) 등 17개 부족 언어 할흐 몽골어 90%, 키릴문자, 문맹률 5% 이하 종교 라마불교 53%, 무교 39%, 이슬람교 4%, 기독교 4% 기후 건성 냉대기후 인구 약 300만 명, 세계 138위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 국가 형태 공화국 정부 형태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 국내총생산 (GDP)US$ 102억(2012년), 1인당 국내총생산 US$ 3575(2012년) 화폐단위 투그릭(Tg, Tugrik), 1미국달러 = 2458투그릭(2018년 6월 기준) 독립일 1921년 7월 11일(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년 11월 26일 몽골의 날씨 6~8월 몽골 여행의 베스트 시즌. 초원에는 풀이 자라고 맑고 쾌적한 날씨가 계속된다. 한국의 화창한 가을날과 유사한 날씨로 낮에는 해가 강하지만 그늘은 시원하다. 습도가 매우 낮은 여름의 몽골은 고온 다습한 한국의 여름을 피하기 가장 좋은 피서지다. 일교차가 심하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두꺼운 파카가 필요하다. (평균기온 최고 30℃ 최저 15℃) 9~10월 몽골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보다 일찍 찾아온다. 약간 쌀쌀하지만 여름 성수기를 지났기 때문에 여행자로 북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중부지역과 남쪽 고비 사막 지역의 경우 9월 말까지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추위가 일찍 찾아올 경우 북부 홉스골 지역은 여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승마와 트레킹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몽골의 기념품 캐시미어 의류 캐시미어용 염소(산양)의 털을 빗겨 채취한 최고급 100% 캐시미어는 국내 시중가의 절반 가격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목도리, 니트류, 숄, 양말 등이 인기가 많다. 고비 팩토리숍, 국영백화점 2층, 서울의 거리 로드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여성용 목도리는 한화 약 3만~5만 원 정도. 제품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펠트 소품 양털을 압축한 펠트로 만든 컵받침, 몽골인형, 열쇠고리 등 제품이 다양하다. 국영백화점 6층 기념품 숍에서 개당 한화 3000~7000원 정도다. 보드카 몽골 북부 셀렝게 지방의 질 좋은 밀로 만든 몽골 보드카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여행자 인기 품목이다. 700ml 1병에 한화 약 2만 원가량 하며, 소욤보, 칭기즈칸, 벌러르 같은 브랜드를 추천한다. 그러나 매월 1일은 몽골 전 지역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에 여행기간 중 매월 1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전에 구입하길 추천한다. 또한 국내 입국 시 1인당 휴대품 면세 범위 규정에 따라 주류는 1인 1ℓ 1병까지만 허용되니 이 점도 유의. 초콜릿과 과자류 단것을 좋아하는 몽골인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초콜릿과 과자가 많다. 특히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초콜릿 등은 선물용으로 좋다. 차가버섯 건강식품류 몽골에서 생산되는 차가버섯을 이용한 차, 분말 등의 건강식품도 최근 들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몽골의 드럭스토어인 모노스 숍에서 판매한다. 립밤, 수분크림 등 보습제품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는 다양한 보습 제품이 한국보다 저렴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히말라야 립밤, 수분크림 등은 국내 시중가의 절반 정도다. 테를지 국립공원 테를지 국립공원은 힌티 산맥 산기슭에 위치한 몽골 최고 휴양지로 울란바토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기암괴석, 숲, 초원,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툴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각양각색 야생화가 피어난다. 말타기 체험, 야생화 트레킹 등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거북바위 테를지 국립공원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거북바위는 이름 그대로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웅장한 규모의 거북바위 주변에는 항상 관광버스와 단체 여행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도 있으니 한 곳쯤 들러 맛보길 권한다. 테를지 최고 관광지답게 여름 성수기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엘승타사르하이 엘승타사르하이는 멀리 남고비 사막까지 가지 않아도 대규모 사구 지역을 볼 수 있다. 사막 체험을 할 수 있어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모래 사막은 약 70km에 걸쳐 뻗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초원, 실개천, 사막 지형이 한데 섞여 있는 풍광을 자랑한다. 사막 주변으로는 낙타, 염소, 양을 키우는 유목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지천으로 핀 에델바이스를 만끽할 수 있다. 천진벌덕 칭기즈칸 대형 동상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울란바토르에서 100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진벌덕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볼 수 있다.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최근에 생긴 몽골 랜드마크 중의 하나이며 40m 높이의 초대형 동상이다. 칭기즈칸 거대 동상은 고향 힌티 아이막을 바라보고 있다. 내부에서는 칭기즈칸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다. 몽골의 예술문화 몽골 전통 공연에는 한국 탈춤과 비슷한 ‘참(Tsam)과 오직 사람 목청만으로 소리 내 연주하는 ’흐미(Khuumii)‘가 있다. 전통 악기로는 마두금이 대표적이다. 현이 2개인 찰현악기로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해금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한다. 현 위쪽 끝에 말 머리 모양을 새겨놓아 마두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2018-07-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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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신현대 싱어송라이터협회장
- 자신의 직업이 산악인인지 가수인지 모르겠다며 웃는 남자. 1990년 ‘난 바람 넌 눈물’의 작사·작곡자이면서 노래까지 불러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지만 마치 그 노래의 가사처럼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가수, 신현대(62)를 마주했다. 대중의 시선 밖에 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가수다. 그리고 산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산악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장으로서 음악의 본질을 되물으며, 자연인이자 자유인으로서 살고 있는 그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봤다. 백미현과 듀엣으로 부른 히트곡 ‘난 바람 넌 눈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지금은 산악인이자 산을 노래하며 포크의 부활을 꿈꾸는 가수 신현대. 1956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자 그는 “요즘 동안이 너무 많아서 별 의미 없다”며 웃었다. 동안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걸까. 아니다. 공연장에서 들은 그의 목소리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시간의 무게를 털고 훨훨 날아가는 힘이 느껴졌다.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만의 산이 있는 것 “방송국에 가면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산악인인지 가수인지.(웃음)” 일찍이 알프스 마테호른,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그리고 히말라야 초오유를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 그는 요즘도 매년 때가 되면 히말라야를 향해 떠나는 영락없는 산악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여름만 되면 무전여행을 하느라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그의 핏속에는 유랑인의 감성이 흐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산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 기술만을 가르치는 작금의 등산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북한산을 탄 사람들 중에 ‘종주하면 5~6시간 걸리는데 난 3시간에 갔어’라며 자랑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건 산을 다니는 게 아니에요. 북한산 코스는 어마어마합니다. 그 코스들을 다 올라야 하는 건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북한산의 일부분만 본 거지 속살을 본 게 아닙니다. 진정한 산악인은 산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야 해요. 나만의 산이 존재하는 거죠.” 산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사계의 모습이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산에 갈 때면 항상 식물도감을 가져간다고 한다. 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서다. 8300m 산 위에서 여는 콘서트 ‘노트콘’ 산을 사랑하는 만큼 신현대는 산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산과 음악을 함께 다룬다. 그가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우리나라의 산 노래를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산 노래들을 보면 일본 군가에 개사만 해서 붙인 곡들이 많아요. 산 노래를 정리한 사람도 거의 없었죠. ‘설악가’만 봐도 각 대학 산악회, 일반 산악회가 부르는 멜로디가 달라요. 그래서 일본 군가는 다 빼고, 내가 만든 ‘선인봉’ 등 산 노래를 집대성하고 있어요. CD 3장짜리 전집으로 제작 중인데 돈이 의외로 많이 들어가서 모금을 해서 제작하는 방법을 생각 중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돈도 안 되는 산 노래를 왜 만드냐고 한단다. 그러나 그는 에베레스트(8848m)를 갈 때도 8300m 높이까지 기타를 갖고 간 사람이다. 산이 높으면 숨이 차서 노래를 못하는데도 그는 고소 체질이라서 고산지대에서도 노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산을 타기 위해 몸도 타고난 것일까. 그렇게 산과 노래를 함께 아우르는 그이기에 산 노래는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호흡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매년 2월에 노트콘(노래하는 산 트레킹 콘서트)을 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도 에베레스트 트레킹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작년에도 안나푸르나 갔다 와서 사진전과 콘서트를 했고 수익은 현지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사용했어요. 같이 간 사람들이 글을 쓰면 그걸로 가사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고요.” ‘예쁜 얘기’만 해야 했던 방송이 부담돼 그는 “음악도 등산과 같다”고 강조한다. 꾸준히, 자신이 평생 추구해야 할 업으로 삼아야 진정한 가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그는 히트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가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방송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음악 활동이 멈춘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방송을 가면 예쁜 얘기만 해야 해서 싫었어요. 왠지 불편하고 거기에 무대공포증까지 있다 보니 방송이 체질에 안 맞더군요. 대신 콘서트는 계속했습니다.” 요즘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얼마나 단련된 가수인지를 바로 알 수 있다. 후배이자 현재 제7대 국립국악원장인 왕기석 명창에게 배운 소리로 공연 전 단가와 가곡으로 목을 푸는 그는 과거에는 마당 세실에서 하루에 2회씩 30일 연속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룰라의 히트곡 ‘비밀은 없어’를 작사·작곡한 박선민, 김광석의 노래로 유명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작자인 블루스의 대가 김목경과는 공연장에서 인연을 맺어 지금도 함께하는 동료다. “미디어에 나오지 않아도 꾸준히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타를 만들려는 지금의 세태가 어린아이들의 꿈을 죄다 연예인으로 만들고 있어요. 왜 그리도 부추기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이 아니어도 가수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음악에서 받은 것 음악으로 돌려줘야 한다 사단법인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명가의 품격’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공연을 하고 있다. 6월부터 이치현, 김목경, 백영규, 추가열 등 소위 대가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들이 학동 엠팟홀에서 릴레이로 진행하는 이 공연은 대한민국 가요의 역사와 지난 세월의 다양한 면모를 관록의 힘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예전에도 싱어송라이터협회 같은 모임이 있긴 했어요. 그러나 몇 번 해산되었다가 사단법인으로선 이곳이 처음이죠. 등록 회원은 350명 정도 됩니다.” 그가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를 맡게 된 이유는 ‘산에서 받아먹은 건 산으로 돌려줘야 하고 음악에서 받아먹은 것은 음악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는 엠팟홀과 MOU 형태로 계약을 맺고 싱어송라이터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매해 헌정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올해가 5회째이며 헌정 가수는 조동진으로 결정됐다. “어린 친구들은 연예인이 돼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음악을 하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노래하던 시절에는 그저 노래가 좋아서 가수가 된 경우가 많았어요. 누군가는 다 똑같지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오래 노래 부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좋아서 노래를 시작한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갑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종을 울릴 수 있는 노래 사실 ‘난 바람 넌 눈물’은 완성하기까지 5~6년이 필요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상대방 가슴에 있는 종을 울려주는 일’이라는 신현대의 지론. 그런 그가 사람들 가슴속 종을 울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노래를 굉장히 잘할 때가 있고 못할 때가 있어요. 속에서 솟아오르지 않을 때는 공연을 해도 할 노래가 없어요. 하기가 싫은 거지.” 그의 말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자연인’이었다. ‘자연인 신현대’는 거침이 없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제주의 둘레길이 유명해지니까 산에 별것 다 만들고… 그런 길들을 보면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모기만 늘어났으니…. 얼마 전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노래인 ‘산양의 노래’를 불렀어요. 거기서 백기완 선생을 만났죠. 오랜만에 봬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는데, 후배가 그걸 보고선 ‘형, 좌파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야 임마, 난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실파다. 파가 어디 있어 임마,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찍은 거지’ 했어요. 누구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인 거지요. 있는 그대로가 좋은 거지,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해선 안 되죠.” 자유로운 삶이 보상해주는 즐거움 “일을 벌일 때는 ‘내가 지명도가 더 높으면 일하는 게 편했을 텐데…’ 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무 때고 술을 먹을 수 있고 누가 알아보는 것도 아니어서 편해요. 그걸 고맙게 생각해요.” 자유인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미래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없으면 안 먹고, 있으면 먹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금처럼 살다가 떠날 때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면 된다는 그의 말에는 무위자연의 인생관이 담겨 있었다. “후배 아버지 한 분이 기억나는데, 그분이 정말 멋있었어요. 술을 좋아하셨는데, 임종 세 시간 전에 아들에게 위스키 한 잔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아들이 갖다 주니 그걸 마신 후 돌아가셨대요. 그 술맛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 술맛은 낙원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가 추구하는 낭만과 자유처럼, 신현대의 삶은 제3자의 눈에는 너무도 달콤하게 보였다. 속박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나는 듯한 그 자연스러움이.
- 2018-07-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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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엇보다도 영원한 ‘가수’ 송창식의 삶의 법칙
- 미사리 카페 ‘쏭아’에서의 밤 11시, 전설적인 포크 가수이자 대한민국 가수 송창식은 막 공연을 끝내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남양주 작업실로 이동했다. 새벽 5시에 잠들어 오후 2시에 깨는 생활을 수십 년째 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이 늦은 시간은 보통 사람들로 치면 저녁식사 시간쯤 된다. 국내에 단 두 대 있다는 1억 원짜리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1982년에 만들어진 아다마스 기타 등등 송창식의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수십 년 묵은 것들과 함께, 그리고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노래와 인생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에게 트윈폴리오는 없었던 역사예요.” 충격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인기 듀오였으며 자신이 소속해 있었던 트윈폴리오를 부정하는 송창식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만큼이나 그가 트윈폴리오를 부정하는 이유에는 단단한 논리가 있었다. 트윈폴리오로의 복귀, 불편했다 기인, 괴짜, 천재, 도사 등등 그를 가리키는 과장된 별명은 많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자극적인 별명들이 무색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음악인이다. 사실 송창식은 한창 쎄시봉 열풍이 일었을 때 언론에서 곧잘 언급이 되었지만 뭔가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음악인 송창식의 입장에서 볼 때, 쎄시봉으로 인한 복고 열풍 속에서 트윈폴리오가 다시 세상에 불려나오는 것은 이상하고 거부감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상황을 “사기 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과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수’ 송창식에게 그 말은 더없이 솔직한 심경의 토로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그 결론을 이해하려면 그의 노래와 삶을 들여봐야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사람 1947년생 송창식은 지난해 6월 목 수술을 했다. 지금은 목소리의 폼은 회복됐지만 음정 등 컨트롤이 좀 덜 되는 단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연습을 해도 일이 년 이상은 지속해야 다시 예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단다. “연습을 안 하면 음정이 안 돼요. 노래는 계속 연습해야 역량이 쌓이죠. 지금 성대의 새순이 올라왔으니, 이제 노래하는 성대로 만들어야 해요.” 대한민국 영원한 가객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하는 말은 갓 가요계에 데뷔한 연습생들의 마음가짐과 비슷했다. 말하자면 그는 철저한 현역 프로 음악인으로서 안주를 거부하고 있었다. “저도 처음에는 가수로서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어요. 노래 잘하고 싶었고 인기가수가 되고 싶었고 돈도 잘 벌고 싶었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욕구로부터 떠난 지 오래됐죠. 송창식은 거기 있는 거 같지 않다는 인식은 그 때문일 거예요. 노래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렇다면 송창식에게 노래란 무엇일까. 그는 한마디로 ‘공부거리’라 표현했다. 그리고 공부거리이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할 게 계속 생기니까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해도 다했다고 보긴 어려울 거예요.” 노래는 평생의 공부거리 그에게도 소위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이의 기준으로는 ‘그 정도면 다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송창식에게 인기는 큰 의미가 없다. 인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기는 내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 것이지. 사람들이 최고 인기가수를 만드는 거지, 가수가 잘나서 최고 인기가수가 되나.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뿐이죠. 인기는 계속 내려가요. 그리고 인기는 공부가 안 돼요. 공부는 습득해야 가능한 일인데 인기를 공부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게 사람인가?(웃음)” 그가 스튜디오에서 녹음용으로 쓰는 1억 원짜리 모니터 스피커를 갖고 있는 이유도 ‘공부’ 때문이다. 과거에 그는 자신의 앨범을 녹음할 때 당연히 엔지니어들에게 맡겼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들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아예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공부해서 1979년부터는 자신의 앨범을 직접 레코딩했다. 카페 ‘쏭아’에서 노래를 하는 이유 또한 그의 목적인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연을 매일 할 수 있는 곳은 카페밖에 없어요. 그게 공부예요. 어떤 때는 열렬하게 반응하고 어떤 때는 취한 사람들이 떠들고 말도 걸고. 보통 콘서트장에서 하는 노래와는 너무 다른, 다양성이 있는 환경에서 연주 경험을 쌓는 게 가능하죠. 그래서 다른 어떤 곳보다 카페가 좋아요.” 인터뷰가 있던 날, 그는 목이 안 좋다고 하면서도 열한 곡이나 불렀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한 거냐고 묻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 억지로 어떻게든 끝내 해내는 공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개량 한복 입고 새벽 1시에 껄껄 웃는 송창식은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긴 하다. 인기는 내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 그렇다면 그는 요즘 가수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했다. “노래에는 기본기가 있어야 해요. 복싱으로 치면 샌드백 치고 로드워크 하고 줄넘기 하는 것과 같죠. 그다음에 링 위에 올라가 스파링을 하죠. 기본기를 안 하고 스파링만 해도 권투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챔피언이 되기 어려워요. 그처럼 옛날에는 기초 없이 노래해도 부른 노래가 유행가가 돼서 가수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가요계를 바라볼 때 늘 그 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죠.” 그는 기본기와 연습이 가져다주는 위대한 결과를 철저하게 믿고 스스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노래와 연습량은 완전히 정비례해요. 그러니까 천재적인 음악가다, 이런 표현은 인정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알기에 최고의 음악 천재는 베토벤인데 이 사람이 정말 둔재였거든요. 아버지가 때려가면서 연습을 시켰기에 세계의 악성(樂聖)이 될 수 있었던 거죠. 모든 것은 몸으로 하는 거예요. 제가 바둑을 3단쯤 두는데, 바둑을 하면서 느낀 게 머리도 몸이라는 거였어요.(웃음) 매일 놓는 사람과 안 놓는 사람은 천양지차. 부단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연습량이 많으면 확실히 노래를 잘할 수 있어요. 연습 없이 재주만 있으면 언젠가는 고꾸라지죠.” 트윈폴리오가 ‘지워진 역사’가 된 이유 그는 요즘 가수들은 기초가 잘되어 있다고 평했다. 그런 면에서는 옛날 가수들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만 잘되어 있지 옛날 가수들처럼 대중과 스킨십하며 치열하게 파고들며 돌파하려는 자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요즘 가수들이 하는 방법이 좋아요. 그런데 끝까지 가야만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데 중간에 멈추는 것 같아요. 일장일단이 있는 거지. 그게 좀 아깝죠. 그런데 그건 더, 나중 후배들이 하게 되겠죠. 그 친구들은 지금 가수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니까. 한 이삼십 년 후에는 대형 가수들이 나올 수 있겠죠.” 이제 그가 트윈폴리오로서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발전을 믿으며 매일 공부하며 사는 그에게 있어 트윈폴리오로서의 복귀는 자신의 삶을 후퇴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그래서 트윈폴리오로서 사람들에게 불려 나올 때면 환호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트윈폴리오가 일흔 살이 됐으면 발전한 흔적이 있어야지 전혀 없었으니까. 옛날 추억에 기대서 돈이나 벌려는 것 같았으니까. 가수 송창식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는데 트윈폴리오는 계속 뒷걸음치는 것 같았으니까요.” 첫 번째는 안 하지만 두 번째도 안 한다 송창식은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선다. 파트너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함춘호다. “나는 첫 번째는 안 하는데 두 번째도 안 해요.(웃음) 그 사람과 경쟁이 안 된다면 그 사람이 하지 않는 걸 추구해서 내 것으로 만들지. 그래서 함춘호와 함께 기타를 치는 게 맞는 거예요.” 악기는 시작이 언제냐에 따라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고 한다. 20대부터 기타를 치는 사람은 10대부터 기타를 친 사람이 갖는 테크닉은 절대 안 생긴다는 것이다. 10대 때 기타를 치면서 잡히는 손가락 모양과 뼈가 자라면서 생기는 특별한 테크닉은 나이 먹으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타를 스무 살 이후에 친 송창식은 일찌감치 기타를 친 사람들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딴 걸로 메꿔야죠,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해서 훨씬 폭이 넓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가 있죠.” 함춘호와의 협연에서 그가 세컨드 기타를 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공연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한 것이다. ‘첫 번째는 안 하는데 두 번째도 안 한다’는 그의 말은 가요계에서 그가 어째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는지 설명해주는 절묘한 묘사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자신만의 자리를 갖게 된 것은 그런 허허실실로 균형 감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송창식처럼 사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따라서 송창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집요하게 구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점에서 그는 불가의 구도자 같은 인상에 묵직한 도인의 아우라를 갖게 된 것이리라. 다소 왜곡되는 게 있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이 믿는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가 어쩌면 오해 속에서 사는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게 아닌데 좋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긴 해요. 그런데 원래 성격이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라서요. 빠릿빠릿하지 않고 게으르고.(웃음)” 송창식을 멘토로 여기고 그의 삶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가진 가치를 실제로 느낀다면 모를까, 내 방식이 정석이 되긴 어려워요. 단지 ‘저 사람이 하는 저 방식도 괜찮지’ 정도로 인식될 순 있어요. 사람들에겐 내가 멘토가 되는 건 불편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죠. ‘나는 이걸 자연스럽게 갖게 돼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너희들은 나를 멘토로 삼으면 너무 힘들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요. 노래를 잘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나처럼 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송창식처럼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자부심이라기보다는 그가 자신의 삶을 가만히 반추하면서 나온 솔직한 결론이다. 우선 그가 가진 인내의 기준은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어렸을 때 너무나 가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심지어 거지조차도 못 되었다. 그는 거지 굴에 갔다가 매를 맞고 쫓겨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거지도 자신들끼리 뭉쳐서 만든 사회가 있었는데, 자신은 거기에도 못 끼었다는 것이다. “견딘 게 많았어요. 너무 춥고 배고팠으니까. 그런데 그걸 언급할 수 없는 게, 견딘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추우니까 ‘아, 추워. 배고파’ 했던 적은 있었지만 ‘죽겠네, 이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냥 습관적으로 견뎠죠. 그래서 나에게 견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희열도 없죠. 견딘 게 아니니까. 그냥 인생 살면서 넘어간 거니까.” 그는 돈에 집착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돈은 없으면 안 쓰면 되는 일이다. “그게 안 된다는 게 웃겨요. 난 돈이 없어서 서울예고를 중퇴했는데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스님이 됐을 것 송창식이 노래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음악 얘기만 한 터라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사자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노래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중이 됐을 거예요. 남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하는 일이니까요.” 송창식을 스님이라고 가정할 때 납득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는 즐거운 상상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스님은 사회 속에 있죠. 울타리 속 계급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아마 종단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을까.(웃음)” 송창식이 세상에서 이것만큼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게 있다. 종교 교주다. 누구보다도 교주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또 캐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왜냐하면 제일 높은 거니까요. 제일 높은 건 제일 나쁜 거예요.” 너무 단순한 대답인데도 설득력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클래식 쪽에 야망이 있었죠. 그러나 고등학교를 중퇴하며 그 야망이 꺾였죠. 당시엔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내가 있으니 지금의 내가 있다고 봐요. 필연적인 거였던 셈이죠. 그래서 지금은 새옹지마보다, 더 나아가서 ‘나쁜 건 다 좋은 거다, 좋은 건 다 나쁜 거다’라고 생각해요.(웃음)” 나쁜 것은 좋고 더 좋은 것은 더 나쁘다. 송창식이 사는 법을 우직하게 정의하는 그 문장은 삶에 대한 끝없는 긍정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절대로 상하지 않는 금강(金剛) 송창식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긍정과 자신감, 그 힘의 원천은 삶과 사람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자신감은 원래 사람들이 갖고 태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감은 절대 상할 수 없어요. 동네 깡패들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지언정 자신감은 안 상하는 거예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니까요. 그때 자신감이 상했다면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그런 걸 불교에서는 금강이라고 해요. 금강은 절대로 안 상합니다. 그것을 갖고 있으면 세상 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어쩌면 금강에 대한 얘기야말로 송창식이 말하는 삶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문답 후에 남는 것은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즐겁고도 평온한 웃음. 그리고 송창식은 그 웃음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죽어도 사람들에게 기억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 내가 냈던 노래판들 다 가져가면 좋겠어요. 그것들이 정말 가치가 있는 거라면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또 나와 같은 걸 할 테니까요. 그런데 이미 남겼으니 어쩌겠어.(웃음)” “그거면 된 거지” 하며 그가 너울거리듯 웃으면 기자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해가 진 후 미사리 쏭아에 가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소홀히 하지않고 진지하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애간장 태우는 목소리로 부숴버릴 듯 노래한다. 또 가 보고 싶다.
- 2018-06-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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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고 궁궐에서 찾는 '궁궐의 우리 나무'
- 창경궁에는 영조 38년(1762),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지켜본 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선인문 앞 금천 옆 회화나무와 광정문 밖의 아름드리 회화나무다. 이렇듯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나무들을 궁궐에서 찾아보는 것 어떨까? 유익한 안내서가 되어줄 ‘궁궐의 우리 나무’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저 자료 제공 눌와 5대 궁궐 안 나무를 한눈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덕수궁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위치를 하나하나 표시한 지도가 담겨 있다. 궁궐별로 나눠 각 파트의 첫 장에 앞서 말한 지도를 펼친 면으로 보여주고, 나무마다 상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확대된 지도도 제공한다. 실제 궁궐에 방문하게 된다면 두꺼운 책 대신 부록으로 들어 있는 한 장짜리 지도를 가져가자. 5대 궁궐 안 나무 위치뿐만 아니라 건물, 탑, 장승, 시설물, 탐방로, 음수대 정보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편리하고 유용하다. 이파리 모양으로 나무 찾기 각각의 나무를 소개하기 전 서두에 나무 이름 아래 이파리 사진을 먼저 보여준다. 형태가 비슷해 헷갈리거나 이름을 모르는 나무의 경우 이파리 모양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옆 페이지에는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나온다. 물론 계절이나 궁궐의 조경관리, 자연재해 등에 따라 조금씩 외형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사진과 함께 실린 내용을 통해 나무에 대한 기본 정보 및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에 기록된 다양한 이야기까지 엿볼 수 있다. 종에 따라 다른 나무 구별법 벚나무만 하더라도 왕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능수벚나무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종류만 10가지가 넘는다. 이처럼 같은 듯 다른 나무들을 구별해볼 수 있도록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밖에 회화나무와 주엽나무, 매화나무와 살구나무 등 종은 다르지만 생김새가 비슷해 헷갈리는 나무들에 대한 구별법도 살펴볼 수 있다. 나무껍질이나 꽃, 열매 등도 사진으로 실려 이파리 모양과 더불어 참고하면 나무 찾기에 도움이 된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1 고궁 나들이를 가는 날 시기가 맞는다면 ‘2018 고궁음악회’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6월 중 경복궁에 방문하면 수정전 일원에서 고궁음악회를 관람할 수 있다(주간: 7월 29일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15:30~16:15/야간: 6월 17~30일 20:00~20:55). 창경궁에서는 5월 20일부터 6월 2일까지, 7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야간공연을, 창덕궁에서는 8월 31일부터 10월 28일까지 주간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plus 2 복사나무, 즉 복숭아나무 숲은 흔히 무릉도원이라 불리며 신선사상과 이어져 유토피아의 대명사가 됐다. 조선 세종 29년(1447),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본 복사나무 숲에 대해 화가 안견에게 이야기한다. 이에 안견은 그 광경을 사흘 만에 그림으로 완성했는데 그때 그린 작품이 바로 ‘몽유도원도’다. 이밖에 천도가 열리는 복숭아 과수원을 지키는 손오공의 이야기가 담긴 ‘서유기’,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상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복사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plus 3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경을 조감도식으로 상세하게 담은 조선시대 궁중회화 ‘동궐도(東闕圖)’에 그려진 나무 중 현재도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있다. 창덕궁 돈화문 주변의 회화나무들과 봉모당 뜰 앞 향나무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동궐도에서 보면 동서로 길게 뻗은 향나무 가지들을 6개의 받침목이 지탱하고 있는데, 현재도 당시와 흡사한 모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 2018-06-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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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문화행사
- 녹음이 짙은 6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전시) 샤갈 러브 앤 라이프展: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일정 6월 5일~9월 26일 장소 한가람미술관 이스라엘 박물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샤갈(Chagall)과 그의 딸 이다(Ida)가 직접 기증하거나 후원자로부터 기증받은 샤갈 작품 중 150여 점을 소개한다. 앞서 이탈리아 로마와 카타니아에서 전시가 이뤄져 총 3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바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총 7섹션(초상화, 나의 인생, 연인들, 성서, 죽은 혼, 라퐁텐의 우화, 벨라의 책)으로 구성해 샤갈의 사랑과 삶을 집중 조명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일정 6월 8일~8월 5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케이윌, 윤형렬, 차지연 등 추한 외모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와 아름다운 집시 여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룬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부터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어 버전은 2008년 초연 이후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초연 캐스트인 윤형렬과 최수형의 복귀, 실력파 가수 케이윌과 배우 차지연 등의 합류로 기대를 모은다. (무용) 발레 춘향 일정 6월 9~10일 장소 CJ토월극장 출연 강미선, 이현준, 홍향기 등 한국의 아름다운 고전 ‘춘향전’이 발레로 재탄생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작이자 두 번째 창작 발레인 ‘발레 춘향’이 4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공연에서 눈여겨봐야 할 장면은 춘향과 몽룡의 ‘긴장과 설렘, 슬픔과 애틋함, 기쁨과 환희’라는 세 가지 유형에 사랑의 감정을 아름다운 몸짓의 언어로 담아낸 2인무다.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이현준, 홍향기와 이동탁이 각각 춘향과 몽룡으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일정 6월 12일~9월 2일 장소 대학로 자유극장 출연 서현철, 오용, 장이주, 양소민 등 100세 생일날 잠옷 차림으로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이 우연히 갱단의 돈 가방을 훔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영화) 아일라 개봉 6월 21일 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칸 울카이 출연 김설, 이스마일 하지오글루 한국 터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참전 용사 ‘슐레이만’과 전쟁으로 고아가 된 소녀 ‘아일라’가 휴전 이후 60년 만에 재회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전시) 니키 드 생팔展: 마즈다 컬렉션 일정 6월 30일~9월 25일 장소 한가람미술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1961년에 발표한 ‘사격회화(shooting painting)’라는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후 그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작품처럼 풍만한 체형의 여인을 온갖 자세로 표현한 ‘나나(Nana)’ 연작 작업에 주력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마즈다 컬렉션의 대표 작품 127점을 만나볼 수 있다.
- 2018-05-3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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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극장풍류’ 이렇게 멋진 공연들이 무료라고?
- ‘민속극장풍류’는 내가 관련하는 기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는다. 담장 하나 너머로 소나무 숲이 울창한 선정릉이 있어 주변 경치도 무척 아름답다. 높은 빌딩 숲 가운데 넓은 능이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민속극장풍류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를 보존·전수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물 안에 있다. 전수교육관은 명칭 그대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승자를 위한 작품을 전시하거나 무대에 올리는 등 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전통예술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반원형의 아담한 공연장으로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 출연자들의 표정과 숨소리, 손끝 떨림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공간의 특성상 예전 풍류방(風流房)이나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열렸던 여러 가지 전통 마당놀이 등을 시연(試演)하기 좋은 공연장이다. 매주 금요일은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을 소개하는 상설공연으로 판소리, 굿, 탈춤, 민요, 가야금 등 다양한 주제의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가능하면 공연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나서서 가족과 함께 능 산책을 한 후 공연 관람을 하면 더욱 알찬 시간이 될 것이다. 또 인근에 직장인들의 경우 접근성이 좋아 퇴근 후 관람하기에도 제격이라 말한다. 한 달에 무료공연을 열흘씩이나 하는 데다가 오후 3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시작한다. 돈 없고, 시간 없고, 거리가 멀다는 핑계를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2018년 6월 극장 ‘풍류’ 무료공연일정 △1일 19:00 ‘발탈’ 문영식(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전수교육조교) △5일 19:30 ‘거문고산조’ 김선한(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전수교육조교) △8일 20:00 ‘가곡’ 김경배(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9일 17:00 ‘강령탈춤’ 김정순, 손용태 외 강령탈춤보존회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10일 17:00 ‘경기민요’ 김혜란(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교육조교) △12일 19:30 ‘경기민요’ 이춘희(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14일 15:00 ‘판소리’ 송순섭(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15일 19:30 ‘판소리고법’ 정철호(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16일 15:00 ‘발탈’ 조영숙(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 △23일 17:00 ‘서도소리’ 김광숙(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25일 19:30 ‘거문고산조’ 김영재(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 △29일 19:30 ‘판소리’ 신영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자세한 일정 확인 및 문의는 한국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 2018-05-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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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담, 세월호 추모 신곡 ‘우리 다시 만나면’ 공개
- 작곡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지담이 신곡인 ‘우리 다시 만나면(If We Ever Meet Again)’을 8일 공개했다. 지담의 이번 노래는 얼마 전 4주년을 지냈던 세월호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진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살아갈 힘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연주에는 피아니스트 박세윤이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지담은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고 밝혔다. 지담은 버클리 음대 영화음악 작곡과를 졸업하고 작사‧작곡과 함께 프로듀싱, 공연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 보컬그룹 빅마마의 이지영이 참여한 첫 싱글 ‘기억한다’를 발표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건강 캠페인 ‘브라보 체조’의 음악감독을 맡은 바 있다.
- 2018-05-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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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문화행사
- 가족 나들이하기 좋은 5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제20회 담양대나무축제 일정 5월 2~7일 장소 죽녹원 및 관방제림 일원 대한민국 대나무 주산지로 알려진 전라남도 담양. 가족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담양을 주목해보자. 이곳에서는 매년 대나무 심는 날(죽취일)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축제를 연다. 바로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담양대나무축제. 6일간 진행되는 이번 축제에서는 대나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대나무 활쏘기, 대나무 뗏목타기, 대나무 액세서리 만들기, 대나무 부채 만들기 등)이 운영된다.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일정 5월 3일~10월 28일 장소 디뮤지엄 디뮤지엄이 2018년 첫 전시를 공개한다. 날씨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총 3개의 챕터(‘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로 구성된다. 25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햇살, 눈, 비, 안개, 뇌우와 같은 날씨에 담긴 이야기를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으로 재조명했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당신의 날씨에 관한 기억을 새로 추억해보자. 레슬러 개봉 5월 9일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김대웅 출연 유해진, 나문희, 성동일, 김민재 등 포스터에 한 손에는 금메달을, 다른 한 손에는 프라이팬을 든 배우 유해진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전직 레슬러에서 프로 살림꾼으로 변신한 살림 9단이자 아들 바보인 유해진은 영화 ‘레슬러’에서 ‘귀보’ 역할을 맡았다. 그가 예기치 않은 사건들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평범했던 일상이 유쾌하게 바뀌는 이야기를 그렸다. 또 나문희, 김민재, 성동일 등 세대를 어우르는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이 만나 호흡을 맞췄다. 얼굴도둑 일정 5월 11일~6월 3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성여진, 신안진, 주인영, 황선화 등 연극 ‘얼굴도둑’은 개인의 자아와 내면을 비추는 ‘얼굴’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진실한 감정을 놓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트립 투 스페인 개봉 5월 17일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 열정의 나라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은 산탄데르에서 말라가까지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며 음식과 인생, 사랑에 대한 수다를 펼치는 미식 여행기다. 영국의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출연해 유쾌한 입담을 보여준다. 시카고 일정 5월 22일~8월 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출연 최정원, 박칼린, 남경주, 아이비 등 한국에서의 공연은 열네 번째. 최정원, 아이비, 남경주, 박칼린 등이 참여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라인업으로 돌아왔다. 섹시하고 뜨거운 뮤지컬을 찾고 있다면 농염한 재즈 선율과 관능적인 춤이 매력적인 ‘시카고’를 추천한다.
- 2018-04-27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