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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의 강점 시니어에 제격… “뒤늦은 꽃 책으로 피어나길”
- 책 읽는 사람은 스스로 돌아보고 내면을 다듬는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좋은 친구가 있다면 성장하기를 멈췄던 삶이 꽃처럼 피어난다. 무겁고 딱딱한 내용의 책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단번에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백화현(63) 작가는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전문 출판사 ‘백화만발’(百花晩發)을 만들었다. ‘온갖 꽃이 뒤늦게 활짝 피어난다’는 뜻의 이름에는 각자의 인생을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장소 협조 가원 시니어 도서관 백화현 작가는 30년 넘게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교 안에서 독서운동을 해왔다. 아이들 저마다의 능력이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교과서와 수업 방식으로 배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진정한 배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독서라고 판단한 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독서와 도서관 이용을 권했다. 시니어와 독서, 해법은 그림책 2015년 교사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 보니 어른들도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서점 서가에는 어려운 어휘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두꺼운 책이 가득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비교적 젊은 어른인 3040대가 많았고, 60대부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서를 곧잘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 호흡이 긴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데, 대다수 책은 시니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백화현 작가는 책이 친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책에 대한 장벽부터 낮춰야 했다. 독서의 물꼬를 트는 데는 그림책이 효과적이리라 판단했다. 일반 도서에 비해 비교적 내용이 단순하고, 큼직한 삽화가 있어 빠르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백 작가는 삶의 경험이 다양할수록 진정한 독해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삶의 굴곡을 겪은 경험 덕에 몇 장의 그림과 적은 양의 글로도 많은 것을 읽어내고 이해할 수 있어서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의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그림은 긴 설명을 읽어낼 필요 없이 단번에 사람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고요. 글은 읽으면서 성찰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림책의 짧은 이야기에는 함축과 비유가 담기기 때문에 사고력을 키우고 상상의 여지를 만끽할 수 있으니 초심자에게 제격이에요.” 그러나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른도 읽을 수는 있지만, 아이들 시각이 반영된 이야기에 어른이 이입하며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어른을 위한 몇 안 되는 그림책은 지나치게 함축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뜩이나 책이 어려워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화현 작가는 기획 아이디어를 적은 종이 한 장 들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을 찾아갔다. 독서운동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시니어 그림책’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출판사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렇게 국내 최초 시니어 그림책 출판 브랜드 백화만발이 탄생했다. “이건 우리 이야기네!” 백화만발의 시니어 그림책은 있는 그대로 시니어들의 삶과 고민을 다룬다. 어린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모아 각각의 그림책으로 엮어냈다. 80대 노인이나 50대 중년, 경비원이나 전업주부로 한평생 살아온 어머니까지. 최대한 많은 시니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주인공의 상황이나 처지를 다양하게 설정했다. 백화만발 그림책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 70쪽을 넘기지 않아 15분 내외로 읽을 정도의 분량이어야 한다. 7080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4050세대는 보조인물로 등장한다. 그림에는 지나치게 비유적인 의미를 담지 않고, 어휘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으며 쉬워야 한다. 글씨는 12포인트 이상이 이상적이나, 글씨가 커져 그림과 배치하기 어려우면 크기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타협한다. 또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 하드커버 표지로 제작했다. 자식 세대인 4050이 먼저 사서 읽고, 부모 세대인 7080에게 선물했으면 해서다.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의 시니어 그림책이 세상 빛을 봤다. 2020년 1월, 1권 ‘할머니의 정원’부터 3권 ‘선물’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는 옛 동료인 은퇴 교원들에게 ‘직접 읽고 부모님께 권해드리라’고 한 권씩 선물했다. 모두들 “이런 책이 있었냐”, “세상에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책’의 탄생을 반겼다. 각자 이입하는 책은 다르지만 굳이 꼽자면 첫 번째 책 ‘할머니의 정원’이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책에는 자식도 배우자도 떠나고 몸도 성치 않은 채 혼자 살며 괴팍해진 ‘경자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경자는 새로운 가사 도우미 민희와 점차 우정을 쌓으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정원’이라는 꿈을 가꿔나간다. ‘인생 책’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도중에 덮었다는 후기도 들려온다. 전국의 많은 ‘할머니’들은 아마도 경자 할머니와 자신의 삶이 겹쳐 보여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할머니가 진정한 우정으로 인해 밝아지는 장면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을 테다. ‘5090세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꿈을 드리고자 한다’는 백화만발의 기획 의도가 통한 셈이다. “판매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서 이미 나온 아홉 권의 그림책이 더 소중해요. 너무 늦지 않게 독자의 관심을 받고 판매돼야 시니어 그림책 시장이 생겨나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올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시니어들이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생겨나겠죠? 시니어들이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찾게 되는 날까지 열심히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해요.” 만나서 읽어야 하는 이유 백화현 작가는 시니어들이 ‘모여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니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책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이어도 상관없다. 독서를 주창하는 궁극적 목표가 사람과의 교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교류를 가능케 하는 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초고령사회’라는 과제와도 관련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준비가 놀랍도록 부족해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드는데,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관심조차 없으니 TV나 유튜브만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죠. 마음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으면 슬프고 실망하고 외로워서 괴팍해져버린 ‘경자 할머니’가 되고 말아요. 그런 분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이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진다면 그 사회도 함께 암울해지고 말겠죠.” 책과 사람을 잇는 독서 모임은 그래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주체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책을 가운데 놓고 그림과 글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책을 읽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 하고,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제대로 질문해야 하며,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잘 들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교류를 통해 사람은 우정을 쌓고, 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희망을 찾게 된다. 경자 할머니의 새 가사 도우미 ‘민희’ 같은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주는 것이다. 백화현 작가는 책 읽는 법을 배우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삶에 활력을 되찾는 시니어들을 많이 봐왔다. 그림책 읽는 법을 처음 배운 80대 어르신들이 ‘너무 좋다’며 박수 치던 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에 쟁쟁하다. 배운 대로 그림책을 뜯어보며 눈을 반짝이던 이들은 지금도 자체적으로 모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있다. 산발적인 움직임이 문화로 정착되려면 아직 필요한 것이 많다.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 혹은 책을 같이 읽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여전히 도서관보다 TV, 유튜브를 찾는 것이 현실이지만 희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최근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국내 최초 ‘시니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독서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도라, 어떻게 하면 이용자를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죠. 더디지만 독서 모임도 생겨나고 있어요. 독서 운동을 함께 했던 시민단체 중 한 곳으로부터 ‘전국에 5만 개의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해에 전해 들었죠. 제가 성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잡았던 목표치가 ‘독서 모임 30만 개 만들기’였어요. 한참 못 미치는 수치긴 하지만 대면 모임이 어려운 시기였던 걸 생각하면 의미가 있죠.”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야기 그림책을 백 권까지 만들고 싶다. 시니어의 취미, 요즘 문물, 향수를 느낄 만한 전통문화 등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책 ‘어른 그림책 여행’처럼 그림책 세계가 궁금한 어른을 위한 길라잡이나, 4050세대를 위한 ‘심화’ 단계 시니어 그림책도 포함된다. 새해에는 백화현 작가의 바람대로, 바지런히 펴낸 그림책을 펼쳐 새로운 삶을 꽃피우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 2023-02-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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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 시집의 추억, ‘서울책보고’에서 맛보세요
- 송파구 오금로에 위치한 책 복합문화공간 ‘서울책보고’에서 특별전시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이 열린다. 10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은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 등 출판사들이 펴낸 시집 가운데 서울책보고가 보유한 200여 권의 절판 시집을 전시·판매한다. 교육시집과 영화시집, 대학교 시 동아리에서 내놓은 동인지 등도 만날 수 있다. 서울책보고 참여 헌책방이 선별한 초판 시집과 시인 사인본 모음 코너도 마련된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창비 시선’, ‘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세계사 시인선’ 등에서 출간한 1970~2000년대 초판본이 전시·판매될 예정이다. 김광규, 나희덕 등 시인의 사인본도 접할 수 있다. 절판 시집 구매자에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시인 김명순·윤동주·랭보·에밀리 디킨슨 등의 띠지와 레트로 종이봉투를 증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책보고 홈페이지나 공식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한편, 서울책보고는 유휴공간이었던 신천유수지 내 물류창고를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새롭게 조성한 책 문화공간이다. 2019년 3월 27일 개관 이후 3년 동안 400회 이상의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과서전(展):슬기로운 생활’, ‘잡지전(展):지나간 시간을 엿보다’, ‘7080 추억의 만화전(展)’, ‘근현대 여성 작가전(展)’ 등 공공 헌책방이 할 수 있는 특별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서울책보고가 헌책과 헌책 문화를 통해 시대의 흔적과 추억을 시민과 공유하는 특별기획전시는 계속 이어진다.
- 2022-08-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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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낭만 솟아 넘치는 LP 카페 ‘흐르는 물’
-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문화와 유행을 선도했던 신포동. 지금은 구도심이 된 이곳 신포동에 30여 년간 자리를 지키며 인천시민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LP 카페 ‘흐르는 물’이 있다. 따뜻한 LP 음악 사이로 손님 한명 한명과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안원섭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LP 음반과 통기타, 오래된 시집들과 빛바랜 사진들. 가게 내부엔 주인장의 취향과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가 잔뜩 묻어난다. 안원섭 대표는 유랑극단 단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고 즐겼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그가 29세의 나이에 LP 카페를 차리게 된 이유다. 예술하는 청년들의 사랑방 음악만큼이나 ‘시’를 좋아했던 안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백일장이나 창작문예대회에서 자주 입상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남달랐다. 청년이 되어서는 직접 쓴 시에 통기타로 음을 입혀 노래를 부르고 작은 공연도 열곤 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음악과 시를 향유하면서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1989년 1월, 테이블 여섯 개 들어가는 13평 남짓의 첫 번째 가게를 이곳 신포동에 오픈했다. “지금은 신포동이 구도심이 됐지만, 개항 직후에는 서울보다 신문물이 빨리 들어오고 관공서도 전부 위치했던 핫한 도심이었다”라며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청년기를 이곳에서 보내면서 음악·패션 등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라고 설명했다. 상호인 ‘흐르는 물’은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라는 구절은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울렸다. “뒹구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듯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거든요.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요. 그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게 법이에요. 노자의 사상 중 ‘상선약수’도 있잖아요. 이게 진리거든요.” 시적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공간이다. 가게 오픈 초기,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이 가게에 예술을 사랑하는 인천 지역 청년들이 자주 찾아왔다. 화가, 작가,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교류와 활동의 전당이었다. 손님들과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날도 많았고, 술 한잔에 예술과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나누며 청춘을 함께했다.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외상도 망설임 없이 해줬다. 시인에게는 커피값 대신 시집을, 화가에게는 술값 대신 그림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가게에 돈통 하나 놓고 알아서 넣고 가시라고 했어요. 물감 살 돈도 없던 전업 화가 손님한테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냥 ‘나중에 많이 벌면 주세요’ 했죠. 다 내 선배고 후배인데 술 한잔 베푸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지금도 예술가들은 이곳을 찾는다. 공짜로 음악과 술을 즐긴 손님들은 이내 미술 작품이나 시집을 들고 다시 찾아온다. 규모가 큰 가게는 아니었지만 예술가들이 찾았던 낭만적인 공간이었던 만큼 차츰 이름을 알렸고, ‘타악기의 대가’ 김대환, ‘들국화’의 조덕환, ‘포크의 전설’ 양병집 등 7080 가요계의 전설적인 음악인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안 대표는 “이 작은 가게에서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공연을 진행할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러웠다”며 “특히 존경했던 故 김대환 선생님의 연주를 ‘흐르는 물’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하고 명예로운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LP 음반의 따뜻한 감성을 느끼는 곳 ‘흐르는 물’에는 외국 팝송, 포크, 블루스,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악이 흐른다. 매일매일 그날의 분위기, 날씨 등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을 재생하고, 손님들의 신청곡에 따라 음악이 바뀌기도 한다. 5000장이 넘는 LP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안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 소원은 만 장을 모으는 거였는데 어렵게 됐죠. 원체 생산되지 않으니까 구매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재생 목록을 만들어놓으면 연이어 노래가 나오는 음원과 달리 LP 음반은 계속해서 디스크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실제로 안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흐르는 음악에서 관심을 뗄 수 없었다.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음악이 끝나기 전에 다음 디스크로 바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편안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안 대표는 LP 음반을 고집하며 LP 카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안 대표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 LP 음반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요즘 우리는 정화된 생수를 많이 마시지만, 옛날에는 정수기가 없어서 누룽지 먹을 때 나오는 숭늉을 많이 먹었거든요. 그 후에는 보리차를 끓여 먹었고요. CD나 MR은 정화된 생수예요. 그저 깔끔하죠. 하지만 숭늉이나 보리차를 생각해보세요. 가끔 건더기도 나오고 구수하잖아요, 고향 집의 엄마 품처럼. LP는 깔끔한 소리를 내지는 않아도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줘요.” 그 따뜻한 울림을 직접 느껴본 시니어 세대는 물론, 최근 ‘뉴트로’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이곳을 찾는다. “한번은 20대 청년이 산울림 레코드판을 들고 왔어요. 이 음악 듣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예쁘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의 청춘도 예쁘지만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LP 음악을 듣고 싶다고 이곳을 찾아온 행위 자체가요.” ‘백년가게’로 지정된 최초의 카페 전국에 현존하는 LP 카페는 다수 있지만, 한 주인이 30년 넘게 운영한 카페는 ‘흐르는 물’뿐이다. 신포동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동네의 터줏대감이지만, 신포동 내에서 자리를 네 번이나 옮겼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색을 잃지 않고 가게를 일궈오니, 젊음을 함께한 단골손님들이 이제는 자식 혹은 제자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이곳은 음악과 커피·술을 즐길 수 있는 음악 카페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공연은 물론 출판기념회, 그림 및 사진 전시회 등이 소소하게 열린다. 오랜 역사와 함께 풍부한 문화를 담고 있는 이 공간은 카페로서 전국 최초로 지정된 ‘백년가게’가 되었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의 가게를 말한다. 안 대표는 3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가게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중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로 꼽았다. “30주년 된 해에 8일 동안 릴레이 공연을 했어요. 8일째 되는 공연 마지막 날, 인천시립합창단의 소프라노 백혜숙 선생 팀이 와서 공연을 했는데, 그들이 손님들과 함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짠 거예요. 30명의 손님이 장미꽃 한 송이씩 저랑 제 아내한테 나눠줘서 30주년 기념 30송이의 장미꽃을 선물받았어요. 너무 감사했죠. 감정이 벅차올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우리 손님들한테 큰절도 했어요.” 손님들의 공간을 지켜주는 ‘소사’ 주인장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이 가게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찾아주시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게를 30년 넘게 운영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이곳을 관리하고 지키는 ‘소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난 그냥 소사예요. 학교에 상주하면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관리자를 소사라고 부르잖아요.” 이곳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보답하는 일은 지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온 손님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음식을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실제로 안 대표는 단골손님들의 18번 곡을 알아서 틀어주곤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하고 사지가 멀쩡하면 언제까지라도 우리 손님들을 위해 음악을 틀고 싶어요.”
- 2022-01-1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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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앞서간 종합예술인 홍서범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다!’
- 예능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다재다능한 종합예술인 홍서범이 오랜만에 본업인 음악으로 돌아왔다. 지난 3월에 그가 발표한 신곡은 ‘월든에 놀러간 니체’라는 다소 프로그래시브한 제목이다. 노래 내용도 제목 그대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자연 속 삶을 통해 물질주의를 비판한 명저 ‘월든’을 쓴 월든 호수에 ‘신의 죽음’과 실존의 중요성을 외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찾아간다는 내용의 노래. 누가 봐도 보통 사람이 생각할 발상은 아니다. 그러나 홍서범에게 평범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신곡을 통해 다시금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그를 만나 독특한 인생관을 들어봤다. “대중음악은 다양해야 하고 본인 생각이 담겨야죠. 인기만 쫓는 건 창작자로서 할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아이돌처럼 대 히트를 할 것도 아니고…. 가요계에 데뷔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예전 록 스피릿으로 돌아가서 음악도 옥슨답게 하자 싶었죠. 가사도 나이 들어서 사랑 타령 하기도, 이별 노래 하기도 그렇고…. 대신 내가 삶에서 느꼈던 거, 내 생각의 중심이 뭔지 정리해서 발표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월든에 놀러간 니체’예요.” 홍서범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과 니체의 철학이 자신의 중심을 잡아줬다고 말한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 묻고자 출세를 접고 스스로 자연으로 들어갔다. 니체 또한 스위스 질스마리아의 호숫가에서 요양을 하며 저 유명한 영원회귀 사상을 정리했다. 두 사람의 우연한 공통점은 호수에서 자신의 대표적인 사상을 만들어냈다는 것. 홍서범은 그 두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니체가 월든 호수에 갔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그 상상을 오롯이 노래로 만든 것이다. 홍서범을 통해 월든 호수를 만난 니체 노래의 비하인드를 들으니 과연 홍서범다웠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한다. “‘넌 왜 이렇게 안 되는 음악만 하냐’와 ‘이런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는 게 반갑다’였죠. SBS PD 했던 분은 ‘서범아 넌 이제 대중성 있는 것 좀 해라, 실험적인 음악 그만하고’라고 하시고, 저를 아는 분들은 ‘뭐 어차피 네가 할 음악 하는구나’라고 말하더군요.(웃음)” 자신의 음악을 누가 뭐라고 하든 관철한다는 게 그의 완고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요즘 아이돌은 어떨까? 혹시 그의 기준에 벗어나는 거슬림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상외로 그는 요즘 아이돌에 대해 무한한 긍정을 표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고 미국 팝 음악이 들어오면서 미8군 출신 가수들을 통해 급격히 발전했거든요. 일본은 처음에는 영미 팝을 따라가다가 자기들 특유의 제이팝을 만들었어요. 물론 일본은 워낙 인구도 많고 다양해서 수준이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혼란기가 있었던 게,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제이팝을 많이 베꼈어요. 일본 음악이 금지였을 때 양심 없는 작곡가들이 많이 표절했죠. 그러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그쪽으론 못 간 거지. 그래서 다시 미국 팝을 추구한 거죠. 그런데 거기에 우리 민족 특유의 음악성, 표현력, 특유의 한이 블랙 뮤직 이상인데, 그게 더해져서 성공했다고 봐요. 이 짧은 시간에 빌보드를 점령할 정도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우수성은 저도 감탄하고 있어요.” 그는 주변을 봐도 노래와 악기 연주를 너무 잘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감탄했다. 더구나 디지털 문화가 보급되면서 과거보다 쉽게 원하는 걸 접하고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 때는 소위 음반을 구해도 ‘빽판’이었고 악보도 없이 귀로 들어서 코드를 땄어요. 그러다 보니 이 팀 저 팀 코드가 다 다르고.(웃음) 지금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죠.” 가장 싫은 것은 주변에 민폐 끼치는 것 최근 음악 트렌드에 대한 홍서범의 평가를 들으니 자연스레 후배 양성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쳤다. “게을러서 사업 쪽으론 관심이 없어요. 주변에선 그 정도 노하우 있으면 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데, 사업 재능이 없어요. 유혹은 많았죠. 하지만 그런 거에 혹해서 나도 해볼까 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줄까봐, 스스로 판단해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나도 할 일이 많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수만이 형 대단하고 박진영도 대단해요. 음악도 잘하지만 사업도 잘하니까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다. 지금 시대에 아이돌 같은 후배를 대중가요 시장에 맞게 체계적으로 양성하려면 기본 자산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그렇다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사업이 잘 안 되면 투자자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 그가 사업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기준과는 너무나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통해 7080 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싶어 그럼에도 홍서범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살길 바라는 그가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7080 문화로 전국 투어 하고 해외 투어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막혔죠. 이제 새롭게 해야 할 것 같아요. 7080 문화의 새 콘텐츠로 뮤지컬 같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작가도 있어야 하고 투자자도 있어야 해서 보통 일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공연할 때 나열식으로 차례대로 노래 부르고 내려오는 건 이제 끝났고, 그때 음악과 그때 사건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그 단계예요.” 7080을 위한 장기 공연 문화이면서 기존과는 다른, 뮤지션도 좋고 관객도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판단은 비슷한 시대를 산 가수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조용필조차 자신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현재 7080 뮤지션들의 공연 문화가 너무 일방적이라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맞아요. 제가 시놉시스를 짠 후 작가를 불러서 이런 내용으로 써보라고 한 적 있어요. 그랬더니 ‘형, 이거 하려면 투자 많이 받아야 하고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도 모르는데’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일단 써놔야지!’(웃음)라고 타박했죠. 앞으로 7080이 가야 할 길은 그쪽이에요. 새로운 문화를 자꾸 만들어서 방향을 바꿔야죠.”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의 고충 이해돼 홍서범이 활동했던 7080으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가요계도 가수들도 바뀌었다. 완제품으로 시장에 나와야 하는 요즘 세대 가수들과 달리 그의 세대 가수들은 데뷔 후에 연습도 겸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그는 노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가수들과 달랐다. “저는 노래를 어떻게 해야 잘할까가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의 완성도를 중요시했어요. 솔직히 노래를 만든 후에 녹음할 때가 되어서야 처음 불러본 노래도 있었죠. 노래는 신경 안 썼던 거지. 그래서 초창기에는 노래를 불렀다기보다는 샤우트를 했어요. 감성 표현 같은 게 약했죠.” 음악을 종합적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가창자로서의 가수보다는 프로듀서와 흡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에 대한 비판에도 한편으론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떨 때는 나보다 노래 잘하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지?(웃음) 이런 경우도 생길 테고. 그렇다고 ‘정말 잘하시네요’라고만 말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방송이라 뭔가를 해야 하니까. 어려워요, 남을 평가한다는 건. 해본 사람만 알지. 저는 못 할 거 같아요. 그리고 프로들이 무대에 올라도 스트레스가 큰데 아마추어면 더 심하겠죠. 오래 준비했는데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있으니 평소의 70%만 해도 성공이라고 봐요. 그것도 멘탈 싸움인 거 같아요. 웬만하면 칭찬도 많이 해줘야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 홍서범은 한국식 나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강조하는 자신의 나이는 만 62세다. 환갑을 넘긴 그에게는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라는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잘 먹고 잘 놀고 유쾌하게 살다 가자, 나에게 주어진 대로 즐길 수 있는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이에요. 물론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민한다고 풀리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아니면 내 능력 밖인가’ 판단하는 게 중요해요. 능력 밖인 고민은 접는 거예요. 그런데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럼 해보는 거죠.” 한마디로 그는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 아니다. 그 덕분인지 유독 피부가 좋아 보였고, 살도 안 찌는 듯했다. “체질도 그렇지만 가만히 한자리에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운동도 많이 하고. 옛날에는 축구를 많이 했고 지금은 배드민턴을 일주일에 한 번 쳐요. 틈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에 가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살이 찔 수가 없지. 피부도 땀을 많이 흘리니까 좋은 거 같네요. 등산처럼 혼자 하는 게 가장 운동이 많이 돼요. 즐겨 찾는 산은 북한산입니다. 코스도 많고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무한긍정과 힘찬 에너지, 자유로움 홍서범의 성격을 지금까지 들여다봤으면, 그가 소위 관계 정리에 대해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정리한다?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만날 사람은 만나고 안 만날 사람은 안 만나게 되는 거죠.” 그가 참여하고 있는 연예인 모임이 꽤 많다. 공놀이야(축구), 콕놀이야(배드민턴), 산놀이야(등산), 큐놀이야(당구), 휠놀이야(자전거), 술놀이야(음주)까지 총 6개. 그중 공놀이야에만 쉰 명 이상 가입되어 있다. 그런데 활동할 때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안 나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 그래서 관리를 맡고 있는 후배가 안 나오는 회원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홍서범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참여할 상황이 못 되니까 못 하는 거지. 만약 걔네를 내치면 내쳐지는 사람 기분이 어떻겠냐. 놔두면 적당한 때 돌아온다. 언제든지 문을 열어놔야 들어올 게 아니냐. 한번 인연 맺었는데. 그리고 참여 안 한다고 우리한테 해 되는 거 있어?” 그 말을 들은 후배는 할 말이 없었다. 홍서범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사례였다. 뭐든지 푹 빠져 사는 남자 홍서범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는 어떤 사람은 평생 갖지 못할 후회 없는 자유에 대한 확신이 이미 있었다. “니체 형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말 좋은 말씀이 ‘다시 살고 싶도록 그렇게 살아라’예요. 그럴 정도로 살아야죠. 어제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북한산에 갔어요. 다들 대기업 사장 하다 명퇴했는데 삶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 날이 70대 중반까지면 이제 10년밖에 안 남았어요. 원 없이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시간이 너무 짧더라고요. 그러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노는 게 남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걔네들이 ‘야, 난 매일 놀아’라고 대꾸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야, 그렇게 놀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빈둥빈둥 노는 건 진짜 무료해’라고 답해줬죠. 무료함이 인생 최대의 적이에요.” 그가 심심하고 지루해하는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아마 10년 후에도 그는 니체를 월든 호수로 불러들인 것처럼, 또 다른 독보적이고 독특한 노래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유쾌한 종합예술인 홍서범의 인생이 보여줄 무료하지 않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 2021-10-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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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쉼터? 그림의 떡"…골목길에서 폭염 견디는 노인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찾아오면서 무더위쉼터가 문을 닫거나 축소 운영되고 있다. 이에 가마솥더위에 견디지 못한 7080 노인들이 공원 또는 거리로 나섰다.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서울 35.3도, 춘천 35.9도, 충남 아산 36.7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이 관측됐다. 전문가들은 이른 장마 종료와 티베트 고기압 발달, 지구 대기 흐름 등을 고려해 올해 극심한 더위를 예상했다. 쪽방에 사는 A 씨는 “집이 바깥보다 더 덥다. 코로나 때문에 쉼터나 경로당도 문을 닫아, 갈 데가 없어서 골목 바람이라도 쐬려고 한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어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공원, 골목이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기도 하지만 더워서 도저히 방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되면서 인근 경로당은 문을 닫았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도 백신 접종자만 이용할 수 있다. 백신 접종 후 2주가 지난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하니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주민센터도 코로나19 탓에 적극적으로 쉼터 사용을 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여름철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정부는 폭염 대응 상황점검 관계차관 회의를 개최하고,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 최소화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폭염에 취약한 독거인, 노숙인, 쪽방 주민, 고령의 어르신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논밭에서 일하시는 농민, 야외 건설 현장 노동자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지원하기로 했다”며 “국민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폭염 특보와 폭염 대비 국민 행동요령에 대해서 재난방송 같은 각종 매체를 통해 충분하게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2021-07-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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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세 손정의 “90대 버핏처럼 7080에도 경영을”
- 올해로 63세인 손정의(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70대에도 현역으로 경영 활동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손 회장은 지난 23일 주주총회에 참석한 한 주주로부터 후계자 관련 질문을 받았다. 이에 90세가 넘은 현재도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워렌 버핏을 예로 들며 “최근 의학이 발전하고 있다"며 "70세와 80세에도 (경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답했다. 손 회장은 과거 60대에 은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지난 5월 일본 닛케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60대가 끝나기 전 후계자를 정할 것”이라며 70세가 되기 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19년 초에는 “69세까지는 CEO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손 회장이 기존 ‘60대 은퇴계획’을 번복한 셈이다. 7080대에도 쉽게 회장직을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드러냈다. 그가 언급한 워렌 버핏은 올해 90세로,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으로서 경영 활동과 투자에 활발히 임하고 있다. 손 회장 역시 “인공지능(AI)이 이끄는 21세기 정보혁명의 자본가가 되겠다”고 밝히며, AI 벤처기업 투자를 늘려 관련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2021-06-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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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시청자 사로잡는 K할머니 유튜버들
- “이대로 죽을 순 없다”. MZ세대의 놀이 공간으로 알려진 유튜브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70대 할머니 유튜버 박막례의 이야기다. 그는 손녀딸의 제안으로 유튜브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고, 어떤 개그맨도 따라잡지 못할 특유의 웃음 포인트들로 유튜브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70 평생을 파출부와 식당 같은 일만 하며 살았다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고, 손녀가 그를 위해 회사를 그만 두고 함께 호주 여행을 한 것이 유튜브 세계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유튜브를 통해 인생 역전에 나선 박막례 할머니는 2019년에 구글 본사에 초대를 받아 최고경영자 순다르 피차이와 유튜브 최고경영자 수전 워치츠키를 만났다. 또 미국 대표 패션지 ‘보그’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처럼 유튜브 시장에서 시니어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유튜브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4명 중 1명은 50대 이상 ‘시니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영상을 몇 편 시청하고 나면, 별도의 검색 없이도 추천과 맞춤 동영상을 제시하는 기능이 한몫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뿐 아니라 박막례 할머니처럼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중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며, 특별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K할머니들’이 적지 않다. 이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현재 인기가 높은 K할머니들의 유튜브 채널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라노 유학생,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 50년의 디자이너 경력을 보유한 70대 장명숙 할머니는 패션 유튜버다. '밀라논나' 채널에는 세련된 코디법과 쇼핑 팁, 패션 트렌드, 브랜드에 대한 전문 지식 등을 간단히 소개하는 형식의 영상이 업로드된다. 추가로 ‘논나의 아.지.트’라는 코너를 통해 구독자들의 고민을 듣고, 따뜻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또한 새 옷을 사지 않기 위해 체중 관리를 하고, 물려받은 비녀를 브로치로 만든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 고체 비누 샴푸를 구입하고, 일회용기 뚜껑을 모아뒀다 반찬 그릇의 덮개로 쓰기도 한다. 시니어만이 풍길 수 있는 분위기와 아름다움으로 그는 구독자 81만 명과 소통하고 있다. 먹방계의 숨은 강자 순이 엄마(SUNI MOM), 영원씨(01seeTV) 6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먹방 유튜버 순이 엄마는 짜파구리와 연어 국수, 산낙지 등 맛있는 음식 뿐 아니라 ‘배고파서 세제 뿌려서 수세미 먹었어요’, ‘직접 만든 대왕 무지개 쿄호젤리 먹방’ 등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또 다른 먹방 유튜버 영원씨는 80대 나이에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모여 먹는 파전과 오리 백숙, 닭발 등 시골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상뿐 아니라 지구 젤리와 명량핫도그, 쉬림프링, 불량식품 먹방 등 평소 할머니들이 보기 어려운 음식을 직접 찾아 먹으며 재미를 더한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전형적인 할머니 요리와 MZ세대가 주목할만한 간식거리, 음식을 적절히 선택해 다양한 먹방 콘텐츠를 보여주고 있다. 우당탕탕 시트콤 인생, 순자엄마 순자엄마는 자신의 시골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큰 웃음을 자아내는 60대 유튜버다. 그는 가족과의 일상, 몰래카메라, 먹방, ASMR 등 재밌는 콘텐츠를 양산하며 구독자 25만 명과 마주하고 있다. 특히 ‘맛있는 반찬은 다 아들 앞으로만 줬더니 남편 반응’, ‘장어 구워서 남편을 유혹한다면?’ 등 가족 몰래카메라 콘텐츠가 인기다. 순자엄마 유튜브 채널 내 댓글에서는 “이렇게 재밌는 영상은 공중파에서 방송해야한다”, “매번 볼 때마다 웃음 폭탄”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표 시니어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Korea Grandma)’ 70대 할머니 박막례는 한국의 대표 시니어 유튜버다.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어느덧 구독자 13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인기에 힘입어 유튜브뿐 아니라 에세이 책도 출간했으며, 연예계에서도 주목하는 셀럽이다.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치고 장구 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추는 거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내가 대비한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고난이 올까봐 쩔쩔 매는 게 제일 바보 같은 거다” 등 솔직담백한 말들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사고 있다. 대표 영상으로는 ‘막 대충 만드는 비빔국수 레시피’, ‘시장에서 산 천원 립스틱 5천 원어치 리뷰’, ‘내겐 너무 더러운 손녀딸’ 등이 있다.
- 2021-06-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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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를 사로잡은 최고의 MC 임백천①
- 명곡 ‘마음에 쓰는 편지’를 부른 가수, 그리고 1990년대를 휘어잡은 최고의 MC. 임백천(63)은 지금도 매일 낮 12시부터 KBS2 라디오 해피FM ‘임백천의 백뮤직’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로 연예계에 입문했으니, 어느덧 43년 동안 현역 방송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셈. 아날로그 시대에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르렀기에 ‘디지로그’를 지향한다고 밝힌 그는, 느릿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현재의 시간을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정점에 도달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이 관조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임백천은 1978년 연예계에 입문했을 때 국민대학교 건축학과 재학생이었다. 생방송 중 대본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임백천을 눈여겨본 PD는 MBC ‘젊음의 행진’의 전신인 ‘젊음이 있는 곳에’의 진행을 맡겼다. ‘미래의 국민 MC’ 임백천의 시작이었다. 1980년이 되자 대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독집 앨범으로 1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경력도 갖게 되었다. 타이틀곡은 ‘나 여기 왔네’. 포크를 사랑하는 청년의 마음이 담긴 노래였다. 그러나 방송인으로 살아갈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1981년부터 건축 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실패 끝에 올라선 1990년대 최고의 MC 하지만 방송인으로서의 기질은 어쩔 수 없었던 걸까? 1986년 임백천은 KBS ‘광장 마로니에’의 MC를 맡으며 방송가로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방송인으로서의 감각을 잊고 지냈던 탓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고, 프로그램은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됐다. 방황하던 그때 그를 붙든 것은 노래였다. 노래가 히트하면 다시 방송가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절치부심한 그는 마침내 1990년 2집 ‘마음에 쓰는 편지’를 발표, 대성공을 거둔다. 비록 그다음에 나온 3집은 실패했지만, 방송인으로서 그는 199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KBS2 ‘슈퍼선데이’, ‘좋은나라 운동본부’, ‘세대공감 토요일’, ‘임백천의 라디오 7080’과 MBC ‘가요 큰잔치’, ‘특종TV연예’ 등 당대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는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명실상부 1990년대 종횡무진하며 전성기를 누린 MC였다. ‘임백천의 백뮤직’으로 전달하는 진심의 세계 TV와 라디오를 아우르는 방송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봤던 그는 이제 예순셋의 나이를 맞이한 방송계 고참이 되었다. 그에게 과거와 요즘은 무엇이 다른지 물어봤다. “라디오는 점점 진행이 어려워져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라디오는 듣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밤하늘에 활을 쏘는 작업이죠. 맞긴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내가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면서 이야기를 하는지 청취자들은 며칠만 들어보면 아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와중에 재미도 있어야 하고 감각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라디오는 사람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기에 중장년층이 여전히 선호하는 게 아닐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듣고 있어, 라디오에는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적 진정성의 매력이 있다. “사실 라디오는 비대면 시대에 좋은 매체예요. 그리고 최후의 매체입니다. 전쟁이나 재난에 의해 모든 게 블랙아웃이 됐을 때도 라디오는 살아남을 수 있어요. 라디오로 소통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환태평양지진대, 소위 불의 고리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라디오가 필수 준비물이에요.” MC는 ‘스타’가 아닌 ‘스태프’ 임백천은 장수 MC로서 자신의 원동력을 한마디로 ‘살아남으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편안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치열함이 그의 내면에는 있었다. “살아남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TV든 라디오든 요즘은 더 심한데, 시즌제 개념이라 몇 달 만에 없어지거나, 좋으면 다시 시작하거나 하죠. 라디오도 6개월이나 1년마다 변화가 있거든요. 진행자나 PD나 작가를 바꾸는 등…. 피를 말리는 생존경쟁이죠. 낮 12시에 땡 하고 시작하는 프로그램만 수십 개예요. 도태되지 않으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죠.” 그는 방송을 PD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PD가 기획을 하고 그에 맞는 작가, 진행자를 골라서 완성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PD, 작가들과 합이 잘 맞아야 해요. 매일 만나고 밥을 먹고 회의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라. PD들은 다 실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달라요. 작가들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과 융화를 잘 해나가는 게 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는 대중문화계에서 스타란 영화, 연극, 코미디에 나오는 배우와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태프라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MC로서 자신은, 스타가 아닌 스태프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 직전까지 10년 정도가 제 전성기였어요. MC 순위를 조사하면 항상 1등을 했으니까요. 그때도 내가 인기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나는 스태프다’ 생각하고 방송을 했어요. 그래서 PD들이 좋아했어요. 그 사람들 방송하기 좋게 편집점을 잡아주니까. 내가 스태프 마인드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죠. 그런데 요즘 유재석, 신동엽, 김성주 등 후배 MC들을 보면 스타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스태프 마인드로 방송을 마칠 거예요.(웃음)” *②편으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 2021-05-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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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공연 못 가 아쉬운 마음 달래줄 10월 음반
- 음악이 그리운 브라보 독자를 위해 두 귀를 풍성하게 채워줄 이달의 음반을 소개한다. 우리家 김호중·카카오M ‘트바로티’ 김호중의 정규 1집. 김호중의 유년 시절과 현재, 미래까지 인생 전반을 노래로 담았다. 더블 타이틀 ‘만개’와 ‘우산이 없어요’를 비롯해 총 15곡이 수록됐다. 장윤정 베스트 2020 장윤정·세일뮤직 국민가수 장윤정의 전성기를 압축한 한정판 LP. ‘사랑아’ 등 장윤정표 발라드를 모아놓은 사이드A와 ‘짠짜라’ 등 히트곡을 담은 사이드B로 구성됐다. 신곡 ‘좋은 당신’도 수록됐다. 7080 음악다방 쎄시봉 친구들 쎄시봉·서울미디어 7080시대 최고의 음악 그룹 쎄시봉의 앨범 중 인기곡 24곡만을 엄선해 LP로 출시했다. 오리지널 음원을 2020년 버전으로 리마스터링해 보다 깔끔한 음질로 제공한다. 베토벤의 사계, 영혼을 치유하다 베토벤·KBS 클래식FM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해 제작된 앨범으로 그의 음악과 생애를 사계절에 비유했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베토벤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벽화를 앨범 표지로 실었다. 희망가 홍혜란 · 워너뮤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 최초로 우승한 소프라노 홍혜란의 정규 1집. ‘산촌’, ‘진달래꽃’을 비롯한 한국 대표 가곡을 홍혜란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 2020-10-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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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오선지 위, 음표처럼 찍힌 그때 그 노래
-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추억 속 음악은 아련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주유하게 한다. 지난날 삶의 변곡점을 만든 노래가 있는가 하면, 중년에 접어들어 새롭게 전환점이 된 노래도 있다. 오선지에 찍힌 음표처럼, 희로애락의 하모니를 이루며 우리네 인생 변주곡을 채운 그때 그 노래들을 다시 소환해본다. 도움말 김동률 서강대학교 교수 참고 도서 ‘인생, 한 곡’ 70년대의 좌절 속 청춘의 마음을 불태웠던 노래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by ‘고래사냥’(송창식) 퇴폐와 자학이 넘치던 1970년대. ‘고래사냥’은 대학가의 절망과 희망을 도도하게 포착하며 청년 지식인들을 끊임없이 선동했다. 계엄령, 긴급조치에 억눌린 젊음에게 서둘러 고래사냥을 떠나라는 절규 아닌 절규였던 셈이다. 안개 같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인생의 가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지만 떠나야 한다. 동해 바다로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야 할 때다. 그렇게 ‘고래사냥’은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떠나라고 우리를 충동한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by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빠빠빠빰 빠빠빰 빠빠빰 빠 빠빠빰” 중장년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전주다. 반주나 마이크가 없어도 어묵 국물에 숟가락 서너 개 걸쳐놓고 목 터지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자타 공인 최고의 가수이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그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가왕 조용필의 이름을 전적으로 드높여준 노래다. 1970년대 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각종 단합대회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단골곡이 됐다. 대학 엠티에서도 직장 회식에서도 흥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이면 함께 열창하던 노래였다. 중년 이후 다시 들으면 가슴 먹먹해지는 노래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by ‘서른 즈음에’(김광석) 서른을 많이 넘기지 않은 사람은 노랫말이 주는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서른을 훌쩍 넘긴 사람은 노래가 주는 슬프고도 시린 마음에 잠을 뒤척인다. 치기 어린 사랑 투정이라 짐작했을 그 가사가 얼마나 가슴을 치는지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서른 즈음에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떠났고 살아남은 우리는 그의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by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낭만에 대하여’의 모티브가 된 통학길 완행열차에서 최백호는 첫사랑 그 소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박경희, 최백호는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름을 밝혀도 좋으리라 말한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최백호의 첫사랑인지조차 모를 테니까. 그렇게 낭만은 아득하고 추억마저 긴긴 세월 속에 야위어갔다. 젊은 시절에는 곡의 깊고 유창한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열병처럼 지나온 젊은 날 추억의 장소로 회귀하는 노래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by ‘광화문 연가’(이문세)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종로서적이 떠오르고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당시 광화문은 청춘들이 몰려다니던 거리였다. 경기고를 비롯해 서울고, 창덕여고, 진명여고, 숙명여고, 이화여고, 배제고, 경기여고 등 명문고교가 즐비했다. 입시학원, 고고장, 나이트클럽, 음악감상실, 분식집, 빵집이 넘쳤고 거리는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들로 가득했다. 특히 양식집 ‘이딸리아노’는 연예인이나 당대 명망가들이 드나드는 장안의 명소였다. 서울고와 이화여고 중간에 자리했는데, 이곳에서 고등학생 때 언약하고 결혼까지 한 사람도 꽤 있단다. 어느덧 세월 따라 그 시절 청춘들은 떠났고 노랫말처럼 언덕 밑 정동길엔 감리교회만이 버티고 있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by ‘골목길’(김현식) 그렇게 시작되는 ‘골목길’은 묘한 상상과 함께 사내들의 술자리에서, 대학생 동아리 모임에서, 회식 후 늦은 밤 귀갓길에서 가만히 터져 나왔다. 노랫말처럼 그 시절 신촌의 골목길에 접어들 때면 가슴이 뛰곤 했다. 곳곳에는 숨겨진 술집과 만화방, 장미여관, 은하수여관이 있었다. 곡에 등장하는 신촌 골목길들은 이른바 1980년대 낭만 히피들의 ‘나와바리’였다. ‘골목길’의 탄생에는 신촌블루스가 있다. 1986년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가 결성한 록 밴드다. 그 시절 ‘레드 제플린’은 ‘러시’와 함께 낭만 히피들의 아지트였다. 엄동설한 골목길 곳곳 카페에 몰려든 젊음들은 벽난로 가득 활활 타는 통나무 장작을 바라보며 떠나가는 청춘을 노래했다. 서울로 상경한 공순이 공돌이들의 삶을 위무했던 노래 "돌담길 돌아가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고” by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물레방아 도는데’의 노랫말에는 고향을 떠나온 이의 애끓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난해서 떠나왔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낙엽이 쌓이고 흰 눈이 내려도 미싱을 잡아야 했던, 이른바 수많은 공순이의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업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이 노래는 국민가요라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물레방아 도는데’는 공순이, 공돌이란 이름으로 사라져간 이 땅의 노동자들을 위한 헌정곡과 다름없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by ‘사계’(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는 여성 보컬과 건반의 경쾌한 연주와는 대조적으로 여공들의 쳇바퀴 도는 듯한 단조롭고 신산한 삶을 노래한다. 그 발랄함 속에 숨은 페이소스에,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깊고 무거운 슬픔에 잠기게 된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혁명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수시로 아픈 일이 많았다. 노동현장에서 젊은 학출(學出)들은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론 일류 대학생과 공돌이, 공순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이 땅의 누나, 여동생들이 흘린 회한과 고독이 ‘사계’에 녹아 있다.
- 2020-09-18 0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