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는 대물림 된다는 말이 있다. 한 때를 주름잡은 중년 스타들을 보면, 2세도 부모를 따라서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딸'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해지지만, 이와 함께 그 꼬리표를 넘어서야 대중에게 인정받는다는 숙제를 받는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보면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부모보다 더 잘 나가는 2세들이 꽤 있다. 최근 눈에 띄는 다섯 명의 스타를 정리해봤다.
견미리 - 이유비·이다인
배우 견미리와 딸 이유비 이다인, 세 모녀는 유명한 스타 가족으로 꼽힌다(아버지는 탤런트 임영규). 원래 견미리의 딸 하면 이유비로 통했는데, 요즘은 동생이 더 유명하다. 이다인은 1992년생으로 엄마와 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tvN 드라마 '스무살'로 데뷔, KBS2 '화랑', KBS2 '황금빛 내 인생', MBC '이리와 안아줘', KBS2 '닥터 프리즈너', SBS '앨리스' 등에 출연했다. 우월한 유전자와 함께 안정된 연기력으로 이름을 차차 알렸다.
그러한 가운데, 이다인은 특히 올해 주목 받았다. 지난 5월 배우 겸 가수 이승기와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했기 때문. 한 차례 결별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으며, 두 사람은 예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이 결혼하길 바라는 반응이 많은 만큼, 스타 가족의 명맥이 계속해서 이어질지 기대를 모은다.
허재 - 허웅·허훈
'예능 대세'로 통하고 있는 농구선수 출신 허재. 요즘은 허재보다 두 아들 허웅과 허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세 사람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코삼부자'는 구독자 16만 명을 넘어섰다. 허재 역시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서 두 아들의 인기에 대해 "얹혀가는 기분도 든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허웅과 허훈은 허재의 좋은 유전자만을 물려받았다. 농구 실력은 물론, 외모와 예능감까지. 두 사람은 본업인 농구선수로서 열중하면서, 방송 활동도 겸하고 있다. 허웅과 허훈은 MBC '호적메이트'에 같이 출연해 찐형제의 면모를 드러냈고, 허훈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허훈은 허재와 함께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서정희 - 서동주
과거 서세원과 결혼할 당시에도 청순 미모로 주목 받은 서정희. 그는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운 동안 미모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발레도 꾸준히 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서정희는 6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미모를 지녔다. 그리고 서정희의 아름다움을 딸 서동주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다른 2세 스타들과 같이 현재는 서동주의 이름과 얼굴이 더 알려진 상태다. 그는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현재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고스펙자이지만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특히 그는 현재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 중으로, 축구 선수로서의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경실 - 손보승
최근 방송된 TV조선 '국민가수'에 이경실의 아들이자 배우 손보승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2주 만에 10kg을 감량했다"는 그는 훤칠해진 외모를 자랑하면서, 폭풍 가창력으로 올 하트를 받았다. 손보승은 SBS 화제의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경실은 과거 딸 손수아, 아들 손보승과 JTBC '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두 사람은 밝고 귀여운 성격으로 눈길을 끌었고,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배우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엄마 이경실과 과거 '유자식 상팔자'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배동성 - 배수진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개그맨 배동성보다 딸 배수진이 더 유명할 것 같다. 배동성은 지난 2017년 방송된 E채널 '내 딸의 남자들2'에서 배수진을 공개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배수진은 한효주를 연상케하는 청순 미모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당시 남자친구였던 뮤지컬배우 임현준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배수진은 짧은 결혼 생활을 마치고 이혼했고, 올해 방송된 MBN '돌싱글즈'에 출연했다. 26세의 어린 나이로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가 하면, 4살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으로서 똑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솔직 당당한 모습으로 파격 행보를 보이는 배수진의 다음 활동도 기대를 모은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현재 화제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배우 오영수(77)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박을 터뜨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오영수의 인지도와 인기도 또한 수직 상승했다. 사실 오영수는 낯이 익기는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덕분에 '오징어 게임'에서 비밀병기 역할로 주효했지만 말이다.
그는 벌써 연기 경력 58년 차의 배우다. 1963년부터 극단에서 활동했으며, 20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1979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1994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2000년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기도. 또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에 스님으로 출연해 '스님 전문 배우'로 통해왔다.
오영수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을 만나 이처럼 뒤늦게 주목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연기 내공이 켜켜이 쌓여 빛을 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영수와 같이 뒤늦게 아름다움을 발현한 배우들은 또 누가 있는지 짚어봤다.
'기생충' 이정은
오영수와 비슷한 사례의 여배우를 생각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름은 배우 이정은이 아닐까. '신스틸러'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던 그는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정은은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네의 가사 도우미 문광 역을 맡아 열연했다. 세상 좋은 사람 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반전의 캐릭터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이정은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정은 역시 실력을 갖췄기에 빛나는 순간이 온 것일 터. 그는 지난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해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영화와 드라마 활동은 늦게 시작했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출연하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기생충' 이후로 주연 배우에 등극한 이정은은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국민엄마'로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다.
'골든타임' 이성민
현재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는 배우 이성민. 그러나 그의 연기 인생은 꽃길 만은 아니었다. 이성민은 오랜 무명 시절을 겪고 중년의 나이에 뒤늦게 이름을 알렸다.
지난 1985년 연극으로 데뷔한 그는 연극계에서는 잘나가는 배우였다. 2001년에는 전국 연극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감초 역할을 맡았고, MBC 드라마 '파스타', '내 마음이 들리니' 등을 통해 '꽃중년'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던 가운데, 이성민은 데뷔 25년 만인 2012년 MBC '골든타임'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권석장 PD가 그를 캐스팅한 것이지만, 대중에게는 조연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이선균이 꽂아줬냐'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극중 최인혁 교수 역을 맡은 이성민은 우려를 불식시키며 드라마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후 이성민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았고, tvN '미생', 영화 '보안관', '남산의 부장들' 등으로 인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도깨비' 김병철
김은숙 작가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tvN '도깨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파국이다"라는 명대사와 악귀 박중헌(김병철)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머릿 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박중헌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배우에게로 이어졌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병철은 '도깨비'가 낳은 스타가 됐다. 그는 200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고, '도깨비'를 만나기까지 15년의 무명 시절을 보냈다.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 '쇼핑왕 루이' 등에 출연한 김병철은 '도깨비'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JTBC 'SKY캐슬', KBS2 '닥터 프리즈너'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SKY캐슬' 오나라
'도깨비'에 "파국이다"가 있다면, 'SKY캐슬'에는 "어마마"가 있다. 'SKY캐슬'에서 오나라는 주연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주연 배우들에 비해 인지도는 낮았지만, 존재감은 뒤지지 않았다. 극중 진진희 역을 맡은 오나라는 아들을 금지옥엽 키우는 부자 엄마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나라는 원래 뮤지컬 배우로 유명했다. 그는 지난 1997년 뮤지컬 '심청'으로 데뷔했고, '김종욱 찾기', '아이 러브 유', '싱글즈' 등에 출연했다. 2006년 한국 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그는 드라마와 영화로 발을 넓힌 것. 특히 오나라는 지난해에는 KBS2 '99억의 여자'로 'SKY캐슬'에 이어 인생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기회여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평소보다 특히 긴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보낼 방법이 있다. 지상파 3사의 다양한 특집과 특선 영화를 함께 시청하며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이에 자녀 또는 손주와 함께 TV를 시청하며 더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재밌는 볼거리를 소개한다.
KBS
세대를 관통하는 국민가수 심수봉이 26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는다. KBS는 ‘2021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을 오는 9월 19일 일요일 오후 8시, 2TV를 통해 방송한다. 이 공연은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심수봉이 펼치는 26년 만의 단독 TV쇼다. 특히 방송에서 공개한 적 없는 심수봉의 2009년 발표곡 ‘아리랑’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어 9월 21일 화요일 오후 10시 10분에는 스페셜 편을 방송한다.
시간 여행 프로젝트 ‘옛날 TV 그땐 그랬지’는 KBS 영상 저장소에 보관돼 있던 오래된 방송 자료들을 공개하기 위해 개설된 유튜브 채널이다.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전설의 고향’,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 유명 드라마부터 ‘가족 오락관’, ‘쇼 특급’ 등 추억의 토크쇼까지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추석에는 코미디언 박준형, 김지혜 부부가 시간 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맡아 그때 그 시절을 소개할 예정이다. 1부 ‘식사연대기’는 9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 35분, 2부 ‘직장생활백서’는 9월 21일 화요일 오전 10시 35분 1TV에서 만날 수 있다.
추석 연휴 사흘 간 가수 이선희를 내내 만날 수 있다. 감성 로드 다큐멘터리 ‘한 번쯤 멈출 수밖에’는 이선희가 절친과 감성 여행을 떠나 노래와 함께 길목의 풍경을 담아낸다. 총 3부작으로 9월 20일 월요일~22일 수요일까지 오전 9시 40분, 1TV에서 방송한다.
이 외에도 KBS에서는 9월 19일(일) 오후 11시 30분 1TV- ‘미스터 주: 사라진 VIP’, 9월 20일(월) 오전 10시 40분 2TV - ‘광대들: 풍문조작단’, 9월 20일(월) 오후 9시 50분 2TV - ‘인피니트’ (국내 최초상영), 9월 20일(월) 밤 12시 10분 1TV - ‘해어화’, 9월 21일(화) 오전 10시 40분 2TV- ‘엑시트’, 9월 21일(화) 오후 8시 2TV - ‘도굴’, 9월 22일(수) 오전 11시 50분 2TV - ‘공작’, 9월 22일(수) 오후 2시 20분 1TV - ‘감쪽같은 그녀’ 등 다양한 영화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MBCMBC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를 마련했다. 추석 당일인 9월 21일 화요일 오전 8시 20분에 ‘강변가요제’를 빛낸 신화들이 모여 환희와 감동의 순간을 재현할 ‘MBC 강변가요제:레전드’를 방송한다. 이날 방송될 ‘MBC 강변가요제:레전드’에는 1979년 제1회 강변가요제 금상 수상팀인 홍삼 트리오를 비롯해 박미경, 티삼스, 이상은, 이상우, 박선주, 육각수 등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대표 뮤지션 7팀과 딕펑스, 라붐, 라포엠, 손승연, 이소정, 정엽, 존 박 등 후배 뮤지션들이 출연해 세대와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음악 축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2일 수요일에서 23일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10분에는 실존 또는 가상 인물을 디지털화하는 기술인 ‘디지털 휴먼’ 기술과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해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 김종진, 드러머 고(故) 전태관, 고(故) 김현식이 함께 꾸미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홀로그램 콘서트 [Re:present]’를 방송한다.
특히 방송에서 '가리워진 길', '비처럼 음악처럼' 등 모든 음악 팬들의 마음을 울린 명곡들과 함께 가수 이적, 거미, 이무진 등 후배 가수들이 각각 무대에 올라 그들만의 목소리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명곡 향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추석 특선영화로 9월 19일(일) 오후 8시 25분 ‘아이’, 9월 21일(화) 오전 11시 55분 검객, 9월 21일(화) 오후 9시 10분 ‘담보’ 등을 방영한다.
SBS
골프 예능 ‘골프 혈전, 편먹고 공치리’는 2부작 추석 특집으로 ‘동상이몽’을 통해 눈길을 끈 연예계 대표 부부 소이현-인교진 부부와 장신영-강경준 부부가 출격한다.
인소 부부는 유현주 프로, 이승기와 강장 부부는 이경규, 이승엽과 각각 팀을 이뤄 치열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실력자로 소문난 부부 중 필드 위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지 기대해 볼 만하다. 해당 방송은 9월 18일 토요일 오후 6시, 9월 22일 수요일 오후 5시 50분에 시청할 수 있다.
9월 18일 토요일 오후 8시 55분에는 ‘펜트하우스 시즌 3’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펜트하우스-540일간의 이야기‘가 방송된다. 펜트하우스의 주요 배우들을 비롯해 펜트 키즈들이 총출동한 이번 스페셜 방송에서는 첫 대본 리딩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펜트하우스와 함께한 540일 동안의 다양한 이야기를 배우들의 시선으로 솔직 담백하게 풀어나간다.
특히 첫 만남부터 캐릭터에 대한 연구, 내가 뽑는 명장면 및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 제작 기간 동안 배우들의 희로애락을 소개한다. 또 배우들의 소감, 극 중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작별 의식, 그동안 펜트하우스를 사랑해 준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까지 그 여운을 시청자와 함께 나눌 예정이다.
SBS는 추석 특선 영화로 ‘미나리’를 안방극장에 선사한다. 영화 미나리는 낯선 땅 미국 아칸소에서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이민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낯선 이국땅에서 서로를 보듬는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9월 20일 월요일 오후 8시 20분에 방송한다.
한편 TV로는 SBS에서 최초 방송되는 영화 ‘미나리’는 93회 아카데미에서 여우 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배우 윤여정은 이 영화로 총 37개의 상을 받았다.
베테랑 연기자이자 30년 넘는 경력의 라디오 진행자, 예능 MC로 종횡무진하는 탤런트 김성환(72)을 실제로 보면 칠순을 넘긴 나이를 쉬이 믿기 힘들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젊음이 분명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과 젊음에 대해 겸손하게 부모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얼굴에 뭔가 바르는 걸 싫어해서 로션도 잘 쓰지 않고 운동도 걷기 위주로 한다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타고난 선물이 부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부모님께 받은 ‘선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성공한 방송인이자 가수, 노인의료나눔재단 이사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 김성환에게 지금의 삶을 만든 해법과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탤런트 김성환을 바쁘게 만드는 일에는 노인의료나눔재단이 있다. 처음에는 홍보대사를 하다가 2018년부터 노인의료나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노인의료나눔재단은 1년에 30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시니어들의 무릎 수술비를 지원하는 공익 재단이다. 주로 저소득층 시니어, 연고자가 없거나 홀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그 지원 대상이다.
어르신들과의 계속된 접점, 이사장까지 되다
“탤런트를 하면서 교양 프로그램, 노래 등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해서 어르신들과 인연이 많았죠. 저도 고향이 시골이라 농사 등 어르신들의 생활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MBC ‘고향이 좋다’에서 20년 넘게 MC를 하기도 했어요. 하다 보니 어르신들과 접촉이 많았고, 많이 알게 되고, 어르신들이 저를 좋아하시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 위하는 일이 뭘까 관심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한노인회 홍보대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 덕분에 노인의료나눔재단 홍보대사도 하게 되었죠.”
그는 요즘도 대한노인회 홍보대사 일을 겸하고 있기에, 보건소나 경로당에 가면 그의 사진이 있는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김성환은 시니어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게 접하는 연예인일 것이다.
“노인의료나눔재단 홍보대사 일을 하다 보니 열 분의 이사님이 만장일치로 저를 이사장으로 추대해주셨죠. 저보다 먼저 이사장을 맡았던 분들이 다들 쟁쟁하신 분들인데, 영광일 뿐입니다.”
30여 년간의 라디오 DJ 생활
김성환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동시에 스스로도 현재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연기와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53세에 경기대학교에 진학한 일 또한 그렇다.
“10년 동안 다녔어요. 탤런트 김영철과 함께 들어갔죠. 열심히 해서 예술학 박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큰 일이 대학교 다닌 일과 라디오 방송을 30년 동안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처음 맡은 라디오는 KBS의 ‘세월 60년 노래 60년’이었다. 5년 동안 KBS 라디오에 몸을 담았던 그는 교통방송(현 TBS)이 개국하자 이적하여 작년 11월까지 무려 26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했다. ‘9595쇼’, ‘서울 부르스’, ‘비바 트롯’ 등을 맡았던 그는 TBS 라디오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다. 그는 이러한 장수 방송인의 비결에 대해 단순히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열심히를 넘어 죽기 살기로 해야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렇게만 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뭐든지 죽기 살기로 해야 해요. 거친 표현이지만 모든 것을 죽기 살기로. 라디오를 30년 이상 한 것도, ‘고향이 좋다’를 20년 넘게 한 것도, 경인방송 ‘성인가요 베스트 30’을 7년 한 것도 그랬어요. 뭐를 하나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열심히,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죽기 살기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열심히 해야지 대충 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10을 줄 때 나는 20, 30을 준다는 다짐과 여유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그 사람도 나를 믿고 함께할 수 있거든요.”
그는 방송을 10년 하려면 삼위일체가 아니라 오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고, 운이 좋아서 프로그램이 사랑을 받아야 하고, 부지런해야 해요. 10년, 20년, 30년이란 세월 동안 방송을 한다는 건 정말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야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김성환은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보고 살았다. 제주도에 가서 쉬면 방송이 펑크 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과거에는 부산조차 못 갔다. 이제는 KTX가 있어 가능해졌지만. 교통방송에서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17년 동안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모든 걸 다 바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 넘은 그의 노래
인생은 자신의 모든 걸 방송에 바친 김성환에게 또 다른 선물도 주었다. 바로 가수로서의 성공이다. 유튜브에서 김성환의 이름을 치면 그가 가수로 공연한 방송 클립들이 나오는데 그 조회수에 놀라게 된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올린 동영상이 대표곡 ‘묻지마세요’를 포함한 그의 히트곡 메들리인데 1030만 회에 달하니,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한 명이 그의 공연을 봤다는 얘기가 된다.
“1997년에 ‘거시기 인생’이라는 노래를 드라마에서 부르면서 히트를 쳤죠.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서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르게 됐어요. 물론 본격적인 가수라기보다는 탤런트 중 노래 좀 부른다는 쪽이었는데, 2014년에 발표한 ‘묻지마세요’가 아주 행운이었죠. 이 노래는 원래 진성 씨 노래였는데 팬이 생긴 인기 좋은 노래가 됐어요.”
그가 ‘묻지마세요’ 이후 밀고 있는 노래는 ‘보고픈 친구야’다. ‘묻지마세요’의 작곡가 이충재가 그에게 직접 가사를 써보라고 해서 가사도 자신이 직접 썼다. 나이를 먹으면 친구밖에 없다, 친구 하나를 제대로 사귀면 평생 최고라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노래다.
“제 노래가 아무나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예요. 가수가 한 곡 히트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세 곡이 히트한 걸 보면 가수로서도 성공했다고 봐야겠죠?(웃음)”
‘미운 놈이 되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을 지키다
막힘없이 술술 풀리는 이야기에 김성환이 변죽이 좋은 걸로 유명하다는 게 떠올랐다. 그 스스로도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소질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한다.
“제가 얼굴과 행동과 말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역할을 줄 수 없었어요. 재미있는 역할을 주려고 하면 얼굴이 잘생겼고, 얼굴이 잘생겨서 주인공을 주려고 하면 사투리가 막 튀어나와서 주인공 같지 않으니까. 군대에 있을 때 사투리를 고치고 공부해서 제대 후에는 다양한 역할을 맡았어요.”
좌절할 수도 있었던 젊은 날 고민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기회로 만든 점이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 그간 방송인이라는 직업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행적을 보면 멘탈 관리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자랑스럽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누구와도 싸워본 적 없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아버지께서는 ‘미운 놈이 되면 안 된다’라고 자주 말씀해주시곤 했어요. 왜 그런 말씀을 자꾸 하실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가슴에 와 닿더군요. 저는 성격도 그렇지만 ‘미운 사람이 되지 말자’가 인생 모토예요. 괜히 미운 사람으로 보이겠냐 싶은 거죠. 다른 사람에게 왜 미운 사람으로 보일까요? 말 한마디에 미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천 냥 빚은 못 갚아도 미운 사람이 되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새긴 그의 인생 모토는 ‘말 한마디 때문에 다투지 말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를 흉봐서도 안 되고 헐뜯어서도 안 되고 탓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깨달음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나를 닮으라는 얘기는 안 하지만, 절대 미운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자식과 부모 간에도 하기에 따라 밉거나 존경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기 손으로 탈락시킨 냉정한 아버지
그러고 보니 김성환의 둘째 아들(김도성)은 연기자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입학한 재원인 아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와 연기자가 되겠다고 하자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말려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니까요. 방송은 정말 힘들다고 충고했지만 결국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예술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는 본인이 연기자였기에 연기에서만큼은 냉정한 아버지였다. 그가 심사를 보게 된 KBS 탤런트 공채에 아들이 지원했었다고 한다. 20명을 뽑는데 3만 명이 지원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었다. 그는 아들의 연기자 심사를 보고 1차에서 탈락시켜버렸다.
“아들이 아버지 맞냐고 묻더군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탤런트를 뽑는지, 어떻게 탤런트가 되는지 네가 알아야 한다면서 심사 과정을 알려줬어요. 정말 힘들거든요. 대사 외우기, 노래, 운동, 특기, 악기 사용, 성실함 등등. 저도 50년 했지만 정말 힘든 게 이 길이에요.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길이죠.”
싫어하는 말은 ‘졸혼’, 그리고 부부관계의 해법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부로 황혼을 지내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부부관계가 원만한 비결로 서로에 대한 배려를 들었다.
“뭐든지 일방적인 게 없어요. 내가 아무리 잘했어도 상대가 잘했다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잘 안 된 거죠. 반면 ‘저 사람이 열심히 살면서 밖으로 많이 돌고 집안일을 안 도와주는 거 같아도 나에겐 소중한 사람이다’ 싶으면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라는 게 서로 잘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섭섭할 수 있고, 권태기 때문에 싫어질 수도 있어요. 요즘은 헤어지는 게 다반사 아닙니까.”
그는 너무나 싫어하는 단어가 졸혼이라고도 했다.
“백일섭 형님에게도 이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겠다 해놓고 조금 싫다고 헤어지면 되겠느냐’ 했더니 ‘누가 헤어지냐? 누가 이혼한다냐? 조금 떨어져 있겠다는 거다’ 하시더군요. 남진 형님은 ‘그것도 괜찮다’ 하시는데 나는 끝까지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아이가 없거나 주변인이 없으면 그럴 수 있죠. 지금 사는 게 나 혼자만이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남들 눈이 있으면 못 하는 일이 있죠. 하물며 내 자식들이 보고 있는데, 자식들이 괜찮다 해도 부모로선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것은 또한 김성환이 계속 지켜온 사람에 대한 예의, 타인을 위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길을 올곧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꿋꿋이 걸어갈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시니어들의 향수를 자극할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돌아온다. 대한민국 TV 드라마 사상 최장수 작품인 전원일기는 198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총 22년 동안 방송됐다.
MBC가 창사 60주년을 맞아 특집 ‘다큐플렉스-전원일기2021(전원일기2021)’을 방송한다. 배우 최불암과 김혜자를 비롯해 순길이 역의 류덕환까지 30명이 넘는 ‘전원일기’ 출연진 전원이 참석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동창회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다. 연로한 출연진이 많아 모두가 한데 모이는 대신 일용이네 가족처럼 극중 가족끼리 모이는 등 삼삼오오 모이는 모습을 담았다.
최근 전원일기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재방송되면서 50-80 시니어들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전원일기2021에는 2021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전원일기에 대해 설명을 상세하게 담아 소개한다. 출연진들이 말하는 최근 전원일기가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부터 배우로서의 삶,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시니어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시청자를 사로 잡을 예정이다.
김회장 역의 배우 최불암은 최장기간 전원일기를 집필한 김정수 작가와 20년 만에 재회했다. 김정수 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꼽은 배우 최불암이 당시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해져 관심이 집중된다. 두 사람이 만나서 털어놓은 당시 후일담 역시 방송으로 볼 수 있을 예정이다.
김 회장네 세 며느리들도 모인다. 배우 고두심과 박순천, 조하나는 김회장의 어머니 역을 맡았던 故 정애란 배우를 찾는다. 故 정애란을 모신 해양장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그리움을 바다에 쏟아낼 예정이다. 세 며느리의 저녁 식사 자리에는 모두를 놀라게 한 깜짝 손님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정체는 방송에서 공개된다.
이 외에도 전원일기 2세대 배우들인 영남이 역의 남성진, 복길이 역의 김지영, 금동이 역의 임호, 남영 역의 조하나, 수남이 역의 강현종도 모두 만날 수 있다. 김 회장네 못지않게 당시 시청자에게 사랑받았던 일용이네 가족, 일용이 역의 박은수와 일용 처 역 김혜정 또한 2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박은수와 김혜정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고 전해져 과연 일용이네 재회에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내용은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MBC 전원일기2021 첫 편은 18일 저녁 8시 50분에 방송된다. 이후 4주 동안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에 전원일기2021 4편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명곡 ‘마음에 쓰는 편지’를 부른 가수, 그리고 1990년대를 휘어잡은 최고의 MC. 임백천(63)은 지금도 매일 낮 12시부터 KBS2 라디오 해피FM ‘임백천의 백뮤직’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로 연예계에 입문했으니, 어느덧 43년 동안 현역 방송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셈. 아날로그 시대에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르렀기에 ‘디지로그’를 지향한다고 밝힌 그는, 느릿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현재의 시간을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정점에 도달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이 관조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①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내 인생 단 하나의 영화 같은 순간
임백천에 대해 얘기하면서 아내 김연주 씨를 빼놓기는 어렵다. 성공한 가수이자 MC였던 노총각과 서울대 출신 재원이자 역시 떠오르는 MC였던 두 사람의 결혼은 1993년을 장식한 큰 화제였다. 올해 결혼 생활 28년째, 1남 1녀를 둔 부부의 생활은 어떤지 물어봤다.
“(웃음) 아주 나이스한 친구예요. 제가 서른다섯 살에 아내에게 구제받았어요. 지금이야 서른다섯은 결혼 적령기지만 그때는 노총각이었고, 여자 마음을 사는 데 소질 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다 프러포즈를 받아준 사람이 나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결혼하겠다고 하자 ‘신부가 너무 아깝다’는 말이 나왔죠. 심지어 저의 엄마까지도 아내가 아깝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결혼식에서 그는 장인어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랑 신부가 동시에 식장에 입장했다. 부부가 동등하게, 잘 살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입장을 해서 주례에게 가는 그 시간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지금도 그분의 보살핌에 힘입어 잘 살고 있고…. 한 집에서 식구들과 복작대며 살 맞대고 살아간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사는 건 아내가 현명한 답을 갖고 참아주고 희생해서 유지되는 거예요. 안 그러면 힘들겠죠.”
유튜버 제안받았지만 ‘거부’한 이유
임백천과 시니어로서 제2의 인생 얘기를 하다 보니, 방송인인 만큼 자연스레 유튜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또한 유튜브 채널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의 방송 철학과는 정반대였다.
“유튜브에서 방송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푸는 걸 하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싫어해요. 후배, 선배, 동료들 뒷담화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도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 중 하나로 ‘주현미TV’를 꼽았다.
“지금은 트로트 전성시대잖아요. 옛날에는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전통 트로트 시대였는데 지금은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 시대예요. 대중가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겁니다. 전통 트로트를 공부하고 세미 트로트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어요. 들어보면 알아요. 주현미 씨는 지금 시대에도 전통 트로트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본인이 그걸 본보기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현미TV’를 보면 전통 트로트를 쭉 하고 있어요. 굉장히 잘하는 거죠. 돈이 막 벌리는 일도 아니고, 사명감으로 하시는 거죠.”
SNS 좀 안 하면 안 될까?
임백천 또한 유튜브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고 한다. 만약 하게 되면 ‘주현미TV’처럼 자신만의 소울이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전에, 인터넷 방송이 자신에게 맞긴 한 건지부터가 고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망설임에는 매일같이 인터넷 방송과 SNS를 통해 여론몰이가 일어나는 세태에 대한 그의 예리한 시선이 있었다.
“SNS 계정은 있지만 사용은 안 해요. 첫 번째 이유는, 게을러요. 글을 올리고 반응을 보고 댓글을 남기고 하는 걸 챙기는 빠릿빠릿한 사람이 아니에요. 두 번째는 지금 복잡한 사회가 됐잖아요. 서로서로 잘난 사람들뿐이에요. 서로 말하고 있어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이름 좀 알려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 언론에서 확대 재생산하고…. 그러니까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제발 사람들이 ‘낄끼빠빠’ 좀 했으면, SNS 좀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책임지지 못할 얘기를 고견인 양 올리면 시끄럽고 적이 생기고 싸우게 되고…. 그게 싫어서 안 합니다. 제가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신경을 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게 싫어요. 조용한 사회를 원합니다.”
가수로서의 숙명, 다시 시작됐다
사실 임백천은 이틀에 영화를 세 편씩 보는 영화광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면 배우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열망을 지금 생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데, 본인 말마따나 커리어가 꽤 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라디오스타’에서의 카메오 출연. 그 외에도 드라마에서 조연을 여러 번 맡았다. 최근에는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2에 카메오로 나오는 촬영을 끝냈다.
그렇게 이제 곧 배우로서의 임백천을 보는 것과 더불어 가수로서의 임백천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그의 목소리로 불리는 새 노래들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앨범인 3집이 1991년에 나왔으니 어언 30년 만의 일이다.
“마지막 앨범이 될 것 같아요. 가수를 했던 사람들이나 배우를 했던 사람들은 죽기 전날까지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면, 좋은 연기를 했으면, 그러고 살아요. 어떻게 보면 숙명 같은 거예요.”
이번에 만드는 앨범은 젊은 감각의 프로듀서와 함께하는데, 프로듀서 말을 ‘백 프로’ 듣는 중이라고 한다. 안 그러면 한풀이지 가수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장년층에 맞추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요즘 중장년층도 디지털 세대에 맞춰졌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 적응해야 해요. 요즘 중장년층은 살기가 힘들어요. 꼰대가 돼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웃음)”
젊은 세대와 아무런 만남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인터넷을 하고 쇼핑도 해야 하니 요즘 세대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야, 내가 사는 세상은 따로 있어. 네가 사는 세상은 찰나적인 거야’라고 생각하면 ‘꼰대’가 된다는 것이다. 시니어로서 요즘 세상과 마주치는 법을 선선히 받아들인 그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하는 디지로그적 인간에 한층 가까워 보였다. 가수 임백천의 잔잔하고 자연스럽고 가식 없는 목소리와 만나게 될 새로운 노래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노래할 거예요. 올가을까지 완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노래 연습과 기타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런데 기대하지 마세요.(웃음)”
늘 이렇게 여운이 있다. 그래서 여백이 있는 임백천인가 보다.
언더그라운드 가수, ‘천둥 호랑이’가 되어 돌아온 권인하. 올해 나이 예순두 살. 그러나 나이가 무색하게 29만4000여 명의 유튜브 독자를 보유한 그는 여전한 현역으로서 젊은 세대의 열광을 받으며 인생 2막을 일구고 있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가 40여 년이 지나 어떻게 다시 전성기를 열게 되었을까? 천둥 호랑이가 말하는 음악, 소통, 그리고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 가수 권인하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동안 잊힌 가수였던 그의 봄날은 유튜브 덕분에 찾아왔다. 그가 놀라운 것은 1980년대에 주로 활약한 과거 세대의 가수면서도 유튜브라는 새로운 포맷에 최적화된 가수로 다시금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성공의 계기는 젊은 세대와의 적극적인 소통 덕분이었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다
권인하는 본인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목적으로 유튜브를 전략적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유튜브의 성공 사례 중 상당수가 그렇듯, 그는 우연과 기회가 겹쳤을 때 본인이 갖고 있던 본연의 실력을 적중시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시작은 2015년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부터다. ‘이 나이에 해도 되는 건가?’라며 긴가민가했던 출연 제의를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권유해 나가게 되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원래 ‘천둥 호랑이’ 채널은 내가 부른 노래들을 모아놓는 데이터베이스로 쓸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복면가왕’에 출연한 후 이슈가 되어 EBS ‘공감’에도 초대되었죠. 거기서 태연의 ‘만약에’를 불렀는데 본방에는 못 나갔지만 EBS에서 그걸 유튜브 채널에 따로 올렸어요. 그랬더니 화제가 되었고 순식간에 100만 뷰를 넘더군요. 그걸 본 아들이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부르라고 권유했습니다.”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는 태연, 엠씨더맥스, 노라조, 에일리, 아이유 등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리메이크하여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 1980년대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던 그가 까마득한 후배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도 신선했지만, 더 신선했던 것은 이미 장년의 나이가 된 그가 구사하는 생생한 창법이었다. 다양한 음역대를 오가지만 특히 고음을 원키로 힘 있게 확 질러버리는 그의 ‘천둥 호랑이 창법’에 ‘진짜 가수’를 찾던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권인하의 법칙은 연습과 소통
권인하가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전성기 시절과 다름없는 압도적 성량과 테크닉을 유지하는 비법은 연습이다. 그는 요즘 매일 기본 3시간, 때로는 10시간씩 노래 연습을 한다.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게 되니 가수로서의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젊어서는 연습 안 하고 대충 불러도 ‘이 정도면 됐지’ 하며 교만했죠. 하지만 유튜브를 하면서 진심으로 열심히 만들어 부른 노래에 대중이 열광하는 걸 보고 절대로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밴드 후배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서운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고 했다. 후배가 자신이 느낀 점을 얘기하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고친다. 당연히 처음에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후배로서나 그 자신으로서나 이러한 소통을 통해 더욱 개선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자신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듣는 이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계속 반영하며 진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또한 유튜브를 활용하면서 이제는 하나하나 다 기록으로 남기에 허투루 할 수가 없게 됐어요. 권인하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계속 최고의 정신과 자기관리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댓글로 만들어진 놀이 공간에서 노닐다
권인하가 자신을 찾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도 적극 그 자체다. 다양한 SNS 활용. 유튜브, 팬카페,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하면서 댓글이나 쪽지에 일일이 답장은 못 하지만 최대한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피드백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해 그가 중시하는 것은 댓글이다.
“비결은 구독자들이 달아주는 재미있는 댓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는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그에 대해 댓글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놀이터처럼 소비하죠. 그런 재미있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콘텐츠 자체에 새로운 활력이 생깁니다. 단순히 노래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놀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구독자들이 달아준 재미있는 댓글 덕분에 콘텐츠가 계속 생명력을 얻고 재확산될 수 있다고 봅니다.”
2021년 3월 중순 현재 권인하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29만4000명, 곧 30만 명을 돌파할 기세다. 그 구독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20~30대라고 한다. 옛날이라면 환갑잔치를 열었을 가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팬층의 구성이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권인하의 소통 능력 아닐까.
현재 권인하의 모습은 최신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멀티테이너적 인상을 준다. 또 그것이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새로운 물결에 올라타는 그의 모습은 그의 삶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하다.
권인하가 요즘 보여주는 천생 가수로서의 모습만 기억하는 이라면 낯설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과거에 한때 키보디스트이자 작사·작곡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다. 군대를 갔다 온 그는 1980년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이영훈과 고등학교 동창 한 명과 함께 셋이서 팀을 준비했고, 그때 이영훈의 곡을 보고 자극을 받아 작곡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처음 만든 곡을 이광조가 불렀을 정도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능력은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권인하는 또한 사업가 경험도 갖고 있다. 신촌뮤직을 운영하며 박효신을 발굴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록 가수로서는 드물게 공중파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음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송 활동을 했다. 심지어 배우로서의 경험도 있다. 1992년에 방영된 MBC 미니 시리즈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에서는 주연, 2001년 MBC드라마 ‘가을에 만난 남자’에서는 조연으로 나왔다.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역할을 바꿔가며 다양한 일을 한 그지만, 뼈아픈 실패 또한 그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음반 시장이 음원 위주로 재편되면서 기존 중견가수들에게는 혹독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권인하 또한 이에 대처하기 위해 미사리 카페를 운영하고 골프 사업도 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내가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게 돈”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다.
내가 도움이 되는 선배였다니 다행
성공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실패들. 이쯤 되면 권인하가 가진 경험의 자산치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인플루언서로 변화할 수 있었던 비결도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본능적 감각이 일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치지 않는 발전의 동력은 ‘어른’의 정의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도 어른이 됐나 싶을 때가 있지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롤모델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어른됨이겠죠.”
그는 요즘 자신의 가장 큰 기쁨으로 ‘내 노래를 기다리는 호랭이들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기존 팬뿐 아니라 젊은 층에서 호응해주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꼽는다. 얼마 전 화제 속에 끝난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발굴한 스타 정홍일은 권인하의 ‘나의 꿈을 찾아서’를 인생곡으로 꼽았다. 1992년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기도 한 이 노래의 가사는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위해 꿈을 찾아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가사가 정홍일이 보여준 삶의 궤적과도 일치하기에, 더욱 살갑게 다가왔을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저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였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미 너무 잘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잘됐으면 좋겠어요. 함께 재미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요.”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노래가 필요한 시대
권인하는 ‘싱어게인’ 같은 오디션 프로의 매력은 참가자들의 순수한 열망과 간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간절함’은 못 이긴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진짜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요즘 후배들은 보컬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음색이나 아티스트의 개성 자체가 차별화되지는 않는다고 보여요. 기술적으로는 다들 너무 잘하기 때문에 좀 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음악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청자들이 가수의 진심에 반응해야 감동은 오는 법. 노래에 대한 진심과 개성에 대한 권인하의 충고가 과거 송창식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과도 일치하는 걸 보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 거장급 가수들이 후배 가수에 대해 갖는 생각에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항상 즐거운 인생이지만 아직 못 다 이룬 꿈이 있기에 정진 중입니다. 이미 케이팝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했잖아요? 우리 노래가 세계적 퀄리티라는 반증이죠. 10년 이내에 우리 세대의 음악도 훌륭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트렌디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권인하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서 시대에 맞게 진화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원한다. 요즘 시대에 예순두 살은 무언가를 하기에 시간이 넉넉한 나이임을 생각하면,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은 셈이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이의 일반 개원한 의사들은 절대 쉬지 않아요. 여전히 현장 진료를 하고 신기술을 배우죠. 그걸 안 하면 환자들과 교류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의사 친구들과 한잔할 때면 ‘그런 거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못 하면 도태되는 거다’라고 말해주죠.”
멋있게 늙는 첫 번째 자질은 도전
권인하는 뒷전으로 빠지는 사람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지를 갖고 접목시킬 게 무엇이 있을까 끝없이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멋있게 늙어갈 수 있는 첫 번째 자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또한 멈추지 않기 위해 요즘도 1년에 싱글을 두 곡씩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시도해야 결과가 나옵니다. 따라서 뭐든 하는 게 필요해요. 그 자체가 우리 나이에는 큰 용기를 주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요. ‘아, 할 수 있구나, 되네’ 하는 경험을 가지면 미래에 도전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는 자신이 한 말의 증인이기도 하다. ‘할 수 있구나, 되네’를 실현시켜 미래를 꿈꾸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만들어갈 인생 2막의 열정적 행보와 소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첫 구절만 들어도 바로 떠오르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를 부른 세샘트리오. 그 세샘트리오의 보컬이었던 권성희(66) 씨는 누구나 기억하는 노래의 주인공인데도 그 삶에 대해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에 자주 보이지 않아도 그녀는 가수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연예인 자원봉사단체인 한마음회 회장, 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 CEO클럽 회장까지 맡으며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올해로 데뷔 45년을 맞이한 그녀의 남다른 소회를 들어봤다.
“권성희라는 사람은 멋있는 가수였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가정사를 많이 오픈하지 않고 살았죠. 예능에 나와달라는 연락은 많이 받았는데, 남편도 오픈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방송에 나와도 재미없을 거라고 해요.(웃음)”
권성희 씨의 남편은 배우 박병훈 씨. MBC 공채 탤런트 8기 출신으로 ‘제5공화국’, ‘연개소문’ 등의 드라마에 출연한 중견 배우다. 두 사람은 1985년에 결혼했다. 아내가 서른두 살, 한 살 연하였던 남편은 서른한 살이었다.
“남편과는 친구 소개로 만나 연애를 해서 결혼했어요. 착하고 성실해 보여서. 그리고 당시에는 제 나이 서른이 넘으니까 주변에 총각이 없더라고요.(웃음)”
결혼하기 전까지는 연하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결혼을 한 후에야 남편 주민등록증을 보고 나이를 알았다고 하니, 남편이 연하인지도 모른 채 결혼한 셈이다.
“요즘처럼 SNS도 없었고, 방송하고 연습하고 야간 무대 하고 집에 오는 바쁜 생활이었으니 제가 인기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솔로로 나오고 팬들도 만나니 그때 체감되더군요. 그래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결혼한 것도 있었죠.”
성악가를 꿈꾸던 소녀, 대중 가수가 되다
소녀 권성희는 마리아 칼라스 같은 프리마돈나가 되겠다고 다짐한 성악 꿈나무였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합격하리라 자신했던 연세대 입시에서 낙방했다. 친구들과 부모님 볼 낯이 없어서 그대로 잠수를 탔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후기 동덕여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낙방의 아픔이 흉터처럼 남은 탓인지, 막상 대학 생활을 해도 학업에 열중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방송국의 아는 분들에게서 프로그램에 나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죠. 그래서 방송을 ‘살랑살랑’ 했어요. 그런데 방송을 알게 되니 재밌더라고요. 성악을 했지만 현미 씨나 패티김 씨 노래를 즐겨 부르기도 했고요. 저쪽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죠.”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야간 무대에 서게 됐다. 당시 가수들의 야간 무대는 지금과 달리 자연스러운 무대 활동이었다. 성악을 기본으로 한 탄탄한 가창력으로 주로 스탠더드 팝과 패티김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찾는 무대가 점점 늘어났다.
“수입이 좋았죠. 월급쟁이가 3만~4만 원 받던 시절에 하루 4만~5만 원을 벌었으니까요. 어느 무대에서는 10만 원, 15만 원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벌었죠. 아직 무명이었는데도요. 그때 연예계가 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라틴 대중가요, 세샘트리오 결성
야간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경희대 성악과 출신의 전항 씨를 알게 된다.
“‘너나 나나 클래식을 했던 사람인데 뭔가 팝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음악을 불러보자’면서 라틴 음악을 제안하셨죠. 들어보니 멋지더라고요. 그리고 그분이 기타를 잘 치던 홍신복 씨를 섭외했어요. 그렇게 셋이 같이 로스 판초스 같은 혼성 트리오를 결성하기로 해서 만들어진 게 세샘트리오였어요.”
그러나 라틴 음악은 세샘트리오 자신들에게도 새로운 음악이었다.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만나서 연습을 해야 했다. 저녁이 되면 야간 무대에 섰다. 그러면서 레퍼토리를 늘리고 계속 공부했다.
“카바사, 마라카스, 탬버린 등 라틴 악기들도 다루기 시작했죠. 노래 연습보다 그게 더 힘들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익숙해지니 그게 없으면 노래가 안 되더라고요.(웃음)”
결성 1년 만에 길옥윤 씨가 작곡한 ‘나성에 가면’이 나왔다. 보사노바 장르로 당시 대중가요에선 없던 노래였다. 그러나 엄혹한 시대를 밝히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였던 덕분일까, 홍보를 거의 안 했는데도 대박을 쳤다.
“바쁘니까 제가 스타인 줄도 몰랐는데 어느 날엔가 되어 있더라고요.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세샘트리오의 전성기였죠. 일도 많이 하고 미국 공연도 하고. 그렇게 잘나가다가 남자 멤버들이 외국으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어요.”
사회는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야
세샘트리오 이후 솔로 활동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권성희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국연예인협회 한마음회에서의 일도 그것이다. 한마음회는 연예인 자원봉사단체로 1981년에 설립되어 2000년에 사단법인이 되었고, 벌써 40여 년이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단체다. 권성희 씨는 2009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활동했죠. 장충체육관에서 4000~5000명씩 모셔서 하는 행사는 어려우니 올해는 찾아가는 봉사를 계획하고 있어요. 4월부터 각 구청의 노인복지과와 연계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녀는 시간적·재정적 여유가 있으면 봉사는 누구나 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회란 모두가 어우러져야지 누구는 너무 잘 살고 누구는 너무 못 살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준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분들 덕에 우리 일도 유지되는 거니까요. 한마음회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런 생각으로 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통합되어 있기에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었겠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여전히 이어지는 코로나19 상황은 조금 나아지나 싶다가도 집단감염이 거듭 발생함에 따라 위기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권성희 씨는 이런 어두운 시절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회의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죠. 바쁘게 살 때는 행복이 뭔지 모른 채 살았고, 지금은 나른함과 좌절감이 함께 오는 시기죠. 그러나 그런 중에도 행복은 있다고 봐요. 작은 데서 행복을 찾게 되고요.”
그녀는 요즘 시간 여유가 있으니 강아지를 데리고 집 앞을 산책한다. 강아지에게 정이 들어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고. 처음에는 지금의 언택트 상황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힘든 와중에도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사실 외로움은 못 느끼고 살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다 저는 주부면서 사회생활도 하기 때문에…. 여자는 자신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어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남자들은 그게 안 되나 봐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외부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 걸 못 느꼈는데, 집 안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완전히 ‘삼식이’들이 됐어요. 그리고 저는 집에 오면 도우미 아줌마가 되죠.(웃음)”
봉사를 넘어 진짜 나눔 펼쳐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그녀는 올해 9년째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홍보대사를 맡으며 각 지역 지사의 행사에 참여하는데 굉장히 보람 있어요. 전국을 다녀보면 재밌게 사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그리고 서울보다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되레 건강하고 음악을 즐기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걸 보면서 백 원을 가져서 행복한 사람이 있고 백 원을 가져서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떠오르더군요. 욕심 없이 살면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코로나19도 그렇죠. 마이너스만 된 게 아니라 인생을 성찰하는 시간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내려놓는 시간으로 말이죠.”
한마음회 회장,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와 함께 그녀는 MBC리더스포럼의 CEO클럽에서 회장직도 맡고 있다.
“사람들이 뭘 계속 시켜요.(웃음) 사람 한명 한명이 참 좋아서 애착이 많고, 배울 점도 많은 모임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중요해요. 그래서 사람은 가정에만 있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톱스타였던 연예인이 막상 일을 그만두거나 인기가 떨어지면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막상 뭘 하려고 하면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안 되려면 끊임없이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그녀는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과 만나서 무슨 이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사람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죠.”
중년 부부의 솔직한 관계
그녀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이를 가졌을 때, 그리고 잠정 은퇴를 했을 때라고 말한다.
“우리 때는 야간 무대 도는 게 당연했어요. 그래서 하긴 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야간 무대에서 노래하기 싫으니 쉬어야겠다, 50 먹으면 안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쉰 살이 되었을 때 3년 정도 쉬었죠.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3년 정도 지나니 지루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내가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에선 항상 연예계가 그리웠던 거죠. 그래서 앨범을 내고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걸 보면 가정이 있기 때문에 항상 안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혼자였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해요.”
그녀에게 부부란 확고한 동반자다. 서로 아플 때 챙겨줄 수 있는 존재다.
“나이 들면 기저질환이 생기잖아요. 부부라면 그런 걸 서로 챙겨줘야 하죠.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고 하잖아요. 부부는 옆에 동반자가 있으니까 그보다 낫죠.”
그래서 그녀는 요즘 유행하는 졸혼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이혼이나 마찬가진데,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관계예요. 불합리해 보이고 나중에는 사라질 거 같네요.”
물론 부부 생활에서 갈등이 없는 부부란 있을 수 없다. 그녀 또한 안 좋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걸 잘 넘어간 이유는 제 덕분인 거 같아요. 그런 상황이 되면 지고 들어갔거든요. 뭐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웃음) 그리고 평소에 성질을 안 부리던 사람이 성질을 벌컥 내면 싸우지 않는 게 맞잖아요. 물론 정말로 싫었다면 헤어졌겠죠. 하지만 그보다 좋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상쇄가 됐어요.”
서로 기 싸움하지 말고 내려놔야 한다. 그녀가 말하는 부부 관계의 해법이다.
“남편의 교통사고도 있었고, 모은 돈을 날리기도 했고, 아이 입시 문제도 그렇고.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데 그때는 잠 못 자고 엎치락뒤치락했죠. 이제는 뭐든 잘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살아가요.”
그녀는 요즘 재즈를 배우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생활에 치여 못 했던 도전이지만 예순이 넘어 드디어 하게 되면서 자신이 가수로서 나태하게 산 게 아닌가 반성했다고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주부로서의 권성희, 사회인으로서의 권성희도 소중하지만, 그녀가 가장 자신 있고 가장 영향을 받는 영역은 역시 가수로서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방식대로 온전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실행하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이 인생의 축복이고 봄 햇살처럼 찬란하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와 호흡하는 그녀의 열정과 삶이 담긴 재즈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본다.
연기 인생 66년 차, 출연 작품 300편 이상, 코믹‧멜로‧드라마‧다큐멘터리‧사극 등 장르 불문 어떤 캐릭터든 소화 가능. 배우 이순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십 년간 다양한 캐릭터로 안방과 스크린에 웃음과 감동을 선물한 그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인생 멘토이자 시니어 시청자들 마음 속의 오랜 벗이다. 이번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국민배우 이순재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덕구 (Stand by me, 2017)
영화 ‘덕구’는 이순재가 노 개런티로 찍은 작품이다.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나리오가 마음을 사로잡아서다. 영화는 일흔 살 할아버지와 일곱 살 손자 덕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덕구 할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느리도 없이 두 손자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 턱이 없는 덕구는 그 나잇대 애들답게 돈가스가 먹고 싶다며 투덜대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영화는 이런 평범한 서사를 반복하며 러닝타임 내내 단조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지루하기는커녕 갈수록 눈은 벌게지고 코끝은 찡해진다. 특히 덕구 할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덕구와 함께하는 평범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눈빛만으로 먹먹함을 자아내는 이순재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시청 전 손수건 준비는 필수다.
2. 로망 (Romang, 2019)
수십 년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황혼에 접어들 무렵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어떤 역경 일이 닥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치매는 고난에 면역력이 있는 이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다. 특히나 부부가 함께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면 절망의 깊이는 배가 된다. 영화 ‘로망’은 몸도 마음도 닮아가는 45년 차 부부가 치매 판정을 받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존 치매 영화와 달리 ‘부부동반 치매’라는 새로운 소재로 고령화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순재는 자신보다 더 빨리 치매가 악화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택시운전사 ‘조남봉’ 역을 맡아 노년기 애틋한 사랑을 절절하게 녹여냈다. 연기 경력 도합 110년이 넘는 이순재와 정영숙의 관록이 빛나는 부부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3. 굿모닝 프레지던트 (Good Morning President, 2009)
“야동 나와라, 야동!”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를 기억한다면 이순재가 정극 뿐 아니라 코믹 연기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재치와 능청은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서로 다른 세 대통령의 사적인 고민과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퇴임을 앞둔 노년의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244억 복권에 당첨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당첨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은 첫사랑 앞에서 마냥 수줍은 청년이 된다. 여자 대통령 ‘한경자’(고두심)는 철없는 남편의 대책 없는 내조로 이혼을 고민한다. 영화는 대통령을 진중하고 거리감 있는 이미지로 묘사하던 기존 영화와는 달리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로 캐릭터들의 인간미를 극대화한다. 울다가 웃으면 곤란하니 앞서 소개한 영화와는 다른 날에 시청하길.
‘호박 고구마’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 나문희.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배우 나문희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국민배우다. 1961년 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이름을 알린 나문희는 60년간 영화 22편, 드라마 91편에 참여하며 살아온 세월의 절반 이상을 연기 활동으로 보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 ‘오!문희’에 출연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트콤에서의 유쾌한 모습부터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오랜 세월 관객을 웃고 울린 나문희.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나문희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하모니 (Harmony, 2009)
임신 중 교도소에 수감된 '정혜'(김윤진)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교정 시설에서 출산한 경우 생후 18개월이 지나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품에 안은 아이와 이별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정혜는 합창단 결성을 떠올리고, 정혜의 제안으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수용자가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개봉 당시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영화 ‘하모니’는 여성 수용자들이 합창을 통해 하나가 돼 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영화에서 나문희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문옥’역을 완벽하게 연기해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전직 음대 교수였던 문옥의 지휘 아래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오합지졸 합창단이 화음을 맞춰가는 순간은 작품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2. 수상한 그녀 (Miss Granny, 2014)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나문희)은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상념에 빠진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밤길을 거닐던 말순은 우연히 발견한 ‘청춘사진관’에 들어가 영정사진을 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순은 창밖에 비친 낯선 얼굴에 경악한다. ‘할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앳된 얼굴로 변해버린 것. 스무 살의 모습으로 돌아간 말순은 당황하기도 잠시, 돌아온 청춘을 제대로 누려보기로 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나문희와 심은경의 2인 1역 캐스팅으로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나문희는 70대 말순을, 심은경은 20대로 돌아간 말순을 연기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특히 심은경은 ‘욕쟁이 할매’를 연상케 하는 구수하고 찰진 사투리를 구사해 나문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3.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2017)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옥분'(나문희)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은 '프로민원러'이자 뒤늦게 영어 공부에 푹 빠진 늦깎이 학생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청에 간 옥분은 새로 전근 온 '민재'(이제훈)를 만나는데, 다른 직원과 달리 까다롭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연신 거절한다. 하지만 이에 질 리 없는 옥분은 민재를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어느 날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의 모습을 본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색다른 민원(?)을 제기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영어를 배운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 내용으로, 실화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2007년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고 김군자 할머니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올라 증언한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문희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 3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국민배우로서의 저력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