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에는 일흔이 지난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산다. 주변에 밭을 가지고 있다. 김장배추며 무, 파, 고추, 들깨, 상추, 시금치 등을 가꾸어 먹고 이웃에 나눠준다. 요즘엔 들깨가 초등학생 키만치 자랐고 김장할 무씨를 파종하여 꽤 긴 이랑에 싹이 터서 귀엽기조차 하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서면 밭에서 아침 먹거리를 위해 파를 뽑거나 오이를 따기도 하고 밭을 둘러본다. 아침 인사에 기뻐하며 화답을 빼놓지 않는다. “늙은이에게 늘 인사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밝게 웃는다. 내 사진 속의 등장인물이 될 때도 있다. 간혹 밭에서 딴 가지며 오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일궈 놓은 상추밭에 상추를 따서 먹으라 성화다. 무가 익어갈 무렵이면 먹음직스러운 녀석을 뽑아 준다. 집을 비웠을 때는 나눠줄 채소를 담은 검정 봉지를 현관문에 매달아 두고 간다. 안사람도 맛있는 것을 사서 건네준다. 주고받는 세상인심이다. “이웃사촌”인 셈이다. 농촌으로 외지에서 농촌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면 먼저 정착해 사는 마을 사람들과의 친화 문제가 뉴스거리로 자주 등장한다. 예전의 여유롭고 넉넉한 시골 인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환경이 달라짐에 따른 시대의 변화이지 싶다. 그러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남남이지만, 사촌과 같은 가까운 관계가 이웃이다. 떨어져 사는 자식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가까운 이웃을 이르는 말이 “이웃사촌”이다. 다급한 일을 상의할 사람도 이웃이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중요한 관계망의 하나가 이웃임엔 틀림없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웃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층간 소음 문제로 원수지간이 된 경우가 없지 않아도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의 소중함을 느낀다. 근대산업화가 진행하면서 할 일이 많아지고 대체로 시간에 쪼들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내가 함께 직장을 다녀야 가정경제가 유지된다.
1983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해외보험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휴일을 이용하여 영국을 방문하여 교포 집에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그때 안주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영국에서는 일손이 있으면 누구든 일을 해야 먹고 산다. 남편 혼자 일해 먹고 살 수 있는 한국 부인들이 부럽다.” 2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됐다. 그렇기에 휴일은 그야말로 직장인의 황금 휴식시간이다. 맞벌이하여야 하는 시대이고 자기 일을 찾아 함으로써 보람을 갖는 시대를 산다. 그 시간을 쪼개어 부모를 방문하기는 마음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은 중요한 관계망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와 아파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웃이 멀어지는 듯도 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기 예사였고 함께 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그저 그랬다. 서양의 외국인처럼 낯선 사람을 만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눈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동경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르러 이웃은 더 중요하게 주목받는다. 홀몸노인을 비롯하여 홀로 사는 사람과 세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특히 나이 들어 외로움을 더 타는 시니어에 꼭 필요한 인간관계다. “이웃사촌”으로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늙은이에게 정답게 인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점심 사시겠다.”고 나서는 우리 이웃 할머니처럼 말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여행 방법이다. 친구, 가족이 아닌 현지 주민과 하루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외국을 가보고 싶었으나, 강원도 영월의 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 숙박했다. 혼자 떠난 여행. 역시 그곳에는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 웃음 가득했던 시간이 벌써 그리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때마침 빨간색 ‘붕붕이’를 타고 마중 나온 이번 달 에어비앤비 호스트 장미자(張美子·51)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짜고짜 “약속이 있으니 같이 좀 가자”하기에 무작정 따라갔다.
친절한 미자씨와 술 빚기
장미자씨를 따라간 곳은 영월청정소재산업진흥원(이하 청정원). 작년부터 이곳에서 술 빚는 동호회 ‘자주동샘’을 조직해 영월을 대표하는 술을 빚고 있다고. 현재는 시음 행사를 열어 선을 보이거나 영월의 벼룩시장에서 소소하게 판매하는 정도지만 정식 법인을 세워 술을 판매할 계획이다. 청정원에 도착해서 할 일은 아침에 빚어놓은 맵쌀죽과 누룩을 버무려 밑술을 만드는 것. 다른 회원들이 시간보다 조금 늦은 탓에 일손을 도울 겸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죽 반죽이 뻑뻑하지만 계속 손바닥으로 누르고 치대다 보면 걸쭉한 막걸리처럼 변한다. 치댈수록 달고 맛있는 술이 나온다고 해 열심히 거들었다.
영월 귀농 라이프, 1박2일로는 부족해요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숙소인 2층에 휙 던져놓고 장미자씨 일을 도왔다. 물론 쉬어도 상관은 없다. 에어비앤비의 정신대로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허락만 된다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침 호주와 제주에서 농장생활 했던 경험을 살려 장미자씨와 함께 마당에 난 잡초들을 뽑기로 했다. 힘들면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사실 올해 오디 농사는 접었다는 정미자씨. 지난 3월 뜻밖의 한파로 전라도에서 가지고 온 뽕나무가 냉해를 참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그래도 따 먹을 정도는 되기에 이웃 친한 분들이 와서 따가기도 한다.
머루랑 다래랑 따 먹고 살아요
장미자·안종호(安鍾浩·53) 부부는 인천에 살다 강원 영월읍 흥월리로 8년 전 귀농 했다. 작년 4월부터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됐다. 손님 숙소로 이용하는 곳은 2층 공간 전체. 집을 지을 때 2층에 작은 부엌이 있으면 편할 거 같아 장만해 넣었고, 훗날 장성한 아이들이 살게 되면 편할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구름다리를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손재주 좋은 남편 안종호씨가 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아들, 대학에 입학한 딸이 외지에 나가는 바람에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에어비앤비를 열어 놓고 난 뒤 설마 이렇게 먼 곳까지 사람이 들어오겠어? 했는데 문을 연 지 한 달 됐을 때 첫손님을 맞았어요.”
주말이면 매번 꽉 차는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어제 왔던 손님은 어디 온천을 예약해 놓고도 저희 집이 좋다고 퇴실 시간이 훨씬 지나 오후 1시가 돼서야 떠나셨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꿀맛 나는 식사시간
저녁에는 낮에 열심히 일한 농사꾼을 위해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넣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직접 잡은 다슬기로 된장국을 끓여 주신 장미자씨. 안 먹어 봤으면 후회했을 맛에 눈이 트일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각종 과일과 채소,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손님들도 적당히 먹을 정도만 담아가고 과일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들 한다고. 삼시세끼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절대 굶을 일 없는 곳이 바로 장미자·안종호 부부의 집이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친절한 미자씨!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은 중년들에겐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로망이다. 굳이 ‘님과 함께’ 가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때문에 내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시선을 사로잡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직접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이 세운 학교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고제순(高齊淳·57) 원장의 흙집학교가 바로 그런 곳이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고제순 원장은 애초에 농촌이나 건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곳에서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로 잘 알려진 칼 포퍼(1902~1994)를 전공했다 .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원주에 자리를 잡고 연세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년쯤 되던 시기였다.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물음에 대해 그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죠. 가장 큰 문제는 건강이었어요. 원주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때는 ‘새집증후군’이라는 단어도 몰랐으니까 대처할 방법도 알 수 없었죠. 아토피와 천식이 생기더니, 나중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병도 얻었습니다.”
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의식주를 공부하고,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衣) 식(食) 주(住)가 아니다. 의(醫) 식(食) 주(住)이다.
“현대사회에서 옷은 충분히 해결된 문제니까요. 우리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것과 무엇을 먹는가, 어디에 사는가인데, 현대인들은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잖아요. 제도권에서 수십년 교육을 받았음에도 말이죠. 이런 삶의 기초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서 원주 외곽 지금의 자리, 현재는 흙집 학교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에 터를 잡았다.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선생이 생을 마친, 지금의 토지문학관이 있는 자리 인근이다.
터를 잡는 것과 동시에 시작한 것이 집에 대한 공부다. 그 전까지 못질 한 번 제대로 해본적이 없던 그였기에 공부를 기초부터 시작해야 했다. 공구도 조금씩 사 모았다. 황토로 벽돌을 만들 수 있게 유압식 장비까지 구입했다. 그런 준비과정을 통해 3년 만에 흙집을 완공했다.
왜 흙집이었을까? “다양한 형태의 집들 중에서 흙집을 선택한 것은 우선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많이 사용하는 참숯을 비롯해서 흙과 나무, 돌 등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이로운 에너지를 주거든요. 황토는 조직이 느슨해 온도와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태적인 집을 원했던 것도 이유입니다. 집의 수명이 다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도 흙집은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요.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뒤끝이 고약해요. 폐기물로 변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니까.”
물론 흙집을 짓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집을 지을 당시 흙집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틈 날 때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옛집들을 살펴봤다.
가족과 함께 낙안읍성이나 용인민속촌, 안동 하회마을 등 옛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설계도 모눈종이를 사다가 직접 그려가면서 수정했다. 몇 번이나 수정해야 하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물론 전기나 수도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나 준공검사를 위한 행정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의 손을 빌려야 했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은 혼자 해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2000년 5월부터 11월까지 반년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첫 번째 흙집은 여전히 아름드리나무처럼 그가 기대고 쉴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두 딸을 위해 만들었던 다락방부터 볕이 잘 드는 거실, 일하기 편해 보이는 부엌 등 집안 곳곳에 그의 정성이 배어 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이 좋은 것을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학교였다. 이야기 도중 그는 책을 한 권 소개했는데, 후나세 스케(船瀨俊介)의 이다. 그 책의 부제는 ‘콘크리트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인데, 다소 과격해 보이기까지 하다. “흙집에서 사니 너무 좋더라고요. 4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질환들도 싹 나았어요. 나는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은 평생 일하고 돈을 모아 몸에 좋지 않은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화가 나더라고요. 누군가 이 흙집을 전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건축 전문가라는 분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전문가들이니 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경험은 짧지만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포털 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흙처럼 아쉬람’을 시작했죠.”
이름에 ‘흙처럼’이란 단어를 쓴 것은 그의 호 여토(如土)에서 따온 것이다. 자연 속에서 흙처럼 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것. 또 다른 단어 ‘아쉬람’은 인도 힌두교도들의 명상을 위한 수행처, 즉 기거하는 집이나 촌락을 뜻한다. 인도 전역에는 수행자들을 위한 아쉬람들이 곳곳에 있고,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지냈던 간디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순례하는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고 원장이 학교 이름을 아쉬람으로 지은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노동을 넘어 정신 수양과 자기 공부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수행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교육을 위해 그는 그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흙집 건축이론을 보완하고 체계화해야 했다. 어떻게 흙집을 지어야 이상적인 구조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요소들을 갖춰야 튼튼한 집을 얻는지, 단열과 건축공법, 디자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이다. 문득 이런 이론적 정리를 위해 그가 찾았던 스승이 궁금해지는데,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에게 집 짓기를 알려 준 스승이 있습니다. 바로 새와 벌이죠. 풀숲에서 새의 둥지를 살펴보다 그 구조적 완벽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벌집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집 짓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배워야 할 점들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자연 소재로 직접 짓고,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집을 튼튼하게 짓는다는 점이죠.”
그가 말하는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집은 방의 형태를 뜻한다. 대칭 형태의 원형이나 육각형, 팔각형 형태의 방 구조를 갖는 집. 세계적인 명상 공간들도 비슷한 구조다. 이런 구조는 에너지가 집중되는 특징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의 교육과정에서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 그중에서도 생명철학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기술과 함께 생태적인 삶에 대해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는 말 그대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요. 나와 남, 나와 사물을 떼어 놓고 생각하는 분리의식이죠. 하지만 실제로 우주에서 나만 잘되고, 나만 행복한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이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남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 중심적인 생명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연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고,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합일 의식을 통해 생태학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죠.”
그의 흙집에 대한 철학은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아 명지대학교에서 건축과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적도 있다고. 그가 운영하는 흙집학교를 건축과 교수나 건축사들이 찾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2004년 시작한 학교는 벌써 초급과정은 103기, 종합과정은 94기까지 배출했다. 인원으로 따지면 2700명 정도 되는 적지 않은 숫자다. 한 기수에 15~20명으로 운영되는 데, 초급과정은 이론 중심으로 3일 동안 진행되고, 종합과정은 13일간 이론뿐만 아니라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실습과 함께 가르친다. 학생은 주로 40~50대가 많고, 60대도 적지 않다. 30대나 여성도 기수마다 한 명씩은 있다고 한다.
“종합과정은 공구 사용법 같은 기초 지식에서부터 거푸집 설치, 구들이나 골조의 구성, 설비나 전기까지 모든 부분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함께 배운 동기끼리는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게 되는데, 안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집 지을 때 서로 품앗이를 하는 전통이 생겼어요. 건축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줄이고, 아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집을 지은 졸업생의 수는 적지 않다. 학교 쪽에 알려진 것만 따져 봐도 30% 정도 직접 지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숫자로 따지면 900채 정도 되는 셈이다. ‘흙처럼 아쉬람’의 다음 카페(cafe.daum.net/mudhouse)를 방문하면 졸업생들이 직접 건축한 흙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집을 짓으면 실제로 어느 정도 건축비를 절약할 수 있을까. 흙집학교에서 알려주는 방식의 단단한 집을 시공사를 통해 지으려면 토지 매입가를 제외하고 3.3㎡당 약 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인건비를 제외하고 자재비만 따지면 약 250만원이 소요돼 절반 이상 절약이 가능하다고 고 원장은 설명했다. 예를 들어 165㎡(50평) 정도의 흙집을 짓는다면 1억2500만원에 나만의 집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시공사에 의뢰했을 때에 비해 1억7500만원을 절약한 금액이다. 물론 모든 건축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수고로움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해야 한다.
흙집에 대한 그의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 그는 현실 속에서의 ‘흙집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저처럼 자연으로 들어와 흙집을 짓고 사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이런 삶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자연 속 흙집으로 올 수 없다면, 흙집이 그들에게 가는 것이 맞지 않나하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파트를 흙집공법으로 짓는다든가, 연립을 흙집으로 리모델링하는 형태의 일들 말이죠. 아직 구체적으로 시도는 못 해보고 있지만, 충분히 사업성도 있고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흙집 알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다보면 충분히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귀촌 생활이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가치의 수단
농협대학에서 귀농·귀촌의 풍요로운 삶을 가꾸다
시니어들이 귀농·귀촌 대학을 찾는 이유는 농촌에 가면 웰빙을 추구하는 삶의 질 향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귀농·귀촌인의 정착 실태 장기추적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이유로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서’가 31.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가 24.8%, ‘은퇴후 여가생활을 위해서’가 24.3%, ‘새 일자리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을 위해’가 22.2% 등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농사일이 좋아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 때문’, ‘생태·공동체 등의 가치 추구’가 각각 18.4%를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강, 은퇴 후 여가,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을 찾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학력일수록 은퇴 후 여가나 전원생활을 위해 귀농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귀농·귀촌자가 농촌 정착과정 상에서 자금 문제, 영농기술문제, 농지구입의 문제, 생활여건의 불편, 토착주민과 갈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자가 다시 도시로의 재이주 의향을 보이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이론 및 실습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적인 농촌 정착에 도움을 주고자 2009년에 개설하여 2015년까지 총 3000여명을 교육했다.
특히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위탁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농협대학의 귀농·귀촌 대학은 지난해 까지 7기 회원을 모집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120명에서 140명 정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7개월 동안 성공적인 귀농·귀촌 정착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생산·가공·유통·마케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교육으로 본인에게 적합한 귀농 형태를 결정짓는 역량을 강화했다.
교육비는 200만원이 넘는 전체 교육비에서 자부담 일부(50만원)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지원했다. 오전에는 귀농 설계교육과 영농기술 기초학습이, 오후에는 농협대학 교내, 귀농·귀촌 대학 실습장에서 실습 및 현장 견학이 이어진다.
1인당 약 20여 평의 땅이 주어지는데 기초 교육이 끝나는 즉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농계획을 세우는 등 농촌 투어 등 다양한 경험과 실습이 이뤄진다.
경기농림진흥재단 귀농·귀촌 대학을 수료한 이석현(61)씨는 “농촌은 부부가 보다 심신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고 며느리, 아들 눈치 보지않고 좀 더 여유롭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영농 계획을 세웠고, 귀촌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큰 공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참교육場 '사이버대학'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 세대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교육 차원에서 사이버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30대 학생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과 비교해 40대와 50대의 진학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사이버대의 나이별 대학생 추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30대의 입학이 매년 2.5% 정도씩 줄어드는 반면, 40대와 50대 이상 등록은 1%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50대 이상 입학은 전체 학생의 10.59%로 두 자릿수 평균율을 보였다.
사이버대학이란 정보통신기술, 멀티미디어 기술 및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여 형성된 가상의 공간(Cyber-Space) 안에서 교수자가 제공한 교육서비스를 학습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학습하는 가상 학습 공간이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경우 학사학위 또는 전문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제2조 제5호에 규정된 교육부 인가 대학이다. 사이버대학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고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이버대학은 매년 6월과 12월, 2차례에 걸쳐 신·편입생을 모집한다. 수능 입학을 거치지 않고 입학지원서와 함께 학업계획서와 인성검사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다.
학비는 학점당 6만~8만원 선이며 18학점 신청 시 학기당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소득분위 기준으로 지급되는 한국장학재단(www.kosaf.go.kr)의 국가장학금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버대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사이버대 종합정보사이트 CUinfo(www.cuinfo.net)를 참조하면 된다.
사이버대학은 2001년도에 총 9개 대학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총 21개가 운영되고 있다. 10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시니어가 몰리는 사이버대학 인기학과 F4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한국어문화학과는 학생의 1/4 정도가 50대 이상이다. 특히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이 대한 60대 이상 시니어의 관심이 두드러진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문예창작이론에 영상미디어를 접목한 학과다. 문학예술과 뉴-미디어에 대한 기본 소양을 배우고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사유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에 실천적 문학인을 양성하는 것이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목표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는 60대 이상 시니어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희사이버대학교에만 개설된 학과다.
한국어문화학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어느 정도 배움이 있는 시니어들이 ‘교사’에 관심이 있고 또 외국인을 대상으로 봉사 차원에서도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려, 영남사이버대학교 등 9개 사이버대학에 개설돼 있다. 국어기본법에서 정한 한국어 교원 자격 요건에 맞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환경,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현장의 요구에 부합되는 인재를 양성한다. 영역별 필수 과목을 이수하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준다.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학은 현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 사회변화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전문적 해결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족과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대상들과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회복지적인 개입 방안을 학습하고 이를 현실 사회 속에 실천하는 것에 주력한다. 사회복지전공은 전반적인 사회복지이론 및 기술의 습득, 각 전문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을 갖춘 복지전문가를 배양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호하는 시니어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봉사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상담심리학과
최근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행복한 삶과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심리학과의 경우 4년제 학위가 있는 시니어들이 선호한다. 이론과 실제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정신건강과 상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통합적·전문적인 지식과 상담기술 등을 훈련하고 있다. 상담심리학과는 관련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교과목 운영은 물론, 기초단계의 상담심리 교육과정과 영역별 심화 및 응용 단계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다양한 휴먼서비스 영역에서 전문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은 인생 2막 설계에 관한 관심이 높다. 그런 요구에 맞춰 각 대학은 발 빠르게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신중년세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전 국민의 고등교육화를 꿈꿨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프라임칼리지를 개설해 신중년들의 미래 인생설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젊은 은퇴로 고민에 빠진 신중년들에게 한국폴리텍대학은 펜 대신 드라이버와 망치를 손에 쥐어 주며 실전 학습을 가르치기에 나섰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방송대 대항마로 떠오른 사이버대학교는 이상 실현과 재교육을 토대로 시니어들의 배움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이다. 미래 설계가 아직 좀 미흡한 신중년들이 있다면 주목하라. 더욱 나은 제2의 인생으로 인도할지니.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40·50세대를 위한 제2 인생설계·준비과정
원격대학의 원조,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안에는 또 하나의 대학이 있다. 바로 프라임칼리지다. 1997년부터 운영돼 온 방송대의 평생교육원이 2012년 프라임칼리지로 개명한 것.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기존 평생교육원의 틀을 깨고 전 세대를 아우를 만한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습 프로그램으로 무장했다.
프라임 칼리지는 평생학습시대, 국민의 생애주기와 학습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다.
특히 40·50대 신중년들을 위한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 등을 시행하고 있다. 제2 인생 설계·준비과정은 중·장년층의 자립 의지에 힘을 실어주고, 더 나아가 사회공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 2012년 제2 인생설계과정 32개 신규 교과목으로 총 2660명 수강에 이어, 2014년에는 총 1만284명이 프라임칼리지를 이용할 정도 관심이 뜨겁다.
프라임칼리지 교육과정은 제2 인생대학, 인문교양·시민문해, 귀농·귀촌, 창업, 사회적 경제, 국제개발협력 사회봉사, 전문자격, 명장교수, 평생교육 등 10가지 대분류 아래 각각에 부합한 과목을 배치했다. 영미영작 단편선, 문해 교육 이론 등은 물론, 집짓기, 창업, 다양한 국가의 어학학습 등 프라임칼리지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과목들을 개설해 놓았다. 방송대 학생은 프라임칼리지에서 강의를 들으면 졸업학점으로 최대 12학점까지 인정받을 수 있어 굳이 다른 곳에서 배울 강좌가 아니라면 꼭 한번쯤 프라임칼리지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외에 20·30세대를 위한 선취업·후진학 학위과정과 재직자 기초과정도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Ⅰ 박찬영 블루베리-연금나무, 게으름의 농장 수강 (서울, 방송대 농학과 15학번, 54)
귀농·귀촌을 꿈꾸는 신중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강좌를 기웃거리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작년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전공 교수이신 문원 교수님이 블루베리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셔서 조금 더 알려 달라고 했더니 프라임칼리지 강좌를 한번 들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사실 귀농·귀촌할 생각만 있었지 어디로 갈지 또 어떤 작물을 키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블루베리에 관한 관심이 한창일 때 들었던 프라임칼리지 강좌는 꽤 도움이 되더군요. 적어도 블루베리가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접근하기 쉽고 수익성 좋은 작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농업에 관련한 일을 알아 가는 데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라임칼리지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가 귀농·귀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도 없어요. 귀농·귀촌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방송대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프라임칼리지를 먼저 알았더라면 이쪽 강의를 먼저 들었겠죠. 프라임칼리지에 귀농·귀촌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학교 입학하고 난 후에 알았거든요(웃음). 프라임칼리지도 새로운 인생 2막의 길을 찾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우선 농학과 공부에 집중한 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프라임칼리지를 좀 더 이용할 계획입니다.
인터뷰Ⅱ 양봉선 제2 인생대학 마스터클래스- 마음 외 5과목 수강 (전주, 방송대 국문학과, 58)
프라임칼리지는 마력이다
동화를 쓰고 창작을 하면서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 방송대에 편입학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에 고장이 단단히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동화 작가. 직장인, 주부, 엄마, 방송대 학생으로 숨 쉴 틈 없이 살아온 탓일까요. 1~2년 전 9개월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지냈어요. 그런데 병원을 오가다 우연히 프라임칼리지의 제2 인생설계 광고를 보게 됐어요.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클릭해 보았는데 평소 관심 있던 과목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삶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과목도 있고요. 두 과목만 수강할까 하다 프라임칼리지에서 수업을 들으면 방송대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기에 욕심을 좀 더 냈죠(웃음). 강좌를 선택하다 보니 6개가 되더라고요. 제2 인생 설계과정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중년의 삶,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삶 등을 공부했습니다.
내 이름을 단 아동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 ‘작은집-싸게 짓고 행복하게 살기’를 즐겁게 들었습니다. ‘안전, 웰빙, 스마트 여행을 위한 건강관리’ 강의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다른 나라 예절, 선물로 현지인들에게 주면 좋을 것 등을 배웠습니다. 듣다 보니 3개월 단위로 끊어지는 강좌를 6개월이나 들었더라고요. 지금도 듣고 싶은 과목은 한없이 많아요. 프라임칼리지 너무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부족했던 것들, 살면서 배우지 못한 처세술도 배울 수 있었어요. 고령화시대에 남다른 감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행복했어요.
펜 놓고 손에 기름 묻히길 원하는 자
한국폴리텍대학으로 가라!
한국폴리텍대학(이하 폴리텍대학)은 말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을 추구한다. 이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실질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고 학습한다. 1968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시작해 2006년 24개의 기능대학과 19개의 직업전문학교가 합쳐져 지금의 폴리텍대학이 됐다. 폴리텍대학은 해마다 80% 이상의 높은 취업률을 보인다. 땀의 결실을 보게 해주는 알찬 대학으로 세대와 학벌 위주 사회에서도 주목받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국민 누구나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다. 학비 걱정 없이 기술을 배우고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평생직업교육대학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이 시니어들의 재취업과 제2 인생 설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학사과정 외 시니어들을 위한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2012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은 3개월 단기과정으로 만 45세 이상 만 62세 이하의 실업자, 전직 예정자,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기업 맞춤형 과정으로 진행된다. 장년층의 재취업을 돕는 이 과정은 올해 전국 31개 캠퍼스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2012년 333명의 수료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1868명이 베이비부머 훈련교육을 수료했다. 놀라운 사실! 3개월 교육과정이 전액 무료로 이뤄지며 수료생에게는 별도의 지원금도 지급된다.
인터뷰 송재구 (청주,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 2015년 8월 수료, 59)
노래하는 만학도에게 새 삶을 준 베이비부머 훈련과정
지난해 8월 베이비부머 전기제어과정을 수료했습니다. 30년 이상 의류업과 요식업을 하면서 살았 습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성장했을 무렵 늦바람이 불었는지 48세에 대학수학시험을 봐서 2013년 새내기 대학생이 됐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2014년 말에 음식점 문을 닫았어요. 예전부터 전기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충주지역 폴리텍대학 광고를 보고 베이비부머 훈련과정을 알게 돼 훈련과정에 들어왔습니다. 기초부터 전기 에너지, 설비, 이론 등 다 가르쳐주더라고요. 일단 배우고 있었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을 배워서 자신감도 생기고 삶에 활력이 됐습니다. 과정 수료하고 바로 아파트의 시설관리기사로 취업했습니다. 아무래도 폴리텍대학에서 훈련과정을 수료한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됐습니다. 내 나이에도 그런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이력서를 내니 업체에서도 좋아하더군요. 전기 설비에 관한 한 내 손으로 다 고치고 만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 나이에 기술 없으면 딱히 취업할 곳이 없어요.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회를 저는 얻은 거죠.
지금 학교를 나온 이후에도 전기기능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은 꼭 하나 더 따고 싶어요. 앞으로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목표지만 나보다 힘들고 직업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노하우로 그분들을 도와가면서 사는 게 목표 중 하나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 그 이후까지도 사회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누군가 사랑할 사람(Someone to love), 무엇인가 할 일(Something to do), 뭔가 바라는 것(Something to hope for)’
영어권의 현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꼽는 3가지(3S)이다. 여기서 필자의 의문은 “과연 우리가 이 3S만으로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3S가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그보다 더 기본적으로 필요한 2가지가 있다. 바로 ‘돈’과 ‘건강’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니, 그걸 누가 모르냐?”고 반문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것이니까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그래서 ‘3S + 2(돈과 건강) = 5F’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 ‘F’로 시작하는 영어단어, 즉 ‘Finance, Friend, Field, Fun, Fitness’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F는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해서 Finance. 우리가 열심히 살면서 돈을 버는 것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한편 나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어느 정도 돈의 여유가 있어야 나름 설계도 하고 그에 따라 집을 지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건강하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지만 건강할 때 돈을 벌어놓아야 건강도 지킬 수 있고, 또 건강에 탈이 나도 고칠 수 있다.
두 번째 F는 누군가 사랑할 사람(Someone to love), 즉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놀 친구(Friend)를 의미한다. 친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배우자를 포함한 내 가족이다. 평소에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부모·형제 등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은 바쁘니까 이 담에 하지 뭐 하다보면 살가운 정은 다 떨어지고 난 다음일 수도 있다.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처럼 부인과 딸을 곁에 두고 사랑한다면서 눈을 감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 외에도 이 그룹, 저 그룹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등산이나 사진 찍기, 여행, 식도락 등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세 번째 F는 뭔가 할 수 있는(Something to do) Field를 말한다. 이때 필드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여가로 사진이나 글쓰기, 춤 배우기, 문화예술 관람, 요리, 여행 등과 같은 취미활동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자원봉사와 기부활동도 평소나 은퇴 후에나 좋은 필드이다. 꼭 돈만이 아니더라도 내 체력과 재능과 시간 등을 얼마든지 기부하면서 자존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준비해놓으면 귀농귀촌 또한 훌륭한 필드가 될 수 있다.
요즘 뜨는 필드가 또 하나 있다. 방송통신대 또는 학점은행제 대학 등에 다니면서 그간 못 다했거나 하고 싶었던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다. 필자가 아는 분은 80이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 일문과, 중문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불문과에 다니고 있다. 일본어 찍고 중국어 거쳐 불어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그에게서 청년의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다. 학점은행제 대학 등록자 중 60세 이상의 수를 보면 2008년만 해도 4500여명이던 것이 2013년 현재 2만 3000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결국 소득을 얻기 위한 일자리뿐 아니라 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가 곧 좋은 필드가 되는 것이다.
네 번째 F는 재미를 의미하는 Fun이다. 지난 번 기고에서 말한 것처럼 즐겁고 재미있어야 인생이다. 뭔가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Something to hope for)이 없는 인생보다 더 지겹고 재미없는 삶도 없을 것이다. 영국계 글로벌 은행 HSBC가 몇 년 전 22개국 2만여명의 사람들에게 ‘은퇴’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다수 선진국 사람들은 ‘자유, 만족, 행복’이라고 대답한 반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첫 번째로 꼽았다. ‘외로움, 지루함, 두려움’이 그 뒤를 이었다. 돈과 할 일이 어느 정도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나만의 재미, 그 무엇을 찾아 떠나봄직 하지 않은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는 아들과 딸 부부들이 여행갈 수 있도록 어린 손자와 손녀들을 봐 주고 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부인 영자와 손잡고 여행을 떠날 사람은 바로 덕수란 말이다.
다섯 번째는 앞선 4가지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강(Fitness)이다. 필자의 영어가 짧아서인지 건강하면 Health만 떠오르는 바람에 ‘4F 1H’하려다가 다행히 Fitness가 생각나서 5F로 완성할 수 있었다. 군말이 필요 없다. 건강이 없다면 돈과 친구, 일거리, 재미도 다 나의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한 TV의 장수 관련 프로그램에서 104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73세 따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무남독녀인 이 따님이 자녀들을 다 출가시킨 후 노모를 모시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것이다. 어느 날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니 치매 기운이 약간 있는 어머니가 마당에 나와 계셨다. “쌀쌀한데 왜 나와 계시냐?”고 했더니 그냥 기분이 좋다면서 노래를 한 자락 하시는 거라. “술 잘 먹고 돈 잘 쓰니 금수강산이더니, 술 못 먹고 돈 못 쓰니 적막강산이로세.” 정선아리랑의 한 자락이었다.
술 잘 먹고 돈 잘 쓴다는 것은 5F, 즉 돈과 할 일, 친구, 재미, 건강의 5박자가 잘 갖춰져 있는 금수강산이다. 반대로 술 못 먹고 돈 못 쓴다는 것은 5박자 중 대다수가 잘 갖춰져 있지 못하니까 적막강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5F가 얼추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면 내가 바로 공자도 부러워할 5자(놀자, 쓰자, 주자, 웃자, 걷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F가 5자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5F 중 Finance는 은퇴설계 중에서도 재무적 설계에 해당하고, 나머지 4F는 비재무적 설계라고 말한다. 재무적 설계를 넘어 비재무적 설계도 잘 생각하고 준비해 놓아야 행복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말은 쉬워도 갖추기는 어려운 게 5F이다. 로또 당첨과는 달리 조금씩 조금씩 오랫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5F를 하나씩 따져보면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채워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자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누가 말했나.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 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
명함은 역사다. 현재의 명함을 갖기까지, 많은 명함이 내 호주머니를 떠나갔다. 여기 누구보다 깊이 있는 명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 어렸을 때 절도로 소년원도 갔다왔다. 지금 하는 일은 노무사.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 인생, 롤러코스터다. 소년원에서 나와 ‘여전’한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역전’으로 바꾼 사나이. 노무사라는 명함을 가진 구건서의 ‘He Story’다.
글 양용비 기자 dragonfl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부드러운 인상이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매너가 넘쳤고, 사람에게 풍기는 미소에서는 푸근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악수를 할 때 내미는 손은 예사롭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두껍고 다부졌다. ‘반전이 있는 사람이구나!’ 솥뚜껑만한 큰 손을 보고 기자는 직감했다.
40년 전 소년원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소년. 그 소년의 2015년 명함에는 노무법인 더 휴먼의 회장이자 공인 노무사라는 직함이 자랑스럽게 새겨 있다. 무일푼 인생에 처절함과 절박함이 더해지자 노력이라는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 동아줄을 붙잡고 오로지 성공이라는 한 곳만 보며 올라왔다. 공부의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은 그에게 변명이 되지 않았다. 그의 명함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그를 만난 곳은 신사동의 한 갤러리. 사진전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제는 사진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 친구가 회장을 맡은 동아리가 연 사진전에서 당번을 하는 날이었다. 노무사 구건서.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기자에게 내민 하얀 명함 속에서 깊게 팬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고생이 많았다.
◇ 첫 번째 명함, 건달과 택시 기사
“세상에 대한 분노뿐이었어요. 중학생 때 지나가던 아줌마 가방을 훔쳐 소년원에 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가’ 하면서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었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남 탓, 환경 탓하기 바빴던 거죠.”
그렇게 꼬박 1년을 소년원에서 지냈다. 복역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밑천이 들지 않고, 육신을 쓰는 일뿐. 가방끈은 턱없이 짧았고, 어떤 일을 펼치기엔 땡전 한 푼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막노동, 노점상, 포장마차, 엿장수나 고물장수 같은 것이었다. 일을 어느 한곳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학연, 지연, 혈연이 전무한 상태에서 세상은 그에게 투쟁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자신에 대해 “그때는 건달이었죠. 뭐”라고 표현하며 웃어넘기지만 말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구씨가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 유명자(60) 씨의 역할이 컸다. 1981년부터 약 9년간 택시 기사를 하면서 노무사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로 튈지 몰랐던 구 씨를 끝까지 믿어 준 아내 덕분이었다.
“이런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누라랑 자식새끼는 굶기지 말아야겠다’고 말이죠.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운전수로 세상을 마치는 것을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 두 번째 명함,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노무사 구건서
“택시 기사를 하던 중 존 네이스비츠의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보니 블루칼라는 멸종하고, 화이트칼라 같은 지식 노동자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노무사에 도전해 보기로. 인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었죠.”
24시간 격일제 운전.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운전수로 평생 살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더 이상은 몸으로 때우며 살기는 싫었다.
소년원 시절에도 놓지 않았던 독서와 택시 회사 노조활동을 하며 틈틈이 배워 둔 노동법. 이것을 바탕으로 노무사에 대한 도전의 칼을 갈았다. 독서광이었던 그에게 공부는 오히려 체질이었다. 하지만 택시 운전을 하면서 공부의 절대 시간을 확보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구 씨는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동차 핸들에 법전이나 노무사 관련 책을 오려 붙여 달달 외웠다. 차량 정체 시간이나 신호 대기 시간이 그의 공부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손님을 태우면 노무사 관련 테이프를 틀어 눈이 아닌 귀로 공부를 했다. “아, 칙칙하게 이런 거 틀지 말고 음악 좀 틀어주세요.” 손님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만했다.
그만의 택시 독서실(?)은 그렇게 꼬박 3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명문대 졸업생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노무사 시험을 전국 4등이라는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루살이처럼 살던 구 씨의 노무사 합격은 ‘인생 여전’이 아닌 ‘인생 역전’의 시작이었다. 구 씨는 그 당시를 이렇게 술회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본 문구가 있습니다. ‘하루는 8만 6400초다. 이것을 돈으로 바꿔라’라는 것이었죠. 저에게 깊은 영감을 준 이 문구를 전 이렇게 바꿨습니다. ‘조물주가 매일 8만 6400초를 무통장으로 입금해준다고 생각하자. 대신 12시가 되면 못 쓴 것에 대한 값은 다시 빼간다’라고요. 저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값지게 쓰고 이것이 쌓이니 재산이 되더군요.”
◇ 세 번째 명함, Keep Looking, Don’t Settle!
“저는 이제 나이 60을 기점으로 제3의 인생을 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첫 번째 인생이 나를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다면, 두 번째 인생은 노무사로 활동하면서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었죠. 이제 세 번째 인생은 남과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것을 사회에 보태고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내비게이터십과 인생학교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함은 이제 새로움이 더해지고 있다. 그가 쓴 책 의 표지에 쓰여 있는 ‘Keep Looking, Don’t Settle!(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라)’이라는 말에 걸맞게 명함도 미래를 지향한다. 그의 명함 오른쪽 상단에 쓰여 있는 횡성군 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신선마을 촌장 겸 인생학교 교장, 내비게이터십코칭 대표 등의 직책은 구 씨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명함 중앙에 ‘공인노무사’이라는 이름이 크고 위엄 있게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직책들을 소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구 씨다. 이제는 노무사에 대한 것은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고생한 것이 있으니 지금 명함이 더 빛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명함도 마찬가지로 매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뀌지 않는 명함은 정체하는 인생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직책이 있든 없든 말이에요. 직책이 있든 없든 미래는 그려볼 수 있으니까요.”
◇ 명함 오른쪽 상단, 그의 새로운 역할
횡성군 발전위원회 자문위원
구 씨가 횡성군에 인생학교를 차리고, 자리를 잡을 예정이라서 횡성군에 직접 요청했다. 횡성 발전에 기여를 하면서 상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횡성에 기업 유치를 하고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신선마을 촌장 겸 인생학교 교장
횡성의 신선봉이라는 곳 앞에 세워지는 인생학교. 아직 학교는 없다. 하지만 곧 생길 학교에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교장이라고 기재했다. 이곳은 아이를 키우는 30~40대 부모들이 자유롭게 놀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구 씨가 여기서 하는 역할은 마을의 어른이자 할아버지로서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인생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내비게이터십코칭 대표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인생 설계도를 그려주는 일이다. 사실 시니어들은 은퇴 이후 미래 설계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인생 설계도를 제대로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피플스그룹(現) 부이사장
HR의 노동조합 형태인 피플스그룹이다.
제주는 2009년까지 취업, 대학진학 등의 이유로 인구유출 현상이 심각했었다고. 그런데 2010년부터 인구 증가세로 전환되었다. 2010년에는 순유입자 수가 437명, 2011년 2342명, 2012년 4873명, 2013년 7824명 등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4년에도 역시 제주 유입 인구는 고공행진 중이다. 일례로 서귀포시에서 주최하는 귀농 귀촌 교육의 경우 단 2시간 만에 마감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귀포시에서는 이례적으로 주말반까지 만들었지만 수요에 비하면 부족한 반 편성이었다.
도대체 제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제주의 매력과 신비가 갑자기 커진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벼락을 맞은 듯이 제주에 끌렸을까?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들의 사연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주도 안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해 기대와 우려의 시선 두 가지를 갖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모작’을 꿈꾸는 이들이 제주로 몰려들면서 제주도에 귀농 귀촌 바람이 부는 것은 제주도의 1차 산업 부흥을 의미한다. 농어촌 사회에서는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고 도시 이주자들이 몰고 오는 문화 이민의 바람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들이 제주도에 뿌리를 못 내리면서 일어나는 갈등도 있고 은퇴자금을 앞세워서 부동산을 사는 바람에 제주도 땅 값이 들썩이는 역효과도 일으키고 있다.
#올레길 벤치에서 터져 나온 아내의 소원, “여보, 부탁이 있어.”
‘달파란’(게스트하우스 & 카페)은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에 있다. '파란달’보다 ‘달파란’이 느낌이 있지 않은가? 달파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김태환(52)씨는 전직 국어 교사다. 지금은 교사직을 명예퇴직하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달파란 게스트하우스는 2012년 12월에 오픈한 곳으로, 3층짜리 게스트하우스 과 별채 카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에게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특이한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 위미리에 위치한 세천포구 바다를 봤을 때 그 느낌이 파란 달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고 설명한다.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시적이고 제주 정착기 역시 운명처럼 시적으로 시작된다.
“올레길 10코스를 걸으면서 송악산 중턱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어요. 참 좋다는 느낌을 갖고 한참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뭔데?
-우리, 여기서 살면 안 될까? 제주에 살고 싶어
“그 순간 제 입에서 너무 쉽게 그래. 라는 대답이 나왔어요. 제가 살면서 몇 가지 잘한 일들이 있는데, 이 순간이 바로 그 잘한 일이에요.”
정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지 궁금했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도 궁금했고.
“처음엔 그저 먹고 사는 정도만 수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다행히 먹고 살면서 대학교 다니는 애들 등록금 댈 정도는 버는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앞으로의 꿈이요? 시간이 지나면 규모를 줄여서 제 개성에 맞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저만의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사는 게 제 꿈입니다.”
선량하게 웃는 주인 부부의 얼굴을 보면 ‘제주의 마법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제주에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심지어는 대학생 자녀들을 서울에 두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그 것. 우리는 이것을 ‘제주홀릭’이라 부른다.
“지금도 저처럼 중년 분들이 많이 여행하러 내려와요. 우리 숙소에서 머물다 가는 분들 중에 진지하게 제주살이를 고민하는 분들도 많구요. 그분들에게 농담처럼 말해요. 올레길 자꾸 걷다 보면 저처럼 제주에 주저앉게 됩니다. 하구요.”
#가수 장필순이 추천한 그 곳의 그 남자,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요리하는 남자’는 애월읍 하귀리에 위치한 작은 요리 주점이다. 멋진 미소의 이영태(52) 씨는 ‘요리하는 남자’의 주인공이다. 생전 요리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외모지만 의외로 요리하는 모습이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평소에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현재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했다. 평촌에 살다가 제주에 온 것은 2011년 2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부장 직까지 하고 나면 그 이후엔 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숨막히는 일상생활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귀농을 꿈 꿨고 그렇게 귀농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단다.
“꼭 그렇게 깡촌으로 가야 해? 촌도 있고 도시 같은 분위기도 있는 제주는 어때?”
친구가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로 제주에 집을 구해서 내려오게 되었다. 늦둥이 딸이 중학교 입학할 때, 서둘러 떠나왔고 시내권 중학교보다는 시골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보냈다. 딸은 제주 생활에 잘 적응했고 순박한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행복한 중학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딸은 올해 제주외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단다. 온 가족이 제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래는 농사일을 해보려고 땅을 알아봤지만 희한하게도 지금의 가게 자리가 나왔을 때, 끌리듯이 그 날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50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피 속에 요리에 대한 애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시다시피 작은 가게잖아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죠. 만약에 돈 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장사를 했다면 지금처럼 즐겁게 살지는 못했을 거예요. 딱 지금이 좋아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요.” 그러면서 그는 어떤 요리를 파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했다.
“초임 직장 시절에 일본에 파견근무를 나가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그때 먹었었던 일본요리들을 제 손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곤 해요. 제가 맛있게 먹은 음식들은 흉내 내려고 노력하면 비슷한 맛이 나오더라구요.”
메뉴판에 있는 ‘간장새우’도 얼마 전 강남에 갔다가 맛있게 먹은 메뉴인데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바
로 만들어 봤단다. 반응이 썩 괜찮다며 씩 웃는 모습이 참 해맑게 느껴졌다. 얼마 전, 모 잡지에서 가수 장필순씨가 자신이 자주 다니는 명소들을 하나씩 나열하면서 소개했는데 그곳에 요리하는 남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물었더니 장필순씨가 처음 가게에 왔을 때는 장필순씨인지 몰랐다고 한다. 여러 명이 와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갔는데 얼마 뒤에 한사람이 찾아와서
-장필순씨, 안 왔어요? 하고 물었단다.
-장필순씨가 여길 왜 와요? 하자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지난번에 같이 왔잖아요. 했다는 거다.
그때부터 장필순씨는 후배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고 4,5개월 전부터는 이효리씨 부부도 데리고 왔단다. 아마도 행복한 주인장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술이 잘 들어가게 되는 것 아닐까?
‘달파란’의 주인장 김태환씨, ‘요리하는 남자’의 주인장 이영태씨 모두 공통점은 예전 직장보다 지금 제주에서 하는 일이 훨씬 만족스럽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충고 또한 같다. 여행지에서 봤던 제주는 잊으라고. 바다를 감상하고 잔디를 다듬고 하는 로망은 일상생활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삶이 된다고. 조선시대 윤선도의 는 실제 어부들의 삶과 비교하면 얼마나 황당한가? 실제 어부의 삶은 관념 속 어부의 삶과는 다르다. 한없이 한가롭고 유유자적할 수는 없다. 제주의 삶도 그렇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
귀농사모는 오는 23일부터 24일 그리고 30일 3일간 강원도 고성군 GRA 강원귀농아카데미에서 ‘내손으로 황토집짓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업무로 인해 평일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특별히 주말 반으로 편성됐다. 내손으로 황토집을 직접 지을 수 있는 실습중심의 프로그램으로서 소나무원목과 황토벽돌을 이용해 3평정도의 집을 직접 지으며 초보자나 여성도 참여 가능하다.
워크숍 기간동안 참가자들은 엔진톱을 이용해 나무를 다듬어 전통방식의 한옥형태로 목구조를 짓는 법을 배우게 된다. 원목을 직접 가공해 장부맞춤 방식과 기둥과 보(post&beam)의 목구조 방식, 자연방사능 물질인 라돈이 실내에 노출되지 않는 궁중구들 적용 방식 등에 대해 소개한다.
전 교육과정을 마친 참가자들은 황토농막 원두막 통나무집 황토벽돌 너와집을 직접 지을 수 있으며, 품앗이로 건축현장에거 경험을 쌓아 내 집도 짓고 생태건축의 전문가로서 창업하거나 전업 할 수 있다.
참가신청은 개강전일 오후 6시까지 참가비 입금을 통해 이뤄지며, 귀농사모 준회원 이상(귀농사모 카페회원이 아니면 참가 불가능)인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서거 39주기 추모 세미나가 열린다.
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는 고 장준하 선생의 서거 39주기를 맞아 그가 평소 꿈꿔온 대한민국 농업개발과 국토균형 개발의 뜻을 알아보고 오늘날의 귀농과 연계시키는 자리를 마련했다.
18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GRA 강원귀농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장준하 선생의 농업관과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해학 주민교회 목사의 ‘장준하 선생의 겨레혼과 농업혼’ 강의를 시작으로 ‘감옥에서 만난 장준하 선생’(귀농사모 대표 정성근), ‘북한 농업 및 통일 귀농’(이용우)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이 펼쳐진다.
세미나 이후에는 귀농사모 초보 회원들을 위한 ‘강원귀농창업 성공을 위한 특별 강연’도 이어진다. 아울러 귀농인 간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귀농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