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묵호’를 읽고 막걸리를 안 마실 수 없다는 선배의 SNS 글을 보고, 기억 속 묵호를 떠올렸다. 묵호등대마을의 비좁고 가파른 골목 끝에서 마주했던 검푸른 바다, 슬레이트집 담벼락에 그려진 소박한 벽화들, 묵호등대 턱밑 민박집에서 창문으로 감상했던 묵호의 밤 풍경을. 유난히 묵호에 끌리는 건, 왜일까. 좋은 건 이유가 없다더니 묵호가 그렇다.
논골담길 코스
묵호역▶ 대우칼국수▶ 묵호등대마을과 묵호등대▶ 묵호자연산활어센터▶ 묵호항▶ 묵호역
묵호가 한때는 말이야
올 3월부터 KTX가 동해 묵호역과 동해역에 정차한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2시간 30분쯤 뒤면 동해에 닿는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을 때 훌쩍 다녀올 수 있게 됐다.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아침, 묵호행 첫 열차를 탔다. 열차 타고 동해에 가는 것은 처음이다.
언제나처럼 동해 여행의 시작은 묵호등대마을. 묵호역에서 묵호등대마을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굳이 걷는 이유는 칼칼한 장칼국수를 먹고 싶어서다. 묵호역에서 묵호항 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한자리에서 60년 동안 장사한 장칼국수집이 나온다.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했다. 백발의 노부부가 주인이고, 딸 내외가 연로한 부모를 돕고 있다.
장칼국수는 칼국수에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 음식이다. 국물이 어죽처럼 걸쭉하다. 먹으면 속이 확 풀려 해장 칼국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주인장에게 맛 비결을 물으니 “멸치와 버섯으로 국물을 내는데, 고추장 맛이 가장 중요해요. 감자를 함께 넣고 끓여 구수하고요. 감자를 채 썰어 넣은 장칼국수는 흉내만 낸 거예요” 한다. 오래전 뱃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줬던 장칼국수가 요즘 사람들 입에도 맞는지,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장칼국수를 배불리 먹고, 묵호항과 활어센터를 지나 묵호등대마을로 향한다. 이 마을은 묵호등대가 세워진 산비탈에 형성돼 있다. 묵호항을 터전으로 살았던 이들의 거주지였다. 1936년 개항한 묵호항은 1940년대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해 1970년대까지 무연탄과 석탄, 수산물을 출하하는 항구로 전성기를 누렸다. 매일 밤 항구는 오징어잡이 배 불빛으로 대낮처럼 환했다고 한다. 길거리 개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온다.
묵호항에 일거리가 넘치자 전국에서 인부들이 몰려와 산비탈에 슬레이트집을 짓고 정착했다. 아랫마을에는 주로 뱃사람들이, 윗마을에는 명태 덕장 인부들이 살았다. 덕장 인부들은 묵호항에 들어온 명태를 지게에 올려 산꼭대기 덕장으로 날랐다. 여자들은 빨간 고무 대야에 생선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었다. 지게와 고무 대야에서 줄줄 흘러내린 물 때문에 흙길은 논길처럼 질척거렸다. 그래서 ‘논골’이라 불렸다. “마누라와 남편은 없어도 살지만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마을 사람들에게 장화는 생필품이었다.
묵호등대마을의 추억을 만나다
불꽃처럼 호황을 누렸던 묵호항은 1980년대 동해항이 개항하면서 쇠락했다. 젊은이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묵호를 떠났다. 묵호 인구가 절반 이상 줄었고 빈집도 늘었다. 현재 거주자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스러져가던 묵호등대마을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2010년 마을 골목길에 묵호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지면서부터다. 회색빛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이 벽화 골목을 ‘논골담길’이라 이름 붙였다. 논골담길 벽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묵호를 향한 애정을 꾹꾹 눌러 담은 절절한 연시이자 묵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추억의 사진첩이다. 비탈길을 오르며 묵호의 옛 사진첩을 넘겨본다. 고된 뱃일을 마친 일꾼들이 매일 들러 막걸리와 노가리 안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대폿집, 묵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오징어와 명태와 문어, 생필품이었던 장화, 코흘리개 아이들이 군침을 흘리며 넘겨다보았을 구멍가게, 명태 지게를 진 할아버지 그림에서 묵호의 청춘을 만난다.
벽화가 낡으면 새로 그린다. 그림이 바뀔 때마다 전망 좋은 언덕에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펜션도 들어선다. 가끔 옛 그림과 누군가 담벼락에 써놓은 시가 그립다. “이제는 보라색 조가비랑 내 아버지 젊은 시절 팔뚝처럼 철철 힘이 넘치던 물고기랑 먹빛 눈물점이 슬펐던 목포집 주모랑…. 열이, 철이 내 친구들과 내 누이도 모두 떠나고 기억의 눅눅한 막국수 같은 호수만 남았네. 기억하리라! 정든 墨湖!” 이 시 때문에 묵호를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논골담길은 비좁고 가파르다. 시멘트 바닥은 굴 껍데기처럼 거칠다. 대문 없는 슬레이트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문은 없어도 마당에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건조대 하나쯤은 두고 산다. 창호지를 바른 나무 창살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집도 있다. 이 문을 열면 바로 바다와 마주한다. 묵호등대마을의 집들은 허름해도 전망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전망 맛집 논골카페와 묵호태
논골담길 꼭대기에 있는 묵호등대의 전망대에 오르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랭이논 같은 산비탈에 빨강, 파랑, 노랑 양철지붕들이 갯바위의 따개비처럼 모여 있다. 멀리로는 두타산과 청옥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파견된 부사가 이곳 바다 물빛이 검고, 물새도 검다면서 마을 이름을 묵호라 지었다고 한다. 깊고 깊은 바다는 정말 칠흑 같다.
묵호등대 아래, 깎아지른 비탈을 ‘바람의 언덕’이라 부른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전망 데크도 들어서 있다. 전망 데크에 서면 묵호항과 묵호등대마을 전경이 손금 보듯 훤히 보인다. 시야가 탁 트여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하다. 카페의 폴딩 도어를 모두 열어젖히면 바다가 와락 품에 달려드는 것 같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그리운 이에게 엽서를 썼다. 카페 앞 느린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전달된다.
카페 앞 동해 특산물을 파는 매장에도 들러 묵호태를 샀다. 묵호태는 묵호에서 만드는 먹태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해발 70~80m 높이의 묵호 덕장에서 생산한 것이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리와 눈, 비를 맞히지 않고 전통 해풍 건조 방식으로 말린 명태다. 20여 일 동안 해풍으로만 말리기 때문에 바싹 마른 황태와 달리 속살이 부드럽다. 그냥 먹어도 맛있다.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이 간다.
묵호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활어센터와 묵호항을 다시 들렀다. 오전과 달리 손님들로 붐볐다. 이곳 활어센터는 자연산 수산물만 취급한다. 구입한 횟감은 활어판매센터에서 회로 썰어준다. 인근 식당에서 초장과 채소 등 재료값만 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묵호항 부두에서 갈매기 떼가 요란하게 떠들기에 가보니, 아침에 조업 나간 배가 막 항구에 들어왔다. 뱃사람들이 생선이 가득 담긴 상자를 부두 바닥에 쌓아 놓으면, 상인들이 웅성거리며 상자 주변으로 하나둘 모인다. 곧 경매가 시작될 분위기다. 활기 띤 항구 풍경에 왠지 안도감이 든다. 시장과 항구는 시끌벅적해야 제맛 아닌가.
◇ 주변 명소 & 맛집 ◇
천곡황금박쥐동굴
국내에 하나뿐인, 도심에 있는 동굴이다. 4~5억 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총길이는 1400m, 관람 구역은 약 700m다. 베이컨, 오백나한상, 마리아상, 샹들리에 모양의 다양한 종유석을 볼 수 있다. 동굴 전시관에 황금박쥐를 테마로 한 동굴 탐험 VR 체험 시설을 갖췄다. 동해시 동굴로 50,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어른 4000원, 문의: 033-532-7303
무릉계곡
두타산과 청옥산 자락 골짜기의 계곡물이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반석 위로 힘차게 흘러내린다. 반석의 크기는 무려 4958m²(1500여 평)에 이른다. 반석에 빼곡히 새겨진 이름과 글귀들이 볼 만하다. 삼화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다. 계곡 입구에서 쌍폭포와 용추폭포까지 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가벼운 산책코스다. 좌우 두 개의 폭포가 하나의 소로 떨어지는 쌍폭포가 장관이다. 동해시 삼화로 584, 문의: 033-539-3700
장칼국수와 해산물 맛집
동해 원조 장칼국수집은 대우칼국수다. 인근 오뚜기칼국수도 유명하다. 묵호항 주변 동백식당의 해물탕과 해물찜, 부흥횟집의 물회, 물곰식당의 곰치국도 오래된 맛집 메뉴다. 까막바위 인근 어달리 회타운에서는 오부자횟집의 냄비물회, 동해바다곰치국의 생선구이가 맛있다.
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안락사를 다룬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 권투 코치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키우던 선수 매기가 경기 중 부상을 해 절망적 상황에 이르자 산소호흡기를 떼고 주사약을 투입해 안락사를 돕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딸처럼 생각했던 매기의 고통을 멈추게 하고 싶다는 생각과 윤리적 판단 사이에서 생기는 프랭크의 갈등에 감정이 이입돼 가슴이 저렸다. ‘당신은 물러서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신부님의 말에 프랭크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더러 도와 달래요.”
라고 고개를 떨군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매기에게 하나님은 너무 멀리 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당장 고통을 멈춰줄 특단의 조치, 안락사였다.
안락사, 회복하기 어려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죽음을 앞당기기 약물을 투여하거나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등의 행동이 수반되어 적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등 안락사를 선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도 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 중 스위스는 외국인에게까지 이를 허용하고 있어서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이 스위스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몇 해 전 호주의 104세 노교수가 스위스에서 안락사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아버지는 병상에 있을 때 안락사를 한 노교수를 진심으로 부러워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2018년 연명 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는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가 질환의 유무를 떠나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하는 것이라면,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만 선택할 수 있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만난 말기 암 환자들의 소원은 고통 없는 곳으로 빨리 가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조금만 더 곁에 있기를 바라지만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모르핀을 맞아도 통증에는 답이 없었다. 그들의 소원은 절실했다.
만성폐쇄성 폐 질환에 말기 암까지 더해지니 아버지도 목숨을 연장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 알고 계셨다. 일체의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면서 빨리 가게 하는 게 효도라고 강조했다. 병의 진행에 죽음을 맡기기보다는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길 원하셨다.
이럴 때 사전에 연명 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다면 좋았겠지만 없어도 괜찮았다. 말기 환자는 연명 의료 중단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연명 의료계획서로 남겨 두면 이를 근거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미처 연명 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못했을 때는 환자 가족 2인의 사인으로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도 있다.
아버지는 연명 의료에 대한 거부 의사가 확실했으나 연명 의료계획서에 사인을 하기 전에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기계를 달고 처치실로 옮겼다. 기계에서 버저가 울리면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밤에 연명 치료 여부를 급하게 결정해야 해서 아들과 딸이 대신 사인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존엄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 행위는 더는 없었으니 아버지의 불필요한 고통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 및 그릇 협찬 레스토랑 오세득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족 나들이가 한창이겠지만, 올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바깥 활동이 어려워졌다. 아쉬운 마음도 달래고 소풍 분위기도 낼 겸 오랜만에 김밥을 말아보면 어떨까? 평범한 김밥을 벗어나고 싶다면 영양 만점 달걀을 듬뿍 넣은 ‘달걀 김밥’을 추천한다. 여기에 김밥 짝꿍인 유부초밥을 대신해 ‘달걀 유부찜’과 반찬용 ‘달걀 감자 장조림’을 곁들여 든든한 한 끼를 즐겨보자.
달걀 김밥
재료 달걀, 당근, 시금치, 파프리카(홍), 김밥용 김, 참기름, 깨, 소금
1. 당근 1/2개와 파프리카 1/3개를 0.5cm 두께로 채 썰어둔 뒤, 올리브유 1작은술을 두른 팬에 각각 중불로 3분간 볶는다.
2. 소금 1/2작은술을 넣은 끓는 물에 시금치 1/3다발을 3분 정도 삶은 뒤 찬물로 식히고, 참기름 1/2큰술과 깨를 넣고 버무린다.
3. 달걀 5개를 볼에 담고 소금 1/2작은술을 넣고 휘저어 풀어둔다.
4. 올리브유 1작은술을 두른 팬에 달걀을 넣고 골고루 저어 스크램블을 만들어둔다.
5. 김 위에 달걀 스크램블을 밥처럼 깔아주고 그 위에 당근, 파프리카, 시금치를 넣어 돌돌 말아 완성한다.
달걀 유부찜
재료 달걀, 유부, 멸치, 다시마, 건새우, 진간장
1. 달걀 4개를 8분 정도 끓여 반숙으로 삶고, 껍질을 벗겨둔다.
2. 유부를 끓는 물에 30초 정도 데쳐 기름기를 빼주고, 물기를 짠 다음 한 면을 살짝 잘라 주머니 모양을 만든다.
3. 반숙 달걀을 유부 안에 채워 넣은 뒤 입구를 실로 묶는다.
4. 물 500㎖에 멸치, 다시마, 건새우를 넣고 끓이다 진간장 1큰술로 간을 하고, 유부 주머니를 넣어 3~4분 정도 더 익힌다.
5. 유부 주머니를 꺼내 1/2 크기로 자른 다음 그릇에 올려 마무리한다.
달걀 감자 장조림
재료 달걀, 알감자, 청양고추, 진간장, 국간장, 식초, 올리고당
1. 달걀 5개를 소금과 식초를 넣은 끓는 물에 13분 정도 삶은 뒤 껍질을 벗겨둔다.
2. 알감자 5개를 껍질을 벗겨 준비한다.
3. 청양고추 2개를 깨끗이 씻어 손질한 뒤 어슷썰기해둔다.
4. 물 300㎖에 진간장 4큰술, 국간장 2큰술, 올리고당 1큰술을 넣고 5분 정도 강불에 끓인다.
5. 준비한 달걀, 알감자, 청양고추를 4에 넣고 15분 정도 중불에서 졸인 뒤 그릇에 낸다.
6. 기호에 따라 완성된 장조림에 통깨를 첨가해도 좋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채소(菜蔬)는 ‘산채’와 ‘야채’를 모두 아우른다. 산나물, 들나물을 모두 아우르면 곧 채소다. 소채라고도 한다.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다.
재미있는 것은 산채(山菜)다. 우리만 널리 쓰는 표현이다. 일본, 중국은 산채라는 표현을 널리,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 중국에도 산채는 있다. 그들은 산채를 즐겨 먹지 않는다. 중국은 버섯 등을 제외하고 거의 먹지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 버섯과 몇 가지 산나물을 먹는다.
한국은 일상적으로 산나물을 먹는다. 곤드레나물로 비빔밥을 만들고 취나물은 곰취, 참취, 수리취, 단풍취, 미역취 등으로 가른다. 이름도 외우지 못할 숱한 산나물을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산마늘, 명이나물이 대유행이었던 적도 있다. 웬만한 고깃집에서는 아직도 명이나물절임을 상 위에내놓는다.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니 수입도 많이 한다.
제사를 지낼 때 고사리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물, 산나물을 사용하는 나라도 우리뿐이다.
산나물은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문화
한국일보 기자였던 故홍승면(1927 ~1983년) 씨는 “산나물 문화는 우리 핏속에 녹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만주, 간도에는 여러 민족이 살았다. 그중 한국인을 찾아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른 봄 바구니를 끼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처녀, 아녀자들이었다.”(‘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삼우반, 2003년)
봄에 산나물을 채취하는 이들은 한국인이 유일했다. 우리는 냉이, 달래, 쑥을 캐며 봄을 맞았다. 흔히 산나물을 가난, 궁핍함,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상징으로 여긴다. 틀렸다. 당시 간도, 만주 일대에는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다. 한국,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원주인인 중국인, 중앙아시아인들, 러시아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먹고살기 어려워 먼 곳까지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가난했다. 살림살이는 그저 그만했을 것이다. 궁핍한 살림살이다. 유독 한국인들만 더 가난했다고 이야기할 근거는 없다. 그중 한국인들만 봄철이면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산나물은 초근목피의 상징이 아니다. 산나물은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문화 중 하나다.
오래전에는 중국, 일본인들도 산나물을 먹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중국, 일본의 산나물 문화는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버섯을, 일본인들은 들나물을 주로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산나물 중 ‘고사리’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사육신 성삼문은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죽기 전 그는 시조를 남긴다. 제목은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다. 소재는 중국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굶어 죽은 백이, 숙제의 이야기다. 고사리를 캐 먹었다고 ‘채미가’(採薇歌)라고도 한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
이제(夷齊)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은나라 고죽군의 아들이었던 두 사람은 주 무왕이 은 주왕을 정벌하는 것을 말린다. 무왕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은나라를 정벌하자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곧은 충절과 청렴의 상징이다.
백이, 숙제가 먹은 것은 ‘산나물 고사리’가 아니라 한낱 ‘풀’이었을 것이다. 고사리를 먹을 것으로 여겼다면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고사리를 상식(常食)하지 않는다. ‘고사리를 먹었다’와 ‘굶었다’가 같은 뜻이다. 고사리는 먹을 것이 아니었다.
성삼문은 한글 창제 당시 북경을 갔다. 이때 이제의 묘를 지난다. 이제의 묘를 보고, 남긴 시가 있다. 백이, 숙제를 기리는 글이다. 내용은 ‘수양산 바라보며’와 비슷하다.
그때 말 머리 부여잡고 ‘그르다’ 했음은/대의가 당당하여 일월처럼 빛났네/초목(草木) 역시 주나라 땅에서 자란 것인데/부끄러워라 그대, 수양산 고사리는 어찌 먹었던가
재미있는 것은 ‘초목’(草木)이다. 여기서는 먼저 ‘초목’이라고 하고, 뒤에서 ‘수양산 고사리’를 먹었다고 했다.
왜 한반도에만 ‘산나물 문화’가 전승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이제’와는 달리 이제는 고사리를 널리 먹지 않는다. 고사리는 생산하되,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한다. 일부 먹는 곳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 삼성이다.
우리는 고사리뿐만 아니라 모든 산나물을 귀히 여겼다. 농암 김창협의 시다(농암집 제6권). 제목은 ‘저녁에 읍내에 묵으며 숭아의 시에 차운하다’이다.
현령께서 가져오신 술을 따르며/봄 시내 띄운 배에 올라 노닐 제/날 위해 내온 밥상 진기한 음식/때 일러 신선한 산나물일레
배경은 영평현(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이다. 현령이 뱃놀이에 상을 내놓는다. 진기한 음식=일찍 나온 산나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포천 주변에는 산이 깊다. 그 산에서 마련한 산나물이었을 것이다. 가난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산나물을 진기하게 여겼다.
농암은 명문세가 출신의 벼슬아치다. 굳이 ‘가난한 산채’를 두고 진기한 음식이라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벼슬아치들도 산나물을 귀히 여겼다.
산나물은 임금도 귀하게 여겼다
성군 세종대왕(1397~1450)도 여러 차례 산나물을 이야기한다. 세종 25년 1월 14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제목은 ‘온천에 가기로 결정하고 민폐를 끼치지 말 것을 충청 감사에게 이르다’이다.
비만에 운동 부족, 과로 등 당뇨병 발병 요건을 다 갖추었던 세종대왕은 말년에 당뇨로 인한 실명도 겪었다. 치료차 온양온천에 여러 차례 갔고, 그때마다 지역 주민들이 고생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대개 남의 고생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중략) 대신들이 심히 청하므로 마지못해 억지로 좇겠노라. (중략) 내 민폐를 절대로 없게 하여 (중략) 충청 감사에게 이미 마른반찬을 준비한 것 외는, 비록 산나물이든 들나물이든 쉽게 구할 물건일지라도 올리지 말게 하라.” 하였다.
산나물은, 가난하여 마지못해 먹었던 식재료가 아니었다.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국왕도 귀하게 여겼다.
‘산나물=가난의 상징’은 일제강점기에 비롯되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산나물이 곧 풀이었다. 풀은 초근목피다. 산나물을 널리 먹지 않는 일본인들이 보기엔 한국인들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찾아서 먹는 풀뿌리, 나무껍질이었다. 왕과 관리들은 고기를 먹는다. 일반 서민들은 먹지 못하는 것, 초근목피로 목숨을 잇는다. “자기들만 배를 불리는 썩어빠진 조선의 고관대작 대신, 일본 제국이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전형적인 일제 식민사관이다.
산나물의 계절이다. 냉이, 달래, 명이나물 등만 이야기하는 우리 시대가 부끄럽다. 우리 선조들은 제사상에 미나리, 부추, 당귀 등 숱한 산나물, 들나물을 빠짐없이 올렸다. 산나물, 들나물은 한반도의 식문화가 풍성했음을 보여준다. 초근목피라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 및 그릇 협찬 레스토랑 오세득
식감이 부드럽고 향이 강하지 않은 시금치는 한식은 물론 양식에도 널리 쓰이는 식재료다. 비타민 A를 비롯한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해 빈혈 예방에 좋고,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알파리포산을 함유해 당뇨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에겐 나물이나 된장국 등의 요리가 친숙하지만, 서양 요리에 접목하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따사로운 봄날, 영양 가득 싱싱한 시금치 요리로 기분 전환 어떨까?
시금치 크림 파스타
재료 시금치, 미니 파프리카, 파스타면, 생크림, 소금, 후추, 올리브유
1. 시금치 3다발과 미니 파프리카 2개를 깨끗이 손질한다.
2. 시금치는 잘게 썰어 준비하고, 미니 파프리카는 1/4 크기로 썰어둔다.
3. 팬에 올리브유 1작은술을 두르고 미니 파프리카와 소금, 후추 각 1꼬집을 넣은 뒤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4. 볶은 재료 위에 생크림 200㎖와 잘게 썬 시금치를 넣고 5분 정도 중불에 끓인다.
5. 파스타면 1인분을 끓는 물에 8분 정도 익혀둔다.
6. 준비한 파스타면과 소스를 섞어주면 완성.
시금치 감자 수프
재료 시금치, 감자, 우유, 소금, 후추, 올리브유
1. 감자 1/2개를 깨끗이 손질해 채 썰어 준비한다.
2. 올리브유 1작은술을 두른 팬에 감자를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3. 팬에 물 150㎖를 붓고 손질한 시금치 2다발을 3분 정도 끓인 뒤 볶은 감자와 섞어 핸드블렌더로 곱게 갈아준다. 믹서로 갈아도 된다.
4. 냄비에 우유 150㎖와 갈아놓은 재료를 넣고 중불에 5분간 저으며 끓인다.
5. 약불로 바꾸고 기호에 따라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뒤 적당한 농도가 되면 마무리한다.
6. 수프를 끓일 때 체더치즈를 넣으면 더욱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시금치 라비올리
재료 시금치, 두부, 방울토마토, 양송이버섯, 달걀, 리코타치즈, 그라노파다노치즈, 만두피, 올리브유, 버터, 소금, 후추
1. 양송이버섯 2개, 두부 1/2모, 시금치 1/2다발을 곱게 다진다.
2. 팬에 올리브유를 1작은술 두르고 다진 재료들을 중불에 3분 정도 볶은 뒤 식힌다.
3. 깨끗이 손질한 시금치 한 다발을 물 10㎖를 넣어 곱게 갈아준다.
4. 볶아둔 재료에 리코타치즈 3큰술, 그라노파다노치즈 1/2큰술, 달걀 1개를 섞고 소금 3꼬집, 후추 2꼬집을 넣어 소를 만든다.
5. 만두피에 소를 넣고 라비올리를 빚은 뒤 끓는 물에 넣고 3분간 강불에 삶는다.
6. 팬에 버터 3큰술을 녹여 삶은 라비올리를 넣고 방울토마토, 갈아놓은 시금치를 부어 30초 정도 졸여 완성한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협찬 레스토랑 오세득 그릇 협찬 덴비 코리아
브로콜리는 비타민 C,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물질과 더불어 다량의 칼슘과 칼륨을 함유해 암,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질환 예방에 좋은 슈퍼푸드다. 여러모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막상 브로콜리로 요리를 하면 데치거나 주스,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 정도에 그치게 된다. 맛과 향이 튀지 않고, 익힘 정도에 따라 원하는 식감을 맛볼 수 있어 브로콜리는 다양한 요리에 활용 가능한 식재료다. 건강에 좋은 브로콜리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레시피를 알아보자.
브로콜리 리소토
재료 브로콜리, 아보카도, 밥, 우유, 체더치즈, 만가닥버섯, 표고버섯, 당근
1. 브로콜리 1/2개를 손질 후 3cm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2.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30초간 데친다.
3. 아보카도 1/4개와 데친 브로콜리를 믹서에 넣어 갈아준다.
4. 표고버섯과 만가닥버섯 반 줌을 손질하고, 당근 1/4개를 사각썰기해둔다.
5. 우유 80㎖에 준비한 재료들과 체더치즈 1장을 넣은 뒤 중불에 5분 정도 끓인다.
6. 끓는 재료에 밥 80g을 넣어 중불에 4~5분간 저어가며 졸인다.
브로콜리 두부 된장무침
재료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두부, 된장, 소금, 참기름, 통깨
1. 브로콜리 1/4개와 콜리플라워 1/4개를 먹기 좋게 썰어 손질한다.
2.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친 뒤 건져내 물기를 빼준다.
3. 두부를 으깨어 헝겊에 싼 다음 물기를 짠다.
4. 데친 브로콜리와 으깬 두부를 그릇에 담고, 된장 1큰술, 참기름 1/2큰술, 소금 1/2큰술을 넣어 버무린다.
5. 기호에 따라 통깨를 첨가하거나, 고소한 맛을 원한다면 된장 1, 마요네즈 2, 올리고당 1의 비율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도 좋다.
브로콜리 비트 피클
재료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비트, 오이, 양상추, 미니파프리카, 발효초, 식초, 소금, 통후추
1.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 1/4개를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친 뒤 찬물에 넣어 식힌다.
2. 세척한 비트, 오이, 당근 각각 1/5개와 양상추 1/8개를 0.5cm 두께로 깍뚝썰기하고, 미니파프리카는 4등분해 1의 재료와 함께 유리병에 넣어둔다.
3. 물 2컵, 발효초 2컵, 식초 1/2컵, 소금 3큰술, 통후추 15알을 넣어 중불에 15분 끓인 뒤 식혀 촛물을 만든다.
4. 재료가 담긴 유리병에 촛물을 붓고 3시간 이상 절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최연 한국도자재단 대표가 후배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1979년 늦가을부터 1980년 늦봄까지 궁정동에서, 한남동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세 번의 총질로 한국의 현대사는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고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여러 사람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제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는 상대는 그 암울했던 시기에 어둠을 뚫고 이 땅에 새로운 대동세상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어 저세상으로 먼저 간 후배 여상민(가명)입니다. 해서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아니라 받을 사람이 없는 수취인 불명의 ‘쓰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굳이 이 세상에 없는 후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고자 했던’ 엄혹한 시절에 목적의 당위가 과정의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일정 부분 당연시했던 분위기에 편승해 좀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강하게 몰아칠 수밖에 없었던 회한의 끝자락을 붙잡고 쓰는 참회록이기 때문입니다.
상민아!
네가 먼저 가 있는 하늘나라는 고통이 없느냐? 무엇이 그리 급해 꽃다운 젊음을 버리고 황망히 가버렸단 말이냐! 네가 우리들 곁을 떠난 날이 무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지났구나. “우리가 이렇게 살 수가 없다”고 비분강개하며 돌아선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날 이후 한동안 너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마침내 나타난 너는 어느 낯선 동네 골목 깊숙이 있는 자그마한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누워 있었단다.
그해 겨울로부터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마 우리는 만났을 게다. 12·12 사태로 군대를 완전히 장악한 신군부가 더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정권까지 탈취하려는 엄청난 음모를 꾸미던 그 시기였을 게다.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너와, 군대에서 제대한 내가 뜻을 같이하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자취방과 여관 등지를 돌며 신군부의 동향과 향후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열띤 토론으로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지 않았더냐.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았던 군사독재 정권이 내분으로 18년 만에 끝장나고 우리는 그렇게도 갈망하던 민주화를 이루려는 바람과 열정으로 학내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며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돌다가 마침내 서울역 앞 광장에 모이질 않았더냐.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즈음에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서울역 앞에 모인 시위대에게 신군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일단 각 대학으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자는 결정에 따라 이른바 ‘서울역 앞 회군’이 감행되었고 이는 신군부에 새로운 빌미를 주어 우리가 그렇게도 우려했던 예상 시나리오가 남도의 빛고을에서 자행되었고 또다시 세상은 꽁꽁 얼어붙어 동토의 겨울공화국이 되어버렸었지.
살벌한 시기임에도 우리들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더욱 가열한 투쟁으로 끝없는 미로를 헤매면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지. 그렇게 젊음이 피폐해질 무렵 너와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에서 의견이 갈려 고성이 오가고 나는 이성이 마비된 듯 너를 윽박지르고 우리의 관계는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야 말았구나.
너의 결연한 주장에 나는 그런 모험주의적 방법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강변하였던 것 같구나. 싸움의 방법에 옳고 그름이 있겠냐마는 그때만 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였구나. 특히나 선배인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 회한과 자괴감으로 켜켜이 쌓여 오랜 시간 나를 짓눌러 왔는데 모든 것 끝난 지금에 와서야 참회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구나.
너는 그렇게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에 돌아 왔지만 너를 향한 우리들의 사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그해 여름. 우리들의 청춘은 더 내려놓을 것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 절박한 심정으로 끝을 향해 내닫고 있었고 마침내 지친 영혼을 달래줄 그 섬에 정박하지 않았더냐.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얼마나 굶주리고 무엇이 그리도 헛헛했는지 흉측한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고 부질없는 삼킴질을 하염없이 해대고, 쉼 없이 몰아치는 바람은 태고의 먼 행성으로부터 마침내 이곳에 와 닿아 그 걸림 없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외로움을 더욱 깊게 하지 않았더냐. 통영 언덕배기와 소매물도 억새풀 사이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영혼을 두드리던 파도와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장엄한 장군죽비가 되어 어느 섬 어느 골짜기에서 방황하는 젊은 영혼을 일깨우고 있을 게다.
상민아!
나는 오늘 보내는 참회록을 끝으로 40여 년 동안 마음 한 귀퉁이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너에 대한 회한을 해원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너도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편히 쉬렴.
최연 한국도자재단 대표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청춘을 불살랐고, 한때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을 때 인문학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저서로 ‘이야기가 있는 서울 길’, ‘산 이야기’,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 등이 있다.
조선 원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원림 양옆으로는 너르디너른 다원(茶園)들이 펼쳐져 풍경에 이색을 보탠다. 월출산 등산과 연계해 답사하기에도 적격이며, 원림 지척엔 천년고찰 무위사가 있다.
옛 선비들에게 자연은 배워야 할 경전이거나 미더운 연인이었다. 벼슬을 살며 지지고 볶을 때에도 늘 산수(山水)의 뜻을 되새겨 경책으로 삼았다. 언젠간 나 산야에 묻힐래! 그런 기약도 그들의 생필품에 가까웠다. 산수가 멀리 있더라도 그들의 머리와 감관에는 자연이 들어 있었다. 그래 늙어 흰 터럭이 갓 아래로 삐져나올 즈음엔 흔히 낙향을 해 자연을 벗 삼았다. 못 말릴 산야의 기질, 그게 옛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어제에서 면면히 전승되어 내일로 승계될 산천 애호의 민간 유전자. 우리의 뿌리에는 그런 뜨거운 게 들어 있다.
산림 선비의 살림살이에도 경향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청빈해 몸에 걸친 것만으로도 자족했다. 토방 하나에 뜯어먹을 고사리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름깨나 날린 이들은 경관을 골라 원림(園林)을 지어 이름값을 치렀다. 전국 곳곳에 그런 원림들이 의외로 많이 남아 있다. 강진 백운동(白雲洞) 원림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원림’으로 꼽힌다. 월출산 옥판봉을 뒷배로 삼은 이 아름다운 원림은 조선시대 중기의 선비 이담로가 꾸렸다.
자연에 결례가 되지 않게끔 가급적 인위를 자제해 만든 게 원림이다. 집과 뜰, 누정, 연못 등속을 조영해 담장을 두른 내원과, 굳이 과욕을 부릴 거 없이 그저 자연숲 상태로 가만히 놔둔 외원으로 이루어진다. 백운동 원림은 그 전형이다. 슬그머니 자연에 편승해 유유자적 생의 하오를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꿈이 가시화된 공간의 표본이다.
쾌청한 한낮이다. 그러나 백운동 원림 숲 안은 어스레하다. 빼곡 들어찬 갖가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다. 한줌 햇살이라도 더 움켜쥐기 위해 까치발로 지내는 어린 나무들은 진땀을 빼리라. 저희끼리 마주보고 선 큰 나무들은 유년의 풍상을 얘기하려나. 나무들은 죽마고우로 자라 서로의 속사정을 잘 안다. 대나무는 곁에 있는 비자나무네의 살림 형편에 환하다. 비자나무는 옆집 소나무와 은근히 사귀는 사이일 수 있다. 숲속에 이미 파다하게 소문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백꽃 개화 뉴스에 묻혀 입들을 닫았나? 숲이 고요하다. 동백나무들만 부산히 붉은 물감을 툭툭 찍어 제 몸에 칠한다. 이럴 줄 몰랐다. 여느 해보다 이르게 만개한 동백꽃을 볼 줄을.
동백꽃이 아니더라도 “이럴 줄 몰랐어!”라고 찬탄할 수밖에 없는 풍치의 연쇄다. 양껏 품을 벌려주는 대숲 사이 오솔길은 다정해 누이의 살가운 눈짓을 생각나게 한다. 예사로이 작은 숲이지만 능선과 계곡이 감각적으로 얼크러져 깊은 맛을 풍긴다. 계곡에 늘어선 나무들은 웅덩이의 명경지수에 홀렸구나. 물속으로 투신한 제 그림자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니.
내원의 별서(別墅) 경관도 어엿하다. 초당과 정자, 담과 수로 등 근래에 복원한 게 많지만 원형을 충실히 재현해냈다. 지난 2001년, 백운동 원림의 전모를 알게 하는 ‘백운첩’(白雲帖)이 발견돼 이를 복원의 근거로 취한 덕분이다. ‘백운첩’은 강진 만덕산의 다산초당에서 유배를 살았던 정약용이 백운동 원림의 승경을 둘러본 뒤 흥에 겨워 만든 서첩이다.
귀양살이란 고독을 벗 삼을 수밖에 없는 것. 가끔은 산에라도 올라 갈증과 울화를 달래야 했을 게다. 어느 가을날 다산은 해남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함께 월출산을 등산했다. 하산을 해서는 백운동 원림에서 하룻밤 묵으며 풍정을 누렸다. 이후에도 찾아가 재차 정취를 즐기고 풍색을 눈에 쏙 넣었을 테지. 이렇게 되면 뭐라도 써서 헌정하게 마련이다. ‘백운동 12승사(勝事)’라, 이는 백운동 원림 12경(景)을 연작시로 읊은 다산의 선물이다. 그러고서도 아쉬웠던 걸까. 초의에게 백운동 실경을 그리게 해 ‘백운동도’(白雲洞圖)를 얻었다. 이 둘을 집어넣은 게 ‘백운첩’이다.
백운동 원림 답사의 즐거움은 ‘백운첩’으로 용케 남아 전해진 다산 시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 한결 특별하다. 원림에 비치된 초의의 그림을 보며 과거의 백운동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 떠나 여기에서 다산과 초의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숲을 흔드는 솔바람처럼.
원림과 작별하는 길목엔 붉은 땅거죽. 떨어진 동백꽃들 나뒹굴며 선혈을 흘렸다. 어떻게 살아왔기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낙화했기에 저토록 처연한가. 아서라, 동백에게 물을 일 아니다. 꽃 피어 절정의 일순에 서럽게 저무는 게 동백의 일이기만 하던가.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 및 그릇 협찬 이종임 한식연구원
건강한 한 해를 다짐하며 채식이나 생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려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다양한 채소를 섭취할 수 있는 샐러드나 쌈밥, 과채주스 등이 알맞다. 특히 베타카로틴, 비타민, 섬유질, 칼슘, 등이 풍부하고 항암과 항산화 효능이 뛰어난 ‘케일’(kale)은 어느 요리에나 부담 없이 활용하기 좋은 건강 식재료다. 잎이 작고 여린 것은 주로 샐러드처럼 생(生)으로 먹고, 잎이 크고 대가 굵은 것은 갈아서 주스로 마시거나 살짝 데쳐 즐기면 된다. 단, 너무 오래 익히면 유익한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케일 쌈밥
재료 케일, 밥, 깨소금, 참기름
1. 케일 10g을 깨끗이 씻은 뒤 찜기에 넣어 5분 정도 찐다.
2. 케일을 찌는 동안 밥 100g에 깨소금 1/2작은술, 참기름 1큰술을 넣어 간을 한다.
3. 찐 케일을 꺼내 뒷면이 앞으로 보이게 놓고 줄기를 접어둔다.
4. 간이 된 밥을 1큰술씩 덜어 준비한 케일 위에 올린 뒤 둥글게 말아준다.
5.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서 쌈을 만들어 분량만큼 완성한다.
6. 기호에 따라 쌈장 등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케일 샐러드
재료 케일, 방울토마토, 미니사과, 메추리알, 아몬드, 뮤즐리, 민트, 올리브오일, 사과식초
1. 세척한 케일 줄기를 제거한 뒤 3cm 크기로 잘라주고, 토마토와 미니사과도 먹기 좋게 조각을 내둔다.
2. 메추리알 4알을 끓는 물에 8분 정도 익힌 뒤 찬물에 담가 식히고, 껍질을 까 반으로 잘라둔다.
3. 그릇에 준비한 재료를 올린 뒤 아몬드 3g, 뮤즐리(원하는 견과류나 시리얼 등으로 대체 가능) 2g, 민트 2g 정도를 뿌린다.
4. 완성된 샐러드에 사과식초 2큰술, 올리브오일 2큰술을 둘러 완성한다.
케일 딸기 스무디
재료 케일, 딸기, 꿀
1. 케일 6g을 세척해 줄기를 제거한다.
2. 딸기 30g을 깨끗이 씻어 꼭지를 떼어낸 뒤 1/2조각 내둔다.
3. 손질한 재료들을 믹서에 넣고 꿀 1½큰술을 첨가해 갈아준다.
4. 좀 더 시원하게 즐기려면 얼음을 소량(5개 이하) 넣어 갈고, 기호에 따라 플레인요거트 등을 타서 마셔도 좋다.
✽사진처럼 연출하고 싶다면 재료를 각각 따로 갈아준 뒤 딸기, 케일 순으로 담으면 된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 및 그릇 협찬 이종임 한식연구원
경자년 새해 다가오는 설날, 아무래도 떡국이 생각난다. 평소 먹던 떡국 상차림을 색다르게 즐겨보고 싶다면 ‘카카오닙스’(cacao nibs)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카카오닙스는 껍질을 벗긴 카카오 열매를 건조, 발효시킨 알맹이다. 카테킨과 폴리페놀,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노화 방지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특유의 쌉쌀하고 고소한 향미가 있어 견과류처럼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요리나 디저트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단, 카페인 성분도 있으니, 이 점에 유의해 섭취한다(5g 내외 권장).
카카오닙스 떡국
재료 카카오닙스, 떡국 떡, 야채만두, 말린 다시마·밴댕이(디포리)·새우·멸치, 간장, 소금
1. 떡국 떡 300g을 물에 20분 정도 불려둔다.
2. 찬물 700㎖에 카카오닙스 1/2큰술, 다시마 2조각, 밴댕이 1개, 새우 1개, 멸치 3개를 거름망에 넣고 20분가량 중불에 우린다.
3. 거름망을 뺀 뒤 육수에 야채만두와 물에 불린 떡을 넣어 끓인다.
4. 간장 1큰술, 소금 1작은술을 넣어 간을 맞춘다.
5. 중약불로 15분 정도 더 끓여 재료를 익힌다.
6. 완성된 떡국을 그릇에 옮겨 담고 기호에 따라 카카오닙스 등 고명을 얹어 완성한다.
카카오닙스 과일 요구르트
재료 카카오닙스, 미니사과·바나나·방울토마토·샤인머스캣 등 원하는 과일, 호두, 뮤즐리(시리얼), 꿀, 요구르트
1. 바나나 1개를 한입 크기로 어슷썰기한다.
2. 미니 사과 1개를 세척 후 사등분하고, 씨를 제거해 준비해둔다.
3. 샤인머스캣 3알, 방울토마토 2알을 깨끗이 씻어 반으로 자른다.
4. 그 밖에 과일들도 먹기 좋게 손질해둔다.
5. 그릇에 준비한 과일을 골고루 담고 카카오닙스 1큰술, 뮤즐리 1큰술, 호두, 꿀을 뿌린 뒤 한쪽에 요구르트를 함께 곁들여 낸다.
카카오닙스 모둠 버섯구이
재료 카카오닙스,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죽순, 미니 파프리카, 당근, 허브
1. 표고버섯 3개와 새송이버섯 3개, 빨강·노랑 미니 파프리카 각 1개, 당근 1/3개를 손질해둔다.
2. 버섯과 파프리카는 먹기 좋은 크기로 등분하고, 당근은 0.3cm 두께로 얇게 썰어둔다.
3. 팬을 달군 뒤 기름을 두르지 않고 강불에 버섯을 앞뒤로 30초씩 구운 뒤 중불로 바꾼다.
4. 나머지 재료를 넣어 3분 정도 굽다가 카카오닙스 1작은술을 뿌리고 1분가량 더 익힌다.
5. 구운 재료를 접시에 담고 민트 등 허브로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