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보내는 ‘참회록’

기사입력 2020-03-03 09:04 기사수정 2020-03-03 09:04

부치지 못한 편지


(윤민철 작가)
(윤민철 작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최연 한국도자재단 대표가 후배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1979년 늦가을부터 1980년 늦봄까지 궁정동에서, 한남동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세 번의 총질로 한국의 현대사는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고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여러 사람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제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는 상대는 그 암울했던 시기에 어둠을 뚫고 이 땅에 새로운 대동세상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어 저세상으로 먼저 간 후배 여상민(가명)입니다. 해서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아니라 받을 사람이 없는 수취인 불명의 ‘쓰지 못한 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굳이 이 세상에 없는 후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고자 했던’ 엄혹한 시절에 목적의 당위가 과정의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일정 부분 당연시했던 분위기에 편승해 좀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강하게 몰아칠 수밖에 없었던 회한의 끝자락을 붙잡고 쓰는 참회록이기 때문입니다.

상민아!

네가 먼저 가 있는 하늘나라는 고통이 없느냐? 무엇이 그리 급해 꽃다운 젊음을 버리고 황망히 가버렸단 말이냐! 네가 우리들 곁을 떠난 날이 무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지났구나. “우리가 이렇게 살 수가 없다”고 비분강개하며 돌아선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날 이후 한동안 너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마침내 나타난 너는 어느 낯선 동네 골목 깊숙이 있는 자그마한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누워 있었단다.

그해 겨울로부터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마 우리는 만났을 게다. 12·12 사태로 군대를 완전히 장악한 신군부가 더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정권까지 탈취하려는 엄청난 음모를 꾸미던 그 시기였을 게다.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너와, 군대에서 제대한 내가 뜻을 같이하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자취방과 여관 등지를 돌며 신군부의 동향과 향후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열띤 토론으로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지 않았더냐.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았던 군사독재 정권이 내분으로 18년 만에 끝장나고 우리는 그렇게도 갈망하던 민주화를 이루려는 바람과 열정으로 학내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며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돌다가 마침내 서울역 앞 광장에 모이질 않았더냐.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즈음에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서울역 앞에 모인 시위대에게 신군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일단 각 대학으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자는 결정에 따라 이른바 ‘서울역 앞 회군’이 감행되었고 이는 신군부에 새로운 빌미를 주어 우리가 그렇게도 우려했던 예상 시나리오가 남도의 빛고을에서 자행되었고 또다시 세상은 꽁꽁 얼어붙어 동토의 겨울공화국이 되어버렸었지.

살벌한 시기임에도 우리들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더욱 가열한 투쟁으로 끝없는 미로를 헤매면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지. 그렇게 젊음이 피폐해질 무렵 너와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에서 의견이 갈려 고성이 오가고 나는 이성이 마비된 듯 너를 윽박지르고 우리의 관계는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야 말았구나.

너의 결연한 주장에 나는 그런 모험주의적 방법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강변하였던 것 같구나. 싸움의 방법에 옳고 그름이 있겠냐마는 그때만 해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였구나. 특히나 선배인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 회한과 자괴감으로 켜켜이 쌓여 오랜 시간 나를 짓눌러 왔는데 모든 것 끝난 지금에 와서야 참회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구나.

너는 그렇게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에 돌아 왔지만 너를 향한 우리들의 사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그해 여름. 우리들의 청춘은 더 내려놓을 것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 절박한 심정으로 끝을 향해 내닫고 있었고 마침내 지친 영혼을 달래줄 그 섬에 정박하지 않았더냐.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얼마나 굶주리고 무엇이 그리도 헛헛했는지 흉측한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고 부질없는 삼킴질을 하염없이 해대고, 쉼 없이 몰아치는 바람은 태고의 먼 행성으로부터 마침내 이곳에 와 닿아 그 걸림 없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외로움을 더욱 깊게 하지 않았더냐. 통영 언덕배기와 소매물도 억새풀 사이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영혼을 두드리던 파도와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장엄한 장군죽비가 되어 어느 섬 어느 골짜기에서 방황하는 젊은 영혼을 일깨우고 있을 게다.

상민아!

나는 오늘 보내는 참회록을 끝으로 40여 년 동안 마음 한 귀퉁이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너에 대한 회한을 해원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너도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편히 쉬렴.


최연 한국도자재단 대표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현재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청춘을 불살랐고, 한때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을 때 인문학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저서로 ‘이야기가 있는 서울 길’, ‘산 이야기’,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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