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목숨만 살려달라는 민들레의 간절한 외침을 하늘이 들어줘, 씨앗을 하늘 높이 날려 양지바른 언덕에 내려놓아 다시 그 삶을 잇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 ‘행복’이란다. ‘민들레트리오’, 그들의 밴드 이름에도 누군가와 함께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의미가 있다. 민들레트리오의 멤버 이유진(56·리드기타), 이수정(56·리드보컬), 반보영(55·리듬기타)씨를 만나봤다.
‘노년반격(老年反擊)’. 꿈을 향한 뒤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꿈을 위한 새로운 시도일까. 아마추어 시니어 뮤지션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 ‘노년반격’이 올해 튜브앰프, 한국에자이, 부루다콘서트, 한국음악발전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우리마포복지관과 함께했다. 작년 ‘실버그래스’와 ‘바야흐로’를 발굴한 데 이어 올해는 여성 3인조 포크밴드인 ‘민들레트리오’를 선발했다. 이 행사를 통해 민들레트리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외출하는 날’을 공개했고 5월에 콘서트를 열어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후 민들레트리오는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늦은 시작이지만 괜찮아
압구정 의료기관과 함께하는 ‘해피바이러스봉사단’에서 만난 민들레트리오의 세 멤버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향해 질주 중이다. 서로의 장점을 물어봤을 때 ‘단점이 없다는 게 장점’이라며 한목소리를 낸 이들은 공통점이 많은 친구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한 가정의 엄마다. 젊은 시절 자식에게 헌신하느라 바빴던 이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면서 뒤늦게 자신의 삶을 찾았다.
음악감상실과 라디오에서만 머물던 포크송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지금은 모두 환갑을 넘긴 ‘쎄시봉 친구들’. 그들이 활동했던 시절의 청년문화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제 추억 속의 기타는 청바지에 통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져요.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고 멋있어 보여 ‘통기타 한번 배워볼까?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기타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이유진씨의 기타 연주 실력은 가수 이한철이 “여성 기타리스트 중에서 이렇게 잘 다루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말할 만큼 수준급이다. 그의 음악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모니카, 아코디언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만능 연주가다. 민들레트리오의 리더이자 리드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이유진씨는 팀원을 직접 캐스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정, 반보영씨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함께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바로 두 멤버를 섭외했다고 한다.
메인보컬 이수정씨는 멤버 중 가장 늦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던 선생님. 퇴직 후 뭘 하면 좋을지 고민 끝에 기타를 선택했다.
“어디를 가도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학창 시절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합창단을 선생님이 권유하실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 당시에는 집안 사정 등 모든 걸 생각해봤을 때 여유 있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어쩔 수 없이 음악은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했어요. 후회? 후회는 없지만, 미련은 조금 남더라고요.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은퇴를 코앞에 두고 ‘나만의 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던 순간 저도 모르게 기타가 생각나더라고요. ‘내가 노래는 자신 있으니까 내 노래를 반주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기타를 배워보자!’ 어쩌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작은 꿈을 이룬 거죠. 행복해요!”
팀의 막내이자 리듬기타를 담당하는 반보영씨는 20년 동안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명예퇴직 후 기타를 배우며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있다.
“당시 명예퇴직금을 정말 많이 준다고 해서 퇴직을 선택했어요. 근데 막상 일을 안 하다 보니 다른 뭔가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제일 잘했지만 포기했던 게 뭐지?’ 하고 생각해보니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났어요. 학창 시절 음악 시험은 정말 식은 죽 먹기였어요. 다른 친구들이 계이름을 못 외우거나 못 맞추는 걸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어요(웃음).”
반보영씨는 그 시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은 “음악은 저희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것이에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또 남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좋아요”라며 현재 활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드러내 보였다.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준 가족
지난 4월, 그들의 데뷔곡 ‘외출하는 날’이 공개됐다. 노년반격의 프로듀서인 가수 이한철이 작곡했고, 멤버가 함께 작사해 탄생한 곡이다. 가사는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지만, 예전부터 꿈꾸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외출을 한다는 내용이다. 마치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5월 홍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들은 첫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노년반격 시즌1에서 뽑힌 ‘실버그래스’의 무대를 시작으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민들레트리오가 이어갔다.
“가족에게 저희들 노래를 들려준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관중석에 있는 가족을 보자 이상하게 울컥해지더라고요. 사실은 콘서트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그게 좀 마음에 걸려 더 열심히 연습한 뒤 초대했죠.”
이수정씨에게 울컥한 이유를 물어보니 “모르겠어요. 복잡한…? 엄마의 이런 모습…?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저도 모르게 그냥 그랬던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가족들 생각을 하면 괜히 서러워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잘못하거나 미안한 일 한 적 없어도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눈물이 나는 마음처럼 말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늦게 음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밴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신랑은 제가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는 걸 아니까 ‘10년을 하겠어, 얼마나 하겠어~’ 하면서 응원해주고 있어요. 단 하나 요구하는 게 있다면 제발 악기는 더 이상 사지 말래요!”
이수정씨의 말에 모두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맞아요! 아무래도 저희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악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기타는 벌써 3개나 있고 피아노에 아코디언에 집이 거의 악기상 수준이 되어버렸어요(웃음).”
즐기는 삶을 위하여!
민들레트리오가 함께 호흡을 맞춘 지 올해로 4년째다. 이제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취미 그 이상이 되어버렸다는 이들은 더 큰 목표를 세웠다.
“우리만 행복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 어떨까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희 노래를 듣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기쁘더라고요. 저희를 필요로 하는 단체나 소외된 계층이 있으면 가서 즐겁게 노래하고 행복을 나누면서 지내는 게 목표예요. 가끔 ‘강원도 어디에서 무슨 축제를 한다더라! 여행 삼아 갔다가 버스킹하고 올까?’ 하고 말하곤 해요. 이번 ‘노년반격’을 계기로 저희들 곡이 하나 생겼는데 앞으로도 곡 작업을 본격화해 한 곡, 두 곡 차곡차곡 쌓아서 전국을 버스킹하며 함께 돌아다니는 게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60대엔 또 다른 모습의 민들레트리오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시니어에게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은 시니어 세대의 도전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어요. 영어를 잘하면 통역, 요리를 잘하면 요리사. 전문적인 능력이 없어도 괜찮아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잖아요. 사람 많은 곳에서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시작해보세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더라고요. ‘노년반격’에 도전하면서 느낀 게, 20대가 되면 부모님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잖아요? 저희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결혼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기분. 처음으로 노래를 발표하고 콘서트도 열고 마치 사회초년생 같은 기분이었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꿈을 다시 펼쳐보는 건 어떨까?
피트니스센터의 조명을 사람의 윤곽만 겨우 보일 정도로 어둡게 해놓고 운동하는 것을 ‘어둠 피트니스’라 한단다. 땀에 절은 모습이나 살찐 모습을 남들 앞에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인기라는 것이다. ‘비어 요가’는 맥주 담은 잔을 요가에 활용하거나,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맥주 한 잔을 하고 시작하면 요가의 어려운 동작도 잘 되고 심신의 긴장도 풀어진다고 한다. 이런 업소가 한국에도 상륙했고 늘어나고 있단다.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 심신이 편하다는 것이다. 유난히 남을 의식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필자는 남을 덜 의식하는 편이지만, 대부분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어딜 같이 가자고 하면 옷차림 때문에 못 간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머리 모양이 헝클어져 못 간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멋을 내느라 불편한 구두를 신고 다니거나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스스로 불편해한다. 정작 남들은 크게 신경 안 쓰는 부분이다.
필자는 이른 새벽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제 막 동이 틀 무렵이므로 세수도 안 하고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밤새 꼼짝 안 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났으니 좀 움직여보고 싶기도 하고 그날의 날씨도 체감해본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부지런히 제 갈 길 바쁜 사람들이므로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다. 이때 남을 신경 안 쓰고 산다는 것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필자가 다니는 노래교실에 캔맥주를 사간 적이 있다. 음료수는 누구나 마시는 편이지만, 음료수 대신 맥주를 마시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독창을 시키면 다들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이 그날은 너도나도 독창을 하겠다고 나서 말려야 했다. 용기가 생겨 목청도 커지고 좋았다는 중론이다. 그러나 노래교실에 다닌다더니 술이나 마시고 다니는 거냐고 오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지속하지는 못했다. 차라리 노래방처럼 조명을 어둡게 해주면 독창할 사람이 많아질 것 같은데 문화센터 규정상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어둠 노래교실’이 어려운 이유다.
댄스스포츠는 밝은 강습실에서 배운다. 도입 때부터 그렇게 시작했다. 음지에서 몰래 배우던 댄스를 그렇게 해놓으니 당당해진 느낌이다. 맥주 한잔 마시고 강습을 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매너 스포츠이므로 자세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콜라텍이나 카바레는 여전히 어두운 조명 아래서 춤을 춘다. 춤추는 모습을 누가 훤히 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조명과 알코올은 사람의 내적 용기를 움직이는 요소다. 밤을 찬미하는 이유도 그렇다. 낮술보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술시(戌時)에 술을 마셔야 술맛이 나는 이유다. 평소에 조곤조곤 얘기하던 사람도 술이 좀 들어가면 옆 테이블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두운 골목길에 밝은 가로등을 달았더니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는 낮과 밤이 매일 있고, 술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삶이 피곤해지고, 너무 풀어지면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앞으로의 비즈니스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아내는 남의 식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경상도 집안이라 친척들과는 더 없이 잘 지내는데 남의 식구는 찬바람이 쌩쌩 날 정도로 불편하게 대했다. 심지어 손님이 간 다음에는 손님의 손길이 닿았던 문고리 등을 걸레로 닦는 결벽증까지 있었다. 설거지할 때도 손님이 사용한 컵이며 수저 등은 무슨 약품을 쓰는지 몰라도 특별히 더 세척했다. 반면에 필자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선 음주운전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술을 마실 수 있고 필자의 집이라 편했기 때문이다. 또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경제적으로도 절약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이 집에 초대를 받으면 마음을 열고 오랫동안 고마워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다. 평소 직장에서는 사무적으로 대하다가 집으로 초대해 정성스럽게 접대를 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며 감동을 하곤 했다. 대우받는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한번은 직장에서 퇴근할 때 부하 직원을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다음 날부터 연휴라서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좀 더 가까워지는 데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의 표정이 싸늘했다. 손님을 싫어하는 데다가 연락도 없이 손님을 데려왔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술상으로 소반을 내놓고 양주병을 꺼내 가져왔는데 안주거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양주에는 마른 오징어구이가 제격인데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서 급한 대로 술안주 될 만한 반찬을 꺼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부하 직원은 필자의 아내가 안방에 들어가서 나오자 않자 불청객이라는 입장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부하 직원은 직장에서 아내의 냉랭한 태도와 당황하며 쩔쩔매던 내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 당시 필자는 봉제공장 공장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청공장에 가면 사장 부부가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하청공장이 대부분 지하실이었는데 서울 강남에 있는 우리 집은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초대했다가 아내가 냉랭하게 대하면 손님이나 필자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언제든 초대하겠다고 말만 해놓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일주일간 미국에 있는 처형네 집에 다녀오겠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일주일 내내 손님들을 집에 데려와 술파티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뻔질나게 해외출장을 다닐 때마다 사온 각종 양주들은 장식장에 고스란히 있었다. 술은 혼자 마시는 것보다 여럿이 마셔야 제맛이 난다.
그룹별로 초대할 명단을 뽑아봤다. 그러고 하루는 생산부 사무직원들, 하루는 공장 반장급들, 하루는 사무 여직원들, 나머지는 하청사 부부들을 따로 부를 계획을 세웠다. 안주와 식사는 마른안주에 중국집 등 동네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으면 될 일이었다. 과일은 통째로 칼과 과일바구니를 갖다 놓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깎아 먹으면 됐다.
필자의 특기는 진토닉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특기라 할 것도 없는 것이 제조방법이 너무나 간단하다. 드라이진이나 보드카에 토닉워터를 타고 통조림에서 꺼낸 빨간 체리 하나를 넣어주면 훌륭한 진토닉 칵테일이 된다. 주량에 따라 토닉워터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담긴 빨간 체리 때문에 보기에도 좋다. 오렌지 주스를 섞기도 하는데 그러면 노란 스크류 드라이버가 된다. 사람들은 소주와 맥주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주량에 맞춰 마신다. 그러나 진토닉이나 스크류 드라이버는 생소한데다 어느 정도 마셔야 취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많이 마실 수 있다. 술맛이 달달해서 잘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보드카나 드라이진은 알코올 도수가 만만치 않게 높다. 멋모르고 마셨다가는 많이 취하게 된다.
칵테일 종류의 술은 특히 여성들이 좋아한다. 보기에도 좋고 마시기에도 달달하기 때문이다. 여직원들과 하청사 부인들에게 칵테일을 만들어주니 생전 처음 맛보는 술이라며 즐거워했다. 만약 아내가 있었다면 그들은 필자 집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직원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떠들고 양껏 술을 마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아내가 있었다면 여직원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 자체가 허락이 안 떨어질 일이었다. 그들도 아내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행으로 부재중이라고 하자 부담 없는 표정으로 필자 집을 방문했다. 아내가 함께 어울려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아내의 부재를 틈타 마음껏 떠들고 웃음꽃을 피운 날이었다. 몇십 년이 흘렀어도 이때의 추억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근 30년을 알고 지내는 미국인 친구가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 그는 바이어였고 필자는 스포츠 장갑 수출을 담당하는 임원이었다. 미국 시장을 처음으로 개척하기 위해 관련 업체 디렉토리를 보고 팩스를 보냈다. 몇 군데서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미국 출장을 떠났다. 미국 동부부터 바이어들을 만났으나 정보만 빼내려는 바이어도 있었고, 처음이라 아직 미심쩍어하는 바이어도 있었다. 심지어 바이어라고 식사비용을 필자에게 전가하는 등 갑질을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서부에서 그를 만났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으로 환대를 해주고 필자가 먹고 싶어 하던 랍스터에 스테이크까지 사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귀국 일자에 맞춰 첫 주문을 선물로 안겨주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미국 비즈니스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회사를 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다른 바이어들은 외면했으나 그는 선뜻 거래선을 필자에게로 옮기겠다며 지원했다. 필자는 사업을 접기까지 10년 정도 그와 관계를 맺어왔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익을 가져다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후 비즈니스 관계가 끝나 딱히 만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그는 필자에게 연락을 한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오는데 그때마다 필자가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하필 비싼 쇠고기를 좋아해서 꽤 부담이 되기도 했다. 둘이 먹어도 20만 원 정도 나오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젠 비즈니스 관계도 끝났으니 비용 부담은 그가 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되었다. 더구나 필자는 퇴직하고 수입이 없는 상태이고 그는 아직 회사 카드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하자고 하면 당연히 받아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느 날 그가 또 한국에 왔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번에는 타이완 수출상도 한 명 데리고 왔다고 했다.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이참에 저녁식사 비용은 그에게 대라고 요구하는 게 나을 듯했다.
하얏트 호텔에서 만나 저녁식사로 뭘 먹고 싶냐고 물으니 의외로 명동엘 가자는 것이었다. 강남은 워낙 비싼 음식점들이 많지만, 명동이라면 대중적인 음식점이 많아 마음이 놓였다. 명동을 구경시켜주고 필자가 가끔 가는 한정식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에 대해 얘기할 때 필자가 이제는 수입이 없고 국민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식사비용은 못 내겠다는 암시였다.
그런데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이 친구와 타이완에서 온 수출상이 손을 모으며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고 나니 필자가 비용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라서 어쩔 수 없이 카드로 결제했다. 그나마 쇠고기가 아니라서 다행스럽게도 12만 원 정도가 나왔다. 2차로 마신 생맥주 비용은 타이완 수출상이 냈지만, 저녁 식사비용에 비하면 소소한 비용이었다.
체면유지비란 그런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지불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못했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에게, 그것도 멀리서 왔는데 식사비용을 내라고 하기가 야박해보이고 난감했던 것이다. 그래도 필자 사정을 생각해서 이번에는 단단히 별렀지만 결국 이번 저녁식사도 필자가 감당해야 했다. 이제 그가 알아서 지불하기 전에는 체면유지비로 감당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그가 필자를 도와준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몇 번이나 더 만날 것인가. 끝까지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된다.
주말 퇴근길 혼자 터벅터벅 걸어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텁텁한 공기만 꽉 차 있는 실내,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 거실은 물론 방마다 불이란 불은 죄다 켜본다. 또 양쪽 화장실에, 베란다까지 구석구석 다 훑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창문을 모두 닫아걸자. 왜? 나 홀로 집이기 때문이다.
“썰렁하니 음악이라도 좀 틀어볼까? 아니다, 그냥 TV나 틀어놓자.” 고교 시절 를 무척 즐겨 들었던 시절이 있었지.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선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예 딴 세상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 배경음악과 함께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들려주던 ‘심쿵’ 사연, 까닭 모를 아련함에 밤을 새우며 써내려간 부치지 못한 편지들. 기다리던 노래는 때마침 흘러나오는데 “오 마이 갓! 그 많던 공테이프는 다 어디로 갔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춘, 내다 버린 기억은 분명 없는데 집구석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아! 젊은 날의 흔적들이여~ 정녕 다시 돌아올 수 없단 말인가?
불청객은 바로 그즈음에 등장했다. 적막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 달콤 쌉싸름했던 잠시나마의 시간여행에서 냉큼 현실로 돌아온다. “아빠 저희 잘 도착했고요. 지금 저녁 먹고 있는데 아빠는요?” 살뜰한 큰 녀석이 카톡으로 인증샷을 보내줬다.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장인, 주방에서 밥하고 계신 장모, 모처럼 방문한 친정집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아내, 그리고 나란히 앉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사춘기 두 아들의 모습에 가만히 미소를 지어본다.
긴장이 풀리고 연휴도 한몫했을 터다. 오전 10시경 부스스 눈을 떠보니 베란다 창을 뚫고 들어온 태양이 눈을 위아래로 흘기고 있다. 머리맡의 빈 맥주 캔은 보초를 서고 있다. 늦게까지 멀뚱거리다 기어코 한 편의 영화를 챙겨보느라 늦잠을 자고 말았기 때문이다. 라는 영화는 도대체 제목이 생뚱맞다. 악한을 연기한 주연배우의 동전 게임과 산소통 장면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 좀 더 잘까나?” 그 순간 노란 포스트잇을 발견한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쪽지엔 숙제가 가득하다. 청소기 돌리기, 쓰레기 버리기, 화분에 물주기, 빨래 널기 등은 그래도 괜찮다. 락스 뿌려 화장실 청소하기(뿌리고 난 후 약 1시간 뒤에 솔로 잘 문질러야 타일 틈새의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는 좀 심하지 않나? ‘가정의 달 특집’이라나 뭐라나!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순전히 필자의 착각이었다. 연휴에 혼자 집에 있으면 시간도 아주 천천히 갈 테고, 미뤄왔던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완전 달성할 줄 알았는데 웬걸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걸까? 일주일이 슝~ 지나가버리고 다시 금요일 오후, 지하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경적소리에 필자만의 시간은 그대로 정지되고 만다.
뭘 또 저리도 잔뜩 챙겨온 걸까? 칠순을 훌쩍 넘긴 장인장모께선 또 얼마나 바리바리 싸주셨을까? 출가한 아들이 둘씩이나 있지만 여태 친손자를 보지 못한 두 분은 그래서인지 필자의 아들들을 무척이나 챙겨주신다. 오이소박이, 겉절이물김치, 부추무침, 참기름, 들기름에 소백산 자락에서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떡까지 보내주셨다. 참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저녁엔 밥도둑이 따로 없으리.
5월 연휴에 맞이한 일주일간의 나 홀로 집에! 그러나 혼자는 없었고 참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
페리에, 씨그램, 트레비. 이름만 들었을 땐 ‘이게 어떤 음료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들은 모두 탄산수 브랜드. 탄산수는 당분, 색소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지만 탄산음료처럼 톡 쏘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올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탄산수 활용 음료를 소개한다.
깔라만시 스파클링 모히토
재료 깔라만시, 애플민트, 탄산수
비타민C가 풍부해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불리는 깔라만시. 강한 신맛이 특징이다.
1. 애플민트 적당량을 으깬다.
2. 깔라만시 반쪽을 잘라 즙을 내주고
설탕(1큰술)과 함께 섞는다.
3. 유리컵에 위의 재료를 넣고 탄산수를 부어 얼음과 함께 잘 저어준다.
Tip 깔라만시가 너무 실 경우 오렌지 또는 라임으로 대체할 수 있다.
스파클링 과일 펀치
재료 수박, 딸기, 사과, 오렌지, 파인애플 등 과일, 우유, 탄산수
여러 가지 과일을 같이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1. 과일을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과일과 함께 우유 2, 탄산수 1의 비율로 섞는다.
Tip 냉동실에 살짝 얼리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저알콜 맥주
재료 맥주, 레몬, 탄산수
맥주는 먹고 싶은데 취하면 안 된다! 탄산수로 탄산은 살리고 알코올 도수는 낮출 수 있다.
1. 도수를 낮추고 싶은 만큼 탄산수를 넣고 맥주와 잘 섞는다.
2.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 레몬 향을 더해준다.
Tip 맥주는 그냥 맥주가 맛있는 법. 정말 맥주가 마시고 싶다면 우선 일을 빨리 끝내고 마시도록 하자.
홍초 스파클링
재료 홍초(청정원), 탄산수
식초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도록 과실로 만든 홍초는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올여름 홍초 스파클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해보자.
1. 홍초 1, 탄산수 5의 비율로 섞어준다.
Tip 홍초는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블루베리, 복분자, 석류 등 다양한 맛이 있다.
스파클링 매실 주스
재료 매실액, 탄산수
매실은 식사 후에 먹으면 소화를 돕는다. 청량감을 더해주는 탄산수와 함께 먹으면 일석이조!
1. 매실액(2큰술)을 얼음과 함께 유리잔에 넣는다.
2. 탄산수를 적당량 넣어 시원해질 때까지 잘 저어준다.
Tip 과실 원액이 없다면 마트에서 파는 에이드 가루를 사용한다.
초여름, 캠핑하기 알맞은 시기다. 캠핑의 꽃은 단연 바비큐! 같은 고기라도 야외에서 불을 피워 구운 고기는 더 맛있게 느껴진다. 찌르르르 산벌레 울음소리, 타닥타닥 피어오르는 모닥불, 살랑살랑 불어오는 은은한 바람이 천연조미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캠핑의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모노캠프’를 찾아갔다.
자연이 빠지면 진짜 캠핑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 잡은 모노캠프는 인근에 고기리유원지와 고기리계곡, 광교산 등이 있어 자연과 벗 삼아 캠핑 바비큐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주변 경관도 볼거리이지만, 모노캠프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가 맞이하는 연못과 가지런히 쌓여 있는 참나무 장작, 캠핑 천막을 두른 야외 테이블까지, 마치 숲속의 아지트를 발견한 듯하다.
저녁 시간에 가면 야외 정원에 모닥불이 빨갛게 피어오르고 연못 분수에 조명이 들어와 별빛처럼 반짝인다. 일반적인 식당은 실내 테이블에서 고기를 먹고, 야외로 나와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게 대부분인데, 이곳은 그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고기는 야외 테이블에서, 디저트는 실내에서 즐길 수 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아요
한때 캠핑 스타일의 바비큐를 모방한 맛집들이 유행했다. “캠핑 도구로 꾸민 실내에서 간이의자 몇 개 놓고 고기 구워 먹는다고 해서 캠핑 분위기가 나는 것은 아니다.” 모노캠프 주인장의 이야기다. 가게를 운영하기 이전에도, 또 현재까지(아마 앞으로도 계속) 캠핑을 사랑하는 주인장은 자신이 느끼는 캠핑의 매력을 공유하기 위해 공을 쏟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리’다. 바람소리, 물소리, 음악소리 이 세 가지는 꼭 넣고 싶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라이브카페였는데, 정원을 개조하며 연못 분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물소리를 낼 수 있었고, 연못 안 개구리 울음소리도 덤으로 얻었다. 또 가요 대신 잔잔한 재즈와 팝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식사 중 음악이 거슬리지 않게 ‘리스닝(listening, 듣는 것)’이 아닌 ‘히어링(hearing, 들리는 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사는 힐링 맛집
강릉에서 올라와 2주에 한 번꼴로 모노캠프를 찾는다는 단골은 “이곳은 고기가 아닌 분위기를 사는 맛집이다. 번거롭게 캠핑을 떠나지 않고도 캠핑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고기와 야채, 소시지, 새우 등을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캠핑 훈연 바비큐 세트 4인 6만9000원, 와규 프리미엄 꽃등심 세트 4인 9만9000원)를 주문한다.
구이용 메뉴 못지않게 손님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바로 ‘라면(2000원)’. 캠핑을 가본 사람이라면 야외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맛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라면은 끓여서 내지 않고 봉지라면과 달걀, 양은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준다. 직접 끓여 먹으라는 것인데, 분위기 덕분인지 수고스럽기보다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것 또 하나, 시원한 맥주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얼음이 든 양동이에 소주, 맥주, 음료 등을 한꺼번에 담아와 먹을 수 있다. 이 또한 독특한 풍경이다. 야외에서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면, 실내로 자리를 옮겨보자. 다양한 카페 메뉴는 물론, 주류와 안주까지 마련돼 있어 1차를 마치고 가장 빠르게 2차를 즐길 수 있다.
한밤중 나타났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도깨비처럼, 비밀스러운 거래가 일어나던 도떼기시장을 이른바 ‘도깨비시장’이라 부르곤 했다. 이처럼 특정한 날과 시간이 되면 열리는 장이 있다. 바로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다. 청계천과 한강공원 등 물가 인근에서 열려 밤공기가 선선한 6월이면 산책 삼아 거닐기 제격이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하 야시장)은 서울시에서 출범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행사다. 3월부터 10월까지 금·토요일(청계천은 토·일요일) 저녁마다 여의도·반포 한강공원과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에서 열린다.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각양각색 푸드트럭과 핸드메이드 숍, 다채로운 공연 무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월드나이트마켓’이라 부르는 여의도 야시장은 한강의 유람선과 마포대교, 쌍둥이빌딩 등에서 비추는 조명이 별처럼 반짝이는 야경을 자랑한다. 잔잔한 강 물결과 어울리는 버스킹(길거리 연주) 공연과 더불어 아시아·유럽·남미의 전통 공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강공원의 너른 잔디밭에는 텐트와 돗자리를 펴고 야시장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하다. 인근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다니다가 반짝이는 야시장의 불빛을 보고 발걸음하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열대야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는 방문객이 주를 이룬다. 돗자리만 챙겨간다면 도시락을 싸가지 않고도 여름밤 가족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 ‘청춘런웨이마켓’에서는 신나는 DJ공연과 함께 패션쇼가 열린다. 다른 야시장보다 젊은 층의 비율이 높아 신선하고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다. 패션의 거리인 만큼 신진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와 더불어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 상품과 디자인 소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패션 트렌드와 젊은 세대 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도심의 야경과 분수, 빛과 음악이 흐르는 반포 야시장 ‘낭만달빛마켓’에서는 로맨틱한 재즈, 팝페라, 어쿠스틱 음악 공연이 열린다. 해질 무렵 찾아가면, 붉게 물든 석양 아래 무지갯빛 물줄기가 쏟아지는 낭만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인근 반포대교와 한남대교 등 도심의 야경을 배경으로 이색적인 음식과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는 이가 많다.
청계천을 따라 펼쳐지는 ‘타임슬립마켓’은 사랑의 자물쇠와 소원의 나무, 도깨비 퍼레이드 등 다양한 이벤트를 운영한다. 평소에는 광통교 일대에서 열리지만, 시즌별로 특정한 날에는 청계광장에서도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여름 시즌 8월 18~20일).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청계천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각 지역 야시장 종합 안내소 겸 상황실에는 의료지원 본부가 마련돼 있어 응급상황 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푸드트럭, 점포 정보 및 공연 안내는 서울밤도깨비야시장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빨이 충치로 구멍이 났다. 음식물도 끼고 씹을 때 통증이 있다. 단골 치과병원에 달려가서 신경치료를 받고 금으로 구멍 난 곳을 때우기로 했다. 의료보험이 안 되고 치료비로 33만원이 나왔다. 치과는 아직도 의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다. 불만이다.
남들처럼 필자도 젊은 시절에는 이빨하나는 자신했다. 이빨이 무슨 연장이라고 맥주병이나 소주병도 이빨로 뚜껑을 열었다.. 전선 껍질도 이빨로 벗기고 원만한 끈은 이빨로 물어뜯었다. 이빨은 하나의 도구였다. 이제는 겁이 나고 아플까봐 못하고 안 하지만 아직까지는 빠진 이빨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산이다. 친구들은 이런 자연산 이빨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이빨 한두 개는 대부분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dental implant) 치아를 사용 중이다.
본인의 원래 치아가 어떤 인공치아보다 좋으니 자기 이빨을 뽑지 말고 유지보수하며 지키라고 의사들이 충고한다. 병의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한 점은 치과라고 예외는 아니다. 칫솔질만으로는 완벽하게 치석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과병원의 스케일 제거 작업이 필요하다. 일 년에 두 번 의료보험도 적용되기 때문에 저렴하다. 스케일 제거 작업을 하면서 치아 검진을 받고 있다.
노익장을 자랑하는 송해 선생님의 건강비결이 정기적으로 치과병원에 다니며 치아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장수를 누리는 사람 대부분이 치아가 건강한 사람들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빨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빨이 망가지면 음식 먹는데 불편을 느낀다. 예전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 사장님이 70대었는데 직원들과 회식하면 횟집을 선호했다. 우리는 사장님이 정말 회를 좋아하나보다고만 생각했다. 나중 어느 자리에서 사장님이 실토하시길 이빨이 부실하여 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 부득이 횟집으로 회식장소를 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정심이 갔다.
맹수들에게 있어서 이빨은 공격수단이자 방어수단으로 생존의 무기다. 적이 나타나면 으르릉 소리를 지르며 이빨을 크게 내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이빨이 없으면 맹수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먹이를 대신 갖다 주는 경노사상이 없는 짐승들의 세계에서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맹수의 왕 사자가 하이에나에게도 공격을 당하다 결국 죽임까지 당하는 첫 번째 이유가 이빨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결정적인 발명품이 칫솔이라고 한다. 치아를 아무리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나이에 비례하여 부실해지기 쉽다. 치아가 빠지면 치아 임플란트나 틀니를 하는 것이 예정된 코스다. 치과병원에서도 치아 임플란트 치료가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다. 전철역 부근에서 나이든 사람들을 상대로 물티슈와 함께 뿌려대는 치과병원 광고는 대부분 치아 임플란트를 저렴하게 해 줄 태니 빨리 오라는 광고다. 예전에는 치아 임플란트 비용이 하도 비싸서 소형자동차 한 대 값 이였다. 요즘은 노인들에게는 의료보험도 일부 적용해주니 비용부담이 많이 가벼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빨이 튼튼하면 옛날부터 오복중의 하나라고 하고 나이든 사람의 튼튼한 치아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빨이 튼튼하여 음식물을 잘 씹어 삼켜야 건강하다. 하루 3번 3분 이상 칫솔질을 생활화 하고 있지만 이빨이 죽는 날까지 튼튼하리라 장담은 못한다. 치과의 여러 진료와 치료에 의료보험지원 혜택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비용 때문에 부실한 치아로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지난 10년간 치킨 집을 운영해오던 친구가 문을 닫는다며 친구들을 초대했다. 한창때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나서 실업자로 6년을 놀았다. 부인이 그 사이에 치킨 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댔다. 그러다 부인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치킨 집을 인수해 부부가 같이 10년을 운영해온 것이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치킨 집들이 다 문을 닫았는데 굳건히 버텼다. 브랜드의 힘이기도 했고 친절과 성실, 그리고 배달 서비스의 신속함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자녀들 시집, 장가 다 보냈으니 더 이상 고생하면서 돈을 벌 목적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사이에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죽다 살아난 고초도 겪었다. 인근 아파트들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향후 영업 전망도 밝지 못한 것도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였다.
치킨 집 운영은 고된 일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치킨을 튀겨내려면 죽을 맛이다. 추운 날에도 배달을 하려면 고생이 막심하다.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처음에는 연중무휴로 일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가며 일하라고 충고하자 그러겠다더니 올림픽 등 특수가 오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친구들 모임에도 못 나와 친구들이 치킨 집으로 모였다. 덕분에 우리 친구들은 맛있는 치킨과 맥주를 무한 리필해가며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돈을 받기가 미안하다며 돈을 안 받았다. 그러나 그러면 부담이 되어 못 간다고 하자 1인당 1만원으로 마음껏 먹고 가는 것으로 했다. 단, 주말은 바쁘니 피해달라고 했다.
이 친구가 원래 마초 같은 남자라서 부인에게 고압적이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면서 성격이 많이 고분고분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고생하는 부인을 물끄러미 볼 때 미안한 마음에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부인도 그만한 위치라면 남편에게 할 말은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와도 배달을 나가야 하니 같이 술 한잔 나누고 싶은 생각은 굴뚝이지만, 전화 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주문이 오면 달려나가야 했다.
치킨 집 운영은 주문을 기다리는 일이라 예측 불가능함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재료를 잔뜩 준비해놓았는데 웬일인지 주문이 뚝 끊기는가 하면 반대로 주문이 폭주해 생 땀을 흘리기도 했단다. 물론 올림픽, 월드컵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주문이 많아 나름대로 대비를 잘 했다. 그러나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주문 때문에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 치킨 집을 접으면 강원도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노후를 보내겠단다. 부인도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부인 명의로 전원주택을 사준다 하자 동의했단다. 사실 누구 명의가 되든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으로는 넓은 텃밭에 이것저것 가꾸며 살고 싶지만 육체적인 능력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소규모로 욕심을 줄였단다. 농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저절로 크는 과일나무나 심어 재미로 따먹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려 한단다. 덕분에 강원도에 갈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우리 나이쯤 되니 강원도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기 때문이다.